꿰응옥하이
1. 개요
베트남의 축구선수. 수비수. 이름의 한문 독음은 계옥해(桂玉海).
2. 클럽 경력
2013년 데뷔하자마자 주전센터백을 꿰차고 이후 2018년까지 주전자리를 놓지 않았다. 심지어 후술할 공백기간 이후 컴백할때도 바로 주전을 차지했다.
2019년부터 비엣텔 FC로 이적했다.[1] 국가대표팀 동료 부이띠엔중과 호흡을 맞출껄로 기대된다.
3. 국가대표 경력
베트남의 축구대표팀 주장으로써 주전자리를 지키며 주장의 면모를 다하고 있는 에이스.
국대경기서 골키퍼로 나온 이색 경력도 있다. 2016년 스즈키컵 준결승 2차전 인도네시아와 경기서 베트남은 교체카드를 다썼는데 쓰자마자 골키퍼 쩐응우옌마인이[2] 불필요한 행동으로 퇴장을 당해서(.....) 어쩔수없이 응옥하이가 골키퍼 유니폼을 입고 나머지 시간을 보냈는데 90분 이후 부민뚜언이 동점골을 터뜨려 연장에서도 뛰었다. 연장에서 실점당하며 지긴했지만 만약 승부차기까지 갔을경우 엄청난 경험을 했을지도(....)
2019 AFC 아시안컵 아랍에미리트에도 출전했으며 조별리그 3차전 예멘과의 경기에서 얻은 PK의 키커로 나서 키퍼를 속이며[3] 득점에 성공했다. 16강 요르단과의 승부차기에서 첫번째 키커로 나서 전혀 긴장하지 않고 성공시키며 팀의 8강 진출에 기여했다.
4. 플레이스타일
파이터형 수비수로 중앙 수비수 치고는 살짝 작은 키지만 겉으로는 말라보여도 벗을경우에는 몸이 꽤 좋고, 탄탄한 수비능력을 바탕으로 상당히 안정적이라는 평이다. 공격수와 뒤엉킬때 개싸움, 걸레수비에 능숙하고 가끔 거친 면모를 발휘하며 상대를 기죽이는 모습도 보인다. 커맨더형 수비수로도 그런대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4] 단 초창기에 잘쓰던 태클을 언제부터인가 잘 안하는 편이긴 한데.... 이건 밑에 흑역사 참고.
응옥하이의 초창기 경기 영상을 보던 박항서 감독과 이영진 수석코치는 바로 "뭐 저런 미친놈이 다 있냐?"는 평가를 내렸다(.....)
20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노련해지며, 초창기 미친놈이란 소리를 들었던 거칠다 못해 더러운 스타일은 많이 사라졌다.
5. 기타
응에안 성 사람중에 가정형편 어려운 사람 없겠냐만은... 그도 전형적인 응에안 성 빈곤가정 출신이다. 아버지가 과일을 팔면서 힘들게 키웠다.
친형 꿰응옥마인도 축구선수다. 응옥마인이 송람응에안에서 먼저 데뷔하고 2년뒤 응옥하이가 데뷔한다. 하지만 응옥하이에 비교해서 응옥마인이 조금 딸린다. 이후 껀터를 거쳐 2019년 빈즈엉에서 수비수로 뛰고있다.
응옥마인이 무릎부상을 당했을때 수술비가 없어서 응옥하이가 대신 내준적도 있다.
"장린펑에게서 문신만 제거하면 응옥하이다." 라는 말이 있을정도로 둘이 서로 닮았다.
6. 흑역사
6.1. 쩐아인코아 사건
사건 영상 링크(클릭 주의!!!)
그의 축구인생이 끝날때까지 영원히 짊어져야할 과오로 2015년 9월 송람응에안-SHB 다낭 경기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그때 꿰응옥하이는 한참 국가대표 수비의 젊은 기둥으로 주가를 올리던 시절이었지만 경기 도중에 다낭 미드필더 쩐아인코아의 돌파를 막으려고 무리한 태클을 하다가 '''스터드가 아인코아의 무릎을 그대로 가격하면서 무릎이 꺾였다!!!'''[5][6]
아인코아는 '''무릎뼈골절+인대파열'''이라는 엄청난 부상을 당했고 이 사건으로 응옥하이는 6개월 선수 자격정지, 벌금 8억동(약 4천만원) 처분을 받는다. 또한 민사소송까지 가서 치료비도 보상하라는 법원 판결도 받는다. 단 이때는 응옥하이는 연봉을 크게 못받아서 완납까지 복귀 불가 규정때문에 선수 복귀를 못할뻔했다가 호앙 아인 잘라이 그룹 회장이 "베트남 국대를 책임져야할 젊은 선수가 한순간의 실수로 묻혀서는 안된다."는 이유로 벌금과 치료비를 대납해줬다. 이후에도 송람응에안 구단에서 마련한 치료비를 현금으로[7] 아인코아 집에 직접 찾아가서 아인코아와 가족들에게 전달해주는 장면이 카메라에 찍혔다. 이거 말고도 여러차례 개인적으로 찾아가서 가족에게 생활비를 대주는등 도와준적도 있다.
아인코아는 이 부상으로 독일과 싱가포르를 오가면서 수술과 재활에 시간을 투자하며 재기를 노렸지만 결국 2017년 은퇴를 선언한다. 이후 지도자 자격증을 따서 유소년 지도자로써 제 2의 인생을 살고 결혼도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부상 후유증에 시달리는 모양.[8] 그래도 나중에는 응옥하이를 용서하며 팬들도 그를 너무 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로 대인배인증을 했다.[9]
여담으로 응옥하이는 2016년 자격정지 기간이 끝난뒤 약 1년동안 등번호 45번을 달고 뛰었다.[10]
2019년 3월 8일 비엣텔-하노이 하노이 더비서 하노이 오른쪽 풀백 쩐반끼엔의 다리를 스터드로 긁어내서 상처를 입히고 퇴장을 당해 이때 사건이 재조명되면서 다시 까이고있다.
[1] 원래 이름은 테꽁 FC고 비엣텔은 스폰서.[2] 2018년까지 응옥하이와 같은 팀동료였다. 2017년까지는 응우옌마인이 베트남 국대 주전 골리였다가, 2018시즌 시작 직전 골절상으로 아예 1년을 쉬고 그 사이 국대 세컨드와 서드를 오가던 당반럼이 치고 올라왔으며 응우옌뚜언마인, 부이띠엔중, 응우옌반또안에 해외 교포까지 가면 필립 응우옌까지 다른 재능있는 골키퍼들도 계속 등장해서 현재는 국가대표에 많이 멀어진 상황이다. 특히 이들 모두다 피지컬은 응우옌마인보다 더 좋다.[3] 왼발로 차는 척하다가 오른발로 찼다.[4] 2016년 이후 급격한 세대교체로 현재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에는 1995년 이전 출생자를 찾기가 힘들다. 그나마 경험많고 노련한게 응옥하이뿐. [5] 구글에 Tran Anh Khoa 검색을 해보면 '''성인인증'''이 필요하다고 뜬다. 옆에다 injuary라던가 하는 관련 검색어도 안붙였는데.[6] 하지만 고작 옐로카드에 그쳐서 심판은 욕을 먹었다.[7] 이 직전 다낭과 응에안 구단간 치료비용 액수 논쟁이 있었다.[8] 아직도 다리를 절고있고, 무릎에는 그 당시 스터드에 박힌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다.[9] 하지만 가끔 연락이 잘 안되어서 서운하다는 말도 남겼다.[10] 원래 등번호는 4번이고 45번은 아인코아의 등번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