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시 대지진

 


1. 개요
2. 이후
3. 같이 보기


1. 개요


1556년(가정 35년) 1월 23일 명나라 섬서성에서 일어난 '''유사 이래 인류 최악의 대지진.'''
사상자는 자그마치 최대 '''83만 명'''에 달해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지진'''이자 '''세 번째로 많은 사망자를 낸 자연재해'''다.[1] 규모는 8.0으로 추정.
이 지진으로 진앙 인근 3개 도시가 건물 하나 남기지 않고 싸그리 파괴되었고, 곳곳에서 20미터 깊이로 땅이 갈라졌다고 한다. 무려 '''840 km''' 범위에 걸쳐 생존자가 별로 없었을 정도였다. 당시 섬서성 전체 인구 중 60% 가량이 이 지진으로 희생되었다고 추정된다. 완전히 황폐화된 것 치곤 많이 생존했네? 정도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산시성의 면적은 '''한반도'''와 비슷한 정도이고, 지진 피해 현장에서 60%가 사망하고 40%가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40% 인구는 지진의 영향을 받지 않은 지역에 거주했을 뿐이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 지진보다 더욱 강력한 지진도 여러 번 발생했지만 유독 이렇게 큰 피해가 난 이유 중 하나는 이 지역의 독특한 주거 양식 때문이었다. 이곳에는 황투 고원이라는 황토로 이루어진 넓은 지대가 있었고, 곳곳에 황토로 된 높은 언덕이 있었다. 따라서 주민들은 황토 언덕을 수직으로 깎고 굴을 파서 살았는데, 이러한 주거 양식을 야오둥(窯洞)이라고 한다. 부드러운 황토로 이루어졌기때문에 쉽게 굴을 파서 집을 만들 수 있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듯하다는 장점도 있지만, 지진을 버티기에는 너무나도 취약한 양식이었다. 더군다나 이 지역에서는 상당히 밀집된 인구가 이 야오둥에서 거주했는데, 지진이 일어나자 곳곳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야오둥 이그대로 붕괴되었던 것이다. 피해가 커진 또 한 가지 이유는 이 지진이 사람들이 대부분 집안에서 잠을 자고 있던 한밤중에 일어났다는 것이다. 집에서 잠을 자던 사람들은 미처 대피할 여유도 없이 순식간에 무너진 집의 잔해에 깔려 숨졌다.

2. 이후


이 지진 이후로도 반년 동안 계속해서 매달 3~5번씩 여진이 이어졌다. 어찌나 거대한 지진이었던지 조선왕조실록에도 언급된다. 실록기사

3. 같이 보기



[1] 네 번째 자연재해는 1970년에 방글라데시를 강타한 볼라 사이클론인데 사망자 50만 명이 발생했다.이것도 어마어마한 재앙이지만 3위와 차이가 크다. 1위는 1931년 중국 대홍수, 2위는 1887년 황허 홍수이다. 놀라운 사실은 '''이 세 가지 사건 모두 중국에서 일어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