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은주
1. 개요
한국의 여자 농구 선수이자 '''정선민의 뒤를 잇는 끝판왕''' 센터다. 2m 센터였던 김영희 이후, 한국 여자농구가 가진 정통 2m 센터. WKBL 무대에서 적수가 없는 센터. 하지만 동시에 한국 학원 스포츠의 병폐로 인해 고통받았던 아픈 기억을 가진 선수이기도 하다. 하승진의 친누나로도 유명하다.
2. 선수 생활
2.1. 학원 스포츠 병폐의 희생양
아버지는 국가대표 농구 선수였던 하동기. 어릴 때부터 농구에 흥미를 느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농구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일찍부터 초등학교 무대를 평정했다. 그런데 키가 큰 선수들이 늘 가지는 고질병인 무릎 부상이 하은주에게는 일찍 찾아왔다. 초등학교 졸업할 무렵에 무릎 부상을 당했는데, 이미 연골이 닳아 없어지는 중상이었다.[4] 그렇게 농구를 쉬었는데 중3때 키가 195cm까지 자랐고 학교에서 계속 농구부 입부를 권유했다 한다. 그러나 환멸을 느껴서 농구부 입부를 거절했고 학교도 전학을 가려고 했는데 학교측에서 다른 학교에서도 농구를 할 까 생각했던 나머지 농구 포기 각서를 요구했다. 결국 하은주는 농구 포기 각서를 쓰고 수술을 받았고, 그렇게 한국에서는 농구 선수로서의 삶을 포기했다.[5]
그런데 농구에 대한 미련을 놓지 못하던 하은주는 다른 길을 모색했고, 그 길은 현해탄 건너 있는 일본에서 알려줬다. 일본의 오카가쿠엔고교(桜花学園高等学校)[6] 가 하은주에게 치료와 재활을 병행하면서 농구와 학업을 동시에 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제의를 하면서 하은주는 일본으로 건너갔다. 여기서 하은주는 공부와 동시에 농구도 병행했다. 그러면서 몸이 점차 회복했고, 토코하단기대학으로 진학해서도 농구 선수로서의 삶을 계속할 정도는 되었다. 당시 오카가쿠엔은 인터하이, 윈터컵 등 전국대회에서 수많은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오카가쿠엔 천하를 열었다. 참고로 하은주는 일본 국적 취득 당시, 오카가쿠엔을 이끌었던 이노우에 신이치(井上眞一)감독의 성을 따라 이노우에 은주(井上恩珠)로 이름을 바꾸었다.
졸업 무렵, 한국 농구 관계자들은 한동안 자신의 시선에서 떠났던 하은주를 떠올렸다. 마침 동생인 하승진이 남자 농구의 유망주로 주목받던 시점이었기에 하은주를 국가대표로 발탁하면 아시아 무대 평정은 어렵지 않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하은주는 상처를 입었던 한국 대신에 제 2의 고향이나 다름없던 일본에 더 마음이 끌렸고, 결국 일본 국적을 선택했다.[7] 그리고 그런 그녀를 비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2. 한국 무대 복귀, 그리고 정복
일본 국가대표팀 엔트리에도 등록된 적이 있지만, 일본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실제로 출전을 하는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8] 또, 몸 상태가 회복은 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좋은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토코하단기대학를 졸업하고, 샹송화장품에 입단하면서 일본에서 실업 생활을 할 것으로 보였던 하은주는 WNBA의 드래프트에 응시해 LA 스파크스 입단에 합의했다. 그런데 여기서 샹송화장품의 반대로 인해 WNBA 진출이 무산된다.
이게 하은주의 운명을 바꿨다. 미국 진출이 무산되고, 비록 일본이 제 2의 고향이지만 이 일로 인해 일본에서도 계속 선수 생활을 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전격적으로 일본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컴백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6개 WKBL 구단들이 모두 접촉을 했고, 승자는 안산 신한은행 에스버드였다. 하은주가 신한은행으로 간 이유는 팀 분위기가 좋고, 존경하는 전주원이 있어서[9] , 그리고 무엇보다 '''홈 구장이 집에서 가까워서'''였다.
