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지 그레이엄
1. 개요
미합중국의 법조인이자 정치인으로 2003년부터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연방 상원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 군 복무
1977년 대학교를 졸업하고 1981년 로스쿨 졸업 후 1982년부터 공군 군법무관으로 1989년까지 근무한 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방위군으로 1995년까지 복무하였다. 이후 예비군에 편입 , 2004년 예비군 대령으로 승진하였고 , 2007년과 2009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예비군으로 복무하기도 했다. 2014년에 퇴역하면서 근속과 파병 경력을 치하하는 의미에서 동성무공훈장이 수여되었다.
3. 정치 활동
1992년 선거에서 민주당의 로웰 로스 후보를 이기고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어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2년 뒤인 1994년 선거에서 민주당 제임스 E. 브라이언 후보를 누르고 승리해 사우스캐롤라이나 연방하원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95년부터는 연방하원의 외교위원회 , 노동위원회 , 법제사법위원회 , 국방위원회 등 여러 상임위에서 두루 일했다. 이후 2002년 선거에서 드디어 스트롬 서먼드[1] 의 정계 은퇴로 공백이 된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연방 상원의원 직에 도전했는데 54.4%의 안정적인 득표율을 기록하며 승리해 당선되었다.
2016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도 참가했었다. 출마선언 후 0~1%의 부진한 지지율을 보이다가 미국 현지시간 2015년 12월 21일 후보직에서 사퇴했다. 사퇴 당시 전국 평균 지지율은 0.5%수준이었다. 사퇴하면서는 젭 부시를 지지했으며 대선에서는 공화당 경선에서 이긴 트럼프에게 투표하지 않았다.[2]
그러나 트럼프 당선 이후 트럼프 지지로 돌아섰고 트럼프에게 조언을 하며 개인적으로도 가까워졌다. 존 매케인 사후 도널드 트럼프의 막말에 대해서 거의 침묵하다시피 하는 등 좋게 말하면 도널드 트럼프의 호위무사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19년 1월부터 상원 법제사법위원회 의장을 맡고 있다.
2020년 연방상원의원 4선 도전에서 비교적 지명도가 낮은 민주당의 제이미 해리슨 후보와 맞대결을 펼치게 됐는데 노골적인 친 트럼프 행보로 집중적인 낙선 타깃이 되었고, 앞서 두자릿 수의 너끈한 차이로 상대 후보를 제치고 승리했던 앞선 선거들과 달리 선거 막판으로 갈수록 두 후보 간의 여론조사 격차가 붙어 민주당 해리슨 후보가 이기는 여론조사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공화당 내 트럼프 지지층은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은 그레이엄을 탐탁치 않게 보고 있으며, 민주당 지지층은 트럼프 심판을 위해 그레이엄을 떨어트리려는 웃지못할 상황에 놓여 여러모로 린지 그레이엄의 정치적 위기가 찾아온 상태였는데 의외로 꾸준히 두자릿수 격차를 유지하며 무난히 승리해 자리를 지키는데 성공했다.#[3]
원래 같이 연방 상원의원 생활을 같이 했던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오랫동안 동안 친분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그 바이든에게 패배한 트럼프가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자, 이를 반대하기는 커녕 그 발언을 옹호하고, "48시간 이내로 부정선거 증거가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다." 라는 주장을 하고, 트럼프의 대선불복 소송을 돕기 위해 50만 달러의 펀딩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히는 등 트럼프 진영의 부정선거 주장에 찬동하였다. 몇 년 전 공화당 의원 존 매케인이 사망한 당시에는 "존 매케인은 오바마와의 대선 경선에서 패배 후, 오바마 후보가 이제 나의 대통령이다’라고 말했다며, "존은 우리에게 지는 방법을 가르쳐 줬다"면서 그는 대선 경선에서 패배하여 자신이 상처를 받은 그 순간에 오바마의 승리를 인정하며 국가를 치유했다"며 "나 자신이 다치는 것보다 대의가 더 훌륭하다는 것을 배웠다"고 눈물의 추도사를 남겼는데, 당시 그레이엄이 남긴 추도사와 대조되는 발언이라 논란이 되었다.#
결국 선거 불복 주장을 포기하고 트럼프에게 바이든의 대통령 취임식 참석을 충고하였다.#
하지만 12월 14일 선거인단 투표가 완료되면서 바이든을 당선인으로 공개적으로 인정하더니#, 이후 일부 의원들의 선거 불복 행보를 대놓고 비판하였다.# 2021년 1월 6일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트럼프 대선 승리를 외치는 폭도들이 의회의 바이든 당선 추인 과정을 저지하려 의회에 난입하자 결국 트럼프와 완전히 선을 그으며 '나도 이런 식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관계가 끝나는 것이 정말 싫다'고 말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선은 그은 것은 맞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 탄핵 심판에서는 트럼프 측 변호인단 사무실에 출입하며 완전한 손절이라고 보기에는 애매하게 보인다는 것이 중평이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10341904
4. 선거 이력
5. 여담
- 북한의 6차 핵실험과 화성-15형 시험발사에 대해 전쟁이 나면 한반도의 책임이며 사망자는 한반도가 될 것이라는 발언으로 전세계의 긴장을 고조시켰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도 국제대회를 남북 관계 전환에 계기로 삼으려는 문재인 정부의 시도에 대놓고 반대하며 북한이 참가할 경우 미국팀은 참가하지 않을 것이니, 한국 정부는 북한의 참가를 허락하지 않아야한다고 요구했다.
- 공화당 의원 중에서는 드물게 미혼에 자녀도 없는 독신이다. 22살 되던 해에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13살 되는 여동생을 혼자 부양했던 경험 때문.[5]
[1] 원래 민주당 소속이었지만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이후 본격화된 민주당의 좌클릭에 반발해 194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독자 출마 하는 등 민주당 입장에서는 트롤링을 반복하다 1964년을 기점으로 아예 민주당을 탈당한 후 공화당에 입당하였다.[2] 다만 민주당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에게도 투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냥 투표를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3] 54.5%의 득표율로 당선됐는데, 이는 2014년 선거 때보다 근소하나마 더 높은 득표율이다.[4] 단독 출마[5] 이 때문인지 클로짓 게이라는 가십도 있다. 신빙성 여부를 떠나서 미국에선 꽤 알려져 있는 가십이긴 한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