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음악 그룹
[image]'''이혜민'''
[1](오른쪽 청색), 양현경(왼쪽)
1981년 연포해변의 제1회 연포가요제에서 이혜민과 노근식이 듀엣을 이뤄 '첫사랑은 다 그래요' 라는 곡으로 우수상을 차지하며 데뷔하였다. 정식 1집은 1982년 양현정이라는 친구와 앨범자켓을 찍었지만 실제 앨범 녹음은 이혜민 혼자서 하였다. 1집에서는 ''''은지'''', ''''비와 찻잔 사이'''', '첫사랑은 다 그래요'가 히트했다.
2집부터 객원으로 여자보컬 양현경이 일부곡에 객원으로 참여하는데 그중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가 크게 히트하면서 혼성 듀오로 유명세를 탔다. 이외에도 2집에서는 이혜민 솔로로 부른 ''''그대 작은 화분에 비가 내리네'''', ''''내 마음은 외로운 풍차예요''''가 널리 알려져 최고의 히트 앨범이 되었다.
이후 양현경과는 1987년까지 4장의 앨범을 더 발표하며 동요 같은 ''''아빠와 크레파스''''와 '수선화', 유리벽 찻집' 등이 히트하였다. 1988년부터는 다시 남자 객원인 박찬우가 합류하여 이혜민과 배따라기 7집을 발표하였다. 이후 이혜민은 주로 음반 기획 및 작곡과 라디오 로고송 제작 활동을 하다 캐나다로 이민을 갔는데 2003년 돌아오면서 'Old & New Song' 과 2009년 '약속' 같은 앨범을 발표하였다.
이혜민은 배따라기 활동뿐 아니라 작곡가로서 여러 동료들에게 많은 히트곡을 주었는데 대표적으로 강은철의 ''''삼포로 가는 길'''',
전영록의 '오늘밤엔',
김흥국의 ''''
호랑나비'''', ''''59년 왕십리'''', '내게 사랑이 오면',
이재민의 ''''제 연인의 이름은'''', 김재희의 '애증의 강',
이예린의 ''''포플러 나무 아래'''',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유년시절의 기행', '나만의 회상' 등이 있다. 김흥국과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노래는 가요 프로그램 차트 정상에 오른 곡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데, 정확하게 얘기하면 배따라기는 이혜민의 1인 프로젝트이고, 양현경은 객원 가수이다. 이에 대한 이혜민의 소감은 아래와 같다.
당시에는 "이건 듀오가 아니라 프로젝트다"라고 말해도 사람들이 뭔지를 몰랐어요. 그리고 시간이 흘렀고, 전 외국에 나가 있고 하다 보니까 객원 보컬이었거나, 심지어 저랑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 배따라기란 이름으로 활동하고 티브이에도 나오는 거예요. 그게 너무 스트레스가 됐어요. 대중을 기만하는 것이거든요.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확실히 알리고, 작은 공연장에서 노래할지언정 제 감성을 조금씩이나마 전달하고자 앨범을 낸 거예요.#
평안도 지방의 민요로 뱃사람들의 애환을 그린 노래이다. 아래에 나오는 소설
배따라기의 제목이 바로 이 노래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이 노래를 빠른 장단인 자진모리 장단으로 부른 자진배따라기도 있다. 가사는 다음과 같다.
