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영락
1. 소개
연희공략의 등장인물, ''''위영락''''을 소개하는 문서.
2. 상세
건륭제의 비빈이자, 가경제의 생모인 '효의순황후 위가씨'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이다. 후궁여의전의 위연완과 모티브가 같으나, 악역으로 나오는 여의전과 다르게 여기서는 주인공이다.
수방궁녀로 시작하여 지략과 꾀로 황후의 눈에 들어 황후 휘하의 궁녀가 된 이후 우여곡절을 이기고 황귀비 자리에 오른다. 나중에 그녀가 낳은 아들이 황제가 되니 실로 최후의 승자. 그러나 아들이 황제가 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건륭제보다 먼저 사망하며, 훗날 황후로 추존된다.
3. 행적
3.1. 수방궁녀 시절
궁녀였던 언니 '위영녕'[4] 을 죽인 범인을 잡으러 수방궁녀로 들어가고, 뛰어난 자수 실력으로 수방의 궁녀들의 시기를 한 몸에 받게 된다. 수방궁녀 동료 길상이 실수투성이인 바람에, 영락은 길상을 자주 도와주며 이 둘은 친해지게 된다. 이를 시기하던 금수를 비롯한 수방궁녀들은 둘을 끊임없이 괴롭힌다.[5]
어느 날, 장상궁이 영롱과 영락을 데리고 유귀인 처소에 옷치수를 재러가던 중 유귀인에게 비파새잎의 독을 먹이려던 고귀비의 음모를 영락이 알아내고 이를 유귀인에게 고한다. 이에 장상궁의 손에 이끌려 이빈의 처소로 가던 영락은 이빈이 자살한 것을 보고 충격을 먹는다.
유귀인 사건의 진상을 알아냈지만 억울하게 혼난 영락은 분풀이로 나무에게 화풀이를 하다가 이 모습을 지나가던 황제가 보게 된다. 황제는 신성한 나무인 영백을 걷어찬 영락에게 태형 20대를 선고했으나 영락은 꾀[6] 를 써서 이를 빠져나간다.
각 궁에 옷을 보내러 가다, 한 시위[7] 의 손에 이끌려서 영녕의 일을 캐묻지 말라는 경고를 듣게 되는데, 이를 영롱이 보고 방상궁에게 고자질한다. 방상궁이 오자 시위는 도망가고, 영락은 방상궁의 머리에 소쿠리를 씌워서 몽둥이질을 해댔다. 이로 인해 방상궁은 허리를 삐끗하다 노리개를 떨어뜨리고, 영락은 이 노리개가 언니의 솜씨라는 걸 알아챈다.
영락을 시기하는 영롱은 영락이 유귀인 비파 중독 일을 알고 있다는 걸 고귀비에게 흘리며, 이에 저수궁으로 끌려오지만 일부러 어리버리한 행동을 보여 위기를 모면한다. 그 후에도 시위와 사통 누명을 벗고, 이를 모함한 방상궁과 금수를 쫓아버리는 중 방상궁에게 아만이 추잡한 짓을 하여 쫓겨났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황후의 생일을 맞아 봉포를 짓게 되자 실력이 가장 뛰어난 영락이 총책을 맡게 된다. 귀한 공작 털실을 받고 일을 하던 중, 수방에 화재가 나서 공작 털실을 도둑맞고 작업하던 봉포가 찢겨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영락은 이를 만회하고자 질 낮은 털가죽으로 지은 봉포를 만들어 진상하고, 이때 기지를 발휘하여 잔꾀와 말솜씨[8] 로 인해 황후 부찰 용음의 눈에 들어 장춘궁 궁녀로 승진하게 된다.
장춘궁으로 가기 전 수방궁녀들 중 유일하게 자기 편이었던 길상이 억울하게 죽는 일이 발생하자, 영락은 범인이 영롱임을 짐작하고 일부러 함정을 파놓아 범인을 잡고 장춘궁으로 간다.
3.2. 장춘궁 궁녀시절
언니를 죽게 만든 범인으로 '''부찰 부항'''을 의심한 영락은 장춘궁으로 가기로 결심하고, 장춘궁 궁녀가 된다. 그러나 장춘궁에 가서도 그녀의 궁녀 생활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그녀가 부찰 부항에게 실마리를 얻기 위해 접근하는 것을 본 명옥이 초반에 그녀를 엄청 못마땅해했으며, 장춘궁의 궁녀들이 하나같이 초반에 그녀를 따돌렸다.[9] 또한 황후 생일에 그녀를 눈여겨봤던 고귀비와 가빈이 영락을 괴롭혀 죽을 뻔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황후가 앞서서 영락을 감쌌기에 영락은 무사할 수 있었다.
