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국

 



'''김흥국
金興國'''
'''출생'''
1959년 5월 18일(음력 1959년 4월 11일), (65세)
서울특별시 성북구 번동
(現 서울특별시 강북구 번동)[1]
'''국적'''
[image] 대한민국
'''본관'''
경주 김씨
'''신체'''
173cm[2], A형
'''직업'''
가수, 예능인
'''가족'''
배우자 윤태영, 아들 김동현(1991년)[3][4], 딸 김주현(2001년)[5]
'''학력'''
서라벌고등학교(1978년 졸업)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화산업관리자과정(1999년 수료)[6]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행정학과 (2004년 학사)
경희사이버대학교 실용음악학과 (재학)
'''약력'''
제5대 대한가수협회 회장
'''데뷔'''
1985년 노래 '창백한 꽃잎'
'''소속사'''
C&C 미디어,
리즈엔터테인먼트
'''별명'''
흥궈신, 흥켈메, 예능치트키, 호보연자, 들이대 총장
'''병역'''
[image] '''대한민국 해병대''' 병장 만기전역
'''종교'''
불교(법명: 우봉)
'''링크'''

1. 개요
2. 활동 내역
2.1. 가수
2.2. CF
2.2.1. 대리운전 광고
2.2.2. 그 외 광고 출연
3. 어록
4. 예능감
4.1. 인맥
6. 김포시 홍보대사
7. 정몽준과의 친분
9. 기타

[clearfix]

1. 개요


'''"아! 응애에요~"[7]

'''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방송인이다.

2. 활동 내역



2.1. 가수


동영상
[image]
무명시절인 1986년, KBS에 출연한 영상. 그때는 콧수염이 없었다.
서울 종로 낙원상가에서 하루하루 벌어먹는 무일푼 밴드로 음악가 인생을 시작했다. 당시 밴드 이름은 '오대장성'으로 김흥국은 밴드의 드러머였다. 라디오스타에서 한 회고에 따르면 어머니가 말하길 갓난아기 때부터 젓가락으로 식탁을 리듬감 있게 내리쳤다고... 예능이나 라디오에서 이 드러머 시절 이야기로 가끔 개그를 친다. 1986년에 1집을 내고 본격적으로 데뷔했다.
1988년 2월 15일 MBC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인간시대'에서 불치병에 걸린 소녀의 에피소드(정아의 겨울일기)가 있었는데, 작곡가인 그 소녀의 아버지와 친분 있는 무명가수로 처음 TV를 탔다. 김흥국은 그 에피소드에서 그 소녀를 격려하기 위해 "정아"라는 노래를 자작해 불렀다. 그 이후 이것 덕분인지 TV에 신인 가수로 출연하기 시작했다. 이 노래는 상당히 조용한 분위기의 발라드로 김흥국의 대표곡인 호랑나비와는 정반대의 분위기이다. 김흥국은 늘 무대에서 담담한 표정에 분위기 잡고 통기타를 치면서 이 노래를 불렀다. 안타깝게도 그 소녀는 1990년 경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1989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 출연한 영상.
참고로 1989년 당시 그의 나이 31세.
이런 사연으로 방송을 타게 되었지만 그를 스타덤에 오르게 한 것은 상당히 컬트적 느낌이 나는 댄스곡 "호랑나비"다. 호랑나비라는 노래 하나로 가요톱10에서 골든컵을 수상했으며, 이후 그가 마르고 닳도록 예능에서 우려먹는 '10대 가수’ 자리에 올랐다.
이후 어린이 영화 반달가면으로 심형래와 함께 어린이계의 아이돌 자리에도 당당히 오르기도 했다. 이때부터 라디오 방송을 시작하면서 예능인으로도 이름을 알리게 된다.
흔들흔들 그 당시에 분장 자체가 꽤나 파격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호랑나비'와 같은 앨범에 수록된 후속곡으로 '흔들흔들'도 나름대로 히트를 쳤으며 이게 그의 몇 안 되는 CF 출연의 소재가 된다. 바로 삼립식품에서 런칭한 '''흔들흔들바.'''
광고 영상
호랑나비와 관계된 후일담이 있는데 원래 이 노래는 김흥국을 위하여 작곡된 노래가 아니다. 원래 김홍경이란 가수가 1987년에 발표한 노래다. 하지만 알려지지 못하고 묻혔던 걸 김흥국이 리메이크하여 알려졌다. 참고로 김홍경은 90년 초반 신문에서 밤무대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라고 나왔다.
59년 왕십리 이후 다음 앨범에서 '59년 왕십리'를 발표했는데 호랑나비와는 달리 제법 세련되고 '''지극히 제대로 된 콘셉트'''의 명곡이어서 꽤 호평을 받았다. 어느 정도냐면 이 노래를 처음 접하는 사람 중에는 김흥국 노래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정말 김흥국이 부른 게 맞냐?"는 반응도 있을 정도다. 물론 김흥국답지 못한 노래라고 까는 컬티스트들도 존재한다. 물론 이 노래도 처음부터 김흥국이 부른 노래가 아니다. 원래는 가수 김남화[8]가 1987년에 '왕십리'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노래로, 김흥국의 곡과 비교하면 가사 일부가 다르다. 이 곡은 스테디셀러의 표본이기도 한데, 가요톱텐의 10위 안쪽을 히트곡이라고 판단하던 그 당시에는 히트곡으로 인식이 되지 않았다. 왜냐면 15~30위권에서 몇달을 버틴 노래이기 때문이다. 이 정도 성적은 빌보드 연말차트로 환산하면 연말 순위 20~30위 정도는 충분히 된다. 짧게 1위를 했던 노래들의 취급이 이 정도이니 얼마나 가늘고 길게 갔는지 알 수 있다.
내게 사랑이 오면 59년 왕십리에 이어서 1993년 김흥국은 '''또 멀쩡한 노래이자 몇 안 되는 히트곡'''인 '내게 사랑이 오면'을 발표한다. 골든앨범을 제외하면 4집 타이틀곡이지만, 트로트이자 멀쩡한 노래라서 인터넷 사용층에게는 인지도가 떨어진다.
이렇게 노래들로 다시 한 번 히트를 치고 베스트 앨범까지 내면서 1993년까지 가수 인생 최절정기를 달리던 도중, 1993년에 김건모레게곡 '핑계'가 큰 인기를 끌자[9] 나도 레게곡으로 한 번 떠보자며 '성인들을 위한 레게 음악'을 모토로 타이틀곡으로 '레게 파티'를 내세운 앨범인 Last Reggae를 1994년에 내놓게 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image]
[image]
1994년 Last Reggae
2017년 레게의神
레게 파티 첫 시연 당시 레게 파티2 당시 앨범 재킷에 터번을 쓰고 춤을 추는 사진을 걸어 향후 무식개그로 한 획을 그을 것을 암시하기도 했다. 레게자메이카의 음악이지만. 참고로 이 '레게파티'에서 랩 파트를 피쳐링한 사람은 다름 아닌 '''그룹 룰라의 리더 이상민'''이다. 물론 이때는 듣보잡 신인시절인지라 앨범에 피쳐링 이름도 올리지 못 했다.(재발매반에서는 올림) 여담으로, 당시 앨범발표 직후 일요일 일요일 밤에 등에서 홍보를 했는데 위 앨범자켓과 동일한 중근동 스타일 복장에 신발은 중고등학생들이 신고 나오는 실내화를 신고 나왔다. '왜 실내화를 신으셨죠?'라고 진행자가 묻자 '의상비용 지출을 너무 많이 해서 신발에 쓸 돈이 안 남았다' 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렇게 당시에는 시원하게 망했지만. 그럼에도 레게 컨셉과 장르만큼은 제대로였다는 평과 함께 후에는 '''컨셉에 묻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시대를 앞서간, 내지는 시대를 잘못 만난 노래"로 재평가되었다.''' 결국 이 음반은 한참을 지나 2016년이 되어 비트볼 레코드에서 카세트 테이프와 10인치 바이닐로 복각발매되었다. 그것도 새로운 커버와 함께.
가수라고 하는데 히트곡 중에서 '''59년 왕십리'''와 '''내게 사랑이 오면'''를 제외한 노래는 괴이하다 못해 전파송에 가깝다. 자작곡 '정아'나 본인의 경험담이 담긴 '59년 왕십리'를 보면 1절과 2절이 똑같다고 까일지언정 그렇게까지 음악적 능력이 없는 가수는 아니다. 첫 히트곡 호랑나비가 워낙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노래다 보니 이미지가 그쪽으로 굳었고 이후 발표한 곡들이 호랑나비 만큼 히트를 치지 못하자 계속 B급 감성의 코믹 댄스곡으로 밀다가 망가진 경우다.[10] 사실 레게파티 이후로도 김흥국은 월드컵용 싱글과 기존 대표곡에 신곡 한 두곡을 추가하는 형태일지언정 꾸준히 앨범을 내고 있으니 '''현역 가수'''인 것은 사실이다. 다만 몇몇 트로트 곡들이 중장년층에게 인지도가 살짝 있는 것을 제외하면, 김흥국의 노래는 월드컵 시즌에도 반향을 못 일으키는 것이 현실일 뿐. 뭐 가수로서는 망가졌으나 아래 서술할 예능부분을 보면 예능에서 성공했으니 다행일지도 모른다. 꼭 가수의 길에서 계속 인정받는 것만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니까.
유튜브의 어느 영상에 달린 댓글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 보컬 능력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린다. 개그맨 이미지를 감안하고 보면 의외로 괜찮다는 평이 꽤 나오지만, 상반되는 의견을 피력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정찬우가 (예를 들어 컬투쇼 2015년 2월 10일, 2월 17일 방송에서처럼) 농담반 진담반으로 "형님 노래 못하신다"고 종종 언급하곤 하지만, 애초에 드러머로 음악 커리어를 시작한 사람이기도 하고 이후에도 가수로서 순수하게 가창력으로 존재감을 드러낸 경우는 없었다. 다만 김흥국 특유의 허스키한 중저음 음색에 대해선 다수가 호평을 하는 편. 가창력 논란관 별개로 수십년 동안 음악 물을 먹은 사람답게 가요계의 동향에 밝은 편이다. 김흥국의 라디오 방송을 유심히 들어보면 흘러간 노래나 왕년의 유명 가수, 작곡가들에 대한 정보가 상당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워낙 인맥도 넓은 사람이라 요즘은 소식을 접하기 쉽지 않은 가수들의 근황을 전해주는 경우도 다반사.
독도로 날아간 호랑나비
2015년 8월 26일 인순이를 제치고 남진, 송대관, 태진아에 이어 임기 3년의 가수 협회장에 당선되었다. 쇼미더머니5에 길 팀의 보이비의 무대에 특별출연하였다. 말 한마디 안 했지만 무대 출연 자체로 사람들을 열광의 도가니에 빠트렸다.
원샷 2016년 6월에 김흥국, 바이브가 부른 원샷이라는 노래가 공개됐다.
2019년, 자메즈09년 왕십리에 피처링하였다!

