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빈센트 곶 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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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배경
3. 양측의 전력
3.1. 영국군
3.2. 스페인군
4. 전투 경과
5. 결과


1. 개요


미국 독립 전쟁 시기인 1780년 1월 16일 지브롤터의 세인트빈센트 곶 앞바다에서 영국 해군과 스페인 해군이 맞붙은 전투. 영국군은 이 해전에서 대승을 거두어 스페인의 지브롤터 포위를 약화시켰다.

2. 배경


1779년, 스페인은 미국 지지를 선언하고 영국과의 전쟁에 참전했다. 스페인은 지난 전쟁에서 영국에게 잃었던 카리브 해의 많은 섬들과 미노르카 섬, 그리고 지브롤터를 되찾고 싶어했다. 그해 7월, 스페인 육군 및 해군은 지브롤터 포위를 개시했다. 영국 수비대는 약 5천 명이었고 대포 400문을 갖추고 있었다. 그들은 적의 공세를 번번이 막아냈지만 1779년 말에 식량 공급이 줄어들어 기아의 기미가 감돌았다. 지브롤터 총독 조지 엘리엇 중장은 영국 정부에 지브롤터의 사정을 설명하고 서둘러 구원해줄 것을 호소했다.
1779년 10월 1일, 조지 로드니 제독[1]은 서인도 제도의 왕립 해군 리워드 섬 기지를 지휘하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그는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의 해안을 따라 항해한 뒤 대서양을 거쳐 서인도 제도까지 항해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지브롤터와 미노르카 섬을 구하는 것이었다. 영국 채널 제도에 주둔한 전열함 22척과 프리깃 7척이 로드니의 지휘하에 놓였고, 함대 내 전위 사단은 존 록하트-로스 경이 지휘했고 후방 사단은 로버트 디그비 제독이 지휘했다. 그러나 일부 함선의 준비 부족과 역풍으로 인해 출항이 상당히 지연되었고, 로드니는 1779년 12월 29일에야 모든 준비를 마치고 플리머스에서 출항했다.
1780년 1월 7일, 로드니의 함대는 스페인의 북서쪽 지점인 피니스터르 곶에서 서쪽으로 300마일 떨어진 지점에 이르렀다. 그는 여기서 서인도 제도 상선들을 보호하기 위해 일부 함선들을 보내고 나머지 함대를 이끌고 지브롤터로 향했다. 다음날 새벽, 영국 함대는 북동쪽으로 진군하는 22척의 스페인 상선을 목격했다. 로드니는 즉시 스페인 상선들을 추격해 몇 시간 만에 따라잡아 항복을 받아내고 그들이 싣고 가던 물자들을 모조리 압수했다. 로드니는 스페인 상선 선원들을 취조한 결과 그들이 카디즈에 있는 스페인 함대에게 물자를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로드니는 스페인 상선 12척을 풀어줬지만 나머지 배들은 HMS 아메리카와 펄 호의 호위를 받으며 영국으로 보내졌다. 그리고 더블린과 스류즈베리 호는 리스본 항에서 수리를 받았고, 나머지 함대는 지브롤터를 향해 계속 진군했다. 그러던 중 북쪽으로 가는 몇몇 상선들로부터 스페인 함대가 세인트 빈센트 곶 앞바다에서 영국 함대를 저지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로드니는 즉시 전군에 세인트빈센트 곶으로 진격하라고 명령했다. 이리하여 미국 독립 전쟁 시기 영국과 스페인의 지브롤터의 패권을 둘러싼 해전의 막이 올랐다.

