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토의 여명/에피소드 가이드/1부 2장

 





네이버 웹툰 동토의 여명 1부 2장의 줄거리를 정리한 문서.
1. 21. 마고 in the Blue
2. 22. 악당?
3. 23. 지각
4. 24. 지각2
5. 25. 리아의 마음
6. 26. 벌점? 승점!
7. 27. 절벽둥지
8. 28. 비자수리
9. 29. 비자수리2
10. 30. 암운
11. 31. 이중공작
12. 32. 배후
13. 33. 배후2
14. 34. 선힘
15. 핵심 요약 및 여담


1. 21. 마고 in the Blue


'''흰나무를 구한 지 삼일이 지나자'''
'''비자둥우리에서 나는 유명 인사가 되어 있었다'''
"흰머리산의 분화 이후 갈라진 틈으로 올라온 순도 높은 자연의 기운은 살아있는 모든 것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쳤죠. 첫해 동안만 수만 명이 죽거나 다치거나 변이되었답니다."
강단에 달아 둔 등불이 은은하다. 선승님의 목소리마저 잔잔하고 조곤하다.
수업이 끝난 뒤, 선비들은 옹기종기 모여, 한 아이를 두고 수군거린다.
"야야, 쟤야 쟤. 쟤 온 담부터 나르골에 겁들이 들어왔잖아!"
"아밈님은 왜 저런 애를 나르골에 데려오셨을까?"
"낸들 아니?"
마고는 책 한 권을 품에 꼭 안고는 얼굴을 붉히며 자리를 뜬다.
'''... 악명 높은 ... 유명인 ...'''
* * *
마고는 둥우리의 어느 한 둑에 홀로 앉아 있다. 휙 내던져진 애꿎은 돌멩이는 퐁당, 물에 빠져든다.
"스승님과 유랑하던 때가 그립다"
마고의 눈은 초점이 없이 흐릿하다.
마고는 과거를 회상한다. 두꺼운 털옷을 챙겨 입고 겨울사냥을 나온 아밈. 활줄을 당기자 장궁이 팽팽하게 휘어진다. 무서운 속도로 먼 거리를 달려나가는 아밈의 화살.. 화살을 그대로 사슴의 모가지에 시원하게 꽂힌다. 사냥 성공이다. 아밈은 마고에게 엄지를 추켜세운다.
이제 마고의 차례다. 마고는 아밈이 가리키는 쪽으로 활을 겨눈다. 꾸드득, 활시위는 당겨졌다. 마고의 눈은 진지하다. 자, 간다!
팅.
에이, 시시해라. 화살은 바로 몇 발치 안되는 곳에 폭, 쳐박힌다. 마고는 울먹거리고, 그걸 본 아밈은 배꼽까지 잡으며, 그 어느 때보다 즐겁게 웃어댄다.
마고는 그때를 추억하며 피식하고 작게 웃는다.
'''그나마 다행인 건 모두가 무사했다는 것..'''
'''사람들은 무너져내린 걸음나무에서 돋아난 흰나무를'''
'''겁을 물리치고 얻어낸 성스런 나무라고들 했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 * *
"베버렸어야 해! 겁두령에게서 자라난 불길한 나무라고!"
"하지만 아밈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았나.. 정화된 걸음나무가 피워낸 신령한 나무라고, 겁의 기운은 없다고 말야"
나르골 저잣거리의 장사꾼들은 흰나무를 두고 대화를 나눈다. 그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자넨 너무 순진해서 탈이야. 그래서 장사는 어찌 해먹나?"
"뭔 소리여, 말을 하려면 좀 알아듣게 혀"
"위험해도 안전하다며 아랫것들 달래는 게 윗분들인데. 아홉 해 전 일 생각 안 나? 지축이 흔들리는데도 가만있으라고 해서 가만있다 어떻게 됐어, 수백 명이 몰살 당했잖나!"
씁쓸하게도, 그는 사회의 어두운 면을 너무나도 잘 아는 사람이다.
"저거 봐 저거, 선비고 병졸이고 왜 줄줄이 나와 경비를 서겠어!"
"그야.. 신성한 나무 아무나 만지면.. 때 탈까 봐"
"신성한 나무 때 타는 소리하고 있네!"
답답했던 그는 속사포 화법을 시전한다.
"자네 지금껏 나랑고스에서 겁들이 정화됐단 얘기 들어본 적 있는가?"
"어, 없지!"
"아밈님의 푸른불로도 안 자빠지던 겁들이 무슨 수로 정화가 됐겠어! 그냥 하시는 소리지!!"
"듣고 보니 그렇구먼?!"
그의 화려한 언변에 동료 상인은 납득한다.
'''저주받은 나무 이야기는 불안해 하던 사람들의 입을 통해 빠르게 퍼져 나갔다'''
"저주에 걸릴까 봐 베지 못하고 접근을 금하는 거랴!"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고, 소문은 그 누구보다도 발빠른 놈이었다.
"그거 저주받은 거 아닌데.."
무성해진 소문에 속상해진 마고는, 돌멩이만 연거푸 물가에 던진다. 그때, 누군가 그를 부른다.
"마고 오빠!"
시아다. 시아는 다다다 달려와 마고를 일으킨다.
"여기서 뭐해? 가자! 가서 같이 밥 먹자!"
"으, 응.."
"첫 수업은 재미있었어?"
"처, 첫 수업? ... 뭐.. 그럭저럭.."
마고는 다른 선인들의 눈총을 받았던 것을 떠올린다. 하지만, 자신을 초롱초롱하게 쳐다보고 있는 시아 앞에서 그런 사실을 말할 수 없었던지, 마고는 애써 숨긴다.
"재미.. 있었지.."
"거짓말! 얼굴에 거짓말이라고 다 써 있어!"
하지만 시아는 고단수다. 마고의 거짓말을 단박에 눈치챈 시아, 따발총 같이 말을 내뱉으며 마고를 몰아붙인다.
"하긴, 배움선비들이랑 같이 듣는 나랑고스 역사 수업이 뭐가 재밌겠어! 기대하라구! 버금선비들의 수업은 것보다 훨씬 재밌으니까!"
시아와 함께 걷다보니, 저멀리 쉬라, 하랑, 시우가 보인다.
"시아야~! 여기야 여기~!"
하랑이 손을 흔든다.
"마고 어디서 찾았어?"
"오빠 말대로 저 언덕 너머 둥우리 둑에 있던 걸?"
하랑이의 말을 듣고 찾아온 거라구..?
"어, 어떻게.."
"내가 여기 처음 왔을 때 자주 가던 곳이거든. 조용한 게 인적도 없고.."
하랑은 마고의 심정을 백번 이해한다는 듯, 아련한 어투로 말해보지만..
"배고파! 배고파! 알았으니까 빨리 가자!"
"네네.."
시아는 그런 것 따위 안중에 없다. 감흥이 깨져버린 하랑은, 표정과는 달리 별 대꾸 않고 동행한다. 마고는 자신에게 집중된 쉬라의 낯뜨거운 시선에 얼음이 된 채로 뒤따라가고, 그 와중에 시우의 낯빛은 어둡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이들은 그날 일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나와 함께 끝까지 지켜봤던 시우만이 그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잠시 시간을 돌려..
"알겠니 시우야.. 이 시간 이후부터는 실전이란다."
시우를 따로 불러낸 것은, 바로 아밈이다.
"받거라, 으뜸선비의 단검이다.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알겠지.. 다가올 적으로부터 친구들을 지켜내거라. 그것이 네 첫 임무이니라!"
시우는 자신에게 주어진 막중한 첫 임무와 그 책임감을 되새긴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뒤쳐진 시우.
"뭐해 오빠! 밥 안 먹을 거야?"
"어? 어.. 가!"
시우는 부리나케 친구들을 뒤쫓아간다.
* * *
"그냥 하눌동인들에게 호위를 맡겨 변방에 꼭꼭 숨겨두면 되잖습니까?"
"그렇게 아홉 해를 보냈다. 하지만 추격은 더 거세질 뿐이었지."
아밈은 다이라와 아주를 불러 마고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놈들의 정보력은 우리를 능가한단다. 색깔이 없는만큼 녹아들기도 쉬우니.. 피할 수 없으면 맞이할밖에."
아밈은 수많은 고민을 거듭한 듯, 어렵게 말을 꺼낸다.
"하여 덫을 놓기로 했다."
".. 덫..이라면?"
아주의 물음에도, 아밈은 침묵을 유지할 뿐이다.
한편. 마고는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맑은 눈을 반짝인다.

2. 22. 악당?


사흘 전 나르골 하구..
촤아악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는 배. 은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뱃머리에 나와 서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마음을 다잡는다. 그걸 본 아란, 그 옆으로 다가와 말을 건다.
"긴장되나 봐? 이번 임무."
"나랑고스 왕국 밖으로 나가는 건 처음이니까.. 또 어떤 복잡한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잖아?"
함의 말을 들은 아란, 발앞꿈치로 바닥을 툭툭 치면서 말한다.
"글쎄..? 복잡하기로 따지면 나랑고스도 한 복잡 하지 않나? 다섯 나라가 한데 모여 북적북적.. 사나사이가 먼 이국땅이라곤 하나 사람들 복잡하게 사는 건 어디나 마찬가지 아니겠어?"
그러고는, 아란은 슬적 오른어깨를 함에게 밀착시킨다. 화들짝 놀라며 얼굴을 붉히는 함. 아란은 입을 가리며 "새삼스럽긴!"하고 그를 놀린다.
"야!!! 갑자기 왜 괭이 새끼마냥 붙고 그래! 징그럽게!!"
"내가 언제?"
뚝 시치미를 떼는 아란. 이에 함은 지도를 꺼내 편다.
"... 내가 단순히 사람 사는 모습만 갖고 그런 줄 알아? 자, 보라구!"
[image]
'''나르골에서 연안을 따라가다
바다를 건너 사막을 지나
사나사이에 도착하기까지
경로 하나 읊는데도
이렇게 복잡하다구!'''
"최단거리로 쭉 가는구만 뭐가 복잡하단 거야?"
"아이고, 간단해서 좋겠슴돠! 가다가 마주칠지 모를 산적이며 해적이며 모래폭풍은 어쩌고 게다 환전소에서 장물[1]도 바꿔야 하는데 그전에 놈들을 만나 장물이 상하기라도 하면.."
함은 이마를 짚으며, 걱정되는 점을 줄줄이 읊는다. 그 말을 들은 아란은 별거 아니라는 듯 답한다.
"걱정마. 넌, 내가 지켜줄 테니까!"
"지, 지켜?" 함의 얼굴이 또 붉어진다.
"누,누,누,누가 지켜달랬냐!! 내 몸은 내가 지켜!"
"그러시던지.."
함 이놈, 말까지 더듬고, 팔은 쉴새없이 휘젓는 것이.. 짜슥. 그 맘 안다. 그럼 알고 말고.
"뭐냐! 그 미덥잖단 말투는?!"
"믿어 믿어.."
"야!"
* * *
"그럼 잘 다녀와~! 겁들한테 차이지 말구!"
"너야말로 겁보고 기절하지나 마라!"
시아는 하랑과 시우를 배웅한다. 대화를 들어보니, 둘은 겁을 잡으러 가는 모양이다.
"저 둘은 우리랑 같이 수업 안 듣는 거야?"
"응, 오빠들은 점수를 다 채웠거든.."
"저, 점수?"
하지만 마고는 모르는 것 투성이. 마고의 말을 들은 시아의 표정이 심상찮다. 일발장전!
"오빠 설마.. '선비등급승격점수제'도 모르는 건 아니겠지?"
"으, 응? 그게 뭐야? ... 선비.. 성격.. 전수제?"
"선비! 등급! 승격! 점수제!"
머리를 부여잡고 울먹거리는 마고. 시아는 턱을 괸다.
"하긴.. 오빠처럼 뒤늦게 들어온 사람들은 잘 모를 수도 있지.."
시아의 본능이 깨어나, 본격적인 설명이 시작된다.
"선비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훈련이 시작되는데 이들을 배움선인 혹은 꼬마선비라고 불러.. 해가 지나 배움선인들이 열 세 살이 되면 정식 선인으로서 '버금'이란 이름을 받게 되고.. 오빠도 알겠지만 배움선인이 '버금'이 되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아.. 그렇지만 우리 같은 일반 버금이 으뜸선인으로 승급되기는 무척 어려워."
"일반?"
"응 일반.."
마고는 여전히 머릿속이 어지럽다.
"보통은 승격 점수 삼백점을 모아 고난도의 세 가지 시험을 모두 만점으로 통과해야 하거든? 근데 귀족 출신 애들은 그 중 하나만 통과해도 바로 승격돼. 우습지?"
시아는 바닥의 돌멩이를 차 날린다.
"여튼 이렇게 통과한 으뜸선비는 같은 방법으로 승급점수를 쌓아 하눌동인이 되거나 배움선인들을 가르치는 선승이 되는데, 이 과정 역시도 만만치가 않아. 실기 통과 후 실전까지 완수해내야 하거든.."
시아의 설명은 꼼꼼하고 차분하다.
"그리고 그들 중 서로에게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이가 다섯 왕의 승인을 받아 울림선인이 되는거야. 장수로 따지면 대장군 같은 거랄까? 어쨌든 이 영광스런 울림선인들은 으뜸, 버금선인들의 대선승이 되거나 왕명을 떠나 독자적인 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나 봐."
"그럼 하람이랑 시우는?"
"하랑이겠지.."
시아의 기나긴 설명에도, 다행히도 마고는 졸린 기색이 없다. 근데.. 마고 너도 참. 아직도 이름을 제대로 못 외웠니?
"우리 오빤 떨어졌지만 하랑 오빤 통과했어. 근데 승급식이 미뤄져서 아직은 저렇게 다녀. 재밌는 건 둘 다 저 상태로 나가서 잔겁들을 상대한다는 거.. 뭐 그걸로 승급점수를 대신한다지만 원래는 백오십점 대가 넘는 으뜸선인들이 하던 일이거든.."
시아는 팔짱을 끼고 눈을 감는다.
"근데 언제부터선가 버금선인들도 가끔 저렇게 불려가더라고.. 이윤 모르겠지만 하여간 기분 나빠!"
"왜?"
"오빠가 그걸로 엄청 대단한 일 한 것처럼 자랑질 할 때면.. 아오..!! 그깟 잡겁 따위 난 한 손으로 잡겠다!"
"시, 시아야.."
얄미운 시우의 얼굴을 떠올리곤 길길이 날뛰는 시아. 쉬라가 겨우 붙잡아 말린다.
"그나저나 마고 오빠도 피곤하겠어, 배움선인들이랑 초급 역사수업까지 들으려면.. 그런 건 대충 건너뛰어도 될 텐데 말이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쉬라를 뒤로 하고, 시아는 말을 이어나간다.
"중요한 건 역시,"
시아는 두 손을 앞으로 모은다. 위잉, 하얀 빛이 그 앞으로 흘러들어 뭉친다. 그 상태로 전방의 나무에 힘차게 왼팔을 뻗는 시아.. 그 압도적인 힘에, 나무 윗동 가지들이 둥글게 파여나가고 힘의 테두리를 따라 나뭇잎이 휘날린다.
"... 선인의 힘을 다루는 능력이지!"
시아는 호흡을 가다듬는다. 나뭇잎들이 비내리듯 샤락거리고, 마고와 쉬라는 "오호!"하고 박수갈채를 퍼붓는다. 그러던 마고, 갑자기 박수를 멈춘다.
"근데 왜..?"
마고는 궁금한 게 계속 떠오르는가보다.
"뭐?"
"왜 선인의 힘을 다루는 능력이 역사수업보다 중요한거야?"
"몰라서 물어? 악당을 힘써서 잡지 역사로 잡아? 오빠도참.."
마고의 뺨에서 땀이 흘러내린다.
"그럼.."
또다시 조심스레 입을 떼본다.
"..역사는 왜 배우는거야?"
시아는 멈칫하더니 돌아선다.
"오빠 사람 은근 짜증나게 하는 재주가.."
마고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온갖 말을 늘어놓는다.
"..시, 시아가 너무 잘 알려줘서 뭐라도 다 대답해 줄 것 같았거든.."
"내, 내가?"
시아의 따끔한 일침은 마고의 말 한마디에 사르르 녹아버린다. 갑자기 훅 들어온 기분좋은 소리는 시아의 얼굴을 붉힌다. 어허, 은근히 선수로세? 어디서 배운 기술이람.
"역사를 왜 배워야 하는지 그건 나도 잘 모르지만 선인이 선인의 힘만 잘 다루면 되는 거 아니겠어?"
시아는 순식간에 싱글벙글, 온 둥우리 다 울리게 웃어재낀다. 그런데 그 때. 아이들의 등 뒤 풀숲에서, 흔들, 무언가 기척이 느껴진다. 마고가 제일 먼저 그 움직임을 알아채고, 흔들거림은 점점 심해진다.
"저, 저기 뭔가..!!"
"뭐야.. 사람? 누구야! 누가 장난치는거야! 당장 나오지 못해?!!"
시아는 부시럭거리는 풀숲을 향해 언성을 높인다. 풀숲 속 누군가는 부시럭 소리로 대답을 대신한다. 답이 없는 상대에 열 받은 시아, 땅바닥을 짚고 준비자세를 취한다.
"나와랏!!!"
시아의 힘이 파앙, 힘차게 뻗어나간다.