2.2. '''CF'''



2.2.1. 대리운전 광고



대전, 세종, 충남 지역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끄는 대리운전 광고가 있다.[11] 10시간 버젼도 등장했다. # 본인의 음주운전(1997)의 전화위복이라 생각하면 상황이 오묘하게 재미있다. 하지만, 저녁시간대 라디오를 듣고 있으면 대리운전 광고가 그렇듯 수시로 8282 8282 광고를 해 대는데, 어쩌다 한두번 들어야 재밌지, 매일 매일 들이대고 그것도 후크송으로 귓 속으로 전화번호를 자꾸 우겨 넣어서 꽤 고통스럽다. 뭔가 칙칙하게 술에 쩔어오는 기분이라고. 이 광고 때문에 라디오를 끊은 사람이 제법 있다.

흐아, 김흥국이에요

042-8282, 8282 대리운전!

042-8282, 8282 대리운전!

빨리 오니 불러봐, 8282 대리운전! (김흥국의)

042-8282, 8282 대리운전!!

흐아, 들이대

멜로디 자체는 유명한 애니메이션이었던 호호 아줌마의 주제가를 패러디한 듯하다.
재밌는 사실은, 이 광고의 화려한 피날레는 본인의 음주운전(2013)이라고. 그 뒤로 광고가 거짓말 같이 사라졌다. 그러나 대전에서 군생활한 어느 위키러에 말에 따르면 14년, 15,16년에도 라디오에서 계속 나왔다고 한다.
사실 김흥국이 음주운전을 일으킨 후 이 광고는 김흥국의 목소리를 삭제하고 여성 목소리로 대체해 송출되었다. 시유라거나 TTS 같은 컴퓨터 프로그램 톤이 약간 나는 목소리였다. 이후 쥐도새도 모르게 부활했지만, 송출빈도는 갈수록 줄어들었다. 2017년에는 트위치 같은 인터넷 방송계에서 저배속부터 고배속까지 이어 붙여 놓은 영상이 도네이션 영상으로 계속 나오고 있다. 이유는 그저 중독적이라서. 여러가지 배속버젼도 유튜브에 업로드되었는데 대표적으로 0.0625배속이 있다. 여기서 한술 더 뜬 0.015625배속도있다.
2018년 대전 라디오 방송 중간 광고로 나왔으며 오사플라워의 대표모델로 광고 출연 중이다.

2.2.2. 그 외 광고 출연


  • 좋은데이
  • 몽쉘
  • 다꼬르 팝콘
  • 롯데푸드 겟투
  • SPC삼립 흔들흔들바
  • 종이나라
  • 롯데하이마트[12]
  • 신한은행 써니뱅크[13]
  • 쿠차

