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현(1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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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박태현(朴泰鉉)
본관
밀양 박씨
생몰
1899년 7월 14일 ~ 1974년 4월 1일
출생지
경상북도 대구군 동중면 침산동
(현 대구광역시 북구 침산동)[1]
추서
대통령표창
박태현(朴泰鉉)은 1899년 7월 14일 경상북도 대구군 동중면(현 대구광역시 북구) 침산동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대구 서문 밖 장터에서 이만집·김태련(金兌鍊) 등이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주도하자 이에 참가하여 1,000여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높이 들고 대구 시내를 행진하며 독립만세를 벌이다가 일경에 체포되었다.
그해 4월 1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공소하여 5월 3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다시 징역 8월로 감형되었으며#, 다시 상고하였으나 7월 21일 조선총독부 고등법원 형사부에서 상고 기각되어# 소위 출판법 위반 혐의가 추가되고 2심에서의 판결된 형이 그대로 적용되어, 결과적으로 징역 8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평범한 신분으로 지내다가 1974년 4월 1일 별세하였다.
199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1] 밀양 박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박성용도 이 마을 출신이며, 친일파 박중양의 선대 세거지가 바로 이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