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1. 개요
'''أشهد أن لا إله إلا الله وأشهد أن محمد رسول الله'''
'''나는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으며 무함마드는 그의 사도임을 간증합니다.'''
이슬람에 입교하기 위한 의식은 먼저 구쓸(세정의식)을 한 뒤, 또렷한 정신과 입교하겠다는 의향으로 위 문장을 적어도 4명 이상의 무슬림 앞에서 '''입교의 의사를 확실히 전달하고 본인 스스로도 확고히 결심한 가운데''' 선언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슬람의 입교행위인 샤하다는 근본적으로 신자와 하나님 양자간의 의식이므로 증인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고 권장사항에 속한다.) 위 문장을 '샤하다'라고 한다. 기독교의 세례성사나 불교의 수계식과 비슷하다. 이 중 하나라도 결여되어 있으면 제대로 된 이슬람 입교자라고 간주되지 않는다.[5]
이슬람교는 무함마드를 신의 사도로 여기는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이다. 예언자 무함마드가 동굴에서 자다가 날개가 600개 달린 대천사 지브릴(جبريل)이 전해준 계시에 의해 아내와 어린 조카에게 신의 말씀을 전한 것에서 시작되어, 현재 대략 19억 명의 신도가 있다.'''하나님은 위대하시다'''
기독교, 힌두교, 불교와 함께 세계 4대 종교 중 하나로 여겨지기도 한다.
2. 이름
이슬람(اسلام)이라는 말은 아랍어 어근 'س ل م(S-L-M)'에서 온 것인데, 이는 아랍어로 (신에게의) 복종이라는 뜻이다.[6] 평화를 뜻하며, 구체적으로는 '(하나님에게) 복종함으로써 얻는 마음의 안식과 평온함'을 의미한다. 무슬림들의 인삿말 "앗살라무 알라이쿰"(평화가 당신께 함께 하기를), 유대인들의 인삿말 "샬롬"[7] 에 이 낱말이 들어가있다. 성경에서 부활한 예수가 제자들 앞에서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말한 것도 이런 셈족 언어의 전통에서 이해하면 된다. 예수가 생전에 썼던 아람어도 셈어족에 속하므로.[8]
한자로는 회교(回敎)라 표기한다. 회흘(回鶻; 현재 중국의 신장 위구르족 자치구 행정구역) 지방에서 건너온 종교라는 뜻으로 추정되며, 명나라 때에는 회골 지방에서 건너와 중국에 정착한 기독교인과 유대인도 회회인(回回人)이라 칭하였다.(이를테면 기독교인 십자회회(十字回回) 유대인은 남모회회(藍帽回回) 등등 회회 앞에 특징을 붙여 칭함) 그러나 명나라 때에 이르자 명의 쇄국 정책의 일환으로 서역 출신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결혼하는 것을 금하고 한족하고만 혼인하도록 강제 하는 정책으로 이들을 한화시켜버렸고 이에 따라 이슬람 회회인 이외에 기독교와 유대교 회회인은 아예 한족과 동화되어 버리거나 차라리 중국 내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하였고 결국에는 '회회'라는 말이 무슬림을 칭하는 말로 굳어지게 된다.[9]
한국 이슬람중앙회에서는 ‘회교’라는 명칭은 정확한 이름이 아니므로, ‘이슬람’ 또는 '이슬람교(敎)'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슬람을 '마호메트교'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으나, 이슬람은 무함마드를 신으로 숭배하는 종교가 아니므로 ‘마호메트교’라는 명칭도 쓰지 않을 것을 권고한다.
3. 이슬람의 기본
'''하나님 외에는 신이 없으며 무함마드는 그의 예언자'''
'''لَا إِلٰهَ إِلَّا ٱلله مُحَمَّدٌ رَسُولُ ٱلله'''
'''(라-일라-하, 일라-알라, 무함마둔 라술룰라)'''
이슬람권 국가에서 많이 들을 수 있는 아잔의 "신은 위대하다" (알라-후 아크바르) 다음 나오는 2절의 기반이기도 하다.
- 6대 믿음
무함마드에게 계시를 내린 천사는 지브릴(جبريل), 히브리어로는 가브리엘(גַברִיאֵל)이다. 이슬람에서는 천사에게는 종족 번식이 필요없다. 필요에 따라 신에 의해 생산이 된다 생각해 따로 성별을 따지지 않는다.
경전은 쿠란이다. 번역으로 인한 논란을 방지하기 위해 '''쿠란은 번역이 금기시'''되어 있다.[16] 조금 쉽게 설명하자면,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자신의 말을 전해주고, 무지한 인간을 위해 예언자들을 통해 약간의 특수한 능력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이게 자꾸 곡해되고 왜곡되어 하나님의 말씀은 엉뚱하게 해석되고, 예언자인 예수를 신처럼 숭배하는 현상이 일어나자 마지막으로 아예 '베껴적고 달달달 외우기만 하면 천당에 갈 수 있는 모범답안'으로 인간에게 쿠란을 준 것이다. 그래서 쿠란의 번역을 금기시하는 동시에 사도 무함마드는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
물론, 이건 아랍어로 된 쿠란만이 유일하게 정통성이나 종교적 가치가 있다는 것이니까 번역 자체를 금지한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다른 말로 번역한 쿠란은 쿠란과 동등한 지위를 갖지 못하며, 번역본은 쿠란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설명서 정도의 지위만 차지할 뿐이다. 이런 식으로 번역된 쿠란에는 항상 '의미의'라는 수식어가 붙거나 '주해서'라는 단서가 달린다. 예를 들어 한국어 번역본의 이름은 '성 쿠란, 의미의 한국어 번역'이다. 그리고 이러한 점 때문에 만약 번역본을 아랍어로 된 쿠란과 동급으로 여기는 풍조가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독특한 지역적 차이로 간주된다.
무슬림이 되는 방법은 무슬림이 되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하고 아래의 샤하다(신앙고백)의 의미를 이해한 상태에서 아랍어로 샤하다를 낭송하는 것이다. 샤하다를 혼자 해도 유효하지만, 아무개가 샤하다를 했음을 확인해줄 무슬림 증인들 앞에서 하는 것이 일반적인 원칙이다. 근처에 있는 성원의 이맘 앞에서 이맘이 샤하다를 천천히 낭송하면, 입교자가 이를 따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슬람에서는 모든 기도나 신앙 행위를 할 적에 신앙을 위해 한다는 명확한 목적의식이 있어야만 유효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전혀 무슬림이 될 생각이 없는 사람이 입으로만 샤하다를 했다고 무슬림이 되었다고 보지는 않는다.
3.1. 다른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와의 차이점
일반인들의 상식상으로는 이슬람은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유대교를 뿌리로 두고 있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정작 무슬림들은 이슬람이 아담 때부터 시작된 종교로, 유대교와 기독교는 원래의 순수한 유일신 신앙이 변조된 것이고 따라서 이슬람은 인류 창조로부터 시작된 종교라고 주장하고 있다.[17] 그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가졌던 신앙과의 동일성을 강조하며[18] , 무함마드부터가 "아브라함의 종교"라는 표현을 적극 사용하고 확산시킨 장본인이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슬람 신학의 시선에선 '''아담, 이브, 아브라함, 모세, 예수, 마리아 모두 무슬림이었고''', 무함마드는 이 계보의 예언자들 중 마지막 예언자이자 사도이다.[19] 즉, 무슬림들 본인들의 신학적 시각에선 '태초부터 이슬람교, 즉 온전한 아브라함의 유일신의 종교는 존재했고, 무하마드로서 이 세상의 인간들에게 이 유일신의 가르침의 마지막 부분까지 온전하게 알려짐에 따라 최후의 예언자와 함께 '''완성되었을 뿐'''이다.
아 너희가 모세오경과 복음과 너희의 주님께서 너희에게 지금 내려주신 것(쿠란)을 따라 행할 때까지 너희는 아무것도 없느니라
오 성서의 백성들아 왜 너희가 진리를 허위와 뒤섞어 의도적으로 진리를 은폐하느뇨?
그리고 스스로 ‘우리는 기독교인이요’라고 하는 자들로부터도 내가 약속을 받았으나 그들은 그들에게 보내어진 메시지 중에서 선한 부분을 저버렸노라. 그리하면 부활의 날(저들이 하나님의 책을 버리고 하나님의 메신저들과 그분의 질서들에 복종하지 않고 하나님의 계율을 범하였을 때)까지 그들 가운데에 증오와 대립을 내가 심었노라 그리하여 곧 하나님께서는 그들 자신들이 행해온 것이 무엇인가를 그들에게 알릴 것이니라.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으며 예수에 대한 해석이 기독교와 꽤 다르긴 하지만, 유대교가 예수를 사칭이니 사기꾼 예언자니 하면서 부정적으로 보는 것과 달리 예수를 대단히 긍정적으로 본다. 이슬람에서 예수는 25명의 정식 예언자[22] 중 하나로 인정받으며 예언자 중에서도 상당히 높은 급, 신이 보낸 중요한 예언자 3명 중 1명[23] 으로 대우받는다. 여기서 모세와 예수를 무함마드와 동일하게 보는 게 아니라 두 예언자도 신의 예언자가 맞지만, 신이 완전하게 만들 목적으로 무함마드라는 예언자를 보냈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교리상으로는 무함마드가 최고의, 그리고 최후의 예언자이다.[24] 동정녀 마리아의 성령을 통한 예수 잉태를 인정하고, 예수가 행했던 모든 기적도 인정하며, 최후의 심판일에 예수가 재림할 것이라는 것도 인정한다.성서의 백성들 가운데 (1)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2) 최후의 날을 믿지 아니하며, (3)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도께서 불법이라 한 것을 불법으로 지키지 아니하며, (4) 진실의 종교(이슬람)를 따르지 아니하는 자들에 대항하여 그들이 세금을 기꺼이 납부하고 그들 스스로 복종할 때까지 싸우라 그리고 유대인들이 말하기를 우자이르[21]
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고 기독교인들은 메시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니라 그것이 바로 그들이 자신들의 입으로 말하는 것이노라 그들은 그들 이전에 믿지 아니한 자들의 말을 흉내내는 것이니 하나님의 저주가 그들에게 있으니라 얼마나 저들이 진리로부터 벗어나 미혹되어 있는가?
그러나 성경대로는 아니고 지극히 이슬람스러운 전통에 따른다. 가장 흔한 이슬람 전승에 따르면, 예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도 사실 페이크고 재림하긴 하는데 십자가들을 부수고 기독교도를 이슬람으로 이끌며 40년 통치 후 죽어서 메디나의 무함마드 무덤 옆에 묻힐 것이라고 한다. 보다시피 예수의 신성만이 아닌 신약의 핵심을 싸그리 저격하는 듯한 내용 때문에 기독교 입장에선 되려 신성모독. 애초에 무함마드가 '예수 바로 다음에 온 최후의 예언자'라고 광고하고 있으니까. 즉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삼위일체나,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주장은 믿지 않는다'''는 데에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 이슬람에서의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고, 신이 권능을 발휘하여 예수 대신 이스카리옷 유다를 십자가에 매달리게 하여 예수를 구해줬다고 해석한다.[25] 또한 이슬람에서 무함마드를 기독교에서의 예수와 같은 위치에 두는 것도 결코 아니다. 기독교의 예수는 성삼위 중 성자 포지션이므로 참 인간인 동시에 참 하느님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슬람에서 무함마드는 아무리 위대하든 말든 그냥 인간에 불과한 존재이며 인간으로서의 약점 역시 갖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때문에 주류 수니파 이슬람은 기독교를 우상숭배를 금지한다면서 자기네들이 우상숭배를 하고 있다고 깐다. 특히 가톨릭의 성모 공경으로 인한 마리아상의 존재 같은 것은 영 좋지 않게 본다. 쿠란에서도 마리아를 높게 보지만 성모공경은 신과 같이 대한다며 비꼬고 있다.
다수의 수니파와 소수의 시아파 및 기타 등이 있는데 나라마다 파의 비율은 다르다. 예를 들어 이집트는 인구의 대다수가 수니파이지만 이란은 시아파 국가이고, 이란의 서쪽 국경에 인접한 이라크는 시아파 인구가 절반을 약간 넘는다.[26] 교파가 갈리는 건 무함마드의 후계자인 이슬람의 종교지도자칼리프 자리를 놓고 일어난 분쟁에서 시작된 것[27] 으로, 몇몇 교리를 놓고 서로 다른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근데 이 수니파와 시아파의 차이가 가톨릭과 개신교의 격차 따위는 상대도 못 할 만한 수준이라. 거기다 수니파와 달리 시아파는 분파를 인정하기 때문에 분파도 꽤 많은 편이다. 무함마드가 살아 있었을 때 '''"내가 죽고 난 뒤에 이슬람이 72개로 쪼개질 것이다"'''란 말을 했다는 썰이 있는데, 진짜인지는 몰라도 정말로 그렇게 되었다. 아무튼 저런 이유로 나름 잘 싸우고 사이도 영 좋지 않다. '''살벌하다.''' 중동을 고향으로 하며 한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모두 공통으로 나타나는 특성이다.
또한 현재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의 종교갈등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 사이의 종교적 충돌이 가장 큰 이유이지만, 한편으로는 이슬람교가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번성하기 이전에 중동에서 엄청난 문화를 꽃피웠던 페르시아의 후손인 이란인들이 페르시아인으로서의 정체성에 아직 자부심을 느끼고 있고[28] 현재 가지고 있는 이슬람 믿음과는 별개로 그 시절 자신들을 정복해 이슬람을 강요했던 아랍인을 일종의 역사적 침략자로서 보는 시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랍인들은 이란인들을 싫어하고 이란인들은 아랍인들을 싫어한다.
3.1.1. 원죄설의 부정
유대교 및 기독교와 달리 '''원죄'''의 개념을 '''부정'''한다.
유대교 및 기독교에서는 아담과 이브(하와)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는 중죄를 저질렀기에 천국에 비해 보잘 것 없는 하위 차원인 지구[29] 로 추방당했다고 보며 특히 가톨릭 및 개신교가 속한 서방 기독교에서는 이러한 원죄에 의한 실낙원의 결과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가 조상인 아담과 이브(하와)의 그 죄까지 승계받는 것으로 본다.[30]
그러나 이슬람에서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며 모든 피조물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꿰뚫어 보심으로 아담과 이브(하와), 그리고 사탄이 앞으로 어떤 일을 행할지 알고 계신 것으로 본다. 또한 애초에 지구를 인류를 살게 할 터전으로 미리 점지하여 두고 창조하셨으며 사탄이 아담과 이브(하와)를 유혹하여 선악과를 따 먹게 되는 것 역시 그를 핑계삼아 인류를 지구로 보내려는 하나님의 빅 픽처의 일부에 불과하였다. 아담과 이브(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 하나님께서 그 죄를 추궁하실 때에 아담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시험에 불과했음을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과오를 온전히 인정하였으므로 그 즉시 그 죄를 사함받았고, 따라서 아담과 이브(하와)는 물론이거니와 그의 후손인 모든 인류 역시 선악과에 대한 원죄 및 원죄로 인한 악영향은 전혀 없는 것이다. 반대로 사탄은 이후 자신이 아담과 이브(하와)를 유혹하게 된 것 역시 하나님의 계획 중 일환이라며 천국에서 추방당하게 되는 것에 반발하고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기에 영원히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된 것으로 본다.
인간은 태어날 때 누구나 원죄 같은 것 없이 깨끗하게 태어나며 죄가 있고 없고는 그 사람의 선행으로만 판단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이슬람의 경전 꾸란에서는 오직 하나님만이 완전한 존재인데 반해, 불완전한 인간은 하나님께서 금한 일, 즉 하람에 쉽게 경도되며 실수를 저지르기 쉬운 것으로 보기에 항상 스스로를 절제하고 죄를 짓게 되면 기도를 통해 자신의 죄를 회개하도록 권장한다.
3.1.2. 삼위일체의 부정
기독교에서는 삼위일체 논리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자 하나님의 구성요소로 보고 있으나, 이슬람은 이를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신성모독하고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에서 가장 금기시하는 우상숭배를 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슬람은 기독교의 삼위일체 논리와 대립되는 توحيد(따우히드, Tauhid)가 해당 종교의 가장 근본적인 논리인데,
하나님께서는 오직 한 분이시며, 전지전능하시고, 누군가를 낳은 적도 없으셨고[31] 누군가에게서 낳아진 적도 없으시며, 그에 비견될 것이 하나도 없는 분(성 꾸란 112장 Surah Al-Ikhlas)이시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어 동정녀 마리아로 하여금 잉태하게 하시었고, 최후의 심판일에 하나님의 우편에 계시도록 예언되어 있으므로 여타 다른 예언자와 사도들과는 다른 특별한 사도임에도 하나님과 동일한 신적 지위를 부여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사족으로 무슬림들은 우상숭배에 워낙 치를 떨기 때문에 티끌만이라도 우상숭배로 여겨질 가능성이 있는 행위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 따라서 기독교의 십자가에 대응되는 상징물은 이슬람에 존재하지 않으며[32] , 종교적으로 엄격한 집의 경우 어린 딸이 K팝의 팬이라 벽에 자신이 덕질하는 아이돌 가수의 브로마이드를 자신의 방에 벽이나 문에 붙이는 것마저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반적인 무슬림의 집의 벽에는 특정 꾸란 구절이 텍스트로만 적혀있는 액자가 사방에 걸려있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단, 이건 수니파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다. 시아파의 경우 수니파에서는 후세인 이븐 알리(무함마드의 외손자) 같은 이맘의 초상화 잘만 걸어둔다.
3.1.3. 예언자 및 사도들에 대한 관점
유태교 및 기독교의 경전 성경에서 그리는 예언자 및 사도들의 모습과 이슬람에서 보는 예언자 및 사도들의 모습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유태교 및 기독교에서의 예언자 및 사도들, 즉 노아나 솔로몬 등의 인물들은 하나님이 특별히 점지한 이들임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평범한 사람인간이기에 간혹 다른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에게는 전혀 모범이 되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면 성경에서의 솔로몬은 말년에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에서 가장 큰 중죄인 우상숭배를 한 것으로 묘사되는 반면에, 이슬람의 예언자 및 사도들은 비록 죄를 저지르기 쉬운 인간의 한계성을 지니고 있으나 하나님께서는 개중에 가장 인격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당대에 가장 우수한 이만을 선별하여 자신의 사도로서 간택하시기에 비록 사소한 잘못은 저지를 수 있으나 하나님의 사도로서 용납될 수 없는 중죄는 저지르지 않는 것으로 본다.
3.2. 마드하브(이슬람의 주요 학파)
- 수니파 - 샤리아법 해석에 따른 4대 학파는 다음과 같다.
- 하나피 학파 - 중앙아시아, 터키, 남아시아에서 우세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현지의 관습을 존중하고 유연한 해석을 적용하는 학파로 중세시대에는 조금이지만 술을 먹어도 좋다는 해석까지 내놓았을 정도로 관용적인 학파. 실제 중앙아시아와 터키에서는 길거리에서 대놓고 만취한 모습을 보이는 정도는 경계하지만 술은 전통주건 독한 보드카건 잘만 마신다. 그러나 이건 국가 정체성이 세속적인 정부의 영향이 크고, '다른 쪽'으로 유연한 해석을 적용해 극단적으로 뒤틀린 이슬람 근본주의를 받아들여 아프가니스탄이나 파키스탄처럼 되는 경우도 있다.
- 말리키 학파 - 북/서아프리카에 주로 분포. 마그레브라고 불리는 북아프리카와 서아프리카 이슬람은 죄다 말리키 학파. 메카의 전통에 가장 충실하다. 기도 전 준비의식 같은 행위에서도 말리키 학파가 제일 엄격하다고 한다. 그러나 의외로 사회 공동체에 충실하여 유연성이 있는 학파이기도 하다.
- 샤피이 학파 - 소말리아를 비롯한 동아프리카와 예멘, 동남아시아에서 우세. 한발리 학파 이전까지는 아라비아 반도에서도 우세적인 학파였다. 하나피와 말리키 학파 사이에서 중용을 취한다.
- 한발리 학파 - 가장 엄격하고 보수적인 학파이자 이슬람 극단주의의 만악의 근원이 된 학파.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에서만 우세.[33]
- 시아파 자세한 정보 (한겨레)
- 알라위파, 드루즈파 - 시아파에서 갈라져 나왔으나 별도의 종파. 사실 원리적인 무슬림들의 대다수는 알라위파는 시아파보다 더 사악한 이단으로, 드루즈파는 아예 '별도의 종교'로 본다. 심지어 드루즈파는 20세기 말 레바논에서 기독교인들과 무슬림들 간에 내전이 벌어졌을 당시 이에 개입한 이스라엘군과 동맹을 맺고 다른 무슬림들과 싸웠을 정도. 알라위파는 '알리를 섬기는 이들'이라는 뜻으로 눗사이리라고도 하는데 용어로서는 알라위는 레바논 지역을 프랑스인이 통치하면서 생긴 말이다. 시아파의 주요 세 종파에서 열두 이맘파에 가까운데, 알리를 중히 여기는 시아파라서 알리를 따른다는 말이 자기들도 좋았던 듯. 이란은 이들을 시아파로 인정하고 있으며, 알라위는 현재 시리아의 지배계층으로 군림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논란거리인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이 알라위이며, 그를 떠받치는 군사, 정치 엘리트가 거의 알라위라고 보면 된다.
- 수피즘 - 위의 종파 구분과는 별도로 존재하는 이슬람 신비주의. 즉 수니파 수피도 있을 수 있고 시아파 수피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일단 수피즘 분파에선 관용을 우선시[34] 하면서 비이슬람이나 무신론자와도 교류를 해왔기에 같은 이슬람에게도 이단 취급을 받았다. 또한 오스만 제국 당시 예니체리들이 가장 많이 따르던 종단이 바로 이 수피종단이었다. 특히 벡타쉬파 같은 경우는 기독교와 이슬람의 전통을 융합시켜 발전해왔기 때문에 원래 기독교인이었던 예니체리들이 손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종파였다. 그래서 예니체리가 사라지고 오스만 제국이 멸망한 이후에도 한동안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들이 계속 오스만 제국의 부활을 주장하며 충돌을 일으키자 아타튀르크는 정교분리 원칙을 내세워 이들의 춤을 금지했다. 그나마 이들의 심벌이 되어버린 세마댄스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면서 금지정책을 폐지했다.
- 이바디파 - 하와리즈 운동에 영향을 받은 학파로 오만에서 유행하였다. 이바디파는 시초는 매우 극단적이고 과격한 하와리즈(카와리지)파였으나, 이후로는 주류 수니파에 비해서도 꽤나 온건하고 중용을 취하는 종파로 변했다.
- 아흐마디야 - 19세기 말 영국령 인도에서 탄생한 수피 이슬람에서 파생된 온건 성향 종파. 최후의 심판의 날 영도자에 대한 예언 성취를 주장한 미르자 굴람 아흐마드(1835년 ~ 1908년)의 언행과 교리가 그 기원이다. 그는 자신이 이슬람을 14세기에 도래한 무자디드[35] 이자 마흐디임을 주장하였다. 대다수 이슬람 종파에서는 이단으로 본다.
3.3. 종교의 특징
- "믿는 신앙인이란 하느님과 선지자를 믿되 의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 그들의 재산과 생명으로 성전(지하드)하는 자들이 바로 믿는 신앙인들이라 (쿠란 49:15)"#
일단 경전 자체가 무함마드를 비롯한 예언자들이 신의 계시를 받고 전도와 성전으로 국가를 이룩하고 그 기반을 다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타 종교들에 비해서도 독보적으로 '''정치적이다'''. 신정에 입각한 정책, 도덕관, 외교 및 전쟁까지 굳이 명시되어 있지 않더라도 쿠란=교리 그 자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한번 전향하면 배타적 신정사회를 형성한다는 특징이 있다. 다른 종교들은 대부분 영향력 내지는 명분만 제공하지만 이슬람은 경전이 교리 그 자체인데 쿠란 다음으로 중요한 경전인 하디스는 '''신정 지도자의 전기와 후일담'''이기 때문에 종교를 국가화하는 데 못을 박아놓는다.[36][37][38]- "믿는 자들이여 너희 가까이에 있는 불신자들에게 투쟁하고 그들로 하여금 너희가 엄함을 알게 하라 하나님은 항상 정의로운 자들과 함께 하시니라 (쿠란 9:123)"#
이슬람의 기본 가치는 크게 (알라에 대한) 숭배, (타 문화/사회에) 전파[39] , (개인적 유혹과 외부 사회의 정치/종교적 압박에 대한) 저항[40] 이라 기본적으로 유화주의나 교화주의와는 거리가 먼 편이고 강경 배타주의성이 강한 편이다. 하술하듯 아브라함 계열 신앙인들에게 (그나마 좀) 관대했던 것도, 당시 지정학적으로 따지자면 주변이 다신교도,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로 사실상 포위된 상황에서 막나가면 역공을 받아 존립이 위태로우니까 자기네 보신을 위해 그런 것이라는 견해가 일반적이며, 결국 교리상의 궁극적 목표는 그 일대와 나아가선 세계를 개종시켜서 하나의 통일 신정사회를 이륙하는 것이다. 그래서 보는 시각에 따라선 꾸란이 신정사회의 세계정복 설명서로 보일 수도 있고, 이걸 진짜로 실행하려는 국가 내지는 집단들이 창시 이후로 그 폭력성/극단성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21세기인 지금까지 '''꾸준히 있어왔다.'''
뿐만 아니라 경전에 성전을 명분화하고, 딱 한번 개종을 권유한 뒤 거부하면 개종을 강제하거나, 그래도 듣지 않으면 거짓된 자(쿠프르)로 간주해서 신에게 심판받게 올려버린다는 식으로 외교전략과 전술적 견해까지 제공한다.[41] 현대에 들어서 살생과 전쟁을 지양하는 대부분의 타 주류종교에 비해 자의적으로 이슬람의 권위가 실추되었거나, 무슬림들의 삶, 신앙, 영토가 위협된다면 전쟁도[42] 불사한다는 식의 교리로 해석되었고, 상당수의 이슬람 국가들이 이를 정책, 심하면 국론으로 채용했거나,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아니, 다른걸 다 떠나서 전도 중에 저항하지 않고 순교하는 걸 미덕으로 보는 기독교와는[43] 달리 유혈 저항중에 전사하는것을 최대의 미덕으로 정의하며, 조건부이긴 하지만[44] 전도의 수단으로 국가 단위의 전쟁이란 개념 자체를 긍정한다는거 부터가 스케일이 다르다.
'''우상숭배를 매우 배척'''하는 게 특징. 물론 이건 유대교, 기독교 역시도 공유하는 특징이지만 이들보다 이슬람은 조금 더 철저하게 우상숭배로 오해될 수 있는 것마저도 매우 싫어한다. 이에 성화와 성상은 물론 기독교의 십자가 같은 상징마저도 만들지 않는다. 그 덕택에 발전한 예술이 아라베스크 양식과 아랍식 서예다. 우상에 대한 배척은 다른 어떤 종교도 못 따라갈 정도로 매우 강력한 수준.[45] 그래도 나라별로 차이가 있어서 좀 덜한 곳도 있다고 한다. 특히 시아파는 이런 면에서 좀 더 관대한 편이다. 이란에서는 알리와 그 아들 하산, 후세인의 초상화 등의 성상이 있는 경우도 보이며 무함마드가 들어간 우편이나 초상화를 팔기도 한다. 무함마드 얼굴이 직접 나온 그림이 보면 십중팔구 시아파 신자가 그린 그림이다.
아무리 그래도 아예 징표가 없으면 곤란한지라, "알라(الله)"를 적은 아랍어나 무함마드의 달, 초승달과 별 정도는 사용한다.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탈출할 때 빛이 되어서 앞을 밝혔다고 한다.
과거 상대적으로 타종교인에게 관대했다고 하는데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사실 다른 종교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예를 들어 1066년 그라나다에서는 유대인 대학살이 일어나 그곳의 유대인 공동체가 말살되었고, 1126년 안달루시아에는 수천~만명에 이르는 기독교 신자 주민들이 모로코에 노예로 팔려갔다. 이후 12세기 모로코에서 등장한 무와히드 왕조는 안달루스를 장악하고 나서 딤미(무슬림들에게 2등시민으로 차별받는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의 권리를 무시하고 이슬람으로 개종하든지, 나라를 떠나든지, 아니면 순교하든지 선택할 것을 강요하여 많은 비무슬림들이 북쪽의 기독교 국가나 동쪽의 관대한 타 이슬람 국가들로 이주하였고, 남아있던 사람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개종하거나 죽음을 택해야 했다. 그리고 훗날 스페인은 레콩키스타를 통해 그라나다까지 함락시키고 이슬람 침략자들로부터 스페인을 수복한 뒤 무슬림들에게 이를 똑같이 되갚아주고 나아가 이슬람출신 개종자들과 개종한 유대인들까지 신뢰할 수 없다며 추방해버린다.