3. 어록


터보의 노래 'Cyber Lover'를 '''씨버 러버'''[14]라고 하거나, UCLA 대학을 우크라 대학이라고 발언한 것[15] 이에 대해 본인은 내가 모르는 노래나 가수가 나오는데, 그냥 소리나는대로 읽었을 뿐이고, '''실수가 있어야 재밌다며''' 오히려 자랑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이 밖에도 다양한 레전드급 방송 실수담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 방송에 나와서 '대본에 써있는 대로 읽었다'라고 하는데''' 그의 행적을 보면 그런 말실수가 위에서 말한 코믹가수 콘셉트과 마찬가지로 예능 진출을 염두해서 실수를 가장한 의도적인 발언이 아니냐는 의혹(?)도 존재한다. 단적으로 네프킨, 프시킨 발언만 보더라도 일반적으로 생소한 시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칠만할 실수라기보다는 의도적인 계산된 개그 혹은 짜여진 각본의 대사같다.
이와 관련해서 김흥국 이름으로 책도 나왔는데[16], 이름은 "김흥국의 우끼는 어록". 이 책에 의하면 원고가 없어서 나온 사고[17]나, 원고를 대충 봐서 나온 사고[18]가 대부분으로 적혀 있다. 대본을 건성으로 훑어보는데다 노안이 심각해서 벌어진 일이 많은 듯하다.
이렇고 저런 이야기들이 많은데, 크게 말실수와 반쯤 의도한 개드립으로 나뉜다.
  • 말실수
    • "남편분은 뭐하시죠?" - "(청취자)사별했어요" - "성격 차이였나요?" ('결별'과 혼동함)
  • (80년대 히트곡으로 알려진 차도균의 '철없는 아내[19]'란 곡을 소개하며) "이번 곡은 '없는 아내'입니다." 그래놓고 "뭐 제목이 이래?" 되려 역정을 냈다.
  • "안녕하세요 조PD(가수)입니다" - "으아 내 노래 좀 많이 틀어줘~[20] 아니 왜 인순이 꺼만 그렇게 틀어준다 그래? 내 꺼도 좀 틀어 줘봐~'" (본인 해명에 의하면 라디오 PD인줄 알았다고)
  • (국악을 하는 세쌍둥이 자매를 소개하면서) "그런데 몇 살 터울이냐?"
  • (인간문화재 이은관을 초빙해서 소리도 듣고 대담도 하는 자리에서) "재미있고 멋지신데, 아 시간이 아깝네요."(시간이 부족하네요, 내지는 시간이 부족해서 아쉽네요를 잘못말한 것)
  • (박미선 "노래 한 곡 듣고 가죠. 장윤정이 부릅니다.")" 어머니? ... 어머 ... 어머... 어머..."
  • "오늘은 10월 1일, 광복절입니다."[21]
  • 김구라가 "그럼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해보세요"라고 물어보자 "나 그림 못그려" 라고 대답했다.
  • 가수 거미의 노래 '친구라도 될 걸 그랬어'를 소개하는 대목에서 "자, 다음 노래는 친구가 부릅니다. 거미라도 될 걸 그랬어"[22]
  •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고 어느 시인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박미선: "그게 누군지 아시나요?") "그, 저~ 네프킨 아닌가요?"
  • (방송국에서 길을 걷다가 만나서 먼저 인사를 한 쥬얼리자두에게) "쥬얼리양", "자두양"이라고 불렀다[23]
  • "오늘은 장애인의 날입니다. 장애인 여러분 축하합니다."[24]
  • "독도는 우리 땅! 마라도도 우리땅!"[25]
  • (음치 여자가 노래교정을 받는 코너인데 노래를 너무 못하자) "으아~ 날씨가 나빠요~ 날씨탓으로 돌리고 싶네요~ 반주는 나가고 있죠?"
  • (출산 시에는 제왕절개보다는 자연분만이 좋다는 이야기를 하던중) "그럼 박미선 씨도 자연유산이에요?"
  • (정선희와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청취자가 신곡을 들려 달라고 하자)"으아, 아직 가사를 다 못 외웠어요"[26]
  • (아부나 로비로 이익을 취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을 하던 중) "요새 왜 손 비비면서 아부하는 사람이 많은 지 모르겠어요. 정직하게 살지 왜 그렇게 살아요? 그렇게 비비다 보면 손가락 문신이 다 지워질 거에요." - 지문을 문신이라고 잘못 말한 것이다.
  • (미국 유학중인 아들을 만나러 가서 한인방송에 출연했을때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소개하며) "방탄조끼가 부릅니다"[27]
  • (출연자들이 EXO[28]의 으르렁을 다함께 부르기 시작했는데 자신도 모르게) "따르릉 따르릉".
  • 성균관 스캔들에서 송중기의 유행어였던 나 구용하야박용하라고 말하는 바람에 성균관 스캔들 팬들과 드라마 갤러리 등지에서 까였다.[29]
  • 개드립
    • 라디오스타에서 윤종신이 "호랑나비는 굉장히 진보적인 음악이에요"라고 하자, "난 보수인데? 나 진보 아니야!"[30]
  • (EXO의 으르렁을 듣고, "무슨 호랑이가 나타났냐. 노래 제목이 '으르렁'이냐. 무슨 동물 노래냐"
  • (뮤지를 만난 자리에서 뮤지가 자기소개를 한 뒤에) "이름이 묘지야?"[31]
  • (2015년 4월 27일 두시탈출 컬투쇼 생방송 중 보낸 문자)"어, 묘지 나왔네?"[32]
  • 함께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김부선이 자꾸 괴롭히자 "너 아직도 해?"[33]
  • 복면가왕 판정단으로 출연한 유아의 이름을 몰라서 신봉선이 가르쳐 주자 "어 난 으아야!"[34]
  • 1대100에서 조우종 아나운서가 "이거 뭔지 아세요?라고 묻자 "돼지같은데?"
  • 출발 드림팀에서 눈썰매장에서 하는 팀대결에 앞서 이창명이 김흥국 소속팀이 지면 어떤 벌칙을 수행하겠냐고 하자, "아 좋아, 지면 이 눈썰매장 눈 다 치우고 갈게요."

4. 예능감


어지간해서는 상대에게 리액션을 잘 안 하는''' 김구라가 김흥국 앞에서는 숨도 못 쉬고 폭소'''하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김구라가 가장 선호하는 파트너이기도 한데, 김흥국이 본인의 특기인 통제할 수 없는 애드리브와 사차원 개그를 늘어놓기 시작하면 김구라는 본인의 특기인 지식이나 진행에 더 몰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김흥국과 마냥 대등한 위치에서 방송하는 것만도 아닌데, 김흥국이 예측 불허의 사차원 공격을 퍼부으면 김구라는 반격도 제대로 못하고 당한다.
그에게 비슷한 클라스라고 들이댈 수 있는 사람은 신정환 뿐이었다.[35] 조금 스타일은 다르지만[36] 맥락없이 생각나는 말을 갑자기 지르는데, 그걸로 오히려 엄청 크게 터뜨린다는 데서는 일치한다. 대신 두 사람이 같은 방송에 함께 나오면 신정환이 김흥국에게 많이 밀렸다. 신정환의 예능감이 떨어진다기 보다는 아무래도 둘 사이에 나이 차이, 데뷔 연차도 그렇고 주로 MC진이었던 신정환에 비해 한 두회 동안 모든 걸 다 쏟아붓는 게스트인 김흥국이 예능 프로에선 더 돋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신정환의 경우 그 날 컨디션에 따라서 기복이 많이 갈리는 반면에, 그는 어떤 게스트들과도 호흡이 잘 맞고 어느 프로그램에서도 신들린 예능감을 보여주는 편이다. 뛰어난 친화력과 재치있는 입담이 한몫하는 것 같다. 그래도 동시 출연한 불후의 명곡에선 서브 MC에 가까웠던 신정환의 분량이 김흥국보다 훨씬 더 많은 경우도 있었다. 김흥국과 비슷한 스타일의 예능감을 가진 사람으로는 이계인이 있다.
코미디프로그램 갤러리에서 '''흥궈신''', '''예능치트키'''라 불리우며 추앙받는 예능인이다. 아프리카의 코갤세력인 코프리카에서 김구라와 함께 까이지 않는 몇 안 되는 인물. 2018년 기준으로 60세인데도 젊은 세대들이 많이 시청하는 예능에 출연하여 엄청난 인기를 받는 것은 젊은 예능인들도 해내기 어려운 일이다. 인터넷 반응뿐만 아니라 실제 반응에서도 평가가 매우 높으며 고정 게스트로는 A급 대우를 받는다.
특히 김흥국의 가장 큰 장점은 어떤 게스트와 방송을 해도 게스트를 살려준다는 점이다.[37] 예능 경험이 없는 게스트나 대선배와의 방송을 어려워하는 아이돌 후배들과 함께 출연을 할 때 이 장점이 드러나는데, 김흥국이 먼저 적극적으로 대화를 걸고 리액션을 해주며 분량을 뽑아주고, 후배들이 깐족대도 기분 나빠하기커녕 오히려 "들이대~" 하며 받아주기 때문에 분위기가 싸해지는 경우도 없다. 가끔 꼰대같은 반응을 보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장난일뿐, 상대가 받아주지 못하면 깔끔하게 수긍하고 넘어가는 마무리로 시청자를 터트리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황금어장 라디오 스타 김태원편과 김경진, 김경식과 함께 나온 편. 김태원은 그를 예능계의 '''초능력자'''라고 평했다. 강호동조차 "30년 동안 '으아~' 하나만 했는데도 안 질려요."라며 대단함을 인정했을 정도. 무려 당시 10대 아이돌 가수인 현아의 섹시 콘셉트 노래에 춤을 춰주며 분위기를 살려준 적도 있는데, 다른 중년 남자 게스트에게 시켰다면 정색을 하며 끝까지 빼거나 화를 내서 통편집이 되었을 만한 장면이다. 허나 김흥국이었기에 분위기를 엄청나게 띄워준것.
독특한 개그 방식 때문인지 특히 라디오 스타에서 포텐셜을 폭발시켰다. 1년에 한번씩은 꼭 나오는데 총합 8번으로 '''라스 최다출연 게스트'''이기도 하다. 심지어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원순시장과 함께 게스트로 나와서도 상반된 성향을 떠나 드립을 터트리기도.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김구라와 실시간 방송을 함께 하기도 하는데 예측불허의 막드립을 보여주며 여전한 클래스를 보여주고 있다. 다음팟 플레이어로 생방송을 보면 편집으로 거르지 않은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는데 소통도 안 놓치는 편이고 반응이 좋은 편이다. 조세호프로불참러로 뜨는 데 큰 공헌을 했다. 덕분에 같이 CF를 여러 편 찍었다.