유귀인의 출산을 도우려는 황후의 명으로 영락은 자객을 보내 유귀인을 죽이려는 고귀비와 가빈의 음모를 막는다. 이 때 부찰 부항에게 접근하여 아만이 자기 언니라는 것을 알려 부항이 언니의 죽음과 연관이 있을거라는 단서를 얻으려 하지만 실패한다. 이후에도 끊임없이 부항에게 접근하여 언니의 죽음에 대해 묻지만 번번히 단서는 찾지 못하고, 오히려 부항이 따뜻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부항에 대한 의심을 거두게 된다.
그런데 나무를 때린 사건과 더불어 툭하면 황제에게 말대답을 하여 초반에 황제에게 단단히 찍혔다.[10] 이후로 황제는 틈만 나면 영락을 황후에게서 떼어 내려고 하며, 황후는 그럴 때마다 영락을 감싼다.
한편 영락이 벌인 귀신 소동[11] 으로 언니의 죽음이 화친왕 때문이며, 유태비도 일조했음을 알게 된다. 영락은 이에 유태비의 죄를 하늘에 고하고 죄가 있으면 유태비에게 벌을 내려달라고 빌자, 유태비가 돌연 벼락을 맞아 사망한다. 이 사건으로 황제는 크게 노하여 이번에야말로 위영락을 끝장내겠노라고 하면서 장춘궁으로 쳐들어가나, 그녀를 보호하려는 황후가 이미 손을 써서 그녀를 신자고로 보냈다.
3.3. 신자고 궁녀 ~ 원명원 궁녀 시절
그렇게 영락은 신자고에 가서 비천하고 고된 노동을 하는 신분의 하급 궁녀가 되고, 황제는 자신 앞에서 그녀가 울면서 부탁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신자고에서 내보내지 말라고 명한다. 각 궁의 변기통을 깨끗이 씻는 일부터 시작한 영락은 수방 시절에 자신을 괴롭히던 금수와 재회하게 되고, 수방 시절처럼 신자고에서도 괴롭힘 당하게 된다.[12]
신자고에서 변기통을 운반하는 업무를 하는 원춘망과 만나고, 그를 희롱하는 장관사를 처리한 일을 계기로 그와 의남매를 맺는다. 이후에도 그녀가 비빈이 되기 전까지 원춘망은 그녀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는 친오빠와 같이 대한다.
한편, 그녀가 장춘궁을 떠난 기회를 그냥 놓칠 리가 없었던 고귀비는 박쥐 사건을 일으켜 임신중이었던 부찰 용음 황후를 전각에서 밀어 혼수상태로 만든다. 부찰 황후의 유산과 혼수상태임을 명옥에게 전해들은 영락은 훗날에 복수를 했을 때 피해가 가지 않게 하기 위해 일부러 장춘궁 궁녀들과 부찰 부항에게 모질게 대한다.
고귀비와 영락이 사이가 안 좋음을 이용해 금수는 우유배달을 영락에게 맡겨버리며, 영락은 저수궁으로 우유 배달을 하던 도중 고귀비와 마주쳐 갖은 수모를 당하게 된다. 고귀비에게 우유세례를 맞고, 손이 잘릴 위기에 처한 순간, 황제가 나타나 영락은 위기를 모면한다. 마침 비가 오고, 영락이 구석에서 울고 있을 때 황제는 쓰고 있던 우산을 던지며 보이지 않는 곳으로 꺼져버리라고 한다. 비는 도중에 그치지만 영락은 신자고로 돌아가던 중 쓰러지고, 이를 한비가 치료하도록 명한다.
원춘망이 영락을 친동생 이상으로 챙겨주고 신경써주자, 원춘망을 짝사랑하는 금수는 더욱 그녀를 없애버릴 궁리를 하여 영락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그러나 황후의 혼수상태의 배후가 고귀비임을 알게 된 영락은 복수를 위한 물밑작업에 들어간다. 명옥이 당직이 서는 날 밤마다 몰래 장춘궁에 들어가 황후를 간병하면서 고귀비가 태후의 수연을 위해 준비한 만자천홍을 이용해 고귀비에게 화상을 입힌다. 순비에게 매수당한 류상궁의 모함을 받지만 슬기롭게 잘 빠져나가려던 찰나, 황제에게 시위와 사통한 죄를 물어 신형사로 보내진다. 부항은 영락을 살리기 위해 맘에도 없는 이청과 결혼하겠다고 말하고, 영락은 신형사에서 풀려나지만 부항이 결혼에 동의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비통해한다.
다시 장춘궁으로 돌아가기 위해 황제가 내건 두 가지 조건 중 하나[13] 인 자금성의 첫눈이 오는 날 건청궁을 시작해 '소인의 죄 죽어 마땅합니다.'를 외치며 삼보일배를 하던 중 혼례식을 마치고 사은하러 가는 부항과 그 신부를 보게 된다. 이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영락은 이렇게 되뇌이며 부항과의 감정을 정리한다.
