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버락 오바마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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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합중국 제44대 대통령
버락 후세인 오바마 2세
Barack Hussein Obama II
[1]'''
<colbgcolor=#0d164a><colcolor=#ffc224> '''출생'''
1961년 8월 4일 (63세)
미국 하와이 주 호놀룰루
'''재임기간'''
제44대 대통령
2009년 1월 20일 ~ 2017년 1월 20일
'''서명'''
'''링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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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d164a><colcolor=#ffc224> '''부모'''
아버지 버락 오바마 시니어
어머니 앤 던햄
'''배우자'''
미셸 오바마
'''자녀'''
장녀 말리아 오바마 (1998~)
차녀 샤샤 오바마 (2001~)
'''학력'''
푸나아우 스쿨 (졸업)
옥시덴탈 대학교 (편입)
컬럼비아 대학교 (정치학 / B.A.)
하버드 대학교 법학대학원 (법학 / J.D.)
'''종교'''
개신교 (침례회)[64][65]
'''신체'''
185cm, 79.4kg, AB형(Rh-)
'''정당'''

'''상훈'''
노벨 평화상 (2009)
쇼아재단 인류대사상 (2014)
'''약력'''
일리노이 주의회 상원의원 (1997~2004)
일리노이 주 연방 상원의원 (2005~2008)
'''미국 제44대 대통령'''

'''공식 초상화'''
1. 개요
2. 생애
2.1. 성장기
2.2. 의원 시절
2.3. 2008년 대통령 선거
2.4. 선거 운동의 혁명
2.5. 미국 최초의 유색인종 대통령 당선
2.7. 퇴임 후
4. 어록
5. 가족
6. 선거 이력
7. 기타
7.1. 인종
7.2. 스포츠광 오바마의 오바마 징크스
7.3. 2009년 노벨평화상 수상과 잡음
8. 등장 매체
9.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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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대 미국 대통령 취임 선서'''

1. 개요


'''"Yes, We can!'''''

'''''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2008년, 첫 대선 도전 당시 슬로건이자, 두번째 임기를 마치기 바로 전에 한 고별연설 끝부분에서 언급한 말.[3]

오바마를 상징하는 구호이자 그의 대통령 인생의 처음이자 끝을 장식한 말이다.

미국의 제44대 대통령.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유색인종 대통령이다.
풀네임은 버락 후세인 오바마 2세이며, 이 이름 자체가 다양한 배경을 암시하고 있다. 버락은 스와힐리어로 "신의 축복을 받은 자" 라는 의미이며 후세인은 무슬림인 그의 조부 이름을 딴 것이다. 오바마라는 이름은 케냐 루오족의 남자 이름이다.[4] 사족으로 그의 조부는 케냐에서 독립운동혐의로 영국에서 체포되어 고문을 받아 불구가 되었고 아버지도 미국으로 유학을 왔을 때 외국에 유학간 케냐 인재라고 따로 명단이 만들어져 있었다. 즉 오바마는 케냐 무슬림 집안 출신이고 케냐 경제학자 출신의 아버지를 두었으나[5] 미국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 본인은 무슬림이 아닌, 꽤나 복잡한 성장 환경의 소유자인 셈이다.
미들네임인 후세인 때문에 사담 후세인과 겹쳐서 무슬림으로 오해받고 이를 노린 악성 동영상이 돌아다녔다. 심지어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공화당에서도 이를 이용한 유세를 펼쳤었는데, 그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의 "그는 물론 기독교인입니다. 하지만 무슬림이면 어떻습니까?" 발언으로 전화위복되었다.[6] 이후로 공화당은 저 유세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도 미국민의 12% 정도는 오바마가 무슬림이라고 믿고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있다.[7]
참고로 미국은 헌법상으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청교도들의 이주에서 시작한 것도 있고 대체로 청교도가 많아 가끔 착각하는 듯 하지만 신정국가가 아니다. 그러나 배경은 무시할 수 없으므로 사회적으로는 기독교를 매우 숭상하는 편이다. 이는 미국의 헌법 자체가 개신교(적 유신론) 사상에 바탕하여 쓰여졌다고 미국민들이 생각하고[8] 그로 인해 전통적으로 선서나 맹세 등 중요한 건 웬만하면 다 성경[9]에 대고 하기 때문이다.[10] 그래서인지 역대 대통령은 현재까지 모두 기독교인이었다.
재임 시절 시크릿 서비스가 경호 시 사용한 코드 네임은 이단자(Renegade)로 흑인 문화에서 시스템에 역행한다는 의미를 지닌다.[11] 아내 미셸은 르네상스(Renaissance)로 딸 말리아와 사샤는 각각 광휘(Radiance), 장미봉오리(Rosebud)이다.

2. 생애



2.1. 성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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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경에 찍힌 어린 오바마와 그의 어머니.
1961년 하와이 마노아 대학교로 유학 온 케냐 출신 유학생 버락 오바마 시니어(1936~1982)와 백인 스탠리 앤 던햄(1942~1995)[12] 사이에서 태어났다.[13] 부모는 오바마가 2살 때 이혼하여 조부모 밑에서 자랐고, 1966~1967년경에 친모가 인도네시아 출신 유학생 롤로 수토로(1936~1987)와 재혼하면서 자카르타로 옮겨 기독교 계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진학 뒤 1971년 미국 하와이의 조부모 집으로 보내졌다. 그의 아버지는 4번이나 결혼해서 이복 형제들이 여럿이며 어머니 쪽으로도 이부 여동생이 있으며[14] 조부모 쪽으로도 재혼 관계가 있는 모양이라 윗대로 가면 약간 가족 관계가 복잡하다. 심지어 이복 형제 중 한 명은 중국에서 꼬치집 체인점을 운영하고 있다.[15] 인도네시아계 의붓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이복 여동생 마야가 2008년 민주당 전당 대회에서 오빠에 대한 지지 연설을 한 것을 보면 형제자매들간의 관계는 나쁘지 않고 좋거나 최소한 무난한 것으로 보인다. 친구나 가족들에겐 주로 배리(Barry)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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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의 버락[16]
부모의 이혼과 자신의 인종 정체성에 대한 혼란 등으로 고등학생 시절 마약을 하기도 했었고 이것이 후의 정계 진출 이후에 발목을 잡았지만 오히려 이를 숨기지 않아 정직한 정치인으로 인정을 받는 요소가 되었다. 흑인에다가 무슬림 집안 출신이지만 성장 배경은 백인 및 아시아계와 함께 한 독특한 점은 후의 그에게 상당한 이득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미국 흑인 중 다수를 차지하는 서아프리카 출신이거나 그 후손도 아니다. 어머니가 백인이라고 흑인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백인문화권의 인종구별은 백인과 유색인으로 나뉘며 혼혈역시 유색인으로 백인 혼혈이라고해서 유색인을 백인으로 분류하지는 않는다.
1980년대엔 리사 잭이라는 사진작가의 포트폴리오에 참여하기도 했다. 관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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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나호우 고등학교 2학년 농구부 시절 2군팀과 함께 찍은 사진.(뒤에서 2번째줄, 왼쪽에서 3번째)
학생으로서는 '''공부와 운동을 대단히 잘했다.''' 푸나호우 고등학교 시절 운동을 아주 잘했으며 특히 농구는 거의 운동선수 급으로 잘해서 재학 중이던 푸나호우 고등학교 농구부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았다. 풀타임 주전은 아니었으나 3학년 때는 1군 멤버였다.[17] 그의 고등학교 친구들이 그의 농구실력에 대해 논하면서 그가 "주전이었어야 했다"고[18] 한걸 보면 오바마는 고등학교 시절 주 챔피언에 오를 정도로 강한 팀의 식스맨 정도의 선수로, 프로진출을 노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일반인으로서는 굉장히 잘하는 수준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푸나호우 고등학교 시절 그의 농구 등번호는 23번이었다. 여담이지만 오바마 내각은 유독 스포츠인들이 많았는데 이 중 교육부 장관인 Arne Duncan은 비록 호주리그이긴 했지만 프로선수 출신이었다!
일찌감치 어머니의 영향으로 약자와 소수계층에 대한 관심을 가졌던 오바마는 로스앤젤레스의 옥시덴탈대학교에 입학하고 그의 자서전에 따르면 대학 1학년 때도 마리화나를 피며 히피 문화에 심취한 나태한 학생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투자철회운동'을 접하고 정치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빡세게''' 1년 공부하고 컬럼비아 대학교에 편입해 정치학을 전공으로 졸업한 후 지역사회 운동가로 활동하다가 하버드 로스쿨에 진학해 법무박사(JD) 학위를 취득한다. 하버드 로스쿨 역사상 최초로 하버드 로리뷰 (법률 학술지)의 편집장을 흑인이 맡은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리고 그 날고 긴다는 학생들만 있다는 하버드 로스쿨에서도 상위 10%의 성적인 학생들만 받는다는 마그나쿰라우데(magna cum laude)를 받고 졸업했다. 그가 대통령 선거에 나간다고 선언했을 때 그의 하버드 로스쿨 동창 중 한명인 Hill Harper는 버락은 우리 하버드 로스쿨 동기 중에서 최소한 가장 뛰어났었던 학생 중 한명이거나 아니면 가장 뛰어났었던 친구였다고 회고 하였고 또한 그를 가르쳤던 교수 중 한 명인 Laurence Tribe 헌법학 교수는 버락은 내가 이제까지 가르쳤던 모든 학생 중 가장 뛰어난 학생 중 한명이었다고까지 회고하였다. 역시 오바마를 가르쳤던 하버드 로스쿨 교수였던 Charles Ogletree은 정말로 똘똘하고 또 겸손하였던 학생이였다고 회고했다. [19] [20] [21] 하버드 로스쿨은 우선 세계 최고의 로스쿨 중 한 곳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선거기간만 되면 정치인들이 성지처럼 다녀가는 미국 법조계/정계에서는 핵심 중의 핵심. 미국 로스쿨 법률 학술지 중 가장 파워가 있는 게 하버드 로리뷰. 따라서 오바마가 편집장이 된 것 자체로도 엄청난 화제가 되었다. 첫번째 자서전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22]을 하버드 로스쿨 재학 중 썼는데 쓰게 된 이유도 로스쿨 입학 전 시민단체 활동 등의 이유도 있었지만 자신이 흑인 최초 하버드 로리뷰 편집장이 되어 엄청난 유명인이 되었기 때문. 이후 시카고의 흑인 빈민가들을 위한 사회운동가로서, 그리고 1997년부터는 일리노이 주 의회 상원의원으로서 활동하였고 시카고 대학교 로스쿨의 인기 헌법학 교수로서 재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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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로스쿨 학생 시절 랑델 도서관(Langdell Library)에서
2008년 대선 전후를 통해 반토막이나마 학부를 보낸 콜럼비아 대학측에서는 오바마를 초빙하려고 애를 썼지만 출신 로스쿨인 하버드는 신나게 갔으면서 콜럼비아 쪽에는 별로 보이지도 않아 재학생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본인 말에 의하면 콜럼비아 재학시 인종차별에 대해 심도 있게 배웠다고 했는데 그게 본인이 안 좋은 꼴을 당해서 콜럼비아에 대해서는 나쁜 기억만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루머도 돌았기도 하다. 그래도 학생들에겐 마냥 인기가 좋았는지 선거기간 내내 자발적인 오바마 지지 전단지가 콜럼비아 캠퍼스 내에 휘날렸으며 대선 당일 자정 즈음 오바마의 당선이 확실시되자 당시 캠퍼스 내에 있던 학생들이 모두 학교 정문 앞 116번가 앞으로 뛰쳐나와 그 길로 할렘까지 행진했다.

