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모크리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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Δημόκριτος (BC 460? ~ BC 370?)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원자론을 체계화하였으며 유물론의 형성에도 영향을 끼쳤다.
별명은 웃음의 철학자.[1]
1. 출생 및 행적
기원전 460년경 그리스 북동부 트라케 연안의 압데라(Abdera)에서 태어났다. 압데라는 이오니아 지방의 고대 철학과 근동의 사상이 모여든 곳으로 이러한 환경은 데모크리토스의 성장과 사상 형성에 영향을 끼쳤다.
데모크리토스의 삶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상당수 존재하나 연대에 모순이 있거나 진위여부가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 기록에 따르면 부친에게 많은 유산을 물려받은 데모크리토스는 페르시아, 이집트, 인도, 에티오피아 등지로 여행을 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생애 후반기 데모크리토스는 집안에 머물며 사색과 집필 활동에 몰두했다. 이 시기 그는 철학뿐 아니라 문학, 천문학, 수학, 물리학, 의학, 농학, 지리학, 사학, 윤리학 등 다양한 분야를 연구했기 때문에 박학자라 불렸다.
하지만 원자론을 주장한 데모크리토스는 당대의 종교 중심적 사회에서 무신론자로 배척되었으며, 중세시대까지 '데모크리토스 = 사탄' 비슷하게 취급되어서 그에 대한 언급이 거의 금기시되었다. 때문인지 그가 저술했다는 연구 기록들은 현재 거의 전해지지 않는다. 그나마 근대 이후에 들어 원자론이 학술계에서 상당히 흥미있는 주제로 주목받기 시작해서 그의 이름이 알려진 것이다.
출생년도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대략 109세까지 장수한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
2. 사상
1. 원자론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은 본인의 스승인 레우키포스의 원자론을 좀 더 체계화시킨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데모크리토스는 자연에서 관찰할 수 있는 변화란, 사물이 실제로 변했다는 것은 아니라는 선배 철학자들의 생각을 받아들였다. 따라서 만물은 각각 영원불변하는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입자들로 구성되어있다는 것을 가정하였고 데모크리토스는 이 입자를 원자라고 불렀다.
이 원자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것이란 것'''을 뜻하며, 데모크리토스는 만물을 이루고 있는 이 입자는 한층 더 작은 부분들로 무한히 쪼갤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한 데모크리토스는 자연 가운데 다양한 원자가 무수히 존재한다고 생각했는데, 예를 들어 나무나 동물과 같은 물체가 죽어서 분해가 된다면, 그 물체를 이루고 있는 원자는 흩어져 새로운 물체를 만드는 데 쓰인다는 것이다.
데모크리토스는 자연의 진행과정에 개입하는 힘이나 정신을 고려하지 않고 원자들과 빈공간만이 존재한다고 믿었는데, 이 때문에 데모크리토스는 유물론자라고도 불린다.
또한 원자들의 운동배후에는 득어한 의도가 아니라 변치 않는 자연법칙을 따른다고 보았고, 사람의 영혼은 둥글고 매끈한 '''영혼 원자'''로 구성되어 사람이 죽으면 이 영혼 원자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돌아다니다가 방금 생긴 새로운 생명과 결합한다고 말했는데 이는 다시 말해서 사람들에게는 불멸의 영혼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읽으면 알겠지만 원자론의 첫 제창자는 데모크리토스이지만 이 역시 당시 그리스에 만연해 있던 연금술 사상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인식론
데모크리토스는 지식의 유형을 둘로 구분하였는데, 하나는 적출이고, 다른 하나는 서출이다.
적출은 대상에만 의존하는 지식으로,쉽게 보면 객관적인 사실로서의 지식을 말하며, 서출의 지식은 특정 신체기관에 영향을 받는 지식으로, 주관적인 지식으로 생각할수 있다.
예를 들어 사과가 사과인 것은 적출의 지식이라면, 사과가 달다던지 쓰다던지의 지식은 서출의 지식이다. 감각에 대해서 아무것도 믿을수 없다고 했지만, 감각과 사고 모두 기계적 과정이라는 것에는 동의했다.
3. 윤리학
데모크리토스는 인생의 최고목적이란 쾌활함에 있으며, 모든 일에서의 온건함과 문화의 고양을 통해 잘 성취될 수 있다고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