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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最澄
767~822
일본 헤이안 시대 초기에 활동한, 일본 불교의 초석을 다진 두 승려 중 하나.
속명(俗名)은 '''미츠노 오비토히로노'''이다.
지금의 시가현 현 출신으로 778년 고쿠분지에서 출가하였다. 법명을 사이초라 한건 780년의 일이다.
804년, 구카이와 함께 견당사(遣唐使)의 일원으로 당나라에 가서 유학(留學)을 했다. 사이초가 먼저 귀국(805년)하고 구카이는 그 다음해(806년)에 귀국하였다.
두 사람은 처음에는 다소 협력하는 듯 보였으나, 끝내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았고, 기어코 사이초는 히에이산(比叡山)의 천태종(天台宗), 구카이는 고야산(高野山)의 진언종(眞言宗)으로 완전히 각자의 갈 길을 갔다.[1]
822년 히에이산에서 입적했다.
시호는 전교대사(傳敎大師)이다.
사이초가 천태종을 확립한 히에이산도 전국시대에 오다 노부나가의 공세로 완전 갈려 나갔다.

[1] 예전에는 제자가 구카이에게 가도 오히려 구카이를 흠모하여 그에게 법을 배웠던 사이초였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구카이의 경우 당시 실권자가 그의 법을 흠모한 인물이었고 사이초는 자신을 도와준 실권자가 이미 사망하여 후원자도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평소 구카이를 흠모한 그는 그에게 불법 공부를 더 정진하고자 밀교서적을 빌려달라 했으나 구카이가 일언지하에 거절하여 서운함에 교류를 단절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