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복수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남복수'''
'''南福洙'''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이명'''
남수복(南洙卜)
'''자 / 호'''
경도(景都) / 청암(靑巖)
'''본관'''
영양 남씨[1]
'''출생'''
1880년 5월 9일
경상도 청송도호부 현동면 상월매
(현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월매리)[2]
'''사망'''
1931년 1월 24일[3]
경상북도 청송군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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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남복수는 1880년 5월 9일 경상도 청송도호부 현동면 상월매(현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월매리)에서 월매리 입향조 겸와(謙窩) 남수(南邃)의 10대손인 아버지 남붕석(南朋錫)과 어머니 밀양 박씨 박인복(朴麟復)의 딸 사이의 무녀독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907년 의병을 일으킨 정환직정용기 부자의 산남의진(山南義陣)에 가담해 군자금과 무기를 모집하는 활동을 수행했다. 그러나 1907년 9월 1일 입암 전투에서 부상을 입은 후 산남의진이 와해되자 자택에 은거했다가 1931년 1월 24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2년 남복수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송정공파(松亭公派)-청송 문중 16대손 수(洙) 항렬. 영양 남씨 24세.[2] 인근의 도평리·거성리·개일리와 함께 영양 남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남석태도 이 마을 출신이다.[3] 남씨대동보 2권 대광공후 송정공파(영양 본관) 238쪽에는 1930년 12월 9일에 별세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