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타 히데오
1. 일본의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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村田英雄
1.1. 일생
1929년 (쇼와 4년) 1월 17일 생 일본 가수.본명은 카지야마 이사무(梶山 勇). 낭곡사 출신 가수이자 영화배우로 미나미 하루오와는 선의의 라이벌 관계였다.
16세가 되던 1945년에는 일본군 해군에 자원입대해 나가사키에 위치한 사세보 진수부 해병단의 수송반으로 배속된다. 동년 6월 19일에는 후쿠오카 요시즈카 전매국에 발령되었는데 그 날 후쿠오카 대공습이 발생하게 되자 다음날 다시 제15은행 (1944년 제국은행으로 합병) 빌딩 지하실의 시신 반송 작업반에 배치된다. 복무 2개월 만에 전쟁이 끝나자 1947년 제대 후 소녀 낭곡사인 요시다 이마리와 결혼하고 1949년 상경해 25세가 되던 1954년 지금의 가명인 무라타 히데오로 개명한다.
이 후 라디오에서 낭곡을 들려주는 무명가수로 생활하다가 1958년 우연히 라디오를 들은 일본 엔카계의 유명 작곡가 고가 마사오에게 발탁되어 無法松の一生 (무법송의 일생)이라는 노래로 공식 가수로 데뷔하기에 이른다.
1973년 갑자기 쓰러졌는데 이유는 원래 가지고 있던 지병인 당뇨병의 악화였던 것이다. 이 후 회복되어 다시 1979년 유선방송에서 무라타의 노래 <부부춘추>라는 곡을 드라마화한 것이 대히트되어 시너지 효과를 가져왔고, 1981 ~ 1982년 라디오 프로그램 "비트 다케시의 올나잇 일본"에 출연해 호방한 성격과 일화를 소개하여 젊은 층에게 큰 인지도를 가져왔다.
1988년에는 같은 시기에 엔카계를 대활약했던 미치하시 미치야 (三橋美智也, 1930 ~ 1996), 가스가 하치로 (春日八郎, 1924 ~ 1991), 미나미 하루오 (三波春夫, 1923 ~ 2001)과 4인방으로 불리우며 여러 방송 출연과 콘서트를 개최하고, 개인적으로는 작사와 작곡도 직접 한 적이 많다고 한다.
* 4인방의 콘서트 동영상 모음
쇼와 57년 (1982년) 7월 19일 <여름 축제 일본의 노래>라는 프로그램에서 방송한 것을 1992년 <쇼와 가요 대전집>이라는 프로그램에서 회고 영상으로 방송한 것이다.
일본 엔카계의 중견급 가수이자 무라타 히데오의 선의의 라이벌이자 절친한 동료인 미나미 하루오와 여러 합동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30년 가수 내공과 노래 속에 들어가 있는 명대사로 항상 공연장은 박수 소리가 터져나왔다.
https://www.youtube.com/watch?v=IP4c3CDRdKs&t=59s
https://www.youtube.com/watch?v=7FXWXlQQkkY
https://www.youtube.com/watch?v=LY7yHIS1ejg
1.2. 건강 문제
무라타의 인생은 한마디로 "당뇨병과의 싸움"이었다. 식생활에 있어 야채를 별로 안 좋아해서 "굵은 목소리를 내려면 고기를 많이 먹어야 한다"라는 생각에 거의 매 끼니를 육류를 중심으로 먹고 엄청난 애주가, 즉 주당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안 좋은 생활습관으로 35세에 당뇨병에 걸리고 만다.
1972 ~ 1973년에는 발병으로 쓰러져 일시적으로 입원하였고, 1991년에는 무명 가수 시절에도 꿋꿋이 내조하며 무라타를 지지해 주었던 아내 요시다 이마리의 별세, 그 3일 전 엔카계 4인방의 일원으로 친한 동료였던 가스가 하치로마저 별세하여 당뇨 합병증에 우울증까지 겹쳐 아내의 장례 직후 입원하여 퇴원 후 오랜 애인이 거주하는 오사카에 거주하며 작업이 있는 경우에만 상경하는 방식을 가지며 요양 생활을 한다.
