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찰 부항
1. 실존인물
건륭제의 첫 황후인 효현순황후의 남동생이자 건륭제의 처남. 부찰 부항은 부찰 이영보의 자식 중 막내인 9남으로 태어났다. 부항은 건륭 5년부터 시위(처음 蓝翎侍卫에서 头等侍卫로 승진)로 일했고, 건륭 7년에 어전시위에서 내무부 총관, 원명원 사무 관리로 승진했으며, 다음해에 내무부 총관에서 호부 우시랑으로 옮겼고, 건륭 11년에는 군기대신, 호부 우시랑(곧 좌시랑으로 바뀜), 내대신에, 그 다음해에는 호부상서, 銮仪卫(금의위 같은 특별사법기구) 掌卫大臣, 의정대신, 殿试读卷官(최종 과거시험 담당자 중 1명?), 会典馆(법/경전 관련 모임기구) 副总裁와 正总裁가 되었으며, 또 다음해에 누이였던 효현순황후가 사망하면서 태자태보에 올랐고, 이후 대소금천과의 전쟁에 파견되면서 一等忠勇公의 작위를 받았다.
부찰 부항은 만주 귀족인 예허나라씨와 결혼했다. 게다가 부인 나라씨는 당시 청 제일의 미녀로 유명했고 집안 또한 강희제 때 권신인 예허나라 밍주의 증손녀로 상당한 명문가였다.[1][2] 부항과 그녀는 매우 금슬이 좋았고, 시첩도 두지 않고 4남 2녀를 두면서 행복하게 살았다. 부항은 건륭 34년 미얀마와의 전쟁에서 패배했고 악성 말라리아에 감염되어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죽었다. 건륭제는 부항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서 친히 그의 저택으로 갔다. 이후 가경원년에는 3남 복강안이 사망하면서 군왕으로 증작[3] 하고, 태묘에 배향되었다.
여담으로 이후 실제 역사에서 부항의 차녀는 숙가황귀비가 낳은 건륭제의 11황자 和碩成哲親王 永瑆<조선인 출신 김신다리의 후손인 淑嘉皇貴妃 金佳氏의 소생>의 적복진이 되는데, 부항의 딸인 적복진 부찰씨는 만군기 상3기이자 효현순황후의 조카로 영성은 건륭제 슬하의 황자들 가운데에서 정실부인의 출신성분이 가장 좋은 황자였다. 자식들 대부분이 황실과 혼인했다. 그 중 아들 복강안은 다른 형제들과 달리 공주와 혼인하지 않았지만 건륭제의 신임을 가장 많이 받았고 죽어서 군왕이 된다. 다른 자녀들도 모두 총애를 받았는데, 장남은 福靈安[4] 은 駙馬(건륭의 사촌 愉郡王 弘慶의 사위)-정백기만주부도통 , 둘째 福隆安[5] 은 駙馬(건륭의 4女 화석화가공주의 남편)-一等忠勇公-태자태보-병부상서-군기대신, 막내 福長安[6][7] 은 一等誠靖侯-호부상서-군기대신, 자매 중 다른 1명은 鐵帽子王인 睿親王 도르곤의 후손 和碩睿恭親王 淳穎의 적복진이 되었다.
2. 연희공략
2.1. 소개
연희공략의 등장인물. 실제 역사대로 황후 부찰 용음의 남동생으로 나온다. 처음 등장했을 때는 자금성의 시위(侍衛). 명문가 출신에 문무를 겸비한 인재로 황제의 신임을 받고 있으며 외모 또한 준수해 궁녀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2.2. 행적
언니인 위영녕의 복수를 위해 입궁한 위영락이 복수를 위해 눈에 불을 키던 중, 언니의 유품에서 부항의 물건을 발견한다. 자연스레 영락의 의심을 받고, 그녀 때문에 칼에 찔리는 부상까지 입지만 영락을 용서하고 진범을 찾아내면서 서로 사랑에 빠진다.
위영락이 죽을 위기에 처하자 건륭제에게 희탑랍 이청과 혼인을 하겠다고 함으로써 위영락을 살리고 이청과 혼인을 한다. 막나가는 부인 이청 때문에 아끼던 시녀 청련도 잃고, 위영락과도 끝내 이어지지 못 하는 상당히 고통받는 캐릭터. 그런 부항에게도 죽음을 무릎쓰고 영락과 도망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부항 본인이 누이인 황후와 현실을 선택하여 건륭제의 명으로 이청과 결혼하게 되었고, 이 때문에 위영락의 마음이 완전히 돌아선다.
그래도 워낙 능력이 좋은 인물이기에 나가는 전쟁터마다 승리를 거둬 빠른 속도로 승진을 한다. 건륭제가 타는 배에 비밀 통로를 만들어 건륭제의 목숨을 살렸고 미얀마 독충에 중독된 위영락을 위해 해독제까지 만들어 살린다. 그러나 해독제의 재료를 찾는 와중에 독에 중독되고, 치료를 받지 않은 채 전쟁터에 나가 싸운다.이후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지만 그 독 때문에 결국 사망한다. 친구인 색륜 해란찰이 위영락에게 전한 부항의 유언은 '''"영락... 난 한 평생 너를 지켰어, 다음 생엔 네가 나를 지켜줄래?"''' 였다.
