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틀로프 사건

 



러시아어 : Гибель тургруппы Дятлова (디아틀로프 고개 변사사건)
1. 개요
2. 탐사대 명단
3. 사건 개요
4. 알려진 의문점들
5. 사실
6. 참조
7. 문제 해결
8. 영화화
9. 게임화


1. 개요


1959년 2월, 어느 소비에트 연방 탐사대(총원 10명)가 우랄산맥을 오르다가 (도중에 산행에서 빠진 1명을 제외한) 나머지 9명 전부가 사망한 사건. 여러 가지 의문점이 많아 미스테리한 사건으로 남았다.[1] 2월 1일에서 2일로 넘어가는 밤에 어떤 일이 일어나 사망했다고 추정한다. 사건 당시 사진과 이야기. 2020년 7월 러시아 검찰청은 최종적으로 눈사태에 의한 사건이었다고 결론 내림.
탐사대 리더 이고르 알렉세예비치 디아틀로프(Igor Alekseyevich Dyatlov)의 이름을 따 '디아틀로프 패스 사고(Dyatlov Pass Incident)'라고 부른다. Dyatlov는 러시아어로 '쟈틀로프'라고 발음해야 하고, 러시아어 표기법에 따르면 '댜틀로프'라고 써야 하지만, 국내에서는 어째서인지 '딜라로프 패스 사고'로 더 많이 알려졌다. 실제 발음과도, 외래어 표기법과도 맞지 않는 어중간한 표기이다. 한국어 위키백과의 영향으로 본 항목명은 '디아틀로프 사건'이 되었다.

2. 탐사대 명단


  • 이고리 댜틀로프 (Igor Alekseyevich Dyatlov, Игорь Алексеевич Дятлов; 23) [2] : 탐사대장
  • 세묜 (알렉산드르) 졸로타료프 (Semyon (Alexander) Alekseevich Zolotaryov, Семён (Александр) Алексеевич Золотарёв; 37, 남)
  • 알렉산드르 콜레바토프 (Alexander Sergeyevich Kolevatov, Александр Сергеевич Колеватов; 25, 남)
  • 유리 (게오르기) 크리보니셴코 (Yuri (Georgiy) Alexeyevich Krivonischenko, Юрий (Георгий) Алексеевич Кривонищенко; 24, 남)
  • 니콜라이 티보-브리니올 (Nikolai Vladimirovich Thibeaux-Brignolles, Николай Владимирович Тибо-Бриньоль; 24, 남)
  • 루스템 슬로보딘 (Rustem Vladimirovich Slobodin, Рустем Владимирович Слободин; 23, 남)
  • 지나이다 콜모고로바 (Zinaida Alekseevna Kolmogorova, Зинаида Алексеевна Колмогорова; 22, 여)
  • 류드밀라 두비니나 (Lyudmila Alexandrovna Dubinina, Людмила Александровна Дубинина; 21, 여)
  • 유리 도로셴코 (Yuri Nikolayevich Doroshenko, Юрий Николаевич Дорошенко; 21, 남)
  • 유리 유딘 (Yuri Yefimovich Yudin, Юрий Ефимович Юдин) : 유일한 생존자. 사건 당일, 두통으로 산행을 포기했다고 한다.

3. 사건 개요


1959년 1월 28일, 이고르 댜틀로프를 위시한 탐사대원 10명이 러시아 우랄 산맥을 거쳐 오토르덴산을 등반하고 2월 12일 베이스 캠프 '비즈하이 마을'로 복귀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등반 당일에 유리 유딘이 열과 두통 증세를 보여 탐사대에서 이탈하고, 나머지 9명이 등반에 나섰다.
출발하고 5일차가 되는 2월 1일, 산에 폭설이 몰아치자 남아있던 유딘이 걱정되는 마음에 탐사대에 무전을 보냈는데, 곧바로 탐사대장 이고르 댜틀로프가 "우리들은 임시 캠프를 치고 휴식 중이며 무사하다." 하는 답신을 보냈다. 그러나 그 다음 날부터 갑자기 연락이 두절되었으며, 결국 하산날짜인 2월 12일에도 일행은 돌아오지 않았다.
수색대를 파견해서 실종자 수색을 하였다. 2월 26일, 임시캠프로 추정된 장소로부터 1.5 km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일행의 시신 5구를 발견하였다. 악천후 때문에 봄이 될 때까지 조사를 미루다가 재개하였다. 5월 4일에는 조금 더 먼 인근 계곡에서 시신 4구를 발견하여 실종자 전원의 시신을 수습하였다.
발견된 시체들은 사망 정황에 여러 가지 의문이 있었다. 옷에서는 방사능이 강하게 검출됐고 전나무도 불에 타있었다. 찢어진 텐트는 밖이 아닌 안에서 찢었다고 볼 수 있는 상황. 먼저 발견된 5명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속옷만 입은 채 죽어 있었다고 한다. 또한 계곡에서 발견된 시신 4구는 먼저 발견된 5명의 옷가지를 섞어 입었고 신체훼손이 심하였다. 러시아 정부는 조난사고라고 발표했지만 사건정황에 여러 가지 의문이 많아 이런저런 추측들이 나왔다. 하지만 결국 원인을 모르는 미해결사건으로 남았다.