그렇지 않아도 전력이 강해지던 신한은행은 하은주의 영입으로 그야말로 날개를 달았다. 하은주 영입 이후, 신한은행은 우승을 놓치지 않는 레알 신한이 되 버렸다. 비록 하은주는 여전히 어릴 때의 부상 후유증으로 인해 많은 출전 시간을 가지지 못하고 있지만, 3쿼터에만 나와도 하은주를 막을 선수는 없다. 키도 워낙 크고, 키에서 파생되는 공격과 포스트 플레이, 외곽으로 빼주는 플레이만으로도 이미 전력에서 앞서고 들어간다. 하은주를 막기 위해 많은 팀들이 노력하고 있지만, 이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 실제로 신한은행을 상대하는 팀들은 단 3쿼터에만 나오는 하은주의 포스트 플레이에 대비하는 것을 지상 최대의 과제로 삼고 있다. 단지 하은주가 무릎 부상의 후유증과 체력 문제로 3쿼터부터 나오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유일한 약점일 뿐이다. 그리고 이 점 때문에 출전 시간과 스탯이 부족해서 MVP 투표에서 물을 먹은 적이 많았다.
다만 국가대표의 1옵션은 아니었는데,[10] 역시 부상 후유증으로 인해 오랜 시간을 뛸 수 없다는 것이 한계. 그리고 한국 무대에서는 다른 선수들이 키 자체를 감당할 수 없었지만, 웨이트가 약한 편이어서 국제 무대에서는 다른 나라의 센터들을 제어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하은주의 등장 이후, 최소한 다른 나라의 센터들은 하은주를 의식하고 플레이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
출전 시간 문제 때문에 정규시즌 MVP는 아직 없지만, 챔피언 결정전 MVP는 3회나 차지했다. 단기전에서는 출전 시간을 늘리면서 위력을 극대화하는데, 뻔한 패턴이지만 이를 막을 팀이 없다.
하지만 용병제 도입과 함께 하은주의 위력은 급감하고 말았다. 2012년 11월 18일 용병이 도입된 첫 경기에서 하은주는 삼성생명 용병인 앰버 해리스에게 2 블록을 당하며 무득점했다. 이후 경기에서도 용병과의 매치업에서 계속 약한 모습을 보이며 이전과 같은 막강한 영향력을 상당히 잃었다.
3. 비판
하은주에 대한 비판은 하은주가 여자농구 리그를 망치고 있다는 주장이다. 특별한 개인기가 없는 하은주가 단순히 큰 키와 육중한 몸무게만으로 골밑에서 쉬운 이지슛으로 꼬박꼬박 득점을 올려주며 남자농구에서도 볼 수 없는 '1분에 1점'을 기록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팀간 전력 불균형이 심화되고 특정 구단이 6년 연속 8할이 넘는 압도적인 승률로 독주를 지속하는 기형적 리그로 변질되고 말았다는 것.
하은주로 인해 다른 신한은행 선수들의 커리어와 실력이 지나치게 과대평가된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하은주가 코트에 투입되면 같이 뛰는 다른 선수들의 야투율도 급상승하며 하은주가 나오기 전까지 20점 이상 뒤지던 점수를 한 쿼터만에 단번에 뒤집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은주의 높은 2점 야투율 때문에 어시스트 스탯을 너무 쉽게 적립한다는 주장도 있다. 타 구단 팬들의 편견과 하은주에 대한 원망만으로 하는 주장들이 아니라 실제 수치로 드러나는 것들이기에 그냥 넘길 수만은 없어 보인다.