3. 양측의 전력



3.1. 영국군


  • 지휘관: 조지 로드니 제독
  • 병력: 전열함 18척, 프리깃 6척

3.2. 스페인군


  • 지휘관: 돈 후안 드 랑가라
  • 병력: 전열함 9척, 프리깃 2척

4. 전투 경과


1780년 1월 16일, 로드니의 영국 함대는 세인트 빈센트 곶 앞바다에 들어섰다. 오후 1시, 영국 해군 척후선이 전방을 살펴보던 중 스페인 함대가 남동쪽에서 목격되었다고 보고했다. 로드니는 그의 배들을 적을 향해 전진하면서 대열을 맞추도록 명령했다. 당시 그는 통풍에 걸려서 간이침대에 누워있었고 기함 함장을 통해 자신의 명령을 대신 전달하게 했다. 한편 스페인 함대는 돈 후안 드 랑가라 제독의 지휘를 받고 있었다. 랑가라는 처음엔 영국의 소규모 함대만 상대하면 될 줄 알고 출격했으나 얼마 후 적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깨닫고 급히 우현으로 방향을 틀어 카디즈를 향해 남향으로 나아갔다.
오후 2시경, 로드니 제독은 전군에게 최대한의 속도로 스페인 함대를 추격할 수 있는 재량권을 휘하 함선들에게 부여했다. 당시 스페인 함선들은 영국 함선보다 느렸기 때문에, 그들이 따라잡히는 건 시간문제였다. 이후 적과 근접해지자, 로드니는 바람이 가려지는 쪽에서 스페인 배들을 추월해서 적과 카디즈 사이를 가로막은 뒤 포위섬멸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오후 4시경, 영국의 전위 함선 HMS 베드포드, 디펜스, 리솔루션, 그리고 에드가 호가 스페인 함대의 후방과 접촉했다. 양측은 서로에게 포탄을 발사했고, 곧 스페인 함대가 적의 우월한 전투력에 밀렸다. 에드가 호는 산 도밍고 호를 향해 측면 공격을 가했고, 뒤따라가던 말버러 호와 아약스 호는 산 도밍고 호를 전면에서 포격했다. 결국 산 도밍고 호는 오후 4시 30분에 폭발했고 배에 탑승하고 있던 선원 전원이 사망했다.
아약스 호와 말버러 호는 다음으로 피린세사 호를 향해 공세를 이어가 순식간에 무력화시켰고, 남은 스페인 선박들을 추격했다. 베드포드 호는 프린세사에 대한 공격을 한 시간 동안 계속했고, 결국 프린세사 호는 오후 5시 30분 경에 항복했다. 오후 7시 30분, 영국 전열함들이 랑가라 제독의 주력함인 페닉스 호를 따라잡았다. 페닉스 호는 좌현에서 디펜스 호의 공격을 받았고 우현에서도 몬태규 호의 공격을 받았다. 뒤이어 프린스 조지 호가 페닉스 호를 공격했고, 비엔파이어산트는 페닉스 호의 주요 중간 돛대를 파괴했다. 결국 페닉스 호는 오후 8시 30분에 항복했다. 한편 몬타규 호는 딜리젠테 호를 향해 돌진해 측면으로 돌아가서 딜리젠테 호의 주요 중간 돚대를 파괴했고, 딜리젠테 호 역시 항복했다.
이 무렵, 스페인 함대의 후방으로 돌아간 배들은 곧 적을 추월해 적의 퇴각로를 성공적으로 차단했다. HMS 컴버랜드는 산 유제니오 호를 따라잡았고, 밤 11시경 모든 돛대를 격추시킨 후 항복을 받아냈다. 컬로든과 조지 왕자 호는 산 줄리안 호를 공격하여 새벽 1시 즈음에 포획했다. 뒤이어 모나르카 호 역시 HMS 알시데 호의 공격을 받았는데, 알시데 호의 주요 중간 돛대를 파괴할 정도로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영국 프리깃 함인 아폴로 호에 의해 붙들렸고 뒤이어 HMS 샌드위치 호의 공격으로 포획되었다. 한편 산 어거스틴 호는 HMS 모나치 호에게 항복했지만 모나치 호 선원들이 올라타기 전에 어둠을 틈타 탈출했다. 그리고 다른 두척의 스페인 함대도 기회를 틈타 달아났다.
다음날 아침, 영국 배들은 해안에서 멀어지면서 포획한 스페인 배들을 끌고 갔다. 다만 산 줄리아 호와 산 유제니오 호는 손상이 매우 심했기에 암초에 난파시켰다. 이후 로드니는 지브롤터로 향했고, 1월 26일 지브롤터에 당도해 수비대에게 밀가루 등 보급물자를 전달했다. 이때 스페인의 잔여 함대는 감히 영국 함대를 공격하지 못했다. 이리하여 세인트 빈센트 곶 해전은 영국 해군의 완승으로 끝났다.

5. 결과


스페인군의 사상자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마도 5천 명 이상이 전사, 부상, 또는 포로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군에게 붙들린 포로들 중에는 랑가라 제독도 있었다. 반면 영국군의 사상자는 141명이었다. 이렇게 해서 스페인 해군의 지브롤터 해상 봉쇄는 맥없이 풀려버렸고, 오랫동안 보급을 받지 못해 곤경에 처해 있던 수비대는 구원받았다. 이후로도 스페인군의 지브롤터 포위 작전은 지속되었지만 영국 해군에 의해 해상 봉쇄가 풀린 상황에서 이러한 작전은 아무 의미 없었고, 결국 스페인은 미국 독립 전쟁이 끝날 때까지 지브롤터를 탈환하지 못하다가 어쩔 수 없이 영국의 지브롤터 영유권을 인정했다.
[1] 이 사람의 이름은 훗날 영국 해군의 함명이 되어 지속적으로 계승되며, 비스마르크 추격전에서 비스마르크를 걸레짝으로 만들어버린 넬슨급 전함 '로드니'가 바로 이 사람에게서 따온 이름을 사용한 것이다.