3. 23. 지각


시아, 땅바닥을 짚고 준비자세를 취한다.
"나와랏!!!"
시아의 힘이 파앙, 힘차게 뻗어나간다. 시아의 넘쳐흐르는 힘에 놀라는 쉬라와 마고. 펑, 그 커다란 힘에 풀숲은 힘없이 휩쓸려 나간다. 위로 작은 새들의 무리가 지저귄다.
"저건.."
시아의 표정이 영 좋지만은 않아 보인다.
"토끼잖아!!!"
시아의 선힘이 쓸고 간 풀숲에는, 흰토끼 한마리가 바들거리고 있었다. 시아는 몹시 아쉬운 듯 하다.
"에이 김새! 난 또 대단한 악당이 숨어있는 줄 알았네.."
그런데, 쉬라의 표정도 영 좋지가 않다.
"시, 시아야.."
"왜 언니?"
"아무래도 우리.."
쉬라는 어렵게 입을 뗀다.
"지각한 것 같아! 애들이 한 명이 안 보여!"
"뭐야?!"
* * *
[image]
* * *
"어, 언니가 열어!" "내, 내가?"
"빨리!"
아이들은 문 앞에 서서 망설이며, 서로 미루기 바쁘다.
"시아야 나, 나 무서워서 못하겠어.. 거믄머리 선승님 수업에 늦는 건 처음이란 말이야!!"
"언니!"
"응.."
"거믄머리 선승님은.."
안절부절 못하는 쉬라에게, 시아가 당차게 한 마디 할 모양이다.
"'''나도 무서워!''' 내가 지각대장에 겁 모르는 선비라지만 그 분은 무서워도 너무 무서워!"
아, 그 천하의 시아조차 무서워하는 인물이라니! 시아는 울먹이고, 쉬라도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른다.
"그, 그럼 어떻게 해!"
어쩌긴, 지푸라기라도 잡아 봐야지. 쉬라와 시아는 일제히 마고에게 고개를 돌린다. 하지만..
"으아니!! 마고오빠도 겁쟁이라니!!"
"미, 미안.."
"예상은 했지만 그렇다고 진짜 예상대로일 줄이야!!"
역시 마고는 또다시 울먹울먹, 시아는 답답해서 문을 콩콩 두드린다. 그러던 시아, 비책이 떠오른다.
"아! 요전에 선승님 수업 좀 늦게 들어오시지 않았니?"
"글쎄.."
"그래! 아직 희망이 있어!"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지푸라기를 잡아 보자구.. 시아는 문에 가까이 선다.
"요렇게 귀를 바짝 대고 들으면 선승님이 오셨는지 아직 안 오셨는지 알 수~"
하지만..
"없다.. 흡수성이 뛰어난 나르달나무로 만든 문이라 아무 소리도 안 들려.."
털썩 주저앉는 시아. 굳이 안해도 될 말까지 튀어나오는 걸 봐서는 여간 좌절스러운 게 아닌 듯하다.
"들리는데?"
어, 쉬라는 아닌 모양이다. 쉬라는 귀를 쫑긋 세우고선, 다시 또 한자락의 희망을 품게 한다.
"오오! 역시 나리족!"
"나, 나리족이라서가 아냐! 신체 일부를 선인의 힘으로 강화할 수 있다고 온힘 수업 때 배웠잖아!"
"할 수 있다고만 배웠지 하는 법은 아직 안 가르쳐 주셨잖아.."
"예습 좀 했지! 난 애들이랑 달라서 힘을 잘 못 다루니까.."
역시 쉬라는 다르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채우려 노력해왔던 그 성실함이, 이럴 때 빛을 발한다.
"으음.. 하지만 저 소리가 애들 소린지 선승님 소린진 모르겠다."
"힘을 어떻게 귀로 모은단 거야.. 오빠는 뭐 좀 들려?'
"글쎄.. 나도 잘.."
쉬라에게 힘입은 마고와 시아도 문에 찰싹 붙어보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다. 그때.
뽈뽈뽈, 뽈뽈..
"응?"
마고의 눈 앞으로, 개미 한 마리가 문을 열심히 기어올라간다. 개미를 본 마고의 눈빛이 바뀐다.
"그래! 개미한테 알아보고 오라고 하면 되겠다!"
"지, 진짜? 농담이지!?"
"지, 진짜긴 한데.. 부린다기보단 부탁에 가까워.."
믿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마고는 머쓱해 하며 답한다. 시아는 헐, 하고 눈은 똥그래지고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오른다. 순식간에 흥분 상태에 다다른 시아. 마고를 마구 때린다.
"이!이!이! 재밌는 능력을 왜 이제야 말해주는 거야! 나쁜오빠! 나쁜오빠!"
"시, 시아야 아퍼.."
"그런 건 하눌동인님들이 하시는 거라 들었는데 진짜론 처음봐!"
놀라운 건 쉬라도 마찬가지. 쉬라는 양손으로 입을 가리고선 감탄하기 바쁘다.
* * *
"... 어디서.. 찾았답니까.."
눈가에 붕대가 감긴 채 뉘어진 한 선비를 둘러싼 다른 여러 선비들의 손 끝에서 푸른 기운이 부드럽게 뿜어져 나온다.
"바위폭포 동굴에 있었다 합니다. 나르고룬 강 하류에서 돌개들이 흔적을 찾았지요."
"비자둥우리를 습격했던 겁들의 침입 경로 또한, 바위폭포를 거슬러 왔단 게 가장 유력합니다. 그곳 말고는 감시망을 피할 수 없었을 테니.."
"정황 상 아밈님이 상대하신 놈들 중 한 명이 아닐까 생각됩니다만.."
"그렇겠지요.. 허나, 그리 알려져선 아니 될 것입니다!"
아밈은 확고하다.
"울림선인 후보자가 겁에게 당했단 소문이 돌면 나랑고스 안팎으로 혼란만 가중될 터.. 조사는 겁들이 비자둥우리에 들어온 것을 틈타 울림선인의 후보자 자리를 빼앗기 위한 동인들 간의 암투로 초점을 맞춰주세요."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선비들의 위신을 되레 떨어뜨리게 될까 두렵습니다.."
"걱정말게, 내게 생각이 있으니.."
아밈은 고개를 돌린다.
"거믄머리 쪽에서 유능한 하눌동인 한 명을 준비해 주시게. 나머진 내가 알아서 하겠네."
"... 알겠습니다.."
거믄머리이자 울림선인 , 도통 이해하기 힘든 아밈의 명을 군말없이 받아들인다.
* * *
뚜각, 뚜각, 뚜각. 발소리가 묵직하다.
여나비제이자 울림선인 공용도는, 아밈의 대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얼굴이다.
"동인들 간의 암투라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 건지 원.. 세간에 흉흉한 소문이 나돌고 있어요, 선비들에 대한 평판이 말이 아닌데 심히 걱정스럽습니다."
"... 아예 없는 얘기도 아니지 않습니까."
연은 그와 다르게, 아밈의 결정을 신뢰하는 듯하다.
"게다 검의 계승자를 둥우리에 들이다니요. 으음.. 다른 선비들의 안전은 안중에도 없으시단.."
"그렇습니까?"
"에?" 공용도는 콧대를 매만지던 손을 내려놓는다.
"아밈님께서도 저희처럼 울림선인이던 때가 있으셨지요. 그때에 비해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곤 하나.. 뿌리까지 바뀌었다곤 생각지 않습니다."
연은 눈을 슬 감는다.
[image]
"선인이란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자,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강함을 추구하고 약함을 배척하는 자들 아닙니까.. 다만 옛 선비들은 무형의 강대한 힘이 백성들에게서 나온다 믿었기에, 그들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서라면 명예나 명성 따윌 저버리는데 망설임이 없었다지요."
연이 다시 눈을 뜬다. 매마냥 또롯한 청록빛 눈동자가 시선을 끈다.
"검의 계승자를 둥우리에 두신 것도 그 틀에 기인한 '옛 선비의 결단'이라 생각합니다. 백성들을 지키는데 검의 힘이 필요하다면 그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단 뜻 아니시겠습니까."
"... 무모하신건지 과감하신건지. 선비도 한 명의 백성이거늘.."
"뭐, 아밈님이 선비로 활약하시던 때를 돌이켜보면 이해 못 할 것도 없지요.. 좀 구식이긴 합니다만.. 전 그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 믿고 싶습니다."
...
"그럼, 수업 때문에 이만.."
찍찍 찍찍찍. 연은 수십 마리의 박쥐 떼가 되어 날아오른다. 공용도 또한 발소리 뚜각이며 자리를 뜬다.
"... 믿고.. 싶다라.."
* * *
"개미 언제 나오는 거야!"
"그, 금방 나올거야 아마.."
마고는 아이들과 애타게 개미를 기다린다.
뽈뽈뽈.
"왔다 개미!!!"
드디어 나온 개미. 마고는 개미를 검지 끝에 올려 눈높이를 맞춘다.
"개미 뭐래? 뭐래 개미?! 뭐래 뭐래??!"
잔뜩 흥분한 시아가 옆에서 난리다. 마고는 긴장한 얼굴로 개미의 답을 듣는데.. 과연..!!

