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토 키요나리
内藤清成
(1555 ~ 1608. 11. 27)
전국시대와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으로 통칭은 야사부로(弥三郎). 다케다 무네나카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나이토 타다시게의 양자로 들어갔으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시동으로 지냈으며, 1580년에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부역(후견인)을 맡으면서 1590년에 히데타다와 동행하여 상경했다.
히데타다와 동행한 같은 해에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으로 관동으로 영지가 옮겨지자 철포대를 이끌면서 에도로 갈 때 선진을 맡아서 코우다로와 가마쿠라 가도가 교차하는 부근에서 진을 깔아서 망루를 세웠으며, 9월에 요츠야로부터 요요기 마을에 걸친 21만여평에 해당하는 저택을 받는다.
에도로 당도한 이후에는 관동 서무 부교, 관동 총 부교, 에도마치 부교, 로쥬 등의 관직을 거치면서 행정 분야에서 공을 세웠으며, 1600년에 세키가하라 전투가 일어날 때 히데타다 휘하에 종군하여 우에다 전투에 참전하였다는 설과 에도에서 지키는 역할을 했다는 설이 있다.
1592년에 사가미 국 동군 5000석을 받았다가 1595년에 종5위하 슈리노스케에 임명되었으며, 1601년에는 히타치국, 카즈사국, 시모우사국 내에서 1만 6000천석을 받아 2만 1000석으로 증가하면서 다이묘가 되었다.
1606년에 오고쇼(은퇴한 쇼군)인 이에야스가 에도 근교의 사냥터에 나갔다가 사냥이 금지된 구역에 수렵 함정이 설치되었으며, 이를 허가하였기 때문에 이에야스의 분노를 사서 칩거를 명령받았다가 할복당할 뻔한 것을 혼다 마사노부의 중재로 할복은 면하였지만 11월에 칩거가 풀렸을 때부터 정치에서 멀어졌다고 한다.
그가 이에야스에게 받았던 21만여평에 해당하는 저택은 이후에 숙박 구역의 건설을 위해 반납되어 나이토 신주쿠라는 숙박 구역으로 설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