딘보린

 


[image]
'''시호'''
선황제(先皇帝)
'''존호'''
대승명황제(大勝明皇帝)
'''연호'''
태평(太平, 968년 ~ 979년)
''''''
딘(Đinh, 丁/정)
''''''
보 린(Bộ Lĩnh, 部領/부령)
'''생몰기간'''
924년 ~ 979년
'''재위기간'''
968년 ~ 979년
1. 개요
2. 생애


1. 개요


베트남의 딘 왕조의 초대 군주이자, 대구월의 창시자이다. 사실상 대월의 기반을 마련한 사람. 시호는 선황제(先皇帝). 휘는 정부령(딘보린, Đinh Bộ Lĩnh, 丁部領)이고, 아명은 정환(딘호안, Đinh Hoàn, 丁桓). 황제 즉위 이전에는 만승왕(Vạn Thắng Vương, 萬勝王)으로 불렸다.

2. 생애


924년, 화려(호아르, Hoa Lư, 華閭)에서 베트남 자주 시대 오조(吳朝)의 개국공신 정공저(딘꽁쯔, Đinh Công Trứ, 丁公著)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사후에는 어머니와 살고 있었는데, 965년 제4대 오왕인 남진왕(남딴브엉, Nam Tấn Vương, 南晉王) 오창문(응오쓰엉반, Ngô Xương Văn, 吳昌文)이 죽자 전국적으로 십이사군(12 Sứ Quân, 十二使君)들이 반란을 일으킨다.
그는 십이사군 중 가장 강대한 세력인 진명공(쩐민꽁, Trần Minh Công, 陳明公)[1]의 휘하로 들어가는 기회를 잡았다. 그리고 출중한 활약으로 진명공의 총애를 사며 장군의 자리까지 올랐고, 진명공이 자식이 없이 사망하자, 그의 후계자가 되어서 태평[2] 세력을 계승했다.
이후 나머지 세력들을 차례차례로 복속시키며 베트남의 통일을 이뤘다. 968년 국호를 대구월로 정하고, 황제의 자리에 등극하여 연호를 태평(타이빈, Thái Bình, 太平), 수도는 자신의 고향 화려로 정했다.
973년, 송나라로부터 교지군왕(交趾郡王)에 책봉되는 등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조정과 군대를 적극적으로 개혁했다. 또한 엄격한 사법 체계를 정립하여 법을 어기는 자는 팽형에 처하거나, 호랑이의 먹이로 던져줬다.
979년, 정선황은 장남과 함께 궁전 안에서 환관 두석(도틱, Đỗ Thích, 杜釋)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1] 진람(쩐람, Trần Lãm, 陳覧).[2] 오늘날의 타이빈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