2.2. 의원 시절


1992 대선 때 클린턴 선거전에 참여하여 정치에 입문했고, 1996년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으로 당선되어 1998년 재선에 성공했으나, 2000년에는 일리노이주 연방하원의원 후보에 도전했지만 경선에서 정치경력이 없다는 상대측의 집요한 공격으로 탈락했다. 하지만 2002년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에 재선하여 경찰의 중범죄자 취조과정 비디오녹화 제도 같은 걸 마련하는 등 활발한 의정활동을 했고, 2004년에는 <시카고 트리뷴>과 <시카고 선 타임스> 등 언론의 지원사격을 받아 흑인으로선 세번째로 일리노이주 연방 상원의원에 52%라는 투표차로 당선되었다. 오바마를 전 미국에 알리게 된 계기는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로 이때 오바마는 찬조연설로 일약 전국적인 스타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연설영상
상원의원 시절인 2005년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아제르바이잔 등을 찾고 2006년 쿠웨이트,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이라크 등을 거쳐 에티오피아와 케냐까지 찾아오며 친부의 생가까지 찾았다.

2.3. 2008년 대통령 선거


2006년 10월 22일에 그는 TV를 통해 대선 출마의사를 밝힌 뒤, 2007년 2월 44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것을 선언하고 본격적으로 민주당 경선레이스에 돌입한다.
사실 민주당 경선에서 오바마가 이길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힐러리의 당내 기반이 워낙 견고한 데다가 오바마는 힐러리 클린턴에 비하면 거의 신인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오바마는 겨우 '''초선''' 상원의원이었다. 그런 탓에 민주당 경선은 사상 유례 없는 치열한 혈전을 치뤘지만 오히려 이것이 흥행요소가 되어서 오바마를 유력 후보로 만드는데 기여했다. 초기엔 힐러리가 경선이 뜨거워져야 본선 경쟁력도 더 높아지기에 오바마의 출마와 선전을 부추겼지만 '''오바마가 이겨버렸다'''. 힐러리 클린턴은 매우 인기 없는 전쟁이 되어버린 이라크 전쟁에 찬성표를 던진 것이 큰 치명타였다. 또한 버락 오바마가 민주당의 큰 세력이 된 흑인을 비롯한 소수인종들에게서 지지를 받은 것도 깜짝 승리의 원동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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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와 오바마의 지지율 추이.[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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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감치 공화당 후보로 결정된 존 매케인과 사상최초 흑백대결로 관심을 끈 이번 대선에서 8월 전당대회 이후 세라 페일린을 지명하여 단숨에 관심을 자기 쪽으로 돌려버린 매케인에게 뒤지기도 했으나 9월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시작된 미국 금융위기에서 차분하고 안정적인 대응과 대안제시로 결국 승부의 흐름을 자기 쪽으로 돌리는데 성공했고 11월 4일 대선 투표일까지 별다른 이변 없이 대선은 오바마의 승리로 연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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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매케인과의 여론조사 평균


'''그리고 미국은 새로운 역사를 썼다.'''

2.4. 선거 운동의 혁명


오바마의 2008년 선거 운동은 오바마에 대한 지지여부를 막론하고 미국의 많은 정치 분석가들로부터 '''"지금까지 내가 본 것 중 최고"'''라는 평을 들었는데 초기부터 선거 운동시 기본적인 메시지와 기본 전략을 확실히 정하고 인터넷[24]과 지역적 네트워크를 십분 활용해 수많은 유권자들과 연락을 취해 수많은 자원 봉사자들을 모아 방대한 조직망에 짜넣어 미국 정치 역사상 전례 없는 엄청난 선거 자금을 대부분 일반 유권자들로부터 벌어들였다(기부자당 기부량 평균이 약 50불). 오바마 진영은 길고 험난한 선거 기간에도 큰 실수를 범하지 않았고 기본 전략에 큰 변화 없이 충실했으며 거대하고 효율적인 선거 조직을 통해 엄청난 양의 선거 자금을 벌어들였고 처음부터 끝까지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메시지를 유지해 전체적으로 매우 절제되고 안정적인 선거 운동을 벌였다. 이는 경선 기간 중 선거 자금을 서투르게 관리해 금전적으로 홍역을 치른 클린턴 진영이나 중심적인 메시지를 정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의 공격용 메시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페일린을 영입하는 도박을 했으면서도 결국 중심을 잡지 못한 매케인 진영과 크게 비교되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 두 진영은 이후 내부 분열로 심한 홍역을 앓았다.
미국 정치판이 돈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이지만 오바마의 선거 운동은 차원이 다른 정도였다. 미국 연방 정부는 주요 정당 후보들을 위해 대선 선거 자금을 지원하는데, 이게 좀 복잡해서 설명이 필요하다. 미국 선거 운동 기간은 굉장히 길다. 몇 달간 이어지는 경선에서 피터지게 싸운 뒤에 각 당의 후보가 맞붙는데, 연방 선거 지원은 경선이 끝나고 본선 과정에 이르러서야 이뤄진다[25]. 사실 이 단계에 이르면 선거 캠프도 지치고 자금도 바닥난지라 웬만한 후보는 얼씨구나 하고 연방 정부 지원금을 받는데…'''오바마는 이걸 거절했다.''' 연방 정부 지원금을 받으면 캠프로 직접 들어오는 기부금이 제한 되는데, 정부에서 주는 푼돈 받느니, 차라리 그냥 우리가 벌어서 쓰지라는 계산을 내린 것. 참고로 저 연방 정부 지원금을 거절한 본선 후보는 오바마가 처음이었다. 그만큼 기부금 네트워킹이 탄탄하고 캠프의 능력에 자신감이 있었기에 저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오바마는 매케인의 '''두 배를 기부금으로 벌어들였다.''' 무려 '''7억 8천만 달러'''[26]. 이쯤 되면 인간 ATM이다.
오바마의 승리를 이야기할 때 보통 미국민의 변화를 위한 갈망이나 부시에 대한 반감을 들며 이것이 정해진 승리였다는 의견이 있지만 어떤 감정이나 사상이 존재하더라도 '''그것을 효율적으로 동원하지 못하면 정치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바마는 그것을 매우 효율적으로 수행해내는 조직을 창설하고 유지해냈고 드물게 닥쳐온 위기에 적극적이고 효율적으로 대응해냈다. 이것은 그의 정치가와 조직의 장으로서의 능력을 입증하는 것이다.[27]

2.5. 미국 최초의 유색인종 대통령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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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4일, 당선 수락 연설을 하기 전
연단에서 가족과 기뻐하는 오바마
오바마의 당선이 확정된 날, 영국 가디언[28]지의 표지
'''와우!'''[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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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4일 존 매케인을 상대로 69,456,897표(52.9%), 선거인단수 365명을 획득하며 압승을 거두었다.[30] 그리고 압도적으로 당선될수 있었던게,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등 여러가지 악재가 조지 W. 부시 행정부와 공화당에게 직격탄을 맞게 해준것이다. 그래서 민주당에서 누가 나와도 대통령에 당선된다는 말이 있었고, 어찌저찌 압승을 거두게 된것이다.
또 오바마의 부계가 아프리카 혈통이어서 흑인으로 볼 수 있지만 어쨌든 백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것이 대통령이 되는데에 방해가 될 것이라는 의견이 초기에는 많았지만 개표 결과분석에 따르면 오히려 흑인인 것이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는 데에 큰 힘이 된 것으로 나타났다. 백인 중에서 48%가 오바마를 지지했지만 라티노의 66%, 흑인들의 98%가 오바마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20세기 초에 태어나서 흑인들의 굴곡과 수난 시대를 모두 거처온 어느 90대 흑인 할머니가 오바마의 취임식을 보고 '''We have overcome'''이라 말했는데, 격동의 20세기 중반 미국 사회, 킹 목사와 말콤X 등으로 대표되는 흑인민권운동의 상징 그 자체이자 모든 시위, 집회, 행진에서 부른 민중가요 "We Shall Overcome"에서 따온 것이다.
  • 오바마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을 기뻐하는 의외의 곳도 있는데 바로 일본 후쿠이현의 작은 도시인 오바마시(小浜市)… 관련 링크 참조.
  • 오바마 당선 다음날 한국의 주요 일간지 헤드라인들.

