릿다 전쟁

 

632년 ~ 632년까지 아라비아 반도 전역에서 벌어진, 이슬람 세력 (움마) 대 비무슬림 아랍 부족 간의 전쟁.

1. 배경


무함마드메카에 입성하여 히자즈의 주도권을 잡은지 2년도 되지 않아 사망하였다. 이후로 아부 바크르가 칼리프로 선출되었지만 선출과정에서 알리가 소외되면서 갈등이 심해지게 되었고 이 틈을 타서, 여러 아랍 부족들은 자신들의 복속은 무함마드와의 계약이었는데 그가 사망하였으니 메디나에 대한 조공 계역은 이제 무효라고 주장했고 무함마드에 뒤이을 알라의 사도는 이제 자기라면서 독립을 선언하고 메디나를 공격하였다.
이에 무함마드의 후계자이자 1대 정통 칼리파인 아부 바크르는 알리와 휴전했고, 주요 전력이 우사마의 북부 아라비아 원정에 할애된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할리드 이븐 왈리드를 중용하며 차례차례 반란을 진압해나갔다.

2. 전개


주요 반란 세력은 반도 중앙부의 도시 부타의 말리크, 중북부 도시 부자하의 툴라이하, 동부 야마마의 무사일리마였고 그 외에도 바레인, 오만, 하드라마우트 (반도 남부), 예멘 등지에서도 반란이 일어났다.

2.1. 아부 바크르의 활약


메디나 북쪽에 거주하던 가타판, 하와진, 타이 부족이 이슬람을 거부하고 메디나를 공격하였지만 이미 아부 바카르는 이들이 메디나로 오고있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무슬림 군대는 굳은 신앙심을 바탕으로 그들을 격퇴해 내었고, 야습을 통해 도리어 그들의 근거지인 두키사를 함락하는 쾌거를 올렸고, 그 시점에 우사마의 원정군이 돌아와 메디나의 사기가 올라갔다. 패배한 부족군은 더 북쪽의 아브라크로 도주하였다.
아부 바크르는 지친 원정군을 무리하게 또다른 전투에 바로 투입시키는 대신에 본인이 병사를 모집하여 아브라크로 진군, 함락시킸다. 가타판, 타이 부족은 부자하에 위치한 툴라이하의 진영으로 도주하였다. 이후 바크르는 우사마의 군대를 포함하여 11개 군단으로 구성된 반란 진압군을 편성하였다.

2.2. 할리드 vs 툴라이하


메디나에게 가장 위협적이었고 스스로 무함마드와 동급의 예언자라고 주장한 아사드 부족의 툴라이하 진영으로는 '알라의 검' 할리드 이븐 왈리드의 군단이 파견되었는데, 명석한 할리드는 타이 부족과 자딜라 부족을 설득하여 툴라이하 진영으로부터 이탈시켜 무슬림 군대에 합류시켰다.
그러나 툴라이하의 군대는 여전히 1만 5천에 이르렀고, 할리드 군은 6천이었다. 할리드는 꾀를 내어 툴라이하에게 지휘관끼리의 일대일 대결을 요구하였고, 할리드의 무공에 밀린 툴라이하가 도주하자, 무슬림 군대가 아사드 - 가타판 연합군에 공세를 가해 대파하였다. (부자하 전투, 632년 9월) 할리드는 이에 멈추지 않고 감라까지 진격하여 패잔병을 섬멸하여 아라비아 중부의 툴리이하 세력을 모조리 격퇴하고 패권을 잡게 되었다. 그리고 나콰르 전투와 자파르 전투를 통해 632년 8월 살마 부족을 굴복시켰다.
계속해서 할리드는 부족들을 공격했고 야마나 전투에서 무사일리마의 마지막 군대가 전멸함으로써 632년 12월 릿다 전쟁이 끝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