김응삼
1. 광복군 장교 김응삼
김응삼은 평안북도 선천군 사람으로, 1910년에 태어났다. 1930년대에 난징 한국애국단에 입단했으며, 1940년 8월 제남 전투(濟南戰鬪)에 참전한 뒤 중국군중앙군관학교 4분교와 통계국 참모훈련반을 졸업했다. 1941년 3월 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에서 열린 광복군 제3징모처 위원 임명식에서, 그는 징모3분처 위원 겸 훈련조장에 임명되어 금화(金華) 지역에서 대적선전방송, 정보수집 및 일본군 포로 심사 등의 일을 수행했다. 그러나 1942년 절동 전투에 참가했다가 난계역(蘭溪驛)에서 중상을 입고 얼마 후 병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김응삼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2. 의병장 김응삼
김응삼은 전남 구례 출신으로 1907년 정미의병 때 거병한 고광순의 의병대에 가담했다. 1907년 9월 15일 동지 2백명과 더불어 동복(同福) 순사 주재소를 습격했고, 각지를 전전하며 의병을 모으고 무기를 수집했다. 1909년 9월 8일 지리산 구례 화개동의 연곡사(燕谷寺)를 본영으로 삼아 그 일대의 적병과 대치했다. 그러나 광주 수비대에게 내습을 당하자 전군을 2대로 나눠서 적과 교전했지만 하동 방면에서 다시 적군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의병대는 궤멸되었다. 이 전투에서 고광순과 고제량 등이 전사했고 고광훈은 체포되었다. 이때 김응삼은 적과 맞서 싸우다가 전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김응삼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