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봉(1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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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2. 상세
김희봉은 1874년 11월 25일 경상도 창녕현 월미면 계팔동(현 경상남도 창녕군 고암면 계상리 계팔마을)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 운동 당시 그는 영남 지방 유림 중 한 사람으로서 경상도 유림들로부터 파리 강화 회의에 제출할 독립청원서의 서명을 받아 내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런데 1919년 음력 3월 18일경 일본군 헌병에 발각되면서, 그는 고암면 원촌리 출신의 유학자인 조긍섭과 함께 대구 헌병사령부에 연행, 구금되어 고초를 겪었다.
그해 5월 16일 대구지방검찰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기소유예로 불기소처분을 언도받고 출옥하였다.##
그후 그는 3.1 운동 1주기를 즈음하여 거족적인 독립만세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고, 1920년 2월 창녕면 장날에 「통곡아팔역 동포 오주열강(慟哭我八域 同胞 五州列强)」이라는 선언문을 작성, 낭독하였으나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다시금 고초를 겪었다.
이후 옥고의 여독으로 고통받다가 1928년 1월 7일 죽었다.
1999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