4.1. 인맥


친화력이 뛰어나고 특유의 입담 때문인지 인맥이 상당히 넓다. 불교, 해병대, 그리고 축구[38] 세가지 부분에서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서, 이쪽으로 인맥이 많다.
특히, 열혈 축빠로 유명해서 FIFA 월드컵이 열릴때마다 응원단을 이끌면서 대한축구협회장이었던 정몽준과 친분을 쌓게 되었다. 이 때문에 정몽준의 각종 정치활동에도 따라다니면서 보수성향이 알려지게 된다. 정몽준과는 매우 친한 관계로 썰전에서 정몽준의 인맥에 대해 다루었을 때도 김흥국이 거론이 됐었고, 김흥국과 친분이 있던 김구라와의 통화에서도 그저께도 만났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개인적으로도 자주 만나는 듯 하다.
해병대의 경우, 그냥 당시 육군보다 기간이 짧아서 그냥 별 생각 없이 갔다온 거라는 둥 하면서 마치 지원해서 입대한 것처럼 인터뷰 등에선 말하지만... 실제론 지원한 게 아니라 해병대에 무작위로 징집당해서 간 거였다. 즉, 랜덤으로 당첨된 거다...... 김흥국의 기수인 401기는 해병대 서울 지역 징집기수다. 예전 해병대는 지원자가 많지 않아서, 홀수/짝수 기수별로 번갈아서 징집기수와 지원기수로 나눠져 있었다.
뜨기 전 무명가수 시절엔 사회에서 해병대 출신들을 만나면 자기 기수를 수십 기수나 높이며 속여서 한참 선배 해병들한테도 오히려 존칭과 선배 대접을 받고 다니기도 했다는 게 해병대 커뮤니티에서 폭로된 바도 있다. 게다가 남들 다가는 군대였는데 유독 해병대 부심을 부리며 마치 특수부대라도 다녀온 것처럼 떠벌려대서 대부분 군필 남성들의 인식도 영 좋지 않다.
그래도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강한 자부심을 여전히 보여 주고 있다. 이후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김흥국과 친해진 가수 '''이정'''이 김흥국의 권유에 따라 2008년에 해병대로 입대했고 군 복무를 마쳤다. 이게 인연이 되어서 두 사람이 함께 남자의 자격에도 출연한 바가 있으며, 김흥국은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내레이션을 하기도 했다. 근데 정작 자신의 아들은 해병대를 안 보냈다(...).
냉장고를 부탁해 덕분에 셰프 쪽에서도 연이 하나 생겼는데. 바로 동갑내기에 같은 왕십리 고향지기인 이연복 대가. 방송 후에도 '''친구'''라고 칭하며 절친한 모습을 보였다.

5. 축빠


유명한 축빠이다. 연예인으로 인기를 얻고 나서부터 월드컵 때마다 항상 연예인 응원단을 조직해서 원정 응원을 해왔다. 연예인으로 인기를 얻은게 89년이고, 그 다음해인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때부터''' 자비로 원정응원단을 조직해 월드컵 원정경기에 꽹과리 치면서 응원을 주도했다. 시기로 치면 붉은 악마보다도 먼저 활동한 셈. 그리고 월드컵 송을 발표하는 것도 김흥국이 최초라서, 1995년에 이미 '''2002 월드컵 코리아'''라는 싱글을 발표했다. 이후에도 매 월드컵마다 월드컵 송을 발표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종종 월드컵 경기에서 관중석이 비쳐질 때 그가 보이곤 했다.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네덜란드에게 0:5로 참패당할때도 그가 안타까운 얼굴로 관중석에서 응원하는 게 방송 카메라에 찍히기도 했다.
다만, 그 성격이나 원조축빠라는 부심때문인지 올드 축구팬과 현재 붉은 악마와는 매우 사이가 안좋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회오리 연예인 축구단"이 국대 경기 응원의 중심에 서야 한다며 붉은 악마 지도부와 충돌하기도 했고, 이때 폭언과 폭행을 했다는 설도 있었다. 붉은 악마 초창기인 1997년 당시 해외에서까지 붉은 악마 지도부와 충돌했다고 한다. 2002년 월드컵 때 예선전부터 응원단인 붉은 악마들을 정몽준과의 커넥션을 이용해서 홀대를 하기도 했다. 이유는 붉은 악마측에서 리딩을 맡긴다고 했었는데도, 자신을 중심에 놓지 않고 무슨 응원을 하냐고. 하여튼 이런 일로 하얀 천사라는 응원단을 따로 만들기도 했 다. 잘 알려지지도 않았으며 검색하면 특정 종교 응원단 관련만 나온다. 이때문에 붉은 악마 관련 서포터들에게도 축구와 서포터를 통하여 자기가 무슨 권력자인지 아는 위선자라고 엄청나게 비난받았으며 이후 정몽준과 정치적 공천 문제로 보도될때 정몽준에게 굽신거리며 공천을 부탁할 인물이라고 비난받았다.
또한 축빠답게 야빠들의 적이기도 한데 97년 LG 트윈스 홈구장으로 기획되었던 뚝섬 돔 경기장을 적극적으로 반대한 바 있다. 삭발투쟁까지 하며 '축구를 죽일 거냐'는 피켓을 들고 시위까지 했었으니 야구팬 에게는 철천지 원수일 수밖에 없다.[39] 애초에 월드컵과 무관했던 돔구장을 1995년 5월 월드컵 유치위가 일본과의 월드컵 유치 경쟁에서 불리한 상황에 끌어들여 월드컵 개최 후보 경기장으로 선정하면서 외환 위기가 아니더라도 월드컵 개최를 이유로 신축이 가능했으며 일본과 공동개최가 확정된 후 당시 축협 상무였던 김정남씨의 근거없는 발언 하나를 명분으로 축구계가 축구전용구장을 신축하라며 뚝섬돔 신축을 반대한 것이다. 결국 뚝섬돔의 월드컵 개최가 무산되어 서울시가 신축에 발을 빼면서 어려움을 겪다 이러한 상황속에 IMF 사태가 터지면서 서울시의 지원을 받지 못한 LG그룹이 독자적으로 진행이 불가능해져 끝내 무산되었다.
2010년 6월 12일 대한민국그리스의 2010 남아공 월드컵 조별예선 경기를 현지에서 관람하다 응원용 나팔 부부젤라불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의외로 부부젤라를 제대로 불려면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극비리에 숙소에서 특훈 (??)까지 해서 응원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2010년 06월 26일 16강 진출 기념 & 8강 진출 기원으로 수염을 깎았다. 하지만 16강에서 바로 좌절되었으므로 이번 월드컵의 최대의 피해자 중 한 명이라면 한 명이라 할 수 있겠다.
축구에 대한 애정만큼이나 축구 실력도 상당히 뛰어나서 조기축구계의 지네딘 지단이라 불릴 정도의 실력이 있다고 한다. 실제로 김흥국은 초등학교때부터 학창시절 내내 학교 축구부 선수였던 엄연한 축구선수 출신이다.
[image]
[40] 위 장면을 김흥국의 왕십리턴이라 부른다.
또한 만원의 행복 출연 당시 일본 연예인 대표팀과 친선 축구경기가 있었는데 돌발미션으로 미드필더 포지션인 김흥국에게 1골 1어시를 주문했는데 미션 클리어 하면서 500원을 획득했다.
그리고, 독실한 불자라는 것으로도 유명해서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되길 기원하며 직접 절을 하면서 2002배를 한 적도 있다. 그래서 스포츠 신문에서도 실린 바 있다.

