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 필스
1. 개요
미국의 전 농구선수이자 조던이 인정한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으로, 샬럿 호네츠의 캡틴이었으나 교통사고로 사망한 비운의 농구선수. 호네츠에서는 3년 밖에 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리더십과 활발한 지역사회 봉사 활동으로 모두의 귀감을 받는 그야말로 진정한 캡틴이었다.
2. 생애
노스캐롤라이나 주 샬럿에서 태어난 필스는 루이지애나 주 배턴루즈에 있는 서던 대학에 다녔고 알파 파이 알파 동호회 회원이었다. 그는 농구부에서 벤 조브 감독의 지도를 받으며 대학 상급생 시절 경기당 3점슛(4.39)을 기록했고, 1989년 NCAA 전국대회와 1990년 NIT 진출에 각각 공헌하며 1991년에는 올 SWAC에 뽑혔다.
1991년 NBA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45픽으로 밀워키에 지명됐지만, CBA 팀 수 폴스 스카이워커스에서 뛰다 시즌 말에 클리블랜드에서 계약 후 데뷔를 하게 되었다.
2.1. NBA 경력
2.1.1.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선배 대니 페리[1] 처럼 팀 내에선 비중이 적긴 하나, 필스는 좋은 수비력으로 NBA에서 끈질긴 윙 수비수로 알려지게 되었다. 6피트 5인치, 220파운드의 그는 농구 선수라기보다는 NFL 라인배커와 더 닮았다고 한다. 1996년, 마이클 조던은 필이 지금까지 상대했던 수비수 중 가장 강한 수비수였다고 말했다. 이때 NBA 디펜시브 세컨드 팀에 선정되었다.
2.1.2. 샬럿 호네츠
이후 1997년에 호네츠로 팀을 옮긴 필스는 뛰어난 리더십을 통해 팀을 이끌었고 지역사회에도 활발히 봉사하는등 호네츠 팬들에게 호감을 주었고 이내 호네츠에 캡틴으로 불렸다. 하지만...팀의 성적이 좋지 않아서 주장으로서 책임감 때문에 스트레스를 과하게 과하게 받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동공주장을 맡고 있던 데이비드 웨슬리와 레이싱을 제안했을때 수락하고 만다.
3. 사망
팀의 주장으로써 막대한 스트레스를 받은 필스는 데이비드 웨슬리와 레이싱[2] 을 하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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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월 12일, 그는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롯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말았다. 필스 본인이 160km/h(100mph)가 넘는 속도로 동료 데이비드 웨슬리를 뒤쫓고 있을 때, 그의 포르쉐가 돌면서 다가오는 차들과 마주쳤다. 결국 그 차는 다른 차를 들이받았고, 차는 결국 미니밴에 의해 후방에 부딪혔다. 두 차량의 운전자들은 생존하였지만, 필스는 안타깝게도 현장에서 사망한 것으로 발표되었다. 경찰 보고서에 따르면 필과 웨슬리는 "이상하고 무모하고 부주의하고 부주의하거나 공격적인 자세로 운전을 하고 있다"고 했다."웨슬리는 나중에 경마 혐의를 벗은 후 난폭 운전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비참하게도 원래 필스는 사생활이 깨끗한 선수로써 이런 일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을 테지만 당시 팀의 성적이 좋지 않아서 주장으로서 책임감 때문에 스트레스를 과하게 받고 있던 상황이었고. 당시 공동주장을 맡고 있던 데이비드 웨슬리가 레이싱을 제안했을 때 안타깝게도 필스는 수락하고 말았고, 결국...이 일로인해 필스는 사망하고 말았고 필스에게 자동차 경주를 제안했던 웨슬리 본인도 심한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시간이 지나 바비 필스의 등번호 13번은 샬럿 호네츠에 영구결번되어 호네츠의 영원한 캡틴으로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