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규(1896)
박영규는 1896년 9월 5일 전라북도 금산군 제원면 제원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전국에서 3.1 운동이 전개되자 자신의 고향에서도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결심하고 3월 25일 저녁 태극기를 그리고 ‘한국독립 만만세’라고 써서 수숫대에 매달아 집을 나섰다. 그리고 마을 복판에 있는 종과 북을 떼어 이를 두드려 동리 사람들을 모은 다음 이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며 행진하였다.
이튿날인 26일 오후 4시경, 그는 부역을 나갔다 돌아오는 동리 사람들을 마중 나가 우리나라가 독립되어야 하니 만세를 불러야 한다고 권유하였고 이날 밤 수십 여 명의 동리 사람들을 규합하여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로 인해 금산헌병대에 체포되어 1919년 4월 18일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금산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40년 11월 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박영규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7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