이슬람 정복 통치하의 타 종교인들은 이슬람 당국의 허가없이 새 교회 건물을 짓거나 개축 및 보수할 수 없었고 공적인 종교 행렬도 거행할 수도 없었다.[46] 그 외에도 쿠란에 기독교와 유대교 신자들에게 대한 차별 조항을 명시해 놓는 등 타 종교에게 마냥 관용적인 것은 절대 아니었다. 시대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었지만, 결국 전체 역사적으로 볼 때 중근동의 수만 개의 타종교 교회나 시설들이 점진적으로 파괴당했다. 단적으로 생각해서 이슬람 전성기가 막 시작될 때만 해도 중근동 지역에 매우 많던 기독교 신자들이 지금은 소수를 빼면 다 어디 갔는지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따뜻한 관용'과 '관용의 상징인 견딜 만한 세금'이 있었다면 절대 지금처럼 비이슬람 소수종교가 괴멸 수준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는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일단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이슬람권이 기독교인과 유대교인들인을 박해 및 차별하지 않았다거나 평등하게 대한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타종교인들은 무슬림만 보이면 공손한 태도를 유지해야만 했고, 말을 타는 것조차도 금지되었다. (현대로 치면 타종교인은 '''자동차를 못 타게 하는 수준'''이다.) 근대를 거치면서 이러한 가시적인 차별은 많이 사라지는 듯 했으나, 사실상 타종교에 대한 이슬람의 극심한 불관용은 많은 이슬람 국가들에서 현대에 와서도 현재진행형이며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소위 '''관용의 상징'''으로서 타 종교인에게 세금(지즈야)을 부과했다는 것도 타 종교인의 입장에서 보면 명백한 차별조항이다. 이슬람 측에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 지배자들과 비교하면 차별수위가 낮고 상대적으로 적은 세금을 징수했기에 이 장점이 원동력이 되어 주변 종교보다 늦게 창시된 불리함을 극복하고 급속히 전파될 수 있었다" 고 변론하나, 이는 상대적으론 나았다는 양비론적 해명이지, 차별이 아니었다는 주장으로는 쓰이기 힘들다. 이슬람 측의 주장은, 당시 이슬람 정권은 25%가량의 토지세를 내는 조건으로 사유재산을 인정했고 개종자에겐 약 10%의 인두세를 추가로 면제해줬다. 이 같은 정책은 전쟁의 고통에 시달리던 주민들에게 대량 개종의 길을 열어줬다. '''세금 부담을 피하기 위해 개종자가 너무 급증하자,''' 이슬람 정부는 한때 세수 확보를 위해 개종금지백서를 발효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개종을 하지 않고 인두세를 포함해도 동로마 제국이나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 등 기존의 비이슬람 국가들에게 착취당하던 세금에 비하면 그 액수가 가벼운 편이었으므로 이슬람이 이렇게 급속도로 널리 퍼져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기존의 동로마, 페르시아 양국이 장기전을 치루느라 이슬람권보다 상대적으로 세율을 높일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고, 이슬람이 세수확보를 위해 조세부담을 분산하기보단 딤미들에게 부담이 편중되어있던 기존 구조를 유지시키는 개종금지정책 등으로 문제를 해결코자 했던 부분은 한계점으로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슬람의 관용이라는 것은 시대, 지도자, 사회에 따라 달랐으며, '''소위 '관용'이라는 기준도 들쭉날쭉이어서''' 그럭저럭 지낼만 했을 때도, 우리가 생각하는 관용과는 한참 멀거나 극도로 가혹했을 때도 많았고, 타종교인을 그럭저럭 대했던 시기만큼 타종교에 폭력적이고 가혹했던 시기도 많았다. 이슬람 초창기 우마이야 왕조는 당대에 박해받던 마니교를 향해서도 해꼬지 없이 내버려뒀고 오히려 학자나 칼리프 중에 마니교의 이원론적 세계관에 동조하는 사람들까지 있었을 정도로 나이롱이었지만 바로 다음의 압바스 왕조에선 그들을 악마숭배자 취급하여 씨를 말려버렸다. 중세 이집트의 파티마 왕조와 시리아의 미르다스 왕조 등지에선 기독교도 재상 혹은 총독을 선임하기도 하였다. 특히 후자에선 대부분의 재상들이 기독교일 정도였다. 그런가 하면 무굴 제국의 경우 악바르대제 당시 유럽에서 온 기독교 성직자가 "그건 좀 아니라고" 뒤에서 비판할 정도로 무신론자도 우대했고, 지즈야가 폐지되기도 했다. 그러다 이후 이슬람 광신도 황제였던 아우랑제브 황제 때에 재정 부족을 메우려 지즈야를 부활시키자 힌두교, 시크교를 비롯한 비무슬림들이 농민부터 토호까지 곳곳에서 들고 일어나 진압하는데 애를 먹었고 이것이 그의 사후 제국의 걷잡을 수 없는 쇠퇴와 분열로 이어지는 단초를 제공한다. 오스만 제국의 경우도 기존의 동로마와 같은 기독교국가가 있던 땅에 자리잡다보니 그리스인이나 아르메니아인 등 기독교인을 즐겨 등용하기도 했다가[47] 이후 오스만 제국이 망해갈 때가 되자 서양과 협조하던 기독교도들에 대한 시기심으로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일으켜 수십만에서 백만에 이르는 기독교도들을 대학살했다.
또한 주류 학파인 하나피파는 법정에서 짐미(이슬람의 보호를 받는, 즉 통치를 받는 기독교, 유대교 신자들)의 증언이 무슬림과 동일한 위력을 갖는다고 보았던 반면에 샤피파와 말리키파는 짐미의 증언은 무슬림에 비해 1/2밖에 안 되는 효력, 가장 이교도에 배타적이고 이슬람 근본주의에 가까운 한발리파는 1/8밖에 안 되는 효력을 갖는다고 주장했다.[48] 그러나 다른 종교들도 마찬가지지만, '''이슬람 역시 역사적으로 힘이 있을 때면 주변국을 침공해 쓸어버리는 것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했다.''' 이슬람 탄생 때부터 다신교도들과 마니교, 야지디교를 비롯한 소수종교, 무신론자들에 대해서는 가차 없었고, 조로아스터교 대학살을 자행한 적도 있으며, 초기 이슬람과 오스만 제국 말기는 탄압의 강도가 장난 아니었다. 유럽 기독교 왕국들의 유대인 처우가 들쭉날쭉했던 것처럼 이슬람의 종교정책 역시 지도층의 필요나 근본주의에 경도되는 사회분위기에 따라 관용과 억압 사이를 오갔다.
또한 이슬람의 중요한 교리 중 하나는 배교자에 대한 살해, 즉 '''비이슬람 종교로의 개종하는 사람에 대한 살해를 경전에 명문화하고 상당수 신자들이 이를 실제로 집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근대에야 개종자에 대한 가혹한 박해와 살해는 문화권을 가리지 않고 빈번하게 있어왔으나, 21세기 현재까지 세계적으로 이런 극심한 논란을 일으키는 종교는 일부 사이비 종교들을 제외하면 오직 이슬람뿐이다. 배교자에 대한 살해 논란은 현대 세계 4대 주요 종교 중 이슬람이 거의 유일하다(현대 기독교, 불교 힌두교 등에서는 개종자에 대한 반감을 가지는 경우는 있어도 이를 죽이는 행위를 '교리적으로' 명문화하고 실천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수단, 알제리, 파키스탄, 예멘, 이라크, 브루나이, 아프가니스탄, 나이지리아 북부지역 등을 비롯해 이슬람 국가들 거의 대부분[49] 의 '국민 정서'가 타 종교로의 개종을 죽을 죄 로 보며, 많은 무슬림들이 개종자는 죽어야 한다고 지금도 생각하고, 정부나 집권층 차원에서 개종자에게 가혹한 처벌을 현재까지도 시행하는 국가가 매우 많다. 또한 이들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들이 아니더라도 가까이는 비이슬람 문화권에 이민온 이슬람 가정에서부터 터키 같은 세속적 이슬람 국가들에서까지 잊을만 하면 개종자에 대한 살인/살해위협과 가혹한 박해가 이어지고 있다. 냉정하게 말하면 이런 '''극악무도한 교리는 현대사회에서는 옴진리교, 영생교같은 사이비 종교에서나 하는 짓으로''' 절대 용납될 수 없는 교리다. 진보적이거나 온건한 무슬림들이 어떻게 변명하든지, 21세기 현재에도 지구상의 셀 수 없이 많은 이슬람권 정부와 공동체, 신자들을 막론하고 상당수 무슬림들은 비이슬람 종교로의 개종자에 대한 각종 박해와 살해, 명예살인을 실천하려 하고 있다. 이집트의 한 판사의 증언에 따르면 "이슬람은 최종적이고 완전한 진리이기에 무슬림은 이미 완전한 종교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이며 다른 가르침을 따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50] 이 때문에 비이슬람 문화권, 그리고 종교의 자유를 위해 노력하는 인권단체 및 비무슬림들과의 극심한 갈등을 빚고 있으며 굉장한 비판을 받고 있다.
사제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종교적으로는 신과 인간은 감히 만날 수 없다 생각하여[51] 그 사이를 연결해 줄 뭔가가 필요 없다 여기며, 이슬람이 주류인 지역에서 태어나면 부모님들이 알아서 관련 교육을 해주기 때문에 사제가 필요하지 않다. 때문에 무슬림은 전부 다 전도사나 사제가 될 수 있다. 다만 예배 인도 역할을 이맘이 하는데, 신도들은 이맘보다 예배를 먼저 거행해선 안 되고 순서를 따라야 한다. 하지만 혼자서 예배를 할 때는 자기가 이맘이 되고, 가족이 함께 예배를 할 때는 제일 웃어른이 이맘이 되는 등 비교적 유연하다.
엄밀히 따지면 이슬람 외에도 사제가 없는 종교가 몇 있다. 예를 들어 개신교는 만인사제설을 주장하기에 목사는 사제가 아니라 평신도로 분류된다. 이슬람의 경우 수니파는 예배시 일반 신도들 중 한 사람이 맡는 '이맘'이라는 사회자를 맡지만, 시아파에서의 '이맘'은 분파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은 준 예언자 수준의 의미를 갖는다. 율법 공부를 전문적으로 해서 경전 해석에 큰 영향을 주는 율법학자가 있긴 하지만, 이들 역시 이슬람에서는 평신도다. 무함마드와 같이 예언자는 신이 계시를 내리기 위해 일부러 파견한 경우가 있지만 무함마드를 마지막으로 사제가 없다는 게 명시되다 보니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같은 신 아래에서 평등성이 강조되어, 종교적인 문제라면 말단 직원이 사장에게 그래서는 안 된다고 스스럼 없이 지적을 할 수도 있다. 심지어 노예가 왕에게 "이건 이슬람에 저촉됩니다!!"라고 비판하는 것이 허용될 정도였다. 그 때문에 라마단 금식 등 종교적인 계율을 종교에 대한 신념을 떠나 남의 눈과 지적이 따가워서 잘 지키게 된 것이다.
하지만 조선의 유학자들이 당시 각 분야에서 미친 영향력과 마찬가지로, 이슬람 학자의 위치와 영향력은 성과 속이 통합되어 있는 이슬람의 특성상 오히려 많든 적든 정교분리가 이루어진 다른 종교문화권의 성직자보다 훨씬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즉, 종교 자체는 사제를 두지 않고 모두 평신도라고 할지 모르지만 실질적으로 이슬람 율법학자들의 권한은 다른 어느 종교 문화권보다도 막강하다. 한 예로,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이슬람 율법이 헌법을 대신하고 있는 정교일치 국가이기 때문에 이슬람을 잘 아는 전문가들이 실질적으로 법을 만든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들이 어떻게 이슬람 교리를 해석하냐에 따라 국법이 시시때때로 바뀌기 때문에 이슬람 학자들의 영향력은 지대하다고 볼 수 있겠다. 또 한 가지 예로, 일반 무슬림들과 이슬람 얘길 하다가 쿠란 구절을 두고 논란이 발생하면[52] 대개 자신들보다 더 잘 아는 이슬람 학자들의 책을 읽어보거나 만나서 얘길 해볼 것을 권하고 본인들은 더이상 논의를 거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르게 말하면, 자기들은 권위있고 신망있는 이슬람 학자들의 해석을 따르겠다는 뜻이다.
사제가 없다는 특징은 초기 이슬람의 전파 양식이 상좌부 불교나 초기 기독교와 같은 문화적인 전파가 아닌 지배이념으로써 무력에 의한 정복 형태에 주로 의존하게 하였다.[53]
무슬림들은 육신오행이라 부르는 하나님, 천사, 성전(쿠란), 사도, 최후의 심판, 정명[54] 을 믿을 것(육신)과 따라야 할 5가지 의무(오행)를 갖는데, 샤하다(신앙고백), 살라트(메카를 향해 매일 5차례씩 올리는 기도)[55] 자카트(자선기부), 사움(라마단 기간 해가 떠있는 동안 금식하는 것. 그냥 '라마단'이라고도 한다), 핫지(일생에 한 번 메카로 성지순례를 떠나는 것)이다.
하루에 5번 이상 "라 일라하 일랄라, 무함마둔 라술룰라"(하나님 외에는 경배받을 존재가 없으며, 무함마드는 하나님의 예언자다.)라고 증언하는 것을 신앙 고백이라고 하며, 이는 이슬람의 첫 번째 의무다.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가난한 유목민이나 노동자들도 샤하다는 빼놓지 않고 하고 있다고.
하루 5번 드리는 예배(살라트) 시간은 해의 위치와 그림자의 길이를 기준으로 정해지기 때문에, 계절마다 예배 시간이 달라진다. 아랍인들이 시간 감각이 매우 무딘 편인데 이는 아랍인들이 시간을 우리처럼 1시 2시 이렇게 24시각을 기준으로 계산하기보다는 예배 시간에 맞춰서 시간을 계산하기 때문이다. 이 5번 예배는 정해진 시간 안에 완수하면 되지만, 제 시간이 되자마자 기도하는 것을 신자로서의 가장 바람직한 자세로 여긴다.
- 파즈르(Fajr): 동쪽 지평선에 빛줄기가 보이고 검은 실과 흰 실을 구분할 수 있을 때부터 일출 전까지. 규정 자체가 모호한 만큼, 현대 이슬람계에서 정확한 파즈르 시작시간은 주요 이슬람 공동체마다 의견이나 기준이 다르다.[56]
- 두흐르(Duhr): 태양이 한낮에 남중하여 서쪽으로 기울어질 때부터 아스르 기도 전까지.[57]
- 아스르(Asr): 어떤 물체의 그림자가 정오 때의 그림자 길이+물체의 높이만큼 되었을 때부터 일몰 전까지. 하나피 학파에서는 시작시간이 물체의 그림자가 정오 때의 그림자 길이 + 물체 높이의 2배가 되었을 때의 그림자 길이라고 본다. 한국어로 이 기도시간을 설명한다면 '늦은 오후 예배'라고 이름 붙여야 할 듯?
- 마그립(Magrib): 일몰 후 박명 시간 중에 드리는 예배. 즉 해가 졌지만 아직 빛이 보이는 때에 드리는 예배이다. 아직 빛이 보이는 시간이 언제인지는 역시 주요 이슬람 공동체마다 기준이 다르다.
- 이샤(Isha): 마그립 후, 즉 완전히 어두워진 후부터 밤의 중간까지. 여기서 밤의 중간이란 이샤가 시작할 때부터 다음 파즈르까지의 중간이다. 파즈르와 마찬가지로 이슬람 내부적으로 정확한 시작시간에 대하여 꽤나 이견이 많다.[58]
라마단은 1달 동안의 단식으로, 1달 내내 단식을 하면 사람이 당연히 죽으니까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단식을 행한다. 대략 새벽 3시부터 저녁 7시 반까지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흡연하지도 못한다. 여담으로 《흡연의 문화사》라는 책을 보면 이란에서는 해가 지자마자 사람들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담배를 피우는 것이었고, 나중에는 결국 이란의 유력한 이슬람 분파 시아파 내에서 라마단 중에 흡연을 해도 된다는 율법 해석이 나왔다. 물론 시아파를 싫어하는 다른 아랍 나라에서는 이 일로 이란과 시아파를 엄청 비난했다.
핫지는 정해진 기간 동안 정해진 규칙을 거쳐 메카에서 순례를 하는 것으로써, 정해진 기간 이외에 다른 기간에 방문한 것은 소순례로만 인정된다. 현재 성지 순례의 기착지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이슬람 인구 1,000명당 순례자 1명으로 각 나라당 순례자를 제한한다. 귀화인 포함 한국인 무슬림 15만 명이고, 그 중 순수 한국인 신자만 2만 명이라고 사우디아라비아에 잘못 보고된 덕택에, 한국에서 성지순례 가기는 굉장히 쉬운 편이다. 몇 년을 기다려야 하는 외국과 다르게 대한민국은 성지순례를 갈 신도가 '''없어서''' 못 보내며, 덕분에 한국에 거주하는 이슬람 국가 재외국민들은 하지를 몇 번이고 다녀올 수 있다고 한다. 매년 갈 수 있는 한국이 좋은 나라라고 한다나.
단, 예외적으로 하지는 할 수 없는 사정이 있다면 안 해도 된다고 한다. 모든 신자가 매년 메카로 순례를 올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대부분 하려고 한다. 늦더라도 죽기 전에는 다들 하려고 하기 때문에 매년 수많은 순례 인파가 메카에 몰린다. 때문에 신종플루가 기승을 부렸던 때에는 개인 위생 문제 때문에 뉴스가 되기도 했었다. 대부분의 신자들이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이니 질병 따위는 두렵지 않다'고 하며 신경을 안 썼기 때문.현제 코로나 사태 때도 마찬가지다 순례를 마치면 자기 이름 앞에 '하지'라는 호를 붙일 수 있고, 그 사람은 많은 존경을 받는다.[59]
살라트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무함마드가 천국에 있는 동안 신에게 한 가지 맹세를 했는데, '모든 무슬림들은 하루에 '''50번씩''' 기도를 드린다'라는 내용이었다. 뭔 깡으로 이런 맹세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옆에서 보고 있던 모세가 어이가 없었는지 '''"게으르고 건망증 심한 백성들이 그런 걸 지킬 수 있을 것 같은가?"'''라고 태클을 걸어 다행히(?) 하루 50번 기도는 무산되었고, 무함마드는 신과의 협상을 통해 하루에 드리는 기도의 횟수를 지금과 같이 5번으로 줄였다.
메카의 방향과 거리를 나타내주는 iOS, 안드로이드 어플도 나와있다.
4. 이슬람 문화
- 이슬람의 5대 의무
4.1. 이슬람의 성원과 예배
이슬람 성원은 아랍어로는 마스지드(مسجد)라고 하는데, 영단어 모스크(Mosque)로도 알려졌다. 보통은 성원 옆에 세면장이 있는데 예배 전에 '우두'라 불리는 세정의식을 하고 들어가게 한다. 이 의식의 목적은 노폐물, 분비물 등의 더러운거 묻은 손, 몸으로 예배드리지 말고 씻고 기도하라는 의미다.[63] 이 우두는 얼굴ㆍ입 안ㆍ귀ㆍ콧속ㆍ머리, 그리고 팔다리를 흐르는 물로 씻으며 이뤄지는데 '아흐다쓰'라는 불결함의 상태가 될 때에는 무조건 하루 5번 기도 전에 해야 된다. 이슬람에서 예배 전에 세정의식을 해야 되는 더러움의 조건이란 '''방귀'''#, 소변, '''개를 만졌을 때'''[64] , 여자와의 의도적이고 사심 있는 접촉, 피 흘림[65] , 잠이 들었을 경우 등이다. 성관계 등을 하거나 금요일 정기 예배에 갈 때는 구쓸이라고 불리는 샤워를 무조건 해야 된다.[66] 아랍어 쿠란을 만지려면 위의 세정 의식을 해야 되고 생리 중인 여자는 맨손으로 쿠란을 만지는 것도 안 된다. 다치거나 물이 귀하든지 너무 춥다든지 해서 씻기가 어렵다면 '따암뭄'이라고 해서 돌이나 모래로 씻는 시늉만 해도 되긴 한다. 그래서 모스크엔 돌이 놓여져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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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서 일요일을 주일이라 부르며 교회에 예배를 드리거나 성당에 미사를 드리러 가고, 유대교에서는 토요일을 안식일이라 하여 아무 노동도 하지 않는다면, 이슬람에서는 금요일을 '주무아'라고 부르며 합동 예배를 시행한다. 이 예배는 금요일 오후 1시 즈음부터 이맘이 나와서 밈바르라 불리는 나무 계단 위에 앉아서 교리나 일상생활 도덕과 관련한 훈화를 경청한 뒤 예배를 근행하게 된다. 그런게 없으면 그냥 의자에 앉아서 하기도 한다.
모스크에서의 기도와 분위기는 타 종교와 마찬가지로 같은 이슬람이라도 학파에 따라, 모스크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옆 사람과 줄을 맞추는 것을 강조[67] 하는 경우도 있고 기도를 할 때 앞에 사람이 지나가지 않도록 표를 세워두기도 한다. 기도에도 학파나 모스크에 따라 사소한 부분에서 차이가 있어 알제리계 위주의 모스크에서 익힌 합동 예배 기도법으로 터키인 위주의 모스크에 가면 약간의 차이에 당황 할 수도 있다. 쿠르드인들은 성원에 예배할 때 복잡한 절차, 예를 들어 필수는 아니지만 양말을 벗어야 하는 행위를 생략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성원에 앉아서 노가리를 까건 말건 상관 안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예배 행위를 방해하는 데 대해서는 꽤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남이 뭘 하건 상관 안 하는 분위기다. 당연하지만 사람사는 종교모임이 다 그렇듯 늘 보는 사람 보는 시골 모스크에선 유럽인도 아닌 동아시아인이 모스크에 들어오면 다들 누군가 싶어 슬쩍슬쩍 보면서 물어오며 대도시의 모스크에서는 물론 그런거 없다.
어쨌든 성원 내부를 보면 정말 아무것도 없다. 방석 비슷한 융단과 비치된 쿠란, 기도 중 앞에 사람이 지나가지 못하게 세워두는 표 뿐이다. 자세한 것은 모스크 문서 참고.
그 외에도 하루에 5번[68] 기도를 해야 하니 게으른 사람은 절대 못 할 종교 같지만, 아라비안 타임으로 약간은 봐준다. 만약 빠뜨릴 경우 바로 전에 예배를 합쳐서 더 예배를 보면 된다. 또한 금요일엔 여건이 된다면 반드시 합동 예배를 보아야 한다. 중요한 건 기도고, 이것만은 빼먹으면 안 된다. 굳이 사원이 아니라도 그냥 카펫[69] 하나 가지고 다니다가 길바닥에서 메카를 향해 절만 하면 되니까 다른 종교에 비해 예배를 올리는 장소를 찾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 기도 시간 동안 관공서까지 전부 쉬다 보니 말이 많아서 약식으로 대체하는 곳도 많다.
항공기 내부에서는 안전을 위해 앉아서 하라고 권한다.
예배 방법은 먼저 얼굴과 손과 발을 깨끗이 씻는 것부터 시작하는데 이를 '우두[70] '라고 하며, 사막의 경우 깨끗한 모래로 씻어도 인정해준다.[71] 그 다음 쿠란의 제1장인 알 파티하(개경장)을 외우고, 정해진 순서에 따라 무릎을 꿇고 절하는 동작을 반복하는데 이 예배[72] 는 몇 분 만에 끝나는 게 보통이다. 기독교 식으로 1~2시간씩 끌지 않는다. 금요예배에서는 이맘, 호자, 아야톨라 같은 예배를 인도하는 이가 설교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나마도 그리 길진 않은 편이다.
이슬람에도 불교의 염주, 기독교의 묵주 같은 성물인 미스바하가 있다. 페르시아어로는 타스비흐 tasbih, 터키어로는 테스피흐 tespih라고 한다. 기도할 때나 경전 또는 경구를 암송할 때 주로 사용한다.
4.2. 이슬람의 사제
원래 이슬람에서는 공식적으로 가톨릭이나 정교회에서와 같은 사제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예배가 있고 경전의 내용을 풀이해서 전해주는 역할은 필요하기에 이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있다. 이 사제에 대한 부분도 종파에 따라 다르다. 이슬람의 사제하면 흔히 가장 먼저 떠올리는 직책 이름이 이맘인데, 이 이맘의 지위와 권한이 수니파이냐, 시아파이냐에 따라 전혀 다르다.
일단, 수니파에서 이맘이라면 그저 예배를 진행하는 사람 정도로 보면 된다. 원칙적으로는 그냥 신자들 사이에서 모범이 될만한 사람을 뽑아 시키지만 대개는 수니파의 율법학자(울라마)가 맡는다. 가끔 금요 정오 집단예배처럼 특별한 예배에선 전문 설교사(하티브)가 정치성이 가미된 설교(쿠트바)를 실시하는데, 이맘이 이를 겸하는 경우가 많다. 비교하자면 수니파의 이맘은 개신교의 목사와 비슷하다. 게다가 요즘엔 수니파 이맘을 한 모스크당 한 명씩 두는 경향이 있다고 하니 더욱 비슷하다.[73]
반면, 시아파에서의 이맘의 위상은 수니파의 이맘과 엄청나게 다르다. 시아파의 이맘은 알리와 그의 후손들[74] 만을 칭한다. 또한 호메이니도 이맘의 칭호를 받긴 했지만, 교리적인 12이맘 안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호메이니가 이맘으로 칭해진 건 이란에서 그 정도로 굉장한 존재로 삼고 있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시아파 내의 가장 다수파인 '12이맘파'에서는 알리와 그의 후손 11명만을 이맘으로 칭한다. 시아파에서는 12대 이맘인 '무하마드 알 하산'이 872년 4살 때 속세에서 모습을 감췄다고 하며 그를 '숨은 이맘'이라고 부른다. 시아파에서는 이 최후의 이맘이 바로 마디(마흐디)이며 이 세상의 종말 때에 다시 나타나 이슬람을 이끌어 주리라 믿는다.[75]
시아파에서 이맘은 이렇게 사실상 현존하지 않는, 엄청나게 고귀한 직책이다. 시아파에서 현존하는 사제 계급은 '호자톨 이슬람'이라는 직책에서부터 시작한다. 이 '호자톨 이슬람'은 율법학자로 수니파에서의 이맘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수니파와는 다르게 호자톨 이슬람 위에도 직책이 있는데, 바로 '무즈타히드', 다른 말로 아야톨라이다. 이 아야톨라에 오르면 이슬람 율법 샤리아에 대해 독자적인 유권해석을 할 수 있다. 이를 '이즈티하드'라고 하는데, 이는 수니파에선 금지된 행동이다. 이 아야톨라들 중 가방 높은 사람을 '대 아야톨라(Grand Ayatolla)' 혹은, '마르자 에 타클리드[76] 무틀락'이라고 한다. 그런데, 마르자 에 타클리드(대 야야톨라)는 기독교의 주교들처럼 정해진 규범 절차에 따라 서품받는 형식으로 임명되는 것이 아니다. 일반 율법학자, 호자톨 이슬람으로 활동하다 점점 본인들의 영향력과 힘을 늘려나가고 그러다 시아파 신자들 대중에게 훌륭한 성직자로 인정받기 시작하면 마르자에 타끌리드로 되는 점이 특이한 점이다. 때문에 시아파의 마르자 에 타클리드(대 아야톨라)들은 좀 시대에 따라 숫자가 들쭉날쭉한 편인데, 현대에는, 이란의 콤이나 이라크의 나자프 등 시아파의 주요 성지의 고위 율법학자들이 특정 율법학자를 마르자 에 타끌리드로 인정해주면 국가나 대중들도 인정을 하는 식으로 이뤄진다고 한다. 유명한 대 아야톨라는 이라크의 알리 알 시스타니[77] , 이란의 루홀라 호메이니와 알리 하메네이 등이 있다.