연희공략: 금지옥엽에서는 이미 죽었는지라 아들 복강안과 이복남동생 부찰 부겸에 의해서만 언급된다. 여기서 아들 복강안은 부항의 친아들이 아니라 희탑랍 이청이 시동생인 부겸과 불륜을 저질러 태어난 부겸의 아들로 나온다. 자신이 나라를 지키다 전사한 영웅인 부항의 자식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던 복강안은 이 사실에 충격을 받고, 결구 아무 죄없는 소화공주를 향한 복수를 그만두고 친부인 부찰 부겸에게 절연을 고한다.
3. 기타
자(字)는 춘화(春和)인데 의외로 여성적이다. 그런데 실존 인물의 자도 마찬가지로 춘화다.
부항은 실제 역사에서처럼 어린 나이에 굉장히 빠른 속도로 승진했다. 건륭제의 개인적인 총애와 가문의 후광 외에도 본인 스스로의 능력도 좋았기에 그렇다.
드라마에서 누나인 용음과 나이 차에 대해서 자세하게 묘사하지는 않았지만, 실제 역사에서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10살이다.
드라마 설정에서 부항의 아버지인 부찰 이영보는 살아있는 설정이었지만 실제 역사에서 부찰 이영보는 부항이 갓난아기였을 때 이미 사망한 상태다.
[1] 건륭제의 후궁인 서비 나라씨의 동복 자매로, 서비의 둘째 언니가 부항의 부인이다.[2] 부항의 가문인 부찰씨도 명문가로 高祖 哈什屯은 의정대신, 曾祖 米思翰는 청 초기 중신으로 내무총관과 예부시랑을, 강희제 친정 직후에 호부상서와 의정대신을 역임하였으며, 伯父 馬齊는 강희8년 공부원외랑을 초임으로 산서순무, 좌도어사, 병부상서, 호부상서, 무영전대학사, 보화전대학사, 태자태부 등을 역임한 ''三朝元老''였다.[3] 아들을 군왕으로 추증했는데, 아비를 그보다 낮게 하는 법도 없고, 유교에서 원래가 아들의 공으로 아비를 올리는 것이 기본적인 예의였다.[4] 건륭12년 多羅額駙이 되었으나 준가르 토벌에 참전하면서 건륭26년까지 혼례가 연기, 건륭21년 三等侍衛, 건륭24년 二等侍衛에서 頭等侍衛로 승진, 건륭26년 3월 多羅愉恭郡王 弘慶(강희제의 황15자 多羅愉恪郡王 允禑의 아들)의 적장녀와 혼례, 건륭27년에 雲騎尉의 작위를 얻었으나, 건륭31년에 사망[5] 건륭23년에 和硕额驸(화석공주의 駙馬), 건륭25년 3월에 和硕和嘉公主와 혼례(2년전 '액부'는 부마로 삼을 예정이라는 공지), 건륭33년 병부상서(곧 공부상서로 바뀜) 겸 군기대신, 건륭35년 아버지 부항 사망시에 큰형 복령안이 이미 사망한 상태라 一等忠勇公의 작위을 계승, 건륭38년 태자태보에 올랐으며, 건륭41년 공부상서에서 병부상서로 옮겼고, 건륭49년에 사망[6] 복강안과 동일한 외형이기에 건륭제가 어릴때부터 궁중에서 키웠으며, 후에 藍翎侍衛이 되었다. 건륭44년 공부우시랑이면서 正黃旗漢軍副都統가 되었고, 건륭45년 군기처로 파견 학습를 시작하면서 상으로 자금성에서 기마를 허가 받았으며, 건륭48년 호부좌시랑, 건륭49년 5월 鑾儀衛 掌衛事大臣이 되고, 6월 내대신에 올랐으며, 7월 군기장경으로 감숙 회족의 반란 진압에 나갔다. 건륭51년 윤7월 호부상서에, 12월 正白旗漢軍副都統에, 건륭53년 3월 鑲紅旗蒙古都統에서 正紅旗滿洲都統로 옮겼으며, 건륭55년 太子少保, 건륭59년 鑲白旗滿洲都統으로 승승장구하였으나, 가경제 즉위 이후에 뉴호록 화신의 당으로 분류되면서 끈떨어진 신세가 된다. 가경3년 一等侯爵에 봉하여지고(이때는 건륭제가 상황제로 존재), 가경11년 圍場總管, 가경12년 熱河副都統로 고치고, 가경13년 古北口提督를 대리하며, 가경14년 圍場總管 겸 馬蘭鎮總兵 및 總管內務府大臣으로 고치고, 가경18년 馬蘭鎮總兵 겸 古北口提督, 가경20년 正黃旗漢軍副都統(1년전 正藍旗滿州副都統) 및 健銳營總統大臣, 가경22년 사망[7] 복장안은 위에 3명의 형들이 정실 那拉氏에 소생인 것과는 달리 첩실 이씨의 소생[8] 첩 소생의 이복동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