4. 24. 지각2


"개미 뭐래? 뭐래 개미?"
개미와 한참을 교감하던 마고.. 이내 땀을 삐질 흘리며 시아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뭐래?"
마고의 목소리가 사시나무 떨듯 떨린다.
"서, 선승님이 어떻게 생겼냬"
"뭐야?!!"
"시아야 목소리가 너무 커!"
"됐어! 이거 놔!"
오랫동안 기다려서 얻은 답이 이따구라니! 울컥한 시아를 말리느라 쉬라는 아둥바둥한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늦어서 죄송하다 말씀드리고 그냥 혼나고 말래!"
쉬라와 마고는 말없이 서로를 바라본다. 마고는 한숨을 후 내쉰다.
"그래, 스승님이 말씀하시길, 선인은 자연에 순응하는 시냇가 푸른 소나무라셨지."
"저 오빠 지금 뭔 소리하는 거래?"
"잘은 모르겠지만 마음의 결심이 섰다는 것 같아."
마음을 굳게 먹고 문 앞으로 나서는 마고. 문에 두손을 척 올리고선 문을 열어보는데.. 근데 끄응 낑낑 온 힘을 쥐어짜내며 아무리 용을 써 보아도 도통 열릴 기미가 안 보인다. 마고는 어리둥절하면서 돌아선다.
"이 문 왜 안 열려?"
"열 줄도 모르면서 나선 거였어?!!"
시아는 어이없어 하더니 결국 소매를 걷어붙인다.
"하긴, 지각들을 해보셨어야지."
시아는 기세등등하게 문 앞에 선다.
"이 문은 한 번 닫히면 쉽게 열리질 않는다구! 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개폐 방식이라"
시아는 깊게 숨을 들이마신다.
"하지만, 그것도 이 진시아님한테 걸리면!"
시아의 발 아래로 엄청난 박력이 뿜어져나온다. 드드드드, 묵직하게 열리기 시작하는 문..!!
"짤없지!!!"
커다란 문이 열리자, 안에 있던 선비들이 웅성거린다.
"선승님?"
"... ! "
"하랑이네 방 애들이잖아?"
"근데 문을 어떻게 열었지?"
"에이, 열긴 뭘 열어. 선승님이 열어주셨겠지."
"선승님은 안 보이시는 걸?"
오호라. 시아는 턱을 괴고선 상황을 살핀다.
"보아하니 선승님은 아직이신 것 같고.."
시아는 여유로운 웃음을 지어보인다. 그때! 마고는 지-잉,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한다.
[image]
그리고 곧이어 저 높이 뚫려있는 바위 틈으로부터 들어오는 수십 마리의 박쥐 떼.. 아이들의 뒤로 누군가 다가온다.
"... 누가.. 아직이라고?"
'''" ! "'''
"... 아, 아"
아이들이 그토록 무서워하던 거믄머리 선승님.. 그는 바로 선승 연이었다. 연은 그 청록색 눈동자를 빛내며, 아무 말없이 아이들을 응시한다. 갑작스런 연의 등장에, 급기야 시아는 울먹거리기 시작한다. 한참을 잠자코 내려다 보던 연은 시선을 돌린다.
"네가 마고냐."
"예? 네, 네!"
"첫 수업부터 지각이라니.. 도발적이군. 한 명은 상습 지각생에, 다른 한 명은 뾰족귀 나리족에.. 전설적인 선인의 자제가 어울리기엔 좀 그렇지 않나?"
자리에 앉아있는 선비들은 키득대기 시작하고, 마고의 얼굴은 부끄러워 화끈거린다.
연은 그치지 않고, 몸을 숙여 마고와 얼굴을 가까이 한다.
"난 네 어머닐 알고 있다. 당대 최고의 하눌동인이셨지. 내게 거믄머리로서의 재능이 있다는 걸 가장 먼저 알아차린 이도 네 어머니셨다.."
마고는 엄마 얘기에 놀라면서도, 긴장해서 온몸이 뻣뻣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우린 오래가지 못했다. 그녀가 바란 건 안돈이 아니라 더 큰 세상이었거든. 영웅의 부재를 눈치챈 승냥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날뛰었고 그 때문에 우린 큰 피해를 입었지. 하지만 누구도 떠나버린 영웅을 탓하진 않았어.. 왜냐면 더 큰 위협으로부터 우릴 지켜주기 위해, 더 위대한 걸 성취하기 위해 그녀가 나랑고스를 떠났다 믿었으니까.."
마고는 고개를 푹 숙인다.
"그리고 이제 그녀의 아이가 내 앞에 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지금의 너로선 이해하기 힘들겠지.. 그녀는 모든 면에서 뛰어났다. 단 한 번 실수해본 적도, 시간을 어겨본 적도 없었지. 완벽했고 철두철미했다."
연은 스윽 손을 뻗는다. 강단 기둥에 걸린 대나무 책이 흔들거리더니 연의 손에 탁 들어온다.
"자 그럼, 너희 셋 모두 지각을 했으니.. 벌을 받아야겠지?"

5. 25. 리아의 마음


"그럼.. 벌을 받아야겠지?"
아이들은 꿀꺽 삼킨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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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긴장한 채 지켜보는 아이들 앞에서, 연은 대나무 책에 꽂혀 있던 도장을 뽑아 들고는 공중에 대나무 책을 펼친다. 낱낱개의 대나무 쪽들이 흩어져 떠오르는 광경에, 멋모르는 마고는 "와.."하고 감탄한다.
"조용히 해! 와는 무슨 와야!"
시아는 팔꿈치로 마고의 옆구리를 찌르며 눈치를 준다. 소곤소곤 말을 잇는 시아.
"저게 뭔 줄이나 알고 감탄하는 거야?"
"뭐, 뭔데?"
"저건 승죽간이라고 선비들의 승격점수가 기록돼 있는 나무책이야. 저걸 꺼내셨다는 건 우리 점수를 제하시겠단 거라구!"
연이 손을 뻗자, 승죽간의 세 쪽이 끌려나온다. 연은 승죽간에 인을 찍어 셋의 점수를 제한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도장과 달리, 그 끝에서 희뿌연 김이 피어오른다.
"다른 선승님들은 지각하면 배움마당 청소 같은 벌만 주시지 점수를 깎진 않으시던데.."
점수가 깎이자 한탄하는 시아. 그 말은 연의 귀에 들어간다.
"걱정 말거라. 구역청소도 시킬 생각이었으니까."
연은 승죽간을 다시 모은다.
"각각 벌점 십 점씩 줬다."
"십 점?"
시무룩해져 있던 쉬라, 벌점 십 점이란 소리에, 눈이 빙글빙글 돌더니 이내 쓰러져 버리고야 만다.
"쉬라 왜 이래?!"
"어, 언니가 점수에 좀 민감하달까.."
"꼴 좋다!" "그렇게 잘난 척 하더니!"
애기네 무리의 선비들이 아이들을 조롱한다.
"그리고 오후 수업이 끝나거든 절벽둥지 청소를 하고 수리관리인에게 검사받도록."
"저.. 절벽.. 둥.."
"시아까지!"
절벽둥지라는 말을 듣고는, 시아조차 쓰러지고야 만다.
"두, 둥지 청소라니 난 못해!"
그 모습을 본 다른 선비들이 신랄하게 웃어재낀다.
"모두 조용! 수업 시작할 테니 너희도 가서 자리에 앉거라."
연과 아이들의 모습을, 뻥 뚫린 배움마당의 천장에서 누군가 지켜보다 자취를 감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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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아는 발코니 난간에 기댄 채 고민에 빠져있다. 리아는 얼마 전 만났던 의 말을 떠올린다.
"아뇨, 변했어요. 지금의 당신이라면 선인도 될 수 있답니다."
복잡해진 머릿속. 리아의 온몸이 부르르 떨리고, 머리에선 김이 난다. 리아는 제 화를 주체하지 못하곤 벌떡 일어나, 고뇌를 털어버리려는 듯 팔을 마구 휘젓는다. 그때, 동료 궁녀가 리아를 다급히 찾아온다.
"'''리아!''' 너 여기서 뭐하는 거야?!"
"응?"
"오늘 지그라드 사신단 오는 날이란 거 잊었어? 대모장려님이 너 어딨냐고 성화셔!"
"아, 그래.."
리아는 시큰둥하게 답한다. 동료 궁녀는 리아를 보자마자, 자칫 잘못 건드려선 안 된단 걸 알아챈다.
'헉.. 리아 녀석, 상태가 왜 저래? 또 어떤 왕자한테 들이대다 차였나?'
"... 하, 하여간 어서 가자구! 너 빨리 안 잡아가면 나까지 죽게 될지도 몰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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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모장려님, 리아를 데려왔사옵니다"
두 궁녀는 대모장려의 앞에 선다.
둥, 둥, 두둥.
두 명의 장려가 엄숙한 표정으로 지키고 선 단 뒤에, 대모장려가 작은 좌에 앉아 차를 홀짝이고 있다.
"소이는 인제 그만 가도 좋다."
"... 예, 예 대모장려님.."
대모장려는 마시던 찻잔을 내려둔다. 매끈한 옥으로 만들어진 듯한 그 찻잔은, 햇빛이 비추자 영롱하게 반짝인다. 한숨을 푹 내쉬는 대모장려.. 이에, 두 장려는 착착 손발을 맞추어 등불을 꺼트린다.
'''"리아 이 녀석!! 온종일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닌 게냐!! 도대체 정신이 있는 게야 없는 게야! 그런 마음가짐으로 장궁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느냐!!!"'''
대모장려의 목소리가 웅장하게 울린다. 아직 미처 자리를 벗어나지 못한 동료 궁녀 소이.. 대모장려의 사자후를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거의 엎드려서 신음한다. 하지만 리아는 이를 정면으로 맞고도, 머리칼만 잠시 휘날릴 뿐 끄떡없이 버텨내는 비범함을 보여준다.
"에고고.. 난 무슨 죄야.."
괜히 봉변을 당한 소이는 바닥에 납작 붙어서 끙끙댄다.
'이 녀석 봐라..? 서릿발 같은 호통바람에도 꿈쩍하질 않네..'
리아는 자신의 소신을 밝힌다.
"외람되오나.. 소녀, 장궁이 될 생각이 없사옵니다.."
"머시라?"
"... 소녀.. 선인이 되고 싶사옵니다!"
모두들 그 말을 듣고 모두 심히 놀라 리아를 쳐다본다.
"리아 네가 선인이 된다고?! 와하하하 하.. 아하.. 하.."
소이는 깔깔 웃지만, 리아의 진지한 태도에 웃음소리는 잦아든다. 리아가 날선 눈으로 뒤돌아보자, 소이는 꼼짝 못하고 입을 다문다. 온 얼굴에 땀이 흐른다.
"리아가 변했어!"
소이는 으아앙 속상해하며 급히 자리를 벗어난다.
"그것이.. 네가 진정 바라던 것이더냐.."
대모장려의 찻잔에서 모락모락 김이 올라온다. 대모장려는 잠시 아무 말이 없다 비로소 입을 연다.
"그래 좋다! 단, 한가지.. 조건이 있다."
대모장려는 흥미로운 제안을 한다.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6. 26. 벌점? 승점!


