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TSD

 

국제질병분류기호(ICD-10)
F43.1
진료과
정신건강의학과
관련증상
-
관련질병
적응장애
1. 개요
2. 원인 및 사례
2.1. 전쟁 등 대규모 폭력 소요 사태
2.2. 사고, 자연 재해
2.2.1. 사고를 목격한 사람
2.3. 고의로 벌어진 폭력
2.4. 직업 특성 상 일어나는 트라우마
2.4.1. 교도관(교정직 한정), 사형집행관
2.4.2. 의사, 간호사
2.4.3. 수의사
2.4.4. 도축업자
2.4.5. 장의사 등 시신을 처리하는 직종
2.4.6. 경찰공무원
2.4.7. 소방공무원
2.4.8. 군인
2.4.10. 조련사 및 사육사
2.5. 그 외
3. 오해
3.1. 나는 PTSD에 걸리지 않는다?
3.2. PTSD는 나약해서 걸린다?
3.3. 사이코패스는 PTSD에 걸리지 않는다?
3.4. 유년기의 외상 후 억압은 PTSD의 한 종류다?
3.5. PTSD는 현대에 새로 등장한 질병이다?
4. PTSD와 비슷한 증상
5. 증상
5.1. DSM-V에서의 진단
6. PTSD의 치료법
7. 외상 후 성장설
9. 기타
10. 참고 자료

[image]

"그는 31개월 전에 파병됐다. 첫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열대병에 걸렸지만, 반쯤 잠든 상태로 구덩이에서 일본군을 찾아내기 바빴다. 부대원들의 2/3은 교전 중 이미 죽었지만, 그는 내일 아침 다시 전투를 위해 떠난다. '''이런 상태에서 인간은 얼마나 버틸 수 있단 말인가?'''"

-

- 전쟁 화가 토머스 C. 리, 해당 그림의 모델이 된 장병에 대해 물음을 받고.


1. 개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1]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Trauma는 일반적으로 외상을 지칭하는데, 이는 영미권에서 이 단어가 처음 쓰이는 증상의 원인을 외상으로 본 것에 기인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당뇨나 고혈압처럼 난치병까지 갈 수 있다. 이를 위해 충분한 치료, 상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니 스스로 정신에 상처가 났다고 자각하면 정신과를 찾아가 치료받아야 한다. 신체의 상처는 진통제 덕분에 조금이라도 도피할 수 있다. 하지만 정신과 마음의 상처는 어떻게든 치료 받지 못하면 상처는 곪고 점점 더 벌어져 상대에게 다시 전염이 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PTSD를 쉽게 이해시켜주자면, 본인이 감당 가능한 한계를 넘어서는 경험들로 인해 생겨난 감정, 기억, 생각이 끊임없이 재생되며 본인을 괴롭히는 거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여기부터 학업부진, 현실도피, 자학, 대인기피증, 자아붕괴, 중독 등이 생겨난다.
PTSD는 매우 강렬한 폭력 등 충격적인 상황이 펼쳐지는 공간 속에 던져졌던 사람들, 의사, 간호사, 경찰관, 소방관, 군인, 교도관 등에게 많이 나타난다. 또한, 가정폭력이나 학교폭력 피해를 겪은 사람들에게서도 자주 나타난다. PTSD는 딱히 사람을 가려가며 발현되는 증세가 아니기 때문에 공병 의무관 심지어는 직접 전장에 나서지도 않는 무인정찰기 프레데터 조종사[2] 중에서 PTSD 환자가 등장하기도 한다. PTSD 증세는 성범죄, 폭력 같은 범죄에 시달린 피해자들은 물론, 자연재해나 폭발, 충돌 사고 피해자들에게도 나타난다.
2003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의 정신과 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영 좋지 않았기 때문에 PTSD 환자들도 별다른 관심을 받지 않고 있었다. 일반인 사이에선 그야말로 '''없는 정신병 취급'''. 삼풍백화점 사고 당시에 단신기사 몇 건만 나왔을 정도였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통해 이유를 유추가능하다.

(박근혜가 바로 앞에서 울부짖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싸늘히 외면하고 지나쳐버린 사건을 언급한 후)

세월호 유가족들이 고통스럽다고 울고불고하면요. 저는 박근혜 대통령의 속마음이 이랬을거라고 봐요.

'''"너희들 그까짓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겪은 고통에 비하면, 너흰 몰라서 그렇지 나는 그것보다 더 큰 고통을 겪었고, 그걸 혼자서 다 이기고 여기까지 왔어.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이런 마음이었을거란 말이죠.

그러니까 트라우마가 치료되지 않으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없어요. 전혀 감정이입이 안돼요. 왜냐하면 자기가 받은 그 끔찍한 고통에 계속 매몰되어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고통에 마음의 시점이 이동하질 않거든요.[3]

그래서 다른 사람한테 또다른 폭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죠.[4]

근데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일단 1950년한국전쟁을 겪으며 '''온국민이 트라우마 환자예요. 그거 한번도 제대로 치료한 적 없어요. '''그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자식을 낳고 굉장히 집에서도 폭력적으로 자식들한테 했고, 사회구조도 그렇게 돌아갔고... 제주 4.3 그렇게 민간인이 3만명이 학살당했는데, 그 트라우마 한번도 치료한 적 없어요. '''광주항쟁? 한번도 치료한 적 없어요.'''[5]

이런 것들이... 트라우마를 입은 사람들이 온 사회에 굉장히 넓게 퍼져있는데... 그런 것들이 이렇게 누적이 되다보면 '''타인에게 적절한 정도의 공감을 한다든지, 타인의 고통에 감정이입을 한다는 것이 사회구조적으로 굉장히 어려워져요. 사회의 바탕이 그렇게 되죠.'''

그런 노인들이 자신이 살아온 시절이 너무 끔찍하고, 죽다 살아났고, 형제 몇은 다 죽으면서 거기서 살아남아 지금까지 살아온 사람이고... 그러니까 "애 하나 죽은 거...? 그거 별 거 아냐. 지금은 세상이 더 좋아져서 돈도 준대. 야~ 나 같았으면 그 정도는~" 이런 마음들이 있어요. 치료받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 고통에 아직도 깊이 매몰된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이렇게 극단적인 사회적인 트라우마가 있을때 치유가 필요하다는 것이... 말하자면 그런 것들이 반쯤은 괴물이 되는 사람을 양산하는 구조이기 때문이에요.

- 정신과 의사 정혜신 박사,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하지만 대구 지하철 참사를 계기로 국내에서도 PTSD라는 개념이 주목[6]받기 시작했다. 현재는 적극적으로 치료를 권하는 추세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후부터 '''심리학회 차원에서 화두로 삼고''' 전국의 연구실들에서 대학원생들을 맹렬히 갈아넣고 있는 상태다.[7] 특히 이하에 따로 설명하게 될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이라 부르는 현상에 대해서도 상당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신종플루, HIV, 슈퍼박테리아, 코로나바이러스-19와 같은 20~21세기에 처음 알려진 질병이 아니다. 임진왜란 당시 배설이 전시에 탈영한 원인이 이것이었다는 게 정설이다.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의 인류와도 함께하던 유서깊은 정신적 질병이다. 그 유명한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도 PTSD가 있었고 그의 대표작 절규도 이를 소재로 한 그림이다. 하지만 정신병원 같은 이미지로 인해 '''한국에서 인식이 좋지 않다.'''
미국의 경우 베트남 전쟁을 계기로 크게 주목받았으며, 이후에 질병으로 인식되었다. 물론 그 이전에 모든 참전 군인들에게 같은 증상이 존재하였지만 '질병'으로 명확하게 인식된 것은 아니었으며, 때문에 같은 증상을 부르는 용어들 역시 중구난방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셸 쇼크(Shell Shock)라고 불렀으나 질병인지 증상인지 경계조차 애매하였으며, 후술할 많은 유사증상 들을 하나로 묶어 칭했다는 단점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한국전쟁 이후에는 전투 피로증(Battle Fatigue, Combat Fatigue), 작전상 탈진상태(Operational Exhaustion) 등의 용어로 불리기도 하였나, 역시 병명을 확정하는 단어로는 무리가 있었다. 베트남전 이후에 용어가 수정되어 현재는 PTSD로 고정된 상태.
PTSD는 흔히들 '전투 스트레스 반응'[8]으로 착각되지만 둘은 별개의 증상이며 절대 동일한 증상이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PTSD와 혼동되기 쉬운 다른 증상들이 있는데 CSR 역시 이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PTSD란 전쟁, 테러, 천재지변, 화재, 신체적 폭행, 강간·강제추행 등 성폭력, 자동차·비행기·기차 등에 의한 사고 등 생명이나 신체를 위협할 정도의 극심한 스트레스(정신적 외상[9])를 경험한 후 나타나는 정신적 질병이며, 보통 우울증, 불안장애, 또는 공황장애를 동반한다. 반대로 정신적 충격을 경험한 뒤 정신적인 성장을 보이는 것을 '외상 후 성장'이라고한다.
PTSD로 고통받는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정상참작이 적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불쌍하다(자기 제어가 극도로 힘들다, 매초 매분 지옥 같은 기억이 올라 숨쉬기가 어렵다, 고생을 심하게 했다)와 선량하다(재범의 여지가 없다)는 구별되어야 하며, 애초에 근대 사법체계에서 정신병을 이유로 형을 감형하거나 면제하는 이유인 심신미약이란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인과관계나 책임을 느낄 수 없는 정신 상태'''를 말하기 때문이다. 불행하고 힘든 경험을 통해 PTSD에 걸렸다고 해서 범죄자가 '선량하다'라고 할 수는 없다.[10]
불행한 삶을 살아와 동정이 가는 이들은 선량하고 착실하게만 살아갈 것이라 생각하지만, 오히려 지독한 고통은 사람을 일상에서 벗어난 괴물로 만들기도 한다.[11]
연쇄살인마나 흉악범들이 불우하고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사례는 꽤 흔하다. 이러한 범죄자들도 PTSD 증상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다만 임상심리사에게 심리평가를 의뢰한 정신과 의사의 전문적 판단으로 PTSD를 통해 심신미약 이상의 상태가 되었을 경우에는 형의 감경 사유가 될 수 있다.[12]
좀 더 조사가 필요하긴 하나, PTSD 환자에서 전두엽의 수축이 보인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현상에 대해 전두엽의 수축이 나타나는 이유가 PTSD에 의해 유발된 수면장애 탓이 아니냐는 추측이 있다. 그리고 수축 자체에 대해서는 검토가 더 필요하더라도, PTSD 환자인 경우 실제 뇌를 비롯하여 신체의 여러 기관들이 긴장상태로 굳어있거나[13] 기능이 저하되어 있는 걸로 추정되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 실제로 이들에게 전체 그림을 주고 살펴보게 하면 완전히 그림을 다 머리에 넣지 못하거나, 본인의 손가락을 눈앞에서 8자를 그리게하고 눈으로 쫒으라 시킬 때 눈동자가 따라 움직이지 못하곤 한다. 또한 긴장상태로 인해 장기 근처가 굳어 호흡을 충분히 못하는 경우도 확인된다. 생각에 있어서는 예를 들어 ABC단계로 생각을 거쳐야 답이 나올 경우 B단계에서 본인 뇌가 진행을 거부하여 더이상 생각을 진행 못 시키곤 하며, 그로인해 남이 짚어주면 이해는 하는데 본인 스스로는 상황판단을 못하고 결정장애에다 계획 세우는 것조차 불가능한 문제가 발생한다.
온갖 이유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살인을 해도 PTSD에 잘 걸리지 않는 걸로 보인다. 예를 들면 미국 슬럼가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살인이나 폭력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14] 브라질의 파밸라 갱들의 삶과 죽음을 다룬 명화인 시티 오브 갓을 보면 어린애다운 천진난만한 얼굴로 거리낌 없이 사람을 죽이고 이렇게 사람 목숨이 아무런 무게를 가지지 못 하는 환경에서 일상적으로 자란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그만큼 이런 사람들은 일반적인 사회에서 살아갈 수는 없지만. 예를 들면 슈츠슈타펠에서 막장으로 취급받는 친위대 36 무장척탄병사단 디를레방어 부대 지휘관 오스카 파울 디를레방어는 미성년자 강간과 폭력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사람이었지만 병사들을 훈련시키고 전쟁하는 건 잘했다. 또한 고대로부터 그래왔듯이 종교적인 광신에 사로잡혀도 문제 없다. 예를 들자면 발할라에 갈 수 있단 믿음 하나로 도끼로 서슴 없이 머리를 찍어버리는 노르드인들 말이다. 2차대전기 구 일본제국 등 강한 애국심도 비슷한 효과를 내는 듯하다.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죽음 등 큰 사건에 익숙해져있거나 큰 문제가 아니라고 여기는 것이다.[15]
PTSD를 겪는 사람들이 불쌍해보이고 인간적으로 가까워지기 쉬울 것 같지만 오히려 다가가면 벽을 두르고 거칠고 신경질적인 경우가 많다.[16] 나치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유대인 노인을 다룬 동화 하늘에서 뚝 떨어진 할아버지에서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갇혔던 유대인 노인이 고문, 학대, 굶주림, 추위 등의 경험으로 가정내에서 폭군으로 군림하는 모습이 나온다. 나중에 손녀와의 교류 때문에 온화해지기는 하지만. 만화 쥐에서도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활을 겪었던 블라덱 슈피겔만은 후처 말라와 아들에게 신경질적이며 고집센 노인으로 나온다. 전처 아냐의 자살에도 그의 성격이 어느 정도 영향을 주기도 했고.
사람이 아닌 동물에게도 이 PTSD가 발생할 수 있다는 연구가 있다. 미군에서 다루고 있는 군견 중 일부가 PTSD 증세를 보인다는 보고가 있다.
일반인 사이에서는 흔히 트라우마라고도 부르며 해당 문서에 있는 사례 목록들 상당수는 현재 이 문서의 내용과 겹친다.

2. 원인 및 사례


<트라우마>의 저자 주디스 허먼은 PTSD 환자를 크게 1)학대, 폭력에 의한 경우와 2)전쟁이나 재해, 대규모 사고[17]에 의한 경우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PTSD는 알코올 중독이나 우울증, 정신분열증으로 발전될 확률이 다분하며, 후에 자해, 폭력, 사회부적응, 불면 등의 문제로 나타난다. 허먼은 1)의 환자가 2)의 환자보다 극복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진단한다. 그 이유는 2)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PTSD의 존재를 좀 더 쉽게 드러낼 수 있어 전우회 같은 단체에서 전역한 병사들이 서로의 기억을 공유하고 아픔을 이해하는 과정을 겪을 수 있고 이것이 치료에 좀 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성폭력, 폭력, 학대 피해자들은 사건 자체가 사회적으로 묻혀버리는 경우가 상당수 있으며 특히 매우 심각한 피해를 남기는 근친상간과 가정학대 피해자는 그런 경향이 더욱 크므로 영구적인 상처를 남기기 쉽기 때문이라고. 게다가 제대로 치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문제가 일어나는 경우, 비교적으로 신체적 약자인 1)의 환자들은 자해나 가정내 폭력처럼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는 문제를 일으키는 케이스가 많으나 군사훈련을 받은 2)의 환자들은 크게 눈에 띄는 대형 사고를 치는 수가 있고, 이는 사회적으로 공론화되기가 쉽다.
개인뿐만 아니라 한 국가에 국민들이 감당하기 힘든 재앙, 가령 전쟁이나 재난 같은 국가적인 비상사태 등이 일어날 때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대규모로 PTSD에 시달릴 수 있다.
우리나라 한정으로 공익광고에서도 PTSD가 나타날 수 있다.[18]
비록 본 문서에서 전쟁에 의한 PTSD를 중점적으로 서술하고 있지만, 그것은 람보 등의 대중매체에서 여러 번 다룰 정도로 전쟁의 폐해에 대해 사회적 공론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성폭력 및 가정폭력 등 사회적으로 쉬쉬하고 묻히기 쉬운 (전쟁보다는 개인적인 차원의) 요인으로 생겨난 PTSD라고 가볍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어떤 종류의 PTSD라도 그것을 겪는 사람에게 미치는 폐해는 심각함을 알아야 한다.'''

