맙 딥
[image]
''' Mobb Deep ''' 은 1991년부터 2017년까지 활동했던 미국의 힙합 듀오이다. 사진은 오른쪽부터 프로디지, 해복
골든에라 동부 힙합을 대표하는 그룹들 중 하나로 꼽힌다. 퀸스에서 결성되었다. 나스와 함께 퀸즈 브릿지 크루를 결성하나, 듀오로서의 활동이 더욱 두드러졌다. 주로 퀸즈브릿지의 잔혹한 범죄를 랩으로 표현한것과 이스트 코스트답게 어둡고 둔탁한 비트가 특징.[2] 1991년 결성되었고 1993년 첫 앨범 'Juvenile Hell' 을 냈다.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흥행에는 실패. 2집 'Infamous'를 기점으로 골든에라를 대표할 명반들을 배출하지만, 2001년 'Infamy' 의 성적은 좋지 않았고 50 센트와 계약 후 G-유닛에 들어간 뒤로는 좀더 확실히 망했어요. 엄밀히 말하면 소정의 성과는 거두었지만 컨셉이 달라져서 아쉬워하는 팬들이 많았다. 인기가 많았던 시절의 컨셉은 매우 거칠며 그래서 이 양반들 공연땐 경찰이 항상 깔려있다.
지누션 3집 The Reign에 Holding Down을 피쳐링을 하기도 하였다.
'''QB RIP King P. Prodigy 4 Ever'''
본명은 앨버트 존슨 ( Albert Johnson ) , 1974년 11월 2일 뉴욕 햄프스테드 출신.
나스의 데뷔앨범 'Illmatic'에 작사가로 데뷔했으며, 그후 해복과 맙 딥을 결성하여 지금까지의 유명세를 맙 딥 멤버 활동에서 쌓게 된다. 전성기 시절에는 맙 딥의 명곡 'Shook One's Part 2'를 작곡했으며 2008년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깐 적도 있다. 현재는 감옥에서 수감중이며, 50센트가 프로디지를 석방시키려고 보석금을 내고있는 중이다. 여담으로 겸상 적혈구 증후군 환자이다.[3][4][5]
목소리톤의 변화가 잦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1집 Juvenile Hell 같은 경우엔 얇고 2집 이후에 비해 활력있는 톤이였는데 2집 이후 컨셉트의 변화 때문인지 좀 더 착 가라앉은 톤으로 변화했다.
전성기를 벗어난 후 솔로 앨범인 H.N.I.C 부턴 현재의 가래끓는 두꺼운 톤으로 변화했다.
맙 딥 앨범 이외에도 솔로작들을 발매했는데 H.N.I.C가 1집이고 가장 평이 좋다. 그후에 발매한 3장의 앨범은 전성기를 무색하게 할 만큼 폭망...
해복과의 불화로 멀어진 겸 솔로 프로젝트 할 겸해서 인지 몰라도 북미 유명 프로듀서인 알케미스트 (Alchemist)와의 합작이 잦은 편이지만 그 역시 1집 이후엔 프로디지도 맛이가고 알케미스트도 극도의 슬럼프덕에 좋은 작품은 드물었다.
이름때문에 영국 일렉트로닉 그룹 프로디지 와 종종 혼동된다.
2017년 6월 20일자로 라스베이거스에서 병원 급식으로 나온 계란을 먹다 질식해서 사망했다고 한다. 향년 42세.
영문으로는 Havoc 이라고 쓴다. 본명은 케주안 왈리에크 무치타 ( Kejuan Waliek Muchita ) , 1974년 5월 21일 , 뉴욕 퀸즈 출신.
팀에서 랩과 프로듀싱을 맡고 있다. 몹 딥 특유의 살벌한 비트는 대부분 해복이 프로듀싱한 곡들이다. 예를 들면 'Shook Ones Pt. 2'.
샘플링을 주력으로 삼지만, 샘플의 음을 낮추고(피치 다운), 자르고, 붙이고 해서 거의 재창작하는 위엄을 선보인다. 위에서 설명한 Shook ones Pt.2도 그 예이다. 오리지널 샘플이랑 비트를 비교해보면 천지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하보크의 비트의 원본 샘플을 찾는데는 상당히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도 악명높다. 위에서 설명했다시피 붐뱁 위주 프로듀서이지만 둔탁하고 무거운 드럼을 쓰기보다는 메마른 느낌의 드럼을 주로 사용한다.
프로디지가 워낙 멋진 라임을 써대고 본인은 프로듀싱을 전담하고 있던 탓에 1PD 1MC 구성이라고 착각하기도지만 해복의 랩 실력도 전혀 뒤쳐지지 않는다.
