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태(독립운동가)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박종태는 1887년 2월 3일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강우근, 강대열 등이 영덕면내 화개동, 금호동, 남정면내 남정동 등지의 기독교도를 대상으로 동지 포섭에 힘을 쏟을 때 가담했다. 이후 3월 18일 2,000여 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성내동(城內洞) 장터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행진을 주도하였다. 그리고 그는 시위군중들과 함께 경찰주재소로 달려가 일경들을 포위하고 독립만세를 따라 부르게 하기도 하였다.
이후 장터로 돌아가 계속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던 중, 다시 시위군중과 함께 주재소로 가 곤봉과 돌멩이로 주재소를 파괴하고 일경을 구타하였다. 이어 일본인 소학교·우편소·면사무소로 시위행진하며 건물을 파괴한 후, 다시 주재소로 몰려갔다.
이때 주재소의 응원 요청을 받고 영덕경찰서에서 4명의 경찰이 긴급 출동하여 이를 제지하다가, 시위군중의 위세에 눌려 도주하였는데, 박종태는 격분한 시위군중과 함께 그들을 구타하였다. 이곳의 만세시위는 이튿날까지 계속되다가 대구 보병 80연대 병력 17명의 지원을 받은 일경과 헌병들의 무차별 사격으로 수많은 사상자를 내면서 강제 해산되었다.
그는 이 일로 체포되었고, 1919년 7월 1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소요·공무집행 방해·건조물 손괴·공문서 훼기·보안법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출옥 후 영덕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59년 11월 17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9년 박종태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5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