결국 피파 온라인 3에 만우절 이벤트로 등장 확정.(...) 티저 이미지에 굉장히 짜리몽땅한 실루엣이 나오자 유저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김흥국의 실루엣이라는 걸 발견해냈다.[41] 선수 실루엣 이미지 쓸게 없어서 아무거나 쓴 거 아니냐는 걱정도 잠시, 티저 동영상이 발표되자 59번을 달고 왕십리턴을 하는 김흥국의 모습이 공개되며 유저들의 환호성 이 터져나왔다. 금카도 있는 듯하며, 3일간 선수팩으로 지급된다고 한다.
우리동네 예체능에 출연하여 자신이 왜 흥켈메라 불리는지 증명하였다.
심지어 유명 축구선수들만 갖고 있다는 스페셜 영상마저 존재할 정도. 흥켈메 스페셜 3개나 된다.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그의 깊은 축구사랑도 같이 느낄 수 있다.
최근 국가대표 공격수들이 하나같이 다 부진을 면하지 못하자 우스겟 소리로 흥켈메를 원톱으로 세우자는 웃픈 농담도 나오고 있다

6. 김포시 홍보대사


2015년 수십년간 살았던 서초구 잠원동 집을 팔고, 돌연 경기도 김포시로 이사간다. 방송국이 있는 일산서구상암동에서 가까운 직주근접성때문에 김포로 옮긴 것으로 보이지만, 부동산 가치가 어마어마한 강남 아파트를 팔고, 김포 아파트를 매입해 이사갔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상식과는 정반대인 파격적인 결정으로 꼽힌다.[42] 근데 하필 이사 간 김포 아파트가 인조축구장 딸린 걸포중앙공원 바로 앞에 있는 아파트라 축구장보고 이사했다는 썰도 있다.
아무튼 강남에서 김포로 역이주 했다는 점에 호감이미지가 더해져, 김포시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김포시김포시민축구단의 홍보대사로 임명된다. 김포시 걸포중앙공원 에서 대한가수협회 주최 행사를 열기도 하였다.
김포로 이사가자마자 본인의 아파트 조기축구회에 가입했는데, 특유의 친화력으로 금세 김포지역 인맥을 구축하였고, 급기야 그 인맥 중 하나가 김흥국의 이름을 내건 낙지요리집(들이대 낙지)을 김포에 개업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김흥국이 방송에 출연하면 그 낙지요리집이 자주 언급되며 그곳에서 식사하는 장면이 종종 나오기도 한다.
비자문제로 딸 김주현의 미국 유학이 더 이상 불가능해지면서 기러기 생활이 청산되나했지만, 김주현이 반포에 있는 국제학교에 입학하게 되어 또 다시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는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라디오 스타에서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같이 출연했을 때, 박원순의 당선 때문에 이사간거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7. 정몽준과의 친분


'''"나 진보 아닌데, 나 보수인데"'''[43]

'''"보궐도 줘야 보궐이지"'''

- 2008년 9월 24일 MBC 황금어장 라디오스타에 출연해서

정몽준과의 친분, 그리고 보수성향으로 유명하다.[44]
그래서 한나라당의 절대우세가 예상되던 2008년 총선때 정몽준을 등에 업고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을려고 했다. 그러나 그가 출마의사를 밝히자 인터넷 각 사이트마다 이를 조소하는 여론이 돌았고, 이는 김흥국의 후견인 정도로 알려진 정몽준에게 해가 될수도 있었기 때문에[45], 정몽준이 주저앉힌 듯하다. 그때 자신이 출마하지 못한 이유로 대표적인 친노 연예인인 명계남을 탓하기도 했는데 요즘에는 국회의원 출마를 개그로 승화시키는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다. 김흥국 본인은 국회의원에 출마하려고 했으나 스스로는 모든 프로그램을 쉬어야 한다는 이유로 포기했다고 주장했다.
그 뒤에도 2011년 오세훈 시장의 무상 급식찬반 주민투표에 나와서 박상원과 함께 투표를 호소하기도 했고 4.27 재보선에서 한나라당 강재섭 후보가 출마한 경기도 성남 분당을 선거구에 정몽준과 함께 유세현장에 나오기도 했다.
한편 2002년 대통령 선거 당시 정몽준에게 노무현 지지 철회를 강하게 밀어붙인 이가 김흥국이었다. 그 날 밤새 같이 있었다고. 그 뒤에 정몽준의 인생사는... 그래서 관계가 예전같진 않고 정몽준이 그다지 크게 밀어주진 않는 듯...이라지만 '''어디까지나 김흥국 본인의 주장일뿐이다.'''
약간의 부연설명을 하면 16대 대선 하루 전날인 2002년 12월 18일 저녁 9시 정몽준이 전격적으로 노무현 지지철회를 선언하고 자택으로 들어가버렸을 때 같이 따라 들어간 극소수의 최측근에 김흥국도 포함되어 있었다. 다른 측근인사들과 함께 밤새도록 정몽준과 같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긴 하다. 당시 김흥국은 문화예술특별보좌관이란 직함을 달고 선거기간 내내 정몽준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정몽준의 결정에 누가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는 여태까지도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공식적으로 내가 주장했다고 이야기한 이는 김흥국이 유일하다.(...)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인물들은 대부분 침묵하고 있다[46].
이 건에 있어 정몽준,노무현측은 지금도 침묵하나, 후보단일화 협상을 위해 아예 국민통합 21로 옮긴 김민석은 15년이 지난 2016년 9월 김어준의 파파 이스에 출연해 그때 상황을 스스로 밝혔다. 다만 노무현과의 통합을 주장했던 김민석은 당시 정몽준과 사이가 멀어진 상황이었기 때문에 정몽준과 최후에 함께한 최측근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마지막 상황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다만, 마지막 선언 이전까지 김흥국이 정몽준의 옆에 붙어다니면서 단일화 파기로 열변을 토했다는 것은 증언했다. 그때 김어준과 김민석의 김흥국에 대한 평가는...
한편, 2008년에 이어 2015년 4월 15일 MBC 라디오스타에 다시 한번 출연하게 되는데, 이 때는 배우 김부선과 함께 출연했다. 그런데 김부선은 2012년부터 난방비 분쟁 등으로 인해 정치적으로 진보가 아니냐는 여론이 있던 상황.[47] 이에 라디오스타 MC들은 나란히 앉아있던 김흥국과 김부선에 대해 '보수 대 진보'라는 정치프레임을 씌워서 놀리기도 했다.
서울시장 선거 때 정몽준이 떨어지자, "서울 떠나야겠다."고 해피투게더에서 말했는데, 그것때문은 아니겠지만 이듬해 진짜 서울을 떠나서 경기도 김포로 이사가는 언행일치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정작 보수정권 하에서 연예인 블랙리스트 물타기 용으로 토사구팽 당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문단 참고.