2.1. 전쟁 등 대규모 폭력 소요 사태



전후 PTSD를 잘 표현한 람보의 장면
  • <염소를 노려보는 사람들>에 인용된 미군이 자체적으로 병사들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평범한 병사들의 98%는 첫 교전을 겪은 뒤 어떻게든 충격을 받는다'고 나와있다. 이 98%라는 비율에는 전장을 겪은 장교들도 동의했다. 사실 이런 연구 결과가 있기 전에도 일선 지휘관들은 첫 교전을 겪은 뒤 병사들이 겪는 충격에 대해 (본인들이 먼저 겪은 만큼) 십분 이해하고 있었으며, "충격을 전혀 받지 않는 병사들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일기에 적은 경우도 있었다. 나머지 2%는 어떤 상황에 처해있든 나의 생존이나 이득을 위해 사람을 죽이는 게 왜 잘못된 것인지 알지 못 하는 자들로 드러났는데, 쉽게 말해 타고난 사이코패스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다만 사이코패스라도 PTSD를 안 겪지는 않고 반대로 일반인도 PTSD를 무조건 겪지는 않는다.) 관련해서 남북 전쟁 당시의 어떤 미군 장군은 "전장에서 10명 중 9명은 첫 전투를 치르고 어떤 식으로든 충격을 받는데, 나머지 1명은 정상인이 아닌 것 같기 때문에 가능하면 상대하고 싶지 않다"고 회고했다고 한다.
  • 미국의 경우 이라크 참전 군인들에게서 폭넓게 PTSD가 나타나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2009년 미국의 랜드 연구소의 통계에 따르면 이라크 전쟁에 참전한 160만 명의 장병 중 30만 명이 PTSD의 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국군 또한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로 해군과 함께 연평도 장병들의 PTSD 검사를 실시했으나 다행히 소리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몇몇을 빼고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고.
  • 소녀시대써니는 어릴 때 쿠웨이트에서 살았는데, 3살 때 걸프전이 터져 급거 귀국했다. 이로 인해 현재까지도 폭죽 소리가 들리면 심하게 놀란다고 한다. 동료 멤버들이 귀를 막아 주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 몇몇 카투사들은 이 현상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라크 내지는 아프가니스탄 참전 경험이 있는 미군이라면 거의 대부분이 PTSD에 걸려있기 때문. 어떤 사람이 카투사에서 아프간 참전용사라는 미군을 만나 무용담을 기대하고 전쟁 이야기를 좀 해달라고 했는데, 그 장교가 대번에 그런 소리하는 거 아니라며 노발대발했다던 얘기도 있다. 미군들에겐 이런 질문이 무척 실례인게 상식이고[19] 전쟁의 참상을 자기가 직접 봤기 때문에 PTSD와 관계없이 어이없어 했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아프간 이라크 등에 다녀온 미군 부사관이 그러길, 사실 전쟁 관련해서 자기가 몇킬들 했네 어쩌네 라고 무용담을 늘어놓는 사람이라면 실제로는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으면서 거짓말을 하는 것이거나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고 한다. 동료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일화나 그러한 공적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수는 있지만 살인 행위 그 자체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은 멀쩡한 참전병 중에서는 있을 수 없다고. PTSD라고 해서 당장 폐인이 되거나 24시간 공포에 떠는 모습만 보이는 건 아니니 겉으로는 잘 모른다. 하지만 친해지면 쉽게 알 수 있는데, 잘 보면 PTSD 신고를 한 미군들은 하루에 3번씩 6알의 안정제를 먹어가며 일하고 있으며, 밤에는 악몽을 꾸지 않기 위해 미친 듯이 술을 마신다.
  • 문제는 전쟁으로 인한 군인의 PTSD인 경우 고문, 성범죄 피해자에 비해 그 피해자가 '훈련받은 건장한 성인 남성'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전쟁에서 저걸 걸려왔다는 건 일단 전쟁터에서 뛸 수 있을 정도의 체력을 갖고 군사훈련을 받았다는 뜻이고, 반드시는 아니지만, 치열한 전쟁에서 생존자들은 일반적으로 신체능력이 더 좋은 경우가 많다. 미국과 중국에도 특급병사고문관등을 별도로 관리하는 제도가 있는데, 전쟁터에서 생존률은 확연히 특급병사들이 높다. 결국 신체능력 하나만은 자타가 공인하는 병사들이 PTSD로 인해 분노조절장애나 충동억제장애 등의 증상을 겪는 경우 엄청난 사고를 치는 경우가 다반사다.[20]
    • 이러한 참전 미군의 PTSD 후유증으로 인한 범죄로 현재 주목받는 곳이 바로 워싱턴 주 타코마에 있는 루이스-매코드 기지다. 이 중 육군 기지인 포트루이스에는 3개의 스트라이커 전투여단이 주둔하고 있는데, 이 기지에 주둔하고 있는 신속기동여단 자체가 전선에서의 빠른 투입과 전개가 목적이기 때문에 여러 번 아프간에 파병되어 실전에 투입된 바 있어 대부분의 부대원이 참전 경험이 있다고 한다. 신속기동여단의 특성상 위험한 곳이란 위험한 곳은 다 돌아다녔기 때문에 같은 참전군인들 사이에서도 이 부대 출신들이 더 극심하게 PTSD를 겪는다고 한다. 이 때문에 전선에서 돌아온 장병들이 벌인 갖가지 사건사고로 해당 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동네는 말 그대로 지옥이라고. 음주운전, 가정폭력, 강도, 총기사고, 살인, 자살 등등 각종 사건사고가 다발하며, 미국 전역을 뒤져도 찾아보기 힘든 유별나게 잔혹한 범죄가 벌어지기도 한다. 때문에 동네 사람들은 항상 두려움에 떨며 부대의 파병 스케줄을 체크하는 등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때문에 타지로 이사가려는 사람들이 증가해 이 지역 인근 집값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한다.
    • 문제는 동두천에 주둔한 주한미군의 제2보병사단 예하에 2, 3, 4 스트라이커 여단이 소속되어있으며, 당연히 이라크 아프간 등 전선에 투입되고 있다는 것. 앞서 상기에 언급한 아프간에서 16명의 민간인을 살해한 하사 역시 주한미군 근무 경력이 있을 정도. 존 D. 존슨 미8군 사령관은 한국과의 언론 인터뷰에서 "현재 주한미군 장교들은 거의 100% 이라크나 아프간에서 1년 이상 주둔하면서 극한의 전쟁 상황을 경험했다. 북한의 도발에 대한 주한미군의 대응 능력은 훨씬 커졌다"며 주한미군 병사들 대부분이 참전 경험이 있음을 밝힌 바 있다. 때문에 알게 모르게 동두천 마포 등지에선 주한미군으로 인한 각종 사건사고가 다발하고 있다. 특히 2007년 4월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일어났던 성폭행 미수 사건의 용의자인 해당 부대 소속의 한 병사는 법정에서 실제로 PTSD와 어느 정도 상관관계를 주장하기도 했다.#
이하 주한미군의 PTSD 의심 사건사고는 여기에서 확인할 것.
  • 한국에서는 6.25나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들이 겪는 일이다. 일부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국군 참전용사는 40년이 지나서도 악몽 때문에 신경정신과 치료를 10년 넘게 받고 교회나 절이나 성당도 가고 자살미수까지 하기도 한다. 참전군인들 가운데 이 증세에 시달리다 자살하는 사례도 심심찮게 있었으며 이는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일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PTSD 전반에 대한 인식 미흡으로 거론도 되지 않고 묻혔다가 530GP 사건 이후 알려졌다. 대부분 의병 제대를 한 생존자들이 PTSD 증상을 나타내면서 의병 제대 문제가 언론에 보도되자 예비역이라는 작자들이 '큰 일 겪은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꾀부리면 안 되지'라는 막장스런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21]
사실 참전용사들 중에 PTSD를 겪지 않은(적어도 외형이나 성격상으로는) 사람들도 다수 존재해서 이런 말이 나오는 면도 있다. 한국 전쟁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있어서는 이견의 여지가 없는 조국수호를 위한 전쟁이었고 베트남 전쟁도 최소한 대한민국 국내에는 반공이라는 매우 강력한 명분이 있었기 때문에 애국심과 애향심이 매우 강한 편에 속하는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PTSD의 기억을 상당부분 떨쳐버릴 정도의 명분이 있었지만 그렇지 않다면 PTSD가 발생했다. 상기 언급되었던 종교의 PTSD 경감 효과와 비슷한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아래 글에 잘 설명되어있는데, 제2차 세계대전 미군 참전군인들은 비교적 PTSD 증세가 덜해보이는 반면 그 후 전쟁들의 참전군인들은 PTSD 증세가 더 심해보이는 이유가 설명된다.[22] 2020년 기준 70년이 넘었는데도 그 당시 학도병, 어린 아이들이었던 70대~80대 이상 어르신들도 그 당시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을 정도이다.
  • 2010년 8월 27일 국군방송의 한 토론 프로그램에서는 PTSD에 대한 이야기를 한 바 있었다. 한국군 내에서도 최근 들어서 신경을 쓰고 있지만 아무래도 미군과 중국군보다는 덜하다는 게 문제다. 2010년 10월 1일 해병대 상관에게 성추행을 당한 병사와 천안함 사태의 생존자 1명이 해당 문제로 의병 제대했다고 알려져있으며 여전히 천안함 격침의 생존자 4명은 약물로 PTSD 치료를 받고 있어 추가 의병 제대의 가능성도 존재한다.
  • 천안함 생존자중 하나인 어떤 부사관은 낮에는 그나마 정상적이나 밤만 되면 술을 먹으며 비어있는 곳을 향하여 넋두리를 지속하는 전형적인 PTSD현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 직접 전투 참전이 아닌 무인항공기 조종사들의 PTSD도 문제시되고 있다. 미군의 무인기 프레데터의 담당병들이 헬파이어 미사일 등을 이용한 공습 작전 시 자신이 버튼을 누르는 순간 고해상도 카메라에 잡힌 목표 대상 또는 주변 민간들이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걸 목격하며 극심한 스트레스 증상을 호소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게다가 이들은 그걸 끝까지 지켜보며 영상을 남기는 것이 임무 중 하나다. 하지만 정작 이들은 미군내에서도 일명 "땡보직"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해서 그 심각성이 실제보다 폄하되는 경우가 잦은 편.[23][24]
  •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실제 모델이 된 네이비 씰의 저격수 크리스 카일도 전역 이후 PTSD를 겪는 전직 해병대원의 재활을 돕던 중 해당 해병대원이 PTSD로 인한 발작을 일으키는 바람에 총을 맞고 숨졌다.
  • 참전자 전원이 군 제대 후나 전후에 PTSD로 고통받는 것은 아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사람들의 정신세계는 다르기 때문에 전후 자신의 행위에 전혀 개의치 않는 사람도 있고, 일부는 심지어 당연하게 여기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반복되던 심리적 충격에 길들여져 전쟁 중엔 괜찮았다가 제대 후에야 과거의 기억에 죄책감을 느끼며 PTSD 증상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다만 대다수의 참전자들은 (PTSD를 겪었건 안 겪었건) 자신이 대했던 심리적인 충격 때문에 전장에서의 기억을 평생 가슴에 안고 살거나 관련 증언이나 회고를 꺼리며 전쟁을 영웅시하고 미화하는 사람들을 개념 없다고 아주 싫어한다. 그래서 참전 경험이 있는 군 출신 인사가 정계나 사회 인사로 활동하면서 반전 운동을 펴거나, 전쟁을 최대한 피하고 온건 외교 정책을 주장하는 반면 참전 경험이 없는 인사가 전쟁을 주장하는 이른바 '치킨호크'란 개념도 있다.
  • 1980년 5월 18일에 독재정권에 대항하여 발생한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로 투입된 계엄군들은 M16 소총과 대검으로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하거나 총을 발포했는데 이로 인하여 당시 이를 목격한 시민들 (40대 이상) 중 일부 시민들은 아직도 길거리에서 군복을 입고 지나가는 군인들을 보거나 총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내는 폭죽소리를 들으면 이러한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 5.18 민주화운동 당시 피해를 입은 시민들뿐만 아니라, 의외로 당시 계엄군으로 투입되었던 특전사들 중 일부가 PTSD 증세를 겪는다는 증언들이 나오고 있다. 당시 투입된 군인들은 이미 민주화 운동의 실상을 직접 보고 인지했기에 주변 인식을 떠나 교전 경험 직후 큰 충격에 시달려왔다. 영화 박하사탕5.18 민주화운동당시 투입된 청년이 PTSD로 인해 인생이 망가져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그래서 일부 계엄군 출신 출신 중에는 오히려 하나회전두환을 극도록 혐오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사죄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그러나 5.18 계엄군 출신자들에 대한 사람들에 대한 대외적인 인식은 그냥 인간 쓰레기들 이라 계엄군 출신자들이 PTSD를 앓는다고 하면 임산부에 초등학생까지 쏴죽이고 화풀이 학살까지 저질러댄 싸이코 살인마들이 피해자 코스프레나 한다며 싸늘한 반응만 가득한데, 이렇게 된 데에는 이경남이나 최영신 같은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계엄군 출신자들이 비이성적인 수준으로 5.18의 의의를 부정하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려 들었기 때문이다.[25] 안 그래도 계엄군 출신자들에 대한 매우 안 좋은 인식으로 인해서 치료를 시도하는 것 자체가 곤란한 판에, 특전동지회 같은 정신나간 작자들이 5.18에 대해 다룬 방송사와 방송인들에게 명예훼손 고소드립에 종북몰이를 한다던가, 화려한 휴가 같은 영화가 거짓이라고 망언을 지껄인다던가, 7공수여단 출신 최영신이 주남마을 학살의 진실을 증언하자 그에게 협박은 물론 심지어 테러까지 가한다던가 하는 등의 반성 따윈 전혀 없는 적반하장스러운 작태들을 보이면서 계엄군 출신자들의 이미지를 더 더욱 시궁창으로 만들고 다니며 사태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 더 암울하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계엄군이 성폭행까지 저질렀다는 풍문이 근거없는 헛소문이 아닌 사실이었음이 확인되고, 2018년 5월 19일에 방영된 그것이 알고싶다 중 "잔혹한 충성 제 2부 '학살을 조작하라'" 편에 나온, 전혀 반성 없는 계엄군 출신자들의 여러 망언들[26] 덕분에, 현재 시점에서 5.18 계엄군 출신자들의 이미지는 과장 안 보태고 인두겁을 쓴 악마들, 인간 미만의 무언가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덕분에 정보를 얻기 힘들었던 예전과 달리 인터넷에서 5.18 계엄군들도 시대의 피해자라는 말을 꺼냈다 하면 온갖 욕설이나 비웃음만 듣기 딱 좋은 상황이 되어 버렸고, "(위에서 그렇게 말하길래) 광주 시민들이 정말로 빨갱이인 줄 알았다" 라는 계엄군 출신자들의 해명도 말 같지도 않은 핑계라고 비웃는 사람들도 더 많아 졌다.[27] 때문에 이들 사이에서도 대립하거나 심지어 주먹다짐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 여담으로, 셀 쇼크와 같이 전쟁으로 인한 PTSD는 처음으로 '남성에게도 정신적 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심리학계에서 인지시킨 사건이다. 그전까지 정신질환은 주로 여성과 연관되어 생각되었으며[28] 정신질환을 앓는 남성은 나약하고 정신적으로 완성되지 않은 돌연변이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양차대전을 겪으면서 참전 병사들이 집단적으로 '셀 쇼크'라고 불리는 PTSD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이는 정신질환의 대상이 여성에서 인간 전체로 확장되어 연구되는 계기가 되었다.

2.2. 사고, 자연 재해


천재지변을 겪었거나 안전사고를 겪은 사람들 역시 전쟁 못지 않은 PTSD 증상을 보인다. 피해는 물론이고, 결과적으로 사고자 본인도 자신으로 인해 사고가 일어났다는 충격으로 인해 이런 PTSD를 겪을 수 있다. 또한 사고 피해자를 구조하고 현장을 수습하는 소방관이나 의료진, 자원봉사자 등 중에서도 이런 현장에서 장기간 활동할 경우 PTSD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 한 생존자도 교량을 건널때 최대한 빨리 건너려 하고 정체가 되면 다른 길로 돌아간다. 또한 대구 지하철 참사의 경우 당시 불탄 1079호와 1080호에 타고 있었거나 중앙로역에 있어 사고를 직접 겪은 일반 대구 시민들 중에서는 아직도 지하철 타기를 꺼리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교통 분야에서 이런 PTSD가 발생하는 분야 중 하나로 철도기관사가 있다. 충돌사고나 자살사건이 발생하면 말 그대로 자신의 눈 앞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목격하기 때문이다.[29] 게다가 열차의 특성상 급격한 방향 및 속도 전환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느끼는 충격은 더욱 크다.[30] 과거 철도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사람을 친 기관사가 운전실에서 엎드려 있는 사진이 퍼진 적도 있었다. 다만 기관사 본인이 부정적 의사를 밝혀 와 원문은 삭제된 상태.
2016년 경주 지진, 2011년 도호쿠 지진과 같이 전혀 예측 불가능한 자연재해일 경우 트라우마로 남을 확률이 상당히 크다. 위와 같은 강력한 지진을 겪은 후 조금만 쿵쿵거리거나 쾅 소리가 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놀라게 된다. 직접 겪지 않은 사람들은 별 것 아닌거에 예민해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트라우마의 수준은 상상을 초월한다. 주위에 지진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절대 놀리거나 가볍게 여기지 말고 잘 공감해 주자. 또한 자신이 지진 트라우마로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다면 병원에 찾아가서 약물치료를 받기를 권장한다. 트라우마는 절대 의지로 이길 수 있는것이 아니다. 괜히 강한 척 하지말고 전문가와 상담을 받고 잘 치료할 수 있도록 하자.

2.2.1. 사고를 목격한 사람


자살이건 타살이건 교통사고를 목격하든, 사고 현장과 시신을 목격한 사람들 또한 그것이 심한 트라우마로 남곤하는데, 특히 최초 목격자일 경우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2002년 중국국제항공 129편 추락 사고 때 고등학생을 구조작업에 투입하였었는데, 나중에 이를 비판을 받게 된 원인 중 하나가 '학생들의 PTSD 발생 가능성' 때문이었다. 사고 당시에는 PTSD에 대한 개념이 없었지만, 지금 고등학생을 투입한다고 하면 크게 비판을 받는다. 물론 김해고등학교 학생회장 등 학생회 간부를 중심으로 자발적으로 갈 사람들만 갔기 때문에 여파는 크지 않았다.
무술감독 정두홍은 2014년 정글의 법칙 출연 당시, 지속적으로 바다에 들어가는 것을 꺼리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1996년에 스턴트맨 선배가 입수 장면을 촬영하다가 사망하는 것을 봤으며, 그 이후로는 해당 사고가 생각나 물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과적으로는 당시 사고 이후 18년만에 바다 수영을 했으며, 이 때 잡은 해산물로 출연자들이 첫 끼니를 해결했다.

2.3. 고의로 벌어진 폭력


제2형 트라우마에 해당하다.

2.3.1. 고문


1980년대 군사독재 시절 당시 이근안에게 심하게 고문받고 2011년 12월 그 후유증으로 사망한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육체적 후유증뿐만 아니라 PTSD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래서 고문 후유증으로 비염과 기관지염을 달고 살았는데도 이비인후과에 가지 못 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치과 가서 치료대에 누웠다가 고문 장면이 떠올라 치료도 포기하고 바로 나올 정도였다. 증언에 의하면 고문의자가 치과의자와 똑같이 생겼다고 한다. 많은 고문 생존자들이 병원을 찾는 것만으로 잠재 기억이 떠오른다고 한다. 결국 후유증을 계속 안고 살다가 비교적 젊은 나이인 64세에 사망했다. 김근태 전 장관 뿐만 아니라 민주화 운동에 종사했다가 고문을 당해 폐인이 되거나 정신이상이 된 사람이 꽤 된다. 김지하 시인이 유신 시대 이후 이래저래 좌충우돌하는 이유를 고문으로 인한 PTSD로 보는 사람이 많다. 1990년대 한 대학병원에서 레지던트로 근무했던 한 정신과 의사의 회고에 의하면 민주화 운동 당시 고문에 의한 후유증으로 추정되는 피해망상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종종 입원한 일이 많았다고 한다. 제대로 진행된 PTSD는 치료가 상당히 어렵다는 점에서 이들 대부분은 지금도 크고 작은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군사독재와는 무관하지만, 1969년 대한항공 YS11기 납북사건 때 납북되어 심한 고문을 받고 송환된 37명 중 일부 역시 PTSD로 폐인 혹은 정신질환자가 되었다.

2.3.2. 성폭력


성폭력강간, 성추행, 불법촬영 등 성을 매개로 하는 모든 가해 행위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강간 피해자 뿐만 아니라 성추행, 불법촬영 등 성폭력[31] 피해자는 그 충격으로 PTSD에 걸릴 수 있다.
성폭력 트라우마는 전쟁 트라우마와 맞먹을 정도로 충격이 크고 오래 간다고 한다. 또한, 통신매체이용음란 피해불법촬영 피해만으로도 PTSD에 걸릴 수 있다. 불법촬영 피해는 생각보다 심각한데 피해자가 자살하는 등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린다고 한다. 해당 기사, 참고로 이런 트라우마는 여러가지가 중첩되면 될 수록, 가해자가 많으면 많을 수록, 2차 가해가 심하면 심할 수록, 더욱 심해진다.
참고로 이런 트라우마는 남성이 피해자여도 비슷한 정도로 일어난다. 실제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한 영화 미스틱 리버에서는 팀 로빈스가 소년 시절 납치되어 강간을 당한 기억때문에 성인이 되어서도 그 충격을 이기지 못 하고 폐인이 된 주인공 역을 맡고 있다. 실제로 여기에 나온 사건사고는 가상으로 만든 극단적인 케이스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다. 게다가 이런 트라우마로 인해 성범죄자나 연쇄살인범이 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정남규.
강간, 강제추행 등 성폭력은 매우 심각한 후유증을 남긴다. 성범죄의 후유증은 불감증이 된다든가, 성에 대한 인식이 나빠져 성행위를 피하거나, 반대로 성을 남발하든가[32] 하는 성에 관련된 것뿐만 아니라 자존감에 영향을 미친다. 도구 취급당하는 스스로의 자아가 묵살되는 느낌을 갖고 살아가게 된다. 나이가 어릴수록 후유증은 더 크다. 이 때문에 아동 성범죄를 중죄로 취급해 우발적인 살인죄에 준하는 수준으로 엄격하게 처벌하는 것이다. 한 예로 미국과 중국에서 간혹 나오는 엽기적인 형량은 사법거래 등을 하지 않고 큰 소리를 치는 일부 아동성범죄자에 대한 괘씸죄가 적용된 경우가 많다.[33][34]
일본군 위안부의 생존자들도 당시 끔찍한 상황을 증언하고 나면 그날 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날을 꼴딱 샌다고 한다. 이도 심각한 PTSD 증상의 하나이다.

2.3.3. 가정폭력


가정폭력의 경우 피해자를 구제하는 과정도 아직 제도화되어있지 않으며 최후의 안식처인 가정이 지옥이란 점에서 그 환경에서 벗어난 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폭력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라난 아동의 경우 독립심에 손상을 받아 독립 과정에서 마찰을 겪는 경우가 많으며, 가족을 꾸리는 데 회의적이라 독신주의가 되는 이들도 있다. 결혼의 두려움 혹은 자신이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가득하다.
결혼의 행복한 모습보다 안 좋은 모습을 보았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또 가정폭력을 당한 아이가 부모가 되어 자신의 아이를 학대하는 폭력의 대물림이 일어날 수도 있다. 여기에서 더 최악은 가정폭력을 저지르는 자로 인해 스트레스가 쌓인 사람이 더 약한 자녀나 다른 사람에게 폭언과 폭력을 저지르게 된다. 그러면 다시 약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에 대한 극단적인 사례로 이은석[35]이 있으며 이 외에도 막장 부모 문서에서도 사례를 몇 개 찾을 수 있다.

2.3.4. 집단괴롭힘


왕따는 PTSD의 큰 유발 원인 중 하나다. 피해자는 자신이 부적응자라고 느끼게 되며 새로운 환경 자체를 두려워하게 되고 모든 사람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게 된다. 게다가 가해자는 절대 반성하지 않고 피해자를 만나면 아는 척을 하면서 또다시 괴롭히기 일쑤, PTSD는 더욱 심해진다.
학교에서라면 집단괴롭힘, 학교폭력, 군대에서라면 병영부조리, 직장에서라면 직장생활 부조리, 인터넷상의 악플, 마녀사냥도 이쪽에 해당된다. 과거에 인터넷 여론에 크게 시달렸던 문희준은 방송에서 최근까지도 정신적으로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음을 고백한 적이 있다.
여기다 어른의 사정[36]이 가미되면 상급자가 처벌받는 것을 막고 사건의 해결을 거부하여 오히려 피해자를 괴롭히고 피해자를 욕하는 식[37]으로 묻으려 들기 때문에 피해자는 두 번의 고통을 받는다.
게다가 왕따를 당하는 대상은 대부분이 학생과 같은 일반인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들은 경찰관, 소방관, 군인, 교도관 등과 같이 심각한 정신적 충격에 대비하고 훈련되어 있는 사람들이 아니므로 한번 PTSD에 걸리면 더 큰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기도 한다.[38]

2.4. 직업 특성 상 일어나는 트라우마



2.4.1. 교도관(교정직 한정), 사형집행관


교도소에서 근무하는 교도관들 중에서 PTSD 증상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 교도소의 특성상 업무의 강도가 상당하고 온갖 극단적인 인간군상을 목격하다 보니 이로 정신적 충격을 받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형 제도가 있는 국가의 사형 집행 임무를 맡는 교도관들은 아무리 범죄자라 하지만 직접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다 보니 정신적 충격이 더욱 크다.
물론 교도관 나름대로의 직업의식이나 신념 등을 통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시키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예로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사형수를 직접 목베어서 죽이는 참수형을 시행하는데, 이 일을 하는 사형 집행인에겐 두둑한 보수와 각종 처우가 보장되며 신앙심으로 마음을 다스리지만 그럼에도 정신적인 충격이 대단해서 자신의 자녀들에겐 절대 직업을 계승하지 않으려 하고 이슬람권에서 금지하는 음주도 암묵적으로 허락받을 정도라고 한다.
프랑스 혁명 당시 단두대를 도입한 이유도 이와 연관되어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사형수에 대한 인권 문제였지만, 잦은 처형으로 인한 집행인들의 피로와 스트레스 또한 만만치 않았던 데다 무엇보다 사형이 즉각 집행되니 집행인의 죄책감이 덜했기 때문이다.[39]
그래서 버튼을 누르면 의자나 발받침 떨어지는 교수대는 버튼이 여러개이며 교도관들이 카운트다운 후 동시에 누른다. 이중 진짜는 단 하나이며 나머지는 가짜. 누구것이 진짜인지 교도관들은 모르므로 죄책감이 덜 하다. 이는 총살형도 비슷하게 사수 여럿을 일렬로 세워 놓고 실탄과 공포탄 또는 왁스탄을 섞어 지급한다.[40] 이유는 동일하다. PTSD 문제가 대두되기 전에는 그냥 죄다 실탄으로 장전해서 쐈다.
옛날부터 있던 참수형 집행을 전담하는 망나니들 역시 PTSD에 시달리며 살았다. 이들이 맨날 술에 절어 사는 이유가 그 때문이었으며, 괜히 매체에서 참수형을 집행하는 망나니들이 거하게 술 마시고 뿜어대는 모습으로 나오는 게 아니다.
반면에 미국과 중국에서는 사형 집행 시 그 사형수가 저지른 범죄 피해자 본인이나 유가족을 참관인으로 초대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형수의 사형 모습을 참관하는 것이 피해자나 유가족이 앓는 PTSD의 완화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정의가 실현되었고 피해자의 원한이 조금이나마 풀렸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니 말이다.

2.4.2. 의사, 간호사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들과 간호사들 중에서도 PTSD 증상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 대체로 응급실이 딸린 중/대형 병원의 의사와 간호사들이 그 대상이다. 이런 병원의 특성상 업무의 강도가 상당하고 응급실의 경우 교통사고나 심한 화상, 심하면 신체 절단이나 음독 자살 시도자 등등 온갖 극단적인 상태의 환자들을 목격하다 보니 이로 정신적 충격을 받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들을 어떻게든 살려내야 하는 게 의사의 의무인데 환자의 상태가 너무 심각해서 병원에 입원하고도 가망이 없어서 그대로 사망할 경우 담당의사의 정신적 충격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온갖 방법으로 최선을 다하고도 환자가 죽어서 유가족들에게 돌팔이라 욕먹고 손가락질 받으며 심지어는 주먹으로 얻어맞기까지 하는 등 의사는 너무나도 고된 직업이다.[41]
물론 의사 나름대로의 직업의식이나 사명, 신념 등을 통해 이를 극복하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예로 화상병동에서는 날이면 날마다 죽어나가는 환자들을 보면서 의사들이 가끔 멘탈붕괴 현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생명이 위독한 환자를 살려내서 무사히 퇴원시키면 이보다 더한 성취감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반대로 환자가 사망하면 절망감은 '''그 이상이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던 사진 중에 자신이 진료하고, 집도했던 19살 소녀가 죽자, 살려내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미안함에 병원 밖으로 뛰쳐나와 주저앉고 우는 의사의 사진이 유명한 사례.
온갖 방법으로 망가진 인간의 육체를 매일같이 보면서 이를 원상복구시키는 일을 하는 직업인지라 의사들은 계속 망가진 육체를 보면서 PTSD에 시달리며 살고 있다. 의사가 엘리트 계층에 속하는 직업이지만 알고 보면 엄청나게 가혹한 직업이다.
물론 의사들도 전부 케바케다. 평범하게 동네 병원으로 개원하여 진료할 수도 있고 강남에서 미용 전문 성형외과피부과로 돈 좀 만질 수도 있고 응급실에서 감기환자부터 심정지 환자에 취객까지 온갖 사람을 대하거나 중증외상센터에서 온몸이 찢어지고 짓이겨진 육체만 보는 일을 할 수도 있다. 물론 후자는 워낙 환경이 열악한데다 돈도 못 벌어 해당 분야의 인력이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어 국가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42]
또 특히 의사들 중에서도 정신과의사들의 경우 온갖 정신질환자들을 접하며 그들의 궤변과 뒤틀린 인지도식을 일일이 의무기록으로 남기며 들어주는 것이 직업이다보니 어느새 자신도 정신상태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정신과의사들은 동료끼리 정기적으로 서로를 검진해줄 정도이며 특히나 대형병원의 정신과 의사들은 타 과 의사들이나 간호사들에 비해 PTSD에 걸리기가 더욱 쉽다. 군경으로 비유하면 전쟁터에 다녀온 군인들이나 범죄자와 전투할 일이 많은 강력계 형사들을 정신과의사에 비유할 경우 전투경험이 없는 군인들이나 상대적으로 전투할 일이 적은 비강력계 형사들은 타 과 의사들이나 간호사에 비유할 수 있다.