2.6. 대통령 집권기




2.7. 퇴임 후


최종 여론조사에서 미국민 과반 50%을 넘는 지지율을 기록하며 안정적으로 퇴임 절차를 거쳐 퇴임하였다.[31]
퇴임 후에는 워싱턴 D.C.에서 개인 사무실을 열 예정이다.# 또 캘러라마에 93억 원을 주고 새 집을 샀는데, 이 지역은 이방카 트럼프 부부와 렉스 틸러슨 등이 살고 있는 부유한 동네이며 또 집은 그 동네에서도 두 번째로 비싼 집이라 한다.
같은 대통령 후보였던 존 매케인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추모연설을 하였다.
프로덕션 컴퍼니 '하이어 그라운드 프로덕션'(Higher Ground Productions)을 설립한 뒤 넷플릭스와 협업하여 정치 드라마를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2018년 10월 24일, 2018년 미국 우편 폭탄 미수 사건으로 다른 민주당 인물들처럼 그의 집으로 파이프 폭탄이 배달됐다.
2019년 캐나다 총선에서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지지의사를 밝혔다.#
2020년 오바마 부부가 프로듀싱한 아메리칸 팩토리가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 상을 수상했다.
2020년 11월에 회고록을 출간하는데, 트럼프와의 일화를 공개했다.#

3. 평가




4. 어록


존 F. 케네디, 로널드 레이건, 빌 클린턴 대통령 등과 함께 언변이 뛰어난 대통령으로 평가받으며 연설 등에서 적절한 조크를 섞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SNS 스타이기도 하다. 게다가 그냥 스타인게 아니라 트위터 팔로워수가 1.2억명으로 전체 1위이다!

'''오바마''': "우선 유킬리스에 대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군요."

오바마 지지자들: (야유)

'''오바마''': "제가 말하고 싶은것은 그가 양말(socks)[32]

색깔을 바꿔야 한다고 말하는 겁니다."

오바마 지지자들: (웃음)

'''오바마''': "여기서 야유를 받을지 몰랐네요. 야구 얘기를 꺼내지 말았어야 했어요. 이해합니다. 제 실수입니다. (이곳에 있는) 청중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알았어야 했는데.(웃음)"

케빈 유킬리스보스턴 레드삭스에서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트레이드된 후 가진 보스턴 연설에서 '''유킬리스 보내줘서 고마워요 ㅋ'''라는 말을 했다가 야유를 들었다(…). 이 뒤에 백악관에서는 Boo가 아니라 Youuuuuuuuk였다는 개드립으로 천조국 황제폐하를 변호했다고.


'''오바마''': 512호 홈런을 쳤던 어니컵스가 언젠가 반드시 정상에 오르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청중: 웃음.

'''오바마''': (참으로 안타까운 표정으로) 진심으로요.

청중: 웃음.

'''오바마''': 화이트삭스 팬인 저도 이 점을 존경해 마지 않습니다(…).

시카고 컵스의 레전드 어니 뱅크스의 대통령 자유 훈장 수여식 중에 시카고 컵스를 돌려까기도 했다(…). 그리고 2016년,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여자친구 건들지 말라는 한 유권자에 대한 반응.


오바마: 제가 더 이상 출마할 선거는 없습니다.(I have no more campaigns to run.) 저의 유일한 의제는…(my only agenda..)

공화당: (박수갈채)

오바마: 맞습니다, 왜냐하면 전 둘 다 이겼거든요(I know because I won both of them.)[33]

민주당: (박수갈채), (환호)



지미 키멜의 토크쇼에 출연했을 때 키멜이 '''"제가 만약 대통령이 되었다면, 취임식 이후 바로 51구역외계인들의 파일들을 찾아보러 갔을 거예요. 당신은 그랬나요?"'''라는 질문을 받자, '''"그래서 당신이 대통령이 될 일이 없어요."'''라는 시크한 대답을 날렸다.

지미 키멜: 만약 제가 대통령이 된다면, 그럴 일은 없겠지만요.

'''오바마''': 혹시 모르지.

지미 키멜: 제가 대통령이…

'''오바마''': 나도 그럴 일 없을 줄 알았거든.

지미 키멜: 제가 대통령이 된다면 성서에 손을 올리자마자[34]

바로 51구역, UFO에 관련된 파일을 다 뒤져서 찾아볼 것 같은데요, 대통령께서도 그러셨나요?

'''오바마''': 그래서 자네가 대통령이 될 일이 없는 거야. 그게 첫 번째로 하고 싶은 일이라니. 외계인들은 자네가 대통령이 되게끔 하지 않을 꺼야. 자네가 모든 비밀을 누설시킬테니. 그들은 우리를 꽤나 강하게 통제하고 있다고.

지미 키멜: 많은 사람들이 지금 대통령의 표정이 조금 찌푸려진 것도 다 보고 있을거라고요. 그래서, 그것(UFO와 51구역)에 관해서 무언가를 보신 적이 있나요?

'''오바마''': 아무것도 말할 수 없어.

지미 키멜: 정말요? 예전에 제가 빌 클린턴 대통령께 여쭤봤더니, 직접 확인해 보셨는데 아무 것도 없었다고 그러셨거든요.

'''오바마''': 외계인들이 그렇게 말하라고 지시하거든

그 외에도 위의 방송에서 유머섞인 모습을 보이기도.


2009 MTV 뮤직비디오 시상식에서 테일러 스위프트가 수상소감을 말하던 도중 카니예 웨스트가 난입해서 방해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 사태에 대해서 "He's a jackass"라고 했다.(오프 더 레코드였다.) 애초에 카니예 웨스트가 엄청 까일만한 행동을 했었던 것이기 때문에 오바마를 욕하는 사람은 없었다.


기자회견 마무리 짓는 멘트로 "이제 스타워즈 보러 갑니다. 고맙습니다.(Get to 'Star Wars. Thank you.)"라는 애드립을 날렸다.


2016년 신년 연설에서 "니들 지겨워하는 거 같으니까 짧게함 ㅋㅋ"이라고 말해 박수를 받기도 했다.


2012년 3월 14일, 백악관을 방문한 영국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내외를 예방하는 자리에서 미영전쟁을 들먹이며 캐머런을 놀리는 오바마. 받아치는 캐머런의 모습도 재미있다.

18:05부터

"오바마": 200년 전, 영국은 처음으로 이 곳 백악관을 방문했습니다. 비록 다른 이유였긴 하지만요.

청중: (웃음)

"오바마": 상당히 인상깊었죠.(They made quite an impression.)

청중: (웃음)

"오바마": 말 그대로 이 곳을 후끈후끈하게 만들었습니다.(They really lit up the place.)(화르륵)[35]

청중: (웃음)

"오바마": 여하튼 그 후로는 잘 지냈죠.(But we moved on.)

청중: (웃음)

25:25부터

"캐머런": 이 곳에 서서 200년 전 그 일을 생각하니 상당히 당황스럽군요.

청중: (웃음)

"캐머런": 우리 조상님들이 이 곳을 불태우려 했다니.

청중: (웃음)

"캐머런": 오늘 쭉 둘러보니 그 때보다는 방비를 잘 해놓으셨더군요.

청중: (웃음)

"캐머런": 이번에는 우리 영국인들에 대한 대비책을 허투루 세우시지 않은 것 같습니다.

청중: (웃음)


5.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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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버지 버락 오바마 시니어, 어머니 앤 던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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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할아버지 스탠리 A. 던햄(Stanley A. Dunham)
오바마의 외모는 외할아버지와 가장 닮았다는 평이 많다. 또 오바마의 작은 외할아버지에 따르면 오바마가 자주 사용하는 표현인 "Now look, ..."과 같은 언어적 표현과 손동작들은 오바마 외할아버지로부터 배운거 같다고 한다. 성장기에 아버지가 없었던 만큼 외할아버지가 Male Figure로서의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미셸은 시카고에서 태어나 프린스턴대를 졸업하고 역시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했는데 시민단체와 지역사회개발활동에서 5년간 시간을 보낸 오바마보다 3년 선배다. 로펌에서 버락과 만나 1992년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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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10일 만 16세의 샤샤
  • 자녀 말리아 오바마, 샤샤 오바마
버락 오바마가 37세와 40세, 미셸이 34세와 37세에 본 늦둥이 딸들. 말리아는 하버드 대학 입학했고 미국 10대 사이에서는 유행을 선도하는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차녀 사샤는 워싱턴 D.C.의 시드웰 프렌즈 고교에 재학 중이며 당분간 오바마 부부도 딸이 졸업할 때 까지 이 지역에 머물 예정이다. 샤샤만 다소 통통한데 샤샤는 외삼촌을 닮았다. 그 때문에 샤샤는 아버지를 닮은 장녀 말리아와는 친자매임에도 불구하고 얼굴이 크게 차이난다.

