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야시키
1. 개요
皿屋敷
일본의 괴담. 일본의 국민 괴담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전설의 고향에서 볼 수 있는 원한 품은 여자 귀신의 복수극과 유사하다. 일본 각지에 비슷한 이야기들이 전하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에도를 무대로 한 반쵸사라야시키(番町皿屋敷)이고 그 다음으로는 이 괴담의 원형으로 추정되는 히메지를 무대로한 반슈사라야시키(播州皿屋敷) 등이 유명하다.
2. 괴담의 형태
대체로 사라야시키 괴담은 유사한 형태를 보이는데 이런 구조로 흘러간다.
어느 여성(대체로 이름은 오키쿠)이 주인집에서 대대로 내려오던 가보 그릇을 깨뜨린다, 혹은 아가씨를 미워한 사람이 가보 그릇을 깨뜨린 후에 여성에게 누명을 씌운다-> 그 여성은 가보 그릇을 깨뜨린 죄로 주인에게 단칼에 살해당하거나 혹은 스스로 자살한다->이후 밤마다 그 집에서는 이 여성의 귀신이 나타나서 "한개...두개...세개..." 이렇게 그릇의 개수를 새고 "하나가 없네"라고 한다.-> 결국 이 여성 귀신의 저주로 주인집은 몰락하거나 여성을 살해한 주인이 저주로 미치거나 죽는다.
3. 괴담의 유래
이 괴담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 에도시대 이상을 넘어가지 않기 때문에 에도시대에 퍼진 괴담이라는 건 분명하다. 유래에 대해서는 반슈, 즉 오늘날의 히메지에서 벌어진 일을 근간으로 한다는게 일반적이다.
하시모토 마사츠구는 히메지성사에서 죽수야화라는 책을 근거로 오타가키 가문에서 벌어진 일이 이 괴담의 기원이 되었을것이라고 추론했다.
이에 의하면 가기츠의 난(1441년) 이후에 야마나 가문의 가신 오다가키 슈메조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에게는 하나노라는 첩이 있었다고 한다. 하나노의 미모가 빼어나서 오다가키의 집에 드나들던 향사 카사데라 신에몬이라는 자가 하나노에게 반해 계속 편지를 보내 구애를 했지만 하나노의 마음은 요지부동이었다. 분개한 카사데라는 야마나 가문이 오다다키에게 하사한 귀한 잔 다섯 개 중 하나를 숨겨버렸다. 잔이 없어진 걸 알게 된 오다가키는 하나노에게 잔이 어디갔냐고 물었지만 하나노는 영문도 모르는 일이었던지라 모른다고 대답했고 오다가키는 주군에게 하사받은 물건이라 잘못하면 집안이 망한다고 생각해 결국 하나노를 소나무에 목매달아 죽여버렸다고 한다. 이후 하나노의 귀신이 밤마다 나타났고 사람들은 그 소나무를 '''목매달아 죽이는 소나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오다가키가 1441년에 야마나 모토치요에 의해서 아오야마에 배치되었고 2년 뒤에 아카마츠 노리야스가 아오야마를 공격하면서 타지마 타케다성으로 도피했다고 한다. 2년동안 오다가키는 아오야마에 있었지만 첩의 문제로 인해서 직무에 태만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한다. 죽수야화는 오다가키의 시대로부터 130년 후의 기록이다.
4. 반슈 사라야시키
대체로 이 괴담의 원형으로 알려진 것이 바로 반슈사라야시키로 반슈사라야시키 실록이라는 책이 원형이다.
반슈 사라야시키 실록에 의하면 히메지성 성주의 가신인 야마데라 데츠잔이란 사람이 주군을 배신하고 자신이 히메지성의 성주가 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었는데 다른 가신인 키메사카 모토노부란 사람이 데츠잔의 음모를 밝혀내기 위해서 자신의 첩인 오키쿠를 데츠잔 집의 하녀로 보내 음모의 증거를 캐내려 했다. 오키쿠는 데츠잔이 아오야마 마스이산의 꽃놀이때 데츠잔이 히메지 성주를 독살하려는 것을 알아내 이를 키메사카에게 알렸고 키메사카는 꽃놀이 장소에서 성주를 구출해 에지마로 도망쳐 숨었다.