8. 사건사고 및 논란




9. 기타


  • 김흥국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상은 콧수염이다. 데뷔 초에도 콧수염을 기른 채 활동했는데 아버지께서 생전에 콧수염을 기르셨고,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 기리고자 젊은 시절부터 콧수염을 길렀다고 한다. 하지만 잠깐 콧수염을 깎은 적이 있는데 그게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16강에 올라간 일 때문이었다. 김흥국은 한국이 16강에 가면 콧수염을 밀겠다고 했으며 한국이 조 2위로 진짜 16강에 오르자 콧수염을 밀었다. 그 이후 다시 콧수염을 길렀다. 콧수염이 워낙 강렬한 이미지였고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서는 김흥국 하면 그 '콧수염'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과거 개그가요제를 했을 때 같은 콧수염 연예인인 배철수, 배칠수 등과 같이 의기투합해서 '코털스'라는 밴드를 결성해 참여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콧수염이 워낙 강렬해서 이젠 그 별명을 딸내미한테 물려주는 지경까지 갔다.
  • 본의 아니게 대한민국 코메디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세웠는데, 바로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이경규몰래카메라 최초 희생자가 바로 김흥국. 엄밀히 말하자면 처음 방영한 몰래카메라는 인터넷에 흔히 보이는 서양몰카처럼 어떤 깜짝 놀랄만한 상황을 세팅해 놓고 출연자들의 다양한 반응을 지켜보는 형식이었다. 그러다 한 사람을 목표로 정하고 속이는 형식으로 바뀌었고 김흥국편이 방송되면서 인기를 끌게 되었다. 내용은 김흥국이 스케줄상 집을 나올 시간에 맞춰 김흥국이 평소 지나가는 골목 근처에서 불량배들이 여자를 마구 위협하고 희롱하는 상황에서 김흥국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하는 것이었다. 평소 해병대 출신임을 강조하며 떠벌리기 좋아하던 김흥국이었던지라 그래도 도움을 줄거라고 기대했지만, 김흥국은 그 여성이 도움을 요청하는데도 본체 만체 하고 그냥 가버렸다고 한다. 몰카임이 밝혀지자 김흥국은 자신의 이런 비굴한 모습이 절대 방송에 나가면 안된다며 워낙 통사정을 하는 바람에 이번에 한해서 재촬영을 해주기로 했는데, 그렇다고 멋진 의인으로 180도 바꿔버리는건 너무 조작이라서, 지나갈까 말까 하고 한참 망설이던 김흥국이 다가와 이러면 안되지 않느냐고 조심스럽게 말리는 정도의 설정으로 타협을 봤고 이 재촬영분이 방송에 나가게 된다. 이상의 내용은 당시 일밤 PD의 방송 에피소드들과 후일담을 다룬 회고록 책을 통해 공개되었다.
  • 초등학교 때부터 학창시절 내내 학교 축구부로 운동한데다가, 성인이 된 후에도 현재까지도 계속 연예인축구단 소속 및 지역 조기축구회 소속으로 수십년간 매주 축구를 해와서 축구 실력 내공이 상당하고 축구 운동을 계속 하다보니 체력도 좋은 편이다.
  • 방송에서 '노인들에게 발언권을 더 줘야한다'라는 발언으로 방송정지를 먹은 적이 있다(…).
  • 나이가 들어 탈모가 생겨 가발을 착용하고 다닌다.# 현재는 모자를 늘 쓰고 다닌다.
  • 이 사람이 방송에선 가벼워 보여도, 알고 보면 기러기 아빠. 아들의 애칭은 자신의 고향인 서울 번동과 아내의 고향인 경북 칠곡의 지명을 따 번칠이다.
  • 그의 딸 김주현이 2017년 7월 아이돌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성적은 계속 최하위권을 전전하고 있다.
  • 과거의 숨겨진 특촬물인 반달가면에도 주연으로 출연했다.[48]
  • 한창 전성기를 누리던 1989년 당시에 인기에 편승하여 영화<앗싸! 호랑나비>라는 영화를 찍었는데 흑역사가 되었다..안습

[image]
서울 관객이[49] 130명이었다는 이야기까지 있는 그 영화. 그래도 이 영화 보다는 5배나 많은 숫자다(...).
  • 1990년에 이상은과 함께 '까치소리 동동동' 이라는 동요앨범을 낸 적이 있다. 이 앨범으로 조용필, 이상은과 함께 당시 이어령 초대 문화부장관 표창을 받기도 하였다.
  •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부른 적도 있다.

김흥국 - 꿈돌이

김흥국 - 붕붕붕 꿈돌이
바로 꿈돌이...

비슷한 시기에 방영된 MBC의 털보아저씨와 꾸러기들이란 애니메이션의 오프닝과 엔딩을 담당했었다. 이쪽은 메인보컬
  • 로또 2등에 당첨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자 "넌 이미 돈 많은데 그 돈 나 좀 줘라."하는 전화가 걸려와서 전화번호를 바꿨는데, 어찌 알아내서 계속 전화가 오길래 열불나서 그냥 기부했다고 한다. 마지막 전화에서 "야, 그 돈 너 같은 XX 주느니 기부해서 불우이웃을 돕는 게 훨씬 낫길래 기부했다 임마."고 하자 "이 XX X같은 XX!"를 시작으로 수많은 쌍욕을 날리고는 연락을 끊었다고.
  • 2012년 여름겨울, 2013년 초에는 스타주니어쇼 붕어빵미국으로 공부하러 갔던 과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 그 결과 새로운 구멍 가족으로 결정이 되었다.[50] 사실 아버지 쪽에서 문제가 많은 것과, 롤코 기질이 심했던 거다.
2005년 MBC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 7화[51]에 까메오로 출연해 이런 짤방을 남겼다.
  • 2014년 피파온라인3 4월 패치에 만우절 이벤트로 선수로 추가됐다. '59년 호랑나비' 아니랄까봐 초기스탯이 59 아니면 95 아니면 9로 죄다 도배.
  • 대한가수협회 5대 협회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추대로 협회장이 된 옛 협회장들과 다르게 최초로 선거로 선출된 협회장이기에 부담감이 크다고 한다. 2015년 8월 26일 오후 2시에 있었던 투표에서 182표 중 117표를 획득, 63표를 얻은 인순이를 누르고 제5대 대한가수협회장이 되었다. 임기는 2015년 9월 28일부터 3년.[52] 라디오나 기타 방송등에서 남진,설운도등이 밝히기를 김흥국이 원로가수들을 위해 애쓰고있다고... 방송에서 회비18만원 드립(...)이라던지 희화화되기도 하지만 일할때만큼은 정말 진지하게 임하는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협회장 기념앨범을 제작했는데 앨범 아트가 골때린다...
  • 제4대, 6대 불자가수회[53] 회장이기도 하며, 포교사 자격증 소유자이기도 하다.
  • 의외로 밝혀지지 않았는데 본인도 어렸을 적 가난하게 자란 경험이 있어서 2000년부터 김흥국장학재단을 설립, 사비와 주변의 후원금을 모아서 아이들과 원로가수분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 원로가수에게까지도 주는 것은 원로분들에 대한 대우와 용돈차원에서라고 한다. 구글등에 김흥국장학재단을 검색해보면 자세한 내용이 나온다. 기사, 다만 불교방송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사단법인을 설립하려면 요건도 까다롭고 자본금도 많이 들어서 정식 등록된 재단은 아니라고 한다.[54]
  • 언니네이발관리더이자 보컬리스트이석원이 상당히 좋아한다. 본인이 공홈에 쓰는 일기에도 몇차례 나온 적이 있는데 실제로 무가지를 낼 때 인터뷰로 전화 통화를 한 적이 있고 호텔에서 식사를 하는데 바깥에서 우연히 본 적이 있다고 한다. 두번 모두 설레였다고...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언론에 보도되고 각종 뉴스가 언론에 보도될 때 김흥국의 이름이 도마에 올랐다.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하여 최순실의 언니 최순득이 연예인 축구단과 친분이 있다고 하였고 연예인 축구단 중 가장 유명한 것이 회오리였으니... 이에 김흥국은 회오리 축구단을 나온 지 10년이 되었고 최순득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관계에 대해 부인하였다. 출처.
  • 김흥국과 관련이 있는 건 아니지만, 어떤 게임 캐릭터의 별명이 흥국이이다. 다른 FPS에서 HK를 이니셜이 비슷한 흥국에서 따와 별명으로 지은 것이 그대로 소녀전선으로 도입되었기 때문.
  • 2018년의 미투 열풍에 휘말리며 연예계 데뷔 이래 최대 위기를 맞이했다. 결국 무혐의 처분을 받으며 오히려 무고에 의한 피해자였음이 증명되었다. 자세한 사항은 사건사고 및 논란 부분 참조. 2019년 5월 1일 채널A 교양프로그램 행복한 아침에 출연해서 오랜만에 근황 및 과거 논란에 관한 이야기 등을 털어놓았다. 이렇게 모든 진실이 밝혀졌음에도 여전히 방송 커리어가 회복되지 않고 있다.# 주로 불교방송불교TV 및 2019년에 개설한 본인의 유튜브 채널#에서 활동하고 있을 뿐 공중파와 종편 출연은 여전히 뜸한 상황이다.