Havoc이 막내 아들 유치원 졸업식에 참석했는데, 그 날 오전 11시에 프로디지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평소에 Prodigy와 같이 병원을 따라가 줬고, 평소에도 겸형 적혈구 빈혈증 때문에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P였기에 처음에는 그가 죽었다는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였다는데, 최근에 입원할 당시에도 매일 매일 P의 건강 상태를 체크받았던 그였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죽었다는 걸 깨닫게 된 뒤로는 매니저는 눈물을 펑펑 쏟았고 Havoc도 충격에 휩싸였다고 한다. 졸업식 끝나고 막내아들하고 외식하러 가던 도중에 이런 불행이 닥친 것이다. 현재 그는 Prodigy의 목소리가 담긴 곡들, Shook Ones 등의 곡들을 듣지 못 할 정도로 절망에 빠졌다고 한다. 그래서 사실상 Mobb deep으로서의 커리어는 끝난 상태.
1집 - Juvenile Hell (1993)
2집 - The Infamous (1995)[7]
3집 - Hell on Earth (1996)[8][9]
4집 - Murda Musik (1999)[10]
5집 - Infarmy (2001) [11]
6집 - Armerikaz Nightmare (2004)
7집 - Blood Money (2006)
8집 - Infamous Mobb Deep (2014)[12]
1. 개요
''' Mobb Deep ''' 은 1991년부터 2017년까지 활동했던 미국의 힙합 듀오이다. 사진은 오른쪽부터 프로디지, 해복
2. 상세
골든에라 동부 힙합을 대표하는 그룹들 중 하나로 꼽힌다. 퀸스에서 결성되었다. 나스와 함께 퀸즈 브릿지 크루를 결성하나, 듀오로서의 활동이 더욱 두드러졌다. 주로 퀸즈브릿지의 잔혹한 범죄를 랩으로 표현한것과 이스트 코스트답게 어둡고 둔탁한 비트가 특징.[2] 1991년 결성되었고 1993년 첫 앨범 'Juvenile Hell' 을 냈다.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흥행에는 실패. 2집 'Infamous'를 기점으로 골든에라를 대표할 명반들을 배출하지만, 2001년 'Infamy' 의 성적은 좋지 않았고 50 센트와 계약 후 G-유닛에 들어간 뒤로는 좀더 확실히 망했어요. 엄밀히 말하면 소정의 성과는 거두었지만 컨셉이 달라져서 아쉬워하는 팬들이 많았다. 인기가 많았던 시절의 컨셉은 매우 거칠며 그래서 이 양반들 공연땐 경찰이 항상 깔려있다.
지누션 3집 The Reign에 Holding Down을 피쳐링을 하기도 하였다.
3. 멤버
3.1. 프로디지
'''QB RIP King P. Prodigy 4 Ever'''
본명은 앨버트 존슨 ( Albert Johnson ) , 1974년 11월 2일 뉴욕 햄프스테드 출신.
나스의 데뷔앨범 'Illmatic'에 작사가로 데뷔했으며, 그후 해복과 맙 딥을 결성하여 지금까지의 유명세를 맙 딥 멤버 활동에서 쌓게 된다. 전성기 시절에는 맙 딥의 명곡 'Shook One's Part 2'를 작곡했으며 2008년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깐 적도 있다. 현재는 감옥에서 수감중이며, 50센트가 프로디지를 석방시키려고 보석금을 내고있는 중이다. 여담으로 겸상 적혈구 증후군 환자이다.[3][4][5]
목소리톤의 변화가 잦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1집 Juvenile Hell 같은 경우엔 얇고 2집 이후에 비해 활력있는 톤이였는데 2집 이후 컨셉트의 변화 때문인지 좀 더 착 가라앉은 톤으로 변화했다.
전성기를 벗어난 후 솔로 앨범인 H.N.I.C 부턴 현재의 가래끓는 두꺼운 톤으로 변화했다.
맙 딥 앨범 이외에도 솔로작들을 발매했는데 H.N.I.C가 1집이고 가장 평이 좋다. 그후에 발매한 3장의 앨범은 전성기를 무색하게 할 만큼 폭망...
해복과의 불화로 멀어진 겸 솔로 프로젝트 할 겸해서 인지 몰라도 북미 유명 프로듀서인 알케미스트 (Alchemist)와의 합작이 잦은 편이지만 그 역시 1집 이후엔 프로디지도 맛이가고 알케미스트도 극도의 슬럼프덕에 좋은 작품은 드물었다.
