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1. 개요
'그 달의 몇 번째 날', 또는 '여러 날'이라는 뜻의 단어. '며칠'은 하나의 단어로 취급하며, '몇일' 또는 '몇 일'로 표기하는 것은 국립국어원에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몇 년' 이나 '몇 월' 등은 올바른 표현이며, '몇일' 역시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이기 때문에 표기법에 대해서 논란이 있다.
2. 발음 및 어원
'며칠'의 발음은 이 글에 잘 설명돼 있다. '몇'은 '몇이나', '몇을'과 같이 뒤에 조사가 오면 'ㅊ'이 /며ㅊ/으로 그대로 보존된다. 그러나 '몇 월', '몇 인(人)'과 같이 뒤에 모음으로 시작되된는 명사가 오면 'ㅊ'의 발음이 대표음 /ㄷ/으로 바뀌어 /며ㄷ/으로 실현된다. 따라서 '몇 일(日)'이면 /며딜/로 발음되어야 옳으며, 구개음화를 고려해도 /며질/이라는 발음이 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며칠/로 발음되므로, '몇' + '일(日)'과는 다른 어원이 있다고 분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몇 월 며칠'이라는 말을 발음할 때에는 [며둴 며칠]로 발음의 양상이 달라진다.
'며칠'의 어원은 '몇' + '일(日)'이 아닌 '몇' + '을'이다. '이틀', '사흘', '나흘' 등의 그 '을'이다. 이 글 참조. 중세 한국어에서 '몇 + 을'이 합쳐져 '며츨'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표준국어대사전의 '며칠' entry를 보면 번역박통사(1517년)라는 문헌에서 '며츨'이라는 형태가 나타났다는 게 보인다. 그리고 표준국어대사전의 '며츨' entry를 보면 '며칠'의 옛말이라는 설명과 함께 번역박통사(1517년), 첩해신어(원간본)(1676년)에서 '며츨'이 등장한 사례가 나온다. 공시적인 관점에서 '몇 + 을'은 [며틀]이므로 의아할 수 있으나 단어 형성 당시에 'ㅅ'을 포함한 'ㅈ', 'ㅊ' 받침은 'ㄷ' 받침으로 불파음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며츨]이 되었다. 이게 근현대 한국어에서 '며칠'이 된 것이다. 근현대 한국어로 오면서 'ㅈ', 'ㅊ' 뒤의 'ㅡ'가 'ㅣ'가 되는 현상은 상당히 흔했다(아래아(ㆍ)는 대부분 첫 음절에서 'ㅏ'가, 둘째 음절 이하에서 'ㅡ'가 되었고, 'ㅡ'가 된 아래아는 'ㅈ', 'ㅊ' 뒤에서 다시 'ㅣ'로 바뀌었다). 예를 들어, '즐다 → 질다', 'ᄆᆞᄌᆞ막 → ᄆᆞ즈막 → 마지막', '거츨다 → 거칠다', 'ᄆᆞᄎᆞᆷ내 → (마츰내 →) 마침내', '츩 → 칡' 등이 있다. 만약 현대 한국어에서도 /며츨/로 발음되면 '사흘', '나흘'과 마찬가지로 그 어원을 살려 '몇을'로 적을 수도 있겠지만 ('ㅊ' 종성이 /ㅊ/으로 연음될 수 있는 것은 조사에서 한정이지만, '곧이어' 같은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어원적으로 분석이 가능한 경우는 8종성 밖의 표기를 사용한다) 그 발음이 이미 /며칠/로 바뀌었기 때문에 발음에 따라 '며칠'로 적게 되었다. '몇일'은 오히려 /며츨/이 /며칠/로 바뀌고 나서 그것을 '몇 + 일(日)'로 분석해서 나온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한편, 역사적 사실과는 다르지만 '몇 일'로 조어되어 [며딜]로 발음되는 상황이었다 해도 나중에 [며칠]로 발음이 변화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른바 긴밀 합성어에서 단어 경계가 형태소 경계로 바뀌는 현상으로,
보다 이완적인 합성어인 '맛없다'는 [마덥따]로만 발음되지만, 긴밀 합성어인 '맛있다'는 [마딛따]와 [마싣따]로 모두 발음할 수 있다.
비슷한 사례로 '올해'는 '올 + 해'로 분석될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올ㅎ' 자체가 이미 '이번 해'라는 의미였다. ㅎ말음 체언이었던 단어 가운데 하나. 나중에 처격 조사가 결합하거나 어떻게 해서 '올해'가 되었다.
