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론
唯物論 / Materialism
1. 개요
말 그대로 "오직 물질만이 있다", 혹은 "만물의 근원을 물질이다", "정신, 마음은 물질의 작용 혹은 산물이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 혹은 형이상학적 입장이다. 관념론(유심론)과 대비된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서양 철학사를 관념론과 유물론 그리고 그 사이에서 박쥐처럼 오가는 회의주의의 지속된 투쟁사로 정리하기도 했다.[1]
유물론은 '''실재론(realism)'''의 일종이다. 실재론이란 "세계나 자연 따위가 주관의 인식 작용과는 독립하여 외부에 존재한다"는 형이상학적 입장이다. 즉 유물론은 실재론에 더하여 '모든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물질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다음 두 형이상학적 입장과도 밀접한 관계에 놓인다:
- 물리주의(physicalism): 오직 물리학적 법칙을 따르는 것만이 있다. 과거와는 달리 물질이라는 표현 만으로는 현대과학이 밝혀낸 물리적인 현상들을 모두 포함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에 유물론이라는 표현 대신 쓰여지고 있다.
- 철학적/존재론적 자연주의(naturalism): 자연 세계를 벗어난 것, 요컨대 '초자연적 현상' 같은 것은 없다.
2. 계보
서양 철학사에서 유물론을 최초로 주장한 사람은 원자론으로 잘 알려진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데모크리토스이다. 데모크리토스는 명백히 영혼의 존재를 부정했고 모든 현상을 원자의 운동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등학교 윤리 과정에서 배우게 되는 에피쿠로스도 유물론을 신봉한 사람이자 원자론을 신봉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원자론은 일정한 차이를 보이는데, 이 차이를 주제로 논문을 써서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 바로 카를 마르크스.
흔히 '합리주의 대 '경험주의' 구도로 알려진 서양 근세 철학사에서 유물론은 여러 진영에서 다양하게 논의된다. 토머스 홉스는 당대의 대표적인 유물론자였으며, 프랑스 백과전서파 및 드니 디드로 역시 일종의 유물론자였다. 하지만 다른 한편 기계론의 선구자인 르네 데카르트는 물질과 마음이 독립적인 실체라고 주장한 이원론자였으며, 조지 버클리는 경험주의적 입장에서 유물론은 관념론에 비해 근거가 희박하다고 논하기도 했다. 공통점은 양 진영 모두 당대 과학의 발전을 자신들의 입장에 대한 근거로 제시하려 했다는 점이다.
2.1. 사회철학적 유물론
이 버로우를 해제한 19세기의 본좌가 바로 루트비히 포이어바흐.[2] 19세기 독일은 기독교 교회를 등에 업은 지주계급이 통일과 민주주의를 모두 가로막는 실정이었기에, 조국의 진보를 바라는, 지식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은 기독교를 공격하려는 수단으로 유물론을 선택하는 예가 잦았다. 포이어바흐는 그런 사람들 중에도 수장급이었던 철학자로서 심오한 유물론 체계를 이용해 당대에 유행하던 관념론 사조인 신칸트주의나 청년헤겔학파[3] 를 논파했으나, 정작 포이어바흐를 역사 속에 남게 한 것은 자기 자신의 저작이 아니라 당시까지만 해도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웬 듣보잡이 작성한 노트였다(...). 바로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 총 11개의 짧은 명제로 이루어져 있으며, 변증법에 기초한 유물론의 총체를 이루는 핵심 문서이다.(전문) 다만 현재 변증법에 기초한 유물론은 철학계에서는 예전처럼 많이 논의되지는 않는 편이다. 애초에 변증법적 유물론 자체가 기존의 기계론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유물론에 대한 통렬한 비판에서 출발했기에, 물리주의나 환원주의와는 상극이다.
2.2. 물리주의
현대 분석철학에서는 유물론의 일종인 물리주의가 형이상학에서 주류의 입장에 해당한다. 다만 수리철학 등에서 수 같은 존재와 관련하여 이데아 같은 추상적인 존재자들의 필요성, 그리고 심리철학에서 의식 등과 관련하여 여러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긴 하다. 문제는 그런 문제들 자체가 아직 확실하게 정리된 것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의식은 정확히 무엇인지조차 아직 완전히 알려져있지 않고, 수라는 개념에 추상적인 존재자가 필요한지 아닌지조차 논쟁거리라는 것이다.
3. 과학적 의의
현대 과학은 방법론적 자연주의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곧 철학적/존재론적 자연주의와도 가깝다. 대개 자연세계는 오직 물질로 이루어졌다고 여겨지므로, 곧 유물론은 자연과학과 매우 가까운 형이상학적 입장으로 이해하는 것이 통설이다. 한발 더 나아가 유물론은 과학의 필요조건이며, 과학의 수호 이념이라고 보는 입장도 있다.
다만 모든 철학자가 이러한 입장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당대 광학 및 해부학 등에 입각하여 시각에 관한 실증적이면서도 영향력 있는 생리학적 연구를 남긴 조지 버클리는 관념론자였다. 특히 버클리는 관념이 아닌 물질이 있다고 보는 견해가 오히려 경험주의를 위반한다는 논변을 제시하기까지 했다. 따라서 관념론이 자연과학과 충돌하지 않는다는 주장 또한 논쟁적인 견해로 남아있다.