4.3. 종교와 식품
금지된 음식은 '하람(haram)'음식이라고 하는데 이 '하람'이라는 말은 아랍어로 '금지'란 뜻이다.[78] 무슬림이 못 먹는 하람 식품으로는 돼지고기뿐만 아니라 개고기, 및 맹금류의 고기와 병사한 동물의 고기가 있으며, 심지어는 사냥한 고기도 화살이나 총알로 잡은 동물의 고기는 먹을 수 없고, 오직 개나 매, 치타를 이용한 동물이 잡아서 물어온 동물의 고기만 먹을 수 있다.[79]'''إِنَّمَا حَرَّمَ عَلَيْكُمُ الْمَيْتَةَ وَالدَّمَ وَلَحْمَ الْخِنزِيرِ وَمَا أُهِلَّ بِهِ لِغَيْرِ اللَّـهِ ۖ فَمَنِ اضْطُرَّ غَيْرَ بَاغٍ وَلَا عَادٍ فَلَا إِثْمَ عَلَيْهِ ۚ إِنَّ اللَّـهَ غَفُورٌ رَّحِيمٌ'''
죽은 고기와 피와 돼지고기를 먹지말라 또한 하나님의 이름으로 도살되지 아니한 고기도 먹지말라 그러나 고의가 아니고 어쩔수 없이 먹을 경우는 죄악이 아니라 했거늘 하나님은 진실로 관용과 자비로 충만하심이라
쿠란 알 바카라 Juz 2 (2:173)
이 하람에 관한 율법이 유대교와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른데 쉽게 설명하자면, 돼지고기를 금지하는 것은 유대교와 같지만 유대교의 경우에는 장어나 미꾸라지 같이 비늘이 없는 물고기와 해초, 토끼고기와 낙타고기, 고기의 상체를 제외한 하체 부분을 전부 못 먹는다. 참고로 이란의 주류인 시아파는 비늘이 없는 해산물 즉, 오징어, 문어 등도 먹지 않는다. 단, 새우 같은 갑각류는 먹을 수 있다. 여기서 우리나라가 돼지고기 이외에 다른 금지식품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는 개고기의 경우 우리나라 안에서도 논란이 있고 토끼고기나 낙타고기는 구하기 매우 힘든 고기이며 사냥의 경우에도 사냥=밀렵이란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기 때문에 꺼리는등 돼지고기를 제외한 금지음식들은 한국에서도 인식이 나쁘거나 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반면 이슬람에서는 해산물은 물이 변색되거나 냄새가 고약하지 않은 경우 모두 할랄이며(단 본인이 속한 마드하브나 지역에 따라 세부적인 것은 다르다. 상어나 바다뱀 혹은 고래고기 같은 경우 이견이 있다. 자세한 것은 할랄 푸드 참조.) 채소와 농산물은 모두 허용. 고기는 유대교처럼 상체만 먹고 하체는 못 먹는 식의 율법은 없다. 구분 영역이 생기는 부분은 오직 날짐승과 들짐승 고기로, 무슬림이 이슬람식으로 도축(다비하)한 고기가 아니면 먹지 못한다. 이슬람식 도축방식은 하나님을 믿는 자, 즉 유대인, 기독교인, 무슬림이 "하나님의 이름으로"라는 뜻의 비스밀라를 말한 뒤에 도축짐승의 멱을 칼로 따고 거꾸로 매달아 최대한 피[80] 를 사체에서 뽑아내는 것이다. 유대인들 또한 이슬람의 도축방식과 비슷한 방식으로 도축하기 때문에 무슬림들은 유대인들이 도축한 코셔푸드를 먹어도 할랄으로 간주한다. 반면 돼지를 제외한 소, 닭, 양, 염소의 고기라도 이슬람 도축법에 의해 도축되지 않았을 경우 '''똑같이 금지사항'''이다. 때문에 이슬람의 세력이 작게나마라도 있는 나라에는 거의 항상 할랄 푸드를 다루는 가게가 있다. 서울 이태원 이슬람 성원 옆에도 할랄 육류 판매점이 있다.
그리고 유명한 이슬람 관련 음식금기로 '금주'가 있다. 사실상 세계 주요종교 중 가장 강력하게 음주를 철저히 금지하는 걸로 유명한데, 술과 관련하여 쿠란에서는 세 가지 계시가 나와있다.
사람들이 너희에게 술과 도박에 대해서 물으면 다음과 같이 말하라. '이는 커다란 죄악으로서, 약간의 좋은 점도 없진 않다. 그러나 그 해악은 그 이익보다도 훨씬 크다'라고 (쿠란 2:219)
그대 신앙인들이여. 정신이 흐려진 상태에서는 예배드리지 마라. 적어도 스스로 한 말을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는 (쿠란 4:43에서 발췌)
생각보다는 간접적인 금지 문구를 담고 있다. 이슬람에서 전승되는 이야기 에 따르면 이슬람교가 막 전파되던 무렵에는 당연히 중동인들은 술을 마시는게 일상적이었기 때문에 술에 대해 관용적인 입장이었으나, 예배 도중에 누군가가 술에 취한 상태로 예배를 올리다가 실수를 저질렀기에 다시 선지자 무함마드가 하나님으로부터 음주에 대한 계시를 받아 취한 상태에서 기도하지 말 것이 꾸란으로 명문화되었고, 그 이후에도 사람들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자 아예 음주를 금지하는 것으로 계시되었다고 한다.그대 신앙인들이여. 취하게 만드는 것과 도박하는 것, 돌들(을 우상으로 숭배하는 것), 화살(을 이용해서 점을 치는 것), 그리고 맹목적인 증오는 사탄의 작품이다. 이러한 것들을 멀리한다면 너희는 번영하게 될 것이다. (쿠란 5:90)
다만 몇몇 아랍 국가들에서는 포도주와 맥주를 계속 금하는 대신, 오래 전부터 마셔오던 대추야자술인 아락 같은 토속주라든지 양젖이나 염소와 낙타 젖을 발효시킨 술은 예외로 쳐주는 경우도 많다. '''사막권 유목민들에게 술은 생명수 같은 존재나 다를 게 없어서''' 무작정 금지했다면 이슬람은 '''"아니? 이슬람 저것들이 술 못 마시게 하는데, 우리더러 죽으라고 할 놈들이다!"'''라며 아랍 지역에서 비난 속에 소수 종교로 사라졌을 것이다. 대추야자 말고도 온갖 동물 젖을 발효시킨 술은 물과 같은 유일한 마실 것이었기에, 이거 마시지 말라는 건 그냥 죽으라는 것이다. 때문에 지금도 상당수 유목민들은 생필품이 부족한 사막에서 여전히 발효된 술을 물처럼 마시는데, 이거에 대해선 할랄 같은 인정을 하는 편이다.
또한, 와하비즘 같은 근본주의적 이슬람에서는 술을 마시는 것은 물론이고 '''비무슬림에게 술을 선물하는 행위도 금지'''다.[81]
술은 어느 정도 풀어주는 나라도 있지만, 개와 돼지고기는 기피 정도가 아니라 '''아예 못 먹는다.''' 인도네시아 등 기후 조건 때문에 돼지 사육이 적합한 경우 먹기도 하는데 이슬람권에서는 특이 케이스. 물론, 사막 한 가운데서 남은 음식이 돼지고기 밖에 없는 경우와 같이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안 먹고 굶어죽으면 또 다른 이슬람의 금기, 자살이므로 먹어도 된다는 이슬람계의 공식적인 율법 해석이 있다. 단 나중에 회개 기도를 올릴 것.[82] 이 때문에 식재료에 돼지고기가 들어가는 한국이나 일본, 중국등 동북아시아 국가들의 요리들은 이슬람 사람들에게 맞지 않을 때가 많다.[83] 혹시 친구나 지인등이 무슬림일 경우 먹어도 되는 음식인지 꼭 사전에 확인해 보는 것이 좋다.[84]
또 대한민국에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 이슬람은 돼지 못지않게 개도 혐오하는 종교로 유명하다. 이유는 당시 들개를 싫어했던 무함마드의 개인취향과 개는 더러운 동물이라는 가르침 때문. 굳이 무함마드만 개인적으로 싫어했던 것이 아니라, 고대 아랍인들도 전반적으로 개 하면 들개가 옮기는 광견병을 먼저 떠올릴 정도로 싫어하는 편이었다. 개고기 역시도 돼지고기처럼 하람(금지)이며, 개의 침은 일곱 번 닦아내야 깨끗해진다고 교리로 정할 정도로 기피한다. 다만 하디스에서는 개를 학대하지 말라는 언행이 나오며 쿠란의 제 18장 알 카흐프(동굴의 장)에는 개에 관한 상당히 긍정적인 구절도 나온다. 그러나 개에 대한 전반적인 거부감은 강해서 말레이시아 등지의 사례처럼 개를 만지거나 기르는 것 자체에 제재를 가하려는 국가도 있으며, 이슬람 근본주의자들도 개를 매우 기피하는 편. 물론 사람에 따라 케바케로 집 밖 등지에서 개를 기르는 무슬림들도 있기는 하다. 개고기 역시 이슬람권 지역들의 경우 먹는 이력도 있는데 인도네시아의 경우 일부 오지 부족들이 즐겨먹기도 하며, 1990년대 초 보스니아 내전 당시 이슬람 보스니아인과 정교회 세르비아인과의 내전으로 먹을 게 고갈되자 전시 상황에서 개, 여우 등 개과 동물을 잡아먹는 보스니아인들도 있었고, 시리아도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직후 개고기를 정부에서 전시 비상 식품으로 허용해주기도 했다. 그래도 유대인처럼 '''목축업'''을 하던 사람들이라 '''사역견'''은 예외로 키운다. 다만 최근 들어서 걸프 지방의 젊은 세대들이 거리낌없이 애완견을 기르기도 한다.
한국이나 일본, 미국, 유럽 등 비이슬람 지역의 다른 국가들에서 사는 무슬림 외국인들과 현지의 무슬림 개종자 대부분은 돼지고기나 술 등 하람 음식을 먹는다. 안 먹으면 다른 나라 사람들과 지인, 형제들과 생활하고 부대끼는 데 무리가 있기도 하거니와, "구할 수 있는 게 이거밖에 없잖아!!!"라고 하소연하기도 한다. 물론 일부 무슬림 사람들은 돼지고기에 대한 격렬한 거부감 때문에 한국이나 일본, 서방 등 비이슬람 문화권 국가들에 와서도 쇠고기나 닭고기, 생선 등만을 먹거나 육식을 못 하고 과일이나 채소 등 채식을 하기도 하니 경우에 따라 다르기도 하지만, 특히 개방적인 터키나 북아프리카 튀니지, 모로코, 이집트, 동유럽 보스니아와 알바니아 같은 나라들의 무슬림들은 거리낌 없이 술과 돼지고기를 즐겨 먹는다. 그 밖에도 규율을 엄격하게 지키는 지역에서도 가끔 약용이라는 명목으로 술을 마시는 일도 드물게나마 있다는 등 반드시 엄격하게 지켜지지는 않는 모양이다. 사실 술에 대해서는 그 엄격하다는 사우디아라비아 출신들도 할 말은 없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사우디 사람들도 모로코나 바레인, 요르단 같이 술 판매가 허용되는 다른 이슬람권 나라들로 가서 술 마시는 경우가 꽤 많다. 특히 바레인
술을 금지했기 때문에 아랍 반도 근방의 술 조제 기술은 상당히 쇠퇴해 버렸다. 그러나 의료용 알콜[85] 을 얻기 위해 술을 증류하는 기법은 발달했으며, 이 증류기술이 서구로 전파되어 브랜디, 위스키, 보드카 같은 증류주가 등장하는 아이러니가 연출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술 문제 때문에 커피를 무지하게 마셨다고 한다.[86]
캐나다 등 비이슬람권 국가에 온 젊은 무슬림 유학생들이 돼지고기를 먹는 사례도 있다. 유학 오기 전까지는 돼지고기 맛을 몰랐을 텐데 어찌 맛을 아느냐고 물어보았더니 답하기를 "중국인 친구들이랑 어울리면서 돼지고기 맛있는 줄 알게 되었다"나.
또한 널리 알려진 것 중 '단식' 문화인 '라마단'도 있다. 이 라마단은 이슬람력으로 9월을 의미하는데,[87] 이날 금식을 하는 이유는 무함마드가 계시를 받은 달이기 때문이다. 단식해야 하는 시간은 이른 새벽부터 해가 완전히 떨어질 때까지의 약 12~16시간 정도.[88] 이 시간 동안에는 음식이나 음료수 등을 일체 섭취하지 말아야 하고, 성행위도 금지되고 흡연도 피해야 한다. 하지만 해가 완전히 떨어지고 나면 정말로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려 먹는다. 이것을 이프타르라고 부르는데, 비무슬림도 이 때는 꽤 배불리 얻어먹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이 기간 동안은 다들 살이 빠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찐다고 한다.[89][90]
라마단 기간에 터키에 놀러가면 야시장이 굉장히 볼 만하다고 한다. 하지만 좀 빡빡한 중동권 국가들은 라마단 기간에 여행온 신혼부부에게 '사람들 눈에 띄니까 식사하려면 화장실에서 하라'고 한다나. 물론 이것도 사람에 따라 달라서 저런 나라에서도 좀 봐주는 이도 있다. 라마단 기간 중 이집트를 여행하던 어느 여행자는 이집트인 친구가 낮에 거침없이 밥먹는 걸 보기도 했다고 한다. 국가와 지방마다 케바케다. 터키와 이집트 대도시들은 세석적이기도 하거니와 관광객 장사로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아서 거부하지 않는 편이다. 다만 사람들의 눈총을 피하고 싶다면 안에 들어가서 먹는 것이 좋다. 라마단 기간에 터키 투어를 돌면 관광지를 제외하곤 시골로 들어갈수록 해가 떠있는 중, 보는 눈이 있는 자리에서 간식, 담배, 심지어는 물(!)의 섭취를 자재하라는 말을 귀따갑게 들을것이다.
2015. 9월의 유럽 난민 사태 때 헝가리를 지나는 시리아 난민들에게 준 식량에 돼지고기가 들어있다는 이유(그러니까 할랄푸드 아니라는 이유만으로)로 '''버리고 간 사진'''이 공개되어, 비이슬람권 사람들 사이에서 분노와 비난이 일어났었다. 이슬람 계율의 엄격함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굶어죽지 말라고 음식 보내줬으면 아무거나 쳐먹을 일이지 저렇게 뻗대고 거부하다니 '''배은망덕하다'''"라는 취지로 분개한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돕고자 하는 행위라고 할지라도 무엇을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 제대로 알아보고 그에 맞춰서 해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라는 옹호도 있었지만 오히려 분개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으러 온 사람들은 우리한테 맞춰줄 필요도 없다는 거냐?"고 더 폭풍까임을 받았다. 그리고 사실 이슬람 율법에서도 전자의 주장이 옳다고 본다. 할랄음식이 아닐 때라도 그것 말고 정말 먹을게 없어 급할 때는 나중에 회개하고 당장은 할랄푸드를 지키지 않아도 되는데도 종교적 독실함을 어필하려는건지는 몰라도 살려고 도망쳐온 사람들이 '''타인이 호의로 제공한 음식을 버리는 짓 따위'''로 행동하고 있으니 비무슬림들 입장에서는 어이없고 답답하기 짝이 없을 수밖에. 이는 시민들의 공분을 불러 일으키는, 난민 수용 반대의 주요 근거가 되었다. 외부인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외부인이 그 지역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데 정작 자기들은 존중받기만 원하고 존중하지는 않는다는 많은 무슬림들의 특징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례였기 때문이다. 애초에 난민들이 온 곳은 이슬람 문화권도 아니고, 난민들은 이슬람 문화권을 버리고 온 사람들이니 난민들이 비무슬림에게 맞춰주는 것이 합리적이고 맞다. 게다가 경제력도 그렇게 높지 않은 동유럽 지역이라 그쪽 지원사정도 별로 좋진 않은 편이기도 하고 말이다.
4.4. 이슬람에서의 성관념
'''남녀 할것 없이 매우 보수적이며, 동시에 기독교나 힌두교 문화권[91] 과 달리 남성만이 4명까지 아내를 둘 수 있는 일부다처제가 허용된다.'''
이슬람에서 여성만 성적으로 방종하지 않아야 한다고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쿠란은 남성도 성적으로 방종하지 않아야 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야동이나 자위행위 같은 행위는 많은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들과 마찬가지로 사실상 금지되어 있다.
원체 현 중동 분쟁 지역에 지하드 알 니카와 같은 극단적으로 왜곡된 형태의 성범죄가 만연해서 무슬림 남성은 비무슬림 여성과는 프리섹스를 즐겨도 문제가 없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고, 실제로도 그렇게 해석하는 막나가는 무슬림들도 있지만, 정통 율법상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이교도 이성과의 혼외 성관계 역시 마찬가지로 교리상 간음으로 간주된다. 각종 율법 소개 사이트 등에서는 비이슬람 여성이 머리카락이나 신체 일부를 내보였다면 그것을 보아도 상관은 없으나 속으로 음탕한 생각을 하거나 옷으로 가리고자 했던 부분을 보고자 하는 행위[92] 는 죄악임을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다.
사상적으로는 원리주의를 표방함에도 불구하고 사실 극단주의 테러리스트 상당수는 고등교육은커녕 중등교육조차도 제대로 받지 못해 율법에 대한 이해도가 그다지 높지 못하다. 무아트 알 카사스베 중위 분살[93] 같은 짓을 저질렀는데 ISIL이 저질렀다고 해서 이걸 이슬람 율법을 따랐다고 볼 수 없듯, 왜곡된 성관념과 욕구불만에 싸인 몇몇 무슬림 남성들이 성범죄와 삐끼짓을 한다고 해서 샤리아 자체가 무슬림 남성의 비무슬림 여성과의 성관계를 눈감아주는 것은 아니다.
터키에 거주하고 있고, 터키에서 문화사회학을 전공하면서 이맘이나 모스크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 이에 대해 문의했으나 적어도 터키의 이슬람 주류 해석은 "무슬림과 비무슬림의 관계라도 혼전 관계나 결혼 후 (이미 배우자가 있는 가운데) 비무슬림과의 연애조차도 '''간통'''(Zina)으로 간주되며, 터키 공화국 형법으로는 간통죄 조항이 없으므로 세속적으로는 처벌이 불가능하나, 이슬람적 관점에서는 간통자로 여겨지며, 이슬람에서 벗어난 자(즉 불신자)로 간주한다고 보고 있다. 물론 터키는 샤리아 법을 적용하는 종교국가가 아닌 세속국가이므로 이슬람차원에서 이들을 비난만 할 뿐, 처벌할 방법도 딱히 없기는 하다. 그러나 중혼이나 조혼은 터키 공화국 헌법으로 분명히 금지하고 있으며 상당히 무거운 처벌을 받는다.
초창기 이슬람, 즉 9~14세기의 이슬람 세계만 해도 동성애에 관해서 타 문화권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관대하였다.[94] 샤리아법에 동성애는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대놓고는 못하지만, 동성애를 해도 거의 처벌을 받지 않고 쉬쉬하는 분위기였으며 상류층의 경우에는 동성 애인을 갖는 게 유행이기도 했다.
그러나 18~19세기 이슬람 근본주의의 대두와 함께 동성애는 배척받고 처벌받기 시작했다. 현재 들어와서는 자유주의의 확대로 비교적 처벌이 느슨해져 요르단, 터키 등 몇몇 세속 국가에서는 처벌을 하지 않지만 아직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파키스탄을 비롯한 많은 이슬람 국가들에서는 심각한 사회적 터부 내지는 중범죄로 감옥행이고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극단주의 국가에서는 채찍형에 처한다. 간통까지 했을 경우에는 사형이다. 이란에서는 국가 주도로 투석형까지 시행했을 정도.
4.5. 이슬람에서의 여성 인권
아래의 글을 읽기 전에 확실히 해두어야 할 것이 있다. 현재 이슬람교를 믿는 지역에서 타 종교 지역에 비해 여성에 대한 차별이 크게 심각한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허나 이 문단을 읽은 후에 이슬람교가 무조건적으로 여성을 강력 탄압하는 종교구나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심지어 초기 이슬람교 사회는 오히려 여성 인권이 지금의 일부 이슬람 국가보다도 많이 존중되는 편이었다. 예를 들면 무함마드는 남녀가 함께 기도하며 자신의 교리를 들을 수 있게 하였고 남녀 간의 동등한 교육을 주장하였다. 쿠란 3:195 에서는 남자건 여자건 동등하다 하였고, 쿠란 4:32에는 남녀에게 동일한 경제적 권리를 줄 것을 명시해 놓았다. 쿠란 9장에서는 지속적으로 '남녀 믿는 자들'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이처럼 이슬람의 여성인권이 언제 어디서나 극도로 억압되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래에 서술되어 있는 내용들도 분명 현대 이슬람교의 커다란 문제점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슬람의 문제점을 가지고 과도한 혐오성 인식에 빠지거나, 아니면 역으로 초기 이슬람이나 일부 왕조, 여성지도자의 사례만을 들어 이슬람이 여성인권을 지금까지도 훌륭히 보장하는 종교라는 식으로 왜곡하는 태도는 둘 다 지양해야 할 것이다.쿠란 16:97 옳게 행동하는 자는 남자이건 여자이건 그가 바로 믿는 자이고, 따라서 우리는 그에게 좋은 삶을 보장할 것이며, 우리가 그들이 행하였던 것 중 최선의 것으로 그들에게 보상할 것이다.
이슬람은 그 당시의 아랍권 민족의 문화 혹은 관습(사실은 인습)보다는 상대적으로 여성의 권리를 존중했던 편이었다. 하지만 근대를 지나도 대다수 신자들이나 기득권층들이 여전히 그 시대에 머물며 개선을 거부하려 드는 태도가 완고하게 지속된 결과, '''21세기가 된 현재는 다른 종교보다도 더 여성을 혹독하게 차별하는 종교가 되어 버렸고 관련한 비판도 많이 받고 있다.'''남성은 여성의 보호자라 이는 하나님께서 여성들보다 강한 힘을 주었기 때문이라 남성은 여성을 그들의 모든 수단으로써 부양하나니 건전한 여성은 헌신적으로 남성을 따를 것이며 남성이 부재시 남편의 명예와 자신의 순결을 보호할 것이라 순종치 아니하고 품행이 단정치 못하다고 생각되는 여성에게는 먼저 충고를 하고 그 다음으로는 잠자리를 같이 하지 말 것이며 '''셋째로는 때려 줄 것이라'''[95]
[96] 그러나 다시 순종할 경우는 그들에게 해로운 어떠한 수단도 강구하지 말라 진실로 하나님은 가장 위대하시니라- 파하드 국왕 쿠란 출판청에서 쓴 '성 쿠란 의미의 한국어 번역' 4장 34절. 마침표는 원문에도 없음.
꾸란 4:3 만일 너희들이 고아에게 공정하지 못할 것같이 생각되면 누군가 마음에 드는 두 명, 세 명, 네 명의 여자와 결혼해도 좋다.[97]
만일 공평하지 못한 생각이 들게 된다면 한 명으로 하든가 너의 오른손에 소유하고 있는 것[98][99] 으로 하라. 그러는 것이 불공평하게 될 염려가 없다.
꾸란 4:43 믿는 자들이여, 너희가 아프거나 여행 중일 때 화장실에서 돌아왔을 때, '''여성을 만졌을 때''' 물을 발견하지 못했을 때는 깨끗한 흙위에 따이얌뭄(이슬람식 세정의식)을 하고 너희 얼굴과 양손을 문질러 깨끗이 하라.[100]
이를 토대로 현실에서 적용되는 샤리아 율법에서도 아내에 대한 체벌을 포함한 성차별 논란이 되는 규율들을 규정하기도 한다. 일단 이론적으로는 위의 조항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여성에 비해 우월한 육체적 조건을 이용하여 여성을 부양하는 반대급부로서의 권리 보장이며, 여성이 남성에 헌신하는 것도 이러한 남성의 역할에 대한 보답 형태라고 경전에 규정되어 있긴 하다. 그리고 심지어 '''그 중에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듯한 대목까지 있어''' 다른 종교로부터의 비난 대상이 됨은 물론 무슬림끼리도 견해가 갈리는 등 항상 비판의 대상이 된다. 아내를 때릴 때에도 에티켓이 있다는 동영상(영어 자막)도 참조.[101]꾸란 33:59 예언자여, 그대의 아내'''들'''과 딸들과 믿는 여성들에게 베일을 쓰라고 이르라. 그때는 외출할 때라. 그렇게 함이 가장 편리한 것으로, 그렇게 알려져 간음(강간)되지 않도록 함이라. 실로 하나님은 관용과 자비로 충만하심이라.
경전상에 이와 같은 차별 조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슬람은 오히려 아라비아 반도 지역의 여성 인권을 크게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여성에 대한 차별은 이슬람 교리 이전부터 중동지방의 민족 전통이었다.[102][103] 이슬람 이전에는 여성은 남성 소유의 물건 정도의 취급을 받았고, 남성은 재력이 허용하는 한 아내를 원하는 만큼 거느릴 수 있었다. 이를 무함마드가 "너희는 그 많은 아내들을 모두 만족시켜 주지 못할 것"이라며 4명까지로 제한하자 아라비아 귀족들이나 부유층들은 불만을 가지고 이슬람에 반대하는 경우도 꽤 많았다.[104] 그 밖에도 쿠란 4장의 니싸아에서 결혼시 지참금 지급, 재산 상속, 분명한 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학대 금지, 아내 편애 금지,[105] 여성을 간음죄로 고발 시 4명의 증인 필요 등 여러 구절을 통해 여성의 지위를 보장하였고,[106] 심지어 이를 지키지 못할 거면 결혼을 하지 말라고까지 못박아뒀다. 히잡, 니캅, 부르카 등 현대에는 반대 여론이 심각한 여성 옷차림도 당시 기준으론 무슬리마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그러나 보호의 순기능이 불필요한 현대사회에까지도 수구적으로 계속되는 강요로 여성들을 옥죄는 탄압의 굴레라는 평가가 많다.
역사상 이슬람에서의 여성은 사회 주도적인 역할을 맡기도 하였다. 우선 무함마드의 가족들 중 딸 파티마와 마지막 부인 아이샤는 무함마드 사후 '신도들의 어머니'로서 이슬람 공동체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전자는 알리와 결혼한 후 많은 하디스를 전하며 쉬아 이슬람의 사상적 토대를 마련하였다. 따라서 그녀는 파티마 앗 자흐라 (고귀한 파티마)로 불리며 쉬아파에게선 성인 취급 받는다. 괜히 유일한 쉬아 칼리파 왕조인 파티마 제국이 그녀의 이름을 딴 것이 아니다. 후자인 아이샤는 반대로 알리와 대립하며 수니파 공동체의 원로가 되었다. 그녀는 이슬람 내전인 1차 피트나가 터지자 첫 전투에서 몸소 낙타에 올라 반군을 지휘하였다. 따라서 이 전투는 그녀를 기리며 낙타 전투로 명명되었다.[107] 이후 칼리파 제국인 아바스 왕조와 파티마 왕조에서는 태후들의 시대가 열리기도 하였다. 9세기 초반 아바스 조의 카이주란은 두 아들을 칼리파를 추대하고 정사를 보았다. 그중 후자는 천일야화의 하룬 알 라시드인데, 카이주란이 사망하자 그는 맨발로 진흙탕 길을 걸으며 장례 행렬을 따랐다. 11세기 초반 파티마 조의 공주 시트 알 물크는 오빠인 알 하킴을 폐하고 정치를 주도하였다. 십자군 전쟁기인 12세기 다마스쿠스의 튀르크계 부리 왕조에선 태후 주무루드가 두 아들들을 아미르로 옹립한 후 권력을 독점하기도 하였다. 오스만 제국 역시 여자 황제 시대라 불릴 만큼 17세기 전반 태후들이 정사를 주도하던 시대가 있었다.
이슬람 사상 최초의 여왕은 12세기 예멘에서 나왔다. 무려 38년간 북 예멘을 통치한 말리카툰 (여왕) 아르와 앗 술라이히가 그 주인공인데, 그녀는 금요 예배 (쿠트바)에서 언급된 첫 여성이었다. 12세기 말 터키 살투크 왕조의 마마 하툰 역시 10년간 독자적으로 통치하였다. 여성 술탄, 즉 술타나 중에선 13세기 아이유브 왕조를 청산하고 맘루크 왕조를 개창한 샤자르 알 두르 (Shajar al-Durr)가 있다. 그녀는 남편 앗 살리흐의 죽음을 숨기고 7차 십자군에 대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비록 압바스 칼리파의 반발로 백일도 가지 못했지만 일반적인 군주에 부합하는 권력을 행사하였다.[108] 이란에서는 13세기 후반 일 칸국의 제후국인 쉬라즈의 살구르 왕조와 케르만의 쿠틀루그 칸국에서 여왕들이 나타났다. 전자의 아비쉬 카툰과 후자의 투르칸 등은 쿠트바 (금요 예배)에서 일 칸 다음으로 언급되는 등 명실상부한 군주로 인정되었다. 마그레브 지역에선 19세기 알제리의 투구르트 술탄국에도 여왕 아이샤가 있었다. 중동 지방과 달리 남아시아 지역에서는 수십명의 여성 군주들이 출현하였다. 대표적으로 델리술탄왕조의 여제 라지야가 있다. 몰디브에서는 14세기에만 5명의 술타나 (여제)가 있었고, 자바의 파사이 술탄국과 아체 술탄국 역시 술타나가 많았다. 후자에서는 4명의 술타나가 연달아 즉위하였다.
정치적 측면 외에 여성들은 사회, 문화적으로도 많은 역할을 하였다. 무함마드 시대의 사하바 여성들 중 일부는 메카 군대에 대한 지하드에 참가하였다. 우후드 전투에 참전한 누사이바 빈트 카압의 경우처럼 직접 싸운 경우 보다는 전장에서 부상자를 돌보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루피다 알 아슬라미야는 이슬람 최초의 간호원을 세워 활약하였고, 현재 바레인 대학에서는 매년 간호 분야의 우수 학생에게 그녀의 이름을 붙인 상을 수여한다. 그외에 이슬람권, 그리고 세계 역사상 첫 대학으로 평가받는 모로코의 알 카라위인 대학 역시 피흐리 가문의 상속녀 파티마 알 피흐리에 의해 설립되었다. 애초에 무함마드가 남성 뿐만 아니라 여성 역시 교육에 정진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한국에서 고려가 세워지던 918년에 압바스 조의 바그다드에선 세속 법원장으로 여성인 투말이 임명되어 5년간 재임하였다. 위키피디아 문서 남성 울라마들 중에선 12세기 이슬람권의 대학자 이븐 루시드(아베로에스)가 여성과 남성의 완전한 평등을 주장하였다. 무슬림 / 무슬리마 외에 비무슬림 중에서도 10세기 루브나의 경우 코르도바의 칼리파 알 하캄 2세의 비서로 활약하였고 그 황후인 수훕은 후에 태후로서 막후에서 정치를 주도하는 등 종교를 떠나 여성 자체로서 활약한 경우도 있었다.
