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찬

 

[image]
'''조형고등학교 No.21'''
'''이름'''
박병찬
'''나이'''
21세
'''학교'''
부연중 - 조형고
'''신장'''
188cm[1]
'''포지션'''
가드[2]
1. 소개
2. 작중 행적
3. 플레이스타일
4. 기타


1. 소개


조형고 3학년. 2년 유급해 사실상 고등학교 5학년(..)이다.
부연중 시절부터 매우 뛰어난 재능을 가진 선수였다. 하지만 무릎을 좌우로 혹사시키는 슬래셔 성향의 플레이스타일과 혹사, 부연중 농구부 감독의 과도한 욕심이 합쳐진 결과 경기 중 큰 부상을 당해버렸다. 게다가 양쪽 다리의 길이도 3cm 차이나는 하지 부동 상태였기에 농구를 그만두게 된다. 재활 후 박병찬을 적으로 만날 것이 두려웠던 부연중학교는 박병찬에게 '''농구부가 없는 학교로 전학을 가서 다시는 농구를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아낸다.
박병찬은 재활 때문에 1년 유급한 뒤, 농구부가 없었던 조형고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다. 이후 성공적으로 재활을 마쳐 농구에 미련이 남던 찰나, 때마침 조형고등학교에 농구부가 새롭게 생겼고, 이에 박병찬은 농구를 다시 시작하게 된다. 전술한 각서 때문에 선수 등록이 말소되어 대회에 나갈 수 없는 문제가 생겼지만, 조형고 감독의 도움으로 무사히 대회에 참가할 수 있게 된다. 첫 고교대회에서 본선 진출에는 실패하지만 '''(고교최강인 장도고와 전국구 강호급인 원중고, 상평고를 상대로) 세 경기 동안 130득점을 쑤셔넣으며''' 전국 모든 대학의 주목을 받지만, 대회 직후 무릎에서 다시 문제가 발견되어 1년을 또 유급한다. 낙심한 박병찬은 이제 완전히 농구를 그만두려 했지만, 대회 몇 주 전 조형고 감독에게 준향대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게된다. 제의 조건은 '''8강 진출'''과 '''경기 시간의 30% 출전'''. 박병찬은 당연히 이에 응해 뛰기로 했고, 준향대에서 제안했던 30%의 시간인 한 경기 12분 조건으로 뛰기로 한다.

2. 작중 행적


지상고와의 경기에서 2쿼터 교체로 처음 등장했다. 등장하자마자 박병찬은 아이솔레이션 전략[3]으로 자신의 대인마크 전담인 정희찬을 말 그대로 압도해버렸고[4] 15분 만에 혼자서 15점 이상을 넣으며 15점 차를 5점 차까지 좁힌다. 기상호의 투입 이후 잠시 말려 다시 교체되었으나, 자신이 빠지고 나서 다시 점수차가 벌어지자 감독을 설득해 재출전을 결심한다. 재출전 이후 오른쪽 돌파를 유도한 기상호의 전략을 읽고 부상으로 인해 무의식적으로 아꼈던 오른쪽 무릎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경기가 진행되면서 성준수도 따라잡지 못하고 부자연스럽게 왼쪽 다리로 착지할 정도로 무릎 통증이 악화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1점 차까지 줄이는 데에 성공한다. 마지막 공격에서 진재유가 성준수 중심의 엘리베이터 스크린 공격을 진행하고, 박병찬은 두 빅맨의 스크린을 뚫어버리는 투지로 성준수의 슛을 블록시키는 데 성공하고, 빠르게 백코트를 한 기상호마저 유로스텝을 구사하며 '''왼쪽으로''' 앵클브레이크를 걸고 득점에 성공한다.[5][6] 결국 조형고는 1점차로 승리하지만 박병찬은 다시 부상을 입고 쓰러진다.[7] 그 후, 동료 선수의 부축을 받으며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던 부연중 감독을 저주하면서 퇴장한다.
거듭된 큰 부상에도 불구하고 농구를 포기하지 않으며 필사적으로 지상고와의 경기에 임했지만, 끝내 무릎의 폭탄이 터져버리는 등 주인공 측 등장인물이 아님에도 씁쓸한 뒷맛을 주는 인물.
시즌 2에서 등장한 바로는 다행히 8강도 갔고 출전시간도 채웠다고 한다. 무릎도 그렇게 큰 부상은 아니라 의사가 다시 운동해도 된다고 할 정도다. 자신의 재능을 한탄하는 기상호에게 조언을 해 주고 떠나는데[8], 자신과 실력이 비슷한 가드가 또 하나 있다는 떡밥을 남긴다.[9]

3. 플레이스타일


뛰어난 신체능력[10]과 스핀무브와 비하인드 백 드리블, 유로스텝 등 다양한 개인기를 활용한 아이솔레이션이 특기인 '''초고교급 가드'''. 고교 수준에선 막을 방도가 없는 드리블 돌파와 림 어택, 자유투를 얻어내는 능력과 정희찬과 성준수를 지워버리는 수비력[11], 경기 후반 보여주는 패싱능력 등 부상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약점이 보이지 않는 수준의 기량을 가지고 있다.
내구성으로 인해 식스맨이라기도 애매한 12분 남짓의 출전시간을 가져가는 벤치 멤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형고의 '''실질적인 에이스'''인 선수. 공백기와 부상으로 인한 기량 저하 등을 고려하더라도, 작중 언급상으로는 현 고교 랭킹 1위를 상회하는 동시에 당장 대학에 가더라도 주축으로 뛸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하니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던 셈.[12] 치명적인 부상으로 인해 생긴 오른쪽 돌파의 불안정성과[13] 출전시간 제한만 아니었다면 지상고가 손도 못 대고 털렸을 가능성이 높다.