[1] 1973년도봉구로 분할되었고, 1995년강북구로 또 분할되어 현재에 이른다. 1959년 당시에는 성북구 관할이었다.[2] 다음프로필, 구글 기준[3] 일명 '번칠이'. 김흥국의 고향인 '번동'에서 '번', 부인의 고향인 경상북도 칠곡군의 '칠'을 딴 것이다.[4] 그리본명이 같다. 사실 이 이름은 엄청나게 흔한 이름으로, 중견탤런트, 김혜수의 첫째 남동생, 종합격투기 선수 겸 예능인, 축구선수 출신 악질 범죄자, 前 스타크래프트 저그 프로게이머 등 많은 사람들이 이 이름을 달고 있다. 다만, 중견탤런트 김동현은 김호성이라는 본명이 따로 있으며, 종합격투기 선수 김동현의 경우에는 김동현은 개명한 이름이고 개명 전의 이름은 '''김봉'''이었다.[5] 한국 출생으로, 6살 때부터 호주미국 하와이, LA에서 오랫동안 유학하였으며, 이후 귀국하여 아이돌학교참가했다. 서울에서는 영국 국제학교 고등부에 재학 중이다.[6] #출처1 #출처2[7] 사실, 이 유행어는 예전에 일밤에서 주병진이 김흥국이 첫 자녀를 임신했다고 하자 알려주고 친 드립이었고 그대로 김흥국하면 생각나는 말이 되었다.[8] 후에 김재희라는 예명으로 소양강 처녀의 리메이크곡을 발표했으며 애증의 강 등 몇몇 히트곡을 남겼다.[9] 이때 가수들이 레게곡을 많이 냈던 시기로, 레게 그룹을 표방했던 룰라도 이듬해에 데뷔했다.[10] 레게파티와 1995년에 나온 후속 앨범 '2002 월드컵 코리아' 이후에 '무정'이라는 트로트 앨범을 다시 내긴 했는데 워낙에 이미지가 훅 가버려서 돌이킬 수가 없었다.[11] 해당 업체는 KBS 7기 코미디언 양원경이 자신의 명의를 빌려주고 시작한 사업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양원경이 직접 홍보하며 같은 CM송을 불렀다. 김흥국이 광고 모델로 출연한 시점에서 양원경은 손뗀 모양.[12] 조세호와 동반 출연.[13] 써니와 동반 출연.[14] 미국 국방부는 실제로 Cyber를 '시버'(sibber)라고 읽는다고 알려져있는데, # 원본 문서(pdf)를 보면 알겠지만 가짜다. 미국 국방부도 사이버는 사이버라고 부른다.[15] 이걸 이용한 개그가 예전에 어느 시트콤에도 있었으며, MBC 시트콤 레인보우 로망스 2005년 11월 3일 방영분에서 나온 적 있다. 작중 여주인공이 과외를 하는데 학생(깡순이 김지선 양)에게 "넌 대학 목표가 어디야?"라고 하자 "여기요"하면서 U.C.L.A.라고 써있는 팜플렛을 가리킨다. 그러자 당황한 여주인공이 "아~ 우클라 대학!"이라고 하자 학생 "예? 우클라 대학이요? 그런 게 어딨어요! 에이 순 엉터리!"라고 하며 과외를 그만두자, "아냐, 우클라 대학 있어!"하며 후에 흑인(티모시로 추정)을 데려와 "이 사람 아프리카에서 우클라 대학 다녀!"하면서 "Where are you from?" "(한숨 한 번 쉬고) 우끄라 유니버시티"하는 콩트를 보여줬다.[16] 내용을 보면 절대로 김흥국 본인이 쓴 내용은 아니다. 김흥국의 말을 모은 것이기 때문에, 저자 명에 김흥국을 넣어준 것. 다만 김흥국의 허락은 받고 나왔고, 인터뷰 과정 정도는 거친 것으로 보인다. 덤으로 김흥국의 이름으로 나온 책은 또 하나 있는데, 바로 아동용 서적인 '''김흥국의 축구이야기'''. 물론 이 책도 고스트라이터가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17] 으아~나 응애에요~, 들이대~ 나의 독무대에요 같은 것은 원고가 없이 진행된 결과 나왔다. 대부분은 TV방송에 출연해서 말을 하는 프로그램인데, PD가 대본을 안 주고 애드립으로 다 때우게 했다고.[18] 거의 절대 다수가 박미선과 함께 진행하던 라디오에서 나왔다.[19] 1991년부터 1993년까지 방송한 SBS 웃으면 좋아요의 한 코너이기도 하며, 박미선과 이봉원이 출연했다.[20] 여기서 조PD가 "아 선배님 저는 이번에 인순이 선배님과 음반작업을.."하면서 자기 소개를 하려 했다고 한다. 그런데 김흥국이 이 말을 끊으면서..[21] 대부분은 8월 15일로 알려져 있지만 김흥국이 직접 낸 책 '김흥국의 우끼는 어록'에서 10월 1일 국군의 날에 한 이야기라고 수록하고 있다.[22] 해피투게더에서 출연해서 해명을 했는데, 작가가 제대로 써준건 맞지만 거미가 가수의 이름일줄은 몰라서 '친구'가 불렀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거미가 노래를 부르지는 않잖아?"라고.. 듣고 보면 일리는 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가수 거미는 "김흥국 선배님 덕분에 이 곡이 유명해진 부분도 있었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고, 실제로 방송 프로에서 출연해서 이 농담을 의식하고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노래입니다. 거미라도 될 걸 그랬어"라고 말했다.# 참고로 1대 1의 이세진도 이렇게 불렀다.[23] 쥬얼리는 이해를 해도 자두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는데, 이 시기 자두는 자두와 강두의 2인조 혼성듀오였다. 양쪽이 모두 그룹이름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24] 방송 시작 멘트를 저걸로 한 바람에 방송이 끝나기도 전에 장애인들의 항의가 빗발쳐서 방송 도중에 사과를 해야 했다.[25] 원래 원고에는 대마도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대마도는 대한민국 영토가 아니다.[26] 자기 노래 가사를 다 못 외운 것도 이상하지만, 대부분 라디오에서 요청이 들어오면 PD가 앨범을 튼다.[27] 추후 출발 드림팀 출연시 이창명이 이에 대해 언급하자, 김흥국이 진지하게 "그건 좀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 이후 방송에서 그 팀의 멤버에게 직접 사과했다.[28] 사실 김흥국이 이 그룹 이름을 처음 들었을때도 "엑소? 그거 술 아냐?" 그랬다. 