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마르 시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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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터키어: قوجو معمار سنان آغا
터키어: Mimar Sinan
(1489년~1588년)
1. 개요
2. 생애
3. 사후


1. 개요


오스만 제국의 건축가. 제국의 전성기인 쉴레이만 1세 대를 시작으로 무라트 3세 대까지 활동했으며, 비에슈그라드의 메흐메드 파샤 소콜로비차 다리 등 현재도 유명한 건축물들의 설계를 맡았다. 그 외에도 술레이마니예 모스크, 셀리미예 모스크, 세흐자데 모스크 등 수많은 모스크들을 건축하여 큰 돔과 첨탑을 특색으로 하는 오스만 건축 특유의 양식을 완성시켰다[1]. 그의 이름에 붙은 '미마르(Mimar)'는 건축가라는 뜻의 칭호이다.
사후에도 그의 제자들이 영향을 받아 유산을 남겼는데, 대표적으로 꼽는 것으로는 모스타르 다리(Stari Most)와 블루 모스크가 있다.

2. 생애


출생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확실한 것은 1489년 카이세리에서 석공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점인데, 당시 카이세리에는 그리스인아르메니아인이 많이 살았고, 데브시르메 제도로 인한 징집대상이었던 점을 들어 그리스계나 아르메니아계, 알바니아계라는 추측이 있다. 젊은 시절에는 예니체리 군단에 속하여 기술 훈련을 받고 공병장교로 임관했으나 그의 재능을 눈여겨 본 쉴레이만 1세로부터 건축 설계를 요청받아[2], 크고 작은 건축물들을 설계하기 시작하여 말년까지 300채가 넘는 작품을 남겼다. 초기에는 하기아 소피아를 기반으로 한 전통적인 양식을 따랐으나 예니체리 군단에 속한 동안 보았던 건축 양식들을 융합하여 기하학적인 순수성과 공간적 통합성을 추구한 독자적인 건축 양식으로 발전했는데, 이러한 경향이 드러난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에디르네의 셀리미예 모스크를 들 수 있다.

3. 사후


이스탄불에는 그의 이름을 딴 미마르 시난 예술 대학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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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부터 1995년까지 터키 10,000 리라 지폐의 인물이었다. 배경에 있는 건축물은 셀리미예 모스크.

[1] 시난 이후 오스만 제국의 건축 양식은 사실상 그의 양식으로 봐도 좋다는 평도 있다.[2] 예니체리는 이른바 '근대화' 가 되기 이전까지의 오스만군에서 유일한 상비 보병대이자 동시에 황제의 보병 근위대였으며, 따라서 전투원 외에도 공병대나 군악대, 조리병 등 다양한 산하 부대를 거느리고 있었다. 실제로는 극히 비효율적인 짓이었겠으나 예니체리 군단만으로 군사 원정을 벌여도 큰 차질이 없었을 정도. 한편 예니체리 군단에 속해 있다가 전직하는 것은 특례라기보다 상당히 흔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