4. 알려진 의문점들


먼저 발견된 대원 5명은 그 강추위 속에서도 속옷만 입고 하나같이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동사했다. 또한 나중에 발견된 4명 중 한 명은 자동차 사고에 맞먹는 물리적인 충격을 받아 두개골이, 두 명은 가슴뼈가 골절되었다. 또한 여성대원 루드밀라는 혀가 잘려 있었다. 거기다 모두들 오렌지색으로 피부가 착색되어 있었고 이들 중 2명의 옷에선 방사능 수치가 일정 수준 이상 검출되었다고 한다.
이 사건을 두고 미국인 칼럼니스트 마크 모르포드는 독초에 취해 환각에 빠진 끝에 사망했다고 주장하고, 근거로 캠프 주변에 자라고 있는 많은 독초들과 추위를 이겨내려고 불을 피워 독초들을 태운 흔적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나중에 발견된 대원들이 몸을 보호하기 위해 먼저 죽은 사람의 옷을 입었다는 반론이 나와 이 주장은 무시되었다.
또 원주민의 공격 때문이라는 의견도 나왔지만, 원주민이 '''공성병기'''라도 사용하지 않는 이상 일부 시신이 교통사고에 버금갈 큰 충격을 받은 것을 설명할 방법이 없어서 역시 무시되었다. 거기다 구조작업에 참여한 스키어 대부분이 지역 원주민들이었으므로, 원주민들이 이들을 죽였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졌다.
미국 과학분석가 브라이언 더닝은 사망원인이 눈사태이며, 급하게 탈출하느라 대원들이 텐트를 찢었으리라 주장했다. 하지만 탐사대가 텐트를 친 임시 베이스는 지형이 완만해서 눈사태 위험도 없었고, 그 위급한 상황에 불을 왜 피웠는지 설명이 안 돼서 역시 묻혔다.

마지막으로 출발 당일에 발열 증세를 보여 하차한 덕분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대원 유리 유딘이 한 주장이 있다. 그는 이게 다 당시 소련 정부가 비밀리에 실험한 군사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정부에 재수사를 요청했지만, 1950년대 냉전 시기에는 택도 없는 일이라 결국 묵살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2000년대 들어서 다시한 인터뷰에서는 군사무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나중에 밝혀지길 소련 정부는 이 사건의 수사기록 원본 일부를 고의로 훼손하고 나머지는 철저히 비밀리에 보관했으며, 복사본들은 전부 다 처리했다고 한다. 당시 수사를 지휘했던 경찰 간부 레이 이바노는 이 사건이 도저히 합리적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며 UFO의 짓일지도 모른다고 에둘러 말하기도 했다.

