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라 드레이크
1. 개요
〈베라 드레이크>는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1950년대의 런던을 배경으로 불가피하게 불법 낙태시술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하층계급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여성들의 낙태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영화이다. 이 영화는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한국에서는 정식 개봉하지 않았다. 소문으로는 상당히 수입비가 비쌌으며, 스폰지에서 수입을 검토했으나 여러 이유로 무산되었다고.
2. 시놉시스
베라 드레이크는 런던의 한 가난한 노동자 가족의 주부다. 그녀에게는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하고 있는 성실한 남편 조지, 재단사로 일하고 있는 쾌활한 아들 시드, 전구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수줍음 많은 딸 에델이 있다. 집안일, 생계 보조를 위해 해야 하는 부잣집 청소 일, 따로 살고 있는 늙고 병든 노모를 돌보는 일 등, 그녀의 하루하루는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간다. 그녀는 짜증 한번 내지 않고 콧노래를 부르며 이 모든 일들을 즐겁고 능숙하게 해나간다. 인정 많은 그녀는 바쁜 와중에도 이웃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 것을 보면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나서서 도와주려 애를 쓴다.
어느 날 그녀는 이웃에 홀로 살고 있는 한 젊은 노동자 레그를 초대해 저녁을 대접한다. 이 초대에는 혼기가 찼음에도 불구하고 워낙 수줍음이 많아 남자친구를 사귀지 못하고 있는 딸 에델과 성실해 보이는 레그를 자연스럽게 맺어주려는 베라의 속 깊은 의도가 있었다. 드레이크 부부의 바람대로 에델과 레그는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고, 레그는 에델에게 청혼을 한다. 이 소식을 들은 드레이크 부부는 매우 기뻐하며 조지의 동생 부부까지 집으로 초대해서 약혼 파티를 한다.
그러나 약혼 파티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즈음, 갑자기 형사들이 들이닥쳐 베라를 찾는다. 베라는 지난 28년 동안 원치 않는 임신으로 곤경에 처한 여성들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민간요법으로 낙태를 해주는 일을 해왔다. 그 시술을 받은 한 여성이 심한 부작용으로 병원에 입원했고, 그로 인해 베라의 불법 낙태시술 행위를 알게 된 병원 쪽에서 경찰에 신고를 했던 것이다.
베라는 돈도 받지 않고 오직 곤경에 처한 여성들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서 해온 자신의 행위로 인해 한 여성이 죽을 뻔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고, 그녀가 그런 일을 해왔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던 나머지 가족들도 충격에 휩싸인다. 결국 베라는 그 일로 재판을 받고 유죄 선고를 받아 교도소에 수감된다.
3. 작품 해설
3.1. 제작배경
마이크 리 감독은 언제나 당대의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신의 영화에 담아왔다. 그런 점에서, 1950년을 시간적 배경으로 하는 일종의 시대물인 〈베라 드레이크〉는 매우 예외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의사인 아버지와 조산사인 어머니, 두 분을 기억하며”라는, 자신의 부모에게 바치는 헌사가 등장한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베라 드레이크〉에는 감독 자신의 유년 시절의 기억이 투영되어 있다.
하지만 감독은 이 영화가 실제 인물에 대한 영화가 아니며 자신의 부모와 직접 관련되어 있는 것도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감독은 자신이 유년 시절을 보냈던 샐포드의 노동자 거주지역에 대해, 그곳이 서로 다른 계층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두 세계’ 사이에서 늘 긴장과 충돌이 있었던 곳이라고 회고하면서, 그것이 자신이 작품 속에서 늘 ‘두 세계의 관계’에 대해서 묘사하고 탐구하게 된 배경이라고 말하고 있다.
〈베라 드레이크〉는 서로 다른 계층적 배경을 갖고 있는 여성들(베라로부터 불법 낙태시술을 받는 하층민 여성들과 베라가 청소부로 일하고 있는 부잣집 딸)의 대조적인 낙태 과정을 묘사하고 있는데, 이러한 설정에는 감독의 유년 시절 체험과 그로부터 얻게 된 문제의식이 반영되어 있다.
