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삼국지)
向秀
(? ~ ?)
서진의 인물. 자는 자기(子期). 하내군 회현 사람.
노자와 장자의 학문을 좋아했고 맑게 깨우친 원대한 식견이 있어 어릴 적에 산도가 그의 됨됨이를 알아보았으며, 장자의 저서가 안팎으로 수십 편이 쌓여있었지만 지난 세대의 재능있는 선비더라도 그 뜻을 맞추어 바르게 논한 자가 없었다. 상수는 남몰래 그 뜻을 해석하고 기이한 뜻을 발명해 그윽한 풍취를 떨쳐 일어나게 했으며, 그것을 읽은 자는 초연하게 마음을 깨달아 일시에 스스로 만족함을 느끼지 않는 자가 없었다.
20살 때 유도론을 지었지만 팽개쳐 두고서 기록하지 않았는데, 어떤 호사가가 이를 보존했고 어떤 사람의 말로는 이것은 그의 친척이 지은 것으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을까 걱정해 상수에게 부탁해서 그의 이름을 빌리고자 했고 상수를 웃으면서 좋도록 허락했다고 한다.
혜강, 여안과 친구 사이였지만 취사 선택이 달랐는데, 혜강은 오만하고 세속에 얽매이지 않았다. 여안은 방일하고 탈속적이지만 상수는 늘 독서를 좋아했는데, 혜강, 여안은 이를 가지고 상수를 비웃었고 처음에 상수가 장주가 주석하려 할 때 혜강, 여안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했다.
혜강이 이 책을 어찌하여 다시 주석하려 하는 것이냐면서 사람이 즐거워하는 것을 방해할 뿐이라 했으며, 상수는 주석을 완성하면 혜강을 보면서 뛰어난 것이 다시 이기지 않겠냐고 했다. 혜강이 여안에게 진실로 뛰어나다고 보냐고 묻자 여안은 감탄하면서 장주가 죽지 않았다고 했으며, 상수는 주역에 주를 달았고 그 해의가 볼 만 해 한대의 유학자들과 서로 필적되었지만 장자의 심오한 뜻을 해석한 절묘함에는 미치지 못했다.
혜강과 양생을 논했지만 서로 논쟁이 벌어졌고 상수는 대개 혜강보다 높은 경지에 오르고 싶어했으며, 상수는 여러 현자의 저술을 두루 섭렵했지만 평생 동안 그것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 일체 주를 달지 않았지만 오직 장자만을 좋아해 오로지 최선의 장자주를 좇아 잊지 않도록 기록했다.
상수가 장자의 주석에 대한 해의를 지은 후에는 그것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마치 초연히 속진을 벗어나 절대 심오의 세계를 엿보는 것으로 비로소 보는 것과 듣는 것 밖에 신묘한 덕과 현묘한 지혜가 있음을 깨닫게 되어 천하를 망각하고 만물을 초월할 수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하며, 제 아무리 경쟁적인 사람일지라도 자신이 좇고 있는 바를 돌아보기만 하면 모두 초연히 속세를 벗어나고픈 마음이 저절로 들게 되었다고 한다.
혜강이 담금질에 능숙해 상수가 그를 보좌했으며, 서로 마주 보고 흔연히 대해 그들의 곁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고 한다. 또한 여안과 함께 산양에서 관개질을 했으며, 262년에 혜강이 주살되자 뜻한 바를 잃게 되었고 상수는 군의 헤아림을 응해 낙양으로 들어갔다.
사마소가 기산의 뜻이 있다고 하면서 어찌하여 이 곳에 있게 되었냐고 묻자 소부와 허유는 고집이 센 선비라 요의 마음에 이르지 못했거늘 어찌 많은 것을 사모하기에 충분하겠냐고 해서 사마소가 이를 기뻐했고 상수는 스스로 그 부림을 받아 옛날을 생각하는 노래인 사구부를 지었다.
뒤에 산기시랑이 되어 황문시랑, 산기상시로 전임되었으며, 조정에 있으면서 직분을 받지 않았지만 그 행적은 용납받았다. 사마충이 황제일 때 상수가 장자의 저서를 주석한 것을 곽상이 널리 서술하자 선비의 묵 자국이 비천히 여김을 받아 도가의 말이 흥성해졌다고 하며, 상수는 지위에 있다가 사망했다.
처음에 장주에 주를 단 사람은 수십 명이 있었지만 그 요지를 완전히 구한 사람이 없었으며, 상수는 옛 주에 별도로 해를 지어 그 오묘한 해석이 참신하고 치밀해 현묘한 학풍을 크게 창달시켰다. 그러나 상수는 추수, 지락 두 편을 끝내지 못한 채로 죽었고 상수의 아들이 아직 어려 그 해의가 거의 잊혀졌지만 부본만은 남아있었는데, 곽상이 그의 해의가 세상에 전하지 않는 것을 보고 마침내 그것을 표절해 자신의 주로 삼았다.
곽상이 추수, 지락 두 편에 자신의 주를 달고 마제 한 편의 주를 바꾸면서 나머지 여러 편에 대해서는 문구를 수정했을 뿐인데, 나중에 상수 해의의 부본이 세상에 다시 나오면서 상수, 곽상의 두 장주가 있게 되었고 그 내용은 거의 동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