4. 기타


  • 주연이 아닌 지나가는 인물 중 하나이지만 매력적인 플레이스타일과 미형의 외모, 그리고 딱한 사연까지 겹쳐져 인기가 톱을 달리는 인물이다. 1부 연재 중에는 팬들 사이에서 거진 진 주인공 취급.
  • 돌파 위주의 화려한 플레이스타일, 그리고 이 스타일과 감독의 혹사로 인해 무릎이 아작나버린 점에서는 데릭 로즈를, 연이은 부상으로 농구를 그만두었다 다시 돌아온 점에서는 정대만을 연상시킨다. 중학교 시절 부상으로 농구를 포기하려 했을 때 쓴 각서로 곤욕을 치른 과거는 과거 하은주의 학창 시절을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14]
  • 작중에서도 조형고 감독의 말로는 미남이라 인기가 많을 거라고 한다. 다만 액면가는 못 속이는 지 기상호가 고등학생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한다.
[1] 183cm인 정희찬보다 5cm가량 크다는 언급이 있고, 186cm인 이초원과 비슷하다.[2] 이초원은 박병찬과 같이 뛰는 시간엔 본래 스타일인 슈터로 돌아가며, 듀얼가드인 박병찬이 볼 핸들링과 스코어링을 책임진다.[3] 한 사람의 개인 기량으로 매치업 상대를 1:1로 찍어누르는 전략.[4] 유로스텝으로 깔끔하게 벗겨내거나 몸빵으로 튕겨내버리는 등 정희찬이 손도 못 대고 털렸다. 그렇다고 진재유가 붙기엔 키 차이가 족히 10cm를 넘어가고, 성준수가 붙기엔 사이드스텝이 절대 못 따라오기에 더더욱 난감한 상황.[5] 이 때 바닥에 비친 오른쪽 다리의 핏줄 표현이 압권.[6] 경기 초반, 박병찬이 벤치에서 앵클브레이킹을 설명하며 드리블러의 로망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마지막 순간, 그토록 아꼈던 오른쪽 다리로 앵클브레이킹을 성공시킨, 복잡한 장면인 셈.[7] 마지막 속공 상황에서 조형고 감독이 농구에서 중요하다고 했던 세 가지를 회상하는데, 첫 번째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다치지 않는 것'''이었다. 결국 이겨도 이긴 게 아닌 셈.[8] '천재는 범재를 이해할 수 없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기상호의 말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어차피 한탄하는 시간에 골 하나라도 더 연습하는 게 좋단 것을 아니 여기서 이렇게 슛 연습하고 있는 거 아니냐고 반문하고는, "너 그렇게 감 없는 것도 아냐"라고 말해서 기상호의 기를 살려준다. 박병찬의 조언 덕분인지 몰라도 그 다음 신유고 전에서 기상호가 엄청 깔끔한 3점 슛을 성공시키기도 한다.[9] 아마 실화와 같은 시간대에 고교에서 활약한 허훈이 모티브인 캐릭터가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10] 정희찬보다 5cm는 큰 신장에 20kg는 무거운 체격으로도, 고교에서 가장 빠르다는 정희찬을 상대로 스피드마저 우위를 점하는 등 피지컬이 매우 뛰어나다.[11] 그 빠르다는 정희찬의 돌파를 가볍게 틀어막으며 스틸을 해내는가 하면, 성준수의 오프 더 볼 무브를 쫓아다니면서 엘리베이터 스크린을 뚫고 막아내는 등 돌파 수비와 오프 더 볼 수비에 모두 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12] 실제로 병찬이를 가르치던 감독님이 여태껏 봐온 학생들의 미래를 대충 예상할 때마다 얘는 대학이 끝, 얘는 프로가 끝, 이런식이었는데 병찬이를 봤을 때는 '''국대 주전 가드'''의 미래가 보인다고 말할 정도이다.[13] 이로 인해 기상호가 어느 정도 제어하는데 성공했으나, 경기 후반 스크린의 도움과 패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자 기상호마저 박병찬을 막기는 버거운 모습을 보여준다.[14] 하은주는 중학교 시절 엄청난 키를 바탕으로 중학 무대를 평정했지만, 부상을 입어 농구를 포기한다는 각서를 쓰고 수술을 받고 농구를 그만두려 했으나, 미련을 버리지 못하였고, 결국 국내에서 농구를 할 수 없던 하은주는 일본으로 건너가서 농구를 계속했으며 자신을 받아준 일본으로 한때 귀화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