3. 논란
국립국어원에서 '몇 일'을 부정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몇 월'을 [며둴]로 읽듯이, '몇 일'로 쓴다면 [며딜]이지 [며칠]이 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표준 발음이 [며딜]이나 [면닐] 또는 구개음화로 [며질]소리 나야 '몇'이라는 어원을 상정할 수 있는데, 실제 발음은 [며칠]이므로, 소리 나는 대로 '며칠'로 적는 것이라는 표준어 규정을 정한 것이다. 그래서 2021년 현재는 '몇일'은 국립국어원에서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국립국어원 트위터 답변 #
그러나 이는 앞서 말했듯이 '몇일'이 이미 [며딜]을 거쳤다고 가정하고 공시적으로는 긴밀형태소가 되었다고 가정하면 해결할 수 있다. '맛있다' 역시 그런 과정을 거쳐 [마싣따]로 읽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 '몇일'에 대해서만 예외를 적용해야 한다는 부담이 생기지만, '몇 년', '몇 월'과 표기상 통일성이 생긴다는 이점이 있다.
또한 '몇 일'이라고 띄어쓰기만 제대로 한다면 문법적으로는 틀린 부분이 전혀 없다. 물론 이 경우 이걸 [며딜]로 읽어야 하지만 말이다. '며칠'이 표준이니까 '몇 일'을 사용하지 말라는 국립국어원의 금지령만이 '몇 일'이 틀리다는 근거가 될 뿐이다.
또한 '사흘', '나흘'이란 표현도 사용하고, '삼 일(삼일)', '사 일(사일)'이란 표현도 사용하는 것처럼, '며칠'과 '몇일'을 서로 별개의 기원을 가진 다른 단어로 볼 수도 있다. 즉 '칠(을,흘,츨)'을 기반으로 한 '사흘', '나흘'이란 표현도 사용하고, '일'을 기반으로 한 '삼 일(삼일)', '사 일(사일)'이란 표현도 사용한다. '며칠'은 전자에서 파생된 것이고, '몇 일'은 후자에서 파생된 것이다.
또한 방언으로 '몇+일'의 재구조화(이 재구조화는 주로 '며칠'이라는 표기를 보고 착안된 것으로 보이지만, 그와는 별개로 '몇 년', '몇 월'을 통해 '몇+일'을 유추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므로 종성 ㅊ의 불파음화가 일어난 이후라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며츨>며칠'과는 별개로 결과 [며딜]로 발음하는 화자가 존재할 수도 있고, (방언형으로 [며딜]이 존재한다는 제보가 있다) 그러한 화자는 마치 [니가]라고 하면서도 [네가]로 교정하는 것과 같이 규정에 의해 [며칠]로 고쳐 발음하는 것일 가능성이 있다.
의미론적으로 둘을 구분하여 보면 [몇 번째 날]만 '며칠'이고 [몇 개의 날](기간)은 '몇 일'로 구분한 것이라는 관점도 있다. '몇'을 관형사로 보는 오늘날의 관점으로 분석하면 '몇 일'이 [몇 번째 날]의 의미를 나타내기 어려우므로, 어휘화된 '며칠'만이 [몇 번째 날]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다. 그러나 현대 국에서는 '며칠'이나 '몇일'이나 둘 다 [몇 번째 날]의 뜻과 [몇 개의 날]의 뜻이 모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굳이 구별해서 쓸 필요가 없다. '월'의 경우는 오늘날의 구어에서는 '몇 월'(1월, 2월, 3월)과 '몇 개월'/'몇 달'(기간이 3달)로 구분했다. 법조문에서는 '월'도 '몇 월'을 '몇 개월'의 의미로 아직 사용하고 있다(예: 1월 이상의 징역).
음운론적으로 '몇 일'은 소멸된 게 아니라 단지 발음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았던 것일 수 있다. 일단 위와 같은 이유들로 [며칠]의 사용빈도가 높았을 것이며, 또한 '며칠'과 달리 '몇 일'은 표기와 발음이 구분돼 있는 데다가 애초에 음성의 특성상은 흔적을 찾기 어렵고 그마저도 '며칠'이 표준이 된 이후로는 [며딜]의 소멸이 가속화됐을 것이기에 지금와서 [며딜]이 소멸하지 않았음(또는 않았었음)을 입증하기란 매우 어렵다. 정말로 [며딜]이 소멸됐기에 흔적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흔적을 찾기 어렵기 때문에 못 찾은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문법대로라면 '몇 일'은 맞는 표현이지만 그것을 부정하는 예외 규정을 따로 익혀야 하고 반대로 일반적인 문법대로라면 '며칠'은 틀린 표현인데도 그것을 긍정하는 예외 규정을 따로 익혀야 한다. 즉 번거롭고 혼란스럽다.
또 국립국어원의 논리대로라면, 대부분의 국민이 '네가'가 아닌 '니가' 또는 '너가' 라고 발음하는 실정이므로 '네'를 없애고 '니' 또는 '너'를 표준으로 등재해야 한다. '네'로 표기하는 경우가 있다고 해도 상관 없다. '몇 일(몇일)'로 표기되는 경우 역시 많았지만 무시됐기 때문이다. 즉 정책의 일관성에도 맞지 않는 것이다.
또한 '몇 년', '몇 월'은 띄어쓰는 데에 반해 '며칠'은 한 단어로 써서 통일성이 떨어진다는 문제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