폭설 속에서 삼보일배를 하지만 네 시진을 못가 쓰러지고 이를 지켜본 황제가 양심전으로 안고 들어가면서 후궁이 될 위기를 겪지만 다시 말빨로 황제가 자신을 차게 만들고 장춘궁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아버지가 다쳐 집에 다녀온 사이 한귀비와 순비의 모략으로 7황자가 사망하고, 부찰 황후가 상심한 나머지 자살을 하자, 영락은 비통해하며 황제에게 원망섞인 말들을 늘어놓고, 자결 후 순장하라는 명을 받는다. 그러나 황후가 영락을 자유롭게 해달라는 내용만이 담긴 유서를 남겼고, 죽음을 면하고 황후의 3년상을 치루기 위해 원명원으로 떠난다.
3.4. 회궁 후 총애받는 후궁이 되다
부찰 용음의 자살 후에 원명원에서 3년상을 치루는 도중, 태후의 만수연을 맞아 황제와 비빈들이 원명원으로 향한다. 영락은 오랜만에 재회한 명옥에게 7황자의 죽음에 대한 진실과 순귀비의 모략에 자살하게 된 부찰 용음의 억울함을 듣게 된다. 이를 복수하기 위하여 지략을 써서 태후의 눈에 들어 귀인으로 입궁하고, 순귀비의 궁녀로 고생하던 명옥을 자신의 시녀로 두게 하여 구출한다.[14]
후궁이 된 영락은 시간과 공을 들여 황제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노력한다. 황제는 영락의 당돌함을 그리 탐탁치 않게 생각하여 처음에는 부찰 황후의 생전 거처에서 시침을 들라는 명[15] 을 하나, 겉옷 안에 상복을 입은[16] 영락을 보고 조금씩 그 오해가 풀리기 시작한다.
숙신의 계략으로 한적한 연희궁에 배정받고 입성하나 궁녀들 대부분이 장춘궁에서 함께 지냈던 사이였기 때문에 윗전 대우를 거의 못받고 황제 또한 찾지 않는다. 이에 영락은 태후의 거처인 수강궁에 뻔질나게 드나들어 황제의 눈에 자주 띄는 방법을 썼고, 그렇게 한달 정도가 되가던 중 갑자기 목이 아프다는 핑계로 수강궁에 발길을 끊자 이를 궁금해한 건륭은 결국 연희궁을 찾는다. 아프다는 영락을 보러 간 건륭의 눈에는 들어온 건 시녀인 호박에게 무시당하는 영락의 모습이었고, 건륭은 호박을 신자고에 보내는 형벌을 내려 다시는 시녀들에게 영락을 무시받지 못하게 해준다. 다음날에도 건륭은 수강궁을 찾지만, 영락은 여전히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오지 않는다. 이에 걱정이 된 건륭은 연희궁을 찾아 치자꽃이 핀 정원에서 첫날밤을 치르고, '''후궁이 된지 겨우 3개월 만에 빈이 되고, 봉호까지 받으면서''' 치열한 궁중암투 속으로 돌입하게 된다.
오랜 전투를 끝내고 부찰 부항이 전투에서 돌아오고, 영락이 귀인이 되어 있는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부항이 돌아오자 궁에 부항과 영락이 예전에 알고 지낸 사이고, 사통하였다는 뜬소문이 파다하게 난다. 이를 이용해 평소에 영락을 질투하던 여러 후궁들이 황제의 마음 속에 의심을 들게 하나, 오히려 영락은 이를 이용해 황제에게 해명하며[17] 다시 신임을 얻는다.
3.5. 선황후의 복수를 이루다
황제의 영락을 향한 총애가 계속될수록 순귀비의 견제 또한 집요해져 간다. 황제가 영락에게 승마를 가르쳐주던 날 영락의 말에 손을 써 영락을 다치게 하고, 결정적인 것은 유비의 아들인 5황자 영기에게 영락이 상극인 음식을 먹였다고 혐의를 덮어씌우려 한 것. 그러나 순귀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유비와의 일종의 협공으로 순귀비를 답응으로 강등시키고 냉궁으로 내쫓어버린다.
그러나 응징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고, 호박에게 부찰 용음이 자살하던 날의 증언을 듣고 친잠례식을 하러 온 이청을 장춘궁으로 불러내 모든 실상을 이청의 입에서 듣게 된다. 영락과 명옥은 분노에 몸을 떨며 이청에게 사약을 먹이고 복수를 완성한다. 뒤따라 들어온 황제와 숙신이 이 광경을 보지만 황제는 영락이 중병에 걸렸다는 핑계를 대며 감싸주고, 영락은 이것이 호박을 움직여 자신 앞으로 보낸 숙신의 계략임을 깨닫게 된다.
3.6. 총애를 잃고 원명원으로... 그리고 침벽의 등장
이청을 제거하고 설상가상으로 피임탕 복용, 용음의 복수에 자신을 이용했다는 것을 건륭이 알게 되어 건륭은 절연을 선언하고 발길을 끊는다. 영락은 이것 또한 숙신의 계책과 동시에 원춘망이 숙신의 첩자임을 깨닫고 그녀를 찾아가 쿨하게 패배를 인정한다. 총애가 땅에 떨어진 마당이므로 연희궁으로 돌아온 영락은 모든 궁녀와 태감들을 내보낸다. 그러나 명옥과 진주, 소전자만이 영락 곁에 남았고, 연희궁은 냉궁처럼 변해버린다.