2.4.3. 수의사


전술된 의사와 후술될 도축업자의 중간에 있는 직종. 수의사는 크게 비임상, 임상 수의사로 나뉘며, 비임상 수의사는 주로 제약회사나 연구기관에서 실험동물을 다루거나 공무원을 하게 되고, 임상 수의사는 닭·돼지·소·말 등의 산업동물을 진료하는 대동물 수의사나 개·고양이 등의 반려동물을 진료하는 소동물 수의사로 나뉜다. 어느 쪽으로 진출하든 간에, 수의사인 이상 동물을 '''자의로 죽여야 하는 경우가 잦다'''.
소동물 임상을 하게 되는 경우에는 사람보다 열악한 진료 환경 때문에 이유도 모르고 환자가 죽는 경우가 잦다. 비보험이기 때문인지 수의사들도 의사 못지 않게, 아니면 의사보다 더 심하게 돈을 밝히는 직업으로 인식되어 있는데, 자신의 환자가 죽는 것을 방치하거나 즐길 수의사는 없다. 오히려 그런 사람은 같은 수의사끼리도 싸이코라고 욕할 정도지만, 환자가 죽을 경우 보호자들은 그저 돈에 환장한 수의사들이 돈만 뜯어가다가 아이가 죽은 것으로 몰아가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이 경우 수의사들은 열악한 진료 환경과 자신의 부족한 지식(전 축종을 완벽히 알기는 힘드니.), 또 아이가 내 손에서 떠났다는 점 때문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데, 보호자들까지 돈독 오른 놈으로만 취급하니 상당한 스트레스가 된다, 심지어는 보호자들이 반려동물의 노환을 이유로, 혹은 자신의 여건을 이유(집이 좁아요, 알러지 때문에 힘들어요, 아이를 가지게 됐어요 등)로 동물들을 안락사 해주기를 요청한다. 당연하지만 유기견 보호소 등의 시설에서 근무하는 수의사도 일정 기간이 지난 보호 동물을 안락사해야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대만 보호시설의 한 수의사가 자살한 일화는 수의사들 사이에서 매번 회자될 정도로 동물이 죽고, 또 내 손으로 죽여야만 하는 경우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PTSD는 수많은 수의사들이 공감하는 점이기도 하다.
실험동물을 하게 되는 경우에는 동물들을 죽이는 것이 일상이다. 마우스나 래트와 같은 설치류를 죽이는 것은 물론이요, 수의사가 실험동물로 다루는 축종에는 돼지, 토끼, 원숭이, 개를 흔히 포함하게 된다. 문제는, 특히나 실험동물을 다루는 경우에는 수의사가 시설책임자이기 때문에 사육 과정에도 참여를 하는 경우가 잦은데, 경우에 따라서는 정이 들기도 한다는 것이 문제다. 물론 정이 드는 것은 둘째의 일이고, 전살·경추탈골·색전유발·마취제투여·흉강절개 등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동물을 죽이는 법을 배우다보면 내가 왜 수의사가 됐을까 하는 회의감이 들 정도다. 실험동물수의사의 경우는 한술 더 뜨는게, 동물실험이라는 것이 사람에게는 하지 못하는 in vivo 실험을 대신하는 것이다보니, 해당 질환을 의도적으로 유발하거나 화학약품의 안정성을 보기 위해 동물들에게 약품 처리를 하는 과정까지도 진행해야 한다. '''의사가 치료하기 위해 연구하는 난치성 질환들과 심각한 외상 등은 동물에서 먼저 모델이 만들어지고 난 후의 연구'''[43]라는 점을 감안하면 수의사가 감당해야 하는 스트레스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동물을 치료하고자 수의사가 되었으나, 동물을 아프게 하고, 실험의 목적을 달성하고 나면 관리와 비용의 이유를 들어 마치 못 쓰게 된 물건을 버리듯이 안락사 시켜서 의료폐기물 통에 담다보면 정말 못할 짓이다 싶은 생각 뿐이다.
대동물 임상이나 공무원은 수의사 PTSD의 극한이라고 할만한 분야인데, 매년 연례 행사로 터지는 구제역(FMD)과 조류독감(AI) 때문에 돼지, 소, 닭, 오리 등을 살처분하다보면 받는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하다. 아마 '''살처분 전 농민들의 반응과, 동물들을 산 채로 파묻으며 들어야 하는 동물들의 비명 소리와 구덩이를 뛰쳐나오는 동물들을 다시 밀어넣는 일'''을 경험한 수의사 중에 살처분을 잊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 경우 한 동안 고기를 입에 못 대서 일시적 혹은 영구적 채식주의자가 되기도 한다. 이 분야는 축산업자·공무원축산직렬의 고질적인 병폐로 인해 수의직의 인력도 부족할 뿐더러, 그나마도 공중보건의사와 같이 공중방역수의사로 대체복무하는 수의사들이 대부분이다보니 살처분의 업무 강도는 상상을 초월하게 된다. PTSD 이전에 과로사하는 수의사가 나올 정도로, 정말 어마어마한 양을 예방차원에서 살처분 시키고, 다시 방역 교대근무까지 서는 상황이다. 때문에 수의사회·보건복지부·농림축산부에서 수의사들에게 PTSD 치료를 지원할 정도이다. 이 두 부처는 소관부처라 할지언정 행정안전부까지 나서서 방역·검역으로 인해 PTSD를 겪는 수의사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정도이다.
당연하지만 병리부검을 진행하는 수의사도 정상적이게 죽은 동물을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당한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이쯤 되면, 수의사의 전 분야가 스트레스의 온상인 셈으로, 어찌 보면 사형집행인과도 비슷하다. 다만 죄가 없는 동물들을 죽여야할 뿐이다.
공부도 어느 정도 해야하는 직업임은 분명하고 동물을 사랑해서 수의사를 하는 학생들이 대다수이지만, 학생들은 학부생부터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해부학, 약리학, 생리학 등의 각종 기초수의학 실습과 각종 임상수의학 실험을 위해 사용되는 개, 래트, 마우스, 토끼, 돼지, 닭 등은 아마 수의대생이라면 한번쯤은 자기 손으로 죽여봤을 정도로 수의사들은 학부시절부터 살생에 노출되어있다. 사람을 치료하고자 의대에 진학한 의사가 고의적으로 사람을 죽여야한다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이 때문에 수의대 실습 중에는 항의를 하거나 실습 후에 우는 학생이 동기 당 한 명 이상은 존재하며, 6년의 과정을 수료하고도 수의사가 아닌 다른 직업을 택해서 나가는 이들이 많은 직업이다.
전혀 다른 분야지만 미국과 소련의 우주경쟁 당시 소련의 우주공학자들도 비슷하게 겪었다고 한다. 유리 가가린이 우주에 나가기 이전에 수 많은 동물들이 우주로 먼저 갔고 무사히 성공적인 비행을 마친 동물도 많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동물들이 귀환에 실패해 엄청난 고통속에서 죽어갔기 때문이다. 우주공학자들은 인류 문명을 위해 희생당해야하는 동물들을 보내며 많은 죄책감을 느꼈다고 하며 실례로 라이카를 보내고 엄청난 고통속에서 죽어갔다던 사실이 알려지자 당시 참여했던 학자들이 심적고통을 많이 받았다고 하며 후에 한 학자는 ''라이카에게 꼭 미안하다고 하고 싶다''라 말했다.

2.4.4. 도축업자


조선시대백정이라고 불렸던 도축업자도 예나 지금이나 만만찮은 PTSD에 시달려왔다. 도살업자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요즘 도살업자는 일도 고되고 무엇보다 '고기'라는 고수요 상품을 판매하기 때문에 돈도 많이 벌지만 조선시대의 백정은 최하층 신분인 천민으로 분류되어 다른 계급은 당연하고 같은 계급 내의 다른 직업인 가문과의 혼인에도 어려움을 겪는 등 차별이 엄청났으며,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폐지되고도 관습은 쉽게 사라지지 않은 탓에 일제강점기로 넘어간 시점에서도 형평운동이 벌어질 정도로 멸시를 받았다. 그리고 지금도 도살업자를 향한 시선에는 그러한 차별의 잔재가 안 남아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비록 인간의 필수 식자원인 고기를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이고 목숨을 빼앗는 것도 단지 금수에 불과할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멸시 속에서 생명의 목숨을 빼앗는 행위로 고통을 받는 도살업자도 매우 많다. 도축업자의 대우가 나은 편인 유럽이나 중국 북부지역, 도축이 집안일인 유목민족과 유목민 출신이었던 유대인, 아랍권은 그나마 덜하긴 하지만 그래도 생명을 빼앗는다는 것은 변함이 없어서 많은 문화권에서 사냥이나 도축 전에 의식을 하는 경우가 많다.

2.4.5. 장의사 등 시신을 처리하는 직종


장의사, 유품 청소부 등 시신과 사망 현장을 처리하는 직종 종사자들도 PTSD에 걸리기 쉬운데, 특히 시신을 닦는 일의 경우 꿈 속에서도 나오는 경우가 적잖게 있다고 한다.
자살이나 타살, 사고로 인해서 죽은 사람의 시신을 직접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PTSD가 걸리기 쉬운데 아예 시신을 처리하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PTSD에 걸릴 확률은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높다. 게다가 단순히 병사한 시신의 경우 그나마 형태가 온전히 보존되지만 자살부터 시작해서 사고사의 경우 시신이 피칠갑(피투성이)이 된 시신을 '''직접적으로''' 다뤄야 하기에 시신을 처리하는 직종을 아무나 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44] 물론 그 것이 천직인 사람들도 있겠지만...

2.4.6. 경찰공무원


경찰관이나 강력계 형사의 경우도 범죄자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전투를 치루거나 테러 진압에 투입될 경우 그 과정에서 PTSD가 생길 수 있다.
그렇다 보니 특히 직접 범죄자와 전투를 벌일 일이 많은 강력계 형사의 경우 PTSD에 걸리는 비율이 비강력계 형사보다 높아 강력계는 아무나 할 수 없다.
그러면 경제팀이나 사이버팀 등등 지적인 수사가 중심이 되는 수사부서는 편한가 하면 그것도 아니라서, 이 쪽은 온갖 범죄자들의 궤변과 이성을 잃은 범죄피해자들의 감정적인 진술들을 일일이 조서로 남기면서 들어줘야 하는 업무부담이 상당하다고 한다.

2.4.7. 소방공무원


위험한 곳을 찾아가는 직업 특성상 언제나 위험에 노출되기 때문에 이것에서 오는 정신적 피해가 상당하다.
화재진압과 구조의 업무를 담당하는 소방관들은 건물이 무너지면서 불과 30분 전까지만 해도 같이 있던 여러명의 동료를 한번에 잃는 참사를 경험하기도 하며, 화재로 인해 중증화상을 입은 환자들이나 극단적으로는 아예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손상된 시신을 목격하기도 한다. 또한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면 “내가 좀 더 빨리 도착했으면...” 등의 죄책감을 느끼며 정신적 손상은 배가 된다. 또한 문개방 출동이 걸려서 문을 열었더니 목 매단 시체가 부패되어 있었다거나, 교통사고로 자동차 밑에 깔린 사람을 목격하는등 복합적인 정신적 타격을 많이 입는다.
구급대의 경우, 심정지 환자는 예삿일이고 정말 반죽음 상태의 환자를 이송하거나 출혈이 극심한 환자를 이송하는 경우 이것에서 받는 시각적 충격이 상당하다. 교통사고로 사지가 뒤틀려 온 몸에서 피를 쏟는 사람을 생각해보자. 글만 읽었는데 거부감이 들 것이다. 이런 걸 자주 보진 않더라도, 10년에 한 번은 보게 되는 사람들이다. 심정지로 오락가락 하는 환자를 온갖 응급처치를 동원해서 살려보겠다고 다짐하고 병원으로 이송해도, 알음알음 그 환자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몰려오는 죄책감과 자괴감에 무너지는 경우도 많고, 죽은 사람이 계속 꿈에 나온다던가, 간혹 유족들의 오열소리가 계속해서 들린다는 환청 증세를 겪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의 행복이나 즐거움보단 고통과 죽음에 가까운 직업으로, 이곳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압박감이 이들을 정신적 고통, 더 나아가 정신질환으로 이끌어 가는 것의 주범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군가의 고통에 공감하고 죽음에 거리낌을 느끼고, 이것이 안 되는 사람들은 사이코패스라는 명칭으로 따로 불린다. 이 사람들은 애초에 소방시험 인적성검사에 걸려 소방관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연히 누군가의 고통이 나의 일상이 된다면, 그것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엄청날 것이다.
이러한 정신적 충격이 단순한 것도 아니고 복합적으로 계속 축적되어 가고, 겉으로는 티 내지 않고 점점 무뎌지지만 내부로는 처음 봤을 때와 별반 다를 거 없는 충격을 받기 때문에 PTSD를 앓고 있는 소방관들의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2.4.8. 군인


군인들의 경우 전쟁터를 다녀왔거나 전쟁터까진 아니더라도 위험지대에 다녀온 것만으로도 PTSD가 생기곤 하는데, 당장 이라크전에 참전했던 미군들 중에도 PTSD로 인해 정상적인 일상생활조차 불가능한 경우가 많이 알려져 있다. 그밖에도 국군이나 일본 자위대의 경우 실전경험이 아닌 그저 군에 입대했을 뿐인데도 PTSD가 생기는 사례가 적잖게 있다.[45]

2.4.9. 철도기관사


빛이 보이지 않는 지하구간에서 귀를 때리는 소음까지 더해져 PTSD를 겪는 광역 및 도시철도 기관사들이 많으며, 업무의 중압감[46]과 좁은 운전실에 홀로 있는 것 또한 폐소공포증을 추가로 불러일으킬 수 있다.
철도기관사가 PTSD를 겪는 가장 큰 경우는 열차가 운행하는 선로에 무단침입하거나, 승강장에서 선로로 투신하는 사람을 치는 인신사고가 났을 경우이다. 두 눈으로 사람이 자신의 열차에 치어죽는 것을 생생히 보게 되고, 열차는 사고 직전 비상제동을 체결하는것이 최선이고, 사람을 피해갈수없기에 그 순간 기관사가 느끼는 무력감과 사고의 충격음과 진동, 사고장소, 심지어는 당시날씨등과 같은 사고 순간의 요소가 PTSD가 되어 기관사들을 미칠듯이 끈질기게 괴롭힌다. 또한, 사고현장을 확인하러 가서 처참한 현장의 모습을 보고난뒤에도 PTSD증상이 심하다고한다. 그리하여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다시는 열차 운전실에 오르지 못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경우도 있었다.
최근에는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 비교적 사상사고에 대한 기관사들의 부담이 조금은 적어졌으나, 아직도 지상구간이 많은 광역철도일반철도에서는 선로무단침입자나 자살자로 인해 끊임없이 위와같은 상황이 반복 되고있다.

2.4.10. 조련사 및 사육사


동물원이나 아쿠아리움, 서커스단에서 일하는 조련사들이나 사육사들도 해당하는데 이들은 직업 특성상 야생동물들을 접할 일이 많은데다, 특히 단순 야생동물을 넘어 맹수를 접할 일이 유독많은 서커스 조련사들은 더욱 심하게 나타난다.
자신이 관리하는 동물한테 자신 또는 자신의 동료가 죽거나 다치는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관람객이 그런 일을 당하는 걸 목격했을 경우도 그러하다.
이들도 트라우마로 인해 이 일을 못하게되는 경우가 있다.

2.5. 그 외


트라우마는 거대한 사건이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마음의 상처가 없는 사람이 드문 것처럼, 누구에게나 크고작은 트라우마는 존재하기에 다양한 일로 인해 초래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입시, 고시, 기타시험등에 계속되는 실패나 후술할 실연 , 자취생활 중 외로움 등 일반적이고 누구나 겪을 법한 사건에서부터 시작되는 경우도 있고 또 누군가는 모기를 죽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살에 이를 정도로 심한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다. 다만 PTSD는 이러한 트라우마 중에서도 1) 실제적인 죽음이나 생명을 위협하는 사건들, 혹은 심한 부상, 자신과 다른 사람의 신체적 온전성에 대한 위협을 경험, 목격하거나 직접 직면하는 사고를 겪은 후 발생하는 심적외상인 경우, 2) 외상적 상황에 대해 개인의 반응이 강한 두려움, 무력감, 혹은 공포를 포함하는 경우, 3) 증상이 1개월 이상 지속되는 경우를 가리키기에 자취생활 중 외로움으로 생기는 트라우마 등은 배제하고 탈북경험처럼 생명을 위협받았거나 누구나 이해가능한 원인을 기초로 한 심적외상 케이스를 아래에 적는다.

2.5.1. 실연


연인, 혹은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큰 실패감을 경험한 경우.
실연의 충격으로 자살을 시도했거나 자해를 하는 것을 우울증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실연 후 다른 사람을 만나도 지속적으로 우울증과 옛 연인에 대한 꿈을 꾸고 현재 연인을 옛 연인의 대체로 인식하며 옛 연인에게 했던 잘못을 하지 않기 위해 완벽함을 보이려 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 물론 위의 상황은 평범한 헤어짐이 아닌 오랜 기간 옛 연인에 대한 심각한 상처가 남은 경우다.[47]
배우자와의 사별, 이혼, 반려동물을 잃는 펫로스의 경우도 PTSD의 원인이 될 수 있다.

2.5.2. 탈북자


탈북자들 중 탈북 과정에서 죽을 뻔 했거나 함께 탈북하던 사람이 눈 앞에서 죽는 것을 목격한 경우, 탈북해서 한국이나 제3국가에서 살 때도 잠만 자면 탈북할 당시의 기억이 악몽으로 계속 나오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특히 해방 직후의 초창기 탈북자들의 경우 제3국을 가거나 혹은 제3국을 거쳐서 한국이나 제4국으로 가는것이 아니라 바로 물길을 건너 한국으로 넘어오는 것이 특징이었는데, 이 경우 물길을 건너다 경비대에 발각되어 총격을 당해 죽는 일이 많았고, 함께 탈북하던 사람이 눈앞에서 총격으로 사망하는 것을 보곤 했기에 탈북할 당시의 상황이 꿈에 나오는 악몽을 매일 꾸는 게 더욱 심하다고 한다.
탈북자 외에도 베트남 보트 피플이나 혹은 독일이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되어 있었던 시절 동독을 탈출해 서독이나 그 외 비공산권 국가로 망명했던 사람들 등 공산권 국가에서 비공산권 국가로 탈출했던 사람들 중에도 탈출 과정에서 동행자가 죽는 걸 보게 되어 트라우마가 생긴 사례들이 많이 있다.

2.5.3. 범유행전염병


코로나19,신종플루 같이 범유행전염병가 일어날 때에도 종종 일어난다. 특히 코로나19는 감염 범위가 광범위하고, 감염 속도도 빠르다 보니[48] 다른 질병보다 감염에 대한 두려움과 트라우마가 크다. 특히 이런 건 확진판정 받았다가 완치된 사람들에게도 관찰된다. 그 밖에는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봉쇄조치를 시행한 국가들의 경우 봉쇄의 장기화로 인해 갑자기 괴성을 지르며 폭주하는등 정신질환자들이 급증하는 사례들이 나오고 있는데 이로인해 특히 유럽 국가들의 경우 봉쇄를 조기해제하고 있을 정도이다. 경제문제보다 더 큰 문제로 인해 봉쇄를 조기해제 하는것인데 자국민들중 정신질환자가 급증하는 문제의 경우 그들중 상당수는 코로나가 종식되더라도 ptsd가 계속 남게되면 정상적인 일상생활조차 불가능 하기에 그러한 ptsd 환자를 최대한 줄이기 위한 조치인것이다.

