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종(독립운동가)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박원종은 1891년 3월 13일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16일 남계병으로부터 18일 경북 영덕군 영해면 영해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할 계획이니 도곡동 주민들을 동원해 달라는 제의를 받고 적극 찬성하였다. 이후 그는 17일 동리의 각 집을 돌며 매 호당 1명씩 깃발을 만들어 영해 장터로 나오도록 연락하고, 18일 장터로 나가 2,000여 명의 시위군중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벌였다.
이때 영해경찰주재소에서 주임 순사가 출동하여 해산을 명하자, 그는 솔선하여 일본 경찰을 구타하고 제복과 모자, 칼 등을 훼손하였다. 이어 군중들과 함께 주재소를 습격하여 지붕과 기둥 일부만 남기고 거의 파괴하였다. 군중들은 계속하여 소방소, 재향군인회 분회, 공립보통학교, 심상소학교, 면사무소, 우편소 등을 차례로 습격하여 건물과 비품을 파괴하고 공문서를 파기하는 등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였다.
급보를 접한 영덕경찰서에서 서장 시게요시 마고하치(茂義孫八)가 부하 4명을 인솔하여 현장으로 출동하였다. 서장이 몇 차례 해산을 명령하였으나, 시위군중은 기와장과 돌을 던지며 곤봉으로 대항하였다. 시위군중의 기세에 눌린 서장 등이 본서로 돌아가려고 할 때 그는 군중들과 함께 서장 일행을 포위하여 그들이 소지하고 있던 칼과 총기를 빼앗고 제복과 모자를 찢어 버리는 등 격렬하게 항쟁하였다.
이 일로 경찰에 체포된 그는 1919년 7월 1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소요, 공무집행방해, 상해, 건물 파괴, 기물 파손, 공문서 훼손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영덕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68년 6월 7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박원종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7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