6.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필요시 선거인단)
당선 여부
비고
1996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 선거
일리노이 13구

'''48,592 (82.16%)'''
'''당선 (1위)'''
'''초선'''
1998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 선거
'''45,486 (89.17%)'''
'''당선 (1위)'''
'''재선'''
2002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 선거
'''48,717 (100.0%)'''[36]
'''당선 (1위)'''
'''3선'''
2004
미국 연방상원의원 선거
일리노이
'''3,598,277 (69.97%)'''
'''당선 (1위)'''
'''초선'''
2008
미국 대통령 선거
미합중국
'''69,498,516 (52.93%, 365명)'''
'''당선 (1위)'''
'''초선'''
2012
미국 대통령 선거
'''65,915,795 (51.06%, 332명)'''
'''당선 (1위)'''
'''재선'''

7. 기타


  • 대통령이 된 후 여러 공식 석상에 3, 40분 지각은 기본으로 지각을 자주 해서 빈축을 샀다.
  • 나이에 비해 꽤 동안이었는데 대통령 8년 동안 굉장히 머리가 희게 변하고 늙었다. 대통령이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직업인지를 보여주는 일례로 꼽힌다.[37] 그리고 2021년이 된 지금은 딱 그 나이대 아재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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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기 초기 대한민국 교육을 본받자는 이야기를 했다. 부실한 미국 공교육과 수업일수에 관련된 내용으로 미국의 고등학교 졸업률은 75% 정도밖에 안 되며 공립학교의 경우 50%에 불과하다.[38] 한국이나 일본의 수업일수를 본받자는 이야기는 미국 교육계에서 매우 오랫동안 논의되어온 제안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일부 한국과 미국의 교육전문가들은 "오바마가 제대로 잘못 알고 있다"고 했고 "한국 교육은 미국의 100년 전과 같다" 라고 평한 칼럼니스트도 있었다.[39]
  • 2009년 아시아 순방 도중 천황에게, G20 정상회의 도중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에게 90도 인사를 해 반대파들에게 미국의 자존심을 구겼다고 빈축을 샀다. 하지만 이는 지극히 정치적 제스처라는 반응이 있다. 오바마가 겉으로는 친아시아적 외교를 진행함으로서 각국의 친미파들의 호감을 사고 배타적 정책을 펴려는 정부들을 자제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40] 실제로 중국의 경우가 어느 정도 그러하고 일본의 경우는 결국 후텐마 기지의 후폭풍이 심해지면서 하토야마 유키오 정권이 실각했다.
  • 흥미로우면서도 묘한게 전임후임해리 S. 트루먼의 집권기 출생자이자 또한 동갑이다. .[41]
  • 아내 미셸 외에도, 딸들인 말리아 오바마와 샤샤 오바마도 훗날 정계에 진출할 예정이라는 소문이 워싱턴 정계에 퍼져 있다. 말리아, 샤샤 자매가 어려서부터 이미 오바마의 각국 순방에 참여하였으며 이미 세계 각국 정상들의 눈도장을 찍어뒀다.
  • 미국의 코미디 프로그램인 SNL에서는 오바마가 열받으면 "더 락 오바마" 가 된다고 한다(…)[42]
  • 한미동맹친선협회라는 단체가 G20차 한국에 오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한국 이름을 지어주려고 하는데 이름이… # 오한마
  • 도호쿠 대지진때 "I'm confident the Jap, uh, Japan will recover and rebuild"(저는 쪽발.., 아니, 일본이 재건하리라 확신합니다) 라고 인터뷰한 게 플짤로 돌아다니고 있다.# 해당 영상 링크 실제로 일본인을 비하하려 했다기 보다는 the Japanese people(일본인들)이라고 하려다 Japan(일본)으로 말을 바꾸며 일어난 일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정황을 놓고 보면 재밌는 이야기가 가능하다.
  • 2010년 2월부터 오바마는 원자력 발전소 2기를 건설하는 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하려 하고 있었다. 1973년에 마지막으로 착공한 원자력발전소(완성은 1990년)를 근 40년 만에 다시 착공하려는 오바마 행정부의 가장 중요한 정책 중의 하나였다. 이는 8000억 달러를 투입하는 대 계획으로 주목적인 탄소배출권 문제 해결을 통한 친환경 이미지 구축과 당시의 불황 극복을 위한 경제적 효과를 동시에 노린 야심찬 계획이었다. 재선을 위해 기획한 좀 규모 작은 뉴딜 정책이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이 모두를 날려버리는 병크를 일본이 저질렀으니 그게 바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한국에서는 오바마가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추진했다는 것을 별 비중없이 다루었으나 실질적으로 원자력발전소 사업은 오바마의 재선의 발판이 되는 가장 중요한 정책이었다. 오바마는 사고 이후 한동안 발전소 건설에 대해 함구하다가 한 해가 지난 후에야 다시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 도널드 트럼프가 오바마가 실은 케냐 출생인데 미국에서 태어난 것처럼 조작해서 대통령 되었다고 턱없는 음모론을 펼치자 백악관 기자단 연례만찬(White House Correspondents' Dinner)[43] 에서 "저번엔 제 출생 증명서를 공개했죠? 이번엔 제 출생 비디오를 공개하도록 하죠" 라고 말하고는 라이온 킹심바 탄생 장면을 틀었다. 그리고 한 말이 [44]

"…사실 이 발표를 제일 기뻐하고 있는 건 그일 거라 생각합니다. 이제 그는 좀 더 중요한 문제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달 착륙은 조작됐는가? 로스웰에서 실제로는 무슨 일이 있었나? 비기2Pac은 어디에 있나? 같은 것들 말입니다."[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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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년 5월 이루어진 넵튠 스피어 작전 모니터링 사진에서는 작전을 지휘한 마샬 웹 공군준장에게 중앙 자리를 내주고 옆에 앉아있었는데, 이 사진은 타임지가 선정한 '인류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100장의 사진'에 선정되었을만큼 중요한 순간으로 언급된다. 한편 여기서 미국의 일개 군 준장에 불과하지만 넵튠 스피어 작전 책임자에게 가장 가운데 자리를 내주고 바로 옆에 앉아있는 미국 대통령 오바마의 모습이 주목을 받았다. 근데 사실 데브그루 대원들이 헬기를 타고 파키스탄까지 날아가는 시간에 도중에 지루하다며 카드게임도 하고 오기도 했다.
  • 2011년 5월 대통령 전용차가 아일랜드에 있는 미국 대사관을 나서다가 문턱을 넘지 못하고 멈춰섰다. 백악관 경호실은 황급히 '그 차에는 대통령께서 탑승하시지 않았다. 그건 예비차다' 라고 발표. 사족이지만 이건 딱히 차에 고장이 있는 것보다는 VVIP용 차량은 겉만 자동차고 속은 탱크라고 해도 좋을 만큼 방탄이 잘 되어있다. 물론 무게도 탱크만큼 무겁다. 문턱을 못 넘은 것은 아마도 그 때문….
  • 2011년 5월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영토를 할양하고 공존해야 한다는 연설을 하여 이스라엘로부터 강력한 비난을 받고 있다. 물론 이는 미국의 국익에 대한 현실적 손익계산이 개입된 것으로 연속적인 중동의 체제이행 이후 들어설 정부들의 반미감정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중동의 평화무드를 조성하려는 시도라는 분석이 주를 이루고 있다.

아니오, 하지 마세요. 그냥 저 청년은 이 자리에 있게 해 줍시다. 가족을 걱정하는 저 청년의 열정을 존중합니다.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에는 절차라는 게 있고 그 절차라는 건 여기서 소리지르는 것과는 달리 그리 쉬운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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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크리스마스 사진
  • 오바마의 가족들은 전부 장신이다. 오바마 자신의 키부터 187cm인데 그의 아내인 미셸 오바마의 키가 5피트 11인치(180cm)이다. 오바마는 루오족 계통인데 루오족이 포함된 나일로트계 민족들이 키가 큰 편이라고 한다. 2011년에 말리아 오바마(1998년생)[46]은 6 피트에 육박했고 2020년 현재 구글 프로필에는 185cm로 기록되어 있는 엄청난 장신이다. 샤샤 오바마(2001년생) 역시 2015년을 이후로 175cm가 다 되어간다. 심지어는 미셸 오바마의 오빠인 크레이그 로빈슨의 키가 198cm로 말리아와 샤샤 자매는 부계, 모계 양쪽 다 키가 크다.
  • 2014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자 오바마는 기쁠때나 슬플때나 상관없이 미국과 대한민국은 우방국가이며 미국은 대한민국이 어려울 때 도와줘야 할 의무가 있다. 고 말하며 사고 희생자들을 애도하며 구조 작업에 미국이 적극적으로 도와주도록 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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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방문 기간 동안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방문한 모습
  • 임기 중 2009년, 2010년, 2012년, 2014년에 한국을 방문했다. 2012년 방한 때는 한국외국어대학교에 방문해 명예동문 자격을 수여받으며 화제가 되었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2014년 방한 때는 박근혜 대통령이 질문에 대한 오바마의 답변이 끝난 후에 당황하며 머뭇거리자 "Poor president Park doesn't even remember what the other question was"(불쌍한 박 대통령이 다른 질문이 뭔지조차 기억을 못한다) 라는 농담인지 조롱인지 애매한 발언을 했다. 영상을 보면 알듯이 말 자체의 어투는 단순한 장난이라고 봐줄 수 있으나, 그 뒤 박 대통령이 머뭇거리는 게 부각되어 조롱의 의미로 부각되는 듯 하다. 오바마 정도나 되는 사람이 미치지 않은 다음에야 일부러 대놓고 깠을 리는 없겠으나, 이는 외교적 결례로 비춰질 수 있는 부분이라 백악관에서는 이 부분을 삭제하거나 자막처리하는 등 수습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그리고 언론에서는 특별한 언급이나 조치가 없다. 일부에서는 "조롱당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다"며 비판하고 있다. 다만 이쪽에서 잘못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그냥 넘어간 것일 수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기자들의 질문을 전혀 듣고 있지 않았다는 의심을 살 수도 있는 장면이라…[47] 뿐만 아니라 2010년 서울에서 열렸던 G20 정상회의 폐막 기자회견에서는 회의를 주최한 한국측에 대해 감사를 표하며 한국 기자들에게 우선권을 주었음에도 질문하는 기자가 하나도 없어, 결국 질문권은 중국 기자들에게 넘어갔고, 한국 기자들은 "기자라면서 질문도 하나 할 줄 모르는 것들"[48]이라는 망신을 당했다. 자리에 한국 기자가 많지 않았다. 예정에 없는 질문 기회였다. 통역이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서 그랬다 등 해명이 나오기는 했지만 여론은 대부분 변명 취급할 뿐. ##### 기안84복학왕에서 이걸 패러디해서 깠다. #
  • 2015년 1월 25일에는 북한은 결국 무너진다고 발언했다. 오바마는 북한 따위 가만 내버려 둬도 알아서 무너진다는 발언을 하면서 북한같이 폐쇄적이고 고압적이며 인권을 유린하는 나라는 오래 못간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에 북한 당국은 머리끝까지 열폭했다. 이 말을 깊게 생각해본다면 굉장히 뼈 있는 발언으로 "우리 미국은 나라를 똑바로 다스리기 때문에 멸망할 일이 전혀 없지만 너네 북한은 나라를 똑바로 못다스리고 너무 국민들을 가혹하게 굴려서 가만히 냅둬도 시민혁명으로 정권이 붕괴될 것이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 오바마는 블랙베리 마니아이다. 자신이 블랙베리를 워낙 좋아하고 중독되어있다고 밝힌 상태. 백악관에 입성해서도 블랙베리를 사용하겠다고 고집을 부려 결국 쓰게 됐지만. 나쵸도 굉장히 좋아한다. TV쇼에 출연했을때 코미디언 제리 사인 펠드한테 나쵸는 내가 가장 큰 죄악 중 하나라고 밝힐 정도이다.
  • 2012년 8월 캠프 데이비드에서 클레이 사격을 하는 오바마. 한참 위에 언급한 총기 사건 때문에 NRA의 로비,언플이 발생하는 중 찍힌 장면이다. 그런데 백악관에서는 규정때문인지 이 사진에 절대 포샵 하지 말 것이라는 경고문을 넣었다. 그리고 이 문구를 본 미국의 약쟁이들은…
  • 그러자 백악관에서는 질 수 없었는지 백악관 만찬회에서 더 화려하게 약을 빤 합성짤을 공개해버렸다…[49]