3.2. 영화의 연출 스타일 및 명장면
시대물임에도 불구하고, 〈베라 드레이크〉는 마이크 리 감독의 다른 작품들과 비슷한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졌다. 마이크 리 감독은 1950년대에 불법 낙태시술을 하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라는 기본 설정만을 가지고 완성된 대본 없이 작업을 시작한 뒤, 각각의 배우들에게 상황에 따라 꼭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만을 제공했을 뿐, 전체 이야기가 어떤 것이며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았다.
6개월 동안의 사전 리허설 과정에서도, 베라 역을 맡은 배우 이멜다 스턴튼을 제외한 다른 배우들은 이 영화가 불법 낙태시술을 하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심지어, 이멜다 스턴튼조차 결국 베라가 경찰에 의해 체포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이 영화의 명장면 중의 하나인 결말 부분의 파티 장면은 이러한 마이크 리 감독 특유의 연출 방식을 통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가족들이 모두 모여 에델과 레그의 약혼 파티를 하고 있는데, 경찰이 찾아와 베라를 찾자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게 된다. 이 순간 영화 속 인물들이 보여주는 모든 행동과 대사에는, 그 역을 맡은 배우들이 그 순간 실제로 느끼게 된 당황과 혼란의 감정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오로지 곤경에 처한 젊은 여성들을 도와주려는 선의에서 한 일이지만 낙태시술이 불법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던 베라만이 경찰들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직감하고 크게 당황하게 된다. 나머지 가족들과 분리된 채 다른 방에서 홀로 경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베라는 감당하기 힘든 복잡한 심경에 빠지게 된다.
베라는 여전히 그저 도와주고자 한 일이라는 자신의 정당성을 믿고 있지만, 그 시술로 인해 한 여성이 죽을 뻔했으며 그 일로 인해 자신이 체포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 이전까지 보여주었던 쾌활하고 활기찬 중년 여성의 모습을 한 순간에 잃어버린다. 더욱이 베라는 자신이 젊은 시절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것이 베라가 곤경에 처한 젊은 여성들에게 낙태시술을 해주게 된 이유다)을 가족들에게 숨겨왔었다. 그녀의 표정 속에는 이번 일 때문에 그런 자신의 비밀이 가족들에게 알려지게 될 것에 대한 두려움과 죄의식이 담겨 있다. 그 순간 영화 속 베라라는 인물이 느꼈을 복잡한 심경을 순간순간 변하는 표정 연기로 표현해내는 배우 이멜다 스턴튼의 연기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다.
미국의 저명한 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이 장면이야말로 마이크 리 감독의 특유의 연출 방식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순간이라고 평가하면서, 베라가 다른 방에서 경찰과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마치 자신이 나머지 식구들과 함께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는 심정을 느꼈다”는 소감을 밝힌 바 있다.
3.3. 영화의 주제
〈베라 드레이크〉는 낙태시술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단순히 낙태가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요구하는 영화는 아니다. 마이크 리의 다른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가 드러내고자 하는 주제는 다층적이고 복합적이다. 앞서 말했듯이, 〈베라 드레이크〉는 서로 다른 계층적 배경을 갖고 있는 여성들이 낙태를 하는 과정을 대조해서 묘사하고 있다. 로저 에버트의 말처럼, “100파운드를 지불할 수 있었던 사람은 1950년 영국에서 합법적으로 낙태를 할 수 있었고, 2파운드밖에 없었던 사람들은 베라 드레이크, 혹은 베라만큼 선량하지 않은 여인들의 도움에 의존해야 했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베라 드레이크〉가 단지 낙태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계층적 차이만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가부장적 가족 제도하에서 젊은 여성의 혼전 임신은, 베라 자신을 포함한 하층계급 여성이든 베라가 청소부로 일하는 부잣집의 딸이든, 비록 해결 방식은 다르지만 어쨌든 남모르게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된다. 혼전 임신으로 아이를 낳을 경우 정상적인 가족을 이루기 힘들 뿐만 아니라, 평생 부정한 여인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기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단지 부유층 집안의 딸들에게는 보다 안전한 해결 방법이 허용되는 반면, 가난한 집안의 딸들은 불법 낙태시술이라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달리 해결 방법이 없을 뿐이다. 이렇듯 하층계급의 여성들의 낙태문제에는 계층문제와 가부장적 가족제도가 여성들에게 요구하는 차별적인 도덕적 잣대라는 문제가 이중삼중으로 연관되어 있다.