그 후 숙신의 이간질로 건륭과 태후의 친모 소동이 일어나면서 영락은 태후를 따라 3년간 원명원에서 지내기로 한다. 그래도 그동안 쌓은 정은 어쩔 수 없었기에 건륭과는 서신을 주고받으며 지내지만 어느날부터 갑자기 서신이 끊긴다.[18] 영락 앞에 나타난 부항은 자금성에 엄청난 미인이 나타났으니 돌아가보라며 하고 태후의 설득에 다시 회궁하기로 결정한다.
자금성에 돌아간 후 순빈 뉴호록 침벽을 견제하는 황후 휘발나랍 숙신을 비롯한 모든 후궁들과 동맹을 맺는다. 그 와중에 순빈이 친한 척을 하게 되는데, 영락은 결국 후궁들의 계략에 순빈이 태후에게 죽을 위기에 처한 걸 도와준다. 그 계기로 황후의 후궁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순빈과 잘 지내기 시작한다. 그런데 명옥이 자살을 하는 사건이 발생을 하는데 순빈이 위영락에게 계략을 써 위영락이 순빈을 가위로 찌른 것처럼 꾸민 것. '''이 때문에 영락은 순빈을 친딸 화안공주의 환생이라 철썩같이 믿던 태후에 의해 연금당하였다.'''[19] 그때 순빈은 황후와 동맹을 맺고 후궁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그리고 부찰 부항을 자극하여 위영락과 함께 도망치게 한 뒤 현장에서 잡아 둘 다 처리하려 했으나 이를 미리 눈치챈 부찰 부항과 함께 순빈에게 역공을 가한다.
사실 순빈의 타겟은 처음부터 부찰 부항과 건륭제였다. 부찰 부항은 자신의 아이가 죽자 자살을 하려는 순빈을 그가 구해줬기 때문에 원한을 품었고, 건륭제는 원치 않는 결혼을 했기 때문에 골탕을 먹이려 한 것이었다. 순빈이 두 사람을 향한 복수를 위해 위영락을 이용한 것. 순빈의 사건이 해결되고 회임을 하면서 다시 건륭제의 총애를 받는다.[20] 그리고 황후에게 우리는 서로를 이길 수 없다며[21] 자금성의 황자와 공주들에게 손쓰지 않을 것을 조건으로 평화협정을 제의한다.
3.7. 10년 후
황후는 나날이 늙어가는 것에 신경 쓰여하고 10년 동안 위영락은 영귀비로 승급해 2남 2녀를 낳고 몸은 좀 약해졌지만 여전히 가장 사랑받는 후궁이다. 친아들처럼 돌보던 5황자는 황자들중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고 있었는데, 어느날 그는 총기 사고로 다리를 다치고 만다. 이를 시작으로 황자들에게 잇달아 변이 발생하자[22] , 황후와 그 주변을 경계하게 된다. 그러던 중 건륭제가 남방으로 순행하는 여행을 떠나는데 동행한다. 도중에 화친왕과 황후가 원춘망의 계략으로 인해 역모를 꾸미게 되었고 실제 성공할 뻔 했으나, 건륭제가 어느정도 눈채를 채고 있었고, 만일을 대비해 비밀통로를 만들어둔 부찰 부항으로 인해 실패한다.
그리고 5황자 영기를 치료하기 위해 썩은 피를 먹는 벌레를 준비했는데 원춘망이 독충과 바꿔치기 하였고, 5황자를 살리려는 과정에서 그 미얀마 독충에 중독된다. 실제 거의 죽을 뻔 했으나, 부찰 부항과 해란찰이 해독제를 만드는데 성공하여 목숨을 구하였으나, 이 과정에서 부찰 부항이 독에 중독되어 죽어버리고 만다. 건강을 회복한 후 영락은 사실상 폐위된 숙신 황후와 만나고 황후는 이 때 모든 것이 위영락이 큰 그림을 그린 것이라는 걸 깨닫는다.[23] 그 뒤로 황귀비가 되어 내명부를 통솔하는 것으로 끝난다.
3.8. 연희공략: 금지옥엽
본편의 모든 일들이 마무리 된 후, 황귀비가 된 위영락은 본편의 후반부보다는 체통을 지키는 품위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24] 안하무인으로 굴며 자신을 화나게 한 납왕다이제와 복강안을 죽여달라는 소화를 타이르는 모습으로 등장하여 마치 예전의 자신이 그러했듯 "그가 반드시 너를 좋아하게 만들어라." 라고 조언한다.