3. 오해



3.1. 나는 PTSD에 걸리지 않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사람마다 정신력이 다르니 단정지을 수 없지만 실제 상황에 직면했을 때 PTSD에 걸릴 확률은 최대 50% 정도로,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이는 PTSD가 공식 병명으로 채택된 배경인[49] 미군 베트남 전쟁의 참전용사 중 PTSD 환자의 비율을 가장 높게 잡은 수치다. 무슨 말이냐면 미군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 280만 명 중 최대 140만 명이 PTSD에 시달리고 있다는 뜻이다. 전투에 직접 참가하지 않은 대다수의 참전용사들 조차도 PTSD에 시달리고 있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상상이 가는가?
공포영화나 끔찍하고 불쾌한 그림 등을 보고 그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비위가 상하고 초조해지는 등의 고생을 겪은 적이 있다면 PTSD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의 심각한 일을 '''직접''' 경험하고 나서 겪는 스트레스성 장애는 그것과 원리는 비슷하되, 정도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것이다. 생사가 오가는 일을 구경하거나 상상하는 것과 직접 겪는 건 하늘과 땅 차이다. 특히 애니, 소설 등에서 평범한 소년 소녀들이 사람을 죽이고 총질을 하고 칼질을 해대면서 아무런 동요도 느끼지 못 하거나 그저 몇분 간 벌벌 떠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창작물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뿐이지,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50][51]
단지, 참여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 PTSD에 시달리는 사례는 굉장히 많다. 제1차 세계대전 참전자들은 포격쇼크증, 제2차 세계대전 참전자들은 전쟁신경증, 한국전쟁 참전자들은 전투신경증. 이것들은 모두 PTSD를 뜻한다.[52] # 괜히 미국이 참전유공자들을 극진히 대접하고 영웅으로 모시는 게 아니다. 그 PTSD로 인한, 상처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UN군의 이름이 평화유지군이겠는가?
일단 전투에 돌입하게 되면(특히 첫 실전) 그 사람의 머릿속은 문자 그대로 패닉 모드로 전환된다. 과다 아드레날린 분비로 심장은 평소보다 훨씬 빠른 페이스로 뛰게 되고, 주변 상황들이 마치 슬로 모션으로 진행되는 듯한 착각에 빠지며, 속은 말 그대로 하얗게 표백된 양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된다.[53] 그리고 전투가 끝난 후에도 한 수십 분 동안은 그저 숨만 몰아쉬며 아무 생각도 못 한 채 벌벌 떤다.[54] 비단 PTSD뿐만 아니라 처음 접하는 전투 현장에서는 극도의 수면부족과 피로까지 설상가상으로 덮치고, 옆에서 폭탄 몇 발만 터지면 작게는 깨질 듯이 욱신거리는 편두통에서부터 심하게는 청각적 원인에 의한 뇌진탕까지 밀려와서 제정신이 아니게 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팔다리는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덜덜덜 떨리고, 그런 상황에서도 소위 데스 그립(death grip) 현상, 즉 손에 총이나 막대기 등 뭔가를 쥐고 있을 경우 손에서 힘을 뺄 수가 없는 상황이 닥친다. 한 마디로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극한의 상황에 몰리게 되는 것이며, 미군은 이미 일찌감치 이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방안을 연구하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에서 '''베테랑이란 증거'''처럼 등장하는 '''전투 중 농담을 던지며 낄낄대는''' 행위 역시 '''PTSD의 일부'''다. 전장에서 경험하는 죽음의 공포[55]와 자신을 향한 적대자의 강렬한 증오, 그리고 살인에 대한 본능적 거부감과 죄책감[56]의 심리적 혼합물은 인간에게 상황을 '''부인'''할 강력한 동기를 부여한다.[57] 그리고 전쟁 상황이 별 것 아니라는 듯한 행동은 '''가장 강력한 부인의 증거이다'''. 흔히 전쟁물이나 히어로물 등에서 싸우는 도중에 웃으며 농담하는 것은 기세 등등하거나 겁이 없어 그런다기보다는 '''오히려 현실 고증이 잘 된 셈'''이다.
미군 여중생 압사 사건의 장갑차를 운전하던 미군 하사 마크 워커는 제대 후 자책감에 PTSD에 시달리고 있다. 오죽하면 유족들 조차도 이젠 마음의 짐을 덜었으면 좋겠다고 인터뷰했을 정도.
화가 뭉크, 빈센트 반 고흐 등 수많은 역사적 인물들도 PTSD를 겪었다. 개요에도 있듯 절대 새롭게 생겨난 질병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걸릴 수 있는, 인류와 함께하던 질병이다.

3.2. PTSD는 나약해서 걸린다?


절대 아니다. 과학자들이 수십년의 연구 끝에 밝힌 사실은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지속적인 트라우마 상황 앞에서는 정신을 유지하는게 불가능하며 결국 정신병에 걸리고 만다는 것이다.[58]
PTSD 환자는 세계 곳곳에서 살고 있으며 나이나 성별, 인종, 사회적 지위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람보 같은 미군 특수부대원들도 죽음의 공포는 이겨내지만 PTSD는 이겨내지 못 했다. '''대한민국에선 2003년까지 의지드립으로 때워버리기 딱 좋은 병이었다.'''[59] 20세기 대한민국에선 의지드립이 PTSD의 특효약 아닌 특효약이었다. '''그러나 2003년부터 의지드립이 특효약이 아니라 적절한 치료만이 PTSD 증상을 확연히 지연 및 완화시킬 수 있다는 게 밝혀졌다.''' 의지드립은 곰팡이 핀 벽에 페인트 새로 바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소방호스로 물을 퍼붓는 것도 모자라, 그 벽에게 의지쯤으로 곰팡이를 떨쳐낼 수 있다고 소리치는 것에 불과했다.[60][61]
흔히 람보 시리즈의 주인공 존 람보를 왜곡된 마초주의와 PTSD를 겪지 않는 자칭 용감한 군인의 상징으로서 말하고 있지만 사실 여러 증상으로 봤을 때 '''람보도 PTSD이다.'''[62] 그리고 PTSD 증상이 극단적으로 가버린 사례가 람보 1의 람보의 난동이다.[63] PTSD는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어지간해서는 극복하지 못 한다. 이건 그 '의지'라는 것이 강한지의 기준조차 불명확한 의지박약 또는 그냥 개인이 제멋대로 단정 짓는 꾀병이 절대로 아니다. PTSD는 '''신경계에 문제가 일어난 질환이다.''' 뇌신경학자들의 관찰 결과에 따르면 PTSD 환자들의 두뇌의 생김새는 PTSD를 앓고 있지 않은 사람들의 두뇌의 생김새와 매우 다르다. 특히 다른 점은 환자들의 측두엽 내측에 존재하는, 기억 및 정서 그리고 신경의 체계를 담당하는 부위로 알려진 해마가 수축되어 있다는 점이다.[64] 그렇기에 환자들은 자기 기억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작은 자극도 엄청난 공포로 인식한다. 해마의 변형으로 말미암아 생긴 이러한 증상들은 다른 뇌 부위의 손상으로 이어지기도 하는 등 악순환의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 '''애초에 환청같은 것들을 노력으로 떼어버릴 수 있으면 정신질환 관련 병원이 있을 리가 없다.'''
파병군인은 돌아와서 전부 검사를 받긴 하지만 애초에 검사 자체가 겨우 한 시간 동안 수많은 질문에 대해 예/아니오로 답변하는 수준이고 사회로 내몰려 '''굶어죽지''' 않기 위해[65] 어지간히 PTSD에 시달리는 병사는 대부분 거짓말을 하니 검사는 사실상 무의미하다는 주장이 미군 내부에서도 흘러나온다. 카투사가 그런 미군과 친해지면 새벽 3시까지 자기 방에서 술을 먹자며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지는 상황에 처하기도 하는데, 평범하게 잠에 들면 악몽을 꾸니까 술을 무지하게 마시고 잔다고.
하도 이렇게 숨기는 병사들이 많으니 미군 측에서는 아예 부끄러워하지 말고 군종이나 군의관에게 와서 이야기하고 치료받으라는 내용의 광고를 만들었다. 만약 본 문서를 읽는 본인이 카투사이고 PTSD에 걸린 미군으로 짐작되는 병사가 있다면 개인의 군생활이니 대놓고 참견할 순 없지만 웬만하면 그 친구가 자존심 상하지 않게 병원이나 상관에게 슬쩍 말하는 편이 낫다. 그 병사가 PTSD가 아닐까 하고 감이 올 정도면 상당히 친해진 상태일 텐데, 말하지 않고 있다가 그 병사가 나중에 사고치고 군병원 내지는 본토로 송환될 때 후회하게 되거나 아니면 관리소홀의 책임을 물어 처벌받을 수도 있다. 실제로 미군에서는 지휘관뿐만이 아니라 PTSD 환자가 사고칠 가능성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제때 신고, 혹은 대처하지 않은 동료 병사 역시 근무태만으로 처벌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다만 여기서의 처벌의 경우에는 직접적인 형사처벌보다는 영창이나 아니면 카투사 신분 박탈 후 한국군 편입 정도일 가능성이 크다. 미군 군사법정에 세워버리면 내정 간섭이 되기 때문.
그렇다고 한국군 군사법정으로 송치하자니 한국군 군법이나 복무규율에는 사전에 PTSD 환자를 신고하거나 대처하지 않은 행위를 근무태만으로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무엇보다 진짜 미군과 달리 카투사는 PTSD 증상에 관해 교육받지 않으며 미군의 정식 기초훈련과정[66]을 거치지 않는데다 미군 소속 기관이나 헌병대의 보호를 받는 병사도 아니기 때문에 "그게 PTSD 증상인지, 미리 알려야라는 의무가 있는지 몰라서 그랬다", 혹은 "예견되는 피신고자의 보복이 두려웠다" 라고 하면 그에 대해 마땅히 뭐라 할 논리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카투사 박탈 후 한국군 편입만 해도 충분히 큰 처벌이긴 하다.
연구가 잘 되어있는 미국 조차도 '비겁한 사람들의 병'으로 치부된 흑역사가 있다. 조지 S. 패튼의 일화가 아주 좋은 예이고, 더 퍼시픽에도 나온 적이 있는 해병대의 전설 '조지프 풀러'조차도 공개적으로 PTSD 환자를 '비겁한 자'로 매도한 적이 있으니…[67]
근현대의 군대들도 그렇거니와 한국군 북한군 역시 앞에 서술한 것처럼 인식부족으로 '비겁한 자의 표상'으로 삼은 경우가 꽤 많았다. 심지어 자신과 싸우는 상대편 군인들의 PTSD를 공개적으로 조롱하는 경우도 있으니[68] 그나마 현대에 와서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니 다행인 셈.
본 문서의 내용이 실제로 군인들이 많이 겪는 증상이란 점에서 주로 군대에 국한되어 작성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군인뿐만 아니라 학교와 사회로 확장해서 보아야 한다. 특히 한국은 지나치게 정신과 병원을 좋지 않게 본다. 어떠한 종류의 폭력이건 인간의 사고를 망가트리고 PTSD를 발현시키며, 그 결과는 자신에게 나타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타인의 생명이나 신체에 심각한 해를 가할 수도 있다. 더욱이 지금 소위 자라나는 새싹이 폭력에 절어가고 있는 사회현상은 사회문제를 넘어 개인 신상의 위협으로까지 자라날 수 있다. 내 옆자리에 PTSD 환자가 아무런 치료도 받지 않고 어떤 통제도 받지 않고 앉아있으며 사람을 죽일 가능성도 있다고 상상해보라.[69]
다소 조잡한 비교이기는 하지만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한다면 '''PTSD란 정신이 상처를 입은 후 회복이 안되는 병'''이다. 사람의 몸이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는 것처럼 사람의 정신도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상처를 입는데 평소에는 이 상처가 자동 치유되지만, 지속적으로 상처를 괴롭히거나 너무 크게 내면 낫지 않고 덧나서 곪기 시작하는 일이 생긴다. 이걸 PTSD라고 이해하면 비교적 간단하다.[70] 무엇보다 이런 식으로 이해하면 PTSD에 대한 오해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 PTSD는 마음이 나약한 사람들이 걸리는 병이다? 아무리 몸이 튼튼한 사람이라도 칼로 공격 당하면 피나고, 피 철철 흘리면 결국 죽는다. 건강한 사람이면 상처에 좀 더 잘 버티는 것처럼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에도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개인차를 뛰어넘는 상황이란 얼마든지 있다.[71] 허약한 사람이라도 면도칼에 베여 죽는 확률은 별로 없지만 아무리 건장한 사람이라도 큰 칼에 베이면 목숨이 위험하다.[72] 당신은 PTSD에 안 걸릴 것 같은가? 그건 당신은 칼에 찔려도 상처 안 날 것 같다는 이야기하고 똑같은 말이다. 사이코패스는 PTSD에 걸리지 않는다? 고통을 모르는 통각이 마비된 인간이라도 칼에 찔려서 피 많이 흘리면 죽는 건 마찬가지다. PTSD 증상을 호소하는 것이 꾀부리는 것, 잔머리 굴리는 것, 요령 피우는 것으로 보이는가? 과다출혈한 사람은 수혈 못 받으면 죽게 된다.
한국에서는 집단괴롭힘의 피해자들이 PTSD를 앓고 있는 것을[73] 의지 부족으로 모는 사람들이 부모 형제 자매 중에도 있어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락부락한 깍두기 형님들이라 할지라도 PTSD에 걸렸다간 얄짤없다. 예컨대 불의의 급습을 받아서 칼침을 맞는다거나, 오밤중에 갑자기 납치당한 채로 야산에 끌려가서 생매장당할 뻔하다가 간신히 죽다 살아났다고 가정하자. 이들이 그러려니 하고 툭툭 털고 넘길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실제로 이런 외상적 사건을 경험한 조폭들 중 상당수는 만성적인 두통과 불안을 호소하며, 매일 악몽을 꾸고 헛소리를 하거나 불면증에 시달리거나 식은땀을 비 오듯 흘린다. 그리고 이들 중 상당수는 실제로 임상적으로 PTSD로 진단받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으며 이와 관련하여 정신의학계에 도는 일화도 많이 있다.
첫 문단에도 있듯 대구 지하철 참사 이전에는 PTSD는 그야말로 그런 질병이나 있는 거냐 수준으로 질병 취급도 못 받고 그냥 의지드립으로 끝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5.18 민주화운동, 삼풍백화점 사고 등등 숱한 사회적 참사를 겪어오면서 그런 환자들이 '''분명히''' 많은데 PTSD는 완전히 아웃 오브 안중 그 자체였고 안그래도 정신건강의학과[74] 상담 자체를 터부시하던 사회 분위기와 맞물리기도 했다. 하지만 대구 지하철 참사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시작하던 시기라 그 영향력이 앞선 사건들과는 양적으로 달랐고 PTSD를 양지로 끌어올린 계기가 되었으며 현재는 참사가 터졌다 하면 생존자에게 외상 치료 후 PTSD 치료가 필수 옵션으로 따라붙는다. 너무 형식적이고, 아직 갈 길이 멀어서 문제지. 세월호 참사 유족의 증언을 들어보면 한국의 심리상담은 문제가 많다.

"집에 가도 엄마, 아빠는 진상규명을 위해서 밖으로 나갔고 학교에 가면 선생님들이 상담을 자꾸 시켜요. 아이들한테. 그런데 그 아이들은 그 상담을 받아들일 수가 없는 거예요. 그게 '''상담이라는 게 어떤 아이를 감정적으로 너희 아픈 부분을 어루만져 주는 게 아니고 자꾸 상담을 학문적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거예요.''' 이 치료가 뭐 2년 정도면 어느 정도 회복이 된다라든지 약간 이런 단어들을 사용하니까 아이들은 받아들일 수가 없는 거죠."-중략-

"누가 형제자매가 자기가 유가족인 것을 밝히고 상담을 받으러 가고 싶어요.(찾아오는 그런 서비스는 아직 전혀 없어요?) 애초에 있었는데 그게 정말 기가 막힌 게 장례식으로 찾아왔어요. 와서 2주 뒤에 내가 너를 방문할 것이다라고 통보를 해요. 그러면 정말 2주 뒤에 찾아와요, 방문을 두들겨요, 집 문을 두들겨요, 상담 받으라고. 그런데 정말 안 하거든요, 진짜 그게 정말 상처거든요. 아무 얘기하고 싶지 않은데 그런 식으로 되다가 어느 순간 흐지부지 되는 거예요. 저는 그 트라우마, 상담 받은 것 자체가 트라우마여서 상담 너무 싫어요."-중략-

"부모님이, 한번 엄마가 갑자기 제 앞에서 죽고 싶다고 말하신 적이 있어요. ‘차가 날 들이받았으면 좋겠어, 윤아야’ 이러는 거예요, 엄마가. 그래서 깜짝 놀라서 트라우마 상담사 분 명함을 준 적이 있어요. 전화를 했어요, 엄마가 이런다고 무섭다고. 그런데 상담사 분이 지극히 일적으로 ‘'''아, 그랬어요? 아, 그러셨구나'''’ 이러시는 거예요, 너무 가식적이게. 그래서 뭐지, 이건 하면서 계속 이야기를 그래도 하긴 했어요, 털어 놓을 곳이 없으니까. 그랬더니 하시는 말씀이 ‘엄마가 '''죽고 싶다'''고 몇 번 하셨어요? 엄마가 '''자살'''충동 몇 번 느끼셨어요’ 저한테 물어보는 거예요. ‘'''자살''' 프로그램에 참여해요? '''자살''' 충동 여태까지 몇 번 있었어요? '''죽고 싶다'''는 말 몇 번이나 했어요’ 저한테 되게 자살이랑 죽고 싶다는 이런 강렬한 단어들을 그 당시 저에게 계속 던지는 거예요. 말할 때마다. 말에 그 단어가 빠지면 안 된다는 듯이 당시 다 포함을 시켰어요, 모든 문장에.[75]

그런 것을 딱 하고서 결국은 한다는 소리가 '''‘자살방지 프로그램이 있으니까 거기 가세요’'''였어요. 그래서 딱 그런 것을 통화하고 나니까 통화 끊고 나서 저는 딱 든 생각이 그거예요, ‘다시는 여기에 전화 안 해. 나는 다시는 상담 안 받아’ 이거였어요."

세월호 희생자 자매들 "학교도 직장도 잃어"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세월호 참사 1주기 전날 인터뷰

하지만, '''그나마 이 정도라도 PTSD에 대한 인식이 확립되어 지금은 PTSD 치료가 필수 옵션으로 붙었다는 점은 사후 처리에 있어 큰 도움이 되는 점은 분명하다.''' .
5.18 PTSD도 당연하다. 5.18 민주화운동이 정권 탓에 조사가 지지부진했던 것도 있지만 전두환, 노태우 사형선고 당시(!)에도 PTSD에 대한 인식은 전혀 없었다. 그게 대구지하철 참사, 세월호 사고를 겪고 나서 PTSD가 어느 정도 국민에게 인지도가 높아진 후의 일이다. 40년이 지나도 PTSD는 끈질기게 따라붙는다.[76]

3.3. 사이코패스는 PTSD에 걸리지 않는다?


보통 사이코패스는 정신력이 강해서, 또는 죄책감 자체를 느끼지 못해서 PTSD를 겪지 않을 것이라는 오해가 있으나 사이코패스라고 해서 PTSD에 걸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이코패스는 정신력이 강하거나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감정에 공감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이코패스도 감정이 있고 자기보호본능이 있기 때문에 본인이 직접 겪으면 PTSD에 걸릴 수 있다. 그 표출에 있어서는 남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겠지만. 오히려 PTSD 환자들이 후천적으로 사이코패스의 증세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3.4. 유년기의 외상 후 억압은 PTSD의 한 종류다?


'''그렇지 않다'''! PTSD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같은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억압(repression)이라는 개념에 '''전혀, 조금도''' 의지하고 있지 않다. 애초에 억압(Verdrängung)이라는 표현 자체가 "(의식 영역으로부터) 무의식으로 몰아냄"을 의미하며 그 개인에게 있어서 이나 자유연상(free association)과 같은 방법을 빌어서 슬쩍슬쩍 나타나는 것이다. '''즉 "스트레스 장애" 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것이다. 사실 정신분석 치료에서는 무엇이 억압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개인의 삶을 저해하기 때문에 치료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억압이라는 문제가 가장 근본적이고 깊은 층위의 원인이기 때문에 현재의 불안, 짜증, 우울 등에 대한 근원적 치료를 위해서는 그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정리하면 유년기 성폭행 문제로 PTSD 치료를 받는 청소년들과 유년기 성폭행 기억의 억압을 의심해 내면아이 치료를 받는 내담자들은 서로 다르다. '''일상의 고통과 삶의 질의 차이는 서로 나란히 놓고 비교하기가 미안할 만큼 크다.'''[77]
무엇보다도 유년기의 외상 후 억압이라는 테마는 사회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으며 학술적으로도 그다지 지지받지 못 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유년시절의 성폭행 기억은 억압된다 문서로.
다만 이 문서가 대부분 인용한 <트라우마>란 책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거짓기억 증후군 재단이 피해자들을 마녀사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3.5. PTSD는 현대에 새로 등장한 질병이다?


PTSD라는 '질환'이 존재한다는 인식과, 그 원인과 과정에 대한 연구의 진행이 현대에 들어서 시작해서, 마치 이 질병이 현대에 '새롭게' 등장한 신종 질환인 것처럼 오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개요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질환은 이미 고대부터 존재했던 질환이다. 인간의 선천적인 심리 문제와 닿아있는 질환이기 때문이다.

4. PTSD와 비슷한 증상


입대해서 처음으로 실탄 사격을 할 때와 처음 수류탄을 던질 때에도 전쟁으로 인한 PTSD와 거의 동일한 증상이 나타난다. 게임이나 영화로만 보아왔던 총과 수류탄의 소음과 위력에 놀라 '''심장이 엄청나게 뛰면서 아무 생각도 안 나고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상황이 실제로 발생하는 것이다. 이럴 때 자칫하면 큰 사고가 발생하기 때문에 조교들의 긴장 역시 최고조에 달한다.
이런 실탄 사격과 수류탄 훈련의 흥분 상태는 PTSD가 아닌 '포탄충격증후군(셸 쇼크)'이며, 이는 누구나 경험하고 자신이 총에 맞거나 한 것은 아니기에 비교적 금방 회복한다. 포탄충격증후군(셸 쇼크)은 PTSD를 일으킬 수 있는 요인이지만 셸 쇼크 = PTSD는 아니다. 예를 들자면 자동차 사고를 일으키면 극도의 흥분 상태[78]를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사고 상황에서 흥분 상태를 경험하는 것은 자동차 사고로 인한 흥분이며, 이 흥분이 가라앉고 나면 끝난다. 이는 PTSD가 아니다. 사고 경험으로 인해 지속적인 정신장애와 일상적인 문제를 일으킨다면 이는 '자동차 사고로 인한 PTSD'가 된다.
현대의 연구자들은 포탄충격증후군을 전투 스트레스 반응(combat stress response)이라고 하여 PTSD와 함께 스트레스의 한 종류로 분류하고 있으며, 또한 근거리에서 폭탄이 폭발하는 청각적, 심리적 충격은 경미한 외상적 뇌 손상(mild traumatic brain injury)이라고 하여 심지어 뇌진탕(concussion)의 한 종류로 보고 있다. 이것이 PTSD와 갖는 연관성은, 적어도 이러한 증상들이 향후 PTSD의 발병을 예측하는 강력한 선행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 자체만으로는 PTSD가 아니며, 향후 100% 발병을 장담할 수도 없겠지만.
베트남전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쟁 상황에 발생하는 죽음의 공포 때문에 뇌 속에서 분비되는 엔돌핀(모르핀의 무려 400배에 이르는 효과가 있다) 덕분에 헤로인을 복용하는 것보다 3배의 황홀감에 빠진다고 한다. 덕분에 이러한 느낌을 지속시키 위해 베트남전에 참전한 파일럿 중 많은 수가 마약류에 쩔어 살아 사회적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이것도 PTSD로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잠시의 흥분 상황에 빠지는 것이 PTSD는 아니다. 이 흥분 상태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자극 중독'인 것이며 반대로 이 흥분 상태를 지나치게 두려워하고 멀리하는 것이 PTSD이다. 저 상황은 그저 '흥분 상태'인 것이지 PTSD가 아니다.
보통 설명되는 PTSD보다는 좀 약할지라도 한국에서 전역한 남성에게서 이러한 트라우마 비슷한 증상을 굉장히 흔히 볼 수 있는데 '''바로 군대 꿈이다'''. 대표적으로 입영통지서가 날아오거나 일어나니 갑자기 선임에게 갈굼당하거나 맞거나 쫓아오거나 하는 식으로. 이는 전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20대에 한정되는 문제가 아니다. 4, 50대에 들어서까지 군대에 관련된 악몽을 꾸는 경우를 매우 흔히 볼 수 있다.
'''20여 년 동안 군대와는 아무런 상관 없이 평화롭게 살던 사람을 어느 날 갑자기 끌어다가 군복 입히고 총 쥐어주고 굴리고 바깥세상과는 동떨어지는 환경을 강요하면 어떤 인간이든 트라우마가 생긴다.''' 한국 남자들에게 '군대 다시 가는 꿈이 제일 무섭다'는 건 그냥 우스갯소리로 넘길 일이 아니다. 그러한 꿈 또한 트라우마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만일 바로 윗 동네의 들이 가하는 침략 위협과 대륙바다건너 지정학적인 관계가 없었으면 징병제를 실시하지 않았거나 모병제 전환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5. 증상


어떻게 그 몸으로 전선을 돌파하고 먼 길을 걸어 집까지 돌아올 수 있었을까 믿기지 않을 만큼 몸이 못 쓰게 된 건 약과였다. 집에 돌아왔는데도 조금도 기쁜 기색이 없었다. 자기가 없는 동안에 태어난 아들을 보고도 안아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렇다고 무표정한 것하고도 달랐다. 시선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 하고 불안하게 흔들리고, 작은 소리에도 유난스럽게 놀랐다. 잔뜩 겁을 먹은 표정은 무슨 소리를 해도 바뀌지 않았다. 따뜻한 음식과 잠자리도 그를 안정시키진 못 했다. 밤에는 바람 소리, 쥐 부스럭대는 소리에도 놀라 한잠을 못 잤다. 어디를 어떻게 무슨 꼴을 당하며 왔기에 그 꼴이 되었을까. 죽기를 무릅쓰고 사선을 넘은 무용담도 있으련만 말하지 않았다. 그런 흔적도 안 보였다. 오빠는 심한 피해망상을 앓고 있었다. …제풀에 놀라 머리 먼저 아무 데나 쑤셔박고 덜덜 떠는 증세까지 새로 생겨났다.