현대와 비교하여 중세 당시에는 전사, 즉 남성의 몸을 가진 이들만이 약육강식의 강자였다. 그러나 현대로 오며 육체적인 폭력이 제한됨과 동시에 사람들은 육체의 힘이 아닌 두뇌의 힘을 활용하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하고, 이에 따라 여성의 인권의 부분이 크게 성장하였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옛날 옛적, 전사들의 전쟁이 숱하던 당시 육체가 남성에 비해 약한 여성들은 부속품이나 동물 취급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았고, 쿠란에 명시되어 있는 것들은 그 당시 여성의 인권을 한 단계나마 끌어올리고자 노력했다고 봐야 한다. 1단계에서 2단계로 뛰는 것은 비교적 타협이 가능하지만, 1단계에서 갑자기 4단계로 뛸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다른 문명권이 여성인권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거나[109] 최소한 개선하려는 시늉이라도 내가는 식으로 끊임없이 개혁을 추구했던 때[110] 에 정작 이슬람은 이슬람 근본주의로 대표되는 수구사상에 빠져들어 개혁과 인권상승의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버렸다는 것이다.'''
여성 인권 문제가 제대로 해동되기 시작한 현대에 와서는 '''이슬람의 교리가 오히려 여성의 권리를 억압한다'''고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는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고자 한 제도들의 진정한 의미를 외면한 채 수구적인 기득권 이슬람 학자들이 "경전에 명시된 것이 여성에 대한 권리의 전부"라고 주장한 데에서 비롯되었다.[111] 이로 인해 과거에 혁신적이었던 여성 보호 조치들의 시대와 동떨어지게 된 요소들을 현대사회에서 그대로 적용함에 따라 오히려 여성차별적인 논란을 불러 일으킬 수밖에 없다.
특히 샤리아 정교일치 체제인 이슬람 국가에서는 국법 자체에 이러한 여성차별적 논란이 되는 요소들이 포함되기 때문에 이슬람 외부에서 볼 때는 여성 인권에 대해 큰 비판과 우려를 가지고 있다. 일단 근본주의가 대세인 이슬람 주류 대중에게 씨알도 안 먹혀서 그렇지 여성의 권리부분을 재해석하는 학파들이나 학자들도 일부 존재는 하며, 이슬람 페미니즘도 있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정치와 주류 사회에 거의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종종 여성에 대한 인권 침해가 다른 문화권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지경으로'''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서 문제가 되고 있다. 명예살인의 경우 2010년 명예살인의 세계적 추세 연구에 따르면 현재는 그 수가 더욱 증가하고 국가별로 제대로 집계도 되지 않아 신뢰할 수 있는 추산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전까지(2000년도 UN 추산) 1년에 무려 약 '''5천 명'''의 무슬리마들이 이슬람과 가부장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살해당했으며[112] 전 세계 명예살인의 90%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소행이었다.
- 성폭행 당한 여성은 자살하는 불문율 이슬람의 잔다르크 (문화)
- 자살하지 않으면 오히려 가족이 살해하는 명예살인 '명예살인' 유린되는 이슬람 딸들 (경향) 및 이를 옹호하는 정부 체첸 이슬람 정부의 명예살인 옹호 (워싱턴 타임즈 원본) 체첸 이슬람 정부의 명예살인 옹호 (워싱턴 타임즈 번역)
- 선진국으로 이민한 무슬림이 그 나라 법률을 무시하고 명예살인 아프간 이민 가족 세 딸 '명예살인' (한겨레)
애초에 인권이 뭐고, 민주주의가 뭐고, 평등이 뭐고, 생명 존중 사상이 뭔지를 알면 악습이 줄어들겠지만 이런 상식적, 인권적인 관점조차 서구 세력의 반이슬람 사상으로 여기는 이슬람 근본주의 무슬림이 많기 때문에 현실은 안습 그 자체다. 오히려 서구식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너무 적은 탓에, 아랍의 봄을 겪었던 여러 나라들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서구식 민주주의 도입이 오히려 근본주의자들의 합법적 정계진출 등을 조장하여 사회의 근본주의화와 여성차별을 더 낳는 결과까지 보여주고 있다. 당장 무슬림 여성들조차 쿠란은 남성의 길과 여성의 길을 딱딱 나눠서 가르치고 있으니 쿠란의 가르침대로만 살아야 하며 서구 문화에 물든 남녀평등주의자들의 선동에 놀아나지 말라고 주장하는 답이 없는 상황이 계속 심해지고 있다. 단, 세속적인 국가에서 비무슬림 가정에서 자라다가 정상적인 신앙 활동을 위해 이슬람으로 개종한 사람의 경우 어릴 때 국가에서 받은 세속주의적 교육에 의해 자기 스스로 교리와 현실의 차이를 인식하여 개방적인 인식을 보인다. 한 한국인 무슬림 개종자의 증언에 의하면 전근대적인 이슬람권에서 자란 무슬림보다는 비무슬림인 한국인과 사상적으로 훨씬 더 동질성을 느낀다고 한다. 이들 중에서는 자이툰 부대에 파병갔다가 이슬람교로 개종한 군인들도 있었는데, 조국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것이 지하드라고 느끼기도 한다. 뭐 같이 종교 민족이 달라도 같은 나라에 살면서 부대끼는 만큼 당연한 일이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진행된 갤럽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샤리아를 실정법으로 반영해야 하는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한 찬반 비율이 나라마다 차이는 있지만 남녀간의 차이는 크지 않아, '''무슬리마는 샤리아로 인해 특별히 차별을 받고 있지 않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하며, 갤럽은 이를 통해 무슬림의 여성 인권에 대한 태도는 생활 수준이나 취업률 등 경제적, 사회적 요인이 더 큰 영향을 끼친다고 결론을 내렸던 적이 있다. 이 조사에서 여성이 먼저 이혼을 요청할 권리를 허용해야 하는지 질문에 대해 응답자의 여성 인권에 대한 견해에 종교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응답한 쪽은 찬반 의견이 5:5였으나 종교가 영향을 끼친다고 응답한 쪽은 7:3으로 나와, 대다수 무슬림들은 이슬람 교리에 따른 가치판단을 하는 사람이 보다 여성 인권을 보장한다고 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설문조사는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종교가 가치판단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대답한 사람은 실제로는 자기 스스로의 가치관과 종교 사이의 갈등을 겪지 않은 사람(즉 응답자인 이슬람권 상당수 여성들의 '''사고방식 자체가 이미 이슬람 및 남존여비적인 문화에 젖어있어 자기들이 명백히 이슬람 교리에 따라 불합리한 처우를 받고 있음에도 이슬람이 여성차별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매우 많기 때문이다. 즉 이런 식의 편향성 짙은 조사만 가지고 이슬람권의 명백한 여성차별 행태에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전혀 책임이 없다고 보는 식의 견해는 큰 무리가 있다.
2015년 3월 발표된 여성 인권에 대한 UN 보고서에서도 이슬람 국가와 비이슬람 국가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례들을 나열하며 '''극단주의와 보수주의의 대두가 여성 인권의 장애'''라고 명시하였고, 이를 인용한 많은 기사가 "이슬람이 아닌"이라는 설명을 제목에 달았는데, 여기에 대해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애초에 서구나 비이슬람권에서 이슬람교의 특정 사건사고나 테러 등에 대해 이슬람포비아로 몰리지 않기 위해, 또는 이슬람권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이슬람의 본래 모습은 그렇지 않다'는 식의 일부 이단식 정치적 올바름 수사를 쓰는 것은 권위자나 언론, 정치계를 가리지 않고 상투적일 만큼 흔한 일이며, 원인으로 지목된 소위 '수구적인 사상'이나 '극단주의의 대두'역시 결국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그 자양분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 명백한 현실이고, 주된 이유로 '기득권 남성'을 언급하나, 결국 그 기득권 남성들의 여성탄압 관련 수단으로 명백히 악용돼서 쓰이고 있으면서 제대로 된 광범위한 개혁조차 시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이슬람계 주류라는 것은 아무리 '일부' 예외사례를 들어도 합리화되기 힘들다는 점은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다.
힌두교 신자가 80% 이상에다 이슬람권과 마찬가지로 종교 근본주의, 성차별적 악습이 심각한 인도의 사례를 들면서 물타기를 시도하거나, 반대로 이슬람 국가인 튀니지나 우즈베키스탄(#)의 인권탄압 내지는 명예살인 문제가 적은 몇몇 국가 사례를 드는 경우도 있는데, 인도는 힌두교도 문제지만 인도 내부의 여성인권 문제에는 인구의 18%나 되는 인도 무슬림들의 가정폭력, 여성인권탄압 문제 역시 한몫 하고있는 것이 현실이며 파키스탄항목에서도 확인 가능하지만 인도 내부에서도 무슬림 가정의 남성 가장들이 힌두교, 기독교같은 타종교보다 여성폭력 비율이 높다. 튀니지나 우즈베키스탄 같은 나라 역시 이쪽의 무슬림들이 성차별적 태도에서 많이 벗어난 이유는 물론 이슬람을 비교적 널널하게 나이롱으로 믿던 문화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해당 지역의 이슬람 지도자나 신자들이 개념있어서라기보다는 아랍 사회주의 독재정권이나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세속적 분위기가 많이 정착되어서(즉 이슬람이 목소리를 크게 낼 환경이 갖추어지지 않아서)인 이유도 무시할 수 없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도 무슬림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종교근본주의나 성차별이 심하지 않다는 근거로 내세워지는 것들[113] 도 반박이 가능한 주장인데,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에도 여성인권 억압을 주장하는 근본주의 이슬람은 국민들 사이에 거대한 조류를 이루고 있으며, 과거부터 세속주의(판카실라)를 내세운 독재정부에 의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지속적으로 탄압을 받고 세속적인 분위기를 강제로 유지한 결과 그나마 이렇게 된 것이고, 애초에 그쪽 기후는 과하게 습한 특성때문에 잘해봐야 무슬리마들에게 히잡 이상(니캅이나 부르카)을 강요하기가 힘들다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또 여성 정치인들의 집권을 가지고 괜찮다는 듯 주장하기에도 힘든 것이, 최악의 여성인권을 자랑하는 파키스탄에서도 부토같은 여성 집권자가 등장한 적 있지만 아무도 파키스탄 이슬람계가 여성인권을 존중한다고는 보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여성정치인 한두명이나 아이돌 그룹같은게 아니라 이슬람이라는 종교 자체가 21세기인 지금까지도 세계 많은 지역에서 세속 정권에게 탄압, 제재나 견제를 받지 않는 이상 근본주의와 차별적 악습을 버리지 못하고 집권자, 근본주의적 대중의 악습에 기름을 붓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교적 세속적이고 종교적 색채가 옅은 편인 터키, 모로코, 요르단에서조차 명예살인 뉴스가 간간이 들린다. 이런 사실로 볼 때 이슬람 이전부터 중동 일대에 존재하던 악습이 큰 개선도 없이 이슬람의 이름으로 현재도 행해지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중동의 대부분 국가들에 이슬람이 퍼져 있는데다 그 역사마저도 하루 이틀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계속 명예살인 문제를 통제하기 어려워하는 것만 봐도 이슬람이라는 종교에 여성인권 문제의 책임을 면피시키기는 어렵다. 이란만 하더라도 서구적 근대화를 추진하고 지금보다 여권이 보장된 팔라비 왕조 때에도 여전히 이를 무시하는 근본주의자들의 명예살인은 있었다.[114]
단, 많은 이슬람 학자나 지도자들은 간통자에 대한 명예살인에 대해서는[115] 이슬람 종교 정신에 위배된다고 비판한다. 이란의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Khamenei)는 명예살인은 이슬람의 정신에 위배되며, 만일 간음과 같은 죄를 저지르더라도 관대한 처벌에 그쳐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집트 아즈하르 대학교 신학자 셰이크 아티야 사끄르(Sheikh Atiyyah Saqr)는 "이른바 명예 살인이라고 불리는 행태는 도덕과 법을 무시한 무지의 소치에 불과하다. 이러한 관행은 일벌백계로 다스리지 않으면 근절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질책의 목소리를 높였다.출처 하메네이가 저 말을 한 게 06년 이전인데 그때는 이란에 투석형이 남아있던 시절이다.
명예살인이 가장 빈번한 파키스탄에서 최근에 처벌 강화 법안이 통과되었다. 이것이 명예살인을 뿌리뽑는 단초가 될지, 여성 인권에 대한 근본적인 의식 개선이 없는 채로 진행되어 성과를 거두지 못할지는 지켜봐야 할 일.
결론적으로, 21세기 현재 많은 이슬람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낮은 것은 사실이다. 아랍권 민주화 운동에서 여성들이 큰 활약을 하면서 이들의 발언권이 어느 정도 커졌고 덕분에 여권 신장이 느리게나마 진행되고 있지만, 민주화 이후 사회 혼란을 틈타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 뿌리를 내리는 지역이 많아지는 데다가, 진작에 깊게 뿌리 내린 견고한 남존여비, 이슬람 근본주의의 벽은 쉽게 깨지지 않고 있어 한숨을 내쉬게 한다. 이집트 새 헌법, 여성 권리 제한 논란 (연합뉴스) 아프간 여성, 취직했다고 두 눈 흉기에 찔려 실명 (연합뉴스))
4.5.1. 여성 인권을 강조하는 이슬람 일파 및 조직
비록 주류 이슬람에서 이단 취급당하는 소수이지만, 이슬람권에서도 여성 인권을 강조하며 여성에 대한 교육과 권리 향상 등을 주장하거나 정책적으로 시행한 지도자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 지휘관이였던 아흐마드 샤 마수드와 터키의 초대 대통령 케말 아타튀르크, 튀니지 초대 대통령 하비브 부르기바, 전 알제리 대통령이었던 후아리 부메디엔, 전 오만 국왕인 카부스 빈 사이드 알사이드 등이 있다.
- 헤즈볼라 - 장교급 간부 중에는 여성도 있으며[116] , 헤즈볼라 여군들이 니캅 같은 베일을 입고 쓰는 것도 개인의 선택으로 존중한다고. 헤즈볼라 소속의 여성 정치인도 있다. 이 때문에 다에시나 알 카에다 같은 많은 극단주의 조직과는 대단히 사이가 좋지 않다. 애초에 시아파라서 종파부터가 다르기도 하고.
- 쿠르드족 - 쿠르드인들은 여성의 지위가 굉장히 높다.[117] 특히 다른 이슬람을 믿는 민족보다 비교적 세속적인 탓에 히잡을 강요하지 않아서 서구적으로 사는 여성이 많다. 특히 시리아의 쿠르드족 자치체인 로자바는 남녀평등, 철저한 프랑스식 정교분리(라이시테)를 추구한다.
- 드루즈파 - 일부다처제가 금지되어 있고 여성의 지위가 남성과 동등하다. 단, 이걸 가지고 여성을 존중하는 이슬람 일파 운운하기가 뭐한 것이 절대 다수 무슬림들은 드루즈파를 아예 별개의 종교로 인식하고 같은 이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 이스마일파 - 이들은 여성들에게 니캅 같은 폐쇄적 복식을 강요하지 않으며 히잡을 모자로 대체하는 개혁이 진행 중이다. 또한 예배랑 축제 때에는 남녀가 동석하여 같이 예배하는 방식으로 개혁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 소수 종파인 특성상 생존을 위해 기독교 세력과의 연합 및 서구의 세속주의를 많이 받아들여 여성 인권을 굉장히 신장시켰다. 기성 주류 이슬람에서는 아예 상상도 못할 일이다.
- 알라위파 - 알라위의 본거지인 시리아의 이슬람 근본주의는 수니파들이 주도하는 경우가 많았고 지금도 그렇다. 알라위파는 수니파에게 십자군 전쟁 이전부터 오랜 기간 극악스런 차별과 탄압을 받아 왔으며, 수니파에 대한 역사적 원한 때문에 이들은 과거 십자군에 보조 부대로 참전하였다가 맘루크 왕조로부터 엄청난 박해를 받은 적도 있다. 20세기에 와서 시리아의 정권을 잡은 뒤, 아랍 사회주의의 영향으로 이슬람 근본주의에 반대하고 여성인권 향상을 정체성화시켰다. 시리아 내전에서도 히잡을 전혀 착용하지 않은 알라위파 여군들이 정부군 소속으로 매우 많이 참전하며, 알라위 가정들에서도 이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 이슬람 사회주의 - 이란의 사회주의 성향 이슬람 조직인 '무자헤딘 할크' 등이 있었는데, 당연히 이란 대다수 이슬람계에서 이단 취급을 받고 호메이니 시절에 철저히 왕따당하고 박살이 났다. 현실은 시궁창.
- 터키 - 특히 유럽과 가까운 서부 지역에 세속주의 무슬림들이 많다. 터키 땅은 아니지만 키프로스(북키프로스 터키 공화국)의 터키계 무슬림들은 터키 본토인들보다 더 세속적이다.
4.6. 민속 이슬람
사실 이전에도 언급했지만, 이슬람이 다수를 차지하는 나라나 공동체의 문화는 '''결코 단 하나의 동일체가 아니다.''' 많은 무슬림들이 무함마드 시절의 이슬람 공동체(=움마)를 이상향으로 여기고, 본받아야 할 모범으로 여기는건 사실이지만, 당장 민족 감정이나 지역 감정, 부족 감정도 심하기 때문. 심지어 학파에 따라 율법을 적용하는 방법이나 기준도 전부 다르기 때문에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여기에 현지의 토착관습과 이슬람 교리가 융합하면서 실제 현지인들의 종교관은 쿠란, 하디스를 중심으로 하는 소위 '''제도권''' 이슬람과는 영 딴판으로 변했다. 이를테면 아이를 잉태하면 무함마드에게(...) 아기의 순탄한 출산과 산모의 건강을 비는 우즈베키스탄의 전통이나, 쿠란을 아무 페이지나 넘겨서 거기 나온 구절에 따라 점을 치는 풍습, 터키를 비롯한 레벤트 지방에 널리 퍼져있는 푸른색 눈모양의 부적(나자르본주), 신비한 숫자와 글자를 종이에 적어서 만드는 부적(무스카) 등은 이슬람 율법학자들이나 지하디스트들이 없애고자 애를 쓰는 '민속 이슬람'이다. 즉 이론과 현실이 바닥에서도 구분된다. 어떤 풍습들은 "얘네 무슬림 맞아?" 싶을 정도로 이질적이라 학자들의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들도 있다. 민속이슬람 자세히 보기
심지어 인도네시아에는 이슬람식 무당인 빠왕(20:30초부터)도 있다. 정확히는 퇴마사에 가까운 듯 보인다.
이런 식의 이슬람 원칙주의자들이 보면 목 잡고 쓰러질 모습들이 이슬람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고 기독교나 불교도 마찬가지다. 에티오피아 정교회에는 '점성술'과 '백성의 행복과 평화'를 기원하는 기복의식을 새해마다 벌이는 전통이 있으며, 콥트 정교회는 전례력 또한 고대 이집트의 태양력이 거의 그대로 이어진 독특한 콥트력을 사용하는데, 각 달의 이름이 신왕국 시대 이집트어와 거의 유사하다.
4.7. 종교 용어의 차이
이슬람에서는 무함마드 시절의 아랍어인 '푸스하'만을 예배용어로 사용한다. 하지만 애초에 아랍 문자의 특성상 모음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는 구분이 어렵기도 하고, 시대가 흐르면서 아랍어 음운도 지방에 따라 매우 이질적으로 변했기 때문에 실제로는 꽤 크게 차이가 난다. 특히 과거 페르시아 문화권이었던 이란과 페르시아를 통해 이슬람을 받아들인 터키, 위구르,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국가들 그리고 터키(오스만 제국)를 통해 이슬람을 받아들인 발칸 반도 국가들에서 통용되는 종교용어는 아랍과 비교했을 때 매우 차이가 크다. 개중 간단한 것들만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다.
4.8. 이슬람 생활 율법에 대하여
흔히 사람들이 유대교를 엄청나게 복잡한 생활 율법수행을 강조하는 율법주의 종교라고 보고 이슬람은 돼지고기 금지나 하루 5번 기도를 제외하면 그렇지 않다고 보는 잘못된 인식이 많은데, 이슬람도 유대교 못지않게 FM대로 따를 경우 일상생활 전반에 어마어마한 제약이나 규정들이 많다.[119] 어떤 측면에서는 이슬람이 유대교보다 더 심한 부분[120] 도 있을 정도. 샤리아 항목에서도 알 수 있지만 이슬람 율법은 대단히 많고 법학파들에 따른 해석, 명령(파트와)도 복잡하다.
- 담배 금지
- 개가 있는 장소에서는 예배 무효
- 무슬림 남성이라면 여성의 권리를 무시하고 아내에게 3번의 이혼 통보만으로 즉시 이혼 성립 가능
- 무슬림 부부가 이혼하거나 사별하였을 경우, 여자는 3개월~4개월 10일동안 재혼 금지.
- 다른 사회와 달리 이슬람권에서는 식사 후에 대놓고 트림을 하더라도 ‘비스밀라(하나님의 이름으로)’라고만 하면 예의 있는 행위로 간주된다.이슬람의 상식 및 예절
- 여성을 극도로 차별하는 와하브파 이슬람에서는 남성이 여성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조차 금지한다. 또 이성 간 악수조차 금지다. 사우디아라비아나 카타르 등에선 비즈니스 만남이나 외국인과의 인터뷰 자리에서도 이성과의 악수조차 거부하는 무슬림들이 많다. 보통 여성이 먼저 악수 제의를 할 경우 악수하면 실수하지 않을 수 있다.[126]
- 하나님 외의 어떤 누구에게라도 고개를 숙이는 것 금지.
- 인도 문화권과 비슷하게, 오른손은 깨끗하거나 좋은 일에 쓰고, 왼손은 더러운 일에 쓰는 원칙이 있다. 비교하자면 힌두교보다는 좀 덜 엄격한 편인데, 자세한 내용은 난(빵) 문서 참조. 실제로 무슬림들 앞에서 왼손 쓴다고 눈살 찌푸리고 싫어하는 경우는 드물다.
- 용변 후에는 휴지보다는 물로 씻어내는 문화가 발달해 있다. 소변 이후에는 물로 깨끗이 씻고 닦아내라고 규정하며, 대변 이후에도 물로 청결히 할 것을 규정한다. 이 덕분에 이슬람권은 역사적으로 비데가 발달하는 원조 문명권이 되었다.
- 무슬림의 금 장식 사용에 대해서, 터키에서의 해석을 따르면 남성이라도 금이 12k(50%) 이하로 함유된 장신구를 착용하는 것은 메크루(허용도 금지도 아님)로 보고, 비단옷도 전통적으로 가로실을 면으로 하고 세로실을 비단으로 한 쿠트누(kutnu) 옷감은 비단으로 보지 않아 허용했다. 식기도 금, 은도금인 경우, 혹은 순은재질이라도 입이 닿는 부분은 금이나 은이 아닐 경우, 자기 것이 아니라 다른 집에 손님으로 갔는데 금은식기에 담은 음식을 받았을 경우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 허용된다고 본다.
- 남성에게 수염 기르기를 중요시하는 문화에 대해서는, 터키에서 누구한테 "이슬람 전통이니 수염을 무작정 길러라"는 소리를 하면 싸이코 소리 듣기 딱 좋다. 물론 여기서도 보수주의자들은 턱수염 콧수염 다 기르지만, 보통 사람들은 턱수염 더부룩한 사람을 보면 "지저분한 아랍인 같다."고 극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콧수염 정도 기르거나 턱수염을 기르더라도 어느 정도 선에서 관리하는 사람들은 꽤 있다.
- 트림 문화에 대해서도, 서구화된 터키에서는 식사 중 트림하는 사람을 교육받지 못한 촌놈 정도로 여긴다. 트리플 탈라크에 대해서 역시 터키에서는 아타튀르크 시절부터 트리플 탈라크가 법적 효력이 없다고 선포되었으며, 이혼을 하려면 법정에 이혼소장을 제출해야만 재판을 통해 이혼할 수 있다.
- 다른 사람에게 고개 숙이기를 금지하는 율법은, 터키에서는 기본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하는 인사가 상대방이 자기보다 높은지 낮은지 알 수 없을 때 하는 조심스러운 인사이다. 다만 고개를 숙이되 한국이나 일본처럼 허리까지 숙이지는 않는다.
4.8.1. 관련 문서
5.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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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의 탄생: 대천사 지브릴(가브리엘)의 계시를 받는 무함마드. 자세한 사항은 무함마드 문서 참고[127]
무함마드는 메카와 메디나에서 활동했는데, 메카에서 말로 13년 동안 설파하고 설득해서 얻은 개종자는 150명뿐이었으나, 메디나에서 하층민들과 소외자들을 규합해 메카 귀족들을 향해 정복전쟁을 시작하면서 수많은 개종자를 얻었다고 한다.[128] 초기 이슬람의 기라성 같은 인물들에 대해서는 사하바 문서 참고
5.1. 초기~중세 이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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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 사후, 선지자와 친했던 장로 중에서 후계자&교황이라 할 수 있는 칼리프를 선출하였다. 그 후 아라비아 반도 밖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여 633~656년 사이에 시리아, 이라크, 이집트 등을 정복하고 교세를 크게 넓혔다.
그 후에도 정복사업은 계속되어 우마이야 왕조 시대에는 서쪽은 북아프리카의 대서양 연안까지, 동쪽은 중앙아시아, 인도 북서부까지 영향을 주었다. 동아시아 근방까지 진출하여 751년 탈라스 전투에서 고구려 출신의 고선지가 이끈 당나라 군대를 격파하고 중앙아시아의 통치권을 확립하였다.
자세한 역사는 무함마드, 이슬람 팽창, 우마이야 왕조, 아바스 왕조, 셀주크 제국, 오스만 제국, 바르바리 해적 등의 문서 참고.
중앙아시아와 인도로의 이슬람의 확산은 가즈니 왕조, 구르 왕조, 델리술탄왕조, 무굴 제국 참고.
스와힐리 (동아프리카), 인도네시아 방면으로의 포교는 무역으로 이루어졌다. 중국 서부의 위구르 자치구도 마찬가지.
이렇듯 이슬람교는 황금기를 이루기까지 그야말로 무서운 기세로 아시아 동부 지역으로 이곳 저곳에 전파되었으나 한자 문화권 및 인도차이나 반도 방면에서는 맥을 못 췄다.
왜냐하면 한반도와 일본 열도로 이루어진 동아시아는 중국의 중화 문명이라는 거대한 문화권이 가로막고 있었던 대다가 중앙아시아와의 사이에는 톈산 산맥과 타클라마칸 사막, 파미르 고원 등 험준한 자연지대가 존재했으므로 이슬람의 전파도 주변부 위구르 지역이 한계였다.
동남아시아도 육지를 통한 전파는 인도 문화권을 거쳐야 해서 상당히 제약이 컸기에 인도차이나 반도에는 기세를 떨치지 못했고 그나마 남부 지역인 말레이시아 반도, 인도네시아 제도 및 필리핀 남부 지역에는 해양 무역을 통해서 전파되었다.
5.2. 이슬람 황금기 (Islamic Golden Age)
요람에서 무덤까지 지식을 탐구하라
- 아랍 속담
진리가 어디서 오든 간에 우리는 그것을 인정하는 데에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설령 그 진리가 과거 세대나 이방인들로부터 온 것이라 해도 말이다. 진리를 추구하는 자에게 진리 자체보다 더 귀중한 것은 없다.
ㅡ 9세기 철학자 알 킨디
철학은 무슬림에게서 나왔다.
8 ~ 13세기의 이슬람권은 문화권과 종교에 상관없이 자신한테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지식은 무엇이든 배워서 더욱 발전시켜나갔고 마이모니데스와 같은 비 무슬림 학자들도 왕성하게 저술활동을 할 수 있는 융통성있는 사회였다. 특히 그중에서도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유산을 계승한 지적 결과물들은 서유럽 세계로 번역되어 르네상스에 영향을 주었다.유럽의 의료 체계는 기원뿐만 아니라 구조에 있어서도 아랍식이다. 아랍인은 유럽인의 지적 조상이다.
- 20세기 학자 도널드 캠벨의 평가.
당시 무슬림들은 '''이단'''의 지식이든 뭐든 싸그리 무시하고 필요하다 싶으면 다 받아들이던 세대였다. 요즘 중동의 이슬람 근본주의와 비교하면 이때가 전성기였던 이유가 있었던 셈. 오히려 이때가 타 문화권의 생각을 잘 받아들이고 수용했던 때라 요즘보다 더 낫다고 봐도 될 정도.
