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가천동 출토 금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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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아시아경제 국립대구박물관 '가천동 신라무덤' 주제로 전시해설
1999년 3월, 대구광역시 수성구 가천동 고분군에서 발견된 5세기경 신라시대 금동관. 현재 국립대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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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 대구시 가천동 고분군서 신라시대 금동관 출토
1999년 3월에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대구시 수성구 가천동에 위치한 신라시대 고분군에서 발견한 금동관이다. 유물의 제작 연대는 5세기(서기 400년대) 경이다.
가천동 고분군이 위치한 곳은 금호강에 연해 동-서 방향으로 뻗어있는 대구 고산지역 소분지의 북측 능선에서 가운데 부분이다. 이 가천동 고분군 주변에는 다수의 유적들이 분포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노변동·욱수동 고분군, 성동 산성과 성동 고분군, 시지 취락지, 경산 중산동 고분군과 중산동 토기가마터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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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발견된 다른 신라시대 유물들과 함께 전시된 모습.사진 출처 : 대구광역시 수성구 공식 블로그 시지의 옛 모습을 대구박물관에서
가천동 고분군은 4세기에서 6세기 사이에 조성된 216기의 구덩식돌덧널무덤(竪穴式石槨墓)과 7기의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墓)으로 이루어져 있다. 1998년과 1999년에 걸쳐 영남문화재연구원에 의해 일부가 발굴되었는데 이 금동관은 그 중 한 고분에서 발견된 것이다. 당시 이 고분에는 금동관 한 점과 금동제 귀걸이 등 장신구 41점, 토기류 930점, 그리고 철기류 297점이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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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한국박물관협회 뮤지엄 뉴스 : 국립대구박물관, 마침내 찾은 유적 <고대 마을, 시지時至> 개최
가천동 고분군은 경산 임당지역 고분군을 중심으로 한 대구지역 집단군 가운데 그 서부를 관할하던 고산지역 읍락집단의 상층을 이루었던 성동 고분군 집단의 하층 집단이 조성한 고분군으로, 수성구 신매동과 노변동, 욱수동을 비롯, 가천동과 삼덕동, 경산 옥산동과 중산동까지 포함하는 약 21,500,000㎡의 광범위한 지역에 분포하는 신라시대 대구 시지지구 유적의 일부이다. 아직 90%가 넘는 대부분의 고분이 발굴되지 않고 있지만 현재까지 이 지역의 총 55개 유적에서 40,000여점이 넘는 고대 문화재가 출토되고 있어 지금으로부터 1,600여년 전 대구 시지지구 일대의 발전상과 위세를 느끼게 해준다.
이 금동관은 5세기를 중심으로 수장 권위의 상징으로써 지방의 중심 고총들에 부장되었던 일반적인 신라시대 금동관과는 성격이 다른 것으로, 장척(匠尺)으로 불리던 신라의 지역 호민이 착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자료이다. 오직 신라 고분에서만 발견되는 정교한 황금 세공 기술을 보여주는 유물로, 신라시대 대구 시지 일대의 금세공기술 및 금속공예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
사진 출처 : 아시아경제 국립대구박물관 '가천동 신라무덤' 주제로 전시해설
1. 개요
1999년 3월, 대구광역시 수성구 가천동 고분군에서 발견된 5세기경 신라시대 금동관. 현재 국립대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2.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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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 대구시 가천동 고분군서 신라시대 금동관 출토
1999년 3월에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대구시 수성구 가천동에 위치한 신라시대 고분군에서 발견한 금동관이다. 유물의 제작 연대는 5세기(서기 400년대) 경이다.
가천동 고분군이 위치한 곳은 금호강에 연해 동-서 방향으로 뻗어있는 대구 고산지역 소분지의 북측 능선에서 가운데 부분이다. 이 가천동 고분군 주변에는 다수의 유적들이 분포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노변동·욱수동 고분군, 성동 산성과 성동 고분군, 시지 취락지, 경산 중산동 고분군과 중산동 토기가마터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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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발견된 다른 신라시대 유물들과 함께 전시된 모습.사진 출처 : 대구광역시 수성구 공식 블로그 시지의 옛 모습을 대구박물관에서
가천동 고분군은 4세기에서 6세기 사이에 조성된 216기의 구덩식돌덧널무덤(竪穴式石槨墓)과 7기의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墓)으로 이루어져 있다. 1998년과 1999년에 걸쳐 영남문화재연구원에 의해 일부가 발굴되었는데 이 금동관은 그 중 한 고분에서 발견된 것이다. 당시 이 고분에는 금동관 한 점과 금동제 귀걸이 등 장신구 41점, 토기류 930점, 그리고 철기류 297점이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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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한국박물관협회 뮤지엄 뉴스 : 국립대구박물관, 마침내 찾은 유적 <고대 마을, 시지時至> 개최
가천동 고분군은 경산 임당지역 고분군을 중심으로 한 대구지역 집단군 가운데 그 서부를 관할하던 고산지역 읍락집단의 상층을 이루었던 성동 고분군 집단의 하층 집단이 조성한 고분군으로, 수성구 신매동과 노변동, 욱수동을 비롯, 가천동과 삼덕동, 경산 옥산동과 중산동까지 포함하는 약 21,500,000㎡의 광범위한 지역에 분포하는 신라시대 대구 시지지구 유적의 일부이다. 아직 90%가 넘는 대부분의 고분이 발굴되지 않고 있지만 현재까지 이 지역의 총 55개 유적에서 40,000여점이 넘는 고대 문화재가 출토되고 있어 지금으로부터 1,600여년 전 대구 시지지구 일대의 발전상과 위세를 느끼게 해준다.
이 금동관은 5세기를 중심으로 수장 권위의 상징으로써 지방의 중심 고총들에 부장되었던 일반적인 신라시대 금동관과는 성격이 다른 것으로, 장척(匠尺)으로 불리던 신라의 지역 호민이 착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자료이다. 오직 신라 고분에서만 발견되는 정교한 황금 세공 기술을 보여주는 유물로, 신라시대 대구 시지 일대의 금세공기술 및 금속공예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