- 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위 발췌문의 내용은 서울 교외 시골 학교에서 선생을 하다가 북한이 서울을 점령하던 중에 의용군에 끌려갔던 박완서의 친오빠가 1.4 후퇴 직전에 도망쳐온 모습이다. 보다시피 PTSD를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작품이 작가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겪은''' 실화를 소설로 쓴 자전소설임을 생각하면 정확한 것도 당연하지만. 이 오빠는 얼마 못 가 숨지는데 사망 경위는 <엄마의 말뚝 2>에 나온다.[스포일러][스포일러2][원문출처] 아래는 가장 흔한 PTSD 증상이다.[79]
  • 어둠 속에 혼자 있거나 혼자 자는 것, 악몽 등을 두려워한다(특히 추적, 함정, 위협 등).
  • 목욕할 때나 수영할 때 얼굴에 물이 닿는 것을 싫어한다(숨막히는 느낌 등).
  • 자기 자신의 몸에 대한 이질감, 자신의 몸을 잘 돌보지 않거나 성적인 주의를 피하기 위한 조작
  • 위장병, 두통, 관절염, 성장 저하 등
  • 여름철에도 옷을 두껍게 입고, 헐렁한 옷을 입거나 옷을 벗어야 할 때(수영이나 목욕 잠잘 때 등)라도 옷을 잘 벗지 않으려 하고, 욕실을 사용할 때 매우 강하게 프라이버시를 요구하기도 하며, 어두운 곳에서만 사랑을 나누길 고집한다.
  • 음식에 관한 장애, 약물과 알코올 남용, 또는 완전한 절제(통제력을 잃는 것에 대한 공포나 범죄자를 모방하게 되는 것에 대한 공포로 인해), 또는 다른 것에 대한 탐닉,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행동(가령 지나친 목욕이나 손 씻기 등)
  • 자해[80], 자학, 자기파괴감
- 요리 도중에 '우연히' 스스로 베는 행동, 머리를 박거나 발을 차거나 또는 설명할 수 없는 상처들. 또는 숨도 못 쉴만큼 신체를 좁은 공간에 넣거나 의류를 꽉 끼게 입는 행위. 고통을 느끼면, 반복되는 기억의 재생과 끊없이 들려오는 생각들에서 잠시나마 자유로워질 수 있고 자기혐오와 죄책감의 해소에도 효과적이다.
- 알코올 중독, 게임 중독, AV 중독 등. 중독의 가장 큰 이유는 플래시백으로부터의 도피가 가장 크다. 그리고 FPS나 격투 게임 속 분노, 긴장, 아드레날린이 판치는 환경에서 느끼는 익숙함[81][82], 또 알코올과 약이 가져다주는 짧은 망각과 붕 뜨는 느낌, 그리고 평소 플러스 감정을 전혀 느끼기 어려운데 AV를 보면 잠시나마 얻는 짧은 쾌감. 이런 것들 때문에 중독에 빠진다.
그리고 이를 달리 말하면, 고통스런 경험을 겪은 이들이 평온한 일상으로 애써 돌아왔다가 결국 지옥으로 제 발로 다시 돌아가는 이유와도 관계가 깊다. PTSD환자들은 정말 따뜻함과 휴식, 행복을 세상 누구보다 갈구한다. 하지만 평온한 일상 속에 있을 때는, 지옥의 환경에서 고통을 받는데 익숙해진 자신들의 망가진 사고와 신체 등으로 인해 끝없는 플래시백을 겪고 이질감을 심하게 느끼며 휴식도 행복도 감정 자체도 느끼지 못하며 매순간 고통스러워한다. 결국 이들은 행복의 끝자락을 조금이라도 다시 느끼기 위해 지옥으로 돌아가고, 오직 고통과 아드레날린만이 넘치는 익숙한 지옥 환경 속에서 다시 한번 절절히 휴식을 갈망하고 행복을 꿈꾸게 된다. 시지푸스와도 같이 이들은 지옥-일상-지옥-일상을 반복하며 휴식과 행복을 찾아 달리지만 언제 어디에도 쉬지 못하고 끝없이 고통받고 갈구한다.
  • 자살충동이나 자살기도, 강박관념
  • 눈에 잘 띄지 않거나 완벽하게 되려는 욕구, 또는 완벽하게 나쁘게 되려는 욕구
  • 우울증
-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중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네가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그 심연 또한 너를 들여다볼 것이기 때문이다.” (니체, 선악을 넘어서 中)
- 현실부정, 자기혐오, 분노, 죄책감, 고통이 계속 쌓이다보면 사건 이후 초반에는 꺼려지던, 폭력적이거나 그로테스트한 환경, 유혈과 긴장 상태, 어두운 장소 등에 익숙해지고 편안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어느새 자신을 이렇게 만든 가해자의 가면을 본인이 쓰고 새로운 피해자를 만들곤 한다. 이유야 여러가지겠지만 그 중에는, 본인이 세상의 모순 속에서 알고 싶지 않은 걸 겪게 돼서 현재 죽을만큼 괴롭고 늘 지옥에 있는데, 주변인들은 희희낙락하며 본인을 나약하다고 취급하거나 전혀 공감 못할 때 이 지옥을 이해시켜 주고 한단계 성장시켜 주고 싶어서라는 이유도 있다고 한다.
  • 살의욕구.
- 학교폭력, 가정폭력 등과 같이 명확한 가해자가 있는 경우 초기에는 가해자에 대해서 강하게 느끼고, 시간이 지나서 점차 자기 제어력이 부족해지다보면 온갖 감정과 생각이 제멋대로 솟아나는 와중에 이유 없이 불특정 다수에 대한 살의욕구를 느끼곤 한다. 그냥 드는 생각 정도가 아니라 아차하는 순간 저지를 거 같아서 매순간 온 힘을 다해 자신을 막고 있다. 괜히 이들이 안절부절해보이고 사람을 피하는 게 아니다.
- 분노를 표출한 방법을 모르거나 실제 또는 상상으로 분노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모든 이에 대한 격렬한 적대감이나 가해자의 인종에 대한 적대감을 표출한다.
  • 인간불신, 대인기피증과 같은 특정 부분에 대한 기피, 불신.
  • 피해의식.
- 피해망상과의 차이점은 피해망상은 현실 검증 능력이 없는데 피해의식은 현실 검증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현실 검증 능력은 다른 말로 현실 판단력 내지 현실감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느 순간 '내 주변 사람들이 나를 싫어한다'는 생각(내적 현실)이 들 때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해 볼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 습관적으로 머리카락을 뽑거나 꼬거나 만지는 습관. 자극을 통해 순간적으로 고통과 망상 속을 떠날 수 있기에 PTSD환자들이 공부하거나 뭔가에 집중하려 할 때 자주 나타난다. 너무 오래 머리를 꼬면 두통과 두뇌 효율 저하로 인해 집중력이 더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 분열(비인격화)
- 충격을 받으면 정신적 감각을 잃거나 기억, 감정이나 상황에 대한 감각을 잃는다.
  • 끝없는 긴장 상태, 만성피로
- 계속되는 자극(ex, 플래시백)으로 심신이 24시간 늘 긴장상태에 있으며 심지어 자는 순간에도 제대로 이완을 하지 못한다. 이로 인해 장기와 근육이 늘 딱딱하게 굳어 호흡은 쉽지 않고 뭐든지 쉽게 지치며 피로 회복 속도는 매우 느리다. 당장 이들의 승모근 부위만 만져봐도 돌처럼 굳어있음을 확인 가능하다. 그리고 이런 플래시백, 생각, 감정, 충동(자살, 살인 등) 등의 자극들은 환자의 체력을 끌어다 발생하고, 이것들과 싸우고 억누르는데도 또 체력이 소요된다. 살려면 운동을 해야하지만 운동할 경우, 깨끗한 냇물을 휘휘 저어 진흙탕 일어나듯 더욱더 과거 기억과 생각, 감정이 원활히 솟구치고 그 결과 동작 하나하나가 너무 무겁고 지친다.[83] 그리고 사실 운동을 해서 체력을 길러도, 워낙 소비량이 많다보니 겨우겨우 안 죽고 살아있을 수준까지만 체력 유지가 된다.
  • 사고에 대한 엄격한 통제, 유머가 없음, 또는 극단적인 엄숙함
  • 위축되고 숨거나, 늘 고개 숙이는 아이였던 어린 시절(특히 늘 밖에 있거나 친구 집에만 있었던 아이). 누가 지켜보거나 놀라는 것에 대해서 불안해한다.
  • 남을 믿지 않거나(믿는 것은 안전하지 못하므로), 마구잡이로 아무나 믿는다.
  • 극단적인 모험을 하거나, 모험을 아예 할 수 없다.
  • 통제와 힘 등에 경계선을 그어놓고 자제심을 잃는 것을 두려워해 주위 환경이나 사람들을 통제하려고 무리한 시도를 하며, 성적인 것과 관계된 어떠한 것에 대해 강요받을 때(또는 단지 요청받았을 때) 극단적인 반응을 보인다. 사랑을 요구하는 사람에 대한 모든 감정을 닫아버린다.
  • 죄책감, 수치, 자기비하
  • 다른 사람의 작은 호의에 대한 과도한 감사 표시, 과도한 미안함 표시, 또는 무시
- 피부가 있을 때는 외부 균에도 어느 정도 방어가 되나 피부가 사라지면 바람에도 고통스럽듯이, PTSD 환자들은 일반인과 달리 마음의 방어막이 완전히 벗겨진 상태이기에, 말 한마디에도 굉장히 심하게 상처입고 흔들린다. 게다가 문제해결을 위해 돌아가야할 머리가 제대로 돌아주질 않기에 문제에 휘말릴 경우 본인 잘못이 아니더라도 설명 및 해명 자체가 어렵다. 그렇기에 되도록이면 문제 발생에서 바로 회피하거나 어떻게든 빨리 종결시키려고 과도하게 미안함을 표시 또는 무시한다. 그리고 이 외에도 늘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칼날 위에 선 상태이다보니 타인에 대한 감정 표현이나 행동에 있어 매우 부족하거나 또는 과도하게 나가는 부분이 없잖아있다.
  • 자신을 피해자 입장에 놓는다(특히 성적으로).
- 자신의 힘이나 "안돼"라고 말할 권리를 모름, 청소년기에 시작해 훨씬 나이 든 사람과의 인간관계.
  • '사랑받으려는' 욕구
-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방법을 알고, 인간관계에 있어서 많은 희생을 한다.(‘사랑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다.’라는 생각)
- 초기에 PTSD 환자들은 벗어나기 위해 정말 노력한다. 스스로도 이제 사건이 끝났으니 그 전의 본인 능력, 인간관계, 감성 등 모든 걸 되돌릴 수 있을 거 같고, 주변에서도 ‘모든 게 지나갔으니 이제 돌아오면 돼’라고 말해주고. 그렇게 희망을 품고 노력하다보면 정말 금방 돌릴 수 있을 거 같아보인다. 그렇게 1년, 2년이 지나다보면 자기로 인해 주변이 망가지면서 서서히 깨닫게 된다. 세상 모든 게 여전히 정상인데 난 거기에 속하지 않는다는 걸. 주변이 행복하고 따뜻하고 맑은 날들이 펼쳐져도 내 안에서는 늘 비가 내리고 번개가 치며 유황 불꽃이 들끓다보니 전혀 공감이 되질 않으며, 본인은 고통스러운데 외상이 아니기에 남에게 보여줄 수도 없다. 그러면서 주변 사람들은, '겉보기엔 정상인 같고 더이상 괴롭힘 받는 것도 없는 놈'이 혼자 괴롭다 해대는데다가, 정작 도와주러 다가가면 밀쳐내니 지쳐 떨어져나가기 시작한다.[84] 결국 환자 본인은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계속 그 사건에 묶여 한발짝도 성장할 수가 없고, 하는 거마다 공포, 트라우마, 대인기피증, 집중 불가 등으로 실패만 계속 해대는 데다, 종교, 병원, 철학, 심리치료 모든 걸 뒤져도 해결을 못해주니, 어느샌가 앞은 이제 길이 없고 뒤는 자살각이니 뒤로도 못 가는 상황에서 지치기 시작한다. 사실 불면증이니 공황장애니 하지만 이들에게 제일 무서운 건, 끝없는 생지옥 속에서 탈출구가 없는 것이다.
  • 어린 시절과의 단절(특히 1~12세까지), 특정한 사람이나 장소에 대한 기억이 없다.
- 이것은 학대의 가장 중요한 증거 중 하나다. 실제 내담 사례에도 기억의 결여가 과거 학대 경험의 열쇠가 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거꾸로 미숙한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실제로 없는 학대 경험을 심는 경우도 있으므로 이 부분은 유동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심리학은 단편적인 내용만으로 만드는 상상이 아니라 종합적인 증거물을 바탕으로 하는 추리에 가깝다.
  • 무서운 비밀을 혼자서만 안고 있는 듯한 기분, 말하기 두려운 것들(불결한 느낌이나 맞은 자국 등)
  • 자신이 미쳤거나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기분, 실재하지 않는 기분, 또는 다른 사람들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기분이나 환상세계, 인간관계, 인물을 창조해낸다.
  • 자아정체감 상실
- 사건 이후 PTSD 환자들이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 자신이 자신이 아니라는 느낌이다. 좀 더 상세히 말하자면, 예전의 본인이 A, B, C, D, E의 요소가 합쳐진 상태였다면, 사건 이후는 B, D 등이 사라지고 A, C, E만이 합쳐져 새롭게 존재하는 느낌이 든다. 그렇기에 과거 기억은 인지되지만 본인이 다른 사람 기억을 흡수해서 떠올린 듯 해당 과거에 대해 판단, 감정이 전혀 다르게 생겨나고, 본인 스스로도 확연히 자신이 기억 속 인물과 다른 존재라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다보니 가족, 친구 등 주변인들은 생김새와 기억은 전과 같은데 전혀 다른 사람이 자신들 옆에 있는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 부인, 무의식, 기억억압("나쁘지는 않았다", "내 상상일 뿐이다" 등으로 자신의 꿈이나 기억을 최소화한다.), 어떤 인물이나 장소, 사건 등에 대한 설명할 수 없는 혐오, 갑작스런 불쾌감을 가져다 주는 감각(빛이나 색, 시간)
  • 섹스는 '더럽다'고 느낀다. 남이 자신을 만지는 것을 싫어하고 산부인과 검진이나 특정의 성적인 행동에 대한 혐오감, 자기 자신의 몸에 의해 파괴되는 것 같은 기분, 가해자와 동일한 성의 사람에 대한 혐오 사랑/섹스/지배에 대한 혼동 등
  • 상극이거나 매우 격렬하게 싸우는 인간관계를 가진다.
  • 거울을 피한다(남의 눈에 띄지 않으려는 것과 관련이 있으며 자기비하, 수치심, 신체에 대한 불신). 자기 자신을 묘사하지 못 한다.
- 이들에게 자기 자신을 느껴지는대로 그리라고 하면, 제대로 온전한 사람 형태를 그리지 못한다. 그릴 줄 모르는 게 아니라 느낀 그대로 그리게 되면 울룩불룩한 기괴한 괴물로 그려지는데, 이는 이들이 느끼는 자신의 상태가, 조율 가능한 컨트롤 타워가 완전히 붕괴되어 제멋대로 날뛰는 상태라서 그렇다. 게다가 이런 모습의 자신을 실제로도 느끼다보니, 사건 전 멀쩡하던 환자들의 몰골이 갈수록 기괴해지거나 여기저기 육체에 문제가 발생치 않을 수가 없다.[85]
  • 자신의 신분을 바꾸고 싶은 욕망[86]
  • 자신의 행복에 대한 제한된 관용, 행복을 믿는 것을 주저한다.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 자신을 '벌줌'[87]
- 대화를 하다보면, 이들이 상대방 정신에 병을 만들 정도로 자기비하가 심하다는 걸 알게된다. 대체로 일반 사람인 경우에는 칭찬을 듣고 상을 받거나 하면 자신감이 솟아나고 긍정적인 효과가 발생하여 업그레이드 되지만, 이들의 경우에는 전교 1등이 되었어도 '난 운이 좋았어.'라던가 '고작 전국 수준에 비하면 난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소리들이 하루종일 내면에서 들리면서 더욱더 밑으로 파고 들어간다. 게다가 더 심각한 건 이들로서는 웬만한 거는 감흥이 없다는 것이다. 24시간 충격과 공포를 느끼게하는 기억과 목소리 속에 있다보니 극심하게 강한 자극이 아니라면 가벼운 칭찬이나 즐거운 일 정도로는 칠흑의 바다에 떨어뜨린 물 한방울과 차이가 없다.
- 어릴 때 특정 음식을 먹지 못 하는데 먹을 것을 강요당하거나, 혼나고 맞은 경험이 있을 경우 이런 증상이 나타난다. 음식만 보면 혼난 기억이 떠오르는데 먹고 싶겠는가?
- 은근히 빈도가 많다. 심리적 영향이 몸에 물리적으로 나타난다는 가장 흔한 증거로, 대개 면역체계의 혼란에 의해 생긴다.
  • 지속적으로나 갑자기 생기는 편집증상
- 자신의 가족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의심하거나 피해망상에 사로잡힌다.
  • 양극성 행위.
- 사실 말이 되지 않아보이겠지만 PTSD 환자의 증상으로는 특정 상황을 회피하거나 오히려 그 상황을 다시 찾는 상황에 오게 되는 경우가 있다. 강간 피해 여성이 성매매의 길로 빠지는 것, 사고 피해자가 다른 사고와 관련된 영상(도호쿠 대지진, 9.11 테러 등 대형 사고.)을 탐닉하는 것 등.
  • 집착
- 위의 양극성 행위와 매우 유사하다.
  • 플래시백. (갑자기 생생하게 떠오르는) 회상.
- 과거의 아픈 기억과 감정이 머릿속에서 다시 재생되는 것을 말한다. 강도 높은 PTSD에서는 해리와 더불어 거의 필연적으로 나타난다. 문제는 너무나도 고통스럽지만 피할 수가 없어 극도의 부정적 감정을 느끼게 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울거나 패닉, 해리를 함께 경험한다.[출처] 이는 PTSD를 소재로 다루는 대중매체에서 가장 흔히 다루어지는데, PTSD의 원인이 된 상황과 비슷한 상황에 마주쳤을 때 패닉, 발작, 극심한 공포를 느낀다. 처음부터 착각할 정도로 유사한 상황이라면 말할 것도 없고, 실제로는 그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처음부터 '이성적으로는'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한 예로 미국에서는 독립기념일과 같은 큰 국경일 행사 때 폭죽을 이용한 대규모 불꽃놀이를 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지방자치단체나 경찰서나 소방서 등에서는 참전용사 집 근처에서 불꽃놀이를 자제하자는 홍보를 하는 한편, 참전용사들에게 미리 조심할 것을 경고하고 있다. 불꽃놀이로 인한 폭음과 섬광이 참전 용사들에게 전쟁 경험을 연상시켜서 이 플래시백 등의 PTSD 증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88] 참전 용사 본인들도 그게 기념일을 축하하는 폭죽놀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PTSD 증상을 호소한다. 해당 기사 더 퍼시픽에서 유진 슬레지가 보인 증상도 이것이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뒤 아버지와 함께 사냥을 나갈 일이 생겼는데 보통 사람이라면 살생에 거부감을 느끼더라도 그냥 못하겠다고 말하고 가거나 불쌍한 동물에 대한 연민에 다소의 눈물을 보이는 선에서 끝났겠지만, 그는 그 자리에서 바로 주저앉으면서 통곡을 했는데 이건 PTSD의 전형적인 증상이다. 또한 잠을 잘 때도 계속 심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여 아버지가 문 앞에서 지켜봐야 했을 정도였다. 강도에 따라서는 다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아픈 기억 속에 빠져서 겉보기에는 무기력하게 멍하게 있게 된다.[89] 그러나 실제로는 자신의 기억 속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고, 누구보다도 격렬하게 싸우고 있다.[90] 그나마 방어기제와 이성이 위험한 줄타기를 하면서 그나마 스스로든, 주변의 도움이 있든, 고통스러운 기억을 상기시키는 무언가[91]로부터 벗어나는데 성공하고, 진정해서 공격적인 행동까지 가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더 큰 문제는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방어기제는 이성을 충분히 앞설 수가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그 기억 속에서 헤어나오려 몸부림치지만 빠져나올 수 없어 통곡하거나 비명을 지른다. 심각한 경우라면 기억과의 싸움 없이, 거의 바로 공격적인 행동부터 실행하거나 혹은 비명부터 지르기 시작한다. 이 경우가 바로 방어기제가 이성을 완전히 압도한 상황이다. 위에 나온 폭죽을 예시로 들자면 폭죽이 터질 때 책상 밑으로 들어가면서 울고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PTSD로 인한 플래시백을 경험할 때, 절대로 엄살이다 뭐다 하는 생각조차 가지지 말라. 그 사람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그 기억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치지만, 결국 빠져나올 수 없어 절규한다.[92]
- 앞서 말한 플래시백에 의해 회피 불가능한 극도의 감정적인 고통에 의해 발생하는 현상으로 주변에 기댈 수 있는 사람이나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더라도 관계없다. 팔이 잘리면 잘렸다는 사실이 분명히 남듯이 마음의 상처 역시 부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끊임없이 발생하는 극단적인 고통으로 인한 자아와 인격의 훼손을 방지하지 위해 뇌가 스스로 발현하는 보호기제로, 육체가 자신의 것이 아닌 것으로 느껴지고 세상과 자신이 분리된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고 내면과 현실이 분리되게 된다. 이것으로도 자아가 훼손되는 것을 방어하지 못할 경우 뇌는 부정할 수 없는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아와 기억을 완전히 분리시키는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해리이며, 해리가 발생하면 겉보기에는 죽은 사람이 살아있는 것처럼 행동하거나, 망가진 환경을 멀쩡한 곳으로 인식하고 행동하는 식으로 현실을 부정하는 행동을 취하게 되는 데, 이것은 해리 발생자가 알고 있으면서 부정하거나 자아의 훼손으로 미친 것이 아니라 뇌가 자기 보호를 위해 과거에 고통을 발현시키는 기억과 감정, 외부로 들어오는 감각 등 모든 것을 가능한 모조리 차단하고 왜곡시킨 것이다. 즉, 해리 발생자는 고통으로 인한 인격의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자기 보호를 하고 있다. 이것으로 인해 동반될 수 있는 증상은 다중 인격[93]과 사고 정지[94]가 있다. 참고로 해리까지 가게 되면 그 사람의 상처로 인한 고통과 상태는 최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다만, 정말 최악인 건, 이게 가장 최악이 아니란 것이다.[95] 자신의 나쁜 상황을 인정하고 납득하고 이겨내려고 할 때 사람은 비로소 해리를 빠져나올 수 있다.
- 해리는 자신의 인격을 보호하기 위해 발현되는 최후의 마지노선이다. 그러나 이 해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끝끝내 트라우마를 이겨내지 못해 내면에 감춰진 인격이 드러나서도 끊임없이 고통이 계속 상기되고 떠올려지면 인격은 모든 고통과 부정적인 감정들을 끊임없이 받아야만 한다. 결국 사람의 인격과 자아마저 훼손하게 되며, 결국 그 사람의 자아는 붕괴되어버린다. 이들은 자신의 고통과 부정적인 감정을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으며 플래시백을 멈출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런 그들도 해리를 느끼기는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해리를 느낀다면 인격이 훼손될 리가 없다. 알고 있으면서도 어떻게든 회피할 수 없는 고통을 회피하려고 발악해버리는 것에 가깝다. 무기력해지거나, 미친 듯이 웃거나, 극단적인 폭력성을 가벼운 예시로 들 수 있다. 현실임을 인지하였지만, 알고 있어도 변하지 않는 상황에 대한 절망감으로 인해 무기력해진다. 웃으면 고통이 감소하고 긍정적인 감정과 기억을 끌어올릴 수 있으나 극도의 공포심은 여전하고 고통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폭력성은 자신을 괴롭히는 상황에 대한 저항이다. 고통을 주는 모든 것들에 대해[96] 물리적인 저항을 함으로서 자신이 그것으로 인해 파괴되지 않고 저항할 수 있다는 자기위안을 하려는 시도다.
  • 무의식적 방어기제의 극단화
- 위에서 언급한 폭력성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이다.[97] 방어기제는 모든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가진 일종의 보호본능이지만 PTSD를 겪는 사람들 중 특히나 타의에 의해 트라우마가 발생한 사람들[98]은 무기를 소지하고 다니려 하거나 격투기에 관심을 가져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욕구가 더 강해진다. 그리고 이렇게 무기를 가지고 다니다 순간적인 충동에 자해를 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이라크나 아프간에서 귀환한 미군 PTSD 환자의 경우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욕구와 자기 외부의 거리에 대한 인식의 문제로 완전무장한 채로 미국의 거리를 그대로 돌아다니다가 경찰관들이 출동하고 경찰관들을 저항세력으로 인식해 총격전을 벌이다가 사살된 사례도 있었다.
  • 살인 - 모든 고통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심해졌을 때 완벽하게 벗어나기 위한 마지막, 그리고 최악의 선택 1.[99]
  • 자살 - 모든 고통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심해졌을 때 완벽하게 벗어나기 위한 마지막, 그리고 최악의 선택 2.[100]

