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대법

 

인류의 역사를 도구의 변화에 따라 석기 시대-청동기 시대-철기 시대로 나눠서 보는 시대구분법. 처음 만든 사람은 19세기 후반 덴마크 코펜하겐 박물관의 학예사 크리스티안 위르겐센 톰센(Christian Jürgensen Thomsen, 1788~1865)이다. 이 사람이 이런 구분을 한 이유는 박물관에 효율적으로 유물을 전시하기 위해서였는데, 이걸 시대 구분에 사용하면 좋을 것이라는 논문을 내면서 석기-청동기-철기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하다가 영국의 존 러벅이 석기 시대를 다시 구석기 시대신석기 시대로 나눈 이후로 이 구분법이 지금까지 쓰이고 있다. C. J 톰센, 존 러벅 등의 시대구분론은 석기-청동기-철기의 도구와 그것을 제작하는 기술의 복합도 등을 고려하여 시대를 구분해 볼 수 있는 틀을 만들고, 역사 기록이 없는 선사시대, 아울러 역사시대 일부까지도 도구를 통해 바라볼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현대 고고학에서는 이와 같이 인류의 역사를 석기-청동기-철기로 구분하는 방식을 비판하는 의견이 일고 있다. 이는 단순한 시대구분론일 뿐 완벽하게 적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덴마크를 비롯한 북유럽권에서는 아연 시대라는 개념을 쓰기도 하는 등 지역적 고고환경에 따라서 시대를 정의하고 있다. 삼시대법은 어디까지나 시대를 구분하여 보는 전통적인 기준으로 모든 지역을 막론하는 개념은 아니다.
이후 유럽에서는 프랑스 무스테리아에서 르발루아 기법을 이용한 무스테리안 석기가 등장하면서 중석기도 추가하게 되지만 이는 전세계에 공통되는 현상이 아니라서 널리 적용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한국의 경우도 삼시 기법을 60년대 들어 북한의 도유호 때문에 적용하게 되는데, 최근 들어 각종 문제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전체적인 양상 특히 신석기-청동기-초기 철기는 각자 시대를 부르기에 민망할 정도로 각자 시대를 대표해야 할 유물들이 아주 적다. 즉 신석기에는 타제 석기가 대부분이고 청동기에는 무려 1천 년 동안 청동기가 100개 약간 넘는 정도며 초기 철기 시대 대표 유물은 세형 동검과 다뉴경이며 오히려 초기 철기 시대에 청동기가 무진장 많이 나온다.
그래서 이미 1960년대 한국에 유학와 있던 일본 고고학자인 니시타니 다다시(西谷正)는 신석기 시대를 즐문 토기 시대로 청동기 시대를 무문 토기 시대로 부르자고 주장했는데 현재 청동기 시대만큼은 한국 고고학계, 특히 해당 청동기시대를 주로 연구하는 분야에서는 무문 토기 시대라고 부르는 경우가 꽤 많다.
게다가 위에 언급한 곳 외에 다른 지역에도 공통되는 문제점이 있다.
  • 청동이 그 분포 지역이 한정되어 있어 완전히 청동기와 관계없이 발전한 문명이 있다.
(ex. 남아메리카 원주민 문명, 짐바브웨 문명)
  • 철기의 발달과 문명 수준은 비례하지 않는다.
철기는 없었지만 흑요석 무기 등의 도구를 만들며 웬만한 철기 문명 수준으로 발전한 남아메리카 원주민들도 있고, 중국사의 경우 전국시대에 철제무기를 대량으로 사용한 초나라, 연나라와 청동무기 위주였던 진나라의 전쟁 사례도 있다. 한국사와 관련된 경우에서도 연 침략 이후~멸망 시기인 B.C 3~2세기 무렵부터 제철유적이 확인되는 동만주~서북한 지역에 비해 함경북도~연해주 지역의 경우 기원전 5~3세기 제철유적이 있다. 그렇지만 기록을 통해 볼 때 고조선으로 비정되는 동만주~서북한 지역이 옥저로 비정되는 함경북도~연해주 지역보다 정치체제가 선진적이라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고조선 기록에는 왕이나 관직들이 등장하지만, 옥저는? ).
그러나 근동이나 유럽쪽 고고학계에서는 대부분 삼시대법을 사용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이쪽은 기본적으로 문화의 발전이 석기->청동기->철기를 그대로 따라가기 때문에 삼시대법에 대해서 별로 거부감이 없다. 오히려 근동 쪽에서는 훨씬 세분화해서 초기 중기 후기나 금석병용시대 정도의 구분은 기본이며 선토기 신석기, 중석기 등의 용어도 사용하고 있다.
현대 사회를 반도체 등을 중심으로 하는 실리콘 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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