그 후에도 소화와 납왕다이제 사이에서 가교역할을 하며 둘을 도와주는데, 이 과정에서 언급되는 대사로 미루어 봤을때 황제와는 여전히 적당히 밀당을 하면서 깨볶고 사는 듯.[25]
똑똑하지만 감정을 숨기지 못해 계략에 당하기만 하는 소화를 보다못해 직접 사완을 찾아가 '''아직도 권력의 정점에 서있는 황귀비의 권위와 위엄을 똑똑히 보여준다.''' 사완에게 가는 길이 늦은 밤인지라 어두컴컴한데 영락의 중심으로만 빛이 내리쬐는 연출이 그녀가 자금성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자신이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정신 못 차린 사완과 복강안에 의해 상황이 소화는 물론, 황귀비인 자신에게까지 영향을 미치자 직접 소화에게 조언하여 상황을 한번에 뒤집어 버린다.
복강안의 계략에 충격받은 소화가 사라지자 복강안 앞에 부찰 부겸을 끌고와 희탑랍 이청이 행한 파렴치한 악행을 전부 까발리며 "소화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야 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못할 시에는 부찰 가문은 파멸할 것이요, 이청의 시신도 부관참시 할 것이다."라고 엄포를 놓는다.
여담으로 외전의 작중 인물들이 하나같이 '''무섭다'''고 평한다.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소화와 달리 의중을 읽기 힘들다고 하는데다, 육궁을 총괄하며 황제의 총애도 여전한데 총명한 자식들도 넷이나 있기 때문인 듯. 스스로도 '''"육궁의 주인은 한 명이며 그게 바로 나다."'''라고 말한다.
4. 취미와 특기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본 적이 없는 영락인지라 취미라고 직접적으로 묘사가 되는 것은 없으나 여가 생활로 많이하는 일들은 대부분 용음에게서 배운 것들이다. 서예, 꽃꽃이다. 영락이 총명하다는 것을 알고 있던 용음이 그녀에게 글공부를 가르쳐주면서 자연스럽게 서예를 익히게 되었고, 꽃꽃이 또한 용음이 즐겨하던 것이었다. 용음이 자살한 뒤에 후궁이 된 영락은 용음이 좋아했던 것을 하면서 자기 나름대로 살아생전의 용음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그리고 훗날 연희궁에서 진주와 소전자에게 서예를 가르치기도 한다.
특기는 단연 자수를 첫손으로 꼽을 수 있다. 옷을 제작하는 수방궁녀 출신이기에 작중 인물들 중에서는 가장 독보적인 실력을 갖고 있다. 후궁이 되어 더는 궁녀가 아니게 된 후로도 사람들이 영락에게 자수나 옷 제작을 부탁할 정도로 명성이 자자하다. 태후에게 관세음보살의 모습이 담긴 수를 놓았을 때는 "생동감이 넘치구나."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두 번째로는 화술. 어떤 상황에서든 영락이 입을 털기만 하면 다들 깜빡 속아넘어가기 일쑤다. 특히 황제가 위영락의 사기 행각에 가장 많이 당한 피해자인데 궁녀 시절이나 후궁 시절이나 할 것 없이 자주 속는다. 이러니 다른 후궁들도 위영락에게 하나 같이 "말만 번지르르하기는..." 라며 험담을 할 정도다.
세 번째로는 손재주다. 여름마다 황궁에 쓰이는 얼음 상자를 개발한 사람이 바로 위영락이다.
네 번째로는 다른 사람 흉내 내기다. 황제 앞에서 소가빈, 순귀비, 나랍 황후를 흉내낸 적이 있었는데 제법 그럴싸 했다.
5. 성격
팬들 사이에서의 별명은 '''자금성 미친개''' 이 별명만 봐도 성격이 어떤지 한방에 알 수 있다.
당하고는 못 버티고 그대로 돌려줘야 하는 성격이다. 수방 시절에 금수가 이부자리에 차를 뿌리자 아예 밖에서 물을 길어와서 금수의 이부자리에 물 한동이를 그대로 붓는다든지, 시위와의 사통 사건때 역으로 꾀를 써서 금수와 방상궁을 낚는 등. 이 성격 때문에 수방궁녀 시절에는 장상궁에게, 장춘궁 시절에는 황후에게 많이 지적받는다. 그러나 귀인으로 입궁하면서 불의를 보면 물불 안 가리던 성격도 굉장히 진중하게 변했다.[26]
원한만 갚는 것이 아니라 받은 은혜도 반드시 갚는다. 자신을 아껴준 부찰 황후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비빈이 되어 끝까지 옛 주인의 복수를 완성한다. 또한 휘발나랍 황후와 오랫동안 싸웠으면서도 그녀를 연금만 하고 살려주는데, 그것은 신자고 시절 병이 났을 때 그녀가 의원을 불러 목숨을 구해준 은혜를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복수는 통쾌하게 하고 은혜도 분명히 갚아주는 이런 성격 때문에 인기가 많은 캐릭터.
