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문호
1. 개요
范文虎
(? ~ 1302)
남송, 원나라의 인물. 가사도의 사위. 상패장군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2. 생애
1260년 3월에는 조서를 통해 환위관으로 삼아 좌무대부로 옮겼으며, 손호신, 장세걸과 함께 금과 비단을 하사받았다. 6월에는 좌령군위대장군에 임명되면서 주관 시위보군사 겸 마군사에 임명되었다. 8월에는 백록기의 공으로 행요군방어사로 옮겼고 1269년 12월에는 전전부도독지휘사에 임명되었다.
1270년 9월에 병선 2천 척을 양양에 지원하러 갔다가 아쥬, 카다이, 유정이 관자탈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천여 명을 죽이고 30척을 얻자 물러갔다. 10월에는 전사를 총괄해 양, 회 지역에 군사를 파견해 합류시켰고 방어에 대비해 150만 전을 하사받았다. 1271년 4월에는 아쥬 휘하의 만호 알라한에게 여울목에서 격파되었고 6월에는 소유의, 하송 등과 함께 배 10만 척을 이끌고 양양을 지원했지만 아쥬에게 격파되어 배 100여 척을 빼앗기고 패주했다.
1273년 6월에는 급사중 진의중이 양을 구원하지 못했다고 해서 벌을 줄 것을 말하자 벼슬이 한 등급 낮추면서 지안경부를 맡았다. 1275년 정월에는 사람을 보내 강주에 많은 사람을 술안주로 대접했고 죄를 용서받았으며, 2월에 원나라 군사가 안경으로 오자 항복해 원나라로부터 양절대도독에 임명되었다. 6월에 안풍, 수주, 초신, 오하로 갔다.
1276년 정월에는 바얀의 지시로 알라한, 동문병과 함께 전당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지키고 5천 명을 이끌고 진의중을 추격했지만 절강을 건너지 못하고 돌아왔으며, 망구다이와 함께 범문호를 양절선위사를 그만두게 하고 행양절대도독부사를 하게 했다. 1278년 2월에는 중서좌승에 임명되어 정사에 참여했고 1279년 8월에 일본에 사절을 파견해 일본의 복종 여부를 확인하고 출병할 것을 이야기했으며, 주복 등을 일본에 파견하고 해적 하문달을 항복시켜 은 3천을 바치자 쿠빌라이 칸이 범문호의 부하 21명에게 은과 물품을 하사했다.
9월에 수령 삽십 명을 천거했고 1281년 6월에는 일본행성우승상으로 알라한, 이정과 함께 강남군으로 출병했다가 태풍으로 큰 피해를 입었으며, 범문호는 철수를 주장해 원나라의 군사는 일본에서 철수했다. 1289년에는 장주의 도적 진궤찰이 항복하자 죽이지 말 것을 이야기해 그 말을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