수업이 끝나고, 배움마당 안은 선비들의 웅성거림으로 가득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이들은 밝은 표정이다. 그새 벌점 받았던 것을 잊은 것일까? 그 뒷모습을 보며, 애기네 무리가 대화를 나눈다.
"내 살다 살다 지각하고 승격점수 받는 건 또 처음 보네."
"그럼 우리도 지각으로 점수나 한번 받아볼까?"
"근데 우린.. 문을 열 줄 모르잖아.."
"그야.. 그렇지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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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아이들은 에졍지에서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선승님도 참.. 처음부터 승격점술 주셨음 좋잖아!"
"점수 더 받은 게 어딘데 그래.. 선승님께서 그러셨잖아, 언제나 시간을 지키는 선인이 돼주길 바란다고.."
마고는 말없이 국을 퍼먹는다. 마고는 방금 전 수업 시간을 떠올린다.
"질문에 답한 희네와 주욘, 쉬라에게 승격 일 점을 주겠다. 추가로.."
연은 또다시 승죽간을 펼쳐놓는다.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요?
"진시아, 마고, 쉬라에게 각각 승점 이십 점을 부여하겠다."
쉬라도 또다시 눈이 빙글빙글.
"언니 또 쓰러진다!"
"어, 어째서..!!"
마고는 쉬라를 부축한 채 연에게 묻는다. 살짝 미소를 띄는 연.
"자신의 약점을 예습으로 극복한 쉬라, 버금선인 중 처음으로 형질조작계 능력을 보여준 마고, 혼자서 울림문을 열어낸 시아까지.. 뭣보다, 과단성 있는 결단력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태도가 너희에게 승격점수를 주게 된 가장 큰 이유다."
* * *
하하하하! 시아는 무척이나 좋아하며 즐겁게 밥을 먹는다.
"좋아할 일이 아니라구! 이번엔 그저 운이 좋았던 것 뿐이니까.."
"그나저나 오빠도 대단해.. 그 순간에 그런 질문을 하다니.."
설마.. 마고의 질문 본능이 그 상황에서도? 또다시 수업의 끝무렵을 들여다보자.
"별다른 질문이 없다면 이걸로 수업을 마치겠다."
그때, 슥 올라오는 손 하나.
"마고?"
"지, 질문 있습니다."
"..뭔가?"
"왜.. 왜 역사를 배우는 건지 알고 싶습니다! 적들과 싸울 때 필요한 건 강력한 힘이지 역사가 아니잖아요."
옆에서 듣고 있던 시아는 뜨끔한다. 마고의 질문을 들은 연은 잠시 눈을 감는다.
"역사를 왜 배우냐니!"
"우우~"
"그런 건 역사시간에나 물어보라고~!"
선비들은 들개무리마냥 달려들어 물어뜯는다. 쏟아지는 야유와 비난에 마고는 또 다시 글썽거린다.
"내, 내가 잘못한 건가?"
"... 좋은 질문이군."
예상치 못한 연의 대답에 마고의 얼굴이 조금 펴진다.
"뭐 괜찮다. 힘을 기르는 이유가 역사와도 무관하지 않으니..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주마. 하루는 마고 네가 모래성을 쌓고 있는데.. 나와 쉬라, 시아가 네가 만든 모래성을 향해 위협적인 속도로 달려오고 있다 가정해보자. 근데 이들 중.. 네 모래성을 무너뜨리려고 계획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누군지 넌 가려낼 수 있겠느냐."
마고는 아무 말 없이 휙, 시아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왜 날 봐!"
"그게.. 겉으로 드러난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기다 아니다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시아는 그저 볼일이 급했던 것일 뿐. 네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모래성은 쉬라에게 짓밟히고 말 거다."
마고는 뾰루퉁한 얼굴로 쉬라를 쳐다본다.
"아, 아냐 난 절대..!!"
"... 바로 나의 계략에 의해!"
연은 가르침을 이어나간다.
"기억하거라! 강대한 힘을 가졌던들 피아를 구분치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이처럼 진정한 적은 제 모습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때문에 우린 역사를 기록하고 그 역사를 거울로 삼아 현재를 비춰보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진정한 적으로부터 우리의 성을 지켜내기 위해!"
* * *
시아는 숟가락을 물고서 말한다.
"그래도 난 이해가 안 돼.. 선승님께서 예까지 들어 가며 말씀하신 거 보면 되게 중요한 것 같긴 한데.."
"그렇지."
쉬라와 마고는 입을 모아 똑같이 대답한다.
"그럼..!! 밥도 먹었겠다 청소나 하러 가볼까?!"
시아는 먼저 일어나 시원하게 기지개를 편다.
"시아 너.. 아까 못 간다지 않았어?"
"아이참, 선승님 말씀 그새 잊었어? 도망치지 않고 자기 잘못을 인정했기 때문에 점수를 주신 거라잖아! 여전히 무섭긴 하지만 그렇다고 선승님께 실망감을 안겨 드릴 순 없지!"
"오오."
마고는 입을 가리고 시아의 결단에 감탄한다.
* * *
터벅 터벅, 절벽둥지로 향하는 아이들. 그렇게 잘 가는 줄 알았으나.. 선두로 앞서나가던 시아가 멈칫하고 선다.
"왜 그래?"
"못 가."
"뭐?"
"더는 못 간다고~!!"
"엑?!"
시아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진다.
"누구야.."
[image]
'''어떤 인간이 절벽둥지로
가는 길을 이따위로 만들어
놓은 거야!
놓은 거야
놓은 거야
:'''

7. 27. 절벽둥지


절벽둥지로 향하던 중, 밑을 내려다보고 만 시아. 시아의 얼굴이 차갑게 얼어붙는다. 시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찬바람이 휘이이잉 불어와 시아의 소맷자락을 펄럭인다. 시아는 어지러워 하더니 급기야 휘청거리기 시작하고, 마고는 용감하게 다가가 시아를 보호한다.
"조심해!"
근데.. 이거 참. 보호한다고 한 것이 시아를 벽에 밀어붙인 꼴이 되어 버렸다. 쉬라는 뒤에 서서는 갑작스레 일어난 일에 당황해 얼굴을 붉힌다. 입도 떡 벌리면서.
"위험했어.."
"오, 오빠..!!"
"긴장하지 마. 그럼 다리에 힘이 풀려서 중심을 잃게 돼. 천천히 천천히.."
마고는 시아의 팔을 붙잡고 함께 올라간다.
"이렇게 벽을 보고 걸으면 아래가 안 보이기 때문에 어지럼증이 훨씬 덜하지.."
쉬라의 얼굴에는 무척이나 어두컴컴한 그늘이 졌다. 질투심에 붉어진 얼굴..
"... 이제 좀 괜찮지~?"
시아를 돕고자 한 마고의 순수한 마음이, 쉬라의 눈에는 둘 사이에 싹트는 분홍빛으로 비춰진다. 이윽고. 쉬라의 입에서 엄청난 입김이 흘러나오고 눈은 그 무엇보다 밝게 빛난다.
"오, 오빠는 이런 거 어떻게 알았어?"
"약초 캐시는 할아버질 따라다녔거든. 특히나 천상초는 산꼭대기에만 있어서 이런 절벽 몇 개를 지나야 했지."
'... 바보 울보인 줄만 알았는데.. 마고 오빠 엄청 상냥해.. 우리방 두 사람이랑 비교하면..'
시아는 마고의 상냥함에 설렌 듯, 같은 방의 또다른 두 사람을 떠올린다. 먼저 하랑..
"뭐하는 거야 시아! 이게 장난처럼 보이나?! 나아가지 못하는 선인에게 미래란 없다!"
이, 이런. 시우한테로 넘어가보자..
"우리 시아 높은 데 무쪄워 무쪄워??"
아.. 시우는 더 가관이다. 일단 헤죽 웃고 시작하는데다 들썩이는 어깨는 멈출 줄을 모른다.
"전진이 아니면 죽음만이 있을 뿐!"
"무쪄워염? 무쪄워욤?"
시아는 생각만 한건데도 열을 단단히 받아, 눈빛이 단순간에 바뀌어 버린다.
"오빠, 나 혼자서도 갈 수 있을 것 같아..!"
"으, 응"
눈치를 보며 답하는 마고. 그때. 쉬라가 마고의 등을 밀기 시작한다.
"쉬라?"
"빠, 빨리 가자! 이러다 해 떨어지겠어!!"
쉬라는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고개조차 못들고는 마고를 부추긴다.
"아, 알았으니까 밀지 마 언니!"
그렇게 그렇게 어째든둥, 아이들은 드디어 절벽둥지의 출입문에 도착한다.
"다 왔어, 여기가 절벽둥지야."
"출입문이 되게 작아.."
"비자둥우리는 거인들도 살았던 곳이니까 문이 클 수 밖에 없었지만 여긴 그럴 필요가 없었던 거지.. 절벽둥지의 보급은 이곳을 통해 들어오지 않으니까."
"보급?"
"직접 보면 알 수 있을 거야."
끼익, 문이 열린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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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마어마한 규모의 하늘 요새 '''절벽둥지'''가 그 자태를 드러낸다. 바쁘게 돌아가는 절벽둥지. 아이들의 코앞으로 커다란 새 한마리가 쏜살같이 지나간다. 주위를 둘러보니, 짐을 옮기는 놈, 둥지에서 구루루루 울어대며 쉬고 있는 놈 등 많은 비자수리들이 보인다.
"새, 새야! 엄청 큰 새!!"
"저건 그냥 '새'가 아니야. '비자수리'. 우린 그렇게 불러.. 수백년 간 이땅을 지켜온 영물이지."
비행을 마친 비자수리가 짙은 청색의 날개를 퍼득인다.
"사람들이 나랑고스의 선인들을 비자수리라 부르는 것도 우리가 비자수리를 타고 전투에 임하기 때문일 거야. 물론 모두가 수리를 타고 싸울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때, 한 선비가 아이들을 발견한다. 시아는 그와 자주 만난 사이인지 친근하게 인사한다.
"수카님!"
"시아? 벌점을 너처럼 많이 받는 버금선인도 없을 거다! 비자둥우리의 벌점을 그렇게 쓸어 담다간 평생 버금선인으로 지낼 수 밖에 없을 걸?"
그는 거믄머리이자 하눌선인 수카. 수카는 조용히 아이들을 응시한다. 마고는 낯선 환경에 긴장한다.
"자, 따라 오너라. 할 일이 태산이니.."
짠! 아이들은 청소용 복장을 덧입고 다시 수카 앞에 모인다.
"청소에 앞서, 절벽둥지에서의 몇 가지 주의사항을 알려주겠다. 음음.. 시아! 첫번째 주의사항이 뭔가!"
시아는 귀에 못따가리 앉을만큼 지겹게 들은 말인지 줄줄 왼다.
"첫째, 비자수리 앞에 정면으로 서지 않는다 입니다.."
"이유는?"
"비자수리 앞에 정면으로 선다는 건 수리에 대한 도전, 즉, 결투신청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정답!! 그렇담 두 번째 주의사항은 뭔가!"
"둘째, 절~대, 비자수리 앞에 서지 않는다 입니다!"
'''"목소리가 작다! 셋째는!!"'''
'''"셋째!!!''' 절대 절대 절대~! 비자수리 앞에 서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 이곳에서의 주의점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비자수리 앞에 정면으로 서 있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접근할 때는 측면에서 천천히! 알겠나 신입~!!"
"예, 옛!!!"
"만약.. 수리 앞에서 4초 이상 알짱거릴 경우.. 네 친구들은 수리 둥지 청소 대신 이리저리 흩어진 너를 찾아 헤메게 될 거다.."
수카가 위압적인 태도로 경고하자, 마고는 잔뜩 겁을 먹고 만다.
"너무 걱정하진 마. 일부러 겁주시려고 하시는 말씀이니까~ 어차피 수리들은 후릿고삐에 묶여 있어서 함부로 움직이지도 못해~"
"저, 정말?"
수카는 아이들을 담당 구역에 데려간다.
"너희가 치울 십일층계다! 청소 방법은 '벌점청소 달인' 시아가 친절히 알려주도록!"
수카는 그 인상나쁜 눈을 번뜩인다.
"참고로, 이곳에서 선인의 힘은 안 쓰는 게 좋을 거야.. 얼마 전 두 녀석이 어쭙잖게 선힘으로 청소하다 먼지가 수리에게 날려 죽을 뻔한 걸 내가 겨우 살려냈거든.."
"그럴 생각도 없었어요.."
"그으래?"
그때. 하필 이 타이밍에 무언가 심상찮은 일이 생긴다. 화륵 피어오른 불.. 종소리가 뎅 데뎅 요란하게 울린다. 화재인가 싶었지만..
"부, '붉은빛소리'야!"
"'붉은빛소리'?"
"적들이 공습을 감행했단 거다.."
뎅 데뎅 뎅..
'평소보다 이르군..'
적들의 공습이란게 이름과 달리 익숙한 일인지 수카는 의연하다. 뎅 데뎅.. 종소리는 계속 울린다.
"매얼음패와 칼벼락패는 나르머리로, 달바람패와 솔수리패는 나루뜰로 집결한다!!"
"서둘러!"
"수카님!"
"그래 알았다."
뎅 데뎅. 수카는 자신을 찾는 부하 선비에게 답해주곤 아이들에게 급히 이른다.
"선승님껜 내가 말씀드릴 테니 너흰 이제 내려가도 좋다!"
데뎅 뎅 뎅 데뎅. 종소리가 요란하고 수리들이 세차게 날갯짓하는 그 혼란스런 곳에서, 아이들은 어쩔 줄 몰라 우두커니 서 있기만 할 뿐이었다.