'''간이 배밖으로 튀어나왔는지 사고를 치는 스케일도 굉장히 남다르다.''' 특히 황제에게 불경스러운 망언을 하여 난리가 난 적도 많은데 가장 대표적인 예로 19화에서 황제가 절종이라는 피부병을 앓고 있을 당시, 황제 몸안에 남아있는 피를 없애려고 '''황제를 감히 기생과 비교해버린 것.''' 이 때문에 건륭제는 굉장히 빡돌아서 영락을 죽이려고 칼을 갖고 와서 휘두른 적도 있었다. 그래도 황제의 피를 뿜게 만들어 치유하는데 도와줬으니 참 다행인 셈.
이때 말한 것을 제외하고도 황제에게 망언을 일삼은 수위만 따져보면 능지처참을 면한 것도 용한 수준이다. 보보경심의 주인공인 마이태 약희가 '''강희제에게 "그 사람"이라고 하다가 형부인 8황자 윤사에게 입을 틀어잡히면서 "다시는 그따위 대역무도한 소리를 입밖에 꺼내지 말거라!"''' 라며 호통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보다도 훨씬 센 수위로 황제에게 불경스러운 언행을 일삼은 영락인데, 다행히 황후의 변호와 황제가 나름대로 영락에게 마음이 있어서 벌을 안 받은 거지만 그런 게 없었으면 영락은 정말 수천 조각 났을지도 모른다.
6. 전적
위영락은 후궁견환전의 견환처럼 자신과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을 해코지한 적들에게 고스란히 그 업보를 돌려줬다. 그나마도 운좋게 비참한 최후를 맞지 않는 경우도 몇몇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건 여러 가지 이유로 정상 참작이 가능한 극소수의 케이스일 뿐이다. '''따라서 위영락에게 잘못 걸리면 정말 모든 걸 잃을 각오를 해야만 한다는 뜻이 성립된다.'''
7. 기타
드라마에선 영락이 부찰 황후 사후에 귀인이 되었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부찰 황후가 살아있을 때(부찰 황후 사망 3년 전)에 귀인에 책봉되고 몇 달 후 영빈으로 승진하였다. 부찰 황후가 죽었을 당시 그녀는 이미 영빈의 신분이었다. 그리고 실제 역사에서도 드라마처럼 승진이 굉장히 빨랐다. 자식이 없는데도 건륭 10년에 위귀인으로 봉해지고, 같은 해에 봉호를 받고, 빈으로 승진했다. 그러다가 약 4년 후에 비로 승진하기에 이르렀다.
위영락의 입궁 날짜는 건륭 6년(서기 1741년) 2월 초이튿날이다. 그리고 이 드라마가 끝나는 시점은 건륭 30년(서기 1765년)이다. 그리고 이 드라마의 모든 시간들은 사실상 위영락이 언니의 원수를 갚는데 걸린 시간이었다. 또한 위영락은 황제보다 16살 어린데 실제 역사에서도 효의순황후는 건륭제보다 16살이 어리다. 허나 실제 역사에 대입시킨다면 건륭 40년(서기 1775년)에 영락의 첫 딸인 7황녀 소화공주가 21살의 나이로 요절하고, 그로부터 고작 20일 후에 영락도 48세의 나이로 죽게 되면서 황제는 진정으로 사랑하는 후궁들이 모두 죽게 되는 슬픈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그 건륭제는 그로부터 24년이나 더 살아서 서기 1799년에 88세의 나이로 죽는다.'''
궁녀라서 사실은 천한 집안 출신처럼 보이지만 사실 영락의 가문은 팔기 안에 속하는 가문이다. '''그것도 만군기 정황기 포의(包衣) 출신이다.'''[36] 그렇기 때문에 입궁하여 궁녀가 될 수 있었던 거다. 청나라 전체 인구수에 비하여 팔기 안에 속하는 가문은 정말 극소수에 해당이 되는데 팔기에 든 것만으로도 이미 중상류층에서 상류층에 해당되는 가문이다.
장춘궁 시절의 클리셰는 영락이 사고 침, 황후 부찰 용음이 감싸 줌. 그 사이의 워맨스에 빠진 팬들이 많은 듯하다.
장춘궁 궁녀 시절 때의 위영락은 흰색 아니면 밝은 청색의 복장을 주로 입었다. 그러다가 황제의 후궁이 되면서 부찰 용음이 많이 입었던 하늘색 계통의 복장을 주로 입고 다닌다.
다재다능하지만 유독 서투른 것이 있다면 바로 아기를 돌보는 것. 애초에 영락이 태어나자마자 어머니가 난산으로 죽었고, 영락은 이것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겨서 피임약을 복용한 적이 있었다. 용음이 아이를 낳을 때도 그 강철멘탈이던 영락이 멘붕에 빠져 자리를 못 지키고 뛰쳐나간 적도 있고, 용음을 난산으로 고생시켰다고 한동안 용음의 아이도 보려고도 하지 않을 정도였다. 자신의 친자식들을 낳은 이후에는 이 트라우마가 나아진다.