5. 사실


루드밀라의 시신에서 혀가 칼로 자른듯하게 잘려져있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는 잘못된 사실이다. 3개월이 지난 뒤 발견된 루드밀라의 시신은 눈 아래 3 m에서 발견되었으며 미라화가 굉장히 진행된 상태였다. 당연히 눈, 혀 등 썩기 쉬운 부분은 모두 박테리아에 의해 분해되었다고 설명할 수 있다. 특히 계곡의 시신들은 거의 석 달이나 지난 5월 4일에 발견되었기 때문에 부패작용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또한 한국에서는 루드밀라의 시신들만 강조되었으나 실제로는 다른 시신들에서도 혀가 썩는 등 손상이 심했다.
자동차에 치인 듯한 충격 또한 실제로는 심한 타박으로 인한 골절로 두개골 손상이 가능하다. 즉, 계곡에서 발견된 시신들의 물리적인 상처는 계곡에서 추락하였고, 이후 3개월가량 악천후로 쌓인 눈의 무게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또한 시신의 피부가 착색되는 것은 무슨 특이한 현상이 아닌 사후에 시신에 일어날 수 있는 정상적인 반응이고, 방사선 수치가 높게 검출되었다 운운도 무책임한 황색 저널리즘의 결과이다. 당시 소련과 세계 여러 곳에서 핵무기 실험을 하여 방사능이 낙진되었기 때문에, 방사능 소량이 널리 퍼진 것은 드문 일이 아니라고 한다. 또한 옷에서 방사능이 검출된 시신은 단 2구였는데, 두 사람 다 방사능 물질과 관련된 곳의 직원이었기 때문에 옷에서 방사능이 나온다고 해서 이상할 이유도 없으며 그것도 알려진것과 달리 엄청나게 강한 정도가 아닌 다소 높은 수치였다고. 탐사대원들의 머리가 백발화했다는 내용도 떠도는데 사실이 아니다.검시관의 보고서엔 그들의 머리가 모두 자연 색상 그대로라고 기록되었다.
소련 정부 또한 실제로는 이 사건의 파일을 기밀로 분류한 적이 없다고 한다. 당시 소련 정부는 해당 사건 현장을 아마추어 스키 그룹에 한해서만 출입을 금지했는데, 동일한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려는 안전책일 뿐이었으며, 3년 뒤에는 해제하였다고 한다.
최근에는 초저주파 불가청음[3]의 영향 때문이었라는 가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들리지 않는다 해도 청각기관을 자극하기는 마찬가지라 초저주파 불가청 대역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공포심을 자극받는다는 주장. 주로 해일, 지진 등 자연재해나 천둥 번개와 같은 기상현상에는 반드시 포함되고, 동물들이 재해발생 전에 미리 대피를 하는 이유라고 한다.
즉, 멀리서 일어난 눈사태나 숲 속의 소리가 불가청음으로 전해져서 무의식적인 공포가 자극되었고, 예민한 대원 한두 명이 패닉에 빠져 텐트를 부수고 도망쳐 결국 다른 일행들까지 전부 얼어죽게 만들었다는 가설이다. 그런데 문제는 디아틀로프 팀들의 행동 이전에 이 불가청음 때문에 공포심이 생길 수 있다는 주장 자체가 무리가 있다는 것. 저주파에 의한 심적 동요는 실험적으로 관찰되곤 하지만 하룻밤 정도로 아홉 명이 한꺼번에 미쳐버렸다고 하기엔 설득력이 매우 떨어진다.[4]
2009년 사건 50주기를 맞이하여 동료 9명의 무덤을 찾아온 유일한 생존자 유리 유딘[5]은 이런 말을 남겼다.

내가 하느님께 질문할 기회가 단 한번이라도 주어진다면, "그날 밤에 도대체 내 친구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라는 것을 꼭 묻고 싶습니다.

소형 미사일에 맞은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

6. 참조



7. 문제 해결


60년이 지나, Johan Gaume 과 Alexander M. Puzrin 두 학자가 네이처에 이 사건이 특이한 슬래브 눈사태때문이란 것을 발표했다. 당시 조사할때 이런 눈사태가 있는지 몰랐다는 결과가 시뮬레이션으로 밝혀졌다.

8. 영화화


핀란드 출신 감독 레니 할린이 연출을 맡아 2013년 6월에 개봉되었다.(#)[7]
영화 자체는 평작이다. IMDB 점수는 5.8
소소한 설정으로 들어가면 말이 안 되는 부분[8]이 많아서 비난받긴 하지만 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전반적으론 평작 취급을 받으며[9] 호러 영화 팬들 사이에서는 그 보단 좀 더 나은 평가를 받는 영화. 비록 레니 할린이 한물 간 감독이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왕년의 흥행 감독답게 기본은 된 영화다. 파운드 푸티지 장르긴 하지만 전개를 잘 보면 모큐멘터리라기 보단 보통 호러영화의 드라마투기를 따르고 있으며, 카메라워크도 핸드헬드는 설정일 뿐이라는 듯 안정된 앵글을 가져가기 때문에 모큐멘터리 장르에 거부감을 가진 사람도 그냥 보통 호러영화 보듯 볼 수 있다.

