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랑

 

鄧朗
생몰년도 미상
서진의 인물.
등애가 촉을 정벌하고 264년에 모함으로 사망하면서 등랑을 포함한 자손들은 노비가 되었는데, 267년에 단작, 번건이 등애를 신원해줄 것을 청하는 상소를 하면서 273년에 사마염이 조서를 내려 등랑은 낭중에 임명되었다.
이후 단수령을 지내다가 무제가 서융아문에 임명된 번진에게 군사에 대해 논하면서 등애가 언급되어 번진이 등애의 충성에 대해 이야기하자 정릉령이 되었으며, 영가 연간에는 신성태수로 임명되었다가 부임하기 전에 양양에 불이 나면서 등랑과 모친, 처자를 포함해 온 집안이 불에 타 죽었다.
기록의 문제로 등애의 후예 중에서 여기서 살아남은 사람이 등랑의 손자인 등행만 살아남은 것인지, 등랑의 아들 등도, 등행이 살아남은 것인지는 불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