이름때문에 영국 일렉트로닉 그룹 프로디지 와 종종 혼동된다.
2017년 6월 20일자로 라스베이거스에서 병원 급식으로 나온 계란을 먹다 질식해서 사망했다고 한다. 향년 42세.
3.2. 해복
영문으로는 Havoc 이라고 쓴다. 본명은 케주안 왈리에크 무치타 ( Kejuan Waliek Muchita ) , 1974년 5월 21일 , 뉴욕 퀸즈 출신.
팀에서 랩과 프로듀싱을 맡고 있다. 몹 딥 특유의 살벌한 비트는 대부분 해복이 프로듀싱한 곡들이다. 예를 들면 'Shook Ones Pt. 2'.
샘플링을 주력으로 삼지만, 샘플의 음을 낮추고(피치 다운), 자르고, 붙이고 해서 거의 재창작하는 위엄을 선보인다. 위에서 설명한 Shook ones Pt.2도 그 예이다. 오리지널 샘플이랑 비트를 비교해보면 천지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하보크의 비트의 원본 샘플을 찾는데는 상당히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도 악명높다. 위에서 설명했다시피 붐뱁 위주 프로듀서이지만 둔탁하고 무거운 드럼을 쓰기보다는 메마른 느낌의 드럼을 주로 사용한다.
프로디지가 워낙 멋진 라임을 써대고 본인은 프로듀싱을 전담하고 있던 탓에 1PD 1MC 구성이라고 착각하기도지만 해복의 랩 실력도 전혀 뒤쳐지지 않는다.
Havoc이 막내 아들 유치원 졸업식에 참석했는데, 그 날 오전 11시에 프로디지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평소에 Prodigy와 같이 병원을 따라가 줬고, 평소에도 겸형 적혈구 빈혈증 때문에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P였기에 처음에는 그가 죽었다는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였다는데, 최근에 입원할 당시에도 매일 매일 P의 건강 상태를 체크받았던 그였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죽었다는 걸 깨닫게 된 뒤로는 매니저는 눈물을 펑펑 쏟았고 Havoc도 충격에 휩싸였다고 한다. 졸업식 끝나고 막내아들하고 외식하러 가던 도중에 이런 불행이 닥친 것이다. 현재 그는 Prodigy의 목소리가 담긴 곡들, Shook Ones 등의 곡들을 듣지 못 할 정도로 절망에 빠졌다고 한다. 그래서 사실상 Mobb deep으로서의 커리어는 끝난 상태.
4. 디스코그래피[6]
1집 - Juvenile Hell (1993)
2집 - The Infamous (1995)[7]
3집 - Hell on Earth (1996)[8][9]
4집 - Murda Musik (1999)[10]
5집 - Infarmy (2001) [11]
6집 - Armerikaz Nightmare (2004)
7집 - Blood Money (2006)
8집 - Infamous Mobb Deep (2014)[12]
[1] 맙 딥의 정규앨범만을 서술한다.[2] 다른 동부 힙합이 드럼을 둔탁하게 친다고 하면 이 쪽은 스틱으로 철제 책상을 때리는 비트라고 표현할 정도로 메마른 듯한 드럼을 들려준다.[3] 2Pac이 Hit `em Up에서 이 사실을 언급하며 그를 깠다. 정확히는 ''''니네들 중 하나(one of you niggaz)''''라 했지만[4] '''Don't one of you niggas got sickle-cell or something(니 놈들 중에 하나가 겸상적혈구증인가 뭔가 걸리지 않았어?)'''[5] 아래의 서술에서 나온 것 처럼 톤의 변화가 잦은 편인데, 이게 컨셉에 맞춘 의도적인 변화가 아니라 그냥 병 때문에 아파서라는 설도 있다.[6] 맙 딥의 정규앨범만을 서술한다.[7] 맙 딥의 마스터피스라 불리는 앨범으로 가장 명곡인 Shook Ones Pt. 2 가 수록되어있다[8] 맙 딥의 연타석 홈런, 2집보다 더 음울한 트랙들을 수록하고 있으며 90년대의 클래식중 하나[9] 투팍 디스곡인 Drop the Gem On'em이 수록되어있다.[10] 전작들만 못하지만 감각을 유지하고 있던 맙 딥인지라 좋은 평가를 받으며 명곡중 하나인 Quiet Storm도 수록되있다.[11] 맙 딥 몰락의 서막, 3연벙급으로 이어지는 다음 작품들도 낮은 평가를 받았다. [12] 맙 딥의 간만에 낸 정규작으로 과거만큼은 아니여도 향수를 일께운다는 평을 리드머로부터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