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호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공산주의자.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도정호는 1903년경 함경남도 영흥군 요덕면 인상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서울로 이주해서 인쇄 공장에 재직하고 있다가 1919년 3월 서울에서 독립만세시위가 벌어지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잠시 구금되었다. 이후 공산주의 이론에 감화된 그는 1921년 1월 이득년(李得佾), 장덕수, 김사국(金思國), 이영(李英) 등이 결성한 사회주의 단체인 서울청년회에 가입해 간부로 지냈으며, 1924년 6월 서울 재동의 조선여자강습원에서 개최된 경성인쇄직공조합 발기대회에서 창립준비위원이 되었다.
1924년 일본 도쿄로 가서 동성사 인쇄직공으로 재직했고, 이듬해 안광천(安光泉), 이여성(李如星), 하필원(河弼源) 등 도쿄 유학생들이 조직한 사회주의 단체인 일월회(日月會)에 가입했다. 이후 귀국하여 조선공산당에 입당한 도정호는 1927년 조선청년총동맹 중앙집행위원과 조선노동총동맹 중앙집행위원으로 활동했으며, 같은해 11월 개편된 고려공산청년회의 조직주방을 맡아 지하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1928년 2월 일제가 조선공산당 인사들을 대거 검거할 때 체포되었고, 서대문형무소에서 2년 2개월 동안 미결수로 구금되던 중 1930년 3월 29일에 옥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도정호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3. 여담
도정호의 사위는 대한민국 육군 소장이자 친일반민족행위자인 김창룡으로 공산주의자 1명 잡기위해 무고한 양민 수십명씩 죽이는 것으로 유명했다. 도정호의 외동딸이자 김창룡의 아내인 도상원(都相媛) 씨는 2011년 6월 남편의 유해를 국립현충원에서 내보내라는 민족문제연구소에 반발해 저서 <대한민국 특무부대장 김창룡>을 출간했다. 그녀는 남편을 잃은 뒤 공산주의자들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아왔다며, "민족문제연구소 사람들, 이해할 수 없어요. 그 많은 간첩사건들이 조작이란 말입니까?", "공산당 잡은 게 왜 죄입니까?"라며 남편을 비난하는 이들을 성토했다.#
정작 그녀의 부친은 공산주의 계열 독립운동을 하다가 옥사했으며, 남편 김창룡은 공산주의자가 아닌, 그의 잔인함과 부패에 치를 떤 직속 부하들 손에 죽었다니 아이러니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