데츠잔은 누군가 자신의 계획을 누설했다고 생각해 하인인 초노츠보탄 시로에게 집안의 스파이를 추적하라고 지시했고 오키쿠는 그만 시로에게 스파이인것을 들키고 말았다. 시로는 자신의 첩이 되면 이것을 숨겨주겠다고 했지만 오키쿠는 키메사마에 대한 정절을 지키기 위해 이를 거절했고 분노한 시로는 오키쿠가 관리하던 데츠잔의 가보 그릇 10개중 하나를 숨겨버린후 이를 오키쿠의 탓으로 몰아넣어 죽인후 낡은 우물에 그 시체를 갖다버렸다고 한다. 이후 우물속에서 밤마다 오키쿠가 그릇을 세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이후 키메사카는 데츠잔을 토벌하고 성주를 히메지로 복귀시켰다. 히메지 성주는 오키쿠의 사연을 듣고 그녀를 히메지의 쥬니소 신사에 봉안했다고 한다. 그런데 300여년 뒤에 히메지성에 이상한 형태의 벌레가 나타났고 사람들은 오키쿠가 벌레로 환생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다른 형태로 후나세 산페이라는 충신의 아내인 오키쿠가 데츠잔의 집에 하녀로 들어갔다가 가보 그릇으로 인해 살해당했고 이후 그녀의 원한으로 인해 데츠잔은 저주를 받아 토벌당했다거나 오키쿠의 마지막 모습을 닮은 키쿠무시라는 괴물에 의해 데츠잔이 살해당한다는 것도 있다.
히메지를 무대로 하고 있지만 실제 히메지의 역사와 등장인물과는 맞지 않아서 히메지의 역사를 바탕으로 한 오락소설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또한 키쿠무시의 유래는 1795년에 히메지성에서 대량발생한 자코우아게하라는 나비라고 본다. 히메지성은 히메지의 본래 영주인 이케다 가문의 인연을 감안해서 히메지시의 시 나비로 자코우아게하를 선정하기도 했다.
5. 반쵸사라야시키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사라야시키 괴담으로 에도를 무대로 한 괴담이다.
이에 의하면 우시고메 고몬의 고한쵸에 요시다 저택이 있었다가 이 저택이 옮겨간 후 센히메의 저택이 있었고 다시 이 저택이 옮겨간 뒤에 아오야마 하리마스라는 다이묘의 저택이 세워졌다고 한다. 이 저택에 오키쿠라는 하녀가 있었는데 어느날 오키쿠가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던 가보 접시 10개 중 1개를 깨뜨렸고 다이묘가 오키쿠의 손가락 하나를 잘라버린 뒤에 방에 가둬버렸다. 오키쿠는 밤중에 방을 빠져나와 낡은 우물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 이후 매일 밤마다 그릇을 세는 숫자가 들려왔고 이 다이묘의 부인이 아들을 낳았을 때 아들의 손가락 하나가 없었다. 결국 이 일은 막부에까지 알려져 막부는 이 다이묘의 영지를 몰수해버렸다. 그 후에도 계속 오키쿠의 그릇 세는 소리가 들려오자 막부는 고승을 불러 오키쿠의 영혼을 달래줄 것을 부탁했다. 오키쿠가 "하나... 둘... 셋..." 그릇을 세고 아홉개까지 세자 고승이 재빨리 "열!"하고 외쳤고 오키쿠의 영혼은 "이제 다 셌다"라고 말하며 사라졌다 라는 이야기이다.
실제 역사상으로 보면 등장인물들의 연대가 너무 차이가 나서 그냥 역사상의 인물들을 따와서 만든 가공의 이야기라는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워낙 재미있다고 여겨졌는지 민중들에게는 반쵸사라야시키가 가장 널리 퍼진 이야기가 되었다.
이외에도 히메지의 전설과 결합해서 아오야마 하리마스의 가신집의 하녀 오키쿠가 식사 안에 바늘이 들어있었다는 이유로 엄하게 꾸지람을 듣고 우물에 던져져 죽었는데 이후 오키쿠의 마지막 모습을 닮은 키쿠무시가 대량으로 나타나 결국 번이 멸망했다는 야마가사키의 전설도 있다.
6. 사라야시키 유머
그릇을 세는 것을 두고 유머러스한 이야기로 변형되기도 한다. 한 이야기에는 반쵸사라야시키에 오키쿠 유령이 있는데 그릇을 아홉개까지 센 뒤에 들은 사람을 죽여버리기 때문에 6개까지 세었을 때 거기서 도망쳐야 한다는 다짐을 받고 오키쿠 유령이 그릇을 세는 소리를 들으러 갔다. 그런데 오키쿠 유령이 착하고 미녀라서인지 구경꾼들이 몰려들었고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려서 9개까지 세는 소리를 들었지만 아무도 죽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날에는 오키쿠 유령이 9개를 넘어서 18개까지 세는 소리를 듣게 되었는데 구경꾼중 하나가 왜 18개까지 세요?라고 묻자 오키쿠 왈 '''"내일은 휴일이라서 미리 내일 거까지 세었어요"'''
또 다른 유머에는 오키쿠의 영혼을 위로하려고 고승이 오키쿠가 9장까지 센 뒤에 재빨리 "10장! 나무아미타불!"이라고 하면 오키쿠가 "어떻게 세어도 9장뿐인데요?"라고 츳코미를 주는 이야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