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사계

 

諾思計
[image]
고투항수령낙사계(故投降首領諾思計) 낙사계 묘지명 탁본

1. 개요


? ~ 748년 음력 5월
발해의 인물. 낙사계의 묘지명이 발견되면서 세간에 알려젔다. 원래 중국의 학자들로서는 부여 운운 때문에 백제인으로 추측했으나 한국의 고대사 연구자 김영관 씨에 의해 2011년 1월, 발해인으로 정정된다. 이건 뭐... 아무리 실체규명이 어려운 고대사라지만
시기상의 문제 뿐만 아니라, 725년 당에 파견된 발해사신 낙(諾)개몽의 존재도 발해인이라는 가능성을 더해준다.

2. 행적


자세한 시기는 불명이나, 734년[1] 이전 발해에서 으로 투항했다. 발해에 있을적에 발해 15부의 하나인 부여부의 대수령을 지냈다.[2] 734년 8월 유주장사 설초옥(薛楚玉)과 함께 거란과의 전쟁에서 공봉장군으로 참전했기 때문.
당에 투항하고 황제로부터 노정빈(盧庭賓)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 743년 당의 장군으로서 거란과의 전쟁에 참전했다. 748년 5월에 경조부 만년현 평강방의 마을에서 사망했다.
문원영화(文苑英華) 권647에는 낙사계가 거란의 수장으로 등장한다고 한다.

3. 기타


  • 낙사계 묘지명은 1991년 보고되었는데 덮개돌인 개식이 없고, 행적을 기록한 지석만 남았다고 한다.
  • 특이하게도 당에서 고관대작에 올랐음에도 묘지명[3]에는 조상에 대한 언급, 출생지, 자손에 관한 기록이 없다.
[1] 당시 당나라와 발해는 적대관계였다.[2] 관련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삼국사기 대무신왕 5년조에 부여 대소왕의 사촌동생이 부여 사람 1만 명을 거느리고 고구려에 투항해, 연나부에 배속되고 낙씨(絡氏) 성을 하사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물론 한자가 서로 달라서 단정지을 수는 없다.[3] 묘비에 적혀져 있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