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1. 개요
2. 상세
3. 역사
4. 관련 문서


1. 개요


고대 로마와 더불어 서양고대를 대표하는 문명이다. 그리스의 폴리스들은 각자 자신들의 아름다운 문화를 꽃피우고 여러 위기를 넘겨오며 번영하였고 나중에는 알렉산드로스 대왕마케도니아 왕국에 의해 통일된다. 하지만 결국 마케도니아 왕국은 로마에 흡수되었고 그리스인들은 로마인들의 지배를 받게 된다.

2. 상세


범주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는 편이다. 크레타 섬을 중심으로 펼쳐진 미노아(미노스) 문명과 이후 그리스 본토 및 트로이 일대에서 펼쳐진 미케네 문명(에게 문명 시기)을 고대 그리스로 묶어 설명하기도 하나 고전 문화가 꽃피는 후대 그리스와는 차이가 많다. 대체적으로는 도리아인들의 남하로 미케네 문명이 무너지고 기록이 거의 남지 않은 기원전 12세기경 암흑 시대를 시작으로 본다.
암흑시대라는 이름에 기원전 1200년경부터 기원전 800년 까지의 역사는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다. 1차 문헌 자료가 전혀 남아 있지 않으며, 고고학 유적과 유물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예전에는 호메로스가 서사시에 묘사한 당대의 상황을 바탕으로 추론해보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이후 기원전 800년경부터 그리스 각지에서 도시국가폴리스와 에트노스가 성립한다. 이 폴리스들은 기원전 776년경 고대 올림픽을 통해 동족 의식을 다졌지만 하나의 국가로 통합을 이루는 데에는 실패하였다.
대부분의 폴리스는 방어를 위해 세운 성벽을 중심으로 도시를 이루면서 형성되었다. 처음에는 소왕국 형식이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귀족정 형식으로 변화하게 된다. 나중에는 식민 활동의 활성화와 화폐 경제의 도입, 철 가격의 하락 등으로 평민들 역시 무장을 하게 되었다. 이 평민들이 전투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되자 그들의 발언권이 늘어났고 이후 폴리스는 차이는 있을지언정 대다수가 민주정으로 옮겨갔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폴리스로는 아테네스파르타, 테베가 있다.
본래 이들의 패권은 페르시아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델로스 동맹을 결성한 아테네에게 있었다. 하지만 못지 않은 세력을 자랑하던 스파르타가 펠로폰네소스 동맹을 결성하고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일으키자 델로스 동맹은 무너지게 된다. 이후 폴리스의 주도권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스파르타에게 넘어간다. 하지만 레욱트라 전투에서 승리는 테베를 중심으로 한 반 스파르타 연합군의 것이 되었고 패권은 다시금 테베에게 돌아간다.
혼란이 거듭되던 동안, 북쪽에서 힘을 키우던 마케도니아 왕국필리포스 2세는 기원전 338년 카이로네이아 전투에서 폴리스군을 격파한다. 고대 그리스는 왕국의 점령을 받기 시작했고 알렉산드로스 3세 시대를 거치면서 완전히 약화되었다. 그 뒤로는 헬레니즘 제국 시대로 접어들며 이전의 문화를 잃어버렸고, 마케도니아 왕국이 고대 로마에 의해 멸망당한 후에는 자치권마저 사라지면서 막을 내린다.[1]

3. 역사



3.1. 암흑시대


바다 민족의 침략과 도리아인의 남하가 시작된 기원전 12세기부터 기원전 8세기까지를 말한다. 화려하게 꽃피웠던 미케네 문명이 붕괴되었다.[2] 간혹 호메로스 시대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이 시기의 기록 역사가 호메로스의 저서를 통해서만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명칭이 암흑시대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남아있는 기록과 유물이 매우 적다. 기원전 8세기 경부터 그리스 지역의 경제와 문화는 다시 부흥하기 시작했고 페니키아 문자를 조금 변형시킨 그리스 문자가 언어 표기에 사용되기 시작한다.

3.2. 폴리스의 성장


기원전 800년 경부터는 각종 폴리스가 등장했다. 이들이 처음 택한 정치 방식은 귀족이 중심이 되는 귀족정이었다. 하지만 환경적인 요인으로 식민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평민들의 권한이 확대되었고, 이에 따라 폴리스의 정치는 점차 민주정으로 옮겨간다. 다만 일부는 성격에 따라 귀족정이 강화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전자는 아테네, 대표적인 후자는 스파르타.
아테네는 상공업을 중심으로 폴리스를 운영해갔으며 활발한 식민 활동을 통해 평민들이 무장을 할 정도로 발전하게 되었다. 기원전 594년, 조정자 솔론은 일부 평민을 재산의 정도에 따라 정치에 참가시킨다는 금권 정치를 펼친다. 하지만 이에 따른 불만이 그치지 않았고, 그러한 불만을 가진 빈농들의 지지를 받은 페이시스트라토스가 참주를 칭해 정권을 장악하며 귀족들을 내쫓은 참주 정치를 하게 된다. 참주 정치는 기원전 510년 경 무너졌고 기원전 502년에는 뒤이어 등장한 클레이스테네스의 행정 개혁과 참정권 확대를 통해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하기에 이른다. 물론 이 당시 시민권은 아테네에 사는 성인 남성에 한정되어 있었다.
스파르타는 정복민 도리아인이 세운 폴리스였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정복 국가의 이미지가 강했다. 기원전 8세기 말과 7세기 후반에 걸친 메세니아 전쟁을 통해 전체 주민의 5~10%만이 시민권을 차지했고, 자신들에게 대항한 나머지 정복민들을 노예로 삼는 지배 체제를 구축한다. 주민의 절대 다수는 정복 노예들이었으며 지배 계층들은 끊임없이 노예 반란을 경계했다. 자연스럽게 이들은 상무적인 분위기를 가지게 되었고, 스파르타는 이에 따라 군사 국가로 성장해 간다.