5.1. DSM-V에서의 진단


미국 정신의학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의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편람(DSM-5)의 진단 기준에 따르면 다음의 기준을 모두 만족해야 한다.
  1. 다음과 같은 방식 가운데 한 가지 이상으로 실제적이거나 위협적인 죽음, 심각한 부상, 또는 성폭력에의 노출을 경험.
    1. 외상성 사건(들)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
    2. 그 사건(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일어난 것을 생생하게 목격함.
    3. 외상성 사건(들)이 가족, 가까운 친척, 또는 친한 친구에게 일어난 것을 알게 됨.
주의점: 가족, 친척, 또는 친구에게 생긴 실제적이거나 위협적인 죽음은 그 사건(들)이 폭력적이거나 돌발적으로 발생한 것이어야만 한다.
  1. 외상성 사건(들)의 혐오스러운 세부 사항에 대한 반복적이거나 지나친 노출의 경험.[101]
주의점: 노출이 일과 관계된 것이 아닌한 전자미디어, 텔레비전, 영화 또는 사진을 통해 노출된 경우는 적용되지 않는다.
  1. 외상성 사건(들)이 일어난 후에 시작된, 외상성 사건(들)과 관련이 있는 침습 증상이 다음 중 한 가지 이상으로 나타난다.
    1. 외상성 사건(들)과 관련된 고통스러운 기억이 비자발적, 침습적으로 반복됨.
주의점: 7세 이상의 아동에서는 외상적 사건(들)의 주제 또는 특징이 표현되는 반복적 놀이를 한다.
  1. 꿈의 내용과 정동이 외상적 사건(들)과 관련되어 있는 괴로운 꿈이 반복됨.
주의점: 아동에서는 내용을 알 수 없는 무서운 꿈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1. 마치 외상적 사건(들)이 재발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거나 느끼는 해리성 반응.[102][103][104]
주의점: 아동의 경우 놀이를 통해 외상과 관련된 재현이 일어날 수 있다.
  1. 외상성 사건(들)을 상징하거나 닮은 내부 또는 외부의 단서에 노출되었을 때 극심하거나 지속적인 심리적 고통을 경험함.
  2. 외상성 사건(들)을 상징하거나 닮은 내부 또는 외부의 단서에 노출되었을 때 뚜렷한 생리적 반응을 나타냄.
  3. 외상성 사건(들)이 일어난 후에 시작된, 외상성 사건(들)과 관련된 자극에 대한 지속적인 회피가 다음 중 한 가지 이상으로 나타난다.
  4. 외상적 사건(들)에 대한 또는 밀접하게 연관된 고통스러운 기억, 생각, 또는 감정을 회피하거나 회피하려는 노력을 함.
  5. 외상적 사건(들)에 대한 또는 밀접하게 연관된 고통스러운 기억, 생각, 또는 감정을 상기시키는 사람, 장소, 대화, 행동, 사물, 상황 등을 회피하거나 회피하려는 노력을 함.
  6. 외상적 사건(들)이 일어난 후에 시작되거나 악화된, 외상적 사건(들)과 관련된 인지와 기분의 부정적 변화가 다음 중 두 가지 이상으로 나타난다.
  7. 외상적 사건(들)의 중요한 부분을 기억하지 못함.[105]
  8. 자신, 타인, 또는 세상에 대해 지속적이고 과장된 부정적 신념 또는 기대.[106]
  9. 외상적 사건(들)의 원인 또는 결과에 대해 지속적으로 왜곡된 인지를 함으로써 자신 또는 타인을 비난함.
  10.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감정 상태를 경험.[107]
  11. 주요 활동들에 현저하게 저하된 관심 또는 참여를 보임.
  12. 다른 사람들로부터 거리감 또는 소원해진다고 느낌.
  13. 긍정적인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 지속적으로 어려움.[108]
  14. 외상적 사건(들)이 일어난 후에 시작되거나 악화된, 외상적 사건(들)과 관련된 각성과 반응성의 뚜렷한 변화가 다음 중 두 가지 이상으로 나타난다.
  15. (유발 자극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음에도) 전형적으로 사람 또는 사물에 대해 언어적 또는 신체적 공격성으로 표현되는 이자극성과 분노 폭발.
  16. 무모하거나 자기파괴적인 행동.
  17. 과각성.
  18. 과장된 놀람 반응.
  19. 집중의 어려움.
  20. 수면의 어려움.[109]
  21. 증상 (진단기준 B, C, D, E) 의 지속기간이 1개월 이상이어야 한다.
  22. 증상이 임상적으로 뚜렷한 고통이나 사회적, 직업적, 또는 다른 중요한 기능 영역에서의 장애를 초래한다.
  23. 증상이 물질 (예: 치료약물, 알코올) 의 생리적 효과나 다른 의학적 상태에 의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

6. PTSD의 치료법


원인이 명확하기에 사실 근본적인 해결방법은 단순하다. 도망치지 않고 마주해서 완전히 이겨내며 소화하면 된다. 정서적인 안정, 감각 인식 등 다양한 방법을 다들 내세우지만 사실 임시방편이고 결국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어떻게든 소화하지 못한다면 고통은 절대 끝이 안 난다.[110] 질환의 경과 및 예후로만 따져본다면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증상이 악화되거나 재발 하기 때문에 PTSD에서 완전히 벗어나는게 힘들 수 있지만, 위에서 쭉 설명해온 것처럼, 본인이 원인된 경험에 대해 마주하고, 스스로 납득을 하고[111] , 파생된 감정, 생각에서 자유로워지고 정신, 몸 상태를 강화시킨다면 증상에서 벗어나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에 정신질환들에 무조건 불치병이라고 기술해놓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나 설명한 것들이 탈출하는 길의 정석이기도 하고 달성만 한다면 완전히 벗어나는 게 가능하지만 이것들 하나하나가 쉽지 않다. 당장 기억 마주하는 거부터 쉽지 않다.[112] 게다가 충격적인 경험으로부터 생겨난 본인 내부의 생각들을 이기는 것도 만만치가 않다.[113] 그리고 다 이겨내고 일상으로 돌아왔어도 그만큼의 세월이 사라졌기에, 망가진 인적, 물적 환경을 감내하고, 벌어진 격차를 이겨내면서 상식인이라는 수준까지 따라가려면 정말 부던히 노력해야한다.
치료는 다른 질환과 마찬가지로 심신 전반에서의 치료를 위해 주로 약물치료와 정신치료 요법이 사용되는데, 약물치료로는 SSRI (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가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약물로, 이 약물은 우울증 및 다른 불안장애의 증상과 유사한 증상뿐만 아니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고유의 증상도 호전시킨다. 정신치료 요법으로는 정신역동적 정신치료, 행동치료, 인지치료, 최면요법 등이 활용되고 있다.
다행히 '''개인에게 맞는 여러 치료법을 병행하면 성공적으로 치료할 수 있고, 치료 후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다.''' 치료하지 않는 경우 30%는 저절로 정상으로 돌아오고, 40% 정도는 가벼운 증상을 지속적으로 경험한다. 20% 정도는 중등도의 증상을 지속적으로 경험하며, 10%는 증상의 호전이 없고 심지어는 증상이 악화된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걸 '이후 재발이 절대 되지 않는 수준의 완치'라고 단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상술했지만 PTSD는 뇌에 심한 손상이 가해지는 것으로, 일반적인 상처에 비유해볼 때 몸에 상처가 생기면 시간이 지나면 아물지만 심한 상처는 지혈과 소독 등의 치료가 필요하고, 치료 이후에도 진피가 손상된 상처는 완전히 재생하지 못 하고 흉터가 생기며 그 부분은 다른 피부보다 감염[114]과 손상에 약해지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PTSD는 뇌를 교체하지 않는 한 정신적인 흉터는 남게 되며 치료 이후에도 반드시 재발의 위험이 존재한다라고도 단언할 수 없다. 평생을 증오로 살았어도, 본인이 소화되고 납득되면 해당 고통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것이 인간이다.[115] 또한 뇌는 약화도 되지만 강화도 되고 원상복구도 한다. 피부가 덧나서 영구적인 흉터가 생긴 거를 뇌에 바로 대입하기에는 판단이 이르다.
충격적인 사건을 당한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제공해야 할 것은 정서적인 지지와 그 사건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용기를 북돋는 것이다. 또한 이 상황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이완요법 등의 적응 방법을 교육하는 것도 좋은 치료 방법이다. 또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질환과 치료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개인의 의지가 매우 강한 사람이라면 예후가 좋은 편이지만 정신력이 강하든 그렇지 않든 모든 환자는 초기에는 불안과 공포 등의 증상을 경험한다. 하지만 정신력이나 의지드립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의지는 결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질병 자체가 전쟁, 또는 각종 극한상황 때문에 발생하는 병이고, 그 빈도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그런 편견이 발생하는 것뿐이다. 게다가 '''의지가 강한 사람일 수록 오히려 무너질 때의 위험도가 높다'''는 점도 주목해야 하는데, 베트남전에서 수십 명의 베트콩을 저격한 유능한 저격수가 죽기 직전의 베트콩의 얼굴을 우연히 보고 나서 고통을 겪게 된 일화도 있다.
또한 앞에서 언급된 대로 PTSD의 원인이 되는 경험은 개인의 경험에 근거하는 경우와 조직으로서의 경험에 근거하는 경우로 구분된다. 이 중 조직으로서의 경험 또는 단체가 겪은 사건의 경우 경험자간의 동지의식을 통해 상대적으로 충격을 완화할 수 있으며 동시에 같은 사건을 경험한 경험자들(군대라면 전우들 특히 한솥밥을 먹고 함께 사선을 넘은 같은 소대원이나 중대원들)이나 적어도 같은 조직의 구성원들이 서로 의지함으로서 후유증을 비교적 줄일 수 있음도 수 차례의 전쟁에서 발생한 귀환병의 카운슬링 과정에서 입증되어있다. 이런 특성이 제1차 세계대전이나 제2차 세계대전에 비해 베트남전 및 이라크 전쟁 등 최근의 전쟁에서 PTSD 발생 빈도가 급격히 올라간 중요한 원인이라는 설도 있다. 앞의 두 전쟁은 병사들이 싸워야 할 확실한 이유가 있었지만 후자들은 그것이 확실치 않다는 점에서 병사들의 심적 부담을 한층 강화한다는 것이다.
이와 연관된 의미 있는 한 베트남전 참전 용사의 발언을 소개한다.

참전장병들의 대우에 관한 미군 지도부의 최악의 오책은 '''바로 베트남에서 복무가 끝난 우리들을 비행기에 넣어 바로 미국 본토로 돌려보냈던 것이다'''. 만약 우리가 세계대전 당시의 병사들처럼 집으로 돌아가는 배 안에서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전우들과 함께 집에 돌아가는 기쁨, 귀향 후 하고 싶은 일들, 전쟁 중 받은 상처들에 대해 몇 주 간이고 이야기하고 시간을 보내다 본토로 돌아올 수 있었다면 참전장병들의 PTSD 문제는 훨씬 덜 심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마치 더 이상 볼 일이 없으니 꺼지라는 것처럼''' 하루만에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돌아와 내팽개쳐졌고 '''우리들은 하룻밤만에 이번에는 서로의 등을 지켜줄 전우가 없다는 점에서만큼은 베트남의 정글보다 훨씬 가혹한 새로운 전장에서 혼자 버려졌다'''. - Mekong First Light, Joseph Calloway Jr.

책임자들이 적절한 정신적 도피처를 제공하는 것으로 비교적 쉽게 PTSD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울 수도 있으나, 문제는 이와 같이 PTSD를 줄이는 방법이 반대로 PTSD를 일으킨 이들을 겁쟁이로 모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과거의 세계대전에서 발생한 PTSD 환자들이 겁쟁이로 몰린 이유에는 바로 저 문제, 즉, '전우들과의 교감을 통해 어떻게든 그 충격을 이겨낸 사람'이 많았기 때문도 있다. 상대적으로 전우들과의 교감이 부족했거나(이 문제 때문에 군 내부에서의 왕따나 '''기수열외'''가 위험한 행위다), 아니면 처음부터 이겨낼 의지가 부족했던 사람일수록 더 쉽게 PTSD를 일으켰던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전우들끼리는 '''누가 저런 상태인지를 더 쉽게 파악'''하고 자신과 다른 동료들의 '''걸림돌'''로 간주하는 자기보호기제가 형성되기 쉽다는 것 때문에 최악의 경우에는 전우들의 도움이 부족해 끝내 이겨내지 못 한 자들을 이겨낸 자들이 겁쟁이로 치부하는 어불성설이 벌어질 수 있다. 특히 징병제인 한국군의 경우 전시에 이런 문제가 더 심할 가능성이 크다.
PTSD를 이겨내는 방법은 위에서 언급된 것처럼 자신이 참전했던 전장에 대한 당위성과 정당성을 부여, 자기합리화를 시행해 정신적으로 이겨내는 방법도 있다. 또한 정신과 의사들은 재향군인회 같은 곳에 들어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교류하기를 권하기도 한다.
중동에 참전한 미군들의 PTSD 문제가 심화되자 동물치료나 요가 치료 풀 스펙트럼 워리어 같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고통의 원인을 스스로가 알아가도록 돕는 등 다양한 치료가 시도되는 중이다.
다음은, 미국에서 한국 전쟁에 참전한 후 PTSD를 아직까지 앓는 노병들에게 정신과 의사들이 권하는 치료 방법에 대한 얘기이다. 한국 전쟁은 미국에서 '''잊힌 전쟁(Forgotten War)'''로 불릴 만큼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데다 전쟁 자체도 끔찍해 전후 PTSD 환자들 중 가장 심적 부담이 큰 전쟁이었다. 거기에 2차대전 처럼 명확한 승전으로 끝나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휴전으로 끝나 미국 내에서도 반응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이제 냉전의 시대가 열렸는데, 소련도 아니라 중국에 비긴 모양이라, 2차대전 용사들 처럼 당당하게 답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한국전 60주년 기념으로 KBS가 미국에서 취재했던 한 노병은 PTSD 증상으로 60년이 넘도록 약물을 복용하고 있었는데, 자신을 담당하는 의사가 약물 처방 대신에 "한국은 당신들 덕분에 성공한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다. 이번에 한국에 가서 당신이 지키고자 했던 것들을 보고 오라."는 진단을 내렸고 한국전 60주년 기념으로 초청된 그는 발전한 서울 거리를 보며 놀라고, 자신이 싸우던 주요 능선들이, 시가지로 개발되어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고 있는걸 보고 인터뷰에서 '''내가 진정 가치 있는 일을 했구나'''라며 활짝 웃어보였다. 그 밖에도 전쟁 후 한국을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던 노병들 또한 '''내가 싸웠던 명분을 찾았다'''며 만족해했다.
이는 '''"어째서 2차 대전 참전용사가 한국전쟁 참전용사에 비해, 그리고 한국 전쟁 참전용사가 베트남전 참전용사에 비해 훨씬 PTSD 환자 숫자가 적은가?"'''에 대한 아주 명쾌한 해답을 제공한다. 적어도 참전용사들의 PTSD 증상은 그들이 행해야만 했던 살상행위에 대한 '''정당화''' 기제와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다.
2차 대전 당시 들은 당시 자국의 군인들을 잔혹한 전체주의 국가에 대항해 인류의 존엄을 수호한다는 '''인류의 자유를 지키는 반 전체주의 성전의 전사'''로 추켜세웠다. 1942년 8월 한 달 동안에만 인디애나폴리스에서 7명이 모병에 떨어졌다고 자살하는 일이 일어났다. 징병도 아니고, 즉, 본인이 군대에 가고 싶다고 하는데 신체검사에서 떨어졌다고 비관해서 자살했다는 소리다. 이 정도로 당시의 참전 열기는 뜨거웠으며 비단 인디애나폴리스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징병검사에서 탈락한 이들이 자살하는 일들이 속출했다. 그리고 이들은 현지 민간인들에게 '''해방자로서 환영을 받고''' 수십 년 뒤까지도 널리 받아들여지는 정당한 '''대의''' 아래 적의 '''정규군'''을 상대로, 전시국제법을 최대한 지키면서 맞서 싸운 끝에 당당하게 '''승리'''했으며 고국으로 돌아와서는 대규모 '''승전 기념 행사'''를 치르고 그들이 받아들이고 감내한 고난에 대해 끊임 없는 '''사회의 경의와 찬사'''를 받는 2차 대전 참전용사가 민간인, 포로 학살이라도 하지 않은 한 자신의 살상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은 매우 용이하다.
한국 전쟁 참전용사는 2차 대전 참전용사처럼 궁극적 승전이나 대규모 승전 기념 행사, 넓은 사회적 관심을 얻지는 못했으나 부당한 침략으로부터 연약한 신생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을 구원한다는 대의 아래 북한, 뒤이어 중국, 소련의 정규군과 싸웠으며, 훗날 자유롭고 번영하는 국가가 된 대한민국의 감사를 받고 있다.(대한민국은 신생 후진국에 대한 UN 차원의 지원을 성공적으로 받고 수혜국에서 단 50년만에 시혜국의 지위로 올라선 유일한 나라이다.) 2차 대전 참전용사만큼 호의적인 환경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PTSD 발병률이 낮을 수 있다.
그러나 베트남전 참전용사는 제국주의적 침략이라는 '''반전 여론''' 아래 여자, 어린이, 노인을 포함한 '''보이지 않는 적'''과 싸웠으며, 그들이 지키기 위해 싸운 남베트남은 끝내 '''멸망'''했고, 고국에 돌아와서는 "영아 살해자(Babykiller)"라는 '''사회적 냉대'''와 빈번하고 직접적인 타인의 '''모욕'''에 노출됐다. 자연히 자신의 살상행위에 대한 정당화는 불가능에 가까웠으며 PTSD 발병률은 어마어마하게 치솟았다. 이라크 및 아프간 참전 장병들의 PTSD 문제 또한 위의 베트남의 경우와 바로 딱 들어맞는다. 그나마 아프간은 종교 광신집단 탈레반이 적이고 9.11의 복수라는 명분이라도 있지, 이라크는 그것도 없다. 고대부터 존재했던 전쟁에 대한 질문인 '왜 전쟁을 하려면 대의명분이 필요한가'의 또다른 해답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한 가지 반론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서부 전선의 참전용사보다 태평양 전쟁의 참전용사의 PTSD 발병률이 높다는 반론이 있다. (발병률 통계 자체의 신빙성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이는 '정당화 기제'와는 조금 다른 이유가 작용한다. 태평양 전쟁 문서에서 알 수 있듯이 태평양 전선의 환경은 유럽 서부 전선과는 전혀 달랐다. 서부 전선의 나치 독일군이 광신적인 나치즘에 빠졌다곤 해도 항복거부하고 특공하는 등 정신나간 행위는 그리 많지 않았다.[116] 이러한 상황에서 참전용사들이 받은 육체적, 정신적 충격은 엄청났고, 비록 태평양 전쟁의 참전용사들이 서부 전선 참전용사들과 동등한 수준의 '정당화 기제'를 얻었다고는 하지만 이것으로도 그 충격을 무마하기엔 부족할 지경이었다. 자연 환경 또한 대부분이 열대나 고립된 섬으로서 기후는 물론 문화적인 동질감이 강한 서유럽과는 근본적으로 달랐으며 나치즘에 대한 비판과 비난, 그리고 부도덕성에 대한 주목은 지속적으로 환기되었으나 일제의 만행이나 적이 었던 일제의 부도덕성이나 그에 따른 자신들의 정당성 확보는 서유럽 보다 다소 약한 면이 있었고 되려 이런부분에 대한 주목은 2000년대 이후 한국과 중국의 성장이 이루어지고 나서야 되려 주목 되었지 태평양전쟁은 미국 사회에서 꾀나 소외된 전장이었다.
PTSD를 완화하는 치료방법으로는 ‘EMDR’(Eye Movement Desensitization and Reprocessing)이 있다. 2004년 미국 정신의학회가 PTSD 치료에 가장 효과적이라고 인정한 치료이며[117] 이는 괴로운 기억을 떠올리는 동시에 치료자의 지시에 따라 눈을 좌우로 굴리며 소리를 듣거나 촉각을 느끼거나 하는 활동을 하는 것으로 트라우마의 원인이 된 기억이 덜 불편하게 느껴지게끔 하는 것이다. REM 수면에서 안구가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에서 착안한 것이라고 하며 괴로운 기억을 희미하게 만들거나 잘 기억나지 않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전문 자격 훈련을 받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에게 의해 시술받아야만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음은 당연하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데, 어설프게 따라했다가 실제로 오히려 병을 악화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보고되었다. 절대로 따라하려고 하지말자. 여담으로 일반인에게는 불면증 치료용으로 응용되기도 한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테트리스를 잡는 것도 도움이 된다. 테트리스를 한 쪽이 안 한 쪽보다 플래시백이 줄었다. 사고 순간을 떠올리면서 테트리스를 하면 EMDR같은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