대차고 냉정하고 강한 성격이지만 자식에게는 대단히 물러터졌는데 아이들에게 잔소리하기는커녕 엄청나게 풀어주는데다 공부를 방해하고(!) 같이 놀자고 꼬시기도 한다. 이 때문에 오히려 큰아들인 영기에게 잔소리를 듣는 게 일상.[37][38] 이는 아들 하나가 죽은 트라우마 때문이기도 하고, 특히 딸들은 청나라를 위해 화친가야 할지도 모르는데 그 전에라도 마음껏 놀게 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꽃들 중에서 말리화와 치자꽃을 가장 좋아한다. 말리화는 부찰 용음이 가장 좋아하던 꽃이고, 치자꽃은 부찰 부항이 가장 좋아하는 꽃이기 때문이다.
부찰 용음은 7황자 영종을 잃기 직전에 영락이 잠시 출궁하러 떠나려고 하자 그녀에게 수정으로 제작한 염주를 주면서 영락의 아버지인 위청태의 평안을 보우해 줄 거라고 하였다. 그리고 영락은 훗날 황귀비가 될 때까지도 그 염주를 항상 소중히 지니고 있다.
8. 실제 역사의 효의순황후 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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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관령 청태의 딸로 정황기 포의 출신 궁녀였다가 건륭 10년(1745년)에 위귀인이 되었다. 그리고 동년 11월 17일 영빈(令嬪)이 되었고, 14년(1749년) 4월 5일에 영비로 진급했다.
입궁한지 10년이 넘도록 자녀가 없다가 건륭 21년(1756년) 7월 15일에 드디어 첫아이인 7황녀 고륜화정공주를 낳았다. 연이어 건륭 22년(1757년)에 14황자 영로를, 건륭 23년(1758년)에는 9황녀 화석화각공주를 낳고 24년(1759년) 12월 18일에 영귀비에 책봉되었다.
건륭 25년(1760년) 10월 6일 훗날의 가경제인 15황자 영염을 낳고 27년(1762년)에 16황자를 낳았다.
건륭 30년(1765년) 계황후가 폐위된 후 6월 11일에 영황귀비가 되어 육궁을 총괄하였다. 31년(1766년)에 17황자 경희친왕 영린을 낳았고, 40년(1775년) 1월 29일 49세로 사망한 후 영의황귀비(令懿皇貴妃)로 추존되었다. 건륭 60년(1795년) 가경제가 태자로 봉해지면서 효의순황후(孝儀純皇后)로 추존되었다.
1928년 건륭제의 유릉이 도굴당했는데 유릉 안에는 효현순황후와 효의순황후 그리고 숙가, 철민, 혜현 세명의 황귀비가 합장 되어 있었고 그 중 효의순황후만은 죽은 지 153년이 지난 후였음에도 시체가 부패하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드라마에서는 위영락이 건륭제의 후궁이 된 이후의 거주지가 줄곧 연희궁이었지만 실제로는 저수궁에 거주하였다. 어쩌면 드라마 제목이 저수공략이 될 수도 있었다.
9. 관련 문서
[1] 건륭 40년 죽기 직전 건륭제가 포의에서 빼주어 대기시켜줌[2] 유비 가리엽특 아연이 퇴궁한 후에 그녀의 아들인 영기를 양자로 들였다.[3] 3살에 요절했다.[4] 입궁 이후 고귀비의 이름을 피휘하여 '아만'으로 불렸다.[5] 영락의 이부자리에 차를 뿌린다거나, 방상궁이 어거지로 벌준 것에 고소해 한다거나 등등.[6] "이 나무가 영백인지 모른 건 맞는데 어제 꿈에 나무가 나타나 몸이 가렵다고 해 긁어줬어요."라고 변명했다.[7] 아만의 연인이었으나, 낮은 신분과 25살까지 기다리는 게 힘들어서 헤어질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8] 순비가 수방에서 왜 털가죽 실로 썼냐고 묻자, 금실 은실 공작실은 사치스럽고, 근검절약을 하자는 황후 부찰 용음의 뜻을 받들어 털가죽 실로 썼다고 대답하고, 황제가 황후를 매우 아껴 생일에 특별한 선물을 보낸다는 것을 알고 대전 밖에서 시간을 끌었다. 덕분에 황후가 기분이 좋아졌을 때 예물을 올리면 역정 내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다.[9] 나중에는 명옥과 티격태격하면서도 좋은 친구 사이가 된다. 그러나 이청과 호박은...[10] 황후 왈, 황제는 사적인 감정으로 사람을 대하는데, 첫인상에 선입견이 생기면 모질게 대한다고 한다.[11] 견환전의 귀신 소동을 오마주한 듯하다.[12] 하지만 금수는 영락에게 직접적으로 손을 쓰지는 못하였다. 위영락을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괜히 봉변을 당할 거라는 사실을 잘 알아서 그렇다.