  • 국내 가격비교 사이트인 에누리닷컴에서 오바마 닮은꼴 모델인 레지 브라운이 김정은 닮은꼴 UIUC 한인 학생인 김민용과 함께 광고모델로 출연했다.
  • 관용차로는 THE BEAST라고 이름붙여진 캐딜락을 탄다. 차체는 강철/세라믹/알루미늄 복합장갑으로 강화되었고 문은 20cm 두께 강철 / 복합장갑[50]으로 보호되며 가장 취약한 창문조차도 소총 철갑탄을 막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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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어 그릴스의 Running Wild with Bear Grylls에서 2015년 12월 24일 방영분에 출연했다.
  • 미남, 장신, 유머감각, 쿨해보이는 행동 등 멋있어보이는 요소는 골고루 갖춘 사람이라 정책에 대한 호불호를 넘어선 팬들이 상당히 있는 편이다.[51]
  • 정책 면에서 한국인들이 좋아할만한 사람은 아니다. 애초에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보는 미국 대통령이기도 하고, 보수성향인 한국 대통령과 재직 시기가 겹쳐서 한국에 별 긍정적인 영향은 못 줬다. 때문에 그를 왜바마, 니거, 흑왜구로 비하하는 한국 네티즌들이 있을 정도다.
물론 이 사람은 미국 정치인이란 점에서 한국의 국익을 신경써줘야할 이유는 없다. 무엇보다 재임기간 후반부는 보수가 진보가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무능한 대통령과 겹쳤기 때문에 그 기간동안 미국이 한국의 뒤통수를 후리는 움직임을 여럿 보였다. 위안부 합의라든지...치사해 보일 수 있지만 애초에 오바마는 정의의 사도가 아닌 미국의 국익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이다.
  • 카카오톡에서 ‘오바마 버전’ 알림음이 등장했다.
  • 세계자연유산로 유명한 파파하노모쿠아키아 해양국립기념물이 현재의 4배 면적인 150만㎢로 늘릴 계획을 발표한 데 환경보호에 관심이 많아서 감사를 표시하는 뜻으로 2016년에 9월에 하와이에서 발견한 물고기에 붙여 토사노이데스 오바마로 명명했다. 물고기에 오바마 대통령의 이름을 붙인 것은 이번이 두 번째라는 점이다.[52]
  • 2016 할로윈 파티에서 임기 막바지인 레임덕으로 분장한 어린이가 나타나 화제를 모았다.#
  • 재임 중 만난 한국 대통령들과 찍은 사진 중 이명박 대통령하고는 평범하게 독대했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찍은것을 보면 무시하고있거나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보는게 많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전에도 "처음으로 남의 나라를 걱정하게 된 오바마였다."란 짤로 돌아다녔지만 터진 지금와서 다시 재평가받고 있다. 모든것을 알고있던 오황상의 예언이란 드립도 나오는 중. 또한 여권의 잠룡 반기문 UN사무총장을 보는 표정도 정색해서 영 좋지 않았다고 한다...#
  • 퇴임을 앞두고 미국과학진흥협회(AAAS)가 발간하는 과학학술지 사이언스에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미국의 기후정책에 관한 글을 기고했다. #
  • 오바마가 《미국의학협회저널》(JAMA; The 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에 투고한 논문 "United States Health Care Reform: Progress to Date and Next Steps" 는 학술문헌의 SNS 상의 인기를 측정하는 지표알트메트릭스(Altmetrics)에 의해 2016년의 인기 과학논문 1위로 선정되었다. 신문기사 315건, 트위터 8,943건, 페이스북 200건, 레딧 14건이 이 논문을 인용 및 언급, 공유하고 있었다고. #
  • 이처럼 의료보험 개혁에 관심이 많던 오바마였는데 의료보험에 대해서는 부통령과의 일화도 있다. 직업군인이던 부통령 조 바이든의 아들 보 바이든이 뇌종양에 걸려 투병하다 세상을 떠나자 한국 돈으로 억대의 병원비가 나왔고, 돈이 부족했던 바이든은 집을 팔려고 했으나 오바마가 만류한 뒤 그것을 대신 지불했다고 한다.
  • 퇴임 후 프랑스에서 그를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려고 했는데, 이유는 기성 세대들에 대한 불신이 컸던 게 큰 원인이었다. 그러나 오바마는 결국 이에 별다른 관심조차 없었고, 대신 마크롱에게 격려만 하는 차원으로 끝냈다.
  • 퇴임 후 가족들과 함께 2017년 7월 2일에 한국을 재방문하였다. 조선일보 초청으로 방한하였으며 3일 서울 광진구 워커힐 호텔에서 열리는 행사에서 대통령 재임 기간의 경험과 리더십에 대해 연설할 예정이다. 또한 이명박 전 대통령과도 약 30분간 면담해 의견을 나눌 계획이라고. #
  • 사진 2017년 현재 무직이다.
  • 2008년부터 2018년까지 갤럽에서 실시한 가장 존경받는 인물 투표에서 계속 1위로 뽑혔다. 퇴임한 이후인 2017년, 2018년에도 1위를 했으며 2018년에는 아내인 미셸 오바마 또한 가장 존경받는 여성으로 뽑혔다. 2020년엔 트럼프에 밀려 2위로 내려왔지만 바이든 당선인이 3위를 차지하면서 표가 갈린 것으로 보이고 오바마와 바이든과의 합산은 트럼프를 넘는다.
  • 가끔씩 유튜브 추천영상에 오바마 당선 당시 세계가 환호하는 영상이 올라오는데 이로인해 유튜브가 트럼프를 싫어하는게 아니냐는 반응이 많다. #
  • 혈액형이 RH-AB형이다. 이 때문에 대통령 집권 당시 백악관 경호실에서는 여분의 RH-AB 혈액을 보관해두고 있었다. 참고로 아시아에서는 AB형의 비중이 10% 정도지만, RH-가 0.5% 이하로 매우 드물기 때문에 희귀 혈액형이며, 반대로 서양에서는 RH-가 20% 정도로 나름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대신 AB형의 비중이 3~4% 가량으로 상당히 드물기 때문에 희귀 혈액형이다.

7.1. 인종


아버지가 케냐 출신 흑인이고 어머니는 백인인 1세대 혼혈, 즉 하프다. 절반은 백인인지라 첫 흑인 대통령이라기보다는 첫 유색인종 대통령이라는 지적이 있지만, 오바마가 흑인이라는 데에 이견을 제시하는 것은 지극히 일부의 의견이고 일단 본인 스스로가 흑인이라고 하고 있으므로 사실상 논외. 미국의 경우 혼혈이더라도 '''외견상 흑인이고 본인의 인종 정체성이 흑인이라면''' 흑인으로 인정한다.[53]
이런 식의 흑인 분류는 원래 악명 높은 한 방울 규칙(One-drop rule) 에서 시작되었다. '''흑인의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여있다면 흑인'''이라는 것으로 '순수한 백인의 피' 에 유색인종의 피가 섞일 경우 피가 '더럽혀지는' 것으로 보는 인종차별적인 법칙. 오바마의 경우에는 부모님이 이혼한 다음에 백인 어머니+외조부모[54]에 의해 길러진 것도 '반쪽 흑인'의 이미지에 한몫하는 듯하다.
사실 오바마 정도라면 흑인이냐 아니냐를 두고 논란이 있을 정도의 외모나 혈통은 아니다. NBA선수들을 분류할때도 흑인이냐 백인이냐를 논하지, 하프 흑인이라고 하진 않는다. 백인처럼 보일 정도 외모인 제이슨 키드, 블레이크 그리핀이나, 흑인 피가 4분의1이라 백인처럼 보이는 머라이어 캐리면 몰라도, 오바마같은 사람이 일반인이라면 누가 봐도 그냥 흑인이라고 받아들인다. 미국은 여러 인종이 섞인 혼혈들이 흔한 나라기도 하고. "진짜 흑인" 논란이 나온 것은 오바마가 백인 집안에서 백인들의 손에 자란게 크다. 부모가 어렸을때 이혼했을 뿐 아니라 그의 아버지는 케냐로 돌아가 살다가 오바마를 이후 단 한번, 10살때 방문했을 뿐이었다.(이때에 대해 "아버지가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나는 인지하지 못했다"고 회고) 게다가 그의 어머니가 재혼한 남자는 인도네시아인이었으니...비유하자면 한국계 인물이 미국으로 입양되어 평생 자랐다면 당연히 미국인의 마인드를 갖게 되는 것처럼, 같은 미국이라도 흑인과 백인의 문화가 판이하게 다른데 흑인들과 문화적 공통분모가 거의 없는 오바마를 흑인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이견이 있는 것.
물론 이는 소수의견에 불과하고 오바마는 흑인이 맞다.

