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거리트 드 라발레

 

1. 개요
2. 대중매체
3. 관련 문서


1. 개요


'''마거리트 드 라발레'''(Marguerite de Ravalet)는 투를라빌(Tourlaville)의 영주 장 3세 드 라발레(Jean III de Ravalet)의 딸이다. 친오빠인 줄리앙 드 라발레(Julien de Ravalet)와의 근친상간 이야기로 유명하다. 투를라빌은 프랑스 노르망디에 있는 지역의 옛 이름이다.
줄리앙 드 라발레는 1582년에 태어났고, 마거리트 드 라발레는 1586년에 태어났다. 11명의 형제자매가 있었는데, 마거리트와 줄리앙간의 애정이 단순한 남매애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부모는 둘을 같이 있지 못하게 했다. 부모는 둘을 떼어 놓으려 13세의 줄리앙을 쿠탕스에 있는 대학으로 보낸다.
3년이 지나 줄리앙이 돌아오자, 마거리트는 투를라빌의 노트르담에서 32세의 장 르페브르 드 오피투아(Jean Lefevre de Haupitois)와 결혼한다. 1600년 3월 20일의 일이다. 마거리트의 남편은 귀족은 아니었지만 세금 징수원으로 많은 돈을 버는 사람이었다. 마거리트는 남편과 자녀도 한 명(딸 루이즈) 두었다. 그러나 전반적인 결혼생활은 행복하지 못했으며, 결국 오빠와 관계를 가져 둘째(아들 줄리앙)를 임신한다. 이에 마거리트의 남편은 둘을 고발하였으며, 둘은 간통과 근친상간 혐의로 1603년 9월 8일에 체포된다. 마거리트는 이후 둘째를 출산한다.
아이는 둘의 형/오빠 필립이 맡겨졌으며 이후 그들의 부모가 아이를 돌본다. 아버지와 형제들은 마거리트와 줄리앙을 구하기 위해 탄원서를 내어 사형만은 시키지 말아 달라고 했지만, 앙리 4세는 "그 여인이 결혼을 하지 않았으면 기꺼이 은혜를 베풀 수 있었겠지만 (결혼을 했으니) 차마 그럴 수는 없다"라는 말로 일축했고, 결국 마거리트는 친오빠와 같이 21세, 17세의 나이로 프랑스 파리의 그레브 광장에서 참수형에 처해졌다.

2. 대중매체


이 남매의 이야기는 프랑스 소설가 쥘 바르베 도르비이가 쓴 '역사의 한 페이지'(1882년)라는 단편에 직접적으로 나온다.
가엾도다, 그녀는 창녀1603년 프랑스에서 남매 근친상간의 혐의로 처형된 쥘리앙 드 라발레마르그리트 드 라발레의 실화를 모델로 제작된 희곡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수아 트뤼포가 이들의 삶을 영화화하고 싶어했으며, 각본도 썼는데 만들어지지 못했다. 이후 발레리 돈젤리 감독이 마르그리트와 줄리앙이라는 제목으로 그 각본을 영화화해 2015년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평은 안 좋은 편.

3.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