8. 28. 비자수리


출격하는 비자수리들 틈에 서있다 정신이 쏙 빠진 아이들. 날아가는 비자수리를 피하려다 넘어지는 등,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어안이 벙벙하다. 멍하니 수리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마고.. 많은 선비들과 수리들이 자리를 비운 절벽둥지는 무척이나 조용하다.
"이, 인제 어쩌지?"
"어쩌긴! 둥우리로 돌아가야지.. 수리패들이 잇따라 나가는 거 보면 작은 일은 아닐 거야. 여기도 곧 후속 전투 준비로 분주해질 테니 조무래기들은 나가자구."
시아는 머리를 굴려, 빨리 둥우리로 돌아가자하지만.. 마고는 무언가 맘에 안드는 듯 뾰루퉁, 우물쭈물한다. 시아는 마고의 모습에 절로 답답해져, 그의 어깨를 마구 흔들어대며 독촉한다.
"뭐야! 우물거리지 말고 말을 해 말을~!"
"시, 시아야!"
"그, 그게.. 얼마나 나간 건지, 또 다른 수리패는 없는지 해서.."
"하여간 궁금한 것도 많아요.. 근데 이건 좀 복잡한데.. 지금 꼭 알아야겠어?"
"으, 응.."
머리를 긁적이는 시아에게, 마고는 긴 고민 없이 답한다.
"... 뭐 좋아! 오는 길에 날 도와줬으니까.. 대신 이걸로 퉁치는 거다?!"
시아는 얼굴을 붉히며 마고의 가슴께를 가볍게 툭 친다.
"그럼 잘 들어?! 두 번 설명 안 할 거니까.."
"넵!"
시아의 큰 소리에 깜짝 놀란 마고는 정신줄을 바짝 붙잡는다.
"나랑고스에는 여덟 무리로 나누어진 수리패가 있는데.. 생긴 건 비슷비슷해도 능력이나 수는 제각기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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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중 가장 큰 무리가 '매얼음패'야.. 두 번째가 무쇠뿔 '녹망수리패', 세 번째가 용맹스런 '땅머리패', 그리고 이보다 더 작은 규모의 연화 '여나비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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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힘을 쓰는 '솔수리패', 벼락을 뿌리는 '칼벼락패', 빠르기로 유명한 '달바람패', 마지막으로 가장 작은 소무리의 '거믄머리패'."
시아가 열심히 설명했지만, 수리패들이 생각보다 너무 많다. 마고는 삐질 땀을 흘린다.
"너무 많으니까 헷갈려.. 이런 건.. 글로 써서 알려줘야 정리가 되지 안 그럼.."
머리를 긁적이는 마고. 시아의 뒷모습은 몹시 화난 듯하다.
'''"지금 알고 싶단 사람이 누군데~!!!"'''
"미, 미안해.."
시아의 분노를 담은 날아차기! 시아의 발을 피하려 마고는 바닥에 엎드린다. 가감없는 시아의 공격적인 태세에 쉬라는 놀라며 입을 막는다.
"...궁금한 건 참을 수가 없어성.."
마고는 찐빵같은 얼굴로 중얼거리곤 고개를 든다. 무언가를 발견한 듯한 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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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엄청난 석상이다! 왜 이걸 못 봤지..?"
"아까는 우리가 들어오던 입구 위에 있었으니까 그렇지.."
마고는 역시나 이번에도 궁금했지만 시아에겐 못 물어보겠고.. 쉬라를 바라보며 스리슬쩍 도움을 구해본다. 그 낌세를 알아챈 시아. 불 같이 화를 내며 으름장을 놓는다.
"쉬라 언니 쳐다봐도 소용없어! 언니 절대 알려주지 마?!!"
"너, 너무해.."
푹 기죽어버리는 마고. 아이들의 대화를, 의심스런 한 선비가 지켜보다 수리의 고삐를 끊어버린다.
"따, 딴소리 안 할게요 시아님!"
"정말?"
시아는 마고의 입가리개 끝자락을 잡고 머리 끝까지 올린다.
"정말입니다!"
"뭐! 그렇다면야!"
마고가 버둥거리며 굴복하자 시아는 그제야 받아들인다.
"... 저건 말이지! 마왕들을 물리친 나르골의 초대왕 '아르'님이 타고 다니시던 전설의 비자수리, '달그림'이야. 그리고 그 후손들이 지금의 달바람패 수리들이고.."
"... 근데 다리가 셋.."
"오, 예리한 걸? '달그림'의 다리가 왜 세 개냐, 거기엔 또 사연이 있지.."
한참 설명에 불이 붙은 시아. 근데, 뒤에서 누군가 툭툭 치는 느낌이 든다.
"아 뭐야! 한참 재밌게 말하고 있는데.."
시아는 별다른 생각없이 뒤를 팔꿈치로 치고는 말을 이어나간다. 하지만, 그래선 안됐다.
"어때, 궁금하지? '달그림' 이야기?"
시아는 눈을 감고 팔짱을 낀 채 이야기하다, 마고가 아무 말이 없자 이상하게 생각하며 슬며시 눈을 뜬다.
"오빠?"
마고는 땀을 흘리며 시아의 뒤를 주시하고, 쉬라는 버티다가 끝끝내..
"언니?!"
.. 기절하고야 만다.
"가, 갑자기 왜들 그래..?"
불안함에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 시아의 뒤에는 바로.. '''고삐 풀린 수리'''가 있었다..
수리는 한발짝 앞으로 다가온다. 그 커다란 부리가 만든 그림자가 시아를 덮친다. 구르르르 울음소리에 그제야 자신이 처한 상황을 깨달은 시아는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는다.
"아, 아, 아..!!"
절벽둥지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건 바로 비자수리 앞에 정면으로 서는 것. 수리는 자신의 앞에 서있던 시아가, 자신에게 도전했다고 인지하고는 금방이라도 달려들 태세로 콧김을 뿜고 날카로운 발톱으로 땅바닥을 긁는다.
'도망, 도망쳐야 해!!!'
공포에 휩싸인 시아는 벌벌 떨지만, 힘 빠진 다리가 말을 안 듣는다.
'움직여! 움직여!!!'
시아는 공포에 질려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마고와 쉬라 곁으로 기어간다.
'언니! 오빠!'
"응?"
그런데.. 마고가 없다. 시아는 몸을 일으킨다.
"오, 오빠?"
"옆에서 천천히..'
"오빠!!"
사실.. 마고는 겁도 없이, 그틈에 수리 옆으로 천천히 다가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절벽둥지 관리인 중 하나인 노란머리 선인이 그 광경을 발견하곤 동료인 검은머리 선인에게 말한다.
"뭐야.. 마루에 수리가 한 마리 나와있는데?"
"살필수리[2]인가요? 살필수리들은 이미 다 나간 걸로 아는데.."
"잠깐.. 저, 저거 수리랑 같이 있는 거 아까 들어왔던 버금선비들 아냐?"
'''!'''
서로를 마주보는 두 선비의 얼굴에 땀이 송글 맺힌다. 한편, 마고는 수리에게 계속 다가가고 있는데.. 수리는 자신에게 겁없이 다가오는 마고를 신기한 듯 쳐다본다.
"아, 안녕! 난 마고야!"
'설마 저 녀석 수리를 길들이려는 건가?! 이봐, 실패하는 날엔 네 녀석이 죽는다구!'
"내가 선비들을 맡을 테니, 자넨 수리를 맡게!"
"옛!!"
성급히 수습에 나서는 둘.. 노란머리 선인은 마루에 뛰어내려와, 수리에게 두 팔을 척 뻗는다.
'그래도 시간은 벌었군! 이젠 우리에게 맡기렴!'
노란머리 선인이 두 손을 뒤로 힘차게 당기자, 마고의 몸이 기우뚱하다 빨려들어가듯 빠른 속도로 끌려간다. 검은머리 선인은 잽싸게 수리 위에 올라타 안장에 앉는다. 수리는 갑자기 가해진 충격에 눈이 희어진다. 고삐를 쥐고 당기는 검은머리 선인. 하지만.. 아뿔싸!
흥분한 수리는 부리를 크게 벌리고 꾸루루루 시끄럽게 울어대며 날개를 펄럭인다. 모두의 표정이 긴장에 가득차 굳어지고.. 노란머리 선인과 마고를 제외한 모두, 즉 쉬라, 시아, 검은머리 선인 셋은 수리의 날갯짓에 휩쓸려 결국 '''절벽'''둥지에서 추락하고야 마는데..

9. 29. 비자수리2


[image]
세찬 수리의 날갯짓에 휩쓸린 쉬라와 시아가 추락하는 것을 보며, 마고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꽉 앙다문다. 마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노란머리 선인은 필사적으로 두손을 뻗어 쉬라와 시아를 공중에 붙잡아 두는데 성공한다.
한편, 검은머리 선인은 당황하지 않고 몸을 빙글 돌리더니 외투에 선힘을 불어넣는다. 탓. 박쥐의 비막처럼 옷자락이 펄럭, 펼쳐진다. 검은머리 선인은 바람을 타고 활강하여 아랫층에 착지한다.
'선비님!'
노란머리 선인은 온힘을 다해 쉬라와 시아를 끌어오려 노력한다. 하지만..
'절벽둥지의 기류에.. 끌려 들어 가고 있어!'
그의 다리가 부들부들 떨린다.
'이제 한계야!! 소진아 서둘러다오!'
노란머리 선인은 두 손을 높이 들고 고개를 푹 숙인 채, 간절한 마음으로 끝까지 버틴다. 그런데.. 그 순간, 그의 곁으로 후웅- 빠르게 지나가는 무언가. 선인의 두 눈은 어느새 그 잔상을 쫓기 바쁘다. 그리고 그의 시선 끝에는 바로..
[image]
'''비자수리를 타고 날아가는
마고가 있었다!'''
수리의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마고의 앞머리가 주체없이 휘날린다. 수리는 아이들을 낚아챈다.
'수리를 길들인 건가? 버금선비가!?'
노란머리 선인은 믿기지 않아하며 마고를 본다.
'저 아인 대체..'
마고는 엄숙한 얼굴로 수리를 몰아 조심스레 아이들을 내려놓는다. 탓, 수리에서 내려오는 마고.
"얘들아!"
마고를 본 시아는 울음을 터트리며 마고에게 와락 안긴다. 마고의 눈시울도 덩달아 붉어진다.
'''"오빠!!!!"'''
명랑하고 화끈한 시아라도, 그 역시 한낱 아이였을 뿐.. 그때, 아랫층에 착지했던 검은머리 선인이 비자수리를 타고 십일층계로 돌아온다.
"선비님!"
"오.."
"어떻게 된 거죠?"
노란머리 선인의 얼굴이 땀에 흥건하다.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뜨더니 살며시 미소 짓는다.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네.."
"기적 같은 일이요?"
"그래, 기적 같은 일.."
마고는 시아를 끌어 안고 안도의 눈물을 흘린다.
* * *
달은 밝고 별도 밝다. 부엉이는 부엉부엉, 밤의 소리를 도맡는다.
숙소로 돌아온 마고는 일찍 잠들었다. 하랑과 시우도 겁을 소탕하느라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온다.
"뭐야, 마고는 벌써 자는 거야?"
"오, 오빠.."
"너, 너 왜 그래! 뭔 일 있었어?"
평소와 다르게 눈물 글썽이는 시아의 모습에 놀란 아이들. 시아는 절벽둥지에서의 일들을 설명한다.
'''"뭐?''' 마고가 수리를 몰았다고?"
"거짓말!"
"아냐.. 진짜 멋있게 날아와서 우리를 구해줬어."
쉬라는 "기절해서 아무것도.."하고 작게 속삭인다.
"마고 녀석, 수리인도 새기기 전에 비자수리를 몰았단 말이야?"
"얼굴에 꼭 수리인을 새겨야 탈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게 사실이라면 퍼질만도 하지.."
"선힘 없이 수릴 다룬다는 건 목숨을 내놓는 거나 다름 없는데.. 하여간 종잡을 수 없는 녀석이야"
* * *
리아는 편한 복장으로 누워, 머리 뒤에 깍지를 끼고 천장을 본다. 리아는 눈을 감는다.

"좋다!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리아는 대모장려의 말을 경청한다.
"앞으로 열흘 간.. 애기장려[3]가 되어 단 한 번의 실수 없이 장려 일을 수행해낸다면 내 기꺼이 숙고해보마."
고개 숙인 채 잠자코 있는 소이와 다르게, 리아의 허리는 꼿꼿하다.
"궁중의 예법 교육은 비자수리들의 기본 교육과정 중 하나, 실수를 용서치 않는 그들의 규율에 따른 것이니 월등하지 않음 그 즉시 퇴짜다."
대모장려는 잠시 뜸을 들인다.
"... 해보겠느냐..?"
* * *
"무리야 무리.."
옆에 누워 있던 소이가 벌떡 일어나며 말한다.
"아직 시험도 쳐보지 못한 장궁에게 장려의 일을 그것도 월등히 해내라는 게 말이 돼? 이건 그냥 포기하란 거라구.."
"천만에.. 내가 그런 각오도 없이 말씀드렸을 것 같아? ... 열흘.. 할 수 있어! 나라고 그동안 공밥 먹으며 놀기만 했겠어?"
"그, 그렇지?"
리아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소이는 괜한 얘기를 꺼냈나 싶어 말을 더듬는다.
"... 그래 넌 한다면 하는 아이니까.."
* * *
휘영청 달빛이 마고와 친구들의 방을 비춘다. 마고는 모로 누워 곤히 자고 있다.
[image]
그리고.. 숙소에 나타난 침입자는, 깊이 잠든 마고를 내려다본다.

10. 30. 암운


침입자는 마고를 흔들어 깨운다. 비몽사몽하며 일어난 마고는 눈을 비빈다.
"누, 누구.."
침입자는 아무 말 없이 두 눈을 밝히며 마고를 쳐다본다. 마고는 침입자를 보자마자 굳어버린다. 침입자는 마고에게 다가가더니, 로브를 들어 올리며 자신의 얼굴을 드러낸다.
"쉿!"
그 정체는 바로 아주였다..!!
"쉿?"
* * *
[image]
아주가 마고를 데리고 온 곳은 어느 한 정원이다.
"왜 안 된다는 거죠?"
"안 된다니까 글쎄?"
"하, 하지만 선힘을 쓰지 않으면 선힘을 배우는 의미가 없잖아요!"