국내 리그에선 샤킬 오닐 이상의 활약을 보이면서도 유독 국제대회에서 제대로 뛰지도 못하는 것도 많은 비판을 받는다. 특히 여자농구 최악의 참사로 꼽히는 2012년 앙카라 프레올림픽 대회에서 하은주는 국가대표로 선발되었음에도 단 1초도 뛰지 않고 벤치만 지키다가 귀국했다. 상대팀이 우월한 신장을 주 무기로 내세운 크로아티아, 프랑스, 모잠비크같은 유럽, 아프리카 팀들이었기 때문에 팬들은 누구나 '하은주가 뛰어줬으면'하는 바람을 가질수 밖에 없었다.
본인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고질적으로 좋지 않은 무릎 때문에 충분한 재활기간을 거쳐야 하는데 시즌이 끝나고 대회까지 일정이 너무 촉박해서 몸을 제대로 만들 기간이 부족하다고 해명했다. 실제로 하은주의 무릎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며 코트에 있을 때도 무릎을 쓰는 낮은 드리블이나 기술은 거의 하지 않는다. 그리고 충분한 재활을 거치고 출전한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일본을 상대로 신한은행에서처럼 1분에 1점 모드를 보여주며 대표팀을 결승전에 올려놓은 1등 공신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애당초 프로선수는 소속팀을 우승시키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이다. 그런 점에서 굳이 몸이 좋지 않은 하은주가 소속팀에 지장을 주면서까지 무리하게 국가대표로 뛰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야구·축구의 경우, 군면제 혜택이 없는 대회에 해외진출한 A급 선수들이 참가를 꺼린다. 그리고 그 팬들은 대부분 이해해 주는 편이다. 비록 하은주가 본인의 피지컬에 맞지 않는 리그를 뛰며 리그 기형화를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기는 하지만 이걸 가지고 국제대회 때 안 뛰는 걸 비난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들도 점차 사그라들고 있는데, 2012-2013 시즌부터 뛰기 시작한 용병 앞에서 하은주의 위력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하은주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본인이 못해야 좋은 거냐며 불만을 표하기도 했는데, 현재와 같은 리그 상황을 감안하면 용병제는 계속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3.1. 비판에 대한 반론
사실 농구선수가 압도적인 실력을 갖고 있는 걸 두고 선수 본인 탓을 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것이다. 하은주는 한국의 여자 농구선수이고, 한국의 여자 농구 리그에서 뛰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 선수가 불법적이거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일을 하지 않는 이상 잘한다는 이유로 욕을 먹는 건 말도 안된다. 또한, 특별한 개인기 없이 단순히 큰 키와 육중한 몸무게만으로 골밑에서 쉬운 이지슛으로 꼬박꼬박 득점을 올린다는 말도 상당한 어폐가 있다. 농구 선수, 아니 운동을 업으로 삼은 프로에게 있어선 '''신체 스펙도 곧 재능'''이다. 우월한 피지컬을 반칙이라도 되는 양 호도하는 것부터가 잘못되었다는 소리.
애초에 어떤 종목에서든 압도적인 선수는 항상 있었다. NBA의 초창기에는 조지 마이칸이, 이후엔 윌트 체임벌린이 너무나 압도적이라 상대가 되지 않자 룰 개정을 통해 이들의 영향력을 그나마 줄였다. 즉, 어떤 선수가 리그의 균형을 파괴할 정도로 뛰어나다면 룰 개정을 통해 방법을 추구하는 것은 '''리그의 책임이지''', 체임벌린이나 마이칸이 "너무 잘해서 문제"라고 책임론이 돌진 않는다.
또한 하은주로 인해 신한 선수들의 커리어와 실력이 과대평가되고 있다고 하는데, 이는 다른 슈퍼스타들도 마찬가지다. 존 팩슨은 벤치멤버급 실력이었으나 마이클 조던과 함께 뛰면서 리딩 능력이 없는 리딩 가드임에도 받아먹기 슛이 뛰어나다는 이유만으로 주전자리를 꿰차고, 연봉이 한 시즌만에 네배 넘게 올랐다.[11] 론 하퍼는 득점력이 사라진 슈팅가드였으나 조던과 스카티 피펜 덕분에 수비 스페셜리스트로 변신해 선수생명을 연장했다. 모 윌리엄스는 올스타급이라고 보기 힘든 선수였으나 르브론 제임스 옆에서 올스타전에 출전했다.