더욱이 실증주의를 따를 경우, 과학에서 유물론이니 관념론이니 하는 철학적 입장을 끌어내려는 시도 자체가 잘못이라는 견해도 있다. 왜냐면 유물론이니, 관념론이니, 하는 것들부터가 실증적으로는 무의미한 형이상학적 입장들이기 때문이다. 관련된 자세한 논점에 대해서는 과학적 실재론 문서로.
4. 기타
유물론에 대한 가장 자주 접할 수 있는 오해 중 하나는 유물론이 정신적인 것을 경시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유물론자를 자칭하는 사람들 중에도 이런 오해를 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유물론은 정신적인 것을 경시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 역시 물질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보거나 물리적 현상의 하나로 보는 것이다.(유물론적 일원론) 결코 정신적인 것은 가치가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 정신력을 예로 들면, 정신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신체의 (특히 두뇌의) 복잡한 물리, 화학적 작용의 결과라고 보는 게 유물론이다. 최신 뇌과학쪽 연구결과를 보면 결국 정신력이나 의지도 뇌에 포도당이 얼마나 원활히 공급되느냐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얘기가 있는데, 결국 이런 것들이 유물론적 관점이다. 정신력을 아예 부정하는 건 유물론이 아니라 그냥 멍청한 것이며, 정신력을 맹신하는 것과 다를 거 없는 수준이다.(극과 극은 통한다.)
- 쉽게 말해 컴퓨터의 소프트웨어 역시 엄밀히 말하면 특정한 전기신호의 집합이지만, 그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서 소프트웨어의 가치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같다. 물론 유물론자면서 물질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도 있지만, 똑같이 유물론자면서도 정신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그 정신적 가치들도 물질로부터 비롯되었기에 결국 물질적 가치의 일종이라 여기겠지만 말이다.
유물론(물질주의)을 유아론, 관념론의 반대 개념으로 보거나 배금주의와 혼돈하는 경우가 많다.
- 유아론 - 자신만이 실제(물질)하며 자신 외 모든 것은 실제하는 것(물질)이 아닌 환상에 불과하다는 이론(자기중심주의)으로 실재론과 반대되는 개념이다.[4]
- 관념론(유심론) - 마음, 정신, 관념이 물질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정신을 중시하는[5] 것으로서 유물론의 반대 개념은 아니다.[6]
- 배금주의(황금만능주의) - 물질은 돈, 재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생물, 비생물 모든 것이고 유물론은 무언가를 중시한다는 것이 아니므로 유물론과 상응하는 개념이 아니다.[7]
5. 유물론자 목록
- 마오쩌둥
- 블라디미르 레닌
- 비트겐슈타인
- 쇼펜하우어
- 시진핑
- 이오시프 스탈린[8]
- 지그문트 프로이트
- 카를 마르크스
- 칼 세이건: "대뇌피질은 물질이 의식으로 전환되는 곳이다. 뉴런은 1천억개가 있고, 뉴런결합은 1백조개나 된다. 즉, 생각이나 상상, 환상, 감정같은 것도 물리적인 실체가 있는것으로 전기, 화학적 신호가 수백개 결합된 것이다." - 코스모스 다큐멘터리 11화 - 《미래로 띄운 편지》
- 토머스 홉스
- 프리드리히 엥겔스
- 개별 문서가 없는 인물: 돌바크, 라메트리, 몰레스코트, 카를 포크트
6. 관련 문서
- 위키백과 - 유물론, Materialism
- 스탠포드 철학 백과사전
- 과학주의, 무신론 - 사실 물질이 아닌 것(신, 영혼)은 비과학적(종교적)인 것으로서 물질주의와 상응한다.
- 진화론 - 물질이 아닌 존재가 무에서 유(물질)를 창조했다는 창조설과 반대되는 개념이므로 물질주의와 상응한다.
[1]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2] Ludwig Andreas von Feuerbach(1804년 7월 28일-1872년 9월 13일). 독일의 철학자. 청년헤겔학파를 대표할 정도로 전형이 될 만하거나 특징이 있는 인재이다. 형법학자 파울 포이어바흐의 四男. 헤겔 철학에서 출발했으나 후일 결별. 유물론의 입장에서 특히 당시 기독교를 격렬히 비판했고 신념이나 생각이 현세에 가치를 두는 행복을 전파, 그 사상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포이어바흐는 철학사의 관점에서 헤겔과 마르크스의 중개한 인재로서 그 이름을 볼 수 있다.[3] 19세기 후반 헤겔학파의 左派. 헤겔 철학의 보수성을 비판하면서 그 문제점을 혁명에 의해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 혁신파로서, 포이어바흐나 슈트라우스가 그들을 대표할 정도로 전형이 될 만하거나 특징이 있는 인재이다.[4] 자기 자신(혹은 인간종)만이 특별한 존재(신)라고 믿는것과 같은 오만한 생각으로, 비과학적인 일종의 종교적 믿음과 같아 무신론과도 거리가 멀다. 자기 자신을 우상화/신격화한 독재자들도 엄밀히 따지면 자신만의 종교를 만든것이므로 진정한 의미의 무신론자가 아니다.[5] 혹은 근본적인 것으로 보는[6] 즉, 유물론자든 아니든 마음,정신을 중시할 수 있다.[7] 즉, 유물론자든 아니든 돈과 재물을 중시할 수 있다.[8] 《Dialectical and Historical Materialism》(19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