"고놈 참 말 많네! 다 널 위한 거니까 쓰지말라면 쓰지말라구!"
아주의 언성이 높아지자 마고는 지레 겁을 먹는다.
"아주님도 참.."
이 자리에 함께한 다이라. 쉽게 욱하는 아주 대신, 자신이 설명해주기로 한다.
"마고님이 선힘을 쓰시면 마고님 뿐만 아니라 다른 선비님들까지 위험해진다나 봐요."
"... 위험?"
"마고님 안에 잠들어 있는 신비한 힘.. 그 힘을 온전히 다룰 수 있을 때까진 자제하라는 게 아밈님의 전언이세요."
"하지만 저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걸요..?"
"걱정마세요, 그걸 도와드리기 위해 저희가 온 거니까요."
"그, 그게 뭔데요?"
"바로.."
마고가 침을 꿀꺽 삼킨다. 다이라는 싱긋 웃으며 말한다.
"선힘을 쓰는 거에요!"
"네?"
마고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래, 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추란 말이냐!
"아밈님께서 마고님의 잠든 힘은 선힘의 단련을 통해 발현될 수 있다셨거든요."
"그치만 방금 전에는 쓰지 말라고.."
"그건 둥우리에서! 이곳에선 맘껏 쓰셔도 돼요."
다이라는 드디어 자신을 소개한다.
"그럼, 정식으로 인사 소개 올릴게요. 저는 마고님의 단련 임무를 맡은.."
[image]
"거믄머리의 으뜸선비, '다이라'라고 합니다."
다이라는 자신에 이어서 아주도 소개한다.
"이쪽은 여나비제의 하눌선비이자, 나르골의 왕자님이신 '아주'님.."
아주는 팔짱을 굳게 끼고 눈을 감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한 명이 더 와야 하는데 어째 좀 늦네요.."
"왜? 동기라서 걱정 돼?"
아주는 칼을 빼어들고 날을 점검한다.
"... 요즘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그렇다고 무기력하게 당할 녀석도 아니고 늦을 땐 그만한 이유가 있으니 늦는 거겠지.. 괜한 걱정 말라구!"
아주는 그동안의 행보에 안 어울리게, 몹시 관대한 발언을 한다. 그때! 마고의 표정이 심상찮다.
'이, 이 느낌은!'
마고의 뒷편에서 누군가가 뛰어내려 착지한다. 그를 발견한 다이라의 눈이 커진다. 그는 바로 뒤늦게 도착한, 단련 임무의 마지막 인원..
"왔다! 버금선비 '뮤울'! 늦어서 죄송합니다.."
"너.."
아주, 자네 설마 이번에도? 에이, 방금 그리 말해놓고, 설마..
"뭐하다 이제 오는 거야?! 지금 때가 어느 땐데!!!"
"아까는 이유가 있으니 늦는 거라면서요!!"
이런, 아주는 빼어든 칼을 휘두르며 마구 화를 낸다. 다이라는 그런 아주를 말리기 바쁘다. 쩝.
"그게.. 흔적을 지우면서 오다 보니.."
뮤울은 머리를 긁적이다 손을 내린다. 자신에게 집중된 시선을 느낀 것이다. 뮤울을 빤히 쳐다보는 마고.. 둘은 눈을 맞춘다.
"토끼!"
"그, 그래 토끼.."
"토끼?"
아주는 어이없어 한다.
"너 설마 잠행하다 마고한테 걸린 거냐?"
"... 아, 아아!"
자신에게 칼을 겨누는 아주 앞에서, 뮤울은 말문이 막혀버린다.
"... 네, 걸렸습니다.."
"뭐얏?!"
"잠행 쯤은 아무것도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그리고, 그동안 뮤울의 행적들이 낱낱이 드러난다.
"에졍지에서도.. 수업 중에도.. 심지어 볼일 보는 데서도! ... 눈치를 채는 것 같더라구요.. 그러다 결국 걸리고 말았죠.."
그렇다. 마고와 아이들이 연의 수업에 지각했던 날, 마고가 느낀 이상한 움직임의 주인공은 그냥 토끼가 아니라 뮤울이었던 것이다!
'빙충맞아 보여도 검의 계승자는 계승자라.. 이건가?'
"토끼이.."
"뭐 좋다." 아주는 이마를 짚는다.
"이제 다 모인 것 같은데 그럼 시작해볼까?"
* * *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키타르, 아고르, 뭉구르.. 세 나라에서 보낸 전갈이 모두 도착했습니다."
아밈은 복잡한 심경으로 두루마리를 집어 펼쳐 든다. 답신을 읽는 그 표정이 실로 심각하다.
"이는 단순히 겁을 제압하자는 것만이 아닙니다. 칼리그 무리를 받아들인다면 겁들은 물론이고 바다 건너 제국을 견제하기에도 훨씬 수월해질 것입니다.."
달 미르는 여전히 그 뜻을 굽힐 생각이 없다. 어두운 방을 밝히는 짧뚱한 양촛불 주변에 나방 한 마리가 꼬여든다. 나방은 얇은 날개를 팔랑인다.
"그렇게 왕국의 왕들을 설득시킨 겁니까? 겁들도 물리치고 제국도 견제할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라구요.."
아밈은 두루마리를 내려놓는다.
"... 십 년간, 지난 십 년간 저는 갈라진 틈을 막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그 노력의 결실이 머잖았다 확신합니다. 하나 그들은 어떻습니까? 지난 십 년간 뭘 했습니까?"
달 미르를 바라보는 아밈의 눈동자가 예민하게 반짝인다.
"우리에게 찾아온 환란을 틈타 남쪽 해상로를 장악하고 토번항의 실주 노릇을 하며 자신들의 세를 불리는데 골몰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자들이 이제 와 갈라진 틈을 막고 이 땅에서 겁들을 물리쳐준다고요? 도대체 그런 믿음은 어디서 온 거랍니까!"
아밈의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예, 말씀대로 땅을 잃고 있지요. 하지만 최근 우리가 잃은 땅 대부분은 황무지이고 겁으로 인한 백성들의 피해는 나날이 줄고 있지 않습니까?!"
"입는 피해가 줄었다 하여 백성들이 안도감을 느끼거나 나랑고스의 재원이 회복되는 건 아니지요. 아밈님의 그 결실을 기다리는 동안 투르고스는 왕국을 위한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지만 결과는 어땠습니까?"
양촛불 근처에서 어성거리던 나방이 거미가 쳐둔 함정에 가까이 날아든다.
"국고는 비고 비자둥우리까지 겁들의 침입을 받지 않았습니까? 현실은 아밈님이 생각하는 것보다 냉정합니다."
거미줄에 걸린 나방이 바둥거린다. 먹이를 포착한 거미가 바삐 다가간다.
"겁들이 이 땅에 있는 이상 백성들의 불안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나방은 거미의 한 끼 식사가 되기 전, 초라한 고치로 거듭난다.
"칼리그 무리를 무한정 신뢰하자는 게 아닙니다. 주어진 상황에 맞게 그들을 이용하자는 것일 뿐.."
"그렇다면 그 대가는 뭡니까?"
"대가는 중요치 않습니다. 대가보다 주객이 전도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요. 그리고 그 일을 비자수리들이 맡아줬으면 합니다. 그 편이 언제 맺힐 지 모르는 흐릿한 결실보다야 낫지 않겠습니까?"
"아니요.. 머지 않았습니다."
[image]
'''그리고..
흐릿하지도
않을 겁니다,
그 결실!'''

11. 31. 이중공작


[image]
"검 사냥꾼.. 그들로부터 아밈님은 마고님을 숨겨오고 계셨답니다. 하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게 되었지요. 마고님의 성장과 함께 검의 힘이 조금씩 깨어나고 있었으니까요."
다이라는 마고에게, 왜 그가 단련해야 하는지 찬찬히 짚어준다.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된 아밈님으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으셨을 거예요. 나랑고스로 돌아오는 것 말고는.. 아무튼 유랑을 끝낸 이 시점에도 아밈님은 마고님 생각 뿐이랍니다.. 그러실 수 밖에 없는 게 고등선인 양성소[4]가 나랑고스에선 가장 안전한 곳이기도 하지만 가장 위험한 곳이기도 하거든요."
마고는 잠자코 듣는다.
"어쨌든 오늘 이 훈련은 다른 선비님들 뿐만 아니라, 마고님을 위한 것이기도 하단 걸 알아주셨으면 해요.."
"... 훈련의 의미는 그 정도면 됐고.."
아주가 발언권을 가로챈다.
"거짓말은 하지 않겠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만큼 선힘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 또한 보통과는 다른, 더욱 괴롭고 힘든 수련이 될 거다.."
아주는 담담하게 묻는다.
"어쩔 테냐?"
"... 이것만이 제가 선인이 될 수 있는 길이라면.."
마고는 자신의 옷깃 께를 꼬옥 쥐며 고민한다. 큰 결심을 한 마고의 눈빛은 총명하다.
'''"하겠어요!"'''
두 주먹을 꼭 쥔 마고. 담담한 아주와 뮤울과 다르게, 유독 다이라는 흐뭇하게 쳐다본다. 한쪽 눈을 슬쩍 뜨며 마고를 바라보는 아주. 마고는 결의에 가득 차 눈을 부릅뜨는데.. 그저 귀엽게만 보인다. 다이라는 웃음기를 띄고 아주에게 귓속말한다.
"엄청 적극적이신데..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아요."
"..."
아주는 팔짱을 낀 채 다이라의 말을 듣기만 할 뿐이다. 그때.
"... 근데.. 이걸 밤마다 해야 하나요?"
엉뚱한 마고의 질문에, 다이라 아주 뮤울 세 사람은 땀을 삐질 흘린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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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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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힘은 어디에나 있다. 떠오르는 햇빛 속에도, 흐르는 물줄기 속에도.. 사람의 안과 밖 삼라만상 어떤 것에도 있다. 힘은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며 모였다 흩어지고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한다. 이 일련의 흐름 속에 우리가 있고 사람들의 삶이 있지.'''
아주는 선힘이 무엇인지 설명한다.
"선인들은 힘의 방향과 흐름을 읽어 세상을 조화롭게 만드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하지만 요즘 수리들이 하는 행동거지를 보고 있노라면.."
아주의 목소리에는 울분이 담겨 있다. 아주는 또다시 욱하고야 만다.
'''"선민들의 울분을 달래주어야 할 그들이 되려 음모에 가담하고 동정이나 구하면서 빠져나갈 구멍만 찾고 있으니!!!! 선인의 본분은 힘세고 전횡을 일삼는 이에게 줄 서는 것이 아니라 선민들이 자신들의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뒤에서 도와주는 거라고!!!"'''
"아, 아주님! 지금 마고님에게 그런 말씀 해봤자...!"
아주는 크게 분노하며 그들을 비판한다. 그 모습을 보아하니, 현세대의 선비들은 과거의 명예 그리고 영광과 다르게 많이 퇴색하고 변모한 듯하다.. 그건 그렇고, 다이라는 이번에도 아주를 말리기 바쁘다.
"흠흠.. 나도 모르게 또 흥분해버렸군.. 어쨌든!"
아주는 헛기침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힌다.
"선힘은 곧 흐름을 뜻한다! 힘을 다루기 위해선 뭣보다 흐름을 느낄 수 있어야 하지!"
아주는 의미모를 웃음을 지어보인다.
"그리고 그 흐름을 느끼기 위해선 먼저.. '''죽음을 경험해봐야 한다!"'''
"주, 죽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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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들의 발이 급하다. 그들은 한 폭포 앞에 다다른다.
"여기가 바로, 네가 죽음을 체험할 장소다!"
"여, 여기서 뛰어내려야 하는 건가요!?"
"성급하긴! 그랬다간 진짜 골로 가고 말 걸?!"
아주는 마고를 다그치고는, 윗면이 매끈하게 다듬어진 바위를 띄워올린다.
"올라타거라, 내려가는 동안 설명해줄테니.."
네 사람을 태운 바위는 천천히 아래로 내려간다.
"거듭 말하지만 선힘은 곧 흐름이다. 예를 들어.. 네가 지금 숲속에 있다 상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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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는 순간, 숲에서 나는 소리와, 향기와, 바람의 스적임이 더욱 또렷해진다는 걸 알 수 있을 게다. 그렇게 오감이 하나씩 닫힐 때마다 네 안의 선힘은 나머지 감각들을 향해 흐르게 되지. 그리고 모든 감각이 차단되었을 때.. 죽음과도 같은 그 때에 넌 느끼게 될 것이다. 네 안의 선힘을!"
* * *
"자, 이거 먹고 들어가세요!"
"이, 이건!"
마고는 드디어 훈련에 돌입한다. 웃옷을 벗는 마고에게, 다이라는 환약 하나를 건넨다. 푸른궤에서 먹었던 바로 그 붉은 환약이다.
"일시적이나마 선힘을 증폭시켜줄 거예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힘드시면 무리하지 마시고 중간에 나오셔도 돼요."
"그래도 한 번에 끝내는 게 좋을 걸? 죽음과도 같은 순간을 여러 번 겪고 싶지 않다면 말야.."
마고는 폭포로 들어가기 전 긴장한 얼굴로 뒤를 돌아본다. 다이라가 활짝 웃으며 힘을 북돋아주자 마고의 얼굴에 옅게나마 여유가 생긴다. 크게 숨을 내쉬는 마고. 마고는 거친 물살을 가르며 나아간다. 다이라는 그런 마고를 걱정한다.
"과연, 단번에 해낼 수 있을까요? 시작부터 절벽 폭포라니.. 버금선비들은 둥우리 폭포도 버거워 하잖아요.."
"애당초 절벽폭포 수련은 하눌선비들이 하는 고등폭포 수련법인데.. 당연히 해낼 리가 없잖아."
뮤울은 이미 마고가 성공할 리 없다고 보고 있었다.
"그러니 시간이 좀 걸리더라고 작은 폭포부터 천천히 하는 게.."
"..."
둘의 의견이 충돌한다. 하지만 아주는 다이라를 다그친다.
"다이라.. 네가 뭘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네?"
"이건 녀석의 힘을 깨우기 위한 수련이 아냐."
"그, 그게 무슨.."
"말 그대로, 이건 검의 힘을 깨우기 위한 수련이 아니라고.."
"그, 그럼요?"
세 선비 사이에는 잠깐 동안 침묵만이 흐른다.
"... 이건 저 녀석이 검이 되는 걸 차단하는 것과 동시에, 녀석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의 배후를 캐내기 위한.. 공작이라고. 이중 공작!"