또 한 가지는 PTSD 소리 요법을 귀 기울여 들어보는 것이다. 2014년 9월 11일 9.11 테러를 추모하며 테러 피해자들의 PTSD 회복을 기원하면서 만들어졌다. 자사 홈페이지에서 10달러에 판매하고 있으나 다행히 유튜브에서 무료로 들어볼 수 있다. 듣기. 주변에 PTSD로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면 이것을 권유해보도록하자.
존 브래드쇼의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를 보면 어린 시절에 겪은 PTSD를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하는데, 위에서도 설명했지만 소위 내면아이 치료법이라는 것은 '''실제 PTSD와는 전혀 이론상의 접점이 없다!''' 정말로 유년시절에 성폭력을 당하는 등의 외상을 겪은 청소년이나 젊은이들은 그런 류의 책들이 예상하는 흔한 독자들보다 훨씬 비참한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사실 내면아이 치료법이라는 것 자체가 임상심리학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심리학의 링으로 올라와서 진지하게 논의된 적은 2015년 현재까지는 사실상 없다시피 한 치료법이다. 공연히 공허하고 우울하고 슬프고 짜증이 나는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되어줄 수는 있으나 문제는 '''그런 수준의 정서적 부전 상태를 보고 PTSD라고 말하는 심리학자는 없다'''는 것이다.[118]
상이용사들을 대상으로 한 PTSD 연구는 미 육군성 등을 중심으로 하여 임상심리학, 군사심리학, 상담심리학 분야에서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고, 특히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등에 파견되었다가 돌아온 병력들의 사후조치라는 측면에서 수요가 굉장히 높은 응용심리학 분야이다. 이런 연구의 최신 흐름에서는 개인 내적인 인지적 측면이나 의료적 개입(intervention) 외에도 가족 친지들이나 친구들과 같은 사회적 지원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개인 내적 측면에 대해서는 일명 "배틀마인드(BATTLEMIND)[119]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어떻게 마음가짐을 유지하고 인지적 평가를 할 것인지를 도울 수 있는 방법들이 많이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6.25나 월남파병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PTSD 연구가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 불행 중 다행히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하여 PTSD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기 시작했으며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간접적 외상에 대한 상담 서비스를 홍보한 것도 사상 처음일 정도이다. 이 분야 연구가 활성화되고 더 많은 국민들이 PTSD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버린다면 더 많은 환자들이 적절한 지원과 개입을 받을 기회를 얻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보면서 우리가 한 가지 더 잊지 말아야 할 점이 한 가지 더 있는데, '''전쟁과 사고, 학교폭력, 그리고 성폭력은 사람을 이렇게 망가뜨릴 정도로 끔찍하다는 것, 따라서 미디어 매체에서 보이는 폭력과 유혈 등 여러 묘사에 익숙해저 이들이 겪을 고통에 무심해지는 것은 크나큰 문제라는 점'''이다.

7. 외상 후 성장설


양들의 울음소리는 멈추었나?

<영화 양들의 침묵 中 트라우마에서 벗어난 스탈링에게 한니발 렉터가.>

기존에는 똑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PTSD에 걸리는 사람과 걸리지 않는 사람의 차이가 있다는 정도로 알려져 있었으나 구체적으로 어떤 유형화가 가능한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PTSD에 대한 연구가 진척되고 긍정심리학과 같은 분야가 각광을 받으면서 크게 네 가지 종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모두 공통적으로 외상적 사건을 경험했으나…
  1. 그 사건에 완전히 압도당해 폐인이 되어버리는 경우: 이 경우라면 조현병 등등 정신증에 해당하는 진단명이 붙게 된다. PTSD에서는 그 환자들의 현실검증력은 멀쩡하다.
  2. 그 사건 이후로 정신적인 저하가 발생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 기존에 알려진 PTSD
  3. 그 사건 이후로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이전의 상태를 회복하는 경우: 외상 후 회복, 일명 "회복탄력성"(resilience)
  4. 그 사건 이후로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내적으로 성장하는 경우: 외상 후 성장
두 말할 필요도 없이 가장 바람직한 케이스는 4라고 할 수 있다. 철부지가 충격적인 일을 겪고 갑자기 철이 든다거나 다시 그런 상황이 오면 오히려 냉정침착하게 대응한다거나 등등. 어떤 요인이 어떻게 해서 이런 차이를 만들어내는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고, 위키에 일일이 열거하기에는 아직 이른 상태다. 그러나 이제 많은 상담가들은 '''외상적 사건을 겪은 내담자에 대해서도 그들이 내적 성장의 기회로 삼아서 도약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전보다 더 큰 희망을 갖고 있다.

8. 대중매체



영화, 애니메이션 등 대중 매체에서 나타나는 PTSD의 묘사 및 PTSD 증상을 보이는 등장인물의 목록은 해당 문서로. 일부 창작물에서는 자폐로 혼동해 사용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대중매체에서 묘사되는 PTSD는 현실적이지 못한데, PTSD에 시달리는 인물이 지나치게 멘탈갑이거나 그 증상이 현실에 비해 약하게 묘사되기 때문이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어른의 사정 때문. 만약 PTSD에 시달리는 인물이 주연이라고 가정했을 때, 그 증상을 현실적으로 표현할 경우 스토리를 진행하는데 지장이 생길 수 있고, 무엇보다 그 증상을 호소하는 모습과 증상을 치료하려는 것만으로도 전체 스토리의 반 이상을 훨씬 잡아먹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게 단순 말이 아닌 것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예측 불허인데다 매일 그 고통이 계속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주연의 폭주와 파괴적 행위가 계속 된다. 그리고 이를 조연이나 상대방이 계속 붙잡아 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이 치료를 위해서는 그야 말로 살얼음을 걷는다. 왜냐면 잘못 건들면 주연이 폭주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이 폭주를 잘 다룬 게임이 스펙 옵스: 더 라인이다. 주인공이 점차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미쳐 돌아가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대중매체의 특성상 PTSD가 있다 하더라도 외상 후 성장을 통해 그저 인물이 겪는 하나의 장애물 중 하나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기에 묘사가 축소될 수밖에 없다. 설령 그 증세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제작자들이 알고 있다 하더라도, PTSD를 주제로 다루는 작품이 아닌 이상 PTSD 묘사에 너무 치중하다간 다른 재미 요소를 다 까먹고 지나치게 무거운 분위기로 흘러가기 쉽기 때문에 일부러 PTSD 묘사를 적당한 선까지만 다루고 극복하는 전개로 되는 경우가 많다.

9. 기타


미국의 유명한 코미디언인 조지 칼린은 PTSD라는 용어 자체를 비판한 적이 있다. 1차 대전 때는 shell shock라는 직설적인 용어를 썼는데 이후 battle fatigue, oprerational exhaustion,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로 점점 길고 완곡하며 인간적인 요소가 제거된 용어를 씀으로써 그 본질을 가리려고 한다는 것. 돌려말하는 완곡어법에 대한 비판은 칼린 코미디의 주요 주제 중 하나다.
C-PTSD라는 질병도 있다.
여담으로 PTSD를 가리켜 미국에서는 '베트남 증후군(vietnam syndrome)', 러시아에서는 '아프간 증후군(Афганский синдром)'이라는 속어로도 부른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 러시아는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PTSD 환자가 대량으로 발생했기 때문.

'아프간 증후군(Афганский синдром)'
그라지단스카야 오브로나(Гражданская Оборона), 앨범 '생존 가이드(Инструкция по выживанию, 1990)' 수록

10. 참고 자료


본 문서에서도 내용의 상당부분을 인용하고 있는 <'''트라우마'''>라는 책을 보는 것을 추천한다. 저자인 주디스 허먼은 하버드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교수로 케임브리지 병원 '폭력 피해자 프로그램'의 교육 이사를 맡고 있는데 본인과 동료 상담가들이 실제로 환자들과 내담한 사례들을 예시로 들어 PTSD에 대해 서술하고 있으며 가정폭력, 아동학대, 성폭력, 사고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PTSD의 사례를 설명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과 자세에 대해 깊이 분석하고 있다.
또한 데이브 그로스먼의 <'''살인의 심리학'''>과 <'''전투의 심리학'''>에 대해서 읽어볼 것을 권한다. 저자 그로스먼은 미국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 심리학과 아칸소 대학에서 군사학을 가르친 예비역 중령으로 전문적인 지식으로 범죄, 화재, 전쟁과 같은 PTSD 유발 상황에 놓인 경찰관, 소방관, 군인, 교도관 등의 심리와 그 현장을 벗어난 이후에 닥쳐오는 심리적 압박감에 대해 심도 있게 분석했다. PTSD의 치료법과 마음가짐도 자세히 서술했다.