코냑의 등급 XO(Extra Old, 최상급 코냑)와 헷갈린 것.[29] 게다가 이때는 하필 박용하가 자살한 지 몇 달 정도 밖에 안 되었을 때였다.[30] 윤종신은 음악적 성향을 언급한 것이지만, 본인은 정치적 성향으로 받아쳤다.[31] 뮤지가 두시탈출 컬투쇼 2015년 3월 2일 동네형들 코너에서 직접 밝힌 경험담이다. 이를 들은 김태균 曰 "어머니가 거기(묘지)서 낳으셨나?"[32] 이 날은 뮤지가 3부의 동네형들 코너지기를 맡고 있는 월요일이었는데, 하필 사연 소개 도중에 저 문자가 도착해서 같이 사연을 읽던 정찬우가 급 빵 터지고 말았다. 그리고 피해자(?)인 뮤지 曰, "이제 그만 좀 죽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김흥국의 이 말실수 때문에 결국 뮤지의 별명은 묘지로 굳어졌다고 한다.[33] 이때 김부선이 "뭔 약?"이라고 말하면서 되묻자 김흥국은 "비타민ㅋ"라고 대답했다.[34] 당시 모든 연예인 판정단, MC 김성주, 복면가수 양궁소녀, 일반인 판정단까지 모든 사람들이 그야말로 빵 터졌다.[35] 사실 신정환 자신도 김흥국 앞에서는 한 수 아래라는 멘트를 몇 번 날린 적이 있다.[36] 신정환은 깐족거림과 악동기믹을 바탕으로, 김흥국은 4차원 아저씨 기믹을 바탕으로 무맥락 멘트를 던진다.[37] 이는 당장 위에 게시된 라스를 봐도 안다. 저 당시의 김태원은 예능 경험이 아예 없던 순수한 음악인이었지만, 김흥국과 함께 출연, 엄청난 잠재력을 보여줬기에 김태원이 현재도 예능에서 보이는 이유다.[38] 과거 모 예능 프로그램에서 회식자리 상황을 두고 그 상황에서 취해야 할 태도를 출연자들이 연기하는 코너가 있었는데, 글라스 위에 젓가락을 올리고 스트레이트 잔을 세팅한 폭탄주를 발로 차며 당당하게 '난 축구선수니까' 라고 말했다. 이는 예능프로그램인 것을 감안한다 하더라고 충분히 그 사상을 엿볼 수 있다.[39] 근데 김흥국 본인은 해병대 선배인 야구 감독 김인식과 친분이 두텁고 2011년 때 사망한 레전드 투수 최동원 장례식 때도 조문 오기도 하였다.[40] 사실은 유소년 여자 국가대표선수라고 한다.[41] 이후 넥슨 이정헌 본부장 인터뷰에 의하면 사실 사람들이 알기를 원했다고 한다.[42] 다만 김흥국 정도 되는 셀럽이 돈 걱정 때문에 서울에 묶여야할 이유는 없을테니 그냥 취향(?)이라고 보면 된다. 실제로 강남에 건물까지 소유할 정도의 재력가 중에서도 기호에 따라 경기도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꽤 많다.[43] 라디오스타 MC인 윤종신이 호랑나비라는 노래에 대해 '당시로선 상당히 진보적인 스타일의 노래'라고 논평하자, 그에 대한 김흥국의 대답이다.[44] JTBC 썰전에서, 강용석 전 의원의 증언에 따르면, 김흥국 스스로는 정몽준과 친분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로, '난 정몽준 측근 중 유일하게 정몽준에게 '''부탁'''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참고로 강용석은 정몽준, 김흥국 두 사람 모두와 친분이 있다.[45] 정몽준은 한나라당 주류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데 취약할 수밖에 없다.[46] 2002년 12월 노무현 지지 철회는 정몽준의 정치적 경력을 사실상 끝장내버렸다고 해야 할 정몽준 정치인생 최대의 패착이었다. 그대로 하루만 더 가만히 있었으면 자연스럽게 노무현 정권에서 사실상 2인자의 입지를 차지하면서 차기, 또는 차차기 대선주자 중에서도 명확한 두각을 드러낼 수 있었을 텐데, 지지 철회로 그 모든 것을 날려버린것. 게다가 후보단일화-지지한다더니 선거 하루전에 뒤통수를 쳤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까지 얻고 만 것이다. 따라서, 일반적인 정치인이라면 설령 정말 노무현 지지철회 결정에 영향을 끼쳤다고 하더라도 그걸 대놓고 이야기 할 리가 없다. 대체 왜 자기가 '엄청난 실수를 저질러서 자기 계파의 보스의 정치경력을 망가트렸다'는걸 숨기진 못할지언정 자랑까지 하겠는가? 다만 정치인이 아닌 연예인인 김흥국은 마침 예능프로그램에도 자주 출연하는 김에 "아 그거 내가 했어요. ㅋㅋㅋ" 라고 재미있는 이야기거리로 삼을 수 있는 것.[47] 사실 김부선은 진보신당 초기에 홍보대사로 활동한 적도 있었다. 김부선과 절대로 뗄 수 없는 존재, 대마초 때문에라도 김부선은 진보쪽 정당들과 인연이 깊을 수밖에 없다. 대마초 합법화의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는 곳은 진보쪽이지 보수가 아니기 때문. 하지만 2017년 대통령 선거를 즈음해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지지선언을 하면서, 이 사람 정치성향이 뭔가에 대한 의문이 다시 재점화 되었다.[48] 과거 MBC의 일요일 예능 프로그램 '브레인 서바이버'에서 나이 어린 출연자에게 내가 주인공으로 나온 반달가면과 앗싸 호랑나비를 본 적 있냐는 멘트를 날린 적이 있다. 본인이 80년대 특촬물의 주연이었던 점을 방송에서 직접 어필했다. 참고로 저 질문을 들은 출연자는 모른다고 대답. 작품이 나온 시간대를 따지면 70년대 출생이 아니고선 쉽게 알 만한 작품이 아니기에(...).[49] 당시에는 지금처럼 전국 관객의 수를 측정할 수 없어서 서울 관객의 수가 곧 흥행 척도였다.[50] 어찌 보면 한국에 있은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한국어를 못 알아듣는 이유도 있다.[51] 에피소드로 따지면 14화다. 주인공 가족이 사기를 당해서 노숙하는 내용.[52] 그리고 그가 사는 김포시에는 김포시 조기축구회 명의 로 가수협회장 당선을 축하 현수막이 내걸렸다.[53] 불교 신자인 가수들의 단체.[54] 인터뷰 기사가 대부분 불교계열 언론인 것은, 김흥국이 그저 불자이기 때문이다. 물론 흥국사와는 무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