댜틀로프 탐험대가 갔던 길을 그대로 따라가며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려는 미국의 대학생 다섯 명이 주인공으로 삼아 파운드 푸티지 형식으로 진행되는 영화다. 초중반은 댜틀로프 사건처럼, 눈 내리는 산을 배경으로 하지만 중반에 눈사태가 일어난 후부터는 비밀 실험실로 무대가 옮겨진다. 필라델피아 실험[10]과 엮이며 순간이동을 하는 비쩍 마른 괴물(골룸과 닮았다)과 만나 패닉에 빠지기도 한다. 최후에는 살아남은 두 사람이 공간이동을 시켜주는 것 같은 기묘한 터널을 통과해 사라진다. 그리고 실험실 밖에 도착하는데 거기서 정신을 잃었는지 꼼짝도 하지 않고, 소련군이 두 사람을 실험실 안으로 옮긴다. 그리고 동굴 안에서 주인공 파티를 쫓아왔던 괴물들의 정체가 밝혀지는데...
사실 두 사람은 시공의 터널을 통해 과거, 디아틀로프 사건이 있던 그 때로 이동한 것이었다. 중간에 실험실 안에서 발견된, 주인공 파티의 비디오 카메라는 이 때 함께 이동한 것이었다. 그리고 동굴 안에서 쫓아왔던, 순간이동을 하는 괴물들은 바로 과거로 날아간 이 두 사람이었다.[11] 괴물들이 주인공 파티의 두 사람을 죽일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 죽이지 않고 나머지 한 사람만 죽인 것은 이 때문.

9. 게임화


폴란드의 독립 게임 개발사인 IMGN.PRO가 2015년 6월 9일 디아틀로프 사건의 배경인 Kholat Syahkl에서 따와 Kholat이란 게임 타이틀을 런칭했다.
19.99$ 가격에 STEAM에서 판매중 (http://store.steampowered.com/app/343710/)
[1] 총원 10명 중 1명은 질병으로 인해 이탈하고 며칠 후 9구의 시신을 수습했다. 그 중 5구는 겁에 질린 표정과 속옷바람에 동사했으며 나머지 4명 중 1명은 물리적인 충격으로 두개골이 골절, 2명은 가슴뼈가 골절됐다. 또한 한 명은 혀가 반듯하게 잘려있었다. 그들의 옷에서는 방사능이 검출되었고 주변 나무들은 불에 타 있었다.[2] 1959년 기준 나이[3] Infrasound 초저주파 불가청음. 인간은 일정한 대역의 파장만을 소리로 인식 가능하며 대역보다 낮은 파동일 경우 초저주파 불가청음, 높을 경우 (우리가 익히 들어 본) 초음파(Ultrasonic sound)라고 한다. 어떤 쪽이든 들을 수 없긴 매한가지지만 가청대역에 약간씩 개인차가 있고, 나이를 먹을수록 대역폭이 좁아진다고 한다. 영국에서 이를 이용한 앱으로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교사들을 놀리는 게 유행한 적이 있다.[4] 공장이나 건설현장 같은 곳은 소음과 함께 초저주파가 상존한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 가설대로라면 공사판에선 적어도 사고율이라도 미친 듯이 높아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5] 2013년 4월 27일 75세로 세상을 떠났다.[6] 산사태가 아닌 텐트 안에 설치했던 보일러에서 일어난 화재 때문에 텐트를 탈출했다고 추측하고 있다. 텐트를 찢고 나와야 할 정도로 위급한 상황인데 정작 텐트 밖에서부터 사망지점까지 이어진 발자국에 의하면 그들이 나름대로 침착하게 이동했다는 점 때문에 산사태라고 보기 힘들다는 것. 탐사대원들 중 일부의 옷과 몸에 불에 탄 흔적이 있으며, 일부가 각혈을 한 흔적이 있는데 흡입화상으로 인한 증상이라는 것이다. 텐트 밖으로 탈출하기 전까지 탐사대원들은 일산화탄소에 노출되어 중독되어 있었고, 그로인해 이성적인 판단력이나 감각능력이 떨어진 상태라 추락이나 동사에 대한 대비도 어려웠다는 것이다. [7] 레드얼럿3에바 역을 맡은 젬마 앳킨슨이 조연으로 출연[8] 수십 년이 지나 발견된 캠코더가 돌아간다던지.[9] 이전 문서에는 한국에서 졸작 취급을 받는다고 했는데, 피판에 소개된 이후로 네이버 기준 꾸준히 7점대를 유지한다. 체르노빌 다이어리와 같이 음모론 영화등에 같이 포함되는 경우가 있기도하고 파운드 푸티지 장르의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는 공통점으로 인해 같이 묶어서 졸작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체르노빌 다이어리는 완성도와는 별개로 고인능욕 등으로 피난받아 마땅하다.[10] 당연히 완벽한 허구다. 항목 참조.[11] 과거로 가서 수십 년을 갇혀 있었기 때문에 괴물이 된 게 아니라, 시공의 터널을 통과하며 괴물로 변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