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이슝 일가 피살 사건
1. 개요
1980년 2월 28일, 대만 타이페이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현재까지도 미해결된 사건으로 남아있다.
2. 린이슝 일가의 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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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피해자인 린이슝의 모친 린요우아메이(왼쪽)와 쌍둥이 딸 린량쥔과 린팅쥔.(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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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발생 전의 린이슝 일가 가족사진. 뒤쪽의 여자아이는 린이슝 부부의 장녀 린환쥔.
린이슝은 변호사 출신으로, 대만성 의원 곽우신의 선거소송을 담당했던 것이 계기가 되어 곽우신의 기반을 이어받아, 대만성 의원이 되어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민주화 운동가들의 변호를 맡다가, 1979년 메이리다오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군법재판에 회부되어 투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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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이슝이 체포된 지 며칠 후, 타이페이 신이로에 있는 린이슝의 자택에 대낮에 괴한이 침입했다. 괴한은 린이슝의 모친 린요우아메이를 무려 13번이나 찔러 죽이고, 린이슝의 장녀인 린환쥔(林奐均)을 6번이나 찔렀으나, 린환쥔은 다행히 목숨은 건졌다. 그러나 린이슝의 쌍둥이 딸인 린량쥔과 린팅쥔은 모두 한 번씩 칼에 찔려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린이슝의 부인인 팡쑤민은 당시 린이슝을 면회하러 감옥에 간 상황이라, 괴한의 습격을 피할 수 있었다.
3. 범인은 누구인가?
사건 당시 피해시신 사진(열람시 주의!)
당시 린이슝의 집은 경찰의 24시간 감시를 받는 중이었기 때문에, 이런 사건이 일어난 것은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우리는 범인이 들어가는 줄도 몰랐다'''라고 말해 대만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가장 많이 찔린 린요우아메이의 시신을 살펴보면, 범인은 린요우아메이에게 단도를 찔러넣은 후 이를 좌우로 흔드는 잔인무도한 방식을 보였는데, 이런 방식은 '''특수부대에서 훈련받는 방식'''이라, 범인이 특수부대원이거나 적어도 이런 훈련을 받은 인물일 가능성이 있어보였다. 이 때문에 당시 중국 국민당의 비밀특수부대나 비밀경찰이 이런 짓을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3월 2일, 대만 경찰은 린이슝 집 앞에 놓인 과일상자를 근거로, 린이슝의 외국인 친구인 브루스 제이콥스를 용의자로 지목했으나, 제이콥스는 스스로 경찰에 출두해 결백을 호소했고 이후 제이콥스가 범인이라는 증거가 없어 무혐의처리 되었다. 대만 정부는 국민들의 여론을 감안해, 대만 전역의 경찰들로 특수수사팀을 꾸리고 거액의 현상금을 걸었으나,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았다.
범인이 하필 린이슝 일가를 공격한 날이 2.28 사건의 기념일이란 점에서, 대만의 민주화 운동가들에게 공포와 경고차원에서 국민정부가 저지른 범행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4. 사건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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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이슝이 투옥된 데다 가족들까지 피살당하면서, 린이슝의 부인인 팡쑤민과 장녀 린환쥔의 생활은 상당히 어려워졌다. 결국 집을 내놓게 되었지만 아무도 사가지 않자, 대만 기독 장로교회가 신도들의 모금으로 이 집을 구입해, 대만 기독 장로교회 의광교회로 개조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의광교회는 매년 2월 28일에 살해된 린이슝 일가를 추모하는 추모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교회의 위치는 한국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인 융캉제에서 걸어서 5분 정도의 거리다. 관심 있는 분들은 가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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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행사에 참석한 린이슝 일가. 자녀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장녀 린환쥔은 미국인 선교사와 결혼했고, 남편과 함께 종교 및 아동교육 활동에 종사하고 있다.
2009년 마잉주 총통의 지시로 이 사건과 천원청 살인 사건의 재조사가 시작되었다지만,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난 탓에 해결은 어려운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