7.2. 스포츠광 오바마의 오바마 징크스


스포츠광이기도 해서 그 중에서도 자신의 연고지인 시카고 관련 팀들의 팬이다. 이제까지의 대통령들이 주로 야구 팬이었던 것처럼 야구도 좋아하는데 시카고 화이트삭스 팬이기도 하여 워싱턴 내셔널스의 시즌 개막 경기에 '''화이트삭스 모자를 쓰고''' 시구를 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2009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부시 스타디움에서 열린 올스타전에 화이트삭스 저지와 모자를 쓰고 시구를 하고 마크 벌리퍼펙트 게임을 했을때 격려 전화를 하는 등 시카고 화이트삭스 광팬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이후 개런티드 레이트 필드에서 시구를 한 적은 없다(2005년 상원의원일 때 시구를 했다).[55] 또 2012년에 케빈 유킬리스가 화이트삭스로 트레이드 되자 표 텃밭인 보스턴에서 ''''"유킬리스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농담을 했다가 야유받은 적도 있다. 축구도 좋아해서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당시 미국이 치르는 경기들을 모두 직관했다. 또한 콜로라도 라피즈 구단으로부터 유니폼을 선물받는데 등번호가 10번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아싸! 리오넬 메시랑 등번호가 같다!'''며 환호하기도 했다.
아이스하키도 역시 시카고를 연고로 하는 시카고 블랙호크스의 팬인데, 재임 중 3번이나 우승해서 오바마를 기쁘게 하는 팀이라 하더라….
농구광이기도 하다. 농구로는 시카고 불스, 미식축구로는 시카고 베어스 팬이다. 2010년 추수감사절 연휴에는 농구 경기를 하다가 입술 부위를 12군데나 꿰메는 부상을 입었을 정도. 물론 보는 것도 좋아해서 NCAA 경기를 관람하거나 항공모함에서 연 적도 있다! NCAA는 3월의 광란(플레이오프 혹은 포스트시즌) 때 항상 대진표를 채우는걸로 유명한데, 이걸 ESPN에서 Baracketlogy라는 이름으로 세그먼트를 해서 매년 틀어준다. 정확도는 그리 높지도 않고, 우승팀을 맞춘것도 1번, 2009년 첫 임기 첫해때였다. 심지어 1969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 재임중에 건설한 백악관 지하의 1개 레인짜리 볼링장을, 2009년 취임하고 얼마 되지 않아 바로 밀어버리고 # 거기에 농구장을 건설했다가 볼링협회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했다.
선거에 출마했을 경우, 개표 직전에 농구 시합을 벌이면 당선된다는 징크스를 갖고 있다. 존 매케인과의 대통령 선거에서도 오바마는 지인들을 불러모아 농구 시합을 실시했는데 당선되었고 밋 롬니와의 최후반 선거 경합을 벌일 때 역시 그랬다.
특히 2012년 대선때에는 롬니가 마지막 며칠을 내내 죽을 힘을 다해 오하이오 주에서 유세전을 펼친 반면, 오바마는 그 마지막 며칠동안 일체의 정치활동을 하지 않고 역시 친구들을 불러모아 놓고는 농구 시합을 했다. 그 이후 '''오바마가 당선되었다.''' 한마디로 농구시합을 하면 무조건 당선된다는 것이 오바마 징크스이다.
2016년에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가 백악관을 방문했을때에도 (장난삼아) 자기는 스테판보다는 클레이 탐슨의 점프슛폼이 더 맘에 든다고했고, NBA단일시즌 최강팀의 일원이 팀을 이끌고 감독으로 오자, 오바마는 "NBA 최강팀의 일원이 온다는거는 아주 드문일이죠.. 운좋게도… 1995/1996 '''시카고 불스'''의 멤버, 스티브 커가 여기있슴다!"라고 했다.
NCAA Division I Football Bowl Subdivision 칼리지 풋볼 플레이오프(College Football Playoffs) 제도의 도입에 찬성하기도 했다. 2008년 당시, BCS(Bowl Champions Series) 랭킹 산정에 다소 논란이 있었는데[56] TV에 출연해서 플레이오프 제도를 도입해야 할 시기가 됐다고 말한 바 있다.

7.3. 2009년 노벨평화상 수상과 잡음


2009년 4월, 프라하에서 오바마는 "핵무기 없는 사회"라는 주제로 연설을 하여 전략무기감축협정 갱신,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 (CTBT)의 비준, 핵물질 방호와 안전을 국제적으로 논의하고 공조하기 위한 핵안보정상회의의 구상을 밝혀 핵무기 확산에 강력한 제재를 천명하였고, 그 해 노벨상(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그것도 재임 10개월만에 받았다.
이 때문에 수많은 논란이 되었다. 아직 취임 10개월밖에 되지 않았던 시점인 만큼 정책상으로도 평가받기가 모호하고 유화정책의 취지는 좋지만 아직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폴란드 자유 노조 지도자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고, 이후 초대 대통령을 역임했던 레흐 바웬사도 '축하할 일이고 기쁘지만 너무 이른데' 라는 발언을 하였고 뉴스위크CNN을 비롯한 미국 언론사도 반응이 엇갈리며 미국의 극우파들도 입에 거품 물며 노벨 심사위원들을 비난했다. 오바마 대통령 지지자들마저도 아직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은 만큼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아메리카 원주민 출신의 인권운동가 러셀 민즈[57]는 이를 사기라며 비판했고, 심지어 오바마 본인도 수상 소식을 듣고는 '뭐 내가?! 벌써?!' 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당해 수상할 만한 인물이 없었다는 시각도 있으나 같이 후보로 선출된 후보들을 보게 된다면 세계평화를 위해서 오바마보다 나은 성과를 올린 사람이 과연 없는가 하는 의문점이 들 수밖에 없다.
2009년 노벨 평화상 후보로 총 205건의 인물 혹은 단체가 추천되어 역대 최다 후보수였던 2005년의 199건을 약간 상회했다. 게다가 후보들 중에는 오랜 기간 에이즈퇴치운동과 인권운동에 종사해왔던 중국의 반체제 인사 후자아나 히말라야 오지에 여학교 78개를 세운 그레그 모텐슨[58] 등 쟁쟁한 인사들이 대거 포진했다. 게다가 노벨 평화상은 노벨상 중 유일하게 '''단체에게도 수여가 가능한''' 상이다. 정 인물이 없었다면 차라리 단체를 선정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예를 들어 비정부기구인 집속탄연합(CMC)는 국제 집속탄 사용금지 협약 체결을 위해 100여개국에 파견되어 설득 작업을 벌여 큰 역할을 하였으며 이는 노벨 평화상 수여 원칙인 '''국가간의 우애를 돈독히 하거나 상비군을 폐지·축소하거나 평화회담을 개최하고 주장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이나 단체'''에 가장 적합하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반론도 있는데, 신 전략무기감축협정 또한 '상비군을 폐지·축소'라는 조건에 충분히 해당 가능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제2세계의 대표적 군사강국인 러시아중국은 참여하지 않았고, 심지어 같은 제1세계에서도 대놓고 반기를 드는 국가가 이나 있으며 맹주인 미국조차 별 관심 없어서 실질적인 영향력이 사실상 제로에 가까운 국제 집속탄 사용금지 협약과 달리, 신 전략무기감축협정은 세계 핵전력 1위 국가2위 국가의 핵전력을 감축하는 직접적인 효력을 가진 협정이다. 세계 평화에 대한 실질적인 기여도로 따지자면 국제 집속탄 사용금지 협약 '''따위'''보다 몇 배는 위로 쳐줘야 할 것이다.
심사위원들이 오바마를 좋아해서 줬다기보다는 '부시에 대한 반감' 으로 준 게 아닐까(…) 하는 이야기도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노벨상 수상은 대통령이 된 후의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대통령이 되기 전 유색인종의 인권을 위해 노력한 일, 아니 흑인 대통령 당선 그 자체만으로 미국 내 화합에 기여한 점을 고려한 것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있다. 노벨평화상이 원래 주는 이유가 좀 모호한 상이기도 하고.
오바마가 퇴임한 이후에는 2009년에 러시아와 미국 간의 전략무기감축협정#s-6(START)이 갱신되었기 때문에 받은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59] 사실 신 전략무기감축협정이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바는 의외로 작지 않은데, 핵전력 감축에 대한 신규 협정이 없는 상태에서 START I이 만료될 경우 미국과 러시아가 다시금 핵무기 전력을 증강하더라도 그걸 막을 방법이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60] 게다가 오바마는 학생 시절은 물론이고 상원의원 시절 대표적인 핵전력 감축론자로 유명했다. 2010년에는 공약대로 워싱턴에서 제1차 핵안보정상회의를 개최하였고, 2012년 서울, 2014년 헤이그를 거쳐 2016년까지 네 번의 회의로 이어지게 되었다.
2기 임기 막바지에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와 이란과의 핵 협상 타결이라는 빅 이벤트가 성사된 뒤에는 오바마가 충분히 상 받아간 값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 편이다.
이후 스티븐 콜베어의 레이트 쇼에 나와서 노벨 평화상 수상과 관련한 셀프디스를 하였다. 솔직히 본인도 왜 받은지 모르겠다고(...) 물론 쇼를 위한 농담이니 진지하게 받아들이진 말자. [61]

8. 등장 매체


  • 미국 NBC에서 방영한 Running Wild with Bear Grylls에 출연해 알래스카를 배경으로 생존기술을 전해 받은 바가 있다. 생태계 최강의 존재가 나오는 그 프로가 맞다.