중세 전반기의 혼란을 겪으며 학문적으로 쇠퇴한 서유럽에 비해[130] 아랍의 이슬람 문화권은 고대 그리스, 로마의 학문들을 받아들여 매우 발전되어 있었다. 위상이 이렇다보니 서구권의 교회에서도 이븐 시나, 이븐 루슈드 같은 무슬림 저자의 주해서를 읽을 수 있게 허용했다. 당장 알코올과 알칼리, 알고리즘 등의 단어가 아랍어에서 유래된 말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자.[131] 삼각함수도 기원은 인도지만 사인을 제외한 코사인, 탄젠트, 코탄젠트, 시컨트, 코시컨트는 아랍 학자들이 발견하였다.
이 시기 이슬람은 이성을 중시하는 무타질라 학파의 융성으로 인해 대놓고 '''무신론임을 선언해도 처벌받지 않는'''[132] 매우 관용적인 사회였고 과학, 철학, 사회 등 모든 부분에서 압도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중세 유럽이 바이킹의 침공으로 기록물이나 연대기조차 제대로 쓰이지 않을 시기였고 중국은 당나라 말기 ~ 5대 10국 혼란을 겪을 때였다.
이슬람권의 대표적인 도시 바그다드만 해도 사람들 사이에 지성의 요람, 문명의 요람이라고 불리워 세계 3대 도시에 등극하는 위엄을 보여준다. 특히 바그다드와 카이로에 세워진 지혜의 집은 중세 지중해 권역과 페르시아, 인도의 학문이 집대성된 곳이었고 이탈리아의 학자들이 시칠리아, 스페인, 모로코, 알제리 등 (당시 기준으로) 이슬람 지역의 학교에서 천문학, 철학, 수학, 화학 등을 공부하기도 하였다. 그중 대표적인 학자가 바로 피보나치.
특히 상류층이 지식 추구를 주도했는데, 대표적으로 칼리파 알 마문은 정확한 지구 둘레 측정을 위해 에라토스테네스의 실험을 이라크 북부 신자르의 사막에서 재현하기도 하였다. 이때 측정된 지구 원주는 16세기 전까지 가장 정확한 측정값이었다. 다만 이에 대해 후대의 석학 알 비루니가 자신의 저서에서 지구의 원주를 재려고 발품을 팔 필요가 없다고 빈정거릴 정도로 수학과 천문학은 특히 발전되어 있었다.[133] 애초에 단순히 정확한 기도 시간과 라마단 기간, 메카 방향 측정 등 지극히 종교적 목적에서 비롯된 수학천문학은 이슬람 과학의 중심으로 자리잡았다.
이슬람권의 대도시의 대모스크 주변은 마드라사 (대학), 비마리스탄 (병원), 마크타브 (도서관) 등의 공공 시설이 세워져 복합단지를 이루었다. 그중 비마리스탄에서는 종교와 민족, 성별, 나이, 직업을 불문하고 누구나 '''무상으로''' 의료를 제공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보편적 복지는 재력가나 권력자들이 기금을 투자한 와크프 (재단)에 의해 정부와는 별개로 가능하였다.
그 외에 시칠리아 왕국의 로제르 2세의 부탁으로 제작된 알 이드리시 지도도 이슬람 지리학의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고 그 지식은 바닷길을 통해 조선의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도 영향을 주었다. 칠정산 역시 이슬람 천문학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 15세기 르네상스 이전까지 유럽에 존재하던 거의 모든 의학서 역시 이슬람권의 서적들을 아랍어로 번역한 것에 불과하였으며, 서유럽의 과학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갈릴레오 갈릴레이 이후에야 이슬람 학문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르네상스 외에도 알 이드리시 지도 등에 나타난 인도양의 개념은 서구의 대항해시대 개막에 영향을 주었다. 기존 프톨레마이오스 지도에 따라 아프리카와 남극이 이어져 인도양이 지중해 형태인줄 알았던 유럽인들이 아프리카를 돌아가면 인도에 닿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 과학자 알 비루니 (973 ~ 1048년), 대수학을 집대성한 우마르 하이얌 (1048 ~ 1131년)과 기야스딘 하산, 신학자 겸 천문학자 나시룻딘 투시[134] (1201 ~ 1274년), 아리스토텔레스 연구가 알 파라비, 신학자 알 아시리 등이 활약하였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기를 거치면서 유럽이 종교에서 벗어나 점차 각성하기 시작한 반면, 아랍 지역은 중세 후기 '''십자군 전쟁과 몽골의 침입 등으로 큰 고난을 겪고 사막화로 인한 식량 생산 감소로 인한 경제 침체와 인구 감소를 겪기 시작하면서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국가 주도로 이루어진 대규모 번역 사업 및 학술 연구 지원도 점점 줄어들었다. 즉 유럽은 11세기 이후로 나름 평화를 유지하며 농업이 부흥하고 인구가 증가하며 상공업과 학문이 부흥하기 시작하는 등 각성이 시작되었지만 이슬람권은 11세기에 튀르크, 12세기에 프랑크 (십자군), 13세기에 몽골 등의 민족 이동 및 침략을 겪으며 보수화된 것이다. 몽골군에 의한 바그다드 함락은 알 무스타심 문서 참고.
실제로 몽골의 침공이 이슬람 근본주의의 뿌리가 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아바스 왕조의 탄압으로 사실상 절멸되었던 한발리파 이슬람이 13세기 말엽 이븐 타이미야에 의해 되살아난 것이 후대 이슬람 근본주의로 이어졌는데, 그 이븐 타이미야는 몽골의 학살을 겪은 하란에서 태어나 시리아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몽골의 침공으로 전체 다르 알 이슬람 (이슬람권)의 절반 이상을 짖밟힌 후 기존 사회가 잘못되었기에 천벌을 받은 것이라 생각하는 사조가 유행하였다. 이슬람 근본주의는 이러한 시류를 타며 지도자들이 부패하였고 율법을 지키지 않았기에 이슬람이 수축되는 것이라며, 초기 이슬람으로 돌아가자는 살라피즘(하디스에 명시된 무함마드 언행 그대로 생활 양식과 가치관을 복고해야 한다는 주장 및 사상, 무함마드 생존 당시에는 이슬람 엄마가 제정일치였던 상황이었으므로 살라피즘은 제정일치, 신정 정치 옹호로 귀결된다.)을 제시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슬람화 당시 이미 300여년의 전통을 이어오던 지중해 세계의 기독교 문화는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알 안달루스에선 11세기까지 주민의 절반 가까이가 가톨릭 신자였고 레콘키스타와 함께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기독교세가 약했던 마그렙 지방도 12세기까지 교회 공동체가 있었고 수단 지역에서도 16세기까지 유지되었다. 15세기 이집트는 여전히 인구의 절반이 기독교도였고 이라크 북부, 레바논, 시리아와 함께 지금도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지속적인 탄압 속에서도 끈기있게 버티며 기독교 공동체가 남아있다.
5.3. 근대~현대의 이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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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나의 그림자)
근대 이후 과학적, 사회적 발전은 전부 기독교적 가치관(성서무오설 등)을 극복하고 인간의 이성적 사고를 중요시했던 서구 중심으로 일어났기에 새로운 가치관들과 분쟁은 많아 보여도 과학적 사고와 이성적 토론을 통하여 상호간의 합의점을 나름이나마 밟아가고 있다. 반면 종교 중심적 사고를 유지하고 있는 이슬람 사회의 경우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과정을 통하여 나온 가치관들은 그들의 종교적 가치관과는 전혀 다른 근본에서 나온 것들이기에 배척하기가 훨씬 더 쉽고, 바로 이러한 점들 때문에 이와 관련한 교리적인 발전은 기타 서구 종교들에 비해 한참 미진하다고 볼 수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19세기 등장한 근대화 운동인 이슬람 모더니즘이 오일 머니를 지원을 등에 업은 이슬람 근본주의 선교에 밀려 비주류로 밀려난 것을 들 수 있다.
악마의 시나 무슬림의 순진함 같은 반이슬람 문화 매체의 경우는 노골적으로 감독의 신성모독 의도가 엿보이는 부분이 있었지만, 그동안 타 종교들이 신성모독적인 매체에 보인 태도와는 격이 다른 반응을 보여주었다. 현대사회에서 종교라는 권위가 약해지고, 풍자의 대상이 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면도 있지만, 그러한 풍자화는 기독교든, 불교든, 이슬람이든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보다 유연한 적응이 필요해보인다. 웬만해선 타종교인들은 종교 비판/왜곡, 풍자 매체에 반대할망정 폭동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일부 진보적 무슬림(이른바 이슬람 자유주의)들은 이런 현대 사회와 교리 사이의 모순점을 풀기 위해서 노력을 하기도 하는데, 이중에는 쿠란을 ''''신의 말씀 그 자체''''가 아니라 '무함마드가 신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전달하기 위해 쓴 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논리도 생겼다. 이 논리는 무함마드는 예언자로 선택될 만큼 비범한 인물이긴 했지만 '''어쨌든 인간이라서''' 신의 말씀을 완벽하게 인간들에게 전달하는 것은 버거운 일이었고, 그렇기에 신의 말씀을 그 당시 사람들에게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쿠란을 썼다는 것이다. 그러니 쿠란은 신의 말씀 그 자체라기 보다 그 당시 사람들에게 제대로 받아들여질 만한 신의 말씀의 '번역본'같은 셈이므로 세월이 꽤 지난 현대 사회에서는 당연히 모순점이 생길 수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이론도 가장 기초적인 신에 대한 자세 등에서 딴지를 걸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이론에 따르면 주요 종교 교리, 그러니까 과거부터 내려온 종교법이 현대 사회와 안 맞을 수 있으니 현실에 맞게 재해석 해도 괜찮지 않냐...는 것이다.
허나 이 사고방식은 아직 완전하지 않으며 진보적 무슬림들과 '''보편적인 무슬림들''' 세계에서 논란이 될 만한 문제를 안고 있다. 왜냐하면 무함마드 이전에 신의 말씀을 전한 이사(=예수) 등의 예언자들이 있었는데도 또다시 무함마드와 쿠란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그 전에 전해진 ''''말씀'들이 온전하게 전해지지 않고 왜곡 변형되어 버렸기 때문'''이라는 식이면 쿠란도 상황에 따라 마음대로 자의적으로 해석해도 되거나 쿠란 자체가 원래 온전하게 전해진 신의 말씀이 아니라는 주장이 이슬람의 정체성 자체를 뒤흔들게 되는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주류가 아닐 수밖에 없다. 영국의 Quilliam Foundation만 해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과 테러리스트들의 이슬람 교리 해석을 반박하고 도덕적으로 옳고 진보적인 해석을 제공함으로써 "사상적으로 극단주의를 몰아낸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 단체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상당수 영국 무슬림들로부터 무시 또는 비난을 당하고 있는 처지이다. 창립자인 마지드 나와즈는 저널리스트 무르타자 후세인으로부터 베란다 원숭이(porch monkey; 미국 흑인을 상대로 한 멸칭)라고 불리기까지 했다.
이슬람 근본주의가 창궐하기 시작한 것은 근대 무렵부터다. 실제로 와하브파를 창시한 '''무함마드 빈 압드 알 와하브'''부터가 18세기 사람이고, 이슬람주의에서 중요한 이념가들인 사이트 쿠틉이나 아불알라 마우두디 등은 아예 20세기 사람이다. 따라서 ''''근대적 이슬람''''은 긍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IS같은 놈들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밀어주는 막장스런 와하비 이슬람도 비교적 근대적인 현상이다. 전통적 이슬람이라 칭해지는 것들이 오히려 온건한 편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비판도 있다. 전통적 이슬람이 온건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칫하면 이슬람의 전통적 교리에 대한 비판을 희석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슬람 초창기에는 신도 상당수가 유목민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전쟁에 관련한 계시가 많을 수 밖에 없었다. '''쿠란/논란'''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교도에 대한 살인을 직접적으로 명하는 구절이 있다. 이를 볼 때 전통적 이슬람과 근대 이슬람을 애써 구분하고 옛날은 더 좋았지라고 너무도 간단하게 생각해버리는 것은 큰 착각이다.
교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전통적 이슬람과 근대 이슬람 간에 흐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교리 자체에 있는 전근대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물론 이쪽에 대해선 전통적인 교리야 애초에 현대적인 가치관이 세워지기 전에 만들어진 교리였다는 것을 일단 감안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과거에는 이러한 교리들이 시대 상황에 맞추어 유연하게 적용되기도 하였으나, 현대에 득세하는 극단주의적 흐름에선 오히려 변화한 시대에 비해 교리의 해석은 교조적으로 변하고, 해석의 흐름도 시대에 역행하는 흐름을 띄게 되었다는 게 문제라고 할 수도 있다.
즉, 이것이 극단적이고도 악의적인 집단들이 코란을 왜곡시켜 본래 선의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코란이 오히려 자신들이 싫어하는 성경보다 더 좋지 않은 책으로도 바뀔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슬람이 스스로 이것을 개혁하거나 코란을 정비해 틀을 맞추어 더 이상 고치지 말라고 선을 긋지 않으면 앞으로 이슬람권 국가는 혼란이 지속되고 주변 국가 사람들은 이슬람권 국가를 비롯한 타국에 거주하는 이슬람교 사람들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바뀌지 않는 등의 이것은 그들의 스스로의 과제로 남겨져 있다.[135][136]
현대 사회를 위협하는 테러리즘 조직으로 잘 알려져 있고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4개 조직인 ISIL, 보코 하람, 탈레반, 알 카에다는 모두 이슬람 계통이라는 점에서 현대 이슬람이 처한 근본주의의 암울한 현실을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6. 이슬람 근본주의
사전상 정의는 이슬람 극단주의와는 다르다. 이슬람 극단주의는 이슬람 근본주의를 바탕으로 범죄 행각을 정당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7. 다른 문화권/종교와의 관계
8. 역사
8.1. 이슬람주의
현대 레닌주의와 근본주의 기독교에 영향을 받아[137] 파생된 정치 사상 이슬람주의는 민주주의를 숙주로 삼아 이슬람을 선교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기 때문에, 종교의 자유가 보장받고 번창한 나라들에서는 문화 갈등이 여러모로 심각하다.
신원확인 등을 요구해야 하는 자리에서도 니캅 등을 벗지 않는다든가, 프랑스에서의 부르키니 논란, 여성할례를 인권탄압이라고 금지시키니 방학을 이용해 이슬람권 나라로 자녀를 데리고 가서 바득바득 할례시키고 온다든가, 종교적 명예살인 행위가 엄연히 불법인 나라에서 전혀 서슴치 않고 '''태연히 가족 살해를 저지름으로서''' 강력범죄사건을 뻔뻔하게 일으키는 등 거주국가내의 이슬람 근본주의자들과 세속주의 무슬림 및 비 무슬림들과의 마찰이 지역을 가리지 않고 대단히 심각하다.
과거 보슈냐크인과 알바니아인이 대거 서구 사회에 유입되었을 당시에는 이들은 교육 수준이 유럽 내 다른 국가와 비슷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었지만, '''이슬람주의 성향의''' 이집트,시리아 '''난민을 대량으로 받아들이면서 문제가 달라졌다. 이들 중 상당수가 군사독재정권의 우민화 & 이슬람주의 특유의 반지성주의적 가치관의 영향으로 문맹도 많았고 대다수가 사회경제적 무능력자들이었다.''' 이들 때문에 문제 없이 거주하던 동구권 출신 무슬림들이나 정상적인 무슬림 이민자 2~3세대들도 안 좋은 취급을 받거나[138] ,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좋은 활동핑계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에 유럽 각국 정부가 골머리를 썩히고 있다.
시리아와 이란에서 망명해 온 무슬림 가운데에서는 '''난민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즉 '''체류권을 유지하기 위해''') 기독교로 개종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네덜란드에 유학이나 관광 비자(...)로 입국한 이란인 상당수가 뜬금없이 대부분 네덜란드에서 기독교로 개종하는 상황이 벌어져 뉴스에 여러차례 나오기도 했다. 관련 기사에서 "'''일부 개종은 종교적 이유에 의한 것이 아니기는 하지만 내가 세례를 줬던 사람들은 근 100% 난민 승인을 받았다'''"는 목사들의 증언도 이를 반증한다.
유럽으로 피난 온 오리엔트 정교회 역시 신자 확보를 하려고 이슬람 국가에서 못하던 선교를[139] 유럽에 피난 온 난민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개종이 난민 승인을 얻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지만 '''난민 인정이 쉽게 나오는 배경은 이슬람이 (배교자나 개종자를)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는 관련자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섬뜩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씁쓸해지기도 하는 이야기. 아얀 히르시 알리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여담으로, 배교에 따른 처벌 혹은 사적 제재를 피하기 위해 무슬림들은 기독교로 개종할 경우(혹은 시아파가 순니파로 개종할 경우) 가장의 결정에 따라 가족 전체가 집단 개종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문에 무슬림 개인이 서구에서 가족들을 버리고 혼자 기독교로 개종했다 하는 경우는 진짜 개종이 아닌 비자를 연장하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이 이슬람계 내외에서 있어 왔다. 개인주의 문화가 약한 이슬람 사회 특성상 개인이 혼자 이슬람을 배교하는 행위는 드물기 때문이다.
서구 사회 내 이슬람주의 단체는 걸프 아랍 국가의 선교 자금을 받으면서 세력을 키우는 반면, 서구 사회의 세속주의 성향의 무슬림들은 이슬람주의자들과 이슬람 혐오 세력 양자의 공격을 동시에 받는 참담한 상황이다. 평소에 직접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서 같은 어려운 난민을 도와주는 무슬림은 정작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서구 시민 단체나 근본주의 선교단체의 지원을 잘 받지 못하는 반면, 평소에는 난잡한 생활을 즐기는 사람들이 기회주의적으로 이슬람주의를 기반으로 성금을 타내고 자신들도 소수자인 처지임에도 불구 다른 소수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히잡 쓰지 않은 무슬림 여성을 대상으로 성폭력을 저지른 남성을 이슬람주의 단체에서 '히잡 안 썼으니 성폭행 당한 것은 피해자 잘못'이라며 비호하는 일은 흔해서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다.
씁쓸하게도 아프가니스탄이나 시리아 난민캠프에 소수 종파(하자라족,야지디 등등)나 기독교인(시리아 정교회 등등)들이 살인, 강간 등 범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고 한다. # 난민 개종자 및 종교적 소수자들에 대한 극단주의자들의 범죄는 유럽에 반이슬람, 반난민 정서를 가져와 결국엔 난민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
9. 이슬람 국가들의 특징
이란이나 사우디 같은 이슬람의 종교법(샤리아)이 매우 엄격한 나라는 맥심 같은 여성의 살이 많이 드러난 잡지는 반입이 불가능하다.
#티슈박스의 황당한 이슬람 국가의 검열
굳이 가지고 들어가려면 불가능한 건 아닌데 공항 세관에서 유성매직을 덧칠해 맥심의 여성들과 만화의 여성캐릭터에게 이란의 경우에는 차도르를 입히거나 머리에 루씨리를 쓰게 해서 머리를 가리게 하고,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는 몸에는 아바야를 입히고 얼굴엔 니캅을 씌워서 눈만 나오게 한 다음에 가지고 갈 수가 있다. 경험자의 말로는 이란에 '''러브히나 전권을 가지고 갔다가 세관원이 한시간 동안 유성매직으로 모든 여성 캐릭터들을 전통 이슬람풍 여인으로 만들어 버리는 걸 봐야만 했다'''고.(...)
술이 몽땅 금지되어 있을 것 같지만 모든 나라가 그런 것은 아니다. 쿠란의 해석에 따라 술이 완전 금지인지, 부분적인 금지인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 엄격한 한발리파의 경우 소독용 알콜조차도 금지하지만, 이외의 학파들은 술을 마시되 취하진 말라는 쪽과 금지(하람)하는 쪽 등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7~8세기 아랍에서조차도 포도주를 금지하는 대신 대추야자를 발효시켜 만든 술은 허용했고[140] 유목민 무슬림들도 양젖이나 염소젖을 발효시킨 술을 즐겨마셨다.
사실 유목민들에게 낙타나 양, 염소의 젖으로 만든 술을 금지하는 건 이슬람에 대한 반발만 일으킬 미친 짓이었다. 사막에서 물을 구하기 어려운 유목민들에게 가축젖은 물이나 다름 없었지만 보관이 어려웠기 때문에 장기 보관을 위한 발효주는 필수품이었으므로 이걸 금지한다는 건 종교를 넘어 생존 문제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141] 또 평시에는 술을 금지하지만, 마실 물이 없어 죽을 상황이라면 아무 술이나 허용했다. 이는 자살을 가장 엄격하게 금지하는 이슬람에서 죽는 것보다는 술이라도 마시고 살아난 다음 나중에 신에게 사과하는게 낫다고 여겼기 때문이다.[142]
유럽의 무슬림들은 포도주든 맥주든 잘 마시며, 북아프리카에서도 많이 마신다. 중앙아시아 역시 술을 잘 마신다. 술에 가장 엄격한 나라로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있다. 여긴 심지어 술을 마신다는 신고가 들어오면 무트와라는 종교경찰이 출동하여 주사기로 피를 뽑아 피 속에 들어있는 알콜까지 적발해낸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이 나라 부자들은 비행기타고 이웃나라 바레인이나 요르단, 혹은 이집트나 모로코, 튀니지처럼 술 판매를 허용하고 있는 이슬람, 아랍권 나라로 여행가서 실컷 마시고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바레인의 경우 오죽하면 술에 대하여 보수적인 카타르가 영토 문제를 두고 갈등이 큰 이웃 바레인을 씹을 때도 술이 자원인 나라라 하고, 알 자지라까지도 바레인에 와서 술마시는 사우디 왕족들이나 부유층을 몰카로 찍으면서 대놓고 "뭐? 이래놓고 자국에서 와하비즘이라고 으스대냐?"라고 비웃듯이 비난하는 통에 바레인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난리가 났던 적까지 있다. 더불어 사우디아라비아 서민들도 몰래 온갖 과일을 발효시켜 만드는 토종술을 대대로 전수하며 밀주를 만들어 몰래 실컷 즐긴다. 하지만 이런 경우까지 술 마신다고 대대적으로 경찰이 집을 뒤엎을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다만, 외국인 선교사들을 잡고자 할 때 종종 술이 있다는 이유로 무트와를 동원하여 억지 명분을 만든다고 한다.
또한 이라크나 시리아, 레바논처럼 기독교인들이랑 여러 종교 가진 사람들이 섞여 사는 경우에는, '''비무슬림'''에 한해서 주류 판매와 음주가 가능하다. 물론 이라크와 시리아는 이라크 전쟁, 시리아 내전 이후 현재 이슬람 원리주의가 득세하는 판에 예전 같지는 않지만...동남아시아의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143] 와 말레이시아의 경우 비르 빈땅[144] 과 앵커[145] 와 같은 자국산 맥주 브랜드가 큼직하게 자리잡고 있고 내외국인 가릴 것 없이 술을 마시는데 별다른 제제가 없다.[146] 유럽 대륙에서 유이한 이슬람 국가인 보스니아와 알바니아 역시 코사차나 티라나, 사라예브스코 같은 자국산 맥주들을 제조, 판매하고 있으며, 또 다른 이슬람 국가인 터키나 요르단, 튀니지, 알제리, 이집트, 모로코에서도 자국내에서 맥주나 포도주 등을 만들어 식당이나 마트 등지에서 판매하고 있는데 튀니지나 알제리, 모로코에서는 아예 양조용 포도와 포도주를 재배, 생산하는 포도 농장들도 있으며 아예 포도주뿐만 아니라 셀티아나 탄구, 스페샬레 플레그, 카사블랑카 같은 자국산 맥주도 있다. 이집트의 경우도 사카라나 룩소르, 스텔라 같은 자국산 맥주가 있고, 요르단은 페트라와 필라델피아, 카라케일이라는 자국산 라거 맥주와 에일 맥주를 생산, 판매하고 있으며 네덜란드의 암스텔 맥주도 면허생산하고 있다. 터키같은 경우 에페스와 마르마라, 보몬티가 꽤 유명한 맥주다. 그리고 터키인들은 고유술인 라크를 즐겨 마시기도 하고 각 지방 고유술도 은근히 자주 마시는 전통이 이어져오며 술에 대해선 꽤나 개방적인 곳이다. 터키 사진작가인 아리프 아쉬츠가 한국에서 1년 동안 지내면서 먹어본 것 가운데 가장 터키인들에게 입맛에 맞는 걸로 추천하던 게 바로 복분자술이었단다. 무슬림인 자신이 한국에 와서 소주나 막걸리, 청주, 복분자 등 다양하게 마시는 걸 보고 한국 사람들은 이상하게 보는데 터키에선 취하고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한 이렇게 마시는 자체를 금기시하지 않는다고 썼다.[147]
이란의 호메이니도 각 지방술을 취하지 않게 몰래 마시는 건 봐주도록 지시해서 서북부 산지로 가면 온갖 산열매로 발효시켜 만든 고유 술제조법을 대를 이어 전수하고 있으며 유목민들도 양이나 염소젖을 발효시킨 술을 자주 마신다.
외국인에게 판매가 허용된다 하더라도 술이 떡이 되어서 냄새 풍기며 돌아다니면 종교 경찰이 경찰서로 끌고 가니 조심할 것. 사실 국내인들도 "전혀" 안 마시지는 않는다. 어차피 거기도 다 사람 사는 동네다. 가볍게 몇 잔을 마시는 정도를 문제삼지는 않으며 취한다고 해도 조용하게 집에서 취하여 잠을 자는 것까지 뭐라고 안한다. 그러나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종교적으로 잘못된 문제는 서스름없이 위아래 상관없이 지적하는 문화 때문에 본인이 술을 좋아한다 하더라도 접대를 받는 자리에 신자가 둘 이상이 있는 경우에는 서로 눈치를 보며 안 마시는 경우가 많다.
관습법적으로 술 마시는 것이 비교적 자유로운 나라들에서도 적어도 모스크 근처에 위치한 식당, 상점에서는 술을 취급하지 않는다. 터키의 경우 술을 마시려면 대형마트에 가서 사오거나 아니면 술집에서 마셔야 한다. 동네 슈퍼에서 팔기도 하지만 술 판매 허가를 받은 상점에서만 구입할 수 있고(터키어로 TEKEL BAYİİ라고 쓰여있거나 담배, 술 광고가 붙어있다), 이때는 주위사람들의 시선 때문인지 항상 검은 봉지에 담아준다. 하지만 모스크 뒤에 위치한 식당에서 맥주(Efes라는 유명 터키 맥주 브랜드)가 있냐고 묻자, 조용히 들어오라 하더니 머그잔에 맥주를 몰래 담아주기도 한다.
술을 강력하게 금지한다는 사우디아라비아조차도 잘 사는 부자들과 상류층들이 술판매, 음주를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다른 아랍 나라들인 바레인이나 모로코, 이집트, 요르단으로 여행 가서 신나게 맥주, 와인 등 술들 마시고 술 깬 다음에 다시 돌아오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돈없는 사우디아라비아 젊은이들은 술 대신 향수를 마시다가 죽는 경우까지 있을 정도(...).
돈놀이를 금하는 이슬람 교리 특성상 공식적으로는 채무에 대한 이자를 금지하고 있으나, 과거부터 샤리아 상의 여러가지 편법을 통해 사실상 금융거래 상 이자가 성립한다.[148][149] 가장 흔한 방식으로는 만기일을 엄청 짧게 설정해두고 '이자'가 아닌 '벌금' 명목으로 돈을 받는 것이며, 예금에 대한 이자를 받는 대신 투자라는 형식으로 돈을 맡기고 이익을 배당받기도 한다. 심한 경우 고리대를 빌린 벌금을 채무자에게만 전가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쨌든 교리를 지키면서도 현대적 금융업무를 해결하려는 이슬람 금융은 상당히 흥미로운 모델이며, 21세기 들어서는 해외 투자가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10. 무슬림의 출산율
이슬람에서의 여성은 남편에게 성적인 만족을 주는 동시에 자녀를 많이 낳을 것을 권장한다. 무함마드는 자손을 번성하게 하여 이슬람의 세력을 확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건 성경에서도 자손을 번성케 하라며 나오는 말이고 영아 사망률도 높았던 시절인지라 아이를 많이 낳아야 한다는것이 보편적인 생각이었다. 당장 한국만 해도 1970년대 중반 이전에는 아이 5명은 기본으로 낳았을 정도로 많이 낳았고, 불교권이나 기독교권 국가라고 해도 아이들로 축구단을 만들 정도로 많이 낳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었으며 저출산 현상 자체가 비교적 근세기의 일에 벌어진 일이다.
무슬림 인구가 많은 나라들은 출산률이 높아서 인구감소를 겪는 일이 없다시피한 건 사실이다. 되려 '''인구가 넘쳐나서 문제인 나라가 태반이다.''' 전근대에는 높은 출산율에도 농경지가 별로 없어서 인구가 너무 적어서 난리인 곳이었는데 이제는 상황이 정 반대다. 이슬람 아랍 동맹 최다 인구 나라인 이집트만 봐도 20세기초 1,500만 수준이던 인구가 지금은 8,000만 이상으로 늘어나 있다. 이처럼 이슬람권 나라 상당수가 100년 사이에 인구가 3~6배나 늘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이 유럽 난민 사태와 관련되어 나온 용어가 유라비아다.
