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하경

 


성명
반하경(潘夏慶)
생몰
? ~ 1910년
출생지
경기도 파주시?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추서
건국훈장 독립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반하경의 전반적인 생애에 대한 기록은 극히 희소하다. 청도 반씨 족보에 따르면, 반하경은 헌종 6년(1840년)에 교하면 서패리에서 태어나 철종 대에 내시로 들어갔고 고종 대에 승전색(承傳色)을 거쳐 내수장번(內需長番)으로 승격했다고 하지만 이것이 사실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또한 그의 원래 이름은 반학영(潘學榮)인데 일제 강점기 때 이름이 잘못 알려졌다는 설도 있지만 이 또한 확실하지 않다.
<반하경전>에 따르면,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면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일제에게 강탈당하자, 반하경은 통분을 이기지 못하고 내시 일을 그만두고 교하(交河)에서 살았다. 그러다가 1910년 한일병합이 선포되자, 그는 며칠 동안 눈물을 흘리다가 글을 써 가지고 나가 길가에 펴놓고 배를 칼로 찌르며 헤치니 창자가 흘러 나왔다고 한다. 집안 사람들이 놀라서 달려오자, 그는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궁내 정부 관원이 귀천은 다르다 하지만 나도 인군의 은혜를 입고 지낸 것이 수십년간이었다. 지금 우리 인군이 뜰 아래 내려 서게 되었는데, 내가 어찌 따스한 방에서 편하게 죽을 것이냐?

그리고 얼마 후에 숨을 거두니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듣고 장하게 여겼다고 한다.
반하경이 자결한 뒤 그의 형제 자매들은 요시찰 인물로 찍혀 일제의 탄압을 받고 뿔뿔이 흩어졌다고 한다. 그는 교하면 신촌리에 매장되었지만 비석이 세워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1937년 6월 동료 내시 13인이 돈을 모아 비석을 세웠고, 한일병합이 선포된 직후 자결한 형조판서 김석진의 아들 김영한이 비문을 작성했으며, 글씨는 당대의 명필 윤용구가 썼다.
반하경은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고, 그의 무덤은 2001년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으로 이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