  • 코미디 센트럴에서 방영한 Key & Peele의 "오바마의 분노 번역기"라는 스케치#s-7에서 패러디된다. 내용인즉슨 오바마가 젠틀하게 연설하면 옆에서 "분노 번역기" Luther가 "사실 내 말뜻은 이거다 개XX들아!!"라고 번역해주면서(…) 웃음을 유발하는 스케치. 이후 오바마가 2015년 4월 25일 공화당 및 민주당 의원들이 잔뜩 모인 백악관 출입 기자단 저녁 만찬에 "분노 번역기" Luther를 데려왔다! 처음엔 원작처럼 오바마의 연설을 '분노 번역기'가 번역해 주다가, 어느 순간 오바마 본인이 더한 막말을 퍼붓자 분노 번역기가 오히려 당황하는 부분이 포인트.[62]
이후 매해 4월 열리는 이 기자단 참석 만찬에는 대통령이 스탠드 업 코미디를 선보이는 관례가 정착되어 있다. 원본 영상을 보면 50:00부터 나온다. 퇴장하기 전에 '분노 통역사보다는 상담이 더 필요하신 듯합니다만'이라고 말한 데다가 퇴장할 때에도 영부인 미셸 오바마에게 '미쳤나 봐요' 말하기까지 한다.
  • 화이트 하우스 다운에서 제이미 폭스가 연기한 제임스 소이어 대통령은 딱 봐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본뜬 캐릭터. 화이트 하우스 다운의 감독인 롤랜드 에머리히는 열렬한 민주당 지지자이며 영화에서 이런 성향을 대놓고 드러내는데 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 내 이름은 칸에선 상원 의원의 신분으로 맨 처음 등장해 칸의 행보를 예의주시하다가 대통령 당선 이후 칸을 찾아가서 그와 만난다. 근데 조지 부시는 아주 빼다 박았던 것에 비해서 내 이름은 칸에 나왔던 배우는 목소리는 좀 비슷한데 생긴 건 하나도 안 닮았다…
  •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에선 대사는 없고 뒤통수만 나와서 해리 하트의 정체를 모른다고 확인해 준 다음에 발렌타인의 회유에 넘어가서 그의 신세계 건설 프로젝트에 참여하지만 마지막에 머리가 폭발하여 요단강을 건넌다.(…)
  • 에어기어에도 나온 적이 있다. 이름은 초상권 침해의 우려가 있어(?) 살짝 다르게 나왔다.
  • 드웨인 존슨SNL에 출연해서 더 락 오바마(...)를 연기해, 프로 레슬러가 아닌 배우로서 일약 전국구 스타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 기안84의 네이버 웹툰복학왕에 우바 마란 이름으로 2번 나왔다. 첫 번째 등장은 별 파문이 없었지만, 2번째 등장은 오바마를 희화 하하여 어린 독자들이 진지하게 비난하였다. 이들은 정말로 외교 문제로 번질 것이라는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일개 웹툰을 가지고 한미관계가 흔들릴 리는 없다. 북한도 아니고.[63]
  • 퓨처라마에서도 젊은 시절 피자 배달하던 모습으로 등장. 갈굼 받으며 잔뜩 주눅이 든 채 " 로스쿨로 돌아가야겠어..."라며 푸념을 하는 등 초라한 모습으로 나왔는데 그걸 보고 프라이의 아버지가 "넌 저런 패배자 인생을 살지 마라"(...)라고 아들에게 한 마디 한다.
  • 사우스 파크에선 당선 당시를 다룬 에피소드가 있다. 버락 오바마, 미셸 오바마, 존 맥케인, 사라 페일린은 4인조 도둑으로 백악관을 털기 위해 모인 한통속이었던 내용으로 굳이 대통령이 되려고 한건 백악관 내부의 대통령 전용 터널을 탈출할 때 쓰기 위해서였다. 마지막에는 역시 한패였던 아이크가 자료 조작으로 4인조가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고 하고 잠적하려고 했지만 버락 오바마는 마음이 바뀌어서 대통령 자리에 도전해보기로 하는 것으로 에피소드가 끝난다.
  • 배리는 오바마의 청년기를 다룬다.
  • 푸른거탑에서 방한하여 3소대에 들러 소대원들과 만나 정진욱에게 군 생활이 어떠냐 묻자 정진욱은 조국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하자 박수갈채를 보낸다. 그러나 김호창이 식중독과 설사로 화장실에 가던 중 오바마와 부딪치고 오바마의 구두에 영 좋지 않은 행동을 하여 외신기자들에게 신상이 털리고 만다.
  • 2012(영화)에 나오는 미국 대통령도 오바마를 기반으로 한 캐릭터이다.
  • 식탐정에서는 어느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단역 캐릭터로 등장. 생김새가 대놓고 오바마인데다가 예고편에서는 아예 Yes We Can이라는 문구를 박아 넣었다.