그 원인으로는 오일머니로 때운 인프라 확충과, 의학의 발전과 더불어 영아사망률이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는 점도 있지만 이슬람 국가와 국민들이 하나같이 보수적이라서 피임이나 낙태같은 것을 결사적으로 거부하는 이유도 크다고 한다. 물론 이것도 모든 국가들이 그런 게 아니고 탈레반 시절의 아프가니스탄 같은 극단적인 국가가 아닌 이상 낙태를 어느 정도 금기시하는 성향은 있으나 꾸란과 하디스에 구체적으로 명시된 건 아니라서 피임은 용인하는 경우가 다반수다. 그런데 정작 이집트에선 콘돔을 그냥 나눠주면서까지 인구 증가율을 줄이고자 했으나, '''나눠주던 공무원들이 사람들에게 돌팔매질까지 당해서 아예 저런 계획을 없애버렸을 정도다.'''
이미 천주교와 더불어 이슬람 순니파가 12억 인구를 넘어 '''세계 2위의 종파'''가 된지 오래이며 빠른 인구증가률을 가진 인도 힌두교[150] 와 더불어 10억 신도가 넘는 거대 3대 종교 종파가 될 전망이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인구 증가세가 떨어지고 있는 추세인데 알바니아,[151] 이란[152] 처럼 출산율이 1명대로 떨어진 국가도 등장했고 '''사우디아라비아''', 알제리, 우즈베키스탄, 터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모로코, 튀니지 등의 주요 이슬람 국가에서도 출산율이 2명대로 떨어졌다, 하지만 알제리는 최근 출산율이 급증하면서 3명대가 되었다. 이슬람 국가들의 출산율이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는것도 편견이다.
그리고 높은 출산국으로 손꼽히던 이라크, 예멘,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은 감소세다.[153]
그러니까 무슬림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쑴풍쑴풍 낳아제끼기만 하는 것은 이제는 아니라는 의미다. 사실 출산율이 낮아지는것은 한국을 비롯한 타 국가들도 마찬가지였지만 무슬림이 다수란 국가라해도 예외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동안의 인구증가세가 엄청났었던데다가 출산율이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해도 아직까지는 인구 증가세는 여전하다.
애석하게도 위의 인구 강점은, 터키나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처럼 공업화에 어느 정도 성공한 나라에 한정한다. 그외 상당수 무슬림 국가의 국민성과 삶의 질은 여전히 중세시대 수준을 벗어나고 있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정치는 너무 썩어 공화정인 국가들도 부정부패와 독재가 일상다반사이며, 왕정인 국가, 특히 걸프 연안국 같은 곳은 말할 필요도 없이 막장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로 인해 인구 많아봐야 국가에 큰 도움도 안되고 그저 가난의 대물림만 지속되는 현실이다. 물론 이점은 다른 제3세계 나라들 역시 공유하는 문제이긴 하지만 이슬람 국가들은 별다른 산업이 없다보니 그 정도가 더 심하다.
단적인 예로 석유 펑펑 나와 돈이 넘쳐나는 사우디는 그 부를 소수의 왕족들이 점유하여 향락과 사치로 일관하며, 정권 유지 차원을 위해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금전 지원을 국민들에게 할 뿐이며, 국민들은 그 돈 받고 그냥 하루하루 처묵처묵하는 노예로 살며 만족하고 있다. 그리고 사우디의 석유 시추와 정재를 위해 짓는 모든 공사 현장 노동자는 외노자들로 채우고 있는 실정이다. 외국인 노동자들보다 더 높은 급여를 약속해도 사우디 현지인들이 일들을 안한다. 결국 인구 많아봐야 잉여에 불과할 뿐이다.(...) 2013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선 이걸 바꾸고자 대대적인 외노자 추방을 선언했다. 그런데 에티오피아 노동자들이 아예 폭동까지 일으켜 정부군이 출동하여 총살도 저지를 정도로 엉망이 되었다. 이는 사우디뿐만 아니라 석유가 나는 다른 이슬람 국가들도 똑같은 문제다.[154]
아무튼 '이슬람=무조건 출산율이 높다'는 주장은 아직까지는 검증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역시 본격적인 경제발전을 이루는 70년대까지는 출산율이 매우 높은 편이었고,[155] 심지어는 당시에도 선진국으로 분류됐던 일본이나 유럽 국가 역시 대체출산율 2배를 웃도는 출산율을 가지고 있었던 적이 있었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소득 수준이 일정량 이상 도달하면 출산율이 감소한다. 그러나 아직 이슬람 국가들 중에 정상적인 방법으로 선진국의 문턱에 도달했다고 할 만한 나라는 없다. 대부분의 중동 부국들은 원자재의 수출로만 경제가 돌아가기 때문에 부가 심하게 편중되어 있다.
따라서 현재 충실한 경제 발전 과정을 밟고 있는 터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의 국가들이 소득이 선진국에 근접한다면 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이 세 국가들 중에서도 여전히 이슬람을 국교로 선택하고 있고, 중동보다야 덜하지만 아직 종교가 삶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편인 말레이시아의 출산율 추이가 중요할 것이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터키의 출산율은 대체적으로 2명대 초 정도라 프랑스, 미국의 출산율과는 그리 큰 차이는 나지 않는 편이긴 한데, 터키와 인도네시아의 경우 200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계속 2.1~3명대를 왔다갔다 하며 유럽 국가들과 같은 급격한 출산율 저하가 일어나지 않았고, 말레이시아의 경우 겉으로는 출산율이 2.1명이라지만 무슬림인 말레이인과 비무슬림인 화교, 인도인의 출산율 격차가 엄청나다.[156] 한편 일시적 현상인지는 지켜봐야겠지만, 터키 중앙 통계국에 따르면 2018년 터키의 합계 출산율이 드디어 1명대(1.99명)에 진입했다고 한다.[157]
11. 이슬람=아랍=중동?
'''가장 흔하게 오해하는 부분. 흔히 이슬람 문화와 아랍문화, 중동문화권을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큰 잘못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흔히 아랍, 중동 국가들을 가리킬 때 이슬람권이라고 하지만 정반대로 유럽이나 미국, 캐나다, 중남미 등을 기독교권이라고는 하지 않는데, 유독 이슬람을 믿는 국가들에게는 중동, 동남아시아 등으로 표현하지 않고 그렇게 쓰는 경우가 많다.
11.1. 이슬람: 종교적 구분
흔히 무슬림이라고 여기는 아랍인들의 총 인구는 3억인데 비해 전체 무슬림 인구는 '''18억'''이나 된다. 즉, "이슬람 = 아랍인들이나 믿는 종교"라는 고정관념은 "기독교 = 서양사람들이나 믿는 종교"라는 인식만큼이나 잘못된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서구뿐만 아니라 제3세계 지역에도 널리 퍼져 있고 비서구 지역의 신자들이 더 많은 것처럼 이슬람의 경우에도 오히려 비아랍권 신자들의 수가 더 많다. 터키(튀르크계), 이란(페르시아인) 사람들은 중동 지역은 맞지만 아랍인들이 아니고, 팔레스타인인들은 사는 곳도 중동이고 언어·문화적으로도 아랍인으로 분류되지만 정작 자신들은 아랍인 정체성보다 팔레스타인인 정체성을 더 강조하며[158] , 아프리카의 흑인들이나 필리핀 민다나오 섬의 무슬림 필리핀인들, 말레이시아·싱가포르·브루나이의 말레이인들, 이슬람교가 주류인 국가들 중 가장 인구가 많은 인도네시아의 인도네시아인 무슬림들, 파키스탄·방글라데시·인도의 남아시아인 역시 아랍인이 아니다. 아프리카 흑인이 다수를 이루고 있는 국가들 중에서도 무슬림이 다수인 나라가 많다.[159]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알바니아는 유럽의 발칸 반도 지역이다.
11.2. 아랍: 언어적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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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어를 쓰는 국가들(녹색은 유일한 공용어, 짙은 파란색은 주류 공용어, 옅은 파란색은 비주류 공용어). 이중에서도 아랍 민족이 대다수인 국가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반대로 아랍인이 다 무슬림인 것도 아닌데, 보통 아랍인 중에 기독교 신자가 3천만명 가량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주로 이집트, 시리아, 레바논에 집중되어 있다) 콥트 교회, 시리아 정교회, 아시리아 동방교회, 마론파, 칼데아 가톨릭 등의 문서 참고. 이들은 아랍어로 예배를 드리고 하느님을 알라로 부르며 기도한다. 가톨릭이나 정교회에서는 이단시되었던 비 칼케돈 계열 교회들도 아랍국가들에서 볼 수 있다. 가장 교세가 큰 콥트 교회의 경우 이집트 인구의 10퍼센트 정도를 차지한다. 1억에 가까운 이집트 인구를 생각하면 얼마나 큰 규모인지 알 수 있다. 아랍 세계의 그리스도교도 수를 모두 합하면 대략 3천만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레바논은 아랍국가인데도 무려 인구의 40% 가량이 기독교를 믿으며, 대통령과 참모총장은 마론파 기독교도, 국회부의장과 부총리는 정교회 교도에게 주어진다. 의회도 절반은 기독교도 의원들이 차지. 시리아도 군인의 상당 수가 기독교도이며, 내전 이전에는 인구 2200만 중 400만 이상이 기독교도였다. 아랍계 기독교인 문서 참고.
11.3. 중동: 지역적 구분
또 이슬람과 중동 문명권을 등치시키는 것도 잘못된 인식인데 이슬람이 주류인 국가들 중 최다 신자 국가는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인도네시아이다. 이슬람은 민족종교가 아니라 전세계에 분포한 보편종교이므로 무슬림을 보고 무조건 아랍인, 중동 사람일 것이라 판단하는 것은 금물. 게다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알바니아, 코소보 등 유럽 국가이면서도 무슬림들이 다수인 나라도 있다. 그 외 코카서스 3국(대부분이 정교권 지역)중 하나인 아제르바이잔은 무슬림(시아파)들이 다수다. 또 다른 유럽의 여러 국가들 중에서도 적은 비율이긴 하지만 20세기 들어 이슬람 이민자들의 유입으로 생겨난 것이 아닌 그 전 시대에 이슬람으로 개종해서 생겨난 무슬림들도 있다. 이들은 20세기 이후 증가한 이슬람 이민자들의 유입으로 무슬림들이 많아진 프랑스 같은 나라와 다르게 원래부터 역사적으로 이슬람 국가와의 접촉으로 이슬람이 꽤 오랜 전통 종교로 자리잡고 있었다.
아래 표는 2011년 1월 기준 무슬림이 가장 많은 상위 10개 국가의 목록이다.
보다시피 1억을 넘는 1-4위 국가를 포함해서 상위 10개국 중 7개가 비아랍 국가이며 비중동 국가도 중동의 정의에 따라 달라지지만 4~7개나 된다.
11.4. 원인
서구, 동아시아의 주류매체들이 무슬림을 보도할 때 전 세계가 아닌 터키, 팔레스타인,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라크,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리비아, 파키스탄, 이집트, 예멘 같은 짙은 피부의 코카소이드 인종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을 주로 취재했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공통적으로 서구권이 추진하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과 연관된 곳이고 할리우드가 퍼트리고 있는 전형적인 아랍 무슬림의 외양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미국, 유럽, 동아시아인들은 터키인, 아랍인, 이란인, 파키스탄인들이 금발벽안의 유럽인들에 비해 공통적으로 흑발흑안이고 짙은 피부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똑같은 민족'''으로 착각할 정도이다.
그런데 무슬림들은 서구권 언론 매스컴에서도 자주 나오는 이라크나 시리아, 사우디, 이집트 같은 아랍권 주요 국가들처럼 흑발흑안의 코카소이드 인종 계열이 주류인 모로코, 튀니지, 알제리, 요르단, 오만, 쿠웨이트, 아제르바이잔같은 국가들도 그렇고 금발벽안이 있는 보스니아와 알바니아, 러시아[160] 황인종인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흑인종인 아프리카 니제르, 수단, 차드, 말리, 세네갈, 나이지리아, 소말리아, 지부티 같은 국가들에도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들 국가들은 주류언론에 잘 보도가 안되고 있고 다큐멘터리 등지에서만 주로 알리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인지도가 낮은 편이다.
이에 반해 기독교는 발상지가 인종이 흑발흑안의 코카소이드인 팔레스타인이었지만 인종이 각각 전혀 다른 유럽, 아메리카, 아프리카, 필리핀, 한국에서 주로 믿기 때문에 '무슬림=아랍인'이라는 편견과 달리 '기독교인=히브리인'이라는 편견이 없었던 것이다.
'''아랍=무슬림=갈색 피부'''라는 편견때문에 2009년 한국에서 인도 출신인 보노짓 후세인 교수가 아랍인으로 매도당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첫 기소 사례 만든 보노짓 후세인 교수, 아랍이 아닌 인도 출신이 많은 시크교인들이 무슬림으로 오인받아 공격받고 있다. 시크교도 겉모습 무슬림과 비슷… 테러 표적된듯
게다가 남유럽과 남유럽에 속하는 스페인, 포르투갈이 식민지배한 중남미는 흑발흑안의 코카소이드가 많기 때문에 중남미계 미국인들도 아랍인으로 오해받아 한국인에게 아랍어 인사를 듣는 해프닝이 벌어진 바가 있다. 관련 기사 영국에서 브라질 청년이 테러리스트로 오인받아 피살된 사건까지 있었다. 관련 블로그, 관련 위키 문서, 관련 기사
이런 편견이 인도 영화 내 이름은 칸에 나오는 데 영화 중반에 911 테러 사건 이후 시크교도들이 무슬림으로 오해받아 테러당하고 힌두교인인 칸의 아내와 모텔 주인이 테러와 무시를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11.5. 나라별 무슬림 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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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은 기독교와 함께 대륙을 가리지 않고 전세계에 널리 퍼진 대표적인 세계종교다.[161] 세계의 무슬림 비율은 다음과 같다. 단, 여기서 오해하면 안되는 것이 하나 있는데, 무슬림 비율과 이슬람 근본주의가 반드시 정비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일례로 모로코나 터키,타지키스탄 같은 나라들은 무슬림의 비율이 90%를 상회하지만 세속주의 성향이 상당히 강한 나라들이며, 말레이시아는 무슬림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60%대이지만 오히려 이런 나라들보다 근본주의가 훨씬 강하다.
- 98% 이상
- 90% 대
- 80% 대
- 50~70% 대
- 30%~49% 대
- 그 외 소수 신자가 존재하는 나라
12. 한국과 이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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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판 알 이드리시 지도에 표기된 신라. 과거 이슬람권 지도의 특성상 남쪽이 위로 간다. 즉 흔히 아는 북쪽이 위로 가는 세계지도와 180도 뒤집혔다고 보면 된다. 신라가 섬으로 표현된 것은 무슬림들은 남쪽 바다로 항해해 경주에 접근했고 한반도 위쪽으로는 갈 일이 없어서인 듯. 수백년 뒤 유럽인들 지도에서도 한반도를 섬으로 오해한 지도가 나온다.
이슬람은 오래 전부터 '회교' 혹은 '회회교'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알려졌다. 정수일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이미 9세기~10세기 아랍 세계 지도에서 섬으로 잘못 그려져 있지만 신라가 그려져 있고, 아랍 학자인 이븐 쿠르다드니가 신라에 와서 머물고 신라에 대한 간략한 기록을 남긴 바 있다. 중세 이슬람 세계의 저명한 지리학자겸 역사가 알마수디는 그의 저서 황금초원과 보석광에서 "신라는 금이 넘쳐나서 개줄이나 원숭이줄도 금으로 만들며, 사람들은 무병장수한다."며 지상 낙원이라는 식으로 나와 있다.[174][175] 이라크 출신 사람들이 특히 많이 신라에서 거주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흥덕왕릉이나 원성왕릉의 서역인 조각이나 처용이 서남아시아 출신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고려 전기에는 무슬림 상인들[176] 이 3차례 개경을 방문하며 교역을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고려사를 보면, 현종 15년(1024년) 대식국(아랍)에서 온 상인 수백여 명이 개경에 머물러 교역을 했다는 기록 등이 있다.
원나라의 침략을 받고 고려가 원나라에 점령된 시기부터는 한국과 이슬람 국가 사이의 교류가 가장 활발했던 시기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당시 몽골인들은 자기들만으로 나라 안팎을 관리하기가 힘든데, 중국인을 쓰자니 믿지를 못하겠고 말도 안 듣고 해서 쓰려하기보다는 없애버리려고 했고, 반대로 많이 싸우면서 그 위력을 실감하게 되고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위구르인들을 행정 관료로 적극 활용했다.
고려인으로 무슬림이 되어 원나라에서 다루가치로 일했던 라마단 빈 알라웃딘(刺馬丹, 1312~1349.3.22)이라는 인물의 묘지명이 중국 광저우에서 발굴되기도 했다. 그 아버지 이름이 알라웃딘으로 되어있는 것을 보아 아버지 역시 무슬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 해당 내용은 KBS 역사스페셜을 통해서도 보도되었다.
한국의 소주가 고려 시대에 원나라로부터 페르시아식 증류 기법이 수입되어 정착한 것이라는 설도 존재하고 있다. 기원전 3천년께 메소포타미아 수메르에서 처음 증류 기법이 등장했는데 이는 오늘날까지도 중동 아랍지역에서 ‘아라끄’란 이름으로 전승되고 있으며, 1258년 몽골군이 압바스 조를 공략할 때 처음 양조법을 배웠고 가죽 부대에 넣고 다니면서 마셨으며, 이후 일본 원정을 위해 주둔한 고려의 개성과 안동, 제주도 등지에서도 이 '아라끄'(아락)를 빚기 시작했다. 원정군들에게 ‘아라끄’를 공급하기 위해 고려인들이 만들어낸 것이 바로 고려 소주라는 것이다. 그 근거로 개성에서는 근세까지도 소주를 ‘아락주’라고 불렀다는 점이 지적된다.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에는 개성에 예궁(禮宮)이라고 해서 고려에 거주하는 무슬림들을 위한 모스크도 마련되어 있었다고 설명한다. #
조선시대 초기까지 이들은 한반도에 남아 살았으며, 조선왕조실록에도 "회교인들이 세종대왕의 생신 잔치나 새해를 맞이하는 궁중 하례 의식에도 초청을 받아 정례적으로 참석하여 쿠란 낭송이나 기도를 통해 국가의 안녕 및 임금의 만수무강을 축원했으니 이를 '회회송축'이라 했으며, 이슬람풍 노래와 음악을 연주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회회조례'라 불렀는데, 이걸 두고 유학자들이 부정적으로 여겨서 세종 이후에 없어졌다고 한다.[177][178] 태종~세종대에 회교인의 행사를 폐지하는 등의 조치 이후로 기록상에서 한반도의 중세 이슬람 공동체는 사라진다.
이렇게 무슬림이 신라와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 오랫동안 공존해왔고, 왕실과도 관계를 맺었으며 고위직 일부도 믿었을 정도로 이슬람교가 존재감이 있었으나 끝내 한국 사회에 자리를 잡지 못하게 된 이후로 명나라가 쇄국정책을 펴며 교류가 사실상 끊어진 것이 큰 영향을 차지했으나 이슬람교가 소수의 상인이나 기술자들이 믿는 비주류 종교였기 때문에 민간에게 널리 전파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라마단 금식 규정이 있는 등 교리가 까다로운 면이 있는 데다가 애초에 신라와 고려는 불교가 국교였고, 조선은 유교가 국교였기 때문에 왕실에서 무슬림에게 이런저런 권리를 보장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그러하니 민간에 널리 전파되지 못하고 기술자와 상인, 일부 관료층만의 종교로 남아있게 되었고, 결국 교류가 끊어지게 되면서 이들의 후손은 조선 사회에 동화되어 이슬람교라는 존재 자체가 잊혀진 것이었다. 또한 세종 치세에 무슬림의 동화가 명령된 배경도 있는데, 이슬람 과학과 지리학이 조선에 흡수되어 자체적으로 칠정산,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나온 이후 굳이 무슬림들을 우대해줄 필요가 없어졌다. 명나라 역시 건국 초에는 무슬림 천문학자 등을 우대해주다가 예수회 선교사들이 도래하면서 서구 과학 기술을 전해준 이후 중국 무슬림 후이족들이 찬밥 신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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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시대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 나오는 유럽, 아프리카 지명은 아랍어에서 한자로 음차된 것들이다.
12.1. 현대 한국의 이슬람
근대 최초 한국인 무슬림은 샤밀 박(1912~2005)이라는 사람이다. 일제강점기 때, 터키인 아브뒬하크 누만(Abdülhak Numan)이 하던 알타이 양복점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살아가다 누만 사장에게 신용을 얻고 양복 재단 기술을 배운 사람으로 한국 이름은 박재성. 사장이 자식 없이 일찍 죽은 바람에 양복점을 물려받고 과부가 된 사장의 아내와 재혼하면서 이슬람으로 개종해 샤밀이란 이름을 얻었다. 한국전쟁이 터지기 전에 터키로 가서 귀화해서 살다가 2002 한일 월드컵 관련 당시 터키 방송에서 나온 바 있다.
이슬람이 조금이나마 한국에 알려진 것은 한국전쟁 때다. 당시 토이기군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터키군에서 고아원을 맡으면서 아이들에게 이슬람을 가르친 적이 있었으며, 무슬림인 김진규나 신백현 같은 사람이 나오면서 1955년 제6터키 여단 소속이던 이맘 압뒬가푸르 카라이스마일로을루(Abdülgafur karaismailoğlu) 대위가 한국인을 대상으로 선교를 시작하였다. 1955년 9월 15일 서울 농협대학 강당에서 70여명의 한국인 무슬림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이슬람중앙회'가 결성됐고 회장에 김진규, 부회장 겸 사무국장에 윤두영이 선출되었다.
1956년 4월에는 중학교 진학을 하지 못하는 불우 청소년을 대상으로 '청진학원'을 열어 무료로 중등교육과 이슬람 교리 교육을 실시하여 이 학생들 중 일부가 이슬람을 수용하였다. 1956년 10월 압뒬가푸르에 이어 군(軍) 이맘 쥐베이르 코치(Zübeyir Koç) 대위가 부임 이후에도 이슬람을 알리는 활동이 계속되었다. 터키군 지원으로 이문동에 막사 형태의 작은 마스지드가 만들어졌는데, 첨탑도 함께 세웠다. 그 당시 한국인 무슬림은 208명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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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석유전쟁이라든지 여러 자원 문제로 이슬람 성원을 크게 짓자는 의견이 나와서 1975년 본격적으로 이태원동에 서울중앙성원이 세워지게 되는데, 땅은 한국 정부가 그냥 내주었다. 당시 아랍권의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꽤 안 좋았는데, 당시 아랍권이 소련을 지지하던 이유도 있고, 한국이 아랍권이 싫어하는 미국이나 터키, 이스라엘과 우방관계를 맺었던 이유도 있다. 이런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당시 한국 정부는 이스라엘 문제에 대한 아랍권 지지 성명, 아랍권 국가 9개국과의 수교 등 여러 노력을 기울였고 한국이슬람중앙성원 부지 제공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또한 당시 오일쇼크로 인한 자금 유입으로 인프라 사업을 거하게 벌이던 중동 아랍권 국가들에 한국인들이 파견되어 성실하게 일하고, 특히 이란의 경우 아랍 국가는 아니긴 했지만 어쨌든 중동 국가로서 여러 교류가 늘어났고, 파견된 한국 노동자들이 전쟁통에 피해를 입으면서까지 여러 작업을 수행하기도 했다. 또한 이러한 중동붐이 1970년대 후반 유입 외화의 80% 가량이 중동에서 유입되었을 정도로 한국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이러한 대 아랍 관계 개선에 대한 노력은 결국 1988 서울 올림픽 때 아랍권 국가들이 일본의 나고야가 아닌 한국의 서울을 지지했던 원동력 중 하나가 되었다. 건설비는 터키와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나라들이 지원했다.
이러한 중동의 외교 분야와의 연관 때문인지, 서울중앙성원의 건립을 비롯한 초기 이슬람 공동체의 성장에는 '''중앙정보부 - 국가안전기획부'''와의 연결 고리도 조금 있었다. 위에 언급한 성원 건립에 필요한 토지 제공도 실질적으로는 중앙정보부 측에서 관여하였으며, 이후에도 한동안 중앙정보부 및 국가안전기획부의 인사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다고 한다.[출처:] 이후에도 국가정보원과 한국 이슬람 커뮤니티 간에 일종의 '커넥션'이 있다는 의혹이 있다.
이후로 중동권이 저유가로 침체하고 한국이 전자제품과 자동차로 이름을 널리 날리게 되면서 비중이 크게 줄어들었지만 한국은 중동지역에 에너지 의존도가 여전히 매우 높다. 원유 및 천연가스 같은 에너지원 대부분을 이슬람 국가들에게 의존하여 한동안 이스라엘과 국교를 끊기도 했으며, 2012년에도 중동에 대한 석유의존도가 86%를 넘는다. 원유 중동의존도 사상 최고 (문화) 해외건설 수주에서도 이슬람권인 중동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70%에 이른다. 중동 무너지니 해외 수주 '최악' (조선) 에너지 수급이 불안하면 경제에 차질이 생기니 신경을 안쓸 수 없다.[179]
한국에서 있는 무슬림들은 거의 대부분이 외국인들이다. 외국인을 포함해 '''15만 명''' 정도 된다고 하지만 이 수치는 신뢰하기가 힘든 수치인데, 이슬람을 국교로 하는 나라에서 이민을 온 이민자들의 수를 합쳐봐야 5-6만 명 내외로 잡히고 있어서 15만 명이라는 수치 자체가 자료가 있지 않으며 신뢰성이 없다. 이게 쿠란의 한국 판매량인지, 한국에 임시로 들렀다 간 무슬림의 숫자인지 뭔지도 아직 알려진 바 없다.
어느 정도 추정할 근거가 있기는 한다. 외국인이 아닌 한국에서 태어난 이른바 "토착 무슬림"의 경우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종교를 "기타"로 대답한 16만 3,000명에 포함됐을 것이다. 그러나 "기타" 항목에는 한국의 토착, 민족종교까지 포함됐기 때문에 훨씬 적은 규모일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 이슬람교 중앙회 관계자들은 그 수를 35,000여명으로 추산하는데, 교인 명부를 따로 관리하지 않으므로 정확한 근거는 없다고 한다. # 한편 2020년에는 국내 토종 무슬림 수가 '''약 6만여 명(인구 0.11%)'''에 달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
또한 한국인 무슬림의 증언에 따르면, 외국인을 제외한 순수 한국인 무슬림 중에서 '''기록상 통계 외에 이슬람 교리를 실천하면서 사는 신실한 한국인 무슬림들의 숫자는 매우 적다.''' 알 자지라 방송에서 수년 전 한국에 사는 무슬림들을 취재한 다큐멘터리가 있었는데, 여기서 한국 이슬람 관계자가 매주 금요일(주무아) 정기예배에 참여하는 한국인 신자는 500명도 채 안될 거라고 자조적으로 말하는 인터뷰가 등장한다. 정기예배에 참여하는 신자가 500명도 채 안된다면 매일 5번 기도나 할랄 푸드 등의 율법까지 실천하며 사는 한국인 무슬림들의 숫자는 더욱 적을 것이라 추론이 가능하다. 커뮤니티 등에서의 무슬림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애초에 한국 자체가 이슬람 문화권의 생활방식에 친화적이지도 않기 때문에, 외국인과의 결혼 등의 사유로 형식적 이슬람 개종을 한 한국인들도 금요일 예배나 할랄 푸드 등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한 보수 유교 문화의 영향인지는 모르지만 일부 한국인 무슬림 중에서 복장(장옷을 미풍양속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이나 남녀유별 등에서 지나친 원리주의를 주장하는 경우가 있어, 다른 한편에서는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을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 충돌이 생기는 경우도 있고, 개종 후 가족들과의 불화로 배교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실제로 한국은 일본, 베트남 등과 더불어 무슬림의 비율이 1% 미만인 아시아에서 몇 안되는 나라이기도 하다.
국내 거주 외국인 무슬림은 물론 체류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종교를 조사하지는 않으니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슬람의 경우 특정 국가에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범(凡)이슬람권에서 온 국적을 기준으로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 조희선(2010)의 논문에 따르면 2009년 10월 기준 한국 체류 무슬림은 79,388명으로 동남아시아계 무슬림이 37.4%로 제일 많고 중앙아시아계(25.7%), 남아시아계(26.9%), 나머지 국가들은 10% 미만이다. 지리적, 문화적으로 거리가 가까운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출신의 무슬림들이 상대적으로 거리가 먼 이란이나 터키, 아랍국가 출신의 무슬림보다 국내에 더 많이 들어온 당연한 결과이다. 국내 체류 외국인 무슬림은 대부분 한국 정부에서 산업연수생제도를 이들 권역에 있는 나라들과 체결했던 것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아시아계 무슬림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보인다.[180] 한국 사회 내에서 이슬람 이미지는 그다지 좋지 않은 편이지만,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온 사람들은 예외로 이슬람 문화권 중에서는 이미지가 좋은 편인데,[181] 그나마 세속화가 많이 되고 한국 내에서 중앙아시아 출신들이 미남미녀라는 스테레오 타입이 퍼져 있으며, 다른 이슬람권에 비해 세속 학문 교육 수준이 높고 종교적으로 개방적인 곳이기 때문이다.