즉, 하은주 옆에서 뛴 선수들은 "조던 버프" "르브론 버프" 등과 마찬가지로 "하은주 버프"를 받은 것이다. 이는 하은주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5명이 좁은 코트를 쓰는 농구 특성상 한 선수에게 수비가 몰리면 다른 선수들은 당연히 혜택을 받으며, 모든 뛰어난 선수들은 이런 효과를 준다. 그런데 다른 선수들이 하면 "오오 슈퍼스타 버프" 이러면서 하은주에게는 "리그를 망친다"고 하는 건 이중잣대다.
물론 하은주로 인해 리그가 경쟁이 불가능한 수준까지 간 것은 분명한 문제다.[12] 그러나 하은주는 리그의 운영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이 아니며, 리그의 일원으로 경기를 뛰는 선수이다. 위의 마이칸과 체임벌린의 케이스처럼, 한 선수가 너무 압도적이라 리그 운영에 지장을 주는 수준이라면 리그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대책을 찾아야 하는 것이지, 이걸 선수에게 책임을 묻거나 비난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13] 실제로 위에 언급된 것처럼 외국인 선수제를 통해 방법을 찾았는데, 이것 자체 역시 장단점이 있을 수 있고 "왜 6년 연속 통합우승할때까지 내버려뒀냐"는 비난이 리그에 가해질 순 있겠지만 이런 비난이 선수에게 향하는 것은 적합한 조치가 아니다. '''잘하는 건 죄가 아니다.'''
4. 은퇴
2015~2016 시즌 종료 후 신정자와 함께 현역 은퇴 선언을 하였다. 고질병이었던 무릎 문제가 끝내 은퇴의 원인인 듯하다. 뛰는 것은 물론 걸을 때도 통증을 느끼고, MRI 촬영본을 들고 많은 병원을 찾아다녔는데 모든 의사가 '걸어다닐 수 있느냐'라고 되물을 정도라고... 앞으로는 남아 있는 스포츠심리학 박사과정을 마무리하고 학위 취득(논문)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리고 2016년 8월 25일 4년만에 박사 학위를 따냈다. 논문의 주제는 '농구선수들이 지각하는 지도자의 리더십과 상호의존성 및 조직몰입의 관계'이다. 2017년 초에 미국으로 떠나 스포츠심리학에 관해 더 공부할 것이라고 한다.
2018년에 한국으로 돌아와 재활 센터를 차려 센터장이 되었다.
아내의 맛에서 하승진이 출연하면서 자주 얼굴을 비치는데 요리 실력이 엄청나게 안 좋다. 비빔국수를 만드는데, 보통 면을 동그라미 모양으로 엄지와 검지로 쥐었을 때 1인분 양이다.[14] 그런데 본인의 손이 엄청 크다는 걸 간과하고(...) 자기 손 크기에 맞게 쥐어 거의 냄비가 넘쳐날 정도로 가득찼다. 음식 맛을 본 아버지 하동기 씨가 조용히 마당에 가서 국수를 몰래 묻어두고 올 정도(...). 그 외에 돈가스에 기름을 쓰는 걸 깜빡해 돈가숯(...)을 만드는가 하면 계란말이에 소금 빼먹기, 된장찌개를 너무 오래 끓여 된장볶음(...)을 만드는 수준. 딸의 요리솜씨에 학을 뗀 아버지가 딸이 요리를 하겠다고 하자 시장에서 떡볶이와 순대 등을 폭풍흡입하며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배를 채워둬야 돼!"라고 할 정도.