12. 32. 배후


"... 공작이라고. 이중 공작!"
아주의 말을 들은 다이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이렇게 선압이 강한 곳에선 아무리 유능한 선인이라도 선힘을 다루기가 쉽지 않지.."
아주는 화륵, 푸른불을 켠다.
"... 푸른불이라면 몰라도.."
* * *
마고는 폭포 아래 눈을 꼭 감고 앉아, 폭포수에 온몸을 흥건하게 적신다.
'소리도.. 향기도.. 느낌도 없어..'
까딱.
'움직일 수 있는 거라곤 손가락 하나. 점점 굳어 가고 있어..'
마고는 갑작스레 두려움이 엄습해온다.
'나 이렇게 죽는 건가?'
한편, 다이라는 아주와 논쟁 중이다.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배후를 캐내기 위해 검 계승자를 미끼로 쓴단 말이에요?"
"배후라면.. 있어!"
그동안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던 뮤울, 입을 연다.
* * *
[image]
어두운 밤하늘에 오로라와 별들이 빛나고, 갈라진 틈에서는 연두빛이 흘러나온다.
탓. 검은 옷을 입은 누군가가 나타난다.
"왔냐?"
"네.."
그를 기다리고 있던 이는 바로 고양이 소녀. 소녀는 이상하다는 듯 그를 본다. 팟. 순식간에 뛰어올라 그의 앞에 착지하는 소녀. 휙휙, 정신 사납게 그의 뒤를 살핀다.
"꼬맹이는?"
"..."
"자신 있다며! 반드시 잡아 오겠다며!?"
"그, 그게.."
진땀이 뻘뻘 난다. 그는 소녀에게 변명을 시작한다.
마고와 친구들이 절벽둥지에 청소를 하러 갔던 날. 수리의 고삐를 끊은 이가 바로 그였다. 그리고 동시에 그는, 아밈과의 결투 후 기절한 고양이 소녀를 데리고 도망쳤던 그 하눌동인이었다.
"훔친 수리로 놈을 잡아올 생각이었는데.. 그랬는데.."
빠각! 갑작스레 날아온 공격에 그의 탈이 힘없이 부스러진다. 고삐마저 놓치게 된 그. 습격자의 거센 발차기에 완전히 날아가 땅에 꽂히는 굴욕을 당한다. 엄청난 충격에 절벽둥지의 벽 한 켠이 단단히 금이 가버리고, 하눌동인은 풀썩 쓰러진다. 하지만 그는, 두 손을 짚어 균형을 잡는다.
"포박줄도 모자라 수리고삐까지 끊어 놓다니.. 이게 얼마나 비싼 건데.. 어쩔 거야?"
끊어진 고삐를 쥔 채 하눌동인을 심문하는 습격자.. 그는 바로 뮤울이었다!
"어떻게.."
"어떻게 알아차렸느냐고? 글쎄.. 어떻게 알았을까? 난 그저.. 포박줄까지 끊어버린 악당 같은 짓이 괘씸해 버릇 좀 고쳐 줄까 하고 걷어찬 건데.. 뭐, 문제 있어?"
그렇다. 마고를 잠행 중이던 뮤울이, 하눌동인의 행위를 다 지켜본 것이다.
"세상에 어떤 선비가 버릇을 그따위로 고치냐? 딴 놈 같았음 벌써 죽었을 거다!"
"... 실은 알고 있었어. 나랑고스 선비가 아니란 것 쯤.."
머리를 긁적이는 뮤울. 탈이 깨져버려 그대로 드러난 하눌동인의 연두빛 눈이 살벌하기 그지없다.
"매얼음패 선인들은 엔간해선 다른 수리패의 수리를 몰지 않거든. 특히나 달바람수리는 더더욱.."
뮤울은 칼을 역수로 빼어든다.
"잡소린 고만 됐고 지금부턴 진실만 말하면 된다."
"누구 맘대로.."
하눌동인, 검은 연기가 되어 흩어지기 시작한다. 놀라는 뮤울. 곧바로 튀어나가 회축을 감지만, 이미 검은 연기가 된 하눌동인에겐 통하지 않는다. 하늘동인은 흐흐흐흐, 기분 나쁘게 웃어대며 연두빛 안광을 흘리며 사라진다.
"... 그렇다고 억울해 하진 마라. 또.. 만나게 될 테니.."
하눌동인의 변명을 들은 고양이 소녀는, 팔짱을 낀 채 한 소리 한다.
"하여간 도망치는 거 하난 잘해."
"그거, 칭찬.. 맞죠?"
* * *
"이곳이 놈들을 상대하긴 좋을지 몰라도 마고님에겐.."
"말했잖아! 우리에게 필요한 건 손쉬운 '미끼'지 감당키 힘든 '검'이 아니라고!"
"그래서 어린 선비를 미끼로 쓰는 것도 모자라 매일 밤 무리한 훈련으로 진을 빼놓자고요? 그게 작전이라고요?"
"그래! 그게 이번 작전이다!"
아주는 더 이상 참기 힘들었던지, 미간을 찌푸리며 외친다. 그들 사이에 또다시 찾아온 침묵의 틈에, 쏴아아아 폭포수 소리가 비집고 들어온다.
"아무렴.. 그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작전이고 말고.."
아주의 표정엔 분노가 어려 있다.
[image]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선힘을 익혀 누리에 공헌하는 우릴 우러러 보았었지.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지난 날의 영광은 빛을 잃은 채 열린 수련은 사라지고 오직 주입식 수련법으로 획일화 시키고 있는 게 사실 아닌가!?"
뮤울과 다이라는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인 채 아주의 말을 경청한다.
"오래 전 아버님께 선힘을 배울 땐 이렇지 않았어.. 물론 혹독한 면도 있었지만 지금처럼 버금이다 으뜸이다 이름에 집착하지도 않았고 낙오자에게 냉소적이지도 않았어.. 아무리 힘들어도 다 같이 만들고 다 같이 웃었지.."
아주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눈을 감은 채 말을 잇는다.
"세상이 '재난'으로 혼란스러워져서 그렇다고? 웃기지 말라 그래! 십 수년 전엔 '''온 누리가 전쟁 중이었으니까!''' ... 이런 시대엔 차라리 힘을 숨기고 사는 게 나아. 힘을 발현한대도 집정자의 개가 되거나 평생을 검 사냥꾼들과 부닥뜨리며 살아야 할 테니.."
"그래도 그렇지.."
다이라의 얼굴은 어딘가 슬퍼 보인다. 그때. 뭔가를 느끼는 다이라.
"나도 느꼈어!"
아주도 마찬가지다. 셋은 폭포를 향해 부리나케 달린다.
"바보 같은 녀석!!!"
쏴아아아 거세게 떨어져 흐르는 폭포수 아래에, 마고가 쓰러져 있었다..!!

13. 33. 배후2


"바보 같은 녀석!!!"
"마고님!!"
아주가 제일 먼저 마고에게 다다라, 마고를 부축한다.
"미련하긴! 죽을 것 같으면 나와야 할.."
"저, 느꼈어요.."
마고는 당장이라도 죽을 듯 쾡한 눈으로 아주를 올려다본다.
"뭐?"
"느꼈다구요.. 그 선힘이란 거.."
* * *
선비들은 마고를 숙소에 옮긴다. 슥, 이불을 잘 덮어준 후 아주와 다이라는 대화를 나눈다.
"... 정말 느낀 걸까요? 감각을 닫는 데만도 보통 몇 달씩 걸리잖아요.."
아주는 말이 없다.
"아주님?"
"녀석.."
마고의 얼굴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미간은 찌푸려진다. 악몽을 꾸는 걸까? 마고의 꿈 속에, 낯선 짐승 하나가 나타나 잔악하게 아가리를 벌려댄다. 끝이 갈라진 혀를 날름대는 놈의 모습에 마고는 뒤척인다.
머리와 코 위에 자리잡은 넓적한 볏. 뾰족한 이빨. 크게 벌어지는 아가리. 날카로운 발톱. 몸통은 길쭉하고 다리는 네 개에, 펄럭이는 박쥐 날개까지 더하고 거기다가 척추를 따라 뻗어나온 돌기들을 얹으니, 영락없는 독룡毒龍이로다!
하늘을 가르는 파충류의 무리, 그리고 맞은 편에서 돌격해오는 새들의 무리.. 흑백의 두 무리가 뒤엉키기 시작한다. 독룡을 탄 이들은 독룡을 닮은 나무 탈을, 수리를 모는 이들은 수리를 닮은 나무 탈을 쓰고는, 마구 엉겨붙어 몸뚱아리를 부닥치고 쇠붙이를 휘두른다. 매섭게 날아든 독룡 무리의 창이 한 선비의 탈을 꿰뚫기 직전이다. 그때,
번쩍! 마고는 잠에서 깨어난다. 그 악독한 꿈에서 비로소 벗어난 마고는 몸을 일으킨다.
"오빠 아직도 이불 속이야?! 어떻게 젤 먼저 잤으면서 젤 늦게 일어나?"
"자도 잔 것 같지가 않아.."
그 지각대장 시아가 잔소리를 할 정도면 말 다 했지 뭐.
"실은 시아야.. 나 어젯밤.."
마고는 아무 생각없이 말을 뱉고는, 뒤늦게 실수를 알아채고 입을 다문다. 어젯밤이었다.
"선비들에겐 비밀이다! 절대 말하면 안 돼!! 선힘도 써선 안 돼!!!"
아주의 엄포가 기억난 마고는 대충 얼버무리기로 한다.
"어젯밤 뭐?"
"아.. 아무것도 아니야.."
쾅! 시아는 마고를 벽에 몰아붙인다.
"어젯밤 머어? 빨리 말 안 해?! 말하려다 중간에 끊는 거 나 제일 싫어한단 말이야."
시아의 협박에 마고는 어쩔 줄 몰라한다. 그때.
"시아야 마고 깨웠어? 우리 얼른 가야.."
하랑이다.
"..."
하랑은 시아가 마고를 벽에 몰아붙이고 있는 그 모습을 보고 오해를 한 모양이다.
"미안하지만 얘들아, 마고랑 시아는 지금 좀 바빠.."
"왜? 무슨 일인데?"
쉬라가 들어오자 괜스레 시아의 마음이 다급해진다.
"아냐아냐아냐! 아무 일도 아니야!"
* * *
준비를 마치고, 수업을 들으러 가는 아이들. 그런데, 선비들이 맞은 편에서 떼거지로 오고 있다.
"뭐야? 왜들 다시 나오는 거야?"
"비자수리 수업이 취소되고 선힘 수업으로 바뀌었다나 봐."
갑작스러운 소식에 마고는 당황한다.
* * *
"다이라.. 거기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단다. 마고가 훌륭한 선비로 자라나는 건 반대로 검 사냥꾼들에게 더 좋은 무기를 제공하는 일이 될 수도 있어."
"그렇지만 우리에겐 또 다른 기회 아닌가요?"
"누리에 있는 여덟 검들 중 소재 파악은 사나사이의 '베야'님과 '마고' 둘 뿐.. 온누리를 이 잡듯 뒤져봤지만 나머지 여섯 검들에 대한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어."
"그럼, 마고는 평생 둥우리에 갇혀 살아야 한단 말씀이신가요?"
"아니, 우리가 막는다해도 결국 검의 힘은 깨어날 거다. 그러나, 지금은 때가 아니란 거지.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다만 칼리그 무리가 이 땅에 들어오는 걸 막긴 힘들 거야. 그리되면 상황도 더 긴박하게 돌아갈 거고 마고의 소재가 적에게 알려진 이상 우리에게 주어진 시잔은 사실 많지 않아. 그러니.."
"그러니 검의 힘을 깨우는 것보다 덫을 놓는 게 더 현실적이란 말씀이시로군요.."
"..."
"아밈님 답지 않으세요! 무조건 지키면 되죠! 한 사람이라도 더 자유롭게! 더 평화롭게!! 위험을 무릅쓰고 저를 구하신 이유도 그 때문 아니었던가요?"
"그래.. 그때 난 널 구하기 위해 부하들과 내 목숨을 걸어야만 했지.. 하지만 이라야. 세상에 무조건이란 없단 걸 너도 잘 알잖니.. 그리고 이번 일엔 온 백성의 목숨이 달려 있단 걸, 내가 선인이기 이전에 한 나라의 왕이란 걸 이해해 줬으면 좋겠구나."