그 후 1995년에는 당뇨 합병증이 더욱 심각해져 급성 심근경색과 심부전증이 겹쳐 의식 불명에 빠지고 이듬해 1996년 1월에는 또 엔카계 4인방 중 1명인 미치하시 미치야가 별세하여 더욱 우울증도 심각해져갔다. 1996년 2월, 백내장 수술을 받으려고 입원 도중 쓰러져 6시간에 걸친 심장 관상동맥 우회 이식술을 받고 3월에는 백내장 수술, 5월에는 오른쪽 다리 말초 혈관 질환이 괴저상태에 빠져 오른쪽 무릎 12센치를 절단한다. 이 때 무라타는 "모든 것이 무산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며 삭발한다.
1997년에는 다시 공연을 재개하면서 회복세를 보였지만, 10월에 저혈당 발작을 일으켜 생사의 고비까지 언급될 정도였다. 여기서 무라타는 "과거 화이트 와인을 술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물 마시듯이 마셨기 때문에 그렇다"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12월에는 당뇨병 망막증으로 왼쪽 눈을 수술하고 2000년 1월에는 왼발까지 절단한다. 이때까지 의족으로 생활했지만 이제는 휠체어 생활이 되고 마는데 인터뷰에서 "다리가 없어도 노래는 노래다"라고 말하며 가수의 면모를 풍기었다.
그런데, 2001년 4월 무라타의 선의의 라이벌이었던 미나미 하루오마저 세상을 떠나자 "노래를 더 불러주었으면 좋겠다. 매우 쓸쓸하다. 이제 살아있는 건 나 혼자구나"라며 매우 초췌한 표정으로 인터뷰를 하였다. 같은 해 6월 "나는 더 이상 시간은 없다. 살아있는 동안 어떻게 해서든지 음반을 발매해야한다"라며 '3인방 모임' 콘서트의 오리지널 판이 레코드 회사의 울타리를 넘어 CD화되기에 이른다.
2002년 5월 컨디션 악화로 입원했지만, 6월 13일 오전 9시 52분 당뇨병 합병증과 폐렴으로 인해 오사카 부 오사카 시 미야코지마 구 오사카 시립 종합 의료센터에서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이틀 뒤 무라타 히데오의 동료 중 한 명이었던 배우 무로 히데오 (室田日出男)도 별세한다. 코미디언 비트 다케시는 "무라타 다음으로 무로가..."라며 고인을 애도했다.
1.3. 이후
2004년 5월 23일 지역 유지들에 의해 무라타의 업적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무라타의 고향 사가 현 오치마을에 <무라타 히데오 기념관>을 오픈한다.
구 사가은행 오치지점으로 사용하다가 개조하여 유품 전시, 분장실 재현, 출연 프로그램 방영 등 여러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이 있다.
1년에 1회 1월 17일 오치마을에서 <무라타 히데오 음악제>, <무라타 히데오 탄신제>를 거행한다.
2016년 1월 17일에는 지역 주민의 모금을 통해 오치역 구내에 기념비가 건립되었다.
2. 여름의 폭풍!의 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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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만화, 애니메이션 여름의 폭풍!의 등장인물. 성우는 야스모토 히로키. 이름의 유래는 1번인듯.
룬룬탐정사무소의 사립탐정. 건장한 체격에 얼굴에 흉터까지 나있어 험악한 인상의 사내. 야마자키 카나코의 의뢰로 아라시야마 사요코를 데려가려 한다. 또한 마스터가 하코부네의 진짜 마스터가 아닌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처음에는 야사카 하지메의 방해와 사요코에 의해 실패, 두번째는 마스터와 내기를 벌이나 낚이는 바람에 또 실패. 그외 카나코의 의뢰로 각종 속옷을 사는 장면도 나온다.
사실 그의 정체는 과거로 간 사요코와 하지메가 구해준 무라타 사츠키의 아들. 아라시와 같이 약한 사람들을 구해주라고 아버지가 히데오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85년으로 넘어갔을 때도 만났다.
카나코가 사요코를 공격하면서 의뢰를 백지화하고 하지메와 손을 잡는다. 그리고 카나코와 싸우다 전기충격기로 기절. 그후 카나코와 통한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이후 탐정일과 하코부네 잡일을 병행. 하코부네에 자주 배달을 하는데 배달되어 온 요리가 하나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