부산시에는 1986년에 무슬림이 아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정규 학교로써는 대한민국 최초의 이슬람 미션스쿨인 알리고등학교가 사우디아라비아 자본의 지원을 받아서 부산진구 당감동에 일반계 고등학교 형태로 설립된 적이 있었다.# 교명은 이슬람의 제4대 정통 칼리파인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에서 따왔다고... 하지만 부산은 일반계 고등학교 평준화 지역이라 일반계 고등학교 선택권이 없는데다가 이슬람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미션스쿨을 설립하여 운영한다는 논란[182] 으로 인하여 결국 2년도 채 안돼서 미완성 상태의 알리고등학교를 종교색이 없는 평범한 사학 재단으로 사실상 강제로 넘겨버리면서 흑역사가 되어버렸다. 이후에는 교명까지도 경원고등학교라는 평범한 교명으로 변경하여 종교색이 없는 평범한 사립 고등학교로 남게 되면서 한국에서 이슬람 미션스쿨은 2년 만에 영원히 사라지게 되었다. 이후로 한국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이슬람 미션스쿨이 신설된 사례는 없다.[183]
인천광역시에 이슬람 박물관이 세워졌다가 2년도 안 돼 갑자기 문을 닫았던 일[184] 이 벌어진 바 있다. 그 밖에 중동 문화원도 문을 열었다가 반발로 문을 닫았더니만, 이번에는 아랍권의 반발과 기업들의 반한 감정 문제에 대한 반발까지 연루되자 부랴부랴 재개방하는 추태도 벌어진 바 있다. 중동 문화원 해프닝
한국에 처음으로 이슬람 중학교[185] 가 세워질 당시 포털에선 욕설들이 가득했는데, 당시 이 중학교 개교 행사에 참가한 세뇰 귀네슈 감독을 비난하던 일부 무개념도 보였다. 그래서 일부 귀네슈 팬들은 이런 비난에 FC 서울부터 테러리스트 감독을 해임하라고 건의하고, 테러 자금을 지원하는 한국도 아랍산 석유를 일절 불매하고 러시아 같은 나라에서 비싸게 주고 사오자고 비꼬기도 했다.
이슬람을 바라보는 국내 보수 기독교 단체의 시각은 매우 영 좋지 않다. 한국장로교총연합회에는 '이슬람대책위원회'라는 단체가 있으며 여기서 이슬람선교훈련원이란 단체도 만들었다.
한국의 이슬람 중에서 한국인 이맘도 존재한다. 이주화 이맘과 이행래 원로 이맘이 대표적. 한국에서는 국내 체류 외국인 무슬림 인구 대부분이 순니파인 이유로 순니파가 우세하다. 순니 이슬람은 공식적으로는 성직자가 없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극단주의로 치우치는지 아니면 온건성향이 되는지 부분에 있어서는 종파보다는 개인 성향의 차이가 더 크다. 미국의 신흥 이슬람 단체 네이션 오브 이슬람의 사례에서 보듯이, 이는 서구인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경우 특정 학파를 그대로 따르기보다는 (기독교 복음주의의 영향으로) 꾸란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한국 내 무슬림 인구는 적으나, K-pop을 좋아하는 무슬림이 많은 이유로 다우드 킴과 같은 이중 생활을 하는 유튜버들이 생겨나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국내에서는 원래 별로 유명하지 않던 인물이었으나 '''성폭행 미수 사건'''이 메이져 언론사를 통해 보도되면서, 2020년도 코로나 방역에 잘 협조하여 기껏 간신히 상승하던 한국 내 이슬람 이미지에 직격탄을 날렸다. '''다우드 김은 자신을 옹호하는 댓글만 남겨놓고 비판하는 댓글은 마구 삭제하여, 한국인들에게 무슬림들은 강간범에게 관대하다는 오해를 심어주었다.'''[186] 해당 사건이 엄연히 성범죄인 만큼 한국인 무슬림들이 모여서 공개적으로 사과 및 비판 의견을 냈다. 한국 무슬림들 입장에서는 슬프게도 사건의 파장이 훨씬 더 심각해졌는데, 하필 일본인 무슬림 유튜버가 일본 전통 복장을 입고 일본 전통 가옥 실내를 배경으로 다우드 김을 상당히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비판하는 영상을 네 개나 시리즈로 올렸던 것. 마지막 동영상 기준 좋아요 2만2천에 싫어요 39... 해당 사건은 한국 이슬람계에서 두고두고 안 좋은 쪽으로 회자될 듯 하다.[187][188]
과거 한국 이슬람계에서 비슷하지만 덜 심각했던 물의를 일으켰던 사람들은 주로 신천지 같은 신흥 사이비 종교 탈퇴자들 중 개과천선을 하지 않았던 사람들로[189] 신천지가 개신교에 하듯 가짜로 개종하며 신자 사칭했던 사람들이다. 신천지에서 하던 습관대로 대학생들에게 접근해서 돈을 떼먹는다던지 명의 도용을 한다던지 등등 물의를 일으켰으며, 몰래 무슬림들에게 다른 신흥종교를 전도하다가 발각된 후에 또다시 또다른 신흥종교를 전도하다가 다시 발각되었다던지 등의 이유로 제명당했다. 이렇게 제명당한 사람들은 다시 또 지방으로 가서 비슷한 행동을 하는 것으로 보고되기도 했다.[190]
12.2. '할랄 단지' 사건
라는 루머가 2016년 1~2월, 인터넷과 SNS 등을 중심으로 퍼져 나갔으며, 이 때문에 익산시와 정부가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사실 이는 명백한 선동으로, 한국의 식품 수출을 늘리기 위한 종합연구시설인 국가식품클러스터가 익산에 건설되는 건데, 여기에 이슬람권에 대한 수출을 위한 할랄단지가 포함되어 있는 것. 그 외엔 이슬람과 아무 관계가 없으며 이에 대해 정부에서 해명했고 JTBC도 이에 대해 사실 확인을 위한 기사를 내었다.[192]전북 익산시가 수천억원의 예산을 들여 50만평 단위의 할랄 단지가 건설되고 할랄 인증을 위해 이맘 100만 명[191]
이 들어올 계획이며, 정착하는 이맘들을 위해 개인당 수백만원의 정착 지원금이 지급될 예정이다. 또 그들을 위한 이슬람 학교 및 병원 등 이슬람 시설들이 설립 준비에 있으며 전북 익산은 이슬람화될 수 있다.
12.3. 문화 갈등
가족 제도 문제에서는 '''중혼, 사촌 간 근친혼''' 같은 문제로 인해 서구 사회 및 비이슬람 문화권의 상당수 사회들, 그리고 대한민국 사회와 갈등을 빚는다. 2007년에는 사촌과 결혼한 이슬람도 임란 알리가 한국 국적을 얻었으나 한국에서는 8촌내 결혼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아내를 한국에 초청할 수 없다는 것에 항의하고 언론 보도를 탄 사건이 있었다. 사촌과 결혼… 귀화인 혼인무효 위기 (한겨레)
2011년 한겨레의 보도에 따르면 파키스탄 출신의 무함마드 아심(36)은 한국인 신모(29) 씨와 이슬람 식으로 결혼하였다. 당시 이태원 용산구청 근처 모 페르시안 레스토랑에서 일하던 아심은 사장 친척이 아닌데다가 한국말을 읽고 쓸 줄 모른다는 이유로 월급이 오래 밀린 상태였고, 이를 도와주던 신모 씨가 동정심이 생기면서 아심과 결혼을 결심했다 한다. 하지만 무함마드 아심은 파키스탄에 이미 아내가 있기 때문에 혼인신고를 할 수 없었다. 이슬람 율법에서는 4명까지 부인을 두는 것을 허락하지만 한국 민법은 중혼을 금지하기 때문이다. 한국인 무슬림 (한겨레) 그러나 한국인 무슬림 커뮤니티 및 재한 파키스탄인 사회에서 이야기하는 바에 따르면 해당 결혼은 아심이 한국 체류권을 얻기 위해 신모 씨를 이용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무함마드 아심은 파키스탄 출신 탈레반이라는 소문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으나,[193] 결혼 이후 가정 운영에는 소홀하고 오히려 자신을 도와준 신모씨를 이용해서 사기나 범죄를 벌였다고 한다. 한국인 무슬림 및 재한 파키스탄인들이 증언하는 바로는 무함마드 아심 관련한 소문은 허황되고 과장된 내용도 많지만, 아심이 한국 체류권을 위해 여자를 이용하고 배은망덕한 행동을 한 자체는 사실이라고 한다. 보통 미국 내 멕시코인들 사례가 그렇듯 특별한 학력이나 기술이 없는 외국인들이(특히 문맹일수록) 현지인 여자랑 결혼하면 태도가 돌변하고 자신을 도와준 현지인들에게 배은망덕한 행동을 하는 것 자체는 흔한 일이다. 그리고 알아둘 점은 무함마드 아심의 고향인 파키스탄은 연고주의가 상당히 강한 나라이다. 성범죄를 저질러도 가족 빽이 든든하면 우겨서 처벌을 면제받는 비율이 다른 나라보다 높은 편이다. 한동안 주한 파키스탄 대사관에서는 파키스탄발 결혼 사기에 대한 위험성 경고 글을 공지에 올리기까지 했다.
'''현재는 법이 개정되어 외국인이 한국인과 결혼만 한다고 자동적으로 체류권이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에 다행히 이런 경우가 많이 감소했다.'''[194] 비슷한 경우로 2015~2016년경 이태원 Z 모 레스토랑에서 일하던 예멘인 난민이 미국인 영어 강사에게 적어도 수백만원 상당의 혼인 빙자 사기를 친 경우가 유명해졌는데,[195] 해당 사건은 한국 이슬람계에서 2018년 제주 난민 사태 때 공식적으로 예멘 난민 편을 들지 못하고 중립을 지키는 계기라고도 볼 수 있다. 너무 양비론적으로 접근하면 안되겠지만 국내 나이지리아인 불법체류자들이 한국 내 영어 강사들 중에 순진한 사람들에게 접근하여 동정심을 유발한 후 사기를 치는 경우, 아프리카 토고 출신이 온라인 채팅으로 사귄 국내 체류 외국인 여성에게 한국으로 초청해줄 것을 요청한 사례,(물론 목적은 뻔하다. 한국에 오자마자 난민 신청) 부산 펍에서 일하던 멕시코인 남성이 한국인 여성과 결혼한 후 F-5 비자가 나오자마자 이혼하고 다른 동남아 여자들이랑 놀아났다가 2020년도 1월 여자 측에서 양육비를 주지 않는다고 소송을 걸자 멕시코로 도주했던 사례 등 비슷한 사례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즉 외국인 남성이 기초적인 영문 계약서도 읽고 쓸 줄 모르는 상태에서 한국 여자한테 접근하면 비자 목적이라 보면 된다. 무슬림들이 다 성인군자가 아니고 현재 무슬림 국가 상당수가 한국보다 교육, 경제 및 여성인권 수준이 열악하기 때문에 비슷한 사기결혼, 가정불화 사례 등등 문화 갈등이 더 생길 수가 있다.
미국에서 유명해진 사건이 하나 있다. 다정한 매너를 가진 이란인 인텔리 무슬림 의사와 결혼한 미국 여성이 남편과 함께 남편의 고향인 이란으로 돌아갔는데 귀국하자마자 남편은 폭력적인 이슬람 남성으로 사람이 돌변해서 아이들(특히 딸)을 이슬람 방식으로 세뇌교육을 하려 했다. 미국인 아내가 이에 항의하자 "그럼 혼자 떠나고 아이들은 두고 가라"는 협박을 받았고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필사의 탈출을 해서(잡히면 남편 가족에게 명예살인 당하기 쉬우니까) 미국 대사관으로 피신했다. 이 이야기는 책으로 쓰여졌고 그것을 기반으로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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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솔로몬의 딸(Not Without My Daughter, 1991)이란 제목으로 개봉한 영화가 바로 그것인데 한국개봉당시 극장 간판에 호메이니를 괴물같이 그려서 주한 이란 대사관이 항의하는 일이 벌어진 적이 있다. 덕분에 서울 상영관에서 이 간판이 내려지고 새로 고쳐 그리던 소동이 일어난 바 있다.
영화만 보면 "너무 인종차별적 내용이 아니냐??"고 할 수 있는데 원본 책을 읽어보면 더하다.[196] 영화를 보면 그래도 이란이나 무슬림에 대하여 조금은 중립적인 태도를 보이는데 예를 들면 남편이 미국에서 살면서 이란인, 무슬림이라고 차별당하여 미국 생활을 지겨워하던 묘사가 나오긴 한다. 하지만 중반부로 넘어가면서 남편이 악마같이 돌변하는 묘사가 나오고 비록 결말은 미국으로 가면서 미국이 더 좋은 나라라고 하는 결말이긴 하지만.
2002년 Without My Daughter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만들어진 바 있는데 바로 이 영화에 나오는 실제 남편의 증언과 주장으로 솔로몬의 딸에 대하여 반론하는 영화이다. 더불어 제작은 미국이나 미국인이 아닌 핀란드에서 제작했으며 감독도 핀란드인(이란에서 협조를 하긴 했지만). 더군다나 감독은 이런 영화의 배경 때문에 관객들이 무조건 이슬람은 악마, 미국은 정의라고 오해하기 딱이라 사전에 이란에 가서 그 남편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교육 문제'''에서도 갈등이 있는데 같은 기획보도에서 다루는 2003년 한국에 귀화한 무함마드 아심'''(상단에 나온 인물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동명이인)'''은 한국에 이슬람 종교 학교를 세우고 파키스탄에서 이슬람 학자까지 데려왔으나 교육청에서 대안학교 인가를 내주지 않아 2007년 말에 문을 닫아야 한다는 소식을 알렸다. 무함마드 아심이 한국에 세우려 했던 이슬람 종교학교는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식 '마드라사'인데, 한국으로 치면 서당에 해당한다.
무함마드 아심의 장남 알리는 2003년 당시 16살이었고 차남 모하스는 14살이었는데 늦게 입학한 탓에 각각 중학교 1학년과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하지만 두 아이는 교과를 따라가지 못해서 매일 숙제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쿠란 공부만 챙겼으며 집에 있는 책이라고는 쿠란밖에 없었다고 한다. 세속 학문을 전부 불필요한 사탄의 학문이라고 세뇌시키는 이슬람 근본주의 선교사들의 악영향이다. 기독교 근본주의와 결합된 반지성주의 문제가 심각한 문제가 되는 미국에서도 어지간한 또라이 광신도가 아닌 이상 이런 경우는 드물다. 파키스탄 국내에 거주하는 경우야 꾸란은 저렴한 가격에 보급되지만 일반 책은 아직 소득에 비해 턱없이 비싼 수준이라서 그럴수도 있다 쳐도, 한국에서 집에 꾸란 말고는 책 한 권도 없다는 이야기가 진짜라면 부모가 아동학대로 지탄받아도 할 말 없다. 이 뉴스를 보고 많은 네티즌들은 현실적으로 현대 사회에서 아동을 방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라며 무함마드 아심을 비판했다. 학력 사회 운운하며 이들을 두둔하는 주장이 있으나, 애시당초 한국이든 해외든 세속화/근대화된 아주 가난한 후진국부터 중진국~선진국 중에 기초적인 교육과정도 이수하기를 거부하고 이슬람 근본주의 신학만 공부했을 때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굳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 세계 어디서든 이슬람 교육만 받고 정작 현대 사회에 필요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란다면 결국 이들은 잉여인간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가령 코란에서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특징에 대해 나오지 않으며, 이에 대한 기초지식이 없을 경우 방역개념을 탑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서구 사회에서는 이미 무슬림 이민자 가정에서 집에 책이 꾸란, 하디스 같은 종교 서적밖에 없고 다른 책을 사탄의 세속 학문이라고 금지하는 경우, 취미 생활이 제한된 자녀가 오히려 알코올 중독이나 성범죄 등에 빠질 확률이 훨씬 더 높아진다는 게 이미 상식 중의 상식이 되어 있다.
제사 문제에 있어서는 보수 개신교계와 마찬가지로 원론적으로 유교식 제사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다만 이러한 부분은 원래 불교에도 있었기 때문에,[197] 이슬람만의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장례식 문제에 있어서는 평소에 니캅을 쓰고 다니는 한국인 무슬림 여성이 심지어 자신의 비무슬림 부모님 장례식인데도 친척들에게 욕 먹을까봐 무섭다는 이유로 아예 장례식 자체에 참석하지 않았던 사례도 있었다. 유교식 제사에 참여를 하고 안하고는 개인의 신앙의 자유의 문제이지만, 천륜보다는 종교의 겉치례 규칙에만 집착하는 이슬람주의적 행태는 비판의 소지가 있다.
12.4. 장례
한국 내 무슬림이 죽으면 무슬림식 장례를 치르는데, 보통 이슬람의 경우 장례 내 미신적 행위를 기독교보다도 더 강경하게 허용하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한국 내 전통 장례 풍습을 아예 배척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 한국 전통 문화와 이슬람식 장례가 혼합된 형태로 치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슬람식 장례는 매우 단출한 편으로, 빠른 시일 내에 매장해야 한다는 교리가 있어 무슬림이 사망하면 먼저 샤워를 시키고, 바로 다음날 모스크로 옮겨 이맘의 주례로 장례예배를 진행해야 한다. 장례예배에서는 이맘이 알라후 아크바르를 외치고 쿠란의 개경장을 읽은 뒤, 알라에 대한 찬미와 선지자를 위한 기도를 한다. 매장할 때는 남성만 따라간다. 우리나라의 이슬람 묘역은 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본평리에 위치한 진달래동산의 한국이슬람 공동묘지다.
13. 각종 통념 또는 오해들
- 무슬림들은 모두 이슬람주의, 이슬람 근본주의, 이슬람 극단주의 성향에 서구를 포함한 이슬람이 아닌 다른 것을 증오하는 잠재적 테러리스트 또는 광신도들이다.
- 무슬림들 중 많은 이들이 해당 성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통계에 따르면 샤리아 법을 지지한다는 무슬림들이 많기 때문이다. 다만 해당 통계 등에는 약간 맹점도 있는데, 온건 성향 무슬림들도 이슬람주의자들의 사적 제재가 두려워서 샤리아 법에 대한 반대 의견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간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란이나 걸프 아랍 왕정 국가들을 제외한 무슬림 국가들에서는 샤리아 법 대신에 서구식 세속주의 법을 따르고 있는데, 이는 엄밀히 말하면 국민적 합의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또한 다에시들과 지상전에서 직접 싸우고 있는 이들을 격퇴한 주력은 쿠르드족(이라크,시리아) [198] 이나 알라위파(시리아), 혹은 세속주의 정부군(이라크)이다.
- 무슬림들이 전부 테러리스트라고 단정짓는 것은 무리한 발상이다. 이 점은 퇴행적 좌파를 비판한 마지드 나와즈가 서구에서 이슬람과 이슬람주의를 제대로 구분 못한다는 비판과 일맥상통하는 점인데, 현대적인 의미의 지하조직 운영을 통한 비무슬림 공격, 정부 장악 시도는 현대 이슬람주의에서 기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테러단체 절대다수는 이슬람 계열이지만, 그 이슬람 계열 테러단체 대부분은 이슬람주의 단체이다. 일단 쿠란은 '민간인'의 살상을 엄격하게 금지하므로 이슬람주의 단체들도 엄밀히 말하면 이단 단체이다. 무엇보다도 자국민들도 노리는 놈들이 테러리스트들인데 당연히 대부분의 무슬림들이 좋아할 이유도 없다. 애초에 멀쩡한 사람이 테러리스트를 좋아할 리도 없지만.
- 물론 오해처럼 '모두'는 아닐지라도, 무슬림 중에서 이슬람 근본주의자, 극단주의자들이 비정상적으로 많은건 일단 팩트이다. 심지어 세속 국가에서도 잊을만하면 테러리즘과 극단주의에 동조하는 무슬림들이 튀어나온다. 그럼에도 굳이 이유를 설명하자면 경제, 사회적으로 낙후된 이슬람권의 현실, 오일머니 패권을 쥔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들의 선교파워가 너무 센 것 등을 들 수 있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슬람 근본주의 선교가 영향이 적은 동유럽이나 중앙아시아 등 지역은 근본주의 성향이 약한 편이라는 점이다.
- 이슬람 교리는 현대사회의 다른 종교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배교자에 대해 가혹하지만, 이를 비판하는 여론도 일부 있다. 튀니지와 레바논, 모로코, 터키, 팔레스타인[199] 은 세속 국가이며 사우디아라비아, 이란을 제외한 중동 국가들은 이슬람 근본주의를 금지하며 국가적으로 단속하고 있다. 그리고 리비아는 카다피 독재 당시엔 이슬람 근본주의가 아니라 이슬람 사회주의를 내세운 세속국가였다.
- 중동의 이슬람 근본주의와 테러리즘은 과거부터가 아니라 60년대부터 사이드 쿠틉의 극단주의 해석이 퍼지고 이후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걸프만 아랍국가들이 오일머니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을 양성하기 때문에 대중화되고 있다.
- 중동의 이슬람 근본주의가 극성을 부리고 끝없이 분쟁이 일어나는 일부 이유는 아프리카 부족 간의 분쟁처럼 제국주의 시절 그어진 국경선(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200] )과 통치를 쉽게 하기 위해 서로의 갈등을 부추긴 정책 때문이라고 하고, 이스라엘 분쟁도 근본적으로는 영국 때문이라고 하는데, 맥마흔 선언, 밸푸어 선언 문서 참조. 사실 이것도 무슬림들이 극단주의에 대한 본인들의 책임을 피하려 서구한테 떠넘기는 핑계성 변명에 가깝다. 물론 제국주의 열강의 영토분열이 구 식민지 국가들에 막대한 악영향(부족, 종교간 내전 등)을 끼친 것은 맞지만, 사실 이슬람 근본주의의 발흥은 걸프지역이나 이집트, 이란, 파키스탄 등지의 이슬람 광신도들이 자체적으로 세력을 뻗어나가고 오일머니 선교를 통해 호랑이 날개단격으로 극단주의를 퍼뜨렸기 때문이다. 비이슬람권의 다른 지역들도 마찬가지로 영토분할과 갈등을 부추기는 정책의 피해자였지만 자체적인 분쟁들은 심각했을지언정, 어느 곳도 이슬람권처럼 지역 정체성 수준으로 종교광신이나 테러리즘, 샤리아 강요같은 막장 정책에 빠져든 곳은 없다. 이는 서구 탓에 돌리기보다 오히려 이슬람의 신정적, 전투적 특수성에서 이해해야 한다.
- 무슬림은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 이건 논란이 있는 주제다. 사전적인 정의만 보면 무슬림은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사람이 맞다. 크리스천이 기독교인을 말하는 것이고 불자가 불교신도를 말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문화적, 혈연적 요소를 중시해서 보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요르단의 한국인 선교사인 김동문은 이슬람 공동체 내에서 통용되는 무슬림이라는 개념은 혈연적이며 자식이 이슬람교를 신봉하지 않아도 부모가 무슬림이라면 자식은 무조건 무슬림으로 정의된다고 해명했다.[201] 그리고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이슬람을 혈연적 공동체가 아닌 종교적 집단으로 구분하는 사람들을 이슬람포비아 극우파마냥 몰이하는 과도한 사람들도 보이는데, 이건 이슬람 공동체의 종교적 특성을 무시하는 또다른 극단적 견해다. 이슬람이 혈연적 특성을 지닌 것도 맞지만 무슬림과 무슬림 공동체는 일차적으로 이슬람교를 종교적으로 믿는 사람과 그 종교집단을 지칭하는 것이 맞다.
- 종교 단체에서 통계를 최대추산치로 잡는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과거 공교육이 생기고 문해율이 높아지기 이전에는 기독교와 이슬람을 동시에 믿거나[202] 토속신앙과 이슬람[203] 을 동시에 믿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상당수의 통계에서는 이 경우도 다 무슬림으로 간주하는 추세이다. 교리를 잘 구분 못해서 이슬람과 다른 종교를 동시에 믿는 것 외에도, 현실적인 이유로 명목상으로만 무슬림인 경우까지 무슬림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테면 19세기 이슬람 개혁운동가였던 이스마일 가스피랄리는 무슬림들은 폴란드/리투아니아 지역의 립카 타타르족을 모방해야 하고 더 이상 부하라, 타슈켄트 같은 지역의 무슬림들을 모방하면 안된다는 주장했다. 그가 주장하던 당시 립카 타타르족은 혈통상으로는 무슬림이지만 이미 적지 않은 수가 현지 가톨릭교도들과 통혼하면서 기독교로 개종하였거나, 혈통을 지켜온 이들도 명목상으로만 무슬림인 경우가 많았다. 이런 경우 엄연히 이중신앙으로 봐야 하지만, 이슬람 학자 이스마일 가스피랄리는 무슬림들이 이들을 본받아서 이슬람을 개혁하고 부흥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 중국의 회족 역시 회족(回族)이란 단어 부터가 무슬림 민족이라는 뜻이지만, 오늘날 중국 남부 지방의 회족 상당수는 이슬람을 배교하고 과거 무슬림이었던 자신들의 조상들에게 유교식으로 제사를 지낸다. 중국 정부에서는 이런 경우도 역시 회족이라고 그대로 분류하는 판인데, 회족 사회 내에서도 이른바 "비무슬림 회족(...)"들을 회족으로 분류해야 하는지 아닌지 갑론을박이 있다.
- 무슬림들은 모두 유대인을 싫어한다.
- 대부분의 경우는 사실이다. 21세기 현재의 이슬람권은 국제적으로 봐도 압도적으로 반유대주의 성향이 강하며, 이란처럼 정권 수뇌부 차원에서 유대인 음모론을 떠들어대거나, 알 카라다위같은 아랍권의 권위있고 존경받는 지식인 이맘이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을 긍정적으로 말하는데도 어떤 제지나 비판도 받지 않는 등 서구 극우는 애교로 보일 정도로 그 정도도 심각하다. 특히 이슬람주의자들의 반유대주의 팔이는 극우성이 짙다.
- 그러나 생각외로 서로 우호적인 교류도 많다. 무슬림 절대다수가 이스라엘을 반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개인적으로 유대인들과 친교 관계를 맺는 일도 드물지 않다. 유대인 역시 마찬가지다. 코셔 푸드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유대인들은 코셔 푸드를 구하기 힘든 환경에서 할랄 푸드를 먹으며, 테러 반대 집회에서 이슬람 온건 단체와 유대교 온건 단체가 함께 테러 반대 시위에 동참하기도 한다. 그 외에도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의 부하라 유대인, 아제르바이잔 내 산악 유대인 같은 우호적인 경우도 존재한다. 카자흐스탄에서도 무슬림들과 유대인들은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다.
- 아랍계 유대인들 같은 경우엔 오랫동안 아랍인들과 살아왔던 터라 적어도 시오니즘의 부흥 전 과거에는 유대인들과 나쁜 관계가 아니었다지만, 최근에는 팔레스타인 문제와 이슬람 근본주의의 발흥으로 증오감정이 장난아니게 되었다. 단 민족적으로는 서로 증오해도 개인적으로는 서로 친절하게 대하는 편이다.
- 이스라엘 무슬림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이스라엘 국적의 무슬림들은 자국 내 유대인들의 차별에 불만이 크지만, 구태여 유대인과 적대하려들지는 않는다. 어디든 다가오는 적은 싫어해도, 스스로 적을 만들려고 하지는 않는다.
- 영국의 이중 약속[204] , 시오니스트들의 테러와 히틀러의 사주를 받은 극단적인 아랍 민족주의자들의 유대인에 대한 공격이 있기 전까지는 유대인과 아랍인의 관계는 꽤 좋은 편이었다. 유대인 언어학자들이 사멸한 히브리어의 복원을 위해 언어학적으로 친연 관계가 있는 아랍어를 참고하기도 했고[205] , 당시 요르단의 국왕이 유대인-아랍인 간의 국가 연맹을 제안하면서 유대인의 막강한 자본력과 아랍인의 값싼 노동력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려 했던 적도 있었다.
- 또한 이슬람권의 이스라엘에 대한 과도한 반감 역시 일정부분은 가려서 볼 필요도 있다. 분명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아랍계 국가들에게 저지른 행동이 비판을 많이 받지만 일부 이슬람 근본주의로 변화된 사람들의 주장에도 문제가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게다가 이스라엘 아랍인 및 이스라엘 무슬림들에게조차 이스라엘에 산다는 이유로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아랍계 국가 및 이슬람 국가들 및 그 출신 사람들이 이들에게 과격한 비난을 하거나 더 심하게는 이슬람권 국가 출신 중 몇몇은 이스라엘 아랍인/이스라엘 무슬림에게 테러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 부분은 이스라엘이 나쁜가 그렇지 않은가를 따져도 비판적으로 볼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 이슬람은 칼, 즉 전쟁을 통해 번진 종교이다
- 반쯤은 사실이다. 주로 아랍권 정복과 유럽-비잔틴-러시아 기독교권에 대한 장기간의 납치, 약탈, 침략전쟁 역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또 한편으론 어느 정도는 그냥 평화로운 교역을 통해 번졌다. 세계 각 지역이 어떻게 이슬람으로 개종했는지 관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면 무슬림 국가나 민족들의 역사 문서를 따로 참고하자.