[1] 이 한국어 번역 자체가 오역은 아니지만 의미가 다르다는 의견이 있다.[2] 몸만 현장에 없을 뿐 풀 HD 근접 화면으로, 매번 자신이 누른 발사 버튼에 의해 사람이 갈갈이 찢기는 걸 똑똑히 본다.[3] 잘 모르는 사람들은 PTSD 환자들끼리 서로 잘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바로 이 점 때문에 실제로는 상처받은 사람들끼리 함께하는 것이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몇 년을 매일 같이 생지옥을 겪으면서 성적, 육체적, 언어적 모든 면에서 고통을 겪은 학교 또는 가정폭력 피해자가 성폭행 피해자에게 공감한다는 얘기를 하며 조언하면, 성폭행 피해자들은 ‘고작 학교나 가정폭력 따위가 성폭행에게 견줄 수 있냐’라는 말을 하는 식. 설령 같은 일의 피해자들끼리라도 결국은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별개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대립과 다툼이 있는 경우가 많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의 사고 이후 5년간의 이야기를 정리한 책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를 보면, 단일 사건을 당한 사람들임에도 서로 이해하는 데에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던 사실이 나온다.[4] 어쩌면 박근혜 대통령이 그렇게 몰락해 버린 1차적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며, 실제로 근거가 아주 없는 해석은 아니다. 양친을 1명도 아니고 2명 모두 '''살인 사건'''으로 잃는다는 것은 자녀에게 절대 치유 불가능한 충격이며, 실제로 가족이나 지인이 살해당한 것으로 인해 엇나가는 사람들도 아주 많기 때문. 저런 사람들의 경우 부모 유고에 대한 적절한 치료가 부족했을 가능성은 99% 이상.[5] 정신건강의학과(구 신경정신과) 치료 자체에 대한 인식과 개념 자체가 없던 시절이었다. 그저 먹고살기 바빠서 사고로 다리 부러지고 팔 부러지는 것도 겨우 치료하던 시절이었다.[6] 인터넷이 막 보급되기 시작하던 시기인지라 그 파급력이 커지기 시작했다. 특히 야간정액제가 물러가고 xDSL기반 회선의 보급도 한몫했다.[7] 국내 학회들의 동향을 보면 의외로 많은 수의 PTSD 관련 프로시딩들이 나온다. 보통은 그 다음으로 많이 나오는 게 중독 이슈 같은 것.[8] CSR: Combat Stress Reaction. 일명 전투신경증 [9] ‘정신적 외상’이란 충격적이거나 두려운 사건을 '''직접 당하거나 생생하게 목격'''하는 것을 말한다.[10] 물론 그렇다고, 매일같이 우리 사회의 자식, 동생, 형, 누나들이 계속 PTSD의 지옥으로 말려들어가고 있고 그 수가 늘어나 자살과 범죄가 늘어나는 데도 여전히 사회를 방치하고 있는 우리 역시 선량한 건 아니다.[11] 그 누구보다 착하고 양심이 강하고 완벽을 추구하고 순수했기 때문에 오히려 PTSD가 발생한 걸 수도 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깊이 상처입고 자신의 양심이 본인을 용서치 않으며 원래 자리로 돌아갈 수 없다. 그리고 마음이 부서지는 건 둘째치고 몸 역시 스트레스에 고통받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거기에 익숙해져서 그 뒤로 평온한 시간이 와도 계속해서 고통받는 상태에 본인을 몰고 간다. 괜히 한번 시작되면 돌아가지 못하는 게 아니다. 연쇄적으로 주변 환경, 마음, 몸이 서로를 괴롭히며 가속화하여 악화되어 간다. 탈선한 폭주 기관차라고 생각하면 된다.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더 정상 궤도에서 빠르게 멀어진다.[12] 보통 그럴 경우에는 다른 정신질환이 같이 온다. 물론 다른 정신질환들도 그렇지만 비난 가능성 여부를 따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다양한 논쟁거리 속에서 정신질환인(정신장애인)들 당사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부득이한 처지에 대한 고려라는 인권적 논제는 특히 한국에서는 간과되고 있는 실정이다.[13] 볼때마다 움찔 거리게 만드는 거를 매순간 떠올리게 되면 몸이 늘 긴장상태일 수 밖에 없다[14] 갱단 사이의 총격사건이 매우 흔하게 일어나며 주민 대부분이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경우가 많아 언제 어디서 죽더라도 주민들은 큰 충격을 받지 않는다. 대체로 바로 복수를 생각하지 슬픔은 오래가지 않는다고 한다.[15] 슬럼은 전자, 바이킹은 후자다. 바이킹은 종교적 특성상 전사한 남자는 천상에서 대우받는다고 여겨서 전사하는 것을 오히려 명예로 여겼다.[16] 이들은 늘 고통스런 기억이 계속 올라오고 그로 인해 파생된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찬 데다가 살의 충동, 분노, 슬픔, 혐오, 우울함 등의 감정으로 가득차서, 당장 터지기 직전인 걸 간신히 온 힘을 다해 제어 중이다. 불쌍하다고 다가와서 건들면, 나름 노력은 하더라도 따뜻하고 차분하게 반응하기 쉽지 않다.[17] 예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대구 지하철 참사, 세월호 참사, JR 후쿠치야마선 탈선사고[18] 농담이 아니다. 실제로 공익광고 중 1989년에 보여진 "올가미"라는 광고에서 PTSD가 생길 수 있다고 한 적이 있다. 심지어 로고도 PTSD를 생기게 할 수가 있다고 한다. [19] 사상자 다수가 생긴 화재를 진압한 소방관에게 영웅담을 들려달라 하는 꼴이다.[20] 실제 사례를 살펴보면 2012년 3월 11일에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 주 판지와이 지구의 미군 기지에 근무하던 39세의 하사가 근처 현지인 마을에서 민간인 16명을 살해하고 돌아와 자수한 사건이 발생했다. 미 국방부 대변인의 발표에 따르면 이 병사는 2011년 12월 아프간에 파병되어 전장에서 4번째로 임무를 수행중이었다 한다. 이 사건에 대해 아내와 두 아이를 둔 평범한 가장이 잔혹한 살인사건을 저지른 배경 역시 PTSD일 것이 거의 자명해보인다고 익명의 미군 군의관이 밝혔다. 단, 양형에서 고려는 되지 않았다. 칸다하르 학살 사건 문서로.[21] 소설 하얀전쟁이 이러한 것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22] 여담이지만 한국전쟁은 전쟁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은 세대에겐 집단 트라우마를 남겼는데 극단적인 레드 컴플렉스와 자신의 생각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빨갱이라 몰아 붙이는 사회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23] 안 그래도 공군 자체부터 놀고먹는 부대라는 이미지가 강한 미군에서 무인기 파일럿들은 “Air Force 중에서도 ‘Ch’air force다(의자에 앉아만 있는다)”라며 비난받고, 무인기 파일럿들이 별을 다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꽤 있다. 무인기 파일럿들이 아무리 PTSD를 호소해도 다른 장병들이 땡보직 주제에 말이 많다고 무시하는 이유.[24] 무인기 파일럿들의 고통과 번민은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 '드론전쟁: 굿킬'에서 잘 나타난다.[25] 자기들은 빨갱이 때려잡았다며 정당화를 넘어 아주 자랑스럽게 떵떵거리고 다니는데, 이 역시 PTSD로 인하여 발생하는 행동이라는 해석도 있다. PTSD를 오래 앓다보면, 지옥에서 탈출하기 위해 어떻게든 해당 사건에 대해 본인을 납득시키려고 노력하게 된다. 종교, 철학, 심리학, 선전물 등을 찾아 뭔가 의미를 부여하고 당위성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의미부여나 합리화를 할 수 있으면 좋겠으나 대부분 자기 자신은 속일 수가 없고, 어딜 뒤져도 답이 상식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기에 억지로 답이라고 스스로를 세뇌하며 여전히 가해자, 피해자 틀에 갇혀 고통 속을 헤멘다. 그래서 계엄군 출신자들 중에서도 피해자 코스프레를 해대는 뻔뻔한 부류의 전직 계엄군들이 누가 봐도 "빨갱이 무장간첩"으로 보이지도 않는 피해자들(여고생, 노인, 임산부, 초등학생)을 살해해 놓고 빨갱이를 잡은 거라고 우기는, 보는 사람 입장에선 어이가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는 괴랄한 짓거리들을 해대는 것. [26] "나도 피해자다. 군인은 피해자 없냐. 죽지만 않았을 뿐이다. 군인이 장교로 진급 못하면 피해자지. (계급장) 하나만 더 달았어도 내가 이렇게 고생 안한다. 그때 연금만 탔어도" "내가 무슨 사람을 죽이라고 하나. 헬기 요청을 했는데 헬기가 끝났다. 우린 철수해야 한다. 헬기도 없고 철수하는데 못하니까 '난 못하니까 데려가라' 그런거다. 주머니에서 실탄이 나왔다. 그건 분명히 폭도다. 우리가 북한하고 전쟁 붙었다. 그럼 총으로 쏴야 하냐, 맞아 죽어야 하는거냐. 선의의 피해자가 있을 수 있지만 할 수 없다. 이해해야 한다. 38년 됐으면 끝났지 않냐. 6.25도 다 캐고 다니는거냐. 나도 피해자다" (민간인 처형을 지시한 장교 출신자의 망언) "아무것도 없는데 사살 당했다? 선의의 피해자다. 우리는 반은 선의의 피해자다" (당시 11공수 간부 출신자의 망언)[27] 빨갱이 폭도를 잡는다면서 정작 누가 봐도 폭도도 아닌 임산부나 초등학생을 쏴 죽이고, 여고생을 강간하고, 심지어는 여자 시체에 칼질을 하는 변태 살인마 같은 짓을 해 댔으니 당연히 정상적인 사람들 입장에선 말 같지도 않은 핑계로 들릴 수밖에 없다.[28] 한때 정신질환 전반을 의미했던 '히스테리'라는 단어는 '자궁'이 어원이다.[29] 일반적인 차량과의 충돌보다 더욱 심한 게, 기차 사고를 당했을 경우 사람의 몸은 말 그대로 산산히 찢겨나간다. 쉽게 말하자면 수박을 바닥에 던져 산산조각이 되는 것이다.[30] 시사프로에서 이들의 증언을 들으면 왜 하필이면 자신이었냐고 울부짖는다. 그리고 불안해서 운전을 잘 하지 못한다고.[31] 강간이 성폭행만을 가리키는 반면, 성폭력은 강간, 강제 추행 등 모든 유형의 성범죄를 나타낸다.[32] 드물긴 하지만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는 경우로 언급된 자존감적 문제와 관련이 있다. '''자신은 이런 일을 당한 더러운 몸이니 앞으로 이렇게 살 수밖에 없다. 하는 생각에 빠지는 것.''' 특히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이해도가 낮고 성적으로 폐쇄적인 사회에서 자주 보이는 양상이다.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몸을 더럽혔다거나, 시집은 다 갔다는 식의 시선을 받다보니 자포자기하게 되는 것. 우리나라에서도 옛날엔 성폭행 피해자가 윤락녀가 되었다느니 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꽤 비일비재했다.[33] 대부분의 경우에는 20년 정도의 형량으로 한국이나 유럽과 큰 차이가 없다.[34] 현실은 안타깝게도 사법거래와 피해자를 압박하는 변호사의 변론으로 결국 낮은 형량을 받는 경우도 많다. 이를 비판하는 작품으로는 성범죄 전담반이랑 모범시민이 있다. 모범 시민 말미에 살인자와 성범죄가 절반이 낮은 형량이나 그냥 나온다고 말하는데 법의 헛점과 인식을 말한다.[35] 아동학대를 받은 아들이 부모를 죽여버린 사건.[36] 어른의 사정에 대해 학교폭력을 예시로 들자면, 1) 가해자 학생이 공부, 힘 둘다 뛰어난 데다 반장이라 반을 알아서 잘 끌고간다 싶으면 교사가 본인 편리를 위해 반장이 한두명 몰이해서 왕따 시키는 거는 그냥 눈감아주는 경우(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2) 가해자 학생 부모가 돈이 워낙 많아서 학교 재단에 힘을 갖는 경우 3) 교사가 미술 전시, 음악 공연 등 자신의 예술활동에 미쳐서 담임활동에 별 관심이 없는 경우 등이 있다. 참고로, 예시 3가지가 다 겹치는 경우도 있다.[37] "네가 당할 짓을 해서 당한거야.", "별 것도 아닌 거에 왜 혼자 과민반응이니?" 등[38] 훈련 받는 이들도 그만큼 고생하는데 일반인들은 더 심할 수밖에 없다.[39] 또다른 이유로는 당시 참수는 귀족들만의 형벌이었는데 귀족과 평민 모두의 평등한 형 집행을 위하여서 이기도 하다.[40] 대부분 3인 1조로 집행한다. 1명은 실탄, 1명은 공포탄, 1명은 고무탄.[41]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눈앞에서 죽게된다면 순간적으로 이성을 놓아버리는 경우는 현실에서도 너무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다가, 그 분을 풀 대상으로 의사를 꼽는 경우도 흔하고, 만약 100%의 비율로 의사나 의료진의 과실로 그 사람이 죽은 것이라면 누구나 그럴 상태이기에, 사실은 완전히 틀린 말이라 보기엔 어렵다. 사고 등으로 인해 심하게 훼손된 인체와 직면하는 것으로 발생하는 정신적 충격은 직접적으로 수술을 집도하는 외과 쪽에서 더 흔하게 발생하는 문제로 약 처방 위주로 진행되는 내과쪽은 비교적 덜하다. 물론 마취과 등 수술에 투입되는 의사들의 경우는 또 다르지만.[42] 하지만 2018년 5월 현재 국가에선 여전히 별 신경을 안 쓰고 있다. 수많은 멸종위기 교수들이 몇십 년 뒤면 의사가 없어 수술받으러 해외로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을 하지만... [43] 실제로 수의대에서 연구를 하다보면 의대 팀과 조인하여 특정 질환 모델을 유발시켜 전임상 실험을 진행하는 경우가 상당히 잦다[44] 모 장의사의 경우,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 참사 희생자들을 염습하고 나서 한동안 일을 못 했다고 한다.[45] 자위대도 이라크전에 참전해서 이런 정신질환이 생겨나서 자살하거나 이혼한 경우가 있다.[46] 철도 체계의 경우 ATC, ATS와 같은 철도신호체계를 사용함으로서 철도관련법과 규정에따른 정확한 운전이 요구되며, 위법운전에 대한 처벌과 불이익이 크다. 또한, 엄청난 인명의 안전을 책임지는 것에 대한 책임감이 크게 요구된다. 열차시간표까지 지연되거나, 객실 내 승객 넘어짐이나, 출입문 끼임등 민원이 발생한다면 그에 따른 불이익과 징계로 까지 이어질 정도이다.[47] 불면증과 우울증 감정 조절이 스스로 힘든 경우엔 정신과에 가는 것이 좋다. 보통 두 달을 기준으로 잡으며, 2~30대에는 특히 실연으로 인해 상담에 찾아오는 사람이 아주 많다.[48] 신천지 감염자랑 단 10분만 이야기 했는데도, 감염된 여학생의 사례가 있다.[49] 그 전에는 포격쇼크증, 전쟁신경증, 전투신경증 등으로 알려졌었다.[50] 물론 정의와 가치관 확립이 되지않고 전두엽 발달이 되지 않은 어린 나이에 계속 폭력적인 상황과 사상 교육에 노출된다면 이 역시 가능하다. 실제 현실 사례로 '''초등학생 정도 되는 아이들이 가슴에 폭탄메고 AK-47 들고 미군들과 싸우는 IS가 있다.''' 당연히 굉장히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다.[51] 애니메이션 중에는 레스톨 특수구조대의 주인공 강마루 등의 예시가 있다.[52] '''한국전쟁 참전유공자들이 참전유공자 청와대 초대 행사에서 일제히 "이 땅에 전쟁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시는 이유가 그 전쟁을 한 번 겪는 것 조차도 충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하던 전우가 앞에서 쓰러져가는 걸 본 사람의 심정이 어떻겠는가? 괜히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아돌프 히틀러,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도조 히데키가 괜히 미친놈이라고 까이는 게 아니다.'''[53] 밴드 오브 브라더스 7편의 새로 부임한 다이크 중위가 어리버리 까면서 보게 된 장면이 (실제로는 다급한 목소리였겠지만) 부하들의 느려 터지게 들리는 명령 요구였다.[54] 게임 울펜슈타인 3D에서 각각의 미션을 마치면서 나오는 스코어 장면에서 격하게 숨만 고르는 주인공 B.J. 블라즈코윅즈의 모습이 있다. 앞 문장에서 나오는 증상을 현실적으로 표현했다.[55] 그러나 놀랍게도 가장 부차적인 원인이다.[56] 이는 열거된 원인 중 가장 강력하다.[57] 여기서 말하는 부인(Denial)은 정신 방어기제의 한 종류로 절대 의식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정신이 수용하기엔 너무 큰 충격을 아예 그런 일은 없었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환자가 오진이라고 굳게 믿는 등의 행동이 이에 해당된다. 방어기제 문서의 '부정' 문단으로.[58] 김준기 (2009), 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 시그마북스, p. 129[59] 후술되어 있듯이 마초성이 두드러지는 군대의 특성상 한국 뿐 아니라 어느 나라의 군대든 이런 흑역사가 있다.[60] 의지드립을 생각하면 정말로 간편한 미봉책이다. 모든 것을 의지로 연결시켜 사회의 모순과 문제를 묻어버리면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복잡한 이야기보다 그게 더 편하고 쉽기에.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의지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한계가 명확한 것이 밝혀지고 있다. 어쩌면 사회 자체가 모든 문제를 의지라는 마약을 통해 해결하려 했을 지 모른다.[61] 대한민국 기준에서 이런 의지드립에 큰 모순점을 예로 들자면 '''참전 용사'''들인데 6•25 전쟁 참전 용사분들도 PTSD 피해자들 중 한 부류이다. 그 분들은 정말 의지가 나약해서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그런 증상을 겪고 있는걸까? 자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다면 이런 의지드립이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지 다시 한 번 인지해야 한다.[62] 다만 이 설정은 1편만 통한다. 람보 1편은 PTSD와 반전주의를 다룬 영화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걸작이지만 2편부터는 평범한 액션 영웅이 나온다.[63] 이마저도 대부분 정당방위로 피해자가 매우 적은 케이스다.[64] 코르티솔의 과다분비가 해마의 기능을 저하시킨다. 이는 PTSD 뿐만 아니라 우울증같이 만성적인 질환에도 해당된다.[65] 믿기 힘들겠지만 사실이다. 최근 미군에서 전역 군인들 다수가 노숙자로 전락해 거리를 떠돌고 있으며, 그 중 상당수는 전장에서 싸운 참전군인들. 물론 아무리 미군이라 해도 재정까지 작살난 상황에서 최소 수십, 수백만의 귀환병 모두를 돌볼 수는 없으니 불가피한 현실이긴 하다. 그래서 미국 드라마에서는 팔루자 전투에 참전했었던 군인 출신 노숙자와 같은 유형의 캐릭터들이 종종 나온다.[66] 흔히 말하는 훈련소[67] 참고로 이 사람은 태평양 전쟁이나 한국전 당시 포로 생활을 하고 귀환한 장병들을 영웅시하는 것도 대단히 싫어했다고 하며 용감성 같은 부분과는 별도로 이에 대해서는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다.[68] 대망 시리즈로 유명한 야마호카 소이치의 소설 <태평양 전쟁>에서 솔로몬 군도 부분에서 어려움에도 처절하게 싸우는 일본군과 PTSD에 시달리는 미군들을 비교해서 조롱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책은 '''패전 이후에 만들어진''' 작품임에도 그럴 정도이다. 사실 한국에서도 '''"껌만 짝짝 씹다가 항복하는 미군들"'''이라고 비하하는 목적으로 이런 이야기가 퍼지긴 했는데, PTSD 상황에서 부대의 정신력을 증진시키고자 하는 목적도 있다는 걸 보면 '비겁한' 미군을 비웃을 처지가 안 된다. 오히려 이런 짓까지 주저 없이 저지를 만큼 PTSD가 더 심했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69] 실제로 각국의 학교에서는 잊을 만하면 학교폭력 피해자에 의한 보복살인이 벌어진다. 성인이 된 뒤에 복수하는 일도 많다. 참고로 살인은 아무리 정상참작을 받더라도 이후 인생이 끝장나는 건 물론 최소 수 년의 징역이 기다리고, 특히 침해 행위가 끝나거나 노골적으로 괴롭히지는 못 하게 된 성인 이후에는 복수를 해도 정상참작을 받기가 훨씬 힘들어진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안다고 해도 보복살인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인격 장애나 심각한 PTSD 증세로 정신이 심하게 뒤틀린 상태라 후폭풍 따위는 신경을 쓰지 않고 행동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즉 가해자가 된 피해자의 발생을 막으려면 법보다도 피해자의 정신을 치료하는 일이 중요하다. 하지만 의료 복지가 좋은 나라라도 정신질환 쪽은 미흡한 경우가 많아서 사라지기 어려울 듯하다.[70] 멘탈을 용수철로 비유하면 이해가 더 쉬운데, 용수철은 왠만큼 당기면 항상 제자리로 돌아오지만 한계 이상 당길 경우 돌아오지 않고 그 상태 그대로 늘어난다. 재질에 따른 한계 차이는 있을지라도 모든 용수철은 한계를 넘어서서 당기면 망가진다. 이처럼 멘탈도 평소 곧잘 상처입고 또 금방 회복하는 걸 반복하지만 한계를 넘어서면 그대로 망가져서 돌아오지 못한다.[71] 가족과 여자친구가 본인 면회 왔다 돌아가던 중에 차량 전복으로 아버지는 중태, 나머지는 몰살당한 걸 알게된 경우라든지, 치매있는 어머니에게 아기를 맡기고 밖에 다녀왔더니 어머니가 곰국을 끓였다면서 아이를 솥에 넣어 익힌 걸 보여주는 경우라든지, 밤 늦게 술 마신뒤 트럭 몰고 돌아오다가 본인이 걱정돼서 휠체어 타고 나온 어머니를 쳐서 사망시킨 경우라든지...[72] 하지만 면도칼은 메스와 함께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날카로운 칼날이라 베인 부위가 어디냐에 따라 순식간에 골로 갈 수도 있다(예: 경동맥). 인간이 강한 이유는 순전히 도구빨이지 신체 능력 자체는 나약하기 그지없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므로 날붙이는 작은 거라도 조심해야 한다.[73] 집단괴롭힘 문서에도 나와있지만 성인이 된 뒤에도 청소년기처럼 상습적으로 괴롭히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도 이렇게 고통받는 것은 PTSD가 주원인이다.[74] 당시 신경정신과[75] 다만 상담 스킬상, 상담 대상의 자살 언급이 있었을 경우 오히려 상담자가 이것을 돌려말하는 것(이를테면 극단적 선택과 같은 표현)이 잘못된 대응이고 직접적인 언급을 통해 상황을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라고 배운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내담자에게 해당 스킬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고, 그렇기는커녕 오히려 큰 상처를 주고 상담사에 대한 실망감과 불신만 심어주어 이후 문제가 발생해도 결코 상담에 의지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철저히 실패하고 잘못된 적용'''이었다.[76] 한국전쟁을 겪은 어르신을 보면 너무 쉽게 나온다. 70년이 다 되어가는 일이지만, 그 전쟁의 상처와 고통, 트라우마가 모두 생생히 남아있다. 어르신에게 북한은 가족을 죽인 원수이자 지금까지 도발을 감행한 주적이다. 그런 어르신이 정말로 두려워 하는 건 바로 전쟁이다. 자신들이 직접 전쟁의 참상을 보았기 때문이다.[77] 실제로 PTSD는 아니지만 학계에 보고된 한 임상례에 따르면, 유년시절에 부모가 없을 때 동네 남성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한 어느 소녀가 있었다. 나중에 사춘기 때 학교에서 성교육을 받고 자신이 성범죄 생존자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자, 그에 대한 반동으로 매일마다 그날의 일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부모에게 병적으로 보고해야만 하는 상태에 이르른 경우도 있다. 부모가 집에 없으면 그날의 일을 일기로 소상히 적어서 부모에게 강제로 읽게 했는데, 이 일기라는 것이 누가 봐도 병적이다 싶을 정도였다고. 성범죄 생존자로서의 삶의 질이 이 정도다. 심지어 이 경우는 일회적이고 경미한(피해자 입장에서는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지만.) 사례였는데도.[78] 위에서 설명한 정신없는 상황을 말한다. 기분이 좋아지는 상태의 바보같은 소리가 아니다![스포일러] 인민군 군관이 집에 찾아와 총살한다. 엄마는 그 광경을 보고 충격을 먹고 나중에 노환으로 다쳐 병원에 입원하고 수술한 직후 그때 그 광경을 환각으로 본다. 이는 전신마취수술 후에 종종 일어나는 섬망 증세다.[스포일러2] 회상장면을 재구성하면 우선 엄마가 '나(작가 박완서 자신)'에게 네 오빠를 숨겨야 한다고 호들갑을 떤다. (이 회상 중에서 손에 잡히는 자신의 다리를 아들로 잘못 인식한다.) 이후 인민군 군관의 환영을 보고 군관의 환영에게 비굴하게 웃으며 아들이 없다고 거짓말을 늘어놓는다."군관 동무, 군관 나으리, 우리 집엔 여자들만 산다니까요.", "군관나으리, 우리집에는 여자들만 산다니까요. 찾아보실 것도 없다니까요. 군관나으리." 그러나 환각은 오빠의 사망 경위처럼 인민군 군관이 오빠를 찾는 장면으로 넘어가고, 엄마는 오빠를 사살하려는 (환각 속의) 인민군들에게 절규하며 말리려 달려든다. 이 과정에서 엄마를 말리려던 작가는 군관의 환영으로 착각되어 엄마에게 벽으로 밀려 넘어진다. "안된다. 안돼. 이놈. 안돼. 너도 사람이냐?(후략)" 작가는 겁에 질려 엄마를 바라보기만 했다.[원문출처] EBS 2017 수능 연계교재 수능특강 문학 237쪽[79]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참고할 만한 리스트일 뿐, 실제로 사람마다 외상마다 나타나는 증상은 범주화할 수 없는 것까지 다양하다. 그러니 "나는 왜 이런 증상이 없지? 나는 역시 PTSD가 아니라 그냥 나약한 건가?" 하고 타인의 증상과 자신의 증상을 비교하며 자책하지는 말도록 하자.[80] 신체적 고통은 견디기 쉽고 좋은 회피 수단이다. 이것은 습관성 행태다.[81] 환자 마음은 이런 환경을 싫어해도 신체는 이 환경이 익숙하다[82] 이들은 애니나 영화 등에서도 중독이 나타나기 쉬운데, 늘 한순간이라도 멈추면 폭발할 거 같은 상태로 살고 있기에 절망, 멘탈붕괴물, 극도의 슬픔, 그로테스크, 강렬한 액션 등의 자극이 강하고 동질감을 느낄 작품들을 주로 찾는다. [83] 불교에서 절 수련 시키는 이유 중에는 이걸 깨닫게해주려는 것도 있는데, 절을 하다보면 체력이 없어서 지치는 게 아니라, 올라오는 온갖 회의감, 짜증, 분노, 과거사 등으로 동작 하나하나가 너무 무거워 지친다.[84] 그런데 사실 돕는답시고 함부로 환자 면전에 의지드립을 치거나, '널 위해 직설적으로 말해준다'라면서 대놓고 '네 잘못이야' 또는 '네가 정신력이 약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리고 그렇지 않더라도 해당 카테고리에 설명된 증상들을 가진 PTSD 환자에게 정상인들에게 하듯이 하는 것은, '곰돌이 푸우' 만화만 보고 실제 곰에게 다가가는 것과 같은 행동이다. 당장 칼빵 안 나는 거에 감사하는 게 낫다. [85] 상상임신, 플라시보 효과 등 몸은 생각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86] "학대는 다른 사람에게 일어난 거야." [87] "난 이걸 받을 가치가 없어." [출처] 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88] 이게 얼마나 무서운 거냐면, 자기 눈앞에서 동료가 죽어나가고, 불려나간 자신이 어쩔 수 없이 불려나온 상대편 군인을 죽여야 하는 끔찍한 상황이 다시 생각난다는 것이다.[89] 아무 행동을 안 하는 게 아니라 웅크리거나 눈을 감거나 귀를 막고 가만히 있는 등의 나름의 방어적인 행동이 포함되기도 한다.[90] 이렇게 기억과 싸우고 진정이 되고 나면 30분~1시간은 정말 우습게 지나간다. 빠져나온다는 것이 스스로 원해서 빠져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91] 이 대상은 사람 뿐만 아니라 상황, 물건,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물체(벌레, 지저분함, 냄새) 등도 포함된다. 약간이라도 이성이 남아 있으면 그 자리에서 도망치는 것이 보통이나, 이성적 판단이 흐려질 정도로 심한 경우 단순한 공포를 넘어 생존의 위협으로 간주되어 방어기제가 우선시 된다. 이는 극단적인 PTSD의 위험성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92] 교통사고를 당한 한 사람의 경험을 이야기하면, 교통사고 당시 잠들어 있어서 사고에 대한 기억은 깨어나서 얼굴에 피가 나 있다는 것 밖에 없다. 즉 그의 의식에는 사고 당시의 기억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사고 당시처럼 조수석에 앉으면 본능적으로 몸이 위축되고 불안해지며, 이는 자동차를 타고 있는 동안 내내 계속된다. 이것도 일종의 플래시백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설사 영상화 된 기억이 없다고 해도 몸은 그 사고를 기억하고 있다는 뜻이다.[93] 트라우마를 상기시키는 상황에 한정[94] 해리의 초기 증상이다. 시야는 특정물체를 주시하지 않고 소리에 반응조차 하지 못한다.[95] 해리상태인 사람은, 증상은 심각하지만 자신의 인격은 내부에 제법 무사히 보호받는 상태이다. 거듭 말하지만 해리 또한 뇌가 스스로 발현한 자기보호체계이며, 현실도피와 현실회피 또한 나약함 때문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자기보호체계다.[96] 이 대상은 사람 뿐만 아니라 상황, 물건,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물체(벌레, 지저분함, 냄새) 등도 포함된다. 약간이라도 이성이 남아 있으면 그 자리에서 도망치는 것이 보통이나, 이성적 판단이 흐려질 정도로 심한 경우 단순한 공포를 넘어 생존의 위협으로서 간주되어 방어기제가 우선시된다. 이는 극단적인 PTSD의 위험성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97] 단, 정신적으로 상당히 망가지지 않더라도 이러한 폭력성은 얼마든지 발현될 수 있다. 단지 치료가 수월하느냐 어렵느냐 차이다.[98] 폭행을 당했거나, 성폭력을 당했거나, 전쟁 중 적에게 기습당했거나 심지어는 적에게 포로로 잡힌 적이 있거나 하는 등의 상황에 있었던 사람들.[99] 이은석미야자키 츠토무의 사례를 보면 답이 나온다.[100] 증상들을 읽다보면, PTSD 환자들이 이 모든 걸 겪으면서 그저 안 죽고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경이로워진다.[101] 예: 변사체 처리의 최초 대처자, 아동 학대의 세부 사항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경찰관.[102] 예: 플래시백.[103] 그 경험이 되살아나는 기분, 착각, 환각, 그리고 해리적인 Flash Back 삽화를 포함하고, 이런 것은 각성 상태 또는 중독 상태에서 생길 수 있음.[104] 이러한 반응은 연속선상에서 나타나며, 가장 극심하게 표현될 경우 현재 주변 상황에 대해 완전히 인식하지 못할 수 있음.[105] 두부 외상, 알코올, 약물 등 다른 원인들 때문이 아니며 전형적으로는 해리성 기억상실에 의함.[106] 예: “나는 나빠”, “아무도 믿을 수 없어”, “세상은 전적으로 위험해”, “나의 신경계 전체가 영구적으로 망가졌어”.[107] 예: 공포, 분노, 죄책감, 수치심.[108] 예: 행복감, 만족, 또는 사랑하는 감정을 느낄 수 없음.[109] 잠들기 어려움 또는 잠을 이어서 자기 어려움 또는 불안정한 수면.[110] 문제는 그게 어려우니 고생이다. 애초에 한번에 소화가능했으면 PTSD에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 핵심 요인을 소화해서 해결하더라도 그로 인해 망가진 뇌, 우울증, 인간관계, 경력손실 등등의 회복은 별개다. 솔직히 말하면 이것들까지 다 해결해야 진짜 끝이다.[111] 일단 이들은 '왜 하필 나한테?'라는 거부터 이해되어야 한다. 괜히 PTSD환자들이 종교, 철학에 빠지는게 아니다.[112] 평소 매일같이 고통스런 기억이 떠오르지만, 정작 제대로 마주보려하면 극심한 충격량 때문에 심신이 자동 차단하여 보호한다. 호흡곤란, 현기증, 급탈진, 무감각 등등. 그렇기에 치료를 위해서는, 한번에 마주보는 게 가능해질 때까지 조금씩 그 기억에 붙은 감정, 생각들을 날려 줄이거나, 충격을 버틸만한 정신력, 체력을 키우도록 하고 있다.[113] 이 생각들은 수많은 자아의 형태를 가지고서 매일같이 환자 자신의 이불킥 가능한 온갖 과거를 생생히 들먹이며 쓰레기, 패배자 등등의 욕을 섞어 매우 논리적이고 가슴을 후벼파는 말들을 머릿속 사방에서 계속 해대는데, 이 속에 있다보면 인파로 가득찬 시장 바닥에서 하루종일 서있는 느낌이 든다. 특히 현실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이들을 대신하여 본인의 자아가 그들의 말을 그대로 머릿속에서 하는 건 정말 견딜 수가 없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주변에서 누가 뭔 얘기를 하든, 뭐를 보든 간에 수많은 생각들의 소리에 파묻혀 아무것도 기억할 수가 없고 제대로 의지대로 생각할 수가 없다. 비유하자면 1초에 수십가지 생각이 떠오르는 상황으로, 수많은 말들 속에서 제정신 차리고 본인 의지로 생각하려면 입 밖으로 중얼중얼 자기 귀에 들리도록 독백을 해서 실제로 자기 의지로 생각하는 지를 인지해야 한다. 안 그러면 이상한 논리와 자기합리화에 끌려가다 나도 모르게 상대를 흉기로 찌르거나 창 밖으로 몸을 날릴 수도 있다.[114] 포경수술이 에이즈 감염 확률을 높이는 이유이다(…).[115] 어머니의 화상 때문에 평생을 남 눈치보며 살았다며 증오 속에서 모든 걸 어머니 탓하던 사람이, 자기가 갓난아기일 때 어머니가 불 속에서 자기를 구하고 그렇게 됐다는 걸 알고 고통에서 벗어난 사례도 있다.[116] 이건 아돌프 히틀러가 카미카제 비스무리한 방법을 쓰자는 제안(다만 이건 카미카제와는 달리 탈출한 수단이 있긴 했다.)에 '''격하게 반대'''한 것도 있었다. 항복의 ㅎ만 들어도 개거품 물고 반대했던 그 히틀러가 말이다. 다만 그 이유가 게르만 민족에겐 자살같은 최후가 어울리지 않는다나 뭐라나.[117] 김준기,'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시그마북스,2009,p250. 이 출처에는 EMDR의 다른 효과들도 나와 있다.[118] 극단적인 케이스로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 중에는 오밤중에 불꽃놀이나 폭죽놀이를 보고 베개를 끌어안고 황망히 피난길(?)에 오르는 케이스도 있다! 60여 년이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119] 일종의 두문자어인데 약간 억지로 조어를 한 느낌이 없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