하승진의 유튜브 채널에도 아버지 하동기씨와 함께 게스트로 자주 나오는데 예능감이 좋았는지 독립을 요청하는 팬들도 생겼다. 요리치 속성은 비빔국수를 하면서 여전한듯 싶었는데 점차 나아져 가족들과 스탭들까지도 놀랄 정도로 맛있게 등갈비찜을 해낸 저력을 보이기도 했다. 2021년 1월경에는 위에도 언급된 국적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풀었는데 여기서 하은주를 향해 달린 악플때문에 하승진이 고소를 하려고하는 사태가 진행중에 있다. 내용이 내용이다보니 팬들은 선처하지 말라는 의견으로 지지중이다.
5. 관련 문서
[1] 여자로 따지면 어마어마한 장신이다. 하지만 김영희 보다는 좀 작다.[2] 둘다 어마어마한 장신이다. 아버지는 205cm이고, 어머니는 188cm이다. 어머니도 상대적으로 작아보일수 있지만, 185cm을 능가하는 장신이다.[3] 동생 역시 '''221cm'''으로 괴물만큼 덩치가 크다.[키(제수)] 키:167cm[4] 유튜브에서 밝히길 무릎이 좋지 않은 시점에서 감독, 코치들이 계속 출전을 강행시켰고 나중에 하은주의 부모님이 와서 경기를 관람했을 때 관중석에서 뭔 장애인이 농구를 하냐는 반응이었다 한다. 그정도로 다리를 절었는데 계속 강행군을 시킨 것.[5] 이에 하승진이 분노하며 이야기 하기를 사실 농구 포기각서라는 게 아무것도 아닌 건데 농구 협회에서는 그걸 보고 하은주의 선수 등록을 말소시켰다며 농구 협회도 똑같은 놈들이라고 강하게 비판하였다.[6] 나고야 소재, 일본 고교여자농구 톱랭커의 학교다[7] 한국 국적 재취득 후 점프볼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사실은, 당시 일본 여자농구에는 외국인 선수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일본에서 농구를 하려면 일본 국적을 취득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일본 국적을 취득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였다고.[8] 이에 대해서는 훗날 한국에 귀국한 후에 인터뷰에서 이에 대한 사실을 밝혔는데, 일본에서 소속 팀과 계약을 할 당시에 '''"본인의 승인 없이는 일본 국가대표로 절대 뛰지 않을 것"''' 이라는 조항을 사전에 삽입해 놨었다고 한다. 즉 국가대표팀 엔트리에 등록이 된 건 엄연히 계약 위반에 당시 일본 농구협회 측의 잘못[9] 전주원은 하은주의 선일여자중학교 11년 선배다.[10] 당시 국대 센터 1옵션은 신정자였다.[11] 샘 스미스의 Jordan Rules에 보면 첫 우승을 차지하던 90-91시즌까지 팩슨의 가치를 두고 프런트와 실랑이가 있었고, 실제로 그는 전경기 주전으로 출전했음에도 평균 출전시간이 24분에 불과했다. 또한 그는 커리어 772경기 중 절반 넘게 후보로 출전한 선수였다. 그러나 조던과 궁합이 잘 맞는다는 이유로 파이널에서 정규시즌(8.7점)보다 훨씬 높은 13.4점을 올리고 재계약 협상 때 당시 기준으로 대박을 쳤다.[12] 다시 언급하면 하은주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한 선수의 존재로 한 팀이 너무 독주를 하면 리그에게 악영향이 온다는 소리이다. 예를 들어 미하엘 슈마허의 전성기 당시 너무나 압도적인 기량으로 경쟁이 힘든 수준이라 F1은 슈마허와 페라리 팀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규정이 변화되었다.[13] 하은주 선수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은퇴하는 것 뿐인데, "네가 너무 잘해서 다른 팀들에게 승산이 없으니 은퇴해라"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터무니없는 소리다. 그렇다고 일부러 못할 수도 없고...[14] 대략 500원 동전 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