- 이슬람은 중동에만 존재한다.
- 이슬람은 악습과 폐습, 그리고 성차별에 긍정적이다.
- 정확히 말하자면 악습과 폐습 그리고 성차별 개선에 소극적이라고 보는 게 맞다. 자세한 것은 이 문서의 이슬람의 여성인권 항목을 참고.
- 이슬람은 명예살인, 여성할례을 긍정한다.
- 해당 문서 참조. 교리의 과도한 해석에 잘못된 인습이 결합된 사례다. 물론 중동권 국가들의 법에 따르면 무거운 형량을 받지는 않으나 교리 자체가 명예살인을 긍정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일부 이슬람 국가에서는 명예살인을 중범죄로 취급한다. 다만 이슬람이 명예살인을 긍정한다고는 보기 어려울 지 몰라도, 현대사회에 수없이 인습적으로 행해지는 명예살인의 대다수가 무슬림에 의해 벌어지는 건 사실이다. 여성할례 역시 마찬가지이다.
- 이맘은 일정한 수련과정과 교계의 인증을 받아야 설교를 하고 예배를 집전할 수 있다.
- 시아파 한정. 수니파는 그냥 모인 사람들 중에서 가장 짬이 높고 교리에 해박한 사람이 이맘이 된다. 가족끼리 모이면 가장이 이맘이 되고, 혼자 예배를 볼 때에는 자기 자신이 이맘이 된다. 수니파에서의 이맘은 개신교에서의 장로 개념에 더 가깝다.
- 무슬림들은 술과 돼지고기를 절대 먹지 못한다.
- 금주, 돼지와 돼지고기 문서 참조. 일단 원칙적으로는 안 먹는 게 옳지만 당장 굶어죽을 판인데 달리 먹을 것이 없다면 아사하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죄악이라고 가르치며, 비이슬람 국가에서는 젊은층들이 몰래 먹기도 하며 술의 경우 모로코, 튀니지, 터키, 요르단, 인도네시아, 레바논, 이집트 같이 자국/수입 산 맥주나 와인의 생산, 판매를 허용하는 나라들도 있다.
- 해당 무슬림이 심지어 이슬람주의 성향이나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이라도 타국에서 돼지고기를 몰래 먹거나 아니면 좋아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세속주의 무슬림이라도 이슬람 국가에서 태어났다면 돼지고기=닭둘기고기 인식이 박혀있어서 돼지고기를 기피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니까 개인 성향마다 다르다.
- 할랄 식품으로 인증받은 물건을 구매하면 이슬람에 로열티를 지불해야 한다.
- 근본적으로는 할랄식품은 상표권이 아니므로 로열티 따위를 주장하지 않는다.
- 간혹 이런 물건을 구매한 금액 중 일부가 ISIL의 전쟁 자금으로 들어간다는 괴담도 있는데 이 역시 근거가 없다.
- 다만 기업체의 경우 자기네들이 알아서 할랄대로 했다며 할랄 마크를 아무렇게나 박아도 되는게 아니라 (특히 이슬람국가 외의 국가에서는 더더욱) 이슬람교 관련 단체에 문의를 하여 지속적으로 검수를 받아야 하는데, 문제는 국내의 경우 말레이시아 단체의 검수를 받는 즉, 말레이시아 특성상 엄청 느리다.[207] 심지어 문서를 전달하는 사람들이 귀찮아서 혹은 실수로 누락하는 경우도 꽤 많다. 여기서는 당연히 상당한 금액이 발생하며 이는 당연히 이슬람교 관련 단체에 들어가게 된다. 특히 하나 또는 소수의 단체가 이슬람교 관련 사업을 독점하고 있는 국가들에게는 더더욱 이러하며 이들은 할랄 마크를 다는 것이 얼마나 유리한지 홍보까지 하며 돈을 벌고 있다. 이는 국내의 할랄식품이 식자재 값(닭고기, 양고기 가격은 거의 동일)이 같음에도 비 할랄 음식에 비해 비싸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인천공항 1터미널 때 모 할랄 레스토랑은 창렬한 가성비로 무슬림등에게도 외면받고 있다.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더 비싼 돈을 내고 할랄 식품을 구입하라는 말은 즉 돈으로 믿음을 살 수 있다는 말과도 같으니, 국내 일부 관광 식당들의 경우 할랄 마크만 돈 주고 구입한 상태에서 그냥 할랄 고기 아닌 걸로 쓰는 업체가 좀 있다.[208] 매우 한국식 종교관에 충실하다.
- 할랄 식품은 이슬람 국가들에서만 만든다.
- 무슬림들은 라마단 기간에는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
-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말도 안되는 소리다. 라마단은 근 한달간에 걸쳐 이루어지는데 사람이 한달동안 아무것도 안 먹는다면 대체 어떻게 살아남는단 말인가? 라마단은 해가 떠있는 동안 금식하는 기간으로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해뜨기 직전에 아침을 먹고 해가 떠있는 낮에는 점심을 굶고, 해가 진 직후에 저녁 을 먹는 식으로 라마단을 지낸다. 또한 어린이, 임신한 여성, 병자, 부상자, 피치못할 사정으로 사막을 여행중인 자 등은 금식이 면제된다. 다만 다에쉬의 경우엔 진짜 이런 미친 짓을 했다! 하지만 그 쪽은 이슬람이라 보기에도 창피한 부류니 무시하자
- 무슬림들은 모두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를 비롯한 이슬람 극단주의 집단들을 지지한다.
- 상당수 통계에서 인용되듯이, 우려할 만큼 적지않은 무슬림들이 이슬람 극단주의 집단들을 지지하는 것은 현실이다. 다만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는 요르단 조종사 분살 사건 이후 이슬람 사회에서 많은 반발이 있었다. 화형은 이슬람에서 엄격하게 금지하기 때문.
- 유럽에서 벌어지는 여러 테러리즘에 대해서도 유럽 내 무슬림들이 반IS 행진 및 시위를 벌인 적이 실제로 있다. 인디펜던트 지는 이 시위가 정작 유럽의 주류 언론에 의해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 결과 "이슬람 이민자들은 자기들은 선량하다더니 IS가 테러짓 하는 걸 배격하는 시위 했단 얘기는 1도 없네효? ㅋㅋㅋ" 하는 비아냥이 나타나곤 한다.
- 지하드는 성전을 의미한다.
- 넓은 의미의 지하드는 "투쟁"을 뜻한다. 그리고 이 투쟁에는 졸음을 참고 새벽에 일어나 예배를 근행하거나, 식욕을 참고 금지된 음식을 먹지 않거나, 남을 도와주는것 등이 모두 지하드에 속한다. 협의의 의미로 해석할 때에만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의미가 되는데, 사실 이슬람교 내부에서도 지하드를 이교도에 대한 침략 살육 정복전쟁의 의미로 사용하는 것은 다에시(IS)나 알 카에다, 탈레반, 와하비즘, 살라피즘 성향 근본주의자들인데, 이들의 세가 갈수록 커져 이슬람권 전체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 무슬림들은 이슬람교 포교를 위해 타키야를 통해 비 무슬림들에게 거짓말을 해도 된다.
- 타키야는 시아파에서 나온 주장이며 거기서도 정식 교리는 아니다. 그리고 배교 아니면 죽음을 강요받거나 전쟁 중 포로로 잡히는 등의 위급한 상황에서 거짓말이 허용된다는 것이지, 아무 때나 거짓말을 마구 해도 된다는 소리가 아니다. 일부 이슬람포비아 성향을 지닌 사람들은 이걸 빌미로 "봐라, 이슬람교도가 친절하게 굴면 사실 구라치는 거다."라는 논리를 사용한다. 물론 타키야를 악용하는 무슬림이 없지는 않지만 그런 자들은 대개 비무슬림뿐 아니라 자기와 같은 무슬림에게도 종파나 교리가 다르면 테러 대상으로 삼는 등의 막장짓거리를 하고 다니는 이들이며, 이 편견에 내포되어 있는 '성실하고 친절한 무슬림은 내수용이며 비무슬림에겐 모두 불성실할 것'이라는 전제는 성립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 이슬람교에서는 무함마드를 절대로 그리지 않는다.
- 지즈야는 이슬람교에서 타 종교인들의 개종을 강요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세금이다.
- 상당수 진실이다. 이슬람교가 사회적 우위를 점하고, 관용이라는 가면을 씌워 타종교인의 개종을 압박하기 위해 지정해 강제로 물린 차별 세금이 지즈야이다. 다만 한가지, 타 종교인들은 동시에 병역을 비롯해 무슬림들이 지켜야 하는 몇 가지 의무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에 이 측면에서만큼은 보호비로 이해해도 된다. 실제로 개종을 강요하기 위해 빡세게 문 적도 많았지만 오히려 무슬림들보다 적은 시기도 있었다고 한다.
- 참고로 이 세금을 내고 개종을 면제받은 것은 주로 기독교와 유대교 등 유일신 신도들이다. 이들은 이슬람교 입장에서는 같은 유일신을 믿는 것으로 취급되기 때문에 이슬람교 통치 체제에 저항하지 않는 한 기본적인 생업권은 보장해주는 경우도 있었고 그럴 때 물리는 세금이 지즈야였다. 인도의 무굴제국같은 경우, 힌두교도 등에도 지즈야를 물렸다가 황제 성향에 따라 폐지했다가 다시 강요했다가를 반복했다.
- 이 강제 세금의 세입이 꽤 짭짤하다 보니까 외려 이교도의 개종을 바라지 않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 이슬람교는 이교도 여성에 대한 성폭행을 긍정한다.
- 마드라사는 테러범양성소다?
- '알라'는 오로지 이슬람의 신을 의미한다.
- 콥트 정교회나 시리아 정교회, 마론파 등 아랍계 기독교인들도 기독교의 신을 '알라'라고 한다.
- 쿠란, 샤리아엔 폭력적인 구절이 있고 무슬림은 이를 실천한다.
- 그 무슬림이 살라피즘이나 와하비즘 성향이라면 그런 구절까지 지지하지만 이슬람주의자들마저 사회보수주의를 주장할 언정 그런 구절까지 실천하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미국에서 아무리 기독교 우파라도 구약성서에 나오는 투석형을 실천하지 않는 것과 같다.
- 중동과 거리가 먼 인도네시아에서도 샤리아를 지지하는 무슬림이 절반 이상이라고 나와있지만 아체 주를 제외하고는 8세기에 아바스 왕조 당시 명시된 신체절단형, 투석형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인도네시아에서도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거대한 정치세력을 이루고 있기에, 앞으로 어떻게 극단주의화가 진행될 지는 모를 문제이긴 하지만.
- 무슬림 여성들은 모두 히잡을 쓰고 있다.
- 히잡이 법적으로 강제된 이란,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외하고 무슬림 여성이라도 히잡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모로코와 리비아에서 귀화환 우메이마 파티흐와 아미라 역시 무슬림임에도 불구하고 히잡을 착용하지 않는다.
- 마지드 나와즈같은 이슬람 개혁가들은 히잡의 원래 의미는 정숙라고 해석하고 있고 베일로 해석하는 것은 오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209]
- 이슬람의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은 대다수가 히잡을 쓰고 있지만 극소수는 히잡을 쓰지 않고 활동하고 있다. 물론 사우디 내에서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아랍에미리트나 해외에서 그러는 것이다. 예를 들면 림 압둘라, 아흐드, 나딘 알 부다이르, 아미라 알 타윌, 탈리다 타메르, 디나 시하비[210] 가 대표적이다.
- 이슬람 세계에서는 패션 모델은 없고, 있어도 할리마 아덴처럼 이슬람 율법을 지켜야한다.
- 쿠란에서 남녀의 신체노출을 금지해서 그럴 듯하지만 이는 이슬람주의적 레퍼토릭이지 이슬람의 본질이 아니다.[211]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는 히잡 쓴 커머셜 모델이 있지만 이들은 이슬람주의 성향이 있어서가 아니라 히잡을 세속적인 패션으로 여기는 것이다.
- 신체 노출을 하는 패션 모델 중에서 무슬림 정체성을 유지한 이만 하맘, 야스민 가우리, 샤니나 샤이크, 알리사흐 알리, 탈리다 타메르, 힌드 사흘리, 아미나 카두르, 하나 벤 압데슬렘이 있고 조상이 무슬림이지만 비종교인인 이리나 샤크, 호다 니쿠, 야스민 르 봉, 비다 모하마드가 있다.[212]
- 이슬람 사회에서는 인종차별이 없다.
14. 창작물에서
이슬람 문화 자체가 한국에서는 생소한 개념이다보니, 이슬람교를 다룬 창작물은 많이 존재하지 않는다.하지만 보통 이슬람교와 관련된 내용들이 나올 경우, 서구 세력과 대립하는 악의 세력으로 나오거나,[214] 머나먼 미지의 문화 정도로 나오는 경우가 잦다. (보수[215] + 진보 언론의 지탄 및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범죄, 테러, 살해 사건, 이슬람 국가들과 사회의 악명높은 인권탄압과 성차별, 종교적인 불관용 등으로) 사우스 파크 같은 미국의 TV 방송에서는 이슬람에 대해 부정적인 면을 다루기도 했다.[216]
원래도 취급이 좋지 않았지만 9.11 테러나 2010년대 다에쉬의 대두 이후 전반적으로 무슬림이나 이슬람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경향이 더 강해졌는데 대부분의 테러리스트를 보면 아랍 출신으로 묘사된다. 한편 대부분의 무슬림들이 이슬람의 묘사에 굉장히 호전적으로 반응하며,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경우 정당한 비판일지라도 살해위협을 받기 때문에[217] 창작물에서도 가급적이면 묘사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218] 그야말로 물론 기독교를 비판한 경우 기독교계에서 아예 반응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유독 이슬람 신자들은 자기들이 조금이라도 풍자 및 비판을 받는 것을 아니꼬워하다 못해 절대 용납을 못하는 편협한 경향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악마의 시 사건인데 1988년에 인도 출신의 작가인 살만 루시디가 악마의 시를 출간하자 이란의 호메이니는 이슬람에 대해 부정적으로 다루었다는 이유로 작가를 포함해 악마의 시를 번역, 출판하는 것에 관여한 모든 사람을 죽여야 한다고 파트와(종교적 판결, 선언)를 내렸다. 그 뒤 일본에서 악마의 시를 일본어로 번역한 사람이 피살된 사건이 일어났으며, 루시디 본인을 포함해 출판 및 번역에 관계된 사람들은 생명의 위협을 받아야 했다. 이후 1998년에 이란 정부에서는 루시디에게 이제는 괜찮다는 듯한 요지의 외교적 발언을 했으나 파트와를 선언한 호메이니가 1989년에 사망했기 때문에 선언자만 철회할 수 있다는 규정에 의해 풀리지 않은 상태다.
특히 일본산 서브컬처에서는 이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있어봐야 겨우 몇몇 캐릭터의 프로필에 '출신: 중동 어디어디 국가'라는 식으로 묘사하는 게 전부고,[219] 그나마도 그들의 무슬림으로서의 모습은 거의 묘사하지 않는다. 죠죠의 기묘한 모험에서도 이슬람계 캐릭터는 무함마드 압둘과 우루무드 압둘이 전부였고 그나마 무함마드 압둘도 이슬람적 느낌은 잘해야 캐릭터 디자인에서 중동적 외모가 조금 드러나거나 돼지고기를 기피하는 모습 정도가 전부. 스트리트 파이터 4의 하칸은 터키 출신이라면서 아예 대놓고 중동스럽게 생기지도 않았다.[220] 종교에 관해서 다루는 대표적인 라이트 노벨인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에서도 이슬람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작가인 카마치 카즈마와 전격문고 편집부는 이슬람에 대해 자료가 방대하고 테러리즘의 위협을 예로 들며 짧게 언급했다. 기독교에 대해 거의 판타지스럽게 묘사하는 것과는 반대다.
특히 미소녀 지상주의로 흘러가는 요즘의 서브컬처의 애니메이션, 라이트 노벨, 에로게, 만화에서는 수녀, 무녀[221] 등은 모에 아이템으로 잘만 활용하지만 이슬람은 나오지 않는다. 잘해봐야 하렘이나 무희, 벨리댄스를 연상시키는 의상 정도. 근데 사실 하렘도 이슬람이라기보다는 아랍 & 페르시아 & 튀르크 문화권에서 따온 부분이고 일반적으로 알려진 중동의 무희 역시 이슬람이 아니라 페르시아 쪽에서 따온 부분이다. 즉, 하렘이나 무희는 이슬람적 요소라고 보긴 힘들고 정말 사실적으로 묘사하려면 여캐들에겐 히잡이나 차도르를 씌워야하며 외간 남자들 앞에선 절대 벗으면 안 되는데 갈수록 여캐들을 벗기고 있는 서브컬처 창작자들에겐 영 좋지 않다.
풀 메탈 패닉의 주인공 사가라 소스케 정도가 무슬림 주인공의 전부. 쿠란을 암송할 정도라지만 작중 무슬림으로서의 정체성이 딱히 부각되게 묘사되지는 않는다.[222][223][224] 기동전사 건담 00의 주인공 세츠나 F. 세이에이는 중동 출신이지만 무신론자이기 때문에 무슬림은 아니다.
마블 코믹스에는 미즈 마블로 활동하는 카말라 칸이 있다.
약간 특이한 사항으로 기동전사 건담 ZZ에 등장하는 아프리카의 지온 잔당 “푸른 부대” 일당이 살고 있는 지역이 이슬람교 비슷한 종교를 믿고 있다. 근데 주민들이 예배시간이 됐는데 난데없이 맨바닥에 없드려서 우두 세정의식도 없이 절을 한다(...).
한가지 특이한 사항으로는 에로게 메이커인 앨리스 소프트가 챔피언 소프트라는 이름을 쓰던 당시에 마지막으로 발매된 PC-98용 게임이 이슬람을 다루었다. 리뷰를 보면 의외로 흥미롭고 재미있는 게임이었다.
한 SF 소설에서는 이슬람을 싫어하는 과학자가 타임머신으로 과거로 가서 무함마드를 만나 미래의 첨단 장비를 이용해 자신이 대천사 지브릴(가브리엘)이라고 속여서 무함마드를 그냥 기독교인으로 남게 하여 이슬람이 영원히 생기지 않게 만들었다. 이슬람과 비슷한 종교들이 생겨났지만 그 종교들이 술을 금지하자 아랍 유목민들에게 미친 놈들이라고 비난만 듣고 사라졌다는 이야기와 같이. 그렇게 이슬람은 사라지고 아랍은 기독교가 주류 종교인 곳으로 남게 되었는데... 헌데 문제는 아랍 기독교로 이어져서 미래에 이슬람 대신 아랍 기독교가 샤리아를 받아들이고, 유럽과 미국 기독교가 아랍 기독교는 이단이라고 주장해서 십자군 전쟁이 일어났고 현대에도 근본주의 아랍 기독교인들이 테러를 저지르는 등, 단편적인 역사는 달라진 게 전혀 없었다. 그냥 이슬람이 아랍 기독교로 바뀌었을 뿐. 그 과학자는 털썩 주저앉아 버리면서 끝난다. #
메이플스토리의 자쿰은 이슬람의 지옥에서 자라나는 나무인 زقوم(Zaqqum)이 유래다. 때문에 자쿰 퀘스트 관련 NPC들은 죄다 중동 쪽 복장을 하고있다.
일본 매체물은 이슬람에 관심이 없고 보기가 드물지만 서구권에서 제작한 매체물에서는 흔하게 등장은 한다. 하지만 서구권에서는 이슬람에 대한 공포가 다소 존재하기에 서구권의 매체물에서 이슬람은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경향이 많다. 특히 이슬람 근본주의의 추태로 인해 이슬람이 게임물에서 더욱 안 좋게 묘사된다. 그 예로 카운터 스트라이크(Counter-Strike) 클로즈 컴뱃(Close Combat: First to Fight), 아메리카스 아미(America`s Army), 배틀필드 시리즈에서 적이 무슬림으로 많이 나온다. 커맨드 앤 컨커 제너럴에서도 이슬람 세력인 GLA 진영을 테러집단으로 묘사했다. 중세 판타지의 경우 이슬람은 유럽의 서구권보다 뒤쳐지며 종속되었다는 식으로 많이 나온다. 아예 서구한테 멸망당해 그들의 국민으로 살며 용병, 유목민으로 생계를 이어간다는 설정까지 종종 볼 수 있다.[225] 근데 오스만 제국과 사파비 왕조 페르시아가 쇠퇴하면서 이란과 터키를 제외한 이슬람 국가 대부분이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가 되었던 적이 있기에 이런 모습이 나타나는 게 틀린 것만은 아니다. 현대에 이슬람 국가들 전체가 서구를 증오해도 군사력과 기술력, 경제력에서 상대가 안 되기 때문에 서구의 눈치를 보는 형편이다.
현대에는 서구권한테 경제제재를 당하면 이슬람 국가들의 경제가 치명타를 입기에 서구권의 말은 절대로 무시 못하지만, 중세나 판타지, 그것도 명백하게 기독교권이 패배한 십자군 전쟁스러운 시대극에서 이슬람권을 모티브로 한 세력이 미개인 또는 피정복민으로 나오는 건 그냥 서구 우월주의의 반영일 뿐이다. 능력치 또한 서구권보다 더 약하게 나온다.[226] 그나마 밸런스가 공평한 게임이 토탈워 시리즈와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시리즈 등의 역사 게임인데 이건 역사적 재현성에 비중을 두어야 하는 역사물이니 중세, 근세 이슬람 제국들의 강함을 그대로 표현하는 경향이 더하다. 게다가 이런 게임들은 무슬림 국가에서도 나름 좋게 보여준다고 수요도 있고...
그러다보니 이슬람권에서는 서구의 게임을 굉장히 혐오하는 사람이 많다. 특히 이런식으로 이슬람을 막장 광신도들, 테러 집단, 서방보다 뒤떨어진 국가들, 서방에게 종속된 노예로 묘사한다며 비난한다. 이슬람 국가들은 아예 이 게임들을 금지한다. 물론 이 게임들이 이슬람권보다 비이슬람권에서 잘 팔리고[227] 이익도 거기서 많이 나오다보니 서구의 게임 제작사들은 그런거 신경안쓰고 마음놓고 이슬람을 부정적으로 표현한다. 그래서 이는 이슬람 국가들에게 반서구 감정을 더 강하게 만드는 원인제공을 하기도 한다. 일례로 미국과 이란의 관계가 험악하던 조지 부시 대통령 당시 미국 쿠마 게임사에서 미국 특수부대가 이란의 핵시설을 파괴한다는 내용의 이란 강습(Assault on Iran)을 만들어 이란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2003년에는 페트릴라 엔터테인먼트에서 퀘스트 포 사담(Quest for Saddam)이라는 게임을 제작하여 이라크와 이슬람권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왜냐면 이 퀘스트 포 사담이 미국 특수부대가 그 당시 대통령이던 사담 후세인을 사살한다는 내용을 담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슬람권에서 반미감정이 심해졌다.[228] 이러다보니 문화계에서는 게임업계와 대안우파의 접점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들도 있다는 설이 있다.
이 반이슬람 게임에 대항하기 위해 이슬람권도 가만있지 않아 알 카에다의 선전 기관인 세계 이슬람 매체에서 부시 대통령을 죽인다는 퀘스트 포 부시를 제작하여 배포하였다. 이외에도 이란의 반미 학생단체 'Union of Islamic Student Societies(UISS)'이 이란 특수부대가 미국으로 쳐들어가 미국에 억류된 이란인 핵 과학자를 구출하는 내용의 게임을 만들었다. 또 2000년대 초반부터 이슬람권에서는 이른바 '돌 던지는 자(The Stone Throwers)'로 불리우는 온라인 게임이 제작되었다. 이 게임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핵심인물들을 맞추는 게임이다. 당연히 이 게임들은 너무나 저질인 똥겜에다[229][230] 세계적으로 금지된 게임이지만 유독 이슬람권에서만 성공하였다. 그것도 청년층에게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것. 그만큼 서구 게임 제작사들의 반이슬람 묘사에 대한 분노가 크다는 의미다.
이슬람에 대해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작품은 의외로 스페인 미니어쳐 게임인 인피니티다. 여기서는 이슬람이 근본주의에서 탈피한 모습으로 나오는데 이슬람을 호의적인 시선으로 크게 재해석해서 등장시켰다.[231][232] 다만 내부적으론 해적과 노예 제도가 남아있고 암살자들을 적진에 파견하여 자폭시키는 등의 전근대적이고 부정적인 모습들이 조금 남아있다.
14.1. 관련 창작물
- 아라비안 나이트
- 천일일화
- 악마의 시
- 데저트 플라워
- 내 이름은 칸
- [233]
- 용오
- 풀 메탈 패닉[234]
- 하르마탄[235]
- 인피니티(게임)-하퀴슬람[236]
- gold ring[237]
15. 여담
가끔 유튜브에서 아랍어나 터키어를 가르쳐주겠다고 비무슬림들이나 타종교인에게 샤하다를 따라하게 시키고 나서 "축하합니다. 당신은 샤하다를 했으니 이제 무슬림입니다(!)"하고 말하여 상대방을 당황하게 만드는 장난 비디오를 볼 수 있는데, 말 그대로 장난일 뿐, 타종교인이나 비(非)무슬림이 저 말을 아무 생각 없이(또는 학술적 목적으로) 따라했다고 해서 자동으로 무슬림이 되는 건 아니다.
코로나 19 사태 당시 이슬람 국가들이 모스크 닫는 등 강경책을 쓰는 와중에 한국의 범 개신교 집단감염이 터지고나서 이슬람교에 대한 아주 약간 이미지 개선에 도움되었다는 점이다.[238][239]
15.1. 인터넷 접미사 ~슬람
이슬람에서 따 온 인터넷 은어 접미사. 무슬림에서 따 와 ~슬림이라고도 하나 이는 잘 쓰이지 않는다.
불특정 집단이 특정한 대상에 대해서 종교적으로 까지 보이는 불합리하고 맹목적인 추종, 옹호, 열광 등의 행동을 보일 때 사용한다. '고리타분하고 꽉 막혔다'는 뉘앙스를 주므로 여기서 말하는 '~슬람(~슬림)'은 이슬람 근본주의 등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인 면에서 나온 것이다. 예시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개슬람: 개 + 이슬람. 사실 다른 대상을 욕하는 게 아니라 개독교에서 나온 말로, 이슬람 자체를 욕하는 말이다.(개독과 달리 이슬람 전체를 욕하는 뉘앙스가 강하다.) 놀라운 점은 이슬람에서는 개를 더러운 동물로 보고 매우 혐오한다는 것(...). 말레이시아에서는 개를 만지는 것조차 하람(부정한 행위)으로 정의했다. 이슬람권에서 사건이 터지면 한 술 더 떠 미개슬람이라고도...
- 나치슬람: 나치 + 이슬람. 서구권에서 이슬람을 비하할 때 쓰는 말이다. 개슬람의 서구 버전. 실제로 前 메이저리그의 선발투수였던 커트 실링은 무슬림이 나치보다 못하다는 비판 발언을 했다가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 도슬람: 리그 오브 레전드의 악성 유저인 롤독(교)(롤+개독/기독교)에 대치되는 개념으로 만들어진 단어. 원래는 악성 도타유저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언제부턴가 일반적인 도타 유저들도 자신을 도슬람이라 칭하더니 어느샌가 도타 유저 및 팬덤 전반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 리슬람: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리븐을 사용하는 유저들이 리븐은 너프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별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대고 실드를 치는 양심없는 유저들을 비난하는 단어. 실제로 리븐은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챔피언이었고, 다른 암살자 챔피언들과 비교해서 너프를 해야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라이엇 측에서 계속 내버려 두기 때문에 논란이 계속되는 것. 리븐 유저들은 '리븐은 엄청 어려우니까 그 점 감안해서 내버려 두는 거임'이라는 이유를 대기도 하는데, 그런 것이라면 당연히 리메이크된 갱플랭크도 너프를 하면 안 됐었지만 갱플랭크의 화약통 데미지가 말이 안 된다는 등의 소리가 나오면서 결국 난도질 당하였다. 2020년 현재는 간접너프, 리븐 자체의 성능도 너프먹고 다른 카운터챔의 버프로 인해서 4티어에 안착했다. 리븐의 포지션은 다리우스로 넘어갔다.
- 문슬람: 문재인의 극성 지지자들이 마치 무슬림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쉐슬람: 그런데 쉐슬람은 자신이 쉐보레 차량을 타고 다니면 자기 자신을 쉐슬람이라 칭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만년필 제조사 쉐퍼의 펜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쉐슬람이라 하기도 한다.
- 유슬람: 한국에서 변질된 성리학 사상을 비꼬는 말. 비슷한 단어로 유교탈레반이 있다.
- 특슬람: 레이 커즈와일의 저서 '특이점이 온다'에서 유래한 드립을 치는 유저들을 비꼬아 특슬람이라고 부른다.
- 즈이슬람: 함대 컬렉션의 정규항모인 즈이카쿠의 빠돌이를 즈이슬람이라 부른다.
- 위슬람: 더 위쳐 시리즈의 악성 팬덤을 이렇게 부른다.
16. 관련 이념
1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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