9. 출처


  • 업그레이드 먼나라 이웃나라 12권: 미국3-대통령 편 - 이원복 글/그림. 김영사. 2018. p265~268.
[1] 영어병영을 뜻하는 Barrack이 아니다. '버락(Barack)'은 스와힐리어에서 따온 것으로 '''의 축복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아랍어에도 이와 같은 의미의 이름으로 이집트의 독재자의 이름인 '''무바라크'''(مبارك‎)가 있다. 코미디언 크리스 락은 전 NBA 선수 디켐베 무톰보와 동급 수준으로 듣기만 해도 흑인인 걸 알 정도로 흑인 이름이라고…[2]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트위터 팔로우 수를 보유한 인물이다.[3] 마지막에서 2번째는 '''Yes, We can!(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은 '''Yes, We did!(네, 우리는 해냈습니다!)'''[4] 출처[5] 아버지는 원래 무슬림이었으나, 자라면서 무종교인이 되었다.[6] 정확히는 이라크 전쟁에서 죽은 아랍계 미군의 예를 들면서 기독교인도 무슬림도 훌륭한 미국인이라는 발언을 했다.[7] 앨러배마주에서는 45%, 미시시피에서는 무려 52%가 버락 오바마를 무슬림이라고 믿고 있다.[8] 미국인의 대부분이 기독교(및 그에서 파생된 종파)를 믿거나, 기타 일신론적 종교(이슬람교 등)를 믿기 때문에 그렇다.[9] 다만 최초의 무슬림 하원 의원이 탄생하면서 쿠란 선서가 이루어졌다.[10] 오바마의 경우엔 148년 전 에이브러햄 링컨이 취임식에 쓴 성경으로 선서를 했다. 노예제 폐지를 부르짖다 스러진 링컨이 사용했던 성경을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취임식에 썼다는 것 자체가 또 다른 드라마틱한 역사이다.[11] JAY-Z에미넴의 곡 ''Renegade'' 등 흑인 문화에서 renegade는 대개 이런 의미로 쓰인다.[12] 캔자스 주 위치타 출신.[13] 대다수의 남부 주에서는 1967년 Loving vs. Virginia 판결로 뒤집어지기 전까지 인종간 결혼 혹은 성행위가 법적으로 금지되고, 주지사가 대학앞에서 흑인들은 백인들과 같은 대학 못 다닌다고 대놓고 말하던 시절이다.[14] 이부 여동생에게도 그녀의 아버지의 재혼으로 인한 이복 동생들이 있다.[15] 木屋烧烤(무우샤오카오), http://www.muwubbq.com/ 꼬치집이라기보단 바베큐집에 가깝다. 간판에 오바마 사진도 있다.[16] 이 사진들은 그의 대학 시절을 그린 영화 '배리'에서 차용되었다.[17] 천하의 마이클 조던 역시 2학년까지 JV에서 뛰다가 3학년때 Varsity에 합류했다. 문서에도 나와있지만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농구부 탈락 사건이 이때 일어난 것이다. 대부분의 1, 2학년들은 JV에서 뛰지만 소수의 뛰어난 저학년들은 Varsity에서 뛰는데, 조던은 자기가 뽑힐 거라고 생각했지만 키가 더 큰 동급생이 뽑힌 것.[18] http://www.nbcnews.com/storyline/president-obama-the-legacy/obama-s-high-school-basketball-coaches-teammates-remember-barry-n700986[19] https://www.youtube.com/watch?v=_ZfEFly8ShE[20] https://www.youtube.com/watch?v=mR14k1Sna8M[21] https://www.bloomberg.com/politics/videos/2014-12-01/laurence-tribe-is-a-bit-disappointed-in-obama[22] 하버드 로스쿨 입학까지 자신의 인생에 관해 쓴 책이다. 로스쿨 재학 중에 썼으나 1995년 정치 활동 준비하면서 출간했다.[23] 보면 9월, 경선 3달 전까지도 힐러리 클린턴에게 뒤지고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24] 특히 Twitter가 여기에서 큰 역할을 하여 오바마를 트위터 대통령이라고도 하기도 한다. [25] 경선 과정에서도 지원금을 받을 수 있지만, 그 액수가 기부금에 비하면 너무 적어서 양당의 주요 후보들은 거절하는 게 대세다.[26] 2019년 현재 한화로 약 9021억 원[27] 물론 이것이 대통령으로서의 자질과 동일시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조지 W. 부시도 매우 적극적이고 효율적인 선거 운동을 해냈다.[28] 타블로이드판인 G2이다.[29] 전임 조지 W. 부시의 재선 성공 때의 문구는 "Oh, God", '''신이시여.'''[30] 존 매케인은 59,934,814표(45.7%), 선거인단 수 173표를 얻으며 참패했다. 선거인단 수가 20명이 넘는 주는 텍사스 주를 빼고 전부 패했고, 인디애나, 노스캐롤라이나, 버지니아, 플로리다 등의 지역에서도 접전 끝에 1~3%의 격차로 패했으며, 그나마 이긴 22개 주 중에서도 미시시피, 조지아 주, 네브래스카, 캔자스, 노스다코타, 사우스다코타, 아칸소, 켄터키, 웨스트버지니아, 사우스캐롤라이나 에서도 오바마에게 40% 이상의 득표율을 허용하며 10% 안팎의 격차로 이기는데 그쳤다.[31] 여론 조사에 따라 58~60% 지지율을 보여줬으며 이는 전 미대통령 중 프랭클린 D. 루스벨트(71%), 빌 클린턴(65%), 로널드 레이건(64%) 다음으로 높은 퇴임 직전 지지율이다.[32] 보스턴 레드삭스(Boston '''Red sox''')와 시카고 화이트삭스(Chicago '''White sox''')의 팀명을 빗댄 언어유희.[33] 미국 대통령은 중임(두 번 당선)이 가능하며 그 후에는 대선 출마를 할 수가 없다. 조지 워싱턴이 초선 이후 재선까지 하고 다른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2선이라는 선례를 만들고 자리에서 내려옴으로써 FDR 이전에는 미 대통령은 2선까지가 관행이자 일종의 관습법이었다. 근데 그걸 깨고 무려 4선을 한 어느 인물 때문에 헌법에 3선 불가 규정을 넣었다. 여기서 말하는 캠페인은 자신이 출마할 대선 뿐 아니라, 같은 당원들이 출마할 중간선거 역시 자신의 임기 내에는 없다는 뜻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오바마 본인이 더이상 자신의 인기나 지지도를 신경 쓸 필요도 없고, 오바마 때문에 비교적 보수적인 남부/중서부 지역구에서 질까봐 덜덜 떠는 딕시크랫(민주당내 보수파)들 눈치 볼 필요도 없으니, 이제 내가 늬들 눈치 볼 일은 없다는 의미로도 말을 한 셈.(…)[34] 취임식을 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에서는 취임식 때 성서에 손을 올리고 대통령 선서를 한다.[35] 미영전쟁 때 영국군에 의해 백악관이 불탄 것을 빗댄 유머다. light it up은 문자 그대로 밝혀준다는 뜻도 있지만 속어로서는 '태워버리다' 또는 '날려버리다'라는 뜻도 있다. [36] 단독 출마[37] 이는 모든 역대 미국 대통령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무능의 아이콘으로 이미지된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동일하게 임기 전과 후 폭삭 늙고 흰머리가 많이 생긴 비교사진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4년만 했지만, 임기 전과 후의 외모가 많이 달라졌다. 임기 전에는 상당히 동안이었지만, 현재는 딱 74살 할아버지로 보인다는 반응. 비슷하게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도 참여정부의 비서실장 시절 때의 격무로 인한 스트레스와 과로로 인해 치아를 9개나 발치하고 인플란트를 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문재인 특유의 쩝쩝거리는 듯한 발음이 생겼다.[38] 특히 디트로이트 같은 곳은 겨우 25% 정도로 한 반에 중퇴자가 4분의 3이나 된다. 반면 한국은 2008년 OECD 보고서에 의하면 97%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39] 유념할 것은 오바마는 교육 전문가가 아니란 점이다. 즉 한국식 주입식 교육의 실체를 알고 이를 본받자는게 아니라, 미국의낮은 교육열을 고치자는 의미에서 반대로 엄청나게 높은 고등학교 졸업률과 대학 진학률을 갖고 있는 한국을 언급한 것. 실제로 한국의 교육시스템을 도입하려는 그 어떤 정책적 움직임도 없었다. 한마디로 "공부 좀 하자 이놈들아. 옆집의 누구는..."식의 멘트에 불과하다.[40] 그리고 국제관례상 군주국의 국가원수에 대해서는 공화국의 국가원수가 상대를 극존중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41] 참고로 바로 전임의 전임 또한 46 갑인데다 또 한번 재밌게도 아들 부시 & 트럼프 한쌍과 함께 그 생일조차 각각 1달씩이나 차이남. 오바마 본인은 바로이 분의 집권 시기 출생자이다.[42] 참고로, 더 락 오바마를 연기한 사람은 이름에서 알다시피, 프로레슬러 더 락으로 유명한 배우 드웨인 존슨. 그리고 그 드웨인 존슨도 2017년 현재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비판이 만만치 않자 트럼프가 탄핵당할 것 또는 재선에 실패할 것을 대비해서 대통령으로 밀어주자는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다.[43] 백악관 출입기자들을 위한 행사로 게스트들과 대통령이 유머 섞인 연설을 펼치는 것으로 유명하다.[44] 이때를 기점으로 트럼프는 민주당의 완벽한 정적이 되어버리고 취임이후에도 틈만나면 오바마의 행적을 물고 늘어진다.[45] 오바마는 웃으면서 이 개그를 하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아래의 넵튠 스피어 작전을 실행하러 갔다. 더욱 무서운 사실은 '''빈 라덴의 위치를 가지고도 농담을 했다'''. 레알 충공깽. 이 사실이 알려지자 오바마가 트럼프를 비웃는 짤방이 양산되고, 당시 공화당 경선주자였던 트럼프의 지지율은 급감했다. 그리고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오바마는 유쾌한 분위기 에서 재치있는 단어 선택으로 트럼프를 '''엿먹였고''' 모든 사람이 다들 빵 터진 가운데 트럼프 혼자 표정이 일그러지는 모습이 카메라에 적나라 하게 찍혔다. 그리고 5년 반 정도 지난 뒤, 트럼프가 어느 위치로 올라갔는지를 보면... [46] 다코타 패닝(1994~)의 동생인 엘 패닝(1998~)과 동갑내기에 엘 패닝 역시 말리아 오바마만큼 무지막지한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엄청난 장신(175cm)이다.[47] 사실 연장자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 보니 오바마가 결례를 범한 것처럼 보이지만 저건 오히려 박근혜가 더 결례를 범한 것이다. 미국 대통령과 공동기자회견이라면 대통령직 중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인데 집중을 하지 않고 있었단 소리고, 실제로 질문을 잊어버렸다면 자연스럽게 "실례지마 질문을 반복해줄 수 있는가?"(정치인들이 답변을 생각할 시간을 벌기 위해 자주 쓰는 수법이기도 하다)라고 요청하면 될 것을 멍 때리고 있다는 건 반푼이 인증이다. 그리고 오바마 입장에서 빡칠만한 것이, 대한민국 대통령이란 건 미국 입장에서도 중요한 사람이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자 동아시아 안보의 핵심 플레이어 중 하나로 정상회담에 오바마도 철저하게 준비하고 나왔을게 분명하다. 즉, 상식 이하의 어리버리함에 "아놔 장난하냐고"를 아주 우회적으로 표현했다고 볼 수도 있다.[48] 미국 대통령이 방한해서 한국 기자들이 질문할 수 있는 기회가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것도 아니다.[49] 제가 캠프 데이비드에서 사격하고 있는 사진을 가지고 포샵 한 거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여기서 고백하는데, 그들의 말이 맞았습니다. 사실 실제 사진은 이거였죠.[50] 6호 전차 티거의 방호력이 강철 수직장갑 10cm였다. 꾸준히 향상된 복합장갑의 성능을 예상하면 아무리 못해도 M60 패튼의 전면장갑 수준이다.[51] 시카고 상원의원 시절 시카고에서 진행한 코난 오브라이언의 레이트나이트 쇼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떠나갈 듯한 환호를 받는다. 특히 코난의 팬층이 매우 젊은데, 오바마는 젊은 층과 여성 층으로부터 지지가 매우 탄탄하다. 사실 이런 점에서 정책을 잘 모르고 외모나 특유의 캐릭터를 보고 팬이 된 사람들이 많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점은 민주당의 빌 클린턴이나 공화당의 레이건도 마찬가지인데, 레이건은 나이 때문에 오바마나 클린턴같은 미남은 아니었지만 정책에 비해 이상할 정도로 친근한 이미지가 강했다. 물론 이 셋은 유능한 인물들이었지만 이와 별개로 이미지 덕을 꽤나 봤다는 것.[52] https://www.yna.co.kr/view/AKR20160903052400009[53] 같은 이유로 캘리포니아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의 경우도 흑인+인도계(아시아계) 혼혈이지만 피부색이 어둡고 본인 스스로 흑인으로서의 정체성 또한 가지고 있어 흑인으로도 친다. 이 사람은 정확하게는 '''아시아계이면서 동시에 흑인'''이다.[54] 아버지 없이 자란 탓에 외조부를 통해 아버지의 역할을 배웠다. 오바마가 연설에 자주 넣는 추임새 중 하나인 'Look'이 외조부의 영향을 받아서 생긴 습관이라고.[55] 이 경기가 ALCS 2차전. '''피어진스키의 낫아웃 사기극이 일어난 경기이다.''' 여담으로 이해 화이트삭스는 AL 전체1위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달성.[56] 텍사스대학교오클라호마 대학교와의 Red River Shoot에서 승리를 거뒀으나 정작 BCS 랭킹은 1단계 밑이었다.[57] 이 사람은 오바마 집권기를 조지 부시의 3선이라고 표현했다.[58] 자신의 경험과 약속을 다룬 <세 잔의 차>라는 책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 책은 조작 논란이 끊이지 않아 공동저자가 자살했으며, 그레그 모텐슨과 그의 자선단체 또한 부패와 거짓 논란에 휩싸여 있다.[59] 엄밀히 따지면 New START가 2010년 4월 8일에 체결되었고 START I은 2009년 12월 5일에 만료되었으므로 그 해(2009년)에 갱신된 것은 아니긴 하다. 다만 협상을 개시한 시점으로 따진다면 2009년 5월이므로 아주 틀린 표현은 아닌 셈.[60] 전략공격능력삭감조약(SORT)이 있긴 했지만 전략무기감축협정 문서에서도 언급되었다시피 '''검증 관련 규정이 전무하여''' 실질적인 효력에 꾸준히 의문이 제기되고 있었다.[61] 대통령직이 끝난 뒤 새로운 직업을 찾을때 있을 수 있는 면접(...)을 연습하는 꽁트 영상이다. 영상 4분 13초~20초경에 노벨상 관련 언급이 나온다.[62] 사실 연설 구성을 봐도 언론에 대한 섭섭함이나 경쟁자들의 추문에 대해 언급할 때는 통역을 쓰는데 환경 문제에 대해서는 참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는 식으로 심각성을 환기하는 효과를 냈다.[63] 농담이 아니고 정말 북한은 지도자에게 조금이라도 안 좋은 무언가가 나오면 다른 나라 지도자들은 허허 웃어넘길 일이라도 최고존엄 운운하며 별의별 소리들을 다 하고 그를 방송으로 발표한다. 미국 대통령과 스케일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