윤하윤삭(閏夏閏朔)은 다 지나가고 황국(黃菊) 단풍이 다시 돌아오누나 에- 지화자자 좋다 천생만민(天生萬民)은 필수지업(必授之業)이 다 각기 달라 우리는 구태여 선인(船人)이 되어 먹는 밥은 사자(使者)밥이요 자는 잠은 칠성판(七星板)이라지 옛날 노인 하시던 말씀은 속언(俗言) 속담(俗談)으로 알아를 왔더니 금월금일(今月今日) 당도하니 우리도 백년이 다 진토록 내가 어이 하자나 에- 지화자자 좋다 이렁저렁 행선(行船)하여 가다가 좌우에 산천을 바라를 보니 운무는 자욱하여 동서사방을 알 수 없다누나 영좌(領座)님아 쇠 놓아 보아라 평양의 대동강이 어데메로 붙었나 에- 지화자자 좋다 연파만리(烟波萬里) 수로창파(水路滄波) 불리어 갈 제 뱃전은 너울렁 물결은 출렁 해도중(海濤中)에 당도하니 바다에 저라하는 건 노(櫓)로구나 초(礁)라고 하는 건 돌이로구나 만났더니 뱃삼은 갈라고 용총(龍驄) 끊어져 돛대는 부러져 삼동이 나고 깃발은 찢어져 환고향(還故鄕)할 제 검은 머리 어물어물하여 죽는 자가 부지기수(不知其數)라 할 수 없어 돛대차고 만경창파(萬頃蒼波)에 뛰어드니 갈매기란 놈은 요내 등을 파고 상어란 놈은 발을 물고 지긋지긋 찍어 당길 적에 우리도 세상에 인생으로 생겨를 났다가 강호(江湖)의 어복중(魚腹中) 장사(葬事)를 내가 어이 하잘꼬 에- 지화자자 좋다 이렁저렁 떠나려 가다가 다행으로 고향 배를 만나 건져 주어 살아를 나서 고향으로 돌아갈 적에 원포귀범(遠浦歸帆)에다 돛을 달고 관악일성(管樂一聲)에 북을 두려 두둥실 쳐 울리면서 좌우(左右)의 산천을 바라를 보니 산도 옛 보던 고향 산이요 물이라 하여도 옛 보던 옥수(玉水)라 해 다 지고 저문 날에 잘 새는 깃을 찾아 무리무리 다 날아들고 야색(夜色)은 창망(蒼茫)한데 갈 길조차 희미하구나 때는 마침 어느 때뇨 중추(仲秋) 팔월 십오야에 광명(光名) 좋은 달은 두려 두둥실 떠 밝아 있고 황릉묘상(黃陵廟上)에 두견이 울고 창파녹림(滄波綠林)에 갈매기 울고 원정객사(遠征客舍)에 잔나비 휘파람 소리 가뜩이나 심란한 중에 새북강남(塞北江南) 외기러기는 옹성(嗈聲)으로 짝을 불러 한수(漢水)로 떼떼떼 울면서 감돌아드는데 다른 생각은 제 아니나고 동정숙(同定宿) 동정식(同鼎食)하시던 친구의 생각에 눈물이 나누나 에- 지화자자 좋다 이렁저렁 죽은 사람 동리를 찾아가니 죽은 사람의 부모 동생이며 일가친척이 모두 다 나와 파선(破船) 뱃사람 온단 말을 듣고 선창머리 내달으며 뱃전을 부여잡고 애곡(哀哭)을 불러라 통곡을 하며 영좌(領座)님과 화장(火匠) 아희는 천행만행(千幸萬幸)으로 살아 왔거니와 우리 장손 아버지는 물결을 쫓아서 흘러져 갔다네 애고애고 설리 울 적에 백일(白日)이 무광(無光)하여 산천초목(山川草木)이 다 설워하노라 에- 지화자자 좋다 삼년만에 집이라고 더듬더듬 찾아 들어가니 장손 어머니는 장손 아버지 삼년상 마지막 가는 날이라고 갖은 제물 차려 놓고 제 지낼 적에 첫 잔 부어놓고 두 잔을 부어서 첨배(添杯)한 후에 석 잔을 부어서 퇴배(退盃) 연후에 「그애 아버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사생여부(死生與否)는 알 수는 없어도 죽은 혼신(魂神)이라도 있거들랑은 술 한 잔이며 밥 한 술이라도 흠향(欽饗)을 하소서」 이리 설리 울 적에 방문 열고 들어서니 울던 장손 어머니는 화다닥닥 뛰어서 달려를 들며 섬섬옥수(纖纖玉手)로 부여잡고 애곡을 불러 통곡을 하며 「그 애 아버지 나간 날로 분수(分數)하며는 오날이 대상(大祥) 마지막 날이외다 죽었소 살았소 죽어 혼신(魂神)이 왔나요 육신이 왔나요 신의 시체가 왔나요」 일희일비(一喜一悲)하여 나삼(羅衫) 소매를 부여잡고 애곡을 불러라 통곡을 할 제 부모님이 나앉으시며 하시는 말씀 「일후 일랑은 밥을 빌어다 죽을 쑤어 먹을지라도 뱃사람 노릇은 다시 하지 마잔다」 에- 지화자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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