[13] 다른 조건은 부찰 부항을 찾아가서, 당신을 사랑한 건 다 거짓이었고 전부 부귀 영화를 탐내서 그런 거였다고 말하라는 것.[14] 7황자와 부찰 황후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알게 되어서, 순귀비가 옥호를 시켜 많은 바늘을 명옥의 몸 속에 집어넣게 했다.[15] 황후가 총애하던 사람이 부귀영화를 위해 뻔뻔하게 배신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그런 것이었다. 철저히 영락이 부귀영화를 탐하는 거라고 생각한 듯.[16] 부찰 황후의 상이 끝나지 않은 기간이었다.[17] 해명할 때 영락이 여러 비빈들의 성대모사를 하는 씬이 압권. 황제는 "짐은 너처럼 못된 여자가 좋느니라~" 라고 말한다. [18] 사실 영락이 원명원에서 돌아올 기미가 안 보이자 건륭이 침벽을 끌어들인 것이다.[19] 이때 영락은 인생 최대의 고비를 맞이하게 되었다. 친구인 명옥도 죽었고, 진주와 다른 충성스러운 수하들은 신형사로 끌려간 상황. 그나마 소전자가 배신한 척하면서 영락에게 음식들을 챙겨주지 않았더라면 꼼짝없이 굶어죽었을 거다.[20] 사실 여전히 위영락을 사랑하고 총애했지만 영락의 마음 속에 자신이 있는 지를 떠보기위해 순빈을 이용한 것. 어찌보면 순빈이 오히려 건륭제에게 이용당한 셈이다.[21] 자신은 총애받는 후궁이니 당신은 나를 어쩌지 못하고 당신은 황후이니 자신도 당신을 무너뜨릴 수 없다고 얘기한다.[22] 5황자를 다치게한 범인으로 황후의 양자인 4황자가 지목되어 종인부에 감금되고, 영락의 친아들인 15황자가 중독되어 쓰러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궁의 여론은 황후를 배후로 의심하지만 원춘망[23] 원춘망이 계략을 꾸미는 걸 눈치 챘는데도 그냥 놔뒀는데 원춘망이 황후와 화친왕을 끌어들여 일을 꾸밀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결국 화친왕은 연금이 되었고 건륭제의 명으로 독이 든 술을 마시고 사망한다. 위영락의 언니가 화친왕 때문에 죽은지 24년 만의 일이었다.[24] 아무래도 황후를 대신하는 지위에 올랐으니 전처럼 아무 것도 신경쓰지 않고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인 듯.[25] 영락은 서양에서 들여온 오르골을 가지고 싶었으나, 황제가 자꾸 영락을 상대로 밀당을 시도하자 오르골을 주겠다는 것을 거절했다. 후에 황제가 소화를 통해 영락에게 오르골을 주도록 만들었는데 그 사실을 모른 채, 아바마마께서 주신 장난감이라며 자랑하는 소화를 적당히 구슬려 오르골을 연희궁에 두고가게 한다. 진주가 이것을 지적하자 영락은, "납왕다이제와의 일도 해결하지 못하는데 폐하와 내 밀당을 소화가 어찌 알겠느냐?" 라 답한다.[26] 이전엔 사고를 쳐도 방패가 되어주었던 황후가 없으니 매사 조심해야 하니 그렇다. 다만 궁녀 시절 때의 성격이 사이다라며 굉장히 좋아하는 팬들이 많다.[27] 아래의 대사란의 내용은 1분 5초부터 5분 25초까지 기재되어있다.[28] 직역으로는 '''"황후, 참 좋은 노비구려!"'''이다.[29] 오아 웅산의 딸인데 수녀 선발로 1화 때만 등장하고 퇴장한 단역이다.[30] 길상의 오랜 친구이자 영락이 수방 궁녀였던 시절의 동료 궁녀였다.[31] 위영락의 언니인 위영녕의 약혼자. 만주 팔기 귀족이고 자금성 이등시위이다.[32] 옹정제의 13번째 동생인 윤상의 7남이다.[33] 홍주의 어머니다.[34] '''"그래, 본궁이 너의 언니를 죽였다. 감히 주제도 모르고 홍주를 유혹한 더러운 계집이니 죽어도 싸지!"'''라고 했었다.[35] '''위영락이 홍주에게 복수하는데까지 걸린 시간은 장장 24년이었다.'''[36] 번역가들이 포의를 정말로 만주족들의 가노로만 생각하면서 번역을 하는 건지는 몰라도 '''사실 포의는 일반적인 개념의 노비가 절대 아니다! 실질적인 의미로 해석하자면 만주족 통치계급의 가신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더 올바른 번역이다.'''[37] 오죽하면 영기가 찾아오자 잔소리꾼 왔다고 몰래 숨기도 한다.[38] 영기가 잔소리하는 건 위영락의 몸이 걱정되어 그런 것도 있다. 가뜩이나 이런저런 고생을 겪고 몸이 많이 약해져 푹 쉬면서 몸보양을 해야 하는데 방에만 누워있기 갑갑한 영락이 여기저기 싸돌아다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