〈베라 드레이크〉는 자신이 젊은 시절 불법으로 낙태시술을 받은 경험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같은 곤경에 처한 여성들을 돕고자 불법 낙태시술을 해오다 법의 심판을 받게 되는 베라라는 여성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불법 낙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다.
4. 주요 등장인물
4.1. 베라(이멜다 스턴튼)
런던의 노동자 거주 지역에 살고 있는 한 노동자 가족의 주부. 쾌활하고 인정 많은 성격의 그녀는, 부잣집의 청소 일을 하면서도 자신의 가족을 헌신적으로 돌볼 뿐만 아니라, 가난한 이웃들이 겪는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돕는다. 하지만 단지 도와주려는 마음에서 행한 불법 낙태시술 때문에 경찰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결국 교도소에 수감된다.
4.2. 조지(리처드 그레이엄)
동생이 운영하는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하고 있는 베라의 남편. 성실한 가장이자 베라를 ‘다이아몬드’처럼 소중한 아내라고 생각하고 있는 그는 베라의 비밀을 알고 나서도 끝까지 그녀의 편을 들어준다.
4.3. 시드(대니얼 메이스)
제단사로 일하고 있는 베라의 아들. 쾌활하고 활달한 성격의 그는 친구들과 함께 자유분방하게 무도장에서 만난 여성들과 어울린다. 그는 엄마 베라의 비밀을 알게 되었을 때, 가장 충격을 받고 그녀에 대한 배신감과 비난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인물이다.
4.4. 에델(알렉스 켈리)
전구 공장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베라의 딸. 수줍은 성격의 그녀는 혼기가 다 되도록 연해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다. 엄마 베라의 속 깊은 배려로 이웃에 사는 젊은 노동자 레그를 만나 사랑하게 되고 그와 약혼식을 올린다.
4.5. 레그(에디 마산)
베라 가족의 이웃에 사는 젊은 노동자. 고향을 떠나 런던에서 홀로 살고 있는 그는, 베라의 도움으로 베라의 딸 에델을 만나 그녀와 약혼식을 올리게 된다. 그는 약혼 파티에 들이닥친 경찰들로 인해 밝혀진 베라의 비밀 때문에 충격과 혼란에 빠져 있는 가족들에게, 어려움에 처했을 때 힘이 되어주는 것이 진정한 가족이라며 베라 편을 들어주는 인물이다.
5. 명대사
우린 그런 식으로 말 안 해요. 그저 곤경에 처한 여자들을 도와준 것뿐이에요.
베라
6. 관련정보
6.1. 수상
• 2004년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여우주연상(이멜다 스턴튼)
• 2004년 영국 인디펜던트 필름 어워드 최우수 영국 인디펜던트 필름상, 감독상, 남우주연상(필립 데이비스), 여우주연상(이멜다 스턴튼), 조연상(에디 마산), 제작공헌상
• 2004년 유로피언 필름어워드 여우주연상(이멜다 스턴튼)
• 2005년 영국 아카데미상 데이비드 린상(감독상), 여우주연상(이멜다 스턴톤), 의상상(재클린 듀런)
• 2005년 런던비평가협회상 여우주연상(이멜다 스턴튼), 영국영화상, 남우조연상(필립 데이비스), 감독상, 각본상(마이크 리)
7. 연관영화
7.1. 〈비밀과 거짓말〉
(1996, 마이크 리) : 〈베라 드레이크〉와 마찬가지로 마이크 리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낙태를 하지 않고 아이를 낳아 입양을 보내거나 홀로 아이를 키워온 하층계급 여성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베라 드레이크〉와 대조를 이루면서도 한쌍 같은 관계의 영화다. 마이크 리 감독의 여성주의적 태도와 시각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7.2. 〈4개월, 3주··· 그리고 2일〉
(2007, 크리스티안 문주) :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 독재정권시절, 불법 임신중절을 시도하는 여대생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2007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