14. 34. 선힘


선힘 수업에 간 아이들. 오늘의 수업 내용은, 단정하게 정좌로 앉아 나무토막을 띄우는 것이다.
으으음, 집중한 시우의 얼굴에 땀이 뻘뻘 난다. 그 노력에 감응하듯, 나무토막이 스슥 꿈틀댄다. 시우는 몹시 기뻐하지만.. 선승이 내려친 죽비에 머리를 얻어맞는다. 선승 공용도는 시우를 나무란다.
"녀석아, 중간에 흐름을 끊으면 안 되지!"
"이렇게 많이 움직이는 건 처음이라 너무 신기해서 그만.."
그때, 오오오하는 감탄소리가 들려온다.
"?"
[image]
그 주인공은 바로 시아! 시아는 무려 4개나 되는 나무토막을 띄우고 있었다.
"대박.. 쟤 선힘 다루는 건 완전 으뜸선비급이라니까?!"
시아를 보는 공용도의 눈이 심상찮다. 저벅저벅 발소리가 묵직하다. 공용도는 시아의 손을 죽비로 때리고, 나무토막들은 힘없이 툭 떨어진다. 따끔한 죽비 맛에 시아가 눈물을 글썽인다.
"서, 선승님.."
"손."
"네?"
공용도는 몸을 숙이더니 죽비로 시아의 손을 탁탁 친다.
"손 말이야, 손! 너 선힘 쓸 때 자세. 내가 저번에 어떻게 하라던?"
"두 손을.. 가지런히 하라고요.."
공용도는 몸을 일으킨다.
"멋대로인 건 남매가 똑같다니까.."
"하지만 전 이렇게 해야 선힘이 더 잘 모이는.."
시아의 말대꾸에 공용도의 눈이 번뜩한다. 그리고 공용도는.. '''죽비로 시아의 머리 옆을 올려친다'''
"시아야!!!!"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기세로 그 이름을 외치는 시우에게, 시아는 주저앉은 채 손을 뻗는다.
"나.. 난 괜찮아.."
"그래? 맞을 만하다 이거냐?"
공용도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는 시아의 등 위에 발을 올린다.
"이래서 버금선들은 골치 아프다니까. 세상 무서운 줄을 모르거든. 한번 말하면 알아들어야지 어디서.."
공용도가 시아의 등을 꾸욱, 지그시 밟자 시아는 부들거리며 버틴다.
"너흰 그냥 내가 시키는 대로 따르기만 하면 된다.. 알아들었으면 네 자리로 가거라."
시아는 이를 꽉 문다.
"왜죠? 왜 그래야만 하죠? 선힘만 잘 쓰면 됐지, 자세가 뭐 그리 중하냔 말예요!!!"
그 말을 들은 공용도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움직인다. 공용도는 돌아보지도 않은 채 선힘으로 시아의 목을 움켜쥔다. 안밖이 뒤집힌 것마냥 끔찍한 고통이 시아에게 찾아온다.
"선힘을 이끌어 낼 때 특정한 자세가 버릇으로 남게 되면.. 선힘을 다루는 선비에겐 그게 약점이 되기도 하지. 난 그런 걸 매번 설명하고 일러줄 만큼 한가하지도 친절하지도 않다. 둘 중 하나야. 따르거나, 따르지 않거나."
공용도는 시아의 목을 풀어주고, 시아는 눈물을 글썽대며 목을 잡고 콜록댄다.
"선택권은 네게 있다."
그때, 공용도의 앞에 나와 선 마고.. 그 와중에 마고는 이번에도 질문을 한다.
"저.. 그 버릇으로 엄청 강한 선힘을 낼 수 있다면 결국 약점이 약점이 아니게 되는 것 아닌가요?"
"..."
공용도는 어이가 없다. 주변 선비들도 웅성댄다. 단단히 열이 뻗친 공용도의 입에게 후우, 입김이 뿜어져 나온다. 그는 선힘을 분출해, 무력으로 마고를 진압하려 한다.
[image]
그때! 한 선비가 뛰어내려와 둘 사이를 가로막는다. 선비에게 부닥친 선힘은 뭉게뭉게 희뿌연 연기가 되어 피어오른다. 연기가 걷히고, 선비의 정체가 드러나는데.. 그는 바로 뮤울이었다! 상처투성이 얼굴로, 뮤울은 공용도와 대치한다.
'''동토의 여명/에피소드 가이드/1부 2장 完'''

15. 핵심 요약 및 여담


「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삶」
에피소드 가이드 1부 2장에 해당하는 21화~34화는 주인공 마고가 낯선 곳 비자둥우리에 적응해나가며, 그동안 몰랐던 다양한 것들을 알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1부 1장에 이어 마고가 지닌 잠재력도 하나둘 묘사되고 있으며, (그 중에도 특히, 절벽둥지에서 비자수리를 길들인 사건은 집중해볼만 하다.) 마고는 그 잠재력, 즉 검의 힘을 다스리기 위해 본격적인 단련을 시작한다.

21. 마고 in the Blue[5]
'''등장 or 언급된 주요인물'''
마고, 아밈, 진시아, 쉬라, 하랑, 진시우, 다이라, 아주
이번 화는 전반에 걸쳐서 마고의 나레이션으로 지금까지의 상황이 설명된다.
마고의 회상 씬에서, 겨울사냥을 나온 아밈이 활줄을 당기는데, 활줄이 그려져 있질 않다..
흰나무를 두고 대화를 나누던 장사꾼들 중 한 명은, 1화에서 아밈과 마고가 행상인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나르골에 입성할 당시, 아밈을 알아챈 인물이다. 또 다른 한 명도 당시에도 같이 있었던 걸 보아 절친인 듯. 그리고 이들의 대화 중에서 아홉 해 전 지축이 흔들렸으나 잘못된 조치로 수백 명이 몰살당한 사건이 언급되는데..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를 풍자한 것으로 보여진다.
22. 악당?[6]
'''등장 or 언급된 주요인물'''
함, 아란, 시아, 하랑, 시우, 마고, 쉬라
23. 지각[7]
'''등장 or 언급된 주요인물'''
시아, 쉬라, 마고, 주리진, 아밈, 연, 공용도
이때부터 아이들 간의 나이 설정이 확립되었는지, 비로소 시아가 쉬라에게 '언니' 호칭을 붙이기 시작했다.
"난 애들이랑 달라서 선힘을 잘 못 다루니까"라는 쉬라의 대사가 있는데, 다르다는 것은 종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며, 이를 미루어 보았을 때 나리족들은 선힘을 다루는데 결함이 있는 것 같다.
8화에 이어, 이번에도 마고가 개미와 의사소통을 하는 장면이 나왔다. 저번엔 개미->마고의 일방적인 소통으로 해석할 수도 있었던 반면에, 이번엔 마고와 개미 간의 양방소통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24. 지각2[8]
'''등장 or 언급된 주요인물'''
마고, 시아, 쉬라, 연, 마리
극초반부, 아이들의 대화 장면에 이전까지 사용된 폰트와 다른 폰트가 사용되었다. 폰트에 민감한 사람이 아니라면 알아채기 힘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후에 곧바로 다시 돌아왔기에 큰 의미는 없다.
이번 화는 유독 특이하게도, 단 한 번의 화면 전환도 없이 아이들의 이야기로 쭉 전개되었다.
25. 리아의 마음[9]
'''등장 or 언급된 주요인물'''
연, 마고, 시아, 쉬라, 리아, 담, 소이, 대모장려
26. 벌점? 승점![10]
'''등장 or 언급된 주요인물'''
시아, 쉬라, 마고, 연
에졍지에서의 식사 씬에서, 처음에는 금속재이던 시아의 숟가락이 그 뒤부터는 목재로 바뀐다.
연은 아이들을 칭찬하며 승격점수를 부여하는데[11] 시아는 애들이 봤으니 그렇다치고, 쉬라와 마고의 경우는 어떻게 안 걸까? 사실은 박쥐 떼의 모습으로 다 지켜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역사를 왜 배우냐는 마고의 질문에 연은 모래성 비유로 대답하는데, 이때 마고, 쉬라, 시아, 연의 수영복 차림이 등장한다. 근데, 이제서야 연이 여자임을 안 독자들이 꽤나 있었다.
27. 절벽둥지[12]
'''등장 or 언급된 주요인물'''
시아, 마고, 쉬라, 하랑, 시우, 수카
'''24. 지각2'''에 이어, 이번화 또한 단 한 번의 화면 전환도 없이 아이들의 이야기로 쭉 전개되었다.
28. 비자수리[13]
'''등장 or 언급된 주요인물'''
마고, 시아, 쉬라, 아르
시아가 수리패들을 설명할 때, 매얼음패 부분에 작은따옴표가 이상한 데 붙어있다.
노란머리 선인이 염력을 사용할 때 그저 손만 뻗던 아밈이나 연과는 다르게 끌어내는 듯한 손짓을 동반한다. 다만 이번 경우 단순한 물체가 아닌, 13살짜리 남자아이이니 좀 다를 수도.
전 화에 이어, 이번화 또한 단 한 번의 화면 전환도 없이 아이들의 이야기로 쭉 전개되었다.
29. 비자수리2[14]
'''등장 or 언급된 주요인물'''
쉬라, 시아, 마고, 하랑, 시우, 리아, 대모장려, 소이, 아주
비자수리의 의복은 착용자의 기량에 따라 다용도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 화이다.[15]
30. 암운[16]
'''등장 or 언급된 주요인물'''
마고, 아주, 다이라, 뮤울, 아밈, 달 미르
침입자를 보자마자 마고는 바짝 굳어버려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데, 과거 검 사냥꾼에게 쫓기며 불안하게 살아왔던 기억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일종의 PTSD를 가지고 있는 셈. 일어나자마자 신원불명의 인물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어서 놀랐을 수도 있지만..
나랑고스를 구성하는 다섯 나라 중 하나인 뭉구르의 국명이 '뭉그루'로 오타가 나있다.
31. 이중공작[17]
'''등장 or 언급된 주요인물'''
다이라, 마고, 아밈, 아주, 뮤울
마고에게 선힘을 설명하기 위한 아주의 비유 속에서, 마고의 머리 위에 앉은 새는 모색을 보아 카나리아의 일종인 레드 카나리아가 아닌가 싶다.
32. 배후[18]
'''등장 or 언급된 주요인물'''
아주, 다이라, 마고, 뮤울, 고양이 소녀
뮤울과 하눌동인 간의 대화에서, 매얼음패가 얼음수리패로 오타가 나있다.
아주가 현 선비들의 부패와 타락에 대해 한탄할 때, 아주의 어린 시절이 아주 잠깐 비춰진다.
33. 배후2[19]
'''등장 or 언급된 주요인물'''
아주, 다이라, 마고, 뮤울[20], 진시아, 하랑, 쉬라, 진시우[21], 아밈
마고가 말을 얼버무리자 시아가 벽쿵을 시전하는데, 27화에서는 반대 구도였음을 생각해보면 꽤나 흥미롭다.
수업을 들으러 가던 중, 하랑과 시아의 투샷이 있는데.. 그동안의 묘사와는 다르게 하랑이 시아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다.
이번 화에서는 무슨 영문인지 그림체가 급격히 바뀌었는데, 끄트머리에 '''특별도움· 다람쥐구조대'''라고 기입되어 있는 것을 보아, 중간중간 몇 컷을 제외하면 모두 이 분의 작화인 듯하다.
34. 선힘[22]
'''등장 or 언급된 주요인물'''
진시우, 공용도, 진시아, 마고, 뮤울
이번화는 화면 전환도, 장소 변경도 없이 오로지 공용도의 선힘 수업 내에서 진행되었다.
공용도가, 말대꾸를 한 시아의 등을 밟으며 하라는대로만 하라고 말하는 장면은 비자둥우리가 주입식 교육으로 가득찼다는 걸 잘 보여준다.
[1] 남는 물건[2] 나랑고스 우범지대를 순찰하는 비자수리[3] 장려가 되기 위한 승격 시험을 통과한 장궁이 거치는 수습기간 동안의 명칭[4] 비자둥우리[5] '''"마고"''''''"우울함(blue)에 빠짐"'''.[6] 풀숲에서 부시럭거리는 건.. '''"악당?"'''[7] 수업에 '''"지각"'''함.[8] 전편 후속[9] 고민에 빠진 '''"리아의 마음"'''.[10] '''"벌점?"''' 아니, '''"승점!"'''[11] '''쉬라'''는 자신의 약점을 예습으로 극복해서, '''마고'''는 버금선인 중 처음으로 형질조작계 능력을 보여주어서, '''시아'''는 혼자서 울림문을 열어내어서[12] 벌 청소를 하러 '''"절벽둥지"'''로 감.[13] '''"비자수리"'''가 등장함.[14] 전편 후속[15] 선힘을 불어 넣어 옷자락을 박쥐의 비막처럼 펼쳐 활강하는 등..[16] 나랑고스에 드리운 '''"암운"'''.[17] 마고의 수련은 사실 '''"이중공작"'''.[18] 마고를 노리는 자들의 '''"배후"'''.[19] 전편 후속[20] 저번화와 이어지는 장면에서 잠시 나올 뿐, 이번화에서는 아무 활약이 없다.[21] 이번화에서는 아무 활약이 없다.[22] 공용도의 '''"선힘"''' 수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