3.3. 페르시아 전쟁




3.4. 아테네 제국


폴리스가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것은 사실이었으나 페르시아는 여전히 강국으로 군림했고 위협은 사라지지 않았다. 기원전 477년, 폴리스들은 페르시아 전쟁을 주도했던 아테네를 맹주 삼아서 델로스 동맹을 결성하였다. 하지만 표면적으로만 국가 연합이었던 델로스 동맹은 실질적으로는 아테네 제국과 다름없었다. 아테네는 동맹 국가들에게 횡포를 부려 소속 국가들의 분노와 반발을 샀고 반 동맹 폴리스에 대한 배척은 향후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계기가 된다.
한편 이 시기 아테네의 민주정치는 기원전 457년에 페리클레스가 집권하면서 황금기를 이룬다. 페리클레스는 민회의 권한을 강화했고 아레오파구스 회의를 약화시켜 장군 10명의 권한을 강화하는 등 국정을 집중시켰다. 이는 페리클레스 정권 후에는 대중영합주의의 성격을 띄며 그의 사후 아테네를 중우정치로 흐르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3.5. 펠로폰네소스 전쟁




3.6. 스파르타테베의 패권기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승리한 스파르타는 델로스 동맹을 해산시켰고 패배한 아테네를 동맹시로 종속시켰다. 아테네는 스파르타 수비대의 후원 하에 서른 참주의 과두제를 이뤘으나, 이후 공포정치로 인해 다시 민주정치로 방향을 틀게 되었다. 다만 이 시기의 민주제는 전과는 달리 중우정치에 가까웠다.
스파르타는 그리스 폴리스들을 가혹하게 다루었다. 그러던 중 나섰던 페르시아 원정에서 참패를 당했고, 폴리스는 테베를 중심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기원전 371년 테베는 레욱트라 전투에서 승리하여 메세니아를 해방시켰고 기반 세력을 잃어버린 스파르타는 패권을 상실한다. 스파르타를 대신한 테베 역시 오래 가지는 못했다. 기원전 362년, 아테네-스파르타 연합군에 의해 테베는 무너졌고 폴리스들은 혼란과 무정부 상태에 빠져들었다.

3.7. 마케도니아의 점령 이후


그리스 폴리스가 분열을 지속하던 와중, 북쪽에서 성장하던 마케도니아필리포스 2세의 뛰어난 지도력을 바탕으로 폴리스들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이에 테베와 아테네는 연합을 이루어 마케도니아에 대항했으나 기원전 338년에 벌어진 카이로네이아 전투에서 패배하였다. 결국 그리스의 폴리스들은 스파르타를 제외한 거의 전부가 코린토스 동맹으로 묶여 군사적 자치권을 상실하게 된다. 이후 알렉산드로스 3세가 왕위에 오르자 테베와 아테네는 다시금 반 마케도니아 세력을 이루었으나 곧바로 격파당했다. 이때 테베는 완전히 몰락했다.
알렉산드로스 3세 이후 디아도코이들로부터 시작된 헬레니즘 제국 시기의 그리스 폴리스들은 정치적 영향력까지 상실하고 명목만 유지한 채였다. 기원전 148년, 마케도니아는 로마의 속주로 편입당했고 기원전 146년에는 로마의 보호령으로 전락한다. 이에 따라 폴리스 체제 역시 막을 내렸다.
폴리스 멸망 이후에도 그리스어와 그리스 문화는 로마 제국의 존중을 받았다. 그리스어는 로마 상류층의 이중 언어이자 제국 동부의 공용어였고(동부만 차지한 동로마 제국은 아예 그리스어가 제국 전역의 공용어였다), 로마 상류층은 그리스인 가정교사를 두기도 했다. 그와는 별개로 동서 분열 이전 제국의 그리스인들은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로마 제국 시대에 그리스인들을 두고 유산으로 먹고 산다며 비웃는 사람들이 있었을 정도.

4. 관련 문서



[1] 아테네, 스파르타, 코린트 정도만이 자치권을 지니게 되었다.[2] 이때 그리스인들이 쓰던 선형 문자 B 또한 잊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