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리마나

 

'''木刕麻那'''
생몰년도 미상
1. 소개
2. 기타


1. 소개


백제의 장군이다. 국내 사서에는 등장하지 않고 《일본서기》에 그 이름이 나타난다. 마나갑배(麻那甲背) 혹은 성방갑배매노(城方甲背昧奴じやうはうかふはいまな)[1]라고 불리기도 하며 관직은 중좌평(中佐平)의 직위에 있던 인물이다.
첫 등장은 529년에 금관국탁기탄국신라에 의해 멸망하고 이후 반파국과 탁순국 간의 반발로 열린 안라회의에서다. 여기서 마나갑배(麻那甲背)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며 백제의 고위관직자들과 함께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이후 543년에 임나의 부흥을 위해 백제 성왕이 주최한 회의에 참여한 백제 대신들 이름 사이로 중좌평 목례마나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다.

2. 기타


《일본서기》 무열왕(武烈王) 6년 기사에 백제에서 왜로 파견된 사신 중 마나군(麻那君)이라는 이름이 전해지는데 이를 목례마나로 보는 설도 있다. 그러나 이후 흠명천황(欽明天皇) 4년(547)에 동성자언(東城子言)과 교체된 사신의 이름이 문휴마나(汶休麻那)이므로 마나군은 목례마나가 아니라 문휴마나와 동일인일 가능성이 더 크다.

[1] 역사적 가나 표기법을 따른 표기로, 한글로 그대로 옮기면 '지야우하우카후하이마나'이다. 실제 일본어 발음은 '조호코하이마나'에 가깝다. 여기서 나타나는 성방(城方)은 백제의 주요거점인 오방 및 주요 성을 나타내며, 갑배(甲背)는 방과 성의 우두머리인 방령(方領)이나 성주(城主), 군장(郡將)을 의미하는 용어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