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청 인화 국화문 태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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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조 재위시기에 왕의 명으로 월산대군(月山大君, 1454~1488)의 태와 태지를 묻으며 함께 부장하기 위해 만든 분청사기. 현재 일본에 소장되어 있다.
조선 세조 재위 시기에 왕의 명으로 월산대군의 태를 묻으며 함께 만들어 부장한 분청사기이다.
월산대군(月山大君)은 세조의 장손이며 성종의 친형으로 경태(景泰) 5년(1454)에 출생하였는데, 지문에 의하면 천순(天順) 6년(1462)에 태(胎)가 매장되었다. 그러므로 이 태항아리의 제작연대는 1454년에서 1462년 사이이다.
이 분청 인화 국화문 항아리는 세조조에 최절정기를 맞이한 우리나라 인화 분청사기의 대표적인 편년 예이다. 특히 태지(胎誌)와 한 조를 이루기 때문에 제작연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편년자료이다. 한국 인화 분청사기 제작 기술이 가장 발전했던 세조 시기에 충효동 가마에서 특별히 제작된 것이다.
조선 왕실 유물로 매우 중요한 문화재이나 현재 일본에 소장되어 있어 대한민국의 유물로는 등록되지 못하고 있다.
1. 개요
조선 세조 재위시기에 왕의 명으로 월산대군(月山大君, 1454~1488)의 태와 태지를 묻으며 함께 부장하기 위해 만든 분청사기. 현재 일본에 소장되어 있다.
2. 내용
조선 세조 재위 시기에 왕의 명으로 월산대군의 태를 묻으며 함께 만들어 부장한 분청사기이다.
월산대군(月山大君)은 세조의 장손이며 성종의 친형으로 경태(景泰) 5년(1454)에 출생하였는데, 지문에 의하면 천순(天順) 6년(1462)에 태(胎)가 매장되었다. 그러므로 이 태항아리의 제작연대는 1454년에서 1462년 사이이다.
이 분청 인화 국화문 항아리는 세조조에 최절정기를 맞이한 우리나라 인화 분청사기의 대표적인 편년 예이다. 특히 태지(胎誌)와 한 조를 이루기 때문에 제작연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편년자료이다. 한국 인화 분청사기 제작 기술이 가장 발전했던 세조 시기에 충효동 가마에서 특별히 제작된 것이다.
조선 왕실 유물로 매우 중요한 문화재이나 현재 일본에 소장되어 있어 대한민국의 유물로는 등록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