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 레르몬토프
그래, 나는 서른 살이야... 그런데 무엇을 했을까. 왜 살았지?
남들은 내가 이기주의자라고들 하지
그렇다면 나는 자신을 위해서 살았을까? 아니야...
나는 모든 것을 포기했는걸
항상 타인의 변덕물의 말 없는 희생물이었고
항상 스스로의 열정과 싸우며 어떤 즐거움도 찾지 않았으며, 자기 자신의 짐이었다.
누군가에게 고의로 악한 일을 한 적도 없다...
그러면 남을 위해 살았는가? 그것도 아니야...
배은망덕을 당할까 두려워서 누군가에게 선한 일을 하지도 않았어
어리석은 자들을 경멸하고, 똑똑한 자들을 두려워했고
모든 이로부터 떨어져 아무에게도 신경쓰지 않았지
혼자서, 언제나 혼자서, 카인처럼 버림받은 채
누구의 죄 때문인지 신은 아시겠지
- 희곡 “두 형제” 중에서[1]
1. 개요
푸시킨과 함께 러시아 시문학을 한 단계 끌어올린 일류 시인, 소설가로 평가받는 미하일 레르몬토프는 '''27살에 결투로 사망'''했다고 한다. 그는 17세기에 러시아 제국에 선장으로 정착한 스코틀랜드 리어몬트 가문의 후손이기도 하다.
2. 생애
레르몬토프는 1814년 퇴역 대위인 아버지와 부유한 명문가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레르몬토프가 세살 때 어머니는 패결핵으로 목숨을 잃고 그 이후 외할머니와 아버지 사이에서 미하일의 양육권을 두고 자주 싸움이 일어났는데, 이 일은 어린 미하일에게 큰 상처가 되었다. 어린 시절 허약한 체질이었던 그를 걱정해서 외할머니는 세 번이나 그를 카프카스의 온천으로 데려갔는데, 카프카스의 험한 산세와 자연은 소년의 감성에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되었다.
1828년 레로믄토프는 모스크바 대학의 귀족 기숙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이 때부터 시 창작에 매료되었다. 학생들이 필사로 잡지를 필사할 때 레르몬토프도 참여하여 여러 창작시들을 발표했다. 당시 레르몬토프는 이미 영어를 자유롭게 읽고 쓸 수 있었는데, 특히 바이런으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다 한다. 수업시간 동안 교수의 강의는 듣지 않고 책을 읽는 일이 많았던 그는 한 교수와 싸움을 계기로 대학을 중퇴하고 기병사관학교에 입학하고 이후 러시아 황실 근위대에 들어갔다.
신랄한 성격이었던 그는 러시아 황실 근위대에서 복무했던 도중 푸시킨의 죽음을 뒤에서 조종한 사람들을 비판하는 글을 썼다 자신이 어렸을 적 요양했던 곳이자 전방 지대인 카프카스로 좌천되었다. 수도에서 느긋한 바람둥이 생활을 즐기던 그는 카프카스의 광활하고 아름다운 자연, 도시 문화에 때가 묻지 않은 체르케스인들, 고대 기독교 문명을 보존한 조지아에서의 생활에 영감을 받아 장편 시 악마, "견습 수도사", 소설 “우리 시대의 영웅” 등을 집필했다. 오히려 카프카스에서의 유형 생활은 그가 그토록 갈구하며 상상했던 자유로운 생활이었다.
외할머니의 주선으로 레르몬토프는 반년 만에 다시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오게 되었다. 1840년 그가 카프카스에서 구상했던 작품 우리 시대의 영웅이 출간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첫 시집이 나왔다. 비평가들에게 일제히 '''"푸쉬킨의 적자"'''라는 극찬을 들으며, 벌써 젊은 나이에 문인으로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러나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귀환한 지 얼마 안 되어 프랑스 공사의 아들과 결투를 벌인 스캔들로 레르몬토프는 다시 카프카스로 좌천되었고, 문인으로 유명인사가 된 지 1년 후 1841년 6월 15일 카프카스에서 사관학교 시절 동료와 결투를 벌이다 전 동료가 앙심을 품고 레르몬토프를 사격하면서 허망하게 사망했다. 레르몬토프의 마지막 결투에서 먼저 총을 쏘게 된 레르몬토프는 친구를 죽일 생각이 없다는 뜻에서 하늘을 향해 총을 쏘았으나, 상대방은 그 다음 차례에 레르몬토프를 정면으로 쐈다고 한다.
3. 주요 작품 목록
- 소설 : 우리 시대의 영웅
[1] 신영선 역 레르몬토프 희곡 전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