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명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2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민영명은 1909년 2월 1일 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 노하리에서 아버지 민태호(閔台鎬)[5] 와 어머니 우주 황씨 사이의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928년 6월 29일 광주공립농업학교 2학년에 재학하던 중 일제 식민지교육을 반대하며 독서회에 가입했다. 이후 1929년 11월 3일 광주고등보통학교의 한인 학생들과 광주중학교의 일본인 학생간의 광주역에서의 충돌이 벌어지자, 그는 일본인 학생들의 만행을 규탄하는 대시위에 참가했다.
그해 11월 12일, 민영명은 제2차 거사에 참가해 곤봉 등으로 무장하여 광주 시내를 두루 누비며 '검거자를 석방하라'·'언론·집회·결사·출판의 자유를 달라'는 등의 격문(檄文)을 인쇄, 살포하며 독립만세를 고창했다. 이로 인해 일제 경찰에게 체포된 그는 1930년 2월 11일 광주학생운동에 참가한 이유로 광주공립농업학교에 퇴학당하였으며, 1930년 10월 18일 광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금고 4개월,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목포로 이주해 조용히 